소설리스트

10권. 국제 연합 기구 (111/225)

┃국제 연합 기구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릿속에서 혼란이 생겼다.

“혹시 이곳에서 준신화 등급 몬스터는 언제 처음 등장했습니까?”

현성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주군이 말씀해 주신 준신화 등급 몬스터로 추정되는 개체가 나타난 건 첫 대격변 이후 70년 정도 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3차 대격변이 한창일 무렵이었지요.”

파르티샤의 대답을 들은 현성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뭔가 이상해.’

타 차원에 비해 수중 차원 게이트가 너무 빨리 열렸다.

준신화 등급 몬스터의 등장 속도도 빨랐다.

거기다 순서도 뒤죽박죽이었다.

현성의 세계는 준신화 등급 몬스터가 먼저 등장하고 그 후에 수중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하지만 파르티샤의 세계에서는 반대였다.

물론 준신화 등급 몬스터가 좀 더 일찍 등장했는데 너무 멀리 떨어진 장소라서 파르티샤가 그 당시에는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든 면에서 지구 침공 속도가 월등히 빨라.’

루시아의 차원이나 파르티샤의 차원과 비교해 진행 속도가 너무 빨랐다.

특히 파르티샤의 차원과 비교했을 때 2차 대격변과 3차 대격변 사이의 거리가 엄청나게 단축되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지?’

나름대로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야.’

여유가 없다는 게 중요했다.

‘대비를 해야겠어.’

지금까지처럼 주먹구구식 대응으로는 몬스터의 침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일어났던 1차 오크 몬스터 웨이브, 일본에서 일어났던 조인족 몬스터 웨이브.

모두 초동 대처 실패로 일이 커졌다.

‘전 세계가 똘똘 뭉쳐서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해.’

지금처럼 따로 놀다가는 루시아의 차원이나 파르티샤의 차원처럼 최악의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었다.

* * *

현성은 게스피트와 파르티샤를 만난 후 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윌슨 대통령과 무슨 이야기를 하셨어요?”

신윤아가 현성에게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없었어요.”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신윤아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중요한 일을 하나 진행해 볼까 해요.”

“중요한 일요?”

“예, 국제기구를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요.”

“국제기구요?”

신윤아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차원 게이트가 생성되었을 때 자력으로 막기 힘들면 도와주는 국제 연합 기구 같은 걸 하나 만들려고요.”

“UN이나 EU 같은 거네요.”

“맞아요. 일단 이모탈 길드를 주축으로 해서 한번 만들어 보려고요.”

“서로 가입하려고 난리가 나겠네요.”

현성이 이모탈 길드를 중심으로 만든 국제 연합 기구가 탄생한다?

말이 국제 연합 기구지 사실상 현성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을 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걸 하면 현성 씨만 더 바빠지지 않을까요?”

지금도 바쁘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한데 국제 연합 기구를 만들면?

더 바쁘게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한다.

어쩌면 가입국들이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불려 다닐 수도 있다.

“아, 괜찮아요. 가입비랑 연회비도 받고 추가 수당까지 청구할 계획이니까요.”

“예?”

“일단 가입비는 1천조 원으로 하고 연회비는 1백조 원 그리고 추가 수당은 차원 게이트랑 몬스터 타입에 따라 개별 청구하면 될 것 같아요.”

“가입비가 1천조 원요?”

신윤아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1천조 원이 옆집 애 이름도 아니고 도대체 누가 그 큰돈을 낸다는 말인가?

“일단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 중국, 일본은 자동 가입으로 처리될 것 같고. 인도, 아랍은 조금만 설득하면 가능할 것 같아요.”

현성의 말에 신윤아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그,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자칫 잘못하면 비난 여론이 쏠릴 수도 있다.

“미국도 동맹국들한테 방위분담금 같은 거 받잖아요.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래도 1천조 원이 적은 돈은 아니잖아요. 여론이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신윤아는 현성이 괜한 일을 벌이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현성은 태연했다.

