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파르티샤의 제안 (106/225)
  • ┃파르티샤의 제안

    현성은 루시아와 함께 열심히 사냥에 매진했다.

    까망이도 쑥쑥 성장해 나갔다.

    파충류라서 그런지 덩치는 생각보다 빠르게 커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늘이 점점 더 단단해지고 품고 있는 마력도 점점 더 강해졌다.

    ‘이 녀석을 보면 갓난아기가 플레이어로 각성해서 레벨업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플레이어로서 각성하는 나이는 10대 후반부터 50대 후반까지다.

    갓난아기나 유치원생이 플레이어로 각성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까망이를 보고 있자면 갓 태어난 아기가 플레이어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엄청나게 강한 플레이어가 말이다.

    현성이 주는 비약을 다 받아먹은 까망이는 작은 실뱀 같은 외형과 다르게 이미 스텟 자체가 깡패였다.

    거기다 몬스터를 사냥하고 사체를 섭취하며 빠르게 레벨을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상태창을 읽을 수는 없지만 점점 늘어나는 마력을 통해 까망이의 레벨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5레벨도 안 되어 보이는 녀석이 혼자서 하위 레벨 영웅 등급 몬스터를 사냥할 정도니.’

    마치 엄청난 스텟을 가진 갓난아기 고레벨 플레이어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용주 파르티샤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는데 또 전설 등급 몬스터가 나온 모양이네.’

    현성은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도착하자마자 전투에 돌입할 만반의 준비를 마친 현성이 예를 눌렀다.

    화악!

    현성의 몸이 밝은 빛무리에 휩싸였다.

    “어라?”

    당연히 몬스터가 넘쳐 나는 공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파르티샤가 현성을 소환한 장소는 전장이 아니라 내성 안에 자리한 집무실이었다.

    “오셨군요.”

    파르티샤가 미소를 지으며 현성을 반겼다.

    “아, 네. 그런데 전투 중이 아니셨군요?”

    파르티샤가 전투가 아닌 용무로 현성을 고용했다.

    이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파르티샤는 생존형 플레이어였다.

    게스피트나 백화 같은 VVIP들처럼 생존과 상관없는 일에 대량의 포인트를 소모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뭐, 내가 용병 고용 비용을 다시 돌려주기는 하지만, 그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고.’

    파르티샤가 현성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 용무로 용병 고용을 했다면?

    현성으로서는 파르티샤에게 용병 고용 비용을 다시 돌려줄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지.’

    일단 대화를 들어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현성이 그간 겪어 본 파르티샤는 상당히 현명한 인물이었으니까 말이다.

    “따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최현성 님을 고용했습니다. 바쁘신 일이 있다면 다시 돌아가셔도 무방합니다.”

    “당장 바쁜 일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행이군요. 그럼 앉으시지요.”

    파르티샤의 권유에 현성이 자리에 착석했다.

    “그런데 상의할 일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현성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성 밖으로 영토를 넓힐 생각입니다.”

    “아!”

    현성이 탄성을 터트렸다.

    과거에 이야기했던 영토 확대.

    그 일을 진행하려는 모양이다.

    “그런데 왜 저를 지금 소환하신 건지?”

    영토를 넓히려면 인근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소탕해야 한다.

    파르티샤가 현성을 고용하려면 전투가 벌어졌을 때 고용해야 했다.

    “최현성 님께 제안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저 엘라임의 군주 파르티샤가 최현성 님의 휘하에 들어가기를 청합니다.”

    “예?”

    현성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파르티샤는 분명 뛰어난 실력의 플레이어다.

    또한 이 성에 거주하고 있는 플레이어와 비각성자 들의 왕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타 차원의 인물이다.

    현성이 휘하에 거둬들여 봤자 딱히 도움이 될 건 없었다.

    오히려 도움이 되기는커녕 이것저것 퍼 줘야 할 확률이 높았다.

    “도대체 왜 저에게?”

    현성이 의문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엘라임이 스스로의 힘으로 영토 개척에 성공할 가능성은 무척 낮기 때문입니다.”

    “제가 도와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현성은 파르티샤에게 힘을 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게 최현성 님께 이득이 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있는 차원에서 사냥하는 게 더 이상 최현성 님께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굳이 현성이 파르티샤를 위해 싸워야 할 필요가 없다.

    “그 말씀은 제가 파르티샤 님을 휘하에 거두면, 굳이 사냥을 하지 않아도 꽤 큰 이득이 생긴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물론입니다. 이 차원의 모든 것이 최현성 님의 것이 될 테니까요.”

