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이프리트의 겁화 (105/225)
  • ┃이프리트의 겁화

    “현성아, 이게 도대체 뭐니?”

    어머니 박미숙 여사의 물음에 현성이 입을 열었다.

    “비약이에요. 약간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플레이어와 비각성자가 먹으면, 해당 스텟이 1 올라요. 힘의 비약을 먹으면 힘이 강해지고, 체력의 비약을 먹으면 체력이 좋아지죠.”

    “이런 귀한 물건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박미숙 여사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에요, 엄마. 아마 다른 사람들이 비약의 존재를 알면 눈이 뒤집어질걸요.”

    최현지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말이 맞아요, 엄마. 어느 정도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는 꿈의 영약이나 마찬가지예요. 비각성자인 일반인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아빠랑 우신이도 이거 먹은 거지?”

    최현지가 물었다.

    “맞아.”

    현성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걸 우리한테 준 거야? 그동안은 입도 뻥긋 안 하고 있었잖아?”

    “비약이 일반인한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가 없어서.”

    “그럼 지금은 안전성이 확보되었나 보네. 그래서 우리한테 준 거고?”

    “맞아.”

    “비약의 존재 자체가 외부로 알려지면 큰일 나겠네.”

    최현지는 단번에 비약의 값어치를 파악했다.

    “단순히 큰일 나는 것 정도에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더 최악의 사태가 발발할 수도 있어.”

    “충분히 그럴 만하네.”

    현성의 말에 최현지도 동의했다.

    플레이어들의 스텟을 올려 줄 수 있다.

    비각성자인 일반인을 각성한 플레이어처럼 만들어 줄 수 있다.

    최현지는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강함에 집착하는지,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건강에 집착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현성이 가진 비약의 존재가 밝혀지면, 그들과 협상을 하거나 아니면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비약의 존재가 안 밝혀진 게 용하네.”

    지금이야 현성의 위상이 높아져 협상과 전쟁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지만, 과거였다면 무조건 빼앗겼을 것이다.

    “앞으로도 밝히지 않을 생각이야. 그러니까 누나도 비밀을 지켜 줘. 가족끼리 있을 때도 비약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말자고.”

    “알았어, 그렇게 할게.”

    “나도 그렇게 하마.”

    최현지와 박미숙 여사가 결연한 표정으로 비밀을 지킬 것을 다짐했다.

    물론 사람인 이상 실수로라도 비약의 존재를 발설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대비하고자 가족인 두 사람을 휘하로 받아들였다.

    군주의 직업 효과로 인해 실수로라도 비약의 존재 자체를 언급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어머니와 누나를 휘하로 받아들이고 비약을 선물해 준 뒤 현성은 두 사람이 방어 계열 스킬북을 잔뜩 익히게 했다.

    전에는 마력이 없어 패시브 스킬북만 줬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액티브 스킬을 사용하는 모습이 타인에게 알려지게 되면?

    각성은 했지만 사냥할 생각이 없어 플레이어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둘러대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알겠다고 대답했다.

    * * *

    ‘뭘, 사지?’

    현성은 스× 크××트 대회의 성공과 가챠 시스템 그리고 복권 판매로 엄청난 포인트를 모았다.

    얼마나 많은 포인트를 모았느냐 하면, 신화 등급 스킬북을 3개나 더 구매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현성이 구매창을 열었다.

    ‘일단 화염의 서부터 업그레이드를 시켜야지.’

    화염 계열 스킬북을 살펴봤다.

    하지만 설명이 다 짧았다.

    ‘기왕이면 신의 힘보다는 다른 걸로 하자.’

    열심히 아이쇼핑을 했다.

    그러던 중 신화 등급 스킬이면서 신의 힘이 언급되지 않는 스킬북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이프리트의 겁화 – 신화 등급]

    -액티브 스킬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이프리트의 겁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판매자 : 정령신

    -판매가 : 9,999,999,999,999,999포인트

    -액티브 스킬북 이프리트의 겁화 – 신화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린다라.’

    상대적으로 약한 화염의 서의 공격력을 충분히 보조해 줄 수 있어 보였다.

    ‘사자.’

    현성이 예를 눌렀다.

    -액티브 스킬북 이프리트의 겁화 - 신화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바로 예를 눌러 익혔다.