“아, 그건 강대국들한테 받는 금액을 기준으로 한 거라 높은 겁니다. 중소국들한테는 좀 저렴하게 받을 생각이에요. 가입비는 1년 치 국방 예산이고, 연회비는 1년 치 국방 예산의 10%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 정도면 큰 부담은 아니잖아요.”

현성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큰 부담일 거 같은데.’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세계 각국은 군비 증강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대폭 늘어난 국방 예산의 10%다.

부담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었다.

사실 현성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식으로 삥(?)을 뜯어서라도 플레이어들의 전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일단 휘하에 들어온 중, 저레벨 플레이어들을 최대한 빠르게 성장시킨다.’

이게 현성의 1차 목표였다.

앞으로 다가올 전투에 대비하려면, 고레벨 또는 랭커라고 불릴 수 있는 이들의 숫자를 최대한 늘려 놓아야 했다.

‘돈을 처바르는 한이 있더라도 성장 속도를 올려야 해.’

현성에게는 희귀 및 영웅 등급 스킬북이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라나는 새싹들에게는 상당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 *

미국 미드호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수중 차원 게이트의 존재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세계 각국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러다가 지구 멸망하는 거 아님?

-지상이랑 하늘에서 나오는 차원 게이트 막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물속에서까지 나오고 지랄인지…….

-지상에 생긴 차원 게이트는 그냥 공구리 치면 되고, 하늘에서 생긴 차원 게이트는 건물 올려서 공구리 치면 되지만, 물속에서 생긴 차원 게이트는 어떻게 공구리 침?

-공구리야 칠 수 있는데, 문제는 몬스터가 퍼져 나가는 걸 알 수가 없다는 거임.

-맞는 말임. 지상이나 하늘은 항공 장비로 감시한다 치지만 물속에 있는 건 어떻게 감지함?

-우리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다 퍼져 나간 후일 확률이 높음.

-이미 바다 깊은 곳에서 차원 게이트가 열렸을 수도 있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지.

-정말 그럴 수도 있음.

-이제 바다에서 크라켄이나 시 서펜트 나타나는 걸 실물로 볼 수 있는 건가?

-이 미친놈아, 악담하지 마!

인터넷은 완전 개판이었다.

미드호에서 휴가를 즐기던 사람들이 어류형 몬스터들에게 습격당하는 영상은 이미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상태였다.

범인은 관광객들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었다.

세계 각국의 정부는 수중 차원 게이트도 단속해야 했고 불안해하는 국민들의 마음도 달래야 했다.

물은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하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화물을 운송하는 데 있어서도 물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스와 석유 같은 자원부터 시작해 자동차, 가전제품, 식량 등등 수많은 물품들이 바다를 통해 나라와 나라를 오간다.

그런 바다가 몬스터 천지가 된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겪었던 인적 물적 손실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각국 정부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이번 사태를 훌륭하게 해결한 미국의 사례에 집중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몬스터의 박멸과 차원 게이트의 임시 봉인.

이건 최현성 플레이어밖에 의지할 구석이 없었다.

최첨단 기술을 때려 박은 미국의 수중 던전도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랭커들은 수중 전투 훈련에 돌입했다.

그와 동시에 물속에서 육지처럼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아이템과 수중 전투를 보조해 주는 스킬북의 가격이 급상승했다.

그때 갑자기 폭탄이 터졌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이모탈 길드를 중심으로 한 국제 연합 기구 창립을 선언한 것이다.

* * *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백악관은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윌슨 대통령은 당황스러웠다.

현성과 웃으며 헤어진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갑자기 뒤통수를 맞았다.

이런 일을 계획하고 있었으면 전에 만났을 때 미리 귀띔을 해 주는 게 예의 아니겠는가?

‘분명히 만족했다고 했는데.’

현성은 1천억 달러의 주식과 수중 던전의 수익금 50%를 받고 만족스럽다고 했다.

한데 갑자기 왜 이런다는 말인가?

“최현성 플레이어가 만들 국제 연합 기구 가입 조건이 어떻게 되나?”

윌슨 대통령이 외교부 장관에게 물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아! 골치가 아프군.”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실 일개 플레이어가 국제 연합 기구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최현성 플레이어에게는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무력과 권력이 있다.