    이 차원의 모든 것.

    기이한 울림이 현성의 심장을 자극했다.

    “토지, 던전, 광물, 사람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대군주가 되시는 겁니다.”

    “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현성이 없다면?

    파르티샤가 그 모든 것을 얻는 대군주가 된다.

    현성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지금처럼 그때그때 대가를 주고 용병으로 고용하면 그만이다.

    현성에게 자신이 사는 차원의 모든 것을 넘길 필요가 없다.

    자신이 사는 차원에서 생산되는 재화의 일부분을 현성에게 넘겨주고 거래를 하면 그만이다.

    “최현성 님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다면 이 차원 자체를 수복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 모습을 한번 보시지요.”

    노파.

    파르티샤는 100살은 더 먹은 것 같은 노파의 외형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최현성 님의 도움이 없다면, 이 차원의 인류는 더 이상 생존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마 이대로 멸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제가 많은 배려를 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현성은 파르티샤에게 20%의 수수료를 제외한 용병 고용 비용을 되돌려 줬다.

    쉽게 말해서 그간 무료 봉사를 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완전한 무료는 아니었다.

    현성은 전리품을, 자신이 사냥한 몬스터에게서 나온 마석과 아이템을 챙겼으니까 말이다.

    파르티샤의 입장에서는 본래 고용 비용의 20%만 내면 현성을 고용할 수 있었다.

    용병이 사냥한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전리품을 얻을 수는 없지만, 용병 고용 비용이 확 줄어든 것이다.

    현성과 파르티샤는 일종의 공생 관계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거래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20%의 수수료도 저에게는 부담이 되니까요.”

    그건 폭삭 늙은 노파의 형상을 하고 있는 파르티샤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사실 현성이 영웅 등급 용병일 때는 파르티샤도 나름 버틸 만했다.

    하지만 현성이 전설 등급 용병이 된 후에는 최소 고용 비용의 20%를 지불하는 것도 파르티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혹시 이 성에 거주하고 있는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파르티샤가 본거지로 삼고 있는 성은 엄청나게 컸다.

    단순히 중세 유럽의 성 따위를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성이 아니라 성벽에 둘러싸인 거대한 도시라고 생각하는 편이 편했다.

    “꽤 많을 것 같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모릅니다.”

    “대략 700만 명이 넘습니다.”

    정말 엄청난 숫자였다.

    하지만 이 차원에서 생존한 인류가 모두 모여 있는 것이니, 많다고 하기도 힘들었다.

    아마 수십억 정도 인류가 살아가던 차원이었을 것이다.

    그런 차원의 생존자가 고작 7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말은 이 차원에서 인류라는 종이 멸종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다는 뜻과 같았다.

    “한정된 영토인 이 성안에서 700만 명이나 되는 인구의 자급자족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거의 불가능했다.

    농사를 지을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 그동안은 비축된 식량으로 버텨 오셨던 겁니까?”

    현성의 물음에 파르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비축된 식량도 거의 바닥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포인트로 식량을 구입해 보급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성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건 몬스터들로부터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일단 생존하는 것 자체가 고행의 연속이었다.

    ‘그러고 보니 파르티샤 님도 식량을 샀었구나.’

    현성은 식량 판매도 겸하고 있었다.

    냉동식품, 컵라면, 캔 같은 것부터 음식점에 막 배달된 따끈따끈한 것까지.

    파르티샤는 주로 컵라면이나 캔 같은 저렴하고 유통기한이 긴 음식들을 구매했었다.

    “안전한 영토를 확보한다고 해도 씨를 뿌리고 파종을 하고 과실을 얻으려면 최소 반년 이상은 버텨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외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없으면, 더 이상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음…….”

    현성은 고심에 빠져들었다.

    파르티샤의 차원이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하는 건 현성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제가 대대적인 지원을 해 주기를 원하시는 거군요. 단순한 무력만이 아니라 식량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파르티샤의 말에 현성은 할 말을 잃었다.

    몬스터에게 점령당한 차원의 최후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 저에게 이런 부탁을 하신 겁니까?”

    현성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현성 외에도 강한 용병들은 많았다.

    그들에게 부탁해도 되는 일이 아닌가?

    “그간 많은 용병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최현성 님처럼 우리를 배려해 주신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우리를 단순한 포인트로 생각하더군요.”

    현성도 이들을 포인트로 생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 차원을 질 좋은 사냥터로 생각했다.

    ‘좋게 포장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건가?’

    파르티샤와 그녀의 백성들은 큰 위기에 빠져 있다.