    -액티브 스킬북 이프리트의 겁화 - 신화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액티브 스킬북 이프리트의 겁화 - 신화 등급과 액티브 스킬북 화염의 서 – 유일 준신화 등급이 융합됩니다.

    -액티브 스킬 화염의 서 – 유일 신화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버퍼링 없이 무난하게 스킬이 합쳐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용병 등급이 영웅 등급에서 전설 등급으로 상승했습니다.

    ‘어라?’

    또 용병 등급이 올랐다.

    ‘도대체 기준이 뭐야?’

    현성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용병 창을 소환했다.

    [전설 등급 용병 최현성]

    -모든 스텟이 고르게 발전한 용병입니다.

    -전설 등급 용병 최현성은 탱커,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힐러의 역할을 모두 소화할 수 있습니다.

    -탱커와 힐러의 역할보다는 근접 딜러와 원거리 딜러로서의 역량이 뛰어납니다.

    -지구력이 뛰어나 장기전에 강합니다.

    ‘그냥 등급만 올랐다.’

    영웅 등급에서 전설 등급으로 바뀐 것 말고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신경 끄고 스킬이나 어떻게 변했나 보자?’

    현성은 유일 신화 등급으로 재탄생한 화염의 서의 정보를 확인했다.

    [화염의 서 - 유일 신화 등급]

    -액티브 스킬북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이프리트의 겁화를 부립니다.

    -이프리트의 겁화가 공격 대상의 마력을 연소시킵니다.

    -공격 대상의 마력을 완전히 연소시킬 때까지 계속 타오릅니다.

    -이프리트의 겁화가 마력을 타고 계속 번집니다.

    -이프리트의 겁화가 불태운 마력의 일부를 흡수합니다.

    -화염 계열 스킬과 아이템을 흡수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게 뭐야?’

    이름만 화염의 서지 내용물은 완전히 이프리트의 겁화로 뒤덮여 버렸다.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스킬 위력이 더 올라갔으니 현성의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었다.

    ‘음, 이제 또 뭘 사지? 기존의 스킬을 강화해야 하나? 아니면 새로운 스킬을 익혀야 하나?’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굳이 새로운 스킬을 익혀야 할 필요성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강력한 공격력은 흑뢰신의 숨결이 책임진다.

    다수의 적을 쓸어버릴 때는 화염의 서가 있다.

    물리 공격 저항 및 스킬 공격 저항은 천뢰신의 갑옷이 막아 준다.

    몸의 부상은?

    불사의 서가 있다.

    굳이 다른 계열의 스킬을 익힐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성장형 스킬 하나 더 나오는 게 좋은데.’

    탐식의 서 같은 경우는 상위 등급의 몬스터 사체를 탐식해야만 성장한다.

    하지만 다른 스킬북의 경우 같은 계열의 스킬북을 흡수시키면 바로 성장한다.

    ‘기존 스킬에 옵션 몇 가지 추가하는 게 좋을 거 같기는 한데.’

    현성이 신화 등급 스킬을 쭉 훑어봤다.

    쓸 만한 옵션이 있다면 구입해서 익혀 기존 신화 등급 스킬이 성장하는 자양분으로 쓸 생각이었다.

    ‘어?’

    그러다 무기류에 시선이 멈췄다.

    ‘그러고 보니.’

    현성의 성장형 스킬은 모두 신화 등급이 되었다.

    방어구인 마왕의 갑주도 준신화 등급 아이템이었다.

    ‘용혈검과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만 전설 등급이네.’

    마음 같아서는 이번 기회에 신화 등급으로 바꾸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옵션이 너무 아까운데.’

    특히 용혈검의 경우는 성장형 아이템이다.

    그간 용종의 피를 많이 먹인다고 먹였는데, 전설 등급만 먹여서 그런지 성장이 더뎠다.

    ‘신화 등급 용종 몬스터가 나와야 용혈검을 성장시킬 텐데.’

    그것 말고는 용혈검을 성장시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지. 신화 등급 몬스터는 안 나오는 게 무조건 좋은 거야.’

    장비 업그레이드를 위해 신화 등급 몬스터가 나타나기를 소망할 수는 없다.

    정말 신화 등급 용종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나라 하나가 멸망할 수도 있다.

    준신화 등급 오크 로드 한 마리 잡는 데도 죽을 고생을 했다.

    아무리 현성의 스텟과 스킬이 업그레이드되었다지만, 신화 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손쉽게 완승을 거둘 자신은 없었다.