“국제 연합 기구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한 불이익은 없겠지?”

윌슨 대통령이 외교부 장관에게 물었다.

“공식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가입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아!”

윌슨 대통령의 입에서 다시금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미합중국은 세계 최강국이다.

그런 미국의 대통령인 자신이 플레이어 한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될 줄이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설마 1조 4천억 달러를 꿀꺽해 놓고 토사구팽하지는 않겠지.’

아마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아무도 모른다.

수십만분의 1의 확률로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진다면?

“하아!”

다시금 한숨이 터져 나왔다.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군.’

무력으로도 금력으로도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물론 무력과 금력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여론을 조성해 최현성 플레이어를 압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최현성 플에이어와 척을 지게 된다.

그건 미국을 수호하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설 등급을 넘어선 몬스터가 등장했다.

수중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미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최현성 플레이어의 절대적인 협력이 필요했다.

‘약자가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나?’

미국의 대통령이 된 후로 처음 느껴 보는 무력감이었다.

“대통령님, 최현성 플레이어가 만든 국제 연합 기구의 가입 조건이 나왔습니다.”

“그게 뭔가?”

윌슨 대통령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게 일단 가입비와 연회비가 있습니다.”

“돈 내놓으라는 소리군.”

윌슨 대통령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구겨졌다.

‘보수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나한테 바로 이야기를 하지.’

안심시켜 놓고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예, 일단 가입비는 각국의 1년 치 국방 예산입니다. 그리고 연회비는 해당 연도 치 국방 예산의 10%라고 합니다.”

윌슨 대통령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1조 4천억 달러도 부족하다 이건가!’

최현성 플레이어의 탐욕스러운 모습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무력과 금력을 움켜쥔 날강도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이라도 플랜을 바꿔 최현성 플레이어와 한국을 압박해야 하나?

아니면 살살 달래야 하나?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 그리고 본국은 가입비가 면제라고 합니다.”

“뭐?”

윌슨 대통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투자 회사에 투자한 금액을 가입비로 인정해서 면제해 준다고 합니다.”

“하하하! 그럼 그렇지.”

윌슨 대통령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역시 최현성 플레이어는 말이 통하고 상식이라는 게 존재하는 정상인이었다.

‘연회비 정도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

오히려 그 정도 금액으로 미국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면, 엄청나게 싸게 먹히는 거였다.

끽해 봐야 1천억 달러 남짓 아니겠는가?

“저, 그런데 추가 수당이 있습니다.”

“추가 수당?”

윌슨 대통령의 얼굴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예, 전설 등급 몬스터는 마리당 10억 달러, 지상 차원 게이트 봉인은 30억 달러, 공중 차원 게이트 봉인은…….”

외교부 장관의 입에서 출장 수당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가입비를 내고, 연회비도 내고, 출장 수당까지 내야 하는 건가?”

윌슨 대통령이 허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외교부 장관의 말에 윌슨 대통령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 *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

“미국 놈들하고 뭔가 작당을 한 게 아닐까요?”

“저도 그 점이 의심스럽습니다. 윌슨 대통령을 만난 직후 갑자기 국제 연합 기구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참모들의 말에 표트르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나쁠 게 없겠군. 가입비도 면제해 준다고 하고 말이야.”

표트르 대통령의 말에 참모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최현성 플레이어의 독자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어.”

표트르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참모들이 입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주도했다면 우리 러시아에 불리한 조건을 걸었을 수도 있습니다.”

“최현성 플레이어와 미국의 사이가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참모들이 순식간에 태도를 바꿨다.

“뭐, 미국이 주도를 했든 최현성 플레이어가 주도를 했든 우리는 가입할 수밖에 없네.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설사 미국이 주도한 것이라고 해도 일단 가입은 해야 합니다.”

수중 차원 게이트가 등장했다.

그걸 막을 수 있는 이는 지금 당장은 최현성 플레이어뿐이다.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가입을 해야 한다.

“가입 후에는 주도권 싸움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맞습니다. 미국은 최현성 플레이어가 만든 국제 연합 기구를 UN처럼 자신들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려 할 겁니다. 그걸 막아야 합니다.”