    그래서 최근에 인연을 맺은 현성에게 자신들을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있는 것이다.

    현성이 거절한다면?

    아마 다른 용병을 고용해 부탁할 것이다.

    자신들을 살려 달라고 말이다.

    파르티샤는 백성들이 멸족당할 위기를 피하기 위해 굴종의 삶을 선택했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파르티샤가 혼자 살려고만 했다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노파의 모습이 되어 있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의 고초는 그녀 스스로 자처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한 차원을 다스리는 대군주.

    확실히 탐이 나는 타이틀이었다.

    실리도 있다.

    몬스터들을 몰아내고 인류가 다시 이 차원의 주인이 된다면?

    현성은 이 차원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

    파르티샤의 말만 들으면 작은 투자로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손쉬운 일처럼 느껴졌다.

    하나 자칫 잘못하면 투자금만 날리고 쪽박을 찰 수도 있다.

    ‘나는 이방인이야.’

    현성은 파르티샤가 고용해 주지 않으면, 이 차원으로 넘어 올 수 없다.

    파르티샤가 단물만 쏙 빼먹고 현성을 버려 버리면?

    현성이 할 수 있는 것은 울분을 토하며 파르티샤를 원망하는 것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나에게도 이득이 되는 게 있어야 해.’

    단순히 파르티샤의 말만 믿을 수는 없다.

    파르티샤를 휘하에 넣고 영혼의 계약서로 옭아맨다고 해도 그게 이 차원의 군주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이 되지는 못한다.

    막말로 파르티샤가 전투 중에 전사하거나 스스로 자살해 버리면 모든 게 끝이었다.

    파르티샤가 약속한 것 중 현성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이 차원에 살고 있는 인류 모두를 휘하에 넣을 수도 없고…….’

    계륵.

    현성은 파르티샤의 제의가 마치 계륵처럼 느껴졌다.

    ‘일단 좀 더 탐색을 해 보자.’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릴 일은 아니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는 곤란합니다. 3일 안에 결정을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보다 포인트는 얼마나 남아 있으시죠?”

    “거의 없습니다.”

    겉모습을 보니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일단 받으시죠.”

    현성이 고용 비용으로 받은 포인트 중에서 20%의 수수료를 제외한 포인트를 파르티샤에게 돌려줬다.

    노파였던 파르티샤의 몸이 순식간에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남은 고용 시간 동안 이 차원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아, 그리고 이 차원에서만 나는 특산품 같은 게 있습니까?”

    “특산품 말씀이십니까?”

    “예.”

    처참한 상황에 몰린 것으로 보아 특산품 같은 게 있을 확률은 상당히 낮아 보였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비약입니다.”

    현성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비약요? 혹시 스텟을 올려 주는 그 비약 맞습니까?”

    현성이 다급하게 물었다.

    “예, 맞습니다.”

    파르티샤의 대답을 들은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특허 상품이 있는데 왜 이런 꼴이 되었다는 말인가?

    비약의 자체 생산이 가능하다면 비각성자들을 각성자처럼 만들 수도 있고, 각성한 플레이어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어떤 생각을 하시는 줄 알겠군요. 하지만 제가 사는 차원에서 만들 수 있는 비약은 오직 체력 스텟 증가의 비약뿐이었습니다.”

    “체력 스텟 증가의 비약요?”

    현성의 물음에 파르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마저도 비약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재료가 너무 희귀해서 많은 양을 제조할 수도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비약을 팔아 포인트를 벌려고 해도, 파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가격을 높게 받을 수도 없었고요. 아마 모든 종류의 비약을 생산할 수 있었다면, 제가 사는 차원이 이런 위기에 몰릴 일도 없었을 겁니다.”

    특산품이 있기는 있는데 가성비가 극악이었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생산이 가능합니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비약을 생산하는 재료를 재배하는 지역을 몬스터들에게 빼앗겨 버렸으니까요.”

    “체력 스텟의 비약은 어느 등급까지 생산이 가능하셨습니까?”

    “몬스터의 마석이 꼭 필요해서 주로 최하급부터 중급 위주로 생산했습니다. 상급 비약부터는 전설 등급 몬스터의 마석이 필요해서 많이 만들지 못했습니다.”

    “음…….”

    현성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뭔가 애매한데.’

    계륵이라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모든 비약을 다 생산할 수 있다면 파르티샤의 차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하는 보물 창고가 된다.

    하지만 체력 스텟 증가의 비약뿐이라면?