“우리 러시아가 최현성 플레이어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 줄 수 있을 겁니다.”

참모들의 말에 표트르 대통령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 순간 참모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이 멍청한 놈들.’

충성심이 강한 건 좋은데 너무 줏대가 없었다.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만든 국제 연합 기구는 미국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어.”

어느 날 갑자기 차원 게이트가 일제히 소멸하지 않는 한 미국은 최현성 플레이어를 적대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일은 최현성 플레이어의 아군이 되는 게 아니다.”

표트르 대통령의 말에 참모들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다.

혈맹이 되어도 모자랄 판에 최현성 플레이어의 아군이 되어서는 안 된다니?

“우리 러시아는 최현성 플레이어의 충실한 사냥개가 되어야 한다.”

참모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존심 강한 표트르 대통령이 사냥개라는 표현을 사용하다니?

“중국과 일본은 이미 최현성 플레이어의 충실한 사냥개가 되었다.”

러시아 정보기관인 FSB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아닌 척하지만, 이미 최현성 플레이어와 깊은 밀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중국 정부는 최현성 플레이어를 신으로 모시는 인류의 수호신교도들을 탄압하기는커녕 그들을 중국공산당에 입당시켰다.

정상적인 형태의 종교조차 탄압하던 그간 중국의 행보를 생각하면 파격적이다 못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아예 대놓고 나라를 빼앗긴 수준이다.

인류의 수호신교도들이 정권 자체를 장악했으니까 말이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우리 러시아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말해 가능성이 희박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최현성 플레이어를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어떤 형태의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어떤 등급의 몬스터가 등장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현성 플레이어를 의지해야 해. 최현성 플레이어를 우리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우리가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맞추는 수밖에 없다.”

표트르 대통령의 말에 참모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최현성 플레이어를 나라고 생각하고 대하도록. 최현성 플레이어가 요청하는 게 있으면 무조건 들어줘.”

“알겠습니다, 각하!”

참모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표트르 대통령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최현성 플레이어 앞에 바짝 엎드린다.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철저하게 복종한다.

사나운 본성을 숨기고 배를 보이고 꼬리를 흔들며 주인 앞에서 재롱을 떤다.

그러다 주인의 말 한마디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적의 숨통을 물어뜯는다.

러시아는 최현성 플레이어의 말 한마디에 목숨이라도 던질 수 있는 충성스러운 사냥개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 놈들은 아마 이렇게 할 수 없겠지.’

최현성 플레이어는 상식이 통하는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지성인이다.

러시아가 충성을 다한다면?

분명히 그에 합당한 보답을 해 줄 것이다.

* * *

“미국, 러시아, 유럽 연합, 중국, 인도, 아랍, 일본이 다 가입하겠다고 했다는 거죠?”

현성이 강선영 길드장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가입 의사를 타진했던 국가들은 모두 수락했습니다.”

“좋네요.”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한데 새롭게 설립할 국제 연합 기구 본관은 어디에 설치할 생각이십니까?”

“북한에 남는 땅 많잖아요. 거기다 지으면 되죠.”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정부가 쉽게 땅을 불하해 줄까요? 이런저런 요구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요.”

이모탈 길드와 한국 정부는 그다지 협조적인 사이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관계다.

“불하해 줘야죠. 제가 설립하는 국제 연합 기구에 가입하고 싶으면.”

“예?”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 강선영 길드장님, 혹시 청와대에는 가입 요청 안 했어요?”

현성의 물음에 강선영 길드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게, 국제 연합 기구의 설립국인 만큼 당연히 자동 가입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의 말에 현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강선영 길드장님, 대한민국은 국제 연합 기구 설립국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당연히 가입을 해야죠.”

국제 연합 기구를 설립하는 건 이모탈 길드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 역시 국제 연합 기구에 가입하려면 정식으로 가입 신청서를 내고 가입비와 연회비를 납부해야 한다.

“그, 그게, 정부가 과연 그렇게 하려고 할까요?”

강선영 길드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성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 등록증에도 대한민국 소속으로 표시되어 있다.