    아무래도 중요도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내가 비약의 존재를 대중에게 공개할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현성의 품 안에 들어온 이들에게는 포인트를 이용해 비약을 구매해서 넘겨주면 된다.

    굳이 파르티샤의 차원에 의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 그리고 장비와 포션 제조에 일가견이 있는 장인들이 많습니다!”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현성의 모습에 다급함을 느낀 파르티샤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장비와 포션 제조요?”

    “예, 드워프 장인과 엘프 장인에게 직접 배운 실력 있는 대장장이와 약제사 들이 많습니다. 재료만 충분하다면 영웅 등급 장비와 포션은 충분히 제조할 수 있습니다.”

    파르티샤의 말에 현성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차원에도 드워프와 엘프가 있나요?”

    드워프와 엘프의 존재는 익히 알고 있었다.

    1레벨 플레이어들 중에는 인간이 아닌 종족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크 드워프의 경우에는 게스피트의 차원에서 직접 보기도 했다.

    주로 무기, 방어구, 액세서리, 포션 같은 아이템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1레벨 플레이어들은 본인이 드워프나 엘프 장인이거나 같은 차원에 있든 드워프나 엘프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막대한 부를 쌓았다.

    “물론입니다.”

    “혹시 드워프나 엘프 장인을 직접 만나 볼 수 있을까요?”

    현성의 말에 파르티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성안에는 드워프나 엘프 장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몬스터들에게 멸족당한 겁니까?”

    “그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성안에 없는 겁니까?”

    “애초에 인간과 드워프 및 엘프는 적당히 교류하는 사이였을 뿐 몬스터와 함께 싸울 정도로 신의를 쌓은 혈맹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페어리를 포함한 다른 유사 인종들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였나 보네.’

    인간, 드워프, 엘프를 포함한 여러 유사 인종들이 공존하는 세계.

    이 차원이 왜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차원에 있는 모든 지성체가 똘똘 뭉쳐서 몬스터에 대항해도 모자랄 판에 각 종족끼리 서로 패를 갈라 으르렁거렸던 모양이네.’

    아니, 아마 각 종족 내부에서도 국가별로 부족별로 패가 갈렸을 것이다.

    ‘그러니 이 모양 이 꼴이 나지.’

    루시아의 세계가 궁지에 몰린 결정적인 이유도 제국과 왕국들이 서로 힘을 합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는 더 심각했다.

    종족마저 달랐으니까 말이다.

    “그럼 드워프나 엘프 같은 유사 인종들이 이 성처럼 요새를 만들고 버티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아마 그럴 것으로 추정됩니다.”

    “으흠.”

    유사 인종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상당히 큰 이득이 된다.

    현성의 차원인 지구는 아이템 생산이 거의 걸음마 단계였다.

    장인 직업을 가진 이들의 숫자도 많지 않았고 기술도 부족했다.

    현대 공법을 동원해 일반 등급 아이템을 대량생산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희귀 등급 이상부터는 소수의 장인이 생산하는 물품과 몬스터에게 나오는 전리품에 의존해야 했다.

    ‘쓸모가 있겠어.’

    인간 장인들이 생산해 내는 영웅 등급 전투 장비와 포션.

    이것만 해도 지구에서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다.

    거기다 드워프나 엘프와의 교류에 성공한다면?

    ‘전설 등급 전투 장비와 포션의 대량생산이 가능할 수도 있어.’

    물론 재료가 되는 전설 등급 몬스터의 마석과 사체를 구해야 하지만, 그건 현성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누나가 운영하는 플레이어 물품 판매 업체인 아라와의 연계도 가능했다.

    지금까지는 공방과 계약을 맺어 아이템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파르티샤를 휘하에 들이면 더 질 좋은 장비를 더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다.

    ‘세계시장으로의 진출도 가능해.’

    그간 아라가 국내에 한정되어 있었던 것은 국내 생산직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르티샤를 휘하로 받아들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일단 한번 해 보자.’

    영웅 등급 장비 제조를 맡기기만 해도 어느 정도는 수지 타산이 맞을 것 같았다.

    ‘장인이 만든 옵션 하나 붙은 희귀 등급 검이 1억이 넘었어.’

    잘만 하면 전 세계의 플레이어 전투 장비 및 포션 시장을 독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투 장비 및 포션 시장을 독점하면, 자연스럽게 스킬북 판매 시장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나한테는 장비보다 스킬북이 중요해.’

    일반, 희귀, 영웅 등급 장비는 현성에게 별다른 효용이 없다.

    하지만 스킬북이라면 현성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었다.