정부는 국가에 재난이 닥치면 자국의 플레이어에게 소집령을 내린다.

이론상으로 정부는 현성에게 소집령을 내릴 수 있다.

굳이 막대한 가입비와 연회비를 지불하고 국제 연합 기구에 가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해야죠. 물론 혜택은 충분히 줄 겁니다. 일단 가입비는 토지 불하로 때울 수 있게 해 줄 거고, 연회비와 추가 수당은 한국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성장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사용할 겁니다. 고아, 장애인, 독거노인, 이런 분들을 위해서요.”

“그래도 안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죠?”

소집령은 플레이어가 거부할 수 없다.

법으로 정해진 플레이어의 의무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현성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소집령에 불응한다면?

사실상 정부에서 현성을 강제할 수는 없다.

처벌을 내리기도 힘들었다.

이미 현성은 정부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초법적인 존재로 거듭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론전으로 가면 현성이 불리하다.

특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국가를 협박한다는 느낌을 주면 큰일 난다.

현성에게 우호적인 국내 여론이 뒤집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게 만들어야죠. 미국, 유럽 연합, 중국, 러시아 이런 나라들도 다 가입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형평성을 맞추려면 한국도 정당한 절차를 밟아 가입해야 합니다.”

조국인 만큼 어느 정도 혜택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너무 과한 특혜는 곤란했다.

“청와대와 국회가 순순히 따라 줄지 걱정이군요. 저는 가입비와 연회비 정도는 면제해 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강선영 길드장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현성이 형평성을 이야기하기는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현성이 조국인 한국에 특혜를 준다고 뭐라고 할 나라는 없었다.

미국이 따지겠는가?

러시아가 따지겠는가?

유럽 연합이 따지겠는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현성의 물음에 강선영 길드장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 가입비와 연회비를 면제해 주고 한국에서 자문위원장님과 이모탈 길드의 입지를 더 단단하게 다지는 게 더 큰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이 지불해야 하는 가입비와 연회비가 자문위원장님에게 있어 큰돈은 아니지 않습니까?”

큰돈은커녕 푼돈에 가까웠다.

전 세계의 강대국들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삥을 뜯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여론은 좋아지겠죠. 하지만 과연 정부 인사들이 그런 조치를 고맙게 생각할까요?”

“정치인들을 생각하지 마시고 국민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강선영 길드장의 말에 현성이 피식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국민들을 생각하니까 전액 저레벨 플레이어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거예요.”

현성의 진짜 목적은 한국의 모든 역량을 모아 플레이어 전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전 세계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내 조국인 대한민국이 분열되면 안 되지.’

본진이 든든하게 자리를 잡아야 멀티가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멀티가 아무리 많아도 본진이 부실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기존의 본진을 버리고 멀티 중 하나를 새로운 본진으로 만들 게 아니라면 말이다.

현성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에게 커다란 족쇄를 채울 생각이었다.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딴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한번 지켜봐 주세요. 강선영 길드장님이 생각하시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현성의 자신만만한 어조에 결국 강선영 길드장이 입을 닫았다.

간언을 하는 것은 신하의 본분이다.

하지만 이미 군주가 결정을 내린 일에 반대하는 것은 항명이다.

강선영 길드장은 간언과 항명의 차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일단 청와대와 약속부터 잡아 주세요. 제가 직접 대통령과 담판을 짓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이 바로 청와대에 연락을 취해 약속을 잡았다.

그 후 이모탈 길드의 브레인들을 소집해 비상 대책 회의를 열었다.

군주가 결단을 내린 상태에서 충신이 해야 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모든 일이 군주의 뜻대로 풀려나가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그리고 혹시 모를 변수로 인해 군주의 계획이 어그러졌을 때를 대비한 대책을 세운다.

강선영 길드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성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변모해 있었다.

* * *

현성이 청와대에 도착했다.

이지용 대통령은 직접 현성을 마중 나왔다.

기자들을 동원해 요란하게 홍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다.

“청와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최현성 플레이어.”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현성과 이지용 대통령이 웃는 얼굴로 악수를 나눴다.

“들어가시죠.”