    “혹시 장인들이 생산한 아이템과 포션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파르티샤가 기쁜 표정으로 현성을 안내했다.

    현성은 눈앞에 진열된 장비와 포션 들의 정보를 확인해 봤다.

    ‘품질이 꽤 좋은데?’

    영웅 등급 장비와 포션은 기대보다 꽤 괜찮았다.

    최상급이나 상급 수준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중급이나 하급 수준은 되는 듯했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만 해도 지구의 상황에서는 감지덕지였다.

    몬스터를 잡았을 때 나오는 전리품에 의지해야 하니 영웅 등급 전투 장비와 포션의 수량이 상당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상점 시스템으로 판매를 해도 꽤 많은 포인트를 버셨을 것 같은데, 왜 안 파셨습니까?”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재료가 부족했습니다.”

    “재료가요?”

    “그 최현성 님의 도움을 받는 전투는 전리품을 거의 얻지 못하다니 보니……. 솔직히 말씀드려 현재의 생산량으로는 아군이 소모하는 전투 장비와 포션의 수량을 채우기도 버거운 수준입니다.”

    “아!”

    현성은 그제야 파르티샤의 사정을 알아차렸다.

    몬스터를 많이 잡아야 포인트도 벌고 마석과 아이템을 포함한 몬스터 사체도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몬스터와의 전투는 많은 인명 피해를 불러온다.

    작은 무리를 각개격파 해야 하는데, 파르티샤의 세력은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 내기에 급급했다.

    현성을 고용하는 횟수가 늘어난 것도 자력으로 몬스터를 막아 내기 힘들어서였다.

    문제는 현성이 몬스터를 쓸어버리면 파르티샤 세력 향상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성이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전리품을 싹 쓸어 가 버리니까 말이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자력으로 해결해야 발전이 있는데, 이미 그럴 만한 능력을 상실했어.’

    피해를 감수하다가는 그대로 멸망할 판이다.

    ‘확실히 진퇴양난이네.’

    현성의 휘하에 들어오겠다는 말을 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결정을 내리셨는지요?”

    파르티샤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현성에게 물었다.

    “내렸습니다.”

    현성의 대답에 파르티샤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계약서는 쓰셔야 할 겁니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습니다.”

    파르티샤가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또 그 전에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 이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어 착취할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정당한 거래를 통해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공생 관계를 유지할 겁니다.”

    “정당한 거래와 공생 관계 말씀이십니까?”

    파르티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데 왜 정당한 거래를 한다는 말인가?

    “예, 그래야 이 거래 관계가 오래 지속될 것 아닙니까? 제가 갑의 입장에서 갑질만 한다면, 파르티샤 님이 본인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저를 이 세계에서 추방하실 것 아닙니까?”

    파르티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역시 그럴 생각이었구만.’

    현성의 예상대로였다.

    파르티샤는 외부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현성과의 관계를 끊어 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 거래는 양측 모두에게 큰 이득이 될 겁니다.”

    현성의 말에 파르티샤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 역시도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군.”

    주군이라는 파르티샤의 말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등용 스킬을 시전했다.

    -플레이어 파르티샤에게 등용을 제의하셨습니다.

    -플레이어 파르티샤가 등용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통솔력 40이 소모됩니다.

    파르티샤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현성의 등용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때였다.

    -4차 전직 퀘스트 대군주의 자격이 강제로 시작됩니다.

    [전직 퀘스트 대군주의 자격]

    클리어 조건 - 군주의 충성 맹세 받기.

    -4차 전직 퀘스트 대군주의 자격을 완료하셨습니다.

    -모든 스텟이 30 증가합니다.

    -누락된 3차 전직 퀘스트가 자동으로 클리어됩니다.

    -군주의 깃발 스킬의 버프 리미트가 15%까지 확대됩니다.

    ‘이게 뭐야?’

    자기가 알아서 시작하더니 자기가 알아서 퀘스트를 2개나 완료하고 보상까지 줘 버렸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5차 전직 퀘스트 대군주의 길이 시작됩니다.

    [전직 퀘스트 대군주의 길]

    클리어 조건 - 3명 이상의 군주에게 충성 맹세 받기.

    다음 퀘스트까지 자동으로 활성화가 되어 버렸다.

    ‘3명 이상의 군주에게 충성 맹세 받기라.’

    파르티샤 덕분에 1명은 자동으로 충족했다.

    문제는 남은 2명이었다.

    ‘이건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은데.’

    파르티샤처럼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가 아니면 절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차분히 기다려 보자.’

    어차피 당장 전직을 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만큼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해 보자.’