이지용 대통령이 직접 현성을 안내했다.

겉으로 보이는 이지용 대통령의 표정은 태연했다.

하지만 속은 아니었다.

‘도대체 왜 청와대에 온 거야? 이번에 만든다는 국제 연합 기구 때문인가?’

이지용 대통령은 이모탈 길드를 통해 현성의 방문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저번 사건 이후 이지용 대통령은 스스로의 주제 파악을 제대로 했다.

대통령이랍시고 현성 앞에서 꼿꼿이 목에 힘주고 있다가는 지지율이 폭락해 허수아비 대통령이 되거나 탄핵될 판이었다.

현성이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선동할 수도 있고, 강대국들을 선동해 이지용 대통령을 외교 무능력자로 만들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막강한 금력을 이용해 국가 경제를 뒤흔들 수도 있다.

이지용 대통령에게 있어서 최현성은 최대한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은 역병 같은 존재였다.

‘딱히 책잡힐 만한 일은 안 했는데.’

이지용 대통령은 혹시 현성에게 혼날 만한 일을 한 적이 있나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아, 전설 등급 아이템 경매 때 자금 지원 안 해 줬구나.’

그냥 엮이기 싫다는 마음에 신경을 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실수였던 것 같다.

‘한국 국적 플레이어들이 경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국고 지원을 해 주겠다고 의사 타진이라도 해 볼걸.’

그런 큰 실수를 한 자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엮이는 것도 싫지만 더 무서운 건 밉보이는 것 아니겠는가?

이지용 대통령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목적지인 상춘재에 도착했다.

현성과 이지용 대통령이 자리에 착석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이지용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그때 일을 만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이모탈 길드에서 진행하는 경매에 국가 차원에서 한국 플레이어들을 지원하겠습니다.”

“네?”

이지용 대통령의 말에 현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왜 갑자기 저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반면 말을 내뱉은 이지용 대통령도 적지 않게 당황했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한 것이다.

“아, 그게…….”

이지용 대통령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현성이 입을 열었다.

“뭐, 그럼 그렇게 하세요.”

현성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어차피 돈을 누가 내든 휘하에 들어오기만 하면 상관없는 일 아니겠는가?

“알겠습니다.”

이지용 대통령 잽싸게 대답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모양이 좀 빠지기는 했지만, 이지용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원하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이제 책잡힐 만한 일 같은 건 없어.’

마음이 편해졌다.

“제가 온 목적이 뭔지는 아시죠?”

현성이 이지용 대통령에게 물었다.

“아, 예. 이번에 새롭게 창립하신다는 국제 연합 기구 일로 찾아온 게 아니신지?”

이지용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맞습니다.”

현성의 대답에 이지용 대통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실 일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이지용 대통령의 말에 현성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이 양반 전에 봤을 때랑은 달라도 너무 다른데?’

어떻게든 현성을 이용해 먹으려고 했던 사람이 지금은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굴고 있었다.

“개성 토지를 불하받고 싶습니다. 거기에 이번에 만든 국제 연합 기구 본부를 만들 생각이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이지용 대통령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저기, 그게 일단 진행은 해 보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왜죠?”

“개성 지역을 불하받을 예정인 기업이 있습니다.”

“설마 북한 지역 토지 불하를 대기업과 밀실 협의로 처리하신 건 아니시죠?”

“아닙니다!”

현성의 물음에 이지용 대통령이 맹렬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외쳤다.

“공개적으로 입찰 중입니다. 제 말뜻은 이미 공개 입찰에 들어가서 취소하기가 어렵다는 뜻이었습니다.”

“그게 아닌 거 같은데.”

현성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모탈 길드도 정당하게 입찰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원하시면 당장 입찰하실 수 있게 조치하겠습니다.”

이지용 대통령이 변명하듯 외쳤다.

사실 지금 이지용 대통령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개성은 한호 그룹한테 주기로 했는데…….’

사실 북한 지역 토지 불하는 비공개적으로 분배가 끝나 있는 상태였다.

정부와 대기업이 손을 잡고 오랜 협의 끝에 짬짜미를 끝마쳤다.