    일단 파르티샤와의 계약부터 마무리해야 했다.

    현성은 영혼의 계약서를 구매했다.

    계약 내용은 현성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이루어졌다.

    사실상 이누쿠소와 맺었던 노예 계약과 동일하다고 투덜거려도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파르티샤는 기꺼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현성이 저렴한 가격으로 파르티샤의 세력 전체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파르티샤의 세력이 자급자족할 여력을 갖출 때까지 말이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급한 파르티샤 입장에서는 무조건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야.’

    파르티샤는 오히려 현성이 스스로에게 그런 제약을 건 것에 대해서 감사했다.

    굳이 그런 제약이 없다고 해도 파르티샤는 자급자족이 해결될 때까지 먼저 계약을 깰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파르티샤 입장에서 이건 현성의 배려였다.

    현성이 스스로에게 먼저 계약을 깰 수 없도록 제약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일주일 후에 저를 다시 고용해 주십시오. 그때 식량을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무상은 아닙니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셔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것을 대가로 치러야 할까요?”

    “일단 희귀나 영웅 등급 전투 장비와 포션이면 될 것 같습니다.”

    파르티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그러시죠?”

    현성의 물음에 파르티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투 장비는 예비 수량이 어느 정도 있지만, 포션의 경우에는 현재 저희가 사용할 분량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 일단 전투 장비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물량은 나중에 천천히 갚으셔도 됩니다.”

    현성의 말에 파르티샤의 얼굴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현성과 파르티샤는 서로 웃는 얼굴로 거래를 끝마쳤다.

    그 후 현성이 다시금 본래의 세계로 귀환했다.

    * * *

    “하하하하!”

    현성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식량.

    배부른 자에게는 별다른 값어치가 없다.

    하지만 굶주린 이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값어치를 가진다.

    ‘식량으로 희귀 등급과 영웅 등급 장비를 살 수 있다면, 완전 남는 장사지.’

    현성이 사는 지구에서 식량의 가격은 절대 비싸지 않다.

    특히 한국 같은 경우 쌀 생산 과잉 국가 중 하나다.

    정부는 쌀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해 초과생산분을 일괄 수매 한다.

    그러고도 쌀이 남아돌아 소비량을 늘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쌀로 만든 막걸리, 쌀로 만든 과자, 쌀로 만든 국수, 쌀로 만든 빵, 쌀로 만든 떡 등등…….

    사람이 먹는 걸 넘어서 동물 사료로 만드는 법을 개발하거나, 수저, 젓가락, 빨대, 귀걸이, 팔찌, 반지 등등의 생활용품이나 공예품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 쓰기도 한다.

    ‘쌀 가격을 떨어트리는 게 아니면 충분히 제공해 줄 거야.’

    정부 비축미를 사면 그만이다.

    그게 부족하다면?

    식량 생산 과잉 국가에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 오면 그만이다.

    현대에서 먹을 식량이 없어 굶주리는 경우는 운송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마진이 남지 않거나 오히려 마이너스이기 때문이지 결코 식량이 비싸서가 아니었다.

    ‘명분은 한국의 극빈층과 빈곤국 국민들을 위한 식량 기부 정도면 되겠지.’

    좋은 일도 하고 개인적인 이득도 챙기고 완전 일석이조였다.

    현성이 정부에 비축미 구입을 요청했다.

    명분은 미리 준비한 대로 한국의 극빈층과 빈곤국 국민들을 위한 식량 기부였다.

    현성의 요청은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명분도 확실했고 정부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현성은 조국인 한국을 시작으로 타국에도 남아도는 식량을 팔아 달라는 요청을 보냈다.

    굳이 운송 요청을 하지는 않았다.

    현성이 직접 찾으러 갈 생각이었으니까 말이다.

    ‘어디서 개수작을 부리려고.’

    돈만 받고 삥땅 치려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현성이 직접 현물로 받고 현물로 기부하기로 했다.

    현성이 정부 비축미 창고에 도착했다.

    “도대체 어떻게 가지고 가겠다는 거지?”

    “아공간 스킬을 사용하지 않을까?”

    “아공간 스킬의 공간이라는 게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하던데?”

    창고를 관리하는 직원들이 현성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봤다.

    현성은 아공간 스킬을 사용했다.

    사아아아악!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찬 아공간이 순식간에 창고에 있는 비축미를 한 번에 삼켜 버렸다.

    “다음 창고는 어디죠?”

    “바,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현성의 물음에 반쯤 얼이 빠져 있던 직원이 힘차게 대답했다.

    현성은 비축미 창고를 돌며 식량을 싹쓸이했다.

    그 후에는 이모탈 길드 지부를 통해 극빈층에 지원해 주라고 이야기하고 해외 출국길에 나섰다.

    현성은 수많은 나라들을 돌며 식량을 아공간에 쑤셔 넣었다.

    ‘남아도는 식량이 이렇게 많았나?’

    이건 현성의 예상치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한쪽은 먹을 게 남아 버리는데, 한쪽은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채소랑 고기도 구매하자. 사람이 쌀이나 밀만 먹고 살 수는 없지.’

    현성은 대량의 식량을 구입한 후 일정량을 빈곤국에 기부했다.

    구매한 식량의 수량과 기부한 식량의 수량은 상당히 큰 차이가 났다.

    하지만 그걸 현성에게 따지고 들 간 큰 인간은 없었다.

    누군가 궁금해하면?

    그냥 예비용으로 가지고 있는 거라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현성이 열심히 전 세계를 돌며 식량을 구입하고 기부하는 와중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고용주 파르티샤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파르티샤의 호출이 왔다.

    현성이 예를 눌렀다.

    화악!

    밝은 빛과 함께 현성이 파르티샤의 차원으로 이동했다.

    “주군을 뵙습니다.”

    파르티샤가 공손하게 현성을 예를 갖췄다.

    ‘아주 기대감이 가득하네.’

    파르티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미 새를 바라보는 아기 새 같네.’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식량은 어디에 놓으면 됩니까?”

    “곡물 창고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파르티샤가 앞장서서 현성을 안내했다.

    현성이 파르티샤의 뒤를 따라 창고로 이동했다.

    “이곳입니다.”

    파르티샤의 말에 현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작은 거 아닙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창고는 또 있으니까요.”

    파르티샤의 말에 현성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을 열었다.

    사아아아!

    아공간이 쌀을 토해 냈다.

    순식간에 창고가 가득 찼다.

    “다음 창고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현성이 파르티샤의 말을 들으며 차근차근 빈 창고에 쌀과 밀 같은 곡류를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그 뒤에는 채소와 육류를 채워 넣었다.

    “창고가 정말 엄청나게 많군요.”

    창고의 크기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한데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 결과 현성이 가지고 온 식량들은 금방 바닥이 났다.

    “남은 창고가 얼마나 되죠?”

    “아마 지금까지 채운 창고의 2배는 넘을 겁니다.”

    현성의 입이 쩍 벌어졌다.

    “조금씩은 가능하지만 당분간 이렇게 대량으로 식량을 가지고 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주군. 오히려 놀랐습니다. 설마 이렇게 많은 식량을 가져다주실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현성이 가지고 온 식량의 양은 파르티샤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GMO 기술이 전혀 없는 파르티샤의 세상과 지구는 동일 면적이라도 식량 생산의 차이가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알이 굵고 맛이 좋네요. 영양분도 풍부한 것 같고.”

    파르티샤가 생쌀과 생밀 그리고 콩과 옥수수 등을 먹어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영토를 확보하기만 하면, 백성들이 굶주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식량의 상태를 확인한 파르티샤가 현성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영토를 확보하면 제가 준 곡식으로 농사를 지어 보실 생각이십니까?”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음, 그러시려면 따로 종자 씨앗을 구매하셔야 합니다.”

    “예?”

    파르티샤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현재 눈앞에 있는 쌀알과 밀알이 바로 씨앗이다.

    그런데 따로 씨앗을 구매하라니?

    이건 엄청난 횡포나 다름이 없었다.

    “제가 사는 차원에서는 오랜 시간 곡물들의 종자를 개량했습니다. 그 결과 1세대에서 수명이 끝나는 씨앗들을 만들어 냈죠. 이 식량들도 다 그런 개량을 거친 것들입니다. 아마 심으셔도 싹이 나지 않거나 설사 나더라도 제대로 된 열매를 맺기 힘들 겁니다.”

    현성의 말에 파르티샤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게 정말이신가요?”

    “믿기 힘드시면 작은 면적에 농사를 시도해 보셔도 됩니다.”

    현성의 말에 파르티샤가 쌀알, 밀알, 콩, 옥수수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 후 파르티샤의 마력이 바닥에 떨어진 낟알에 스며들었다.

    낟알에서 순식간에 싹이 돋아났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쑥쑥 자라더니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정말이군요.”

    쑥쑥 자라 열매를 맺기는 했지만, 그건 전체 중 일부에 불과했다.