겉으로는 공정한 공개 입찰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사실 정부는 이미 토지의 가격과 주인을 정해 놓은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런 상황이면 한호 그룹도 이해해 줄 거야.’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자연재해급의 인물이 난입한 상황이다.

그런 만큼 한호 그룹도 정부에 항의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이모탈 길드가 왜 입찰에 참가를 합니까? 이모탈 길드는 입찰에 참가할 계획이 없습니다.”

“예?”

이지용 대통령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혹시 단독 유상 불하를 요구하시는 겁니까? 그건 형평성 문제부터 해서…….”

“단독 유상 불하가 아니라 단독 무상 불하죠.”

현성의 말에 이지용 대통령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단독 유상 불하도 난리가 날 일이다.

한데 단독 무상 불하라니?

“저기, 그건 기업들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국유지를 공짜로 넘기다니?

그 대상이 현성이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했다.

“아, 그건 괜찮습니다. 무상이라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으니까요. 한국에는 개성 땅을 받는 걸로 가입비를 대신할 겁니다.”

이지용 대통령은 머리 띵했다.

“가입비 대신요?”

“네.”

“그럼 혹시 한국도 연회비를 지불해야 합니까?”

“당연하죠.”

현성의 태연한 대답에 이지용 대통령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가 맞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가 들어갔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제가 해 드리고 싶어도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이 절대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국민들이 찬성하기만 하면 괜찮다는 거죠?”

현성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이지용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업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번 일에 직접적인 이권이 걸린 건 대기업들이다.

그런 만큼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알아서 여론 선동에 나설 것이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이게 끝인가?’

이지용 대통령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잔뜩 긴장했는데 현성과의 대화가 생각보다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아, 그런데 대통령님, 요즘 나라 곳간이 많이 비었죠?”

현성의 물음에 이지용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2차 대격변으로 인한 피해 복구 자금, 북한 지역 개발 자금, 오크 로드가 포함된 몬스터 웨이브로 인한 피해 복구 자금, 전사하거나 장애를 갖게 된 플레이어들에 대한 보상금, 수중 차원 게이트에 대한 대비 자금 등등.

나라에 돈 들어갈 곳이 천지였다.

“제가 돈을 좀 빌려드리겠습니다.”

“예?”

“한 1조 달러 정도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죠?”

이지용 대통령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1조 달러이라니?

그건 당장 급한 불만 끌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이 아니다.

앞으로 진행될 북한 지역 개발을 타국의 투자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었다.

“정말 1조 달러를 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지용 대통령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 정도 능력은 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현성의 말에 이지용 대통령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소유권과 러시아의 천연가스 소유권 그리고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이모탈 길드 지부에서 벌어들이는 수익까지…….

현성은 엄청난 부자다.

한데 이번 국제 연합 기구를 만들며 더 큰 부자가 되었다.

1조 달러가 아니라 10조 달러를 빌려준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재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혹시 1조 달러로 부족할 것 같으시면 더 빌려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현성의 말에 이지용 대통령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공으로 생긴 국가 예산 1조 달러.

거기서 얼마나 많은 떡고물이 떨어질지 모를 이지용 대통령이 아니었다.

탐이 났다.

당장에라도 알겠다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지용 대통령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지용 대통령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전임 대통령인 박기만 대통령의 전례를 생각해야 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거금을 국가에 빌려주시지는 않으실 거고…… 정부가 어떻게 해 드리길 원하시는지?”

개성 지역 토지 무상 불하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것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고작 그런 목적으로 1조 달러의 돈을 쓸 리가 없다.

무려 1조 달러다.

그 돈이면 개성 지역 토지를 유상 불하받고도 남는다.

“정부에 원하는 건 없습니다. 그저 지금처럼 국정 운영만 잘해 주시면 됩니다.”

현성의 태연한 대답에 이지용 대통령은 기가 막혔다.

마음 같아서는 현성에게 ‘그럴 리가 없잖아! 어서 그 시커먼 속내를 드러내!’라고 다그치고 싶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럼 혹시 대출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같은 돈을 빌리더라도 대출 조건이 중요한 법 아니겠는가?

같은 금액이라도 제1금융권에서 빌리는 것과 사채업자에게 빌리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완전히 넘어왔네.’

현성이 미소를 지었다.

이지용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현성에게 1조 달러를 빌리는 걸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이게 돈의 마력이다.

눈먼 돈이라고까지 불리는 나랏돈이 늘어나는 일이니, 눈이 뒤집힐 만도 했다.

“이자는 연 1%로 하겠습니다. 일단 이자만 내시고 원금 상환은 계약 종료 후 조율하시면 됩니다.”

“연 1%.”

이지용 대통령이 홀로 중얼거렸다.

엄청나게 저렴한 이자였다.

“일반인들이 은행 대출 끼고 집을 구매할 때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납부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거랑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액수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또 원금이 워낙 크다 보니 연 1%라고 해도 1년에 100억 달러의 이자를 내야 한다.

“원화로 계산하면 1년 이자가 무려 10조 원이군요.”

이지용 대통령의 말에 현성이 실소를 터트렸다.

“대한민국 1년 국가 예산이 얼만데 이자 10조 원을 걱정을 하십니까? 1조 달러면 원화 약 1천조 원입니다. 잘만 굴리면 1년에 수백조도 벌 수 있습니다.”

현성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잘 굴렸을 때다.

불리기는커녕 까먹기만 할 수도 있다.

대출을 끼고 집을 구매한 후 이자만 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집값이 오르면 이득이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지면 손해다.

“어차피 금싸라기 땅이나 다름없는 북한 지역에 주로 투자할 거 아닙니까?”

현성의 말에 이지용 대통령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북한에 지하자원이 얼만데.’

웬만큼 떼먹어도 손해날 일은 없어 보였다.

아니, 이득이 날 게 확실한 만큼 팍팍 떼먹어도 티가 안 날 것 같았다.

“혹시 이자가 부담되시면 그것도 할부 유예를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예?”

“리볼빙 서비스 같은 거 있지 않습니까? 이자를 원금이라고 치고 이자의 이자만 갚는 셈 치면 되죠.”

“도대체 왜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건지?”

이지용 대통령의 현성의 꿍꿍이가 궁금했다.

이건 누가 봐도 현성이 손해 보는 장사다.

사실상 자기 돈을 거의 무상으로 국가에 빌려주겠다는 뜻이다.

차라리 기부를 했다면 그 순수성을 믿을 수 있다.

애국심이 철철 흘러넘쳐서 전 재산을 국가에 기부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찌 되었든 대출이다.

“원금 상환 기한을 5년 후로 잡을 생각입니다.”

“5년이라면?”

이지용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해 권력이 절정에 달할 시점이다.

“5년 주기로 원금 상환을 요구할지 유예할지 결정할 생각입니다. 아마 그때 집권하고 있는 정권의 신용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겠죠.”

현성의 태연한 말에 이지용 대통령의 눈이 번뜩였다.

드디어 현성의 목적을 알아차렸다.

‘이건 앞으로 정권을 잡을 대통령들에게 개목걸이를 채우겠다는 거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 현성이 원금 상환을 요구하면?

집권하자마자 국가 재정이 ‘빵구’가 날 수도 있다.

신임 대통령 입장에서는 현성에게 무릎 꿇고 싹싹 비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막아야 했다.

물론 현성이 빌려준 돈을 제대로 굴린다면, 원금 상환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국가가 현성에게 빌린 돈을 적재적소에 투입하고 맑고 깨끗하게 운용한다면?

현성의 원금 상환 요구에 아무런 부담감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현성에게 빌린 돈을 엉뚱한 곳에 탕진하고 불투명하게 운영해 까먹었다면?

현성의 원금 상환 요구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국가 재정을 파탄 낼 수도 있었다.

“이지용 대통령님 입장에서는 손해 보실 게 딱히 없으실 텐데요?”

현성의 말에 이지용 대통령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일단 문제가 터지는 것은 다음 정권 때부터가 될 테니까 말이다.

“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지용 대통령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시겠죠. 저도 지금 당장 결정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시죠.”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청와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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