    또 그렇게 자라난 곡물의 상태도 상당히 부실했다.

    “식물 성장 스킬인가요?”

    현성이 물었다.

    스킬북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시현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예.”

    파르티샤가 짧게 대답했다.

    ‘하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꼭 필요했겠지.’

    식물 성장 스킬은 쓸데없이 등급이 높았다.

    거기다 마력 소모에 비해 효율도 좋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전투용으로 쓰기도 힘든 비주류 스킬이었다.

    베스트 구매평의 평가도 최악이었던 스킬.

    하지만 파르티샤는 생존을 위해 익힐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제대로 된 종자도 가지고 있으십니까?”

    파르티샤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미리 가지고 온 여러 종류의 종자들을 내밀었다.

    “써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파르티샤가 곡물 씨앗들을 땅에 떨어트린 후 다시금 스킬을 시전했다.

    순식간에 쑥쑥 자라나 열매를 맺었다.

    발아하지 못한 씨앗이 하나도 없었다.

    맺힌 곡물들의 수량도 많았고 씨알이 튼실했다.

    “정말이군요.”

    “제가 거짓말을 할 리가 있나요?”

    메이저 곡물 회사들이 전 세계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이유가 바로 저 개량한 종자 덕분이었다.

    대격변 이후에는 종자 개량에 더욱 힘을 쏟았다.

    그 결과 GMO 기술이 적용된 종자들은 마력이 뒤덮인 세상에서 오히려 더 잘 자랐고 더 많은 열매를 맺었다.

    “종자를 대량으로 구입하겠습니다.”

    새롭게 자란 곡물들의 상태를 확인한 파르티샤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도 GMO 기술이 적용된 종자들의 우수성을 알아차린 것이다.

    “최대한 저렴하게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병충해에 강하게 개량된 녀석들이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주군.”

    파르티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현성은 그 후 식량 공급에 대한 보답으로 장인들이 생산해 놓은 일반, 희귀, 영웅 등급 전투 장비들을 받았다.

    일종의 물물교환이었다.

    식량과 장비의 가격은 상점 시스템을 기준으로 정했다.

    그게 편하기도 했고 양측 모두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부족한 물량은 생산이 완료되는 대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파르티샤가 간절한 표정으로 현성에게 부탁했다.

    현성이 가지고 온 식량의 수량이 워낙 많아 대가로 지급할 전투 장비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파르티샤로서는 기쁘면서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지급해 주셔도 됩니다.”

    현성이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주군!”

    파르티샤가 밝은 표정으로 현성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감사는 무슨. 내가 얼마나 큰 이득을 봤는데.’

    현성은 대량의 식량을 무척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

    일단 현성에게 바가지를 씌울 간 큰 인물이 없었다.

    또 현성은 재고로 쌓여 있던 식량을 전량 구매하며 매입 단가를 낮췄다.

    결정적으로 현성은 유통 마진이 빠진 산지 원가로 식량을 구매했다.

    그렇게 저렴하게 구매한 식량을 시스템 판매 가격에 파르티샤에게 팔았다.

    시스템 상점에서 판매되는 곡물의 가격은 생각보다 꽤 비쌌다.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구매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족히 10배 이상은 남겨 먹은 것 같은데.’

    이건 완전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앞으로도 곡물 사업을 계속 해야겠어.’

    단순히 파르티샤의 세계에서만 팔아먹을 게 아니었다.

    상점 시스템에 대량의 곡물을 판매해도 꽤 짭짤할 것 같았다.

    ‘판매 단가는 냉동식품이나 배달 음식이 높지만 그건 판매 수량이 너무 적어.’

    애초에 드라마나 영화를 본 시청자들에게 팬 서비스 차원에서 판매했던 음식들이다.

    그나마 개당 판매 단가가 높아 마진이 꽤 좋았다.

    하지만 총 판매 수량이 적다 보니 매출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곡물은 정반대였다.

    ‘판매 단가는 낮아도 대량생산과 판매가 가능해. 박리다매 전략으로 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지구로 돌아가면 곡물 사업에도 돈을 좀 투자해야 할 것 같았다.

    기왕이면 남이 생산한 걸 구매하는 것보다는 현성이 직접 재배하는 게 마진도 더 많이 남고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기도 편했으니까 말이다.

    “몬스터 토벌과 영토 확보는 언제부터 진행하실 예정입니까?”

    현성의 물음에 파르티샤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내일 바로 진군할 생각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내일 전투가 시작될 때 다시 불러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군.”

    현성은 파르티샤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본래의 차원으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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