    잘해 봐야 동수.

    자칫 잘못하면 현성이 일방적으로 밀릴 수도 있다.

    ‘그냥 액세서리 세트나 바꾸자.’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는 확실히 좋다.

    하지만 이제 바꿀 때가 되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포인트가 부족하네.’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처럼 아이템 세트를 맞추기 위해서는 포인트가 부족했다.

    ‘더 열심히 벌어야겠네.’

    일단 남은 포인트는 킵을 해 놓기로 했다.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의 상위 호완인 혈신의 액세서리 세트 구입을 위해서 말이다.

    * * *

    재정비를 마친 현성은 캐나다로 건너가 루시아와 까망이를 만났다.

    “이 녀석 제법 컸네요.”

    현성이 까망이를 보며 말했다.

    까망이의 덩치가 꽤 커져 있었다.

    물론 그래 봤자 아직은 작은 체구의 실뱀일 뿐이었다.

    -삐익!

    까망이가 현성을 보자마자 반갑다고 달려들었다.

    루시아가 잘 돌봐 줬지만 아무래도 아직 어린 개체인 만큼 부모로 인지하고 있는 현성의 품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까망이가 현성의 손목에 몸을 둘둘 감았다.

    “사냥이나 하시죠.”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냥을 시작했다.

    ‘가볍게 테스트나 해 보자.’

    이프리트의 겁화를 흡수하고 신화 등급으로 거듭난 화염의 서가 가진 위력을 확인해 볼 시간이었다.

    현성이 화염의 서를 사용했다.

    화르르륵!

    붉은 불꽃이 넘실넘실 피어올랐다.

    ‘일단 외형은 과거와 다른 점이 없고.’

    휘익!

    현성이 몬스터들을 향해 화염의 서를 날렸다.

    화염의 서에 부여한 마력은 최소로 억제한 상태였다.

    -꺄아아악!

    화염의 서에 적중당한 몬스터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화염의 서가 몬스터의 마력을 태우며 무서운 속도로 번져 나갔다.

    전신이 화염이 휩싸인 몬스터가 몸을 이리저리 뒹굴며 날뛰었다.

    “음.”

    현성이 화염의 서에 마력을 더 강하게 부여했다.

    파삭!

    몬스터의 몸이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번지는 속도나 위력이 훨씬 강해졌네.’

    기존에 화염의 서가 가지고 있는 적의 마력을 불태우는 속성이 더 잘 발휘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서히 번지던 불길이 확 번지는 느낌이랄까?

    -크르르릉!

    동료의 비명 소리를 들었는지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현성은 화염의 서를 창의 형태로 만들어 날렸다.

    휘익!

    화염의 서가 허공을 가르며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갔다.

    콰직! 콰직!

    화염의 서가 일직선상에 있는 몬스터들의 몸을 연속으로 관통했다.

    ‘역시 전보다 파괴력이 좋아.’

    과거 동일한 마력을 실었을 때보다 관통력이 족히 세 배 이상은 늘어났다.

    화르르륵!

    화염의 서에 몸을 관통당한 몬스터들이 화염에 휩싸이는 속도도 월등히 빨라졌다.

    ‘좋네.’

    괜히 신의 힘이니 어쩌고 하는 것 없이 신화 등급 스킬의 힘을 온전히 발휘하는 모습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언젠가는 사용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은연중에 계속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도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현성은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실험을 통해 변화된 화염의 서를 테스트했다.

    당연히 테스트의 대상이 된 몬스터들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크아아아앙!

    동료들의 죽음에 잔뜩 흥분한 몬스터들이 일제히 현성을 향해 원거리 공격을 퍼부었다.

    휘이이익!

    차가운 냉기의 창이 현성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현성은 흑뢰신의 숨결을 몸에 두르고 계속 화염의 서를 날렸다.

    그때였다.

    현성이 날린 화염의 서와 몬스터들이 날린 냉기의 창이 우연히 허공에서 충돌했다.

    화르르륵!

    그 순간 냉기의 창이 불타오르더니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어라?’

    현성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서로 충돌해서 터지거나 한쪽이 소멸해 버리는 게 아니라 타오른다고?’

    불현듯 머릿속에 이프리트의 겁화가 가진 옵션이 떠올랐다.

    ‘분명히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린다고 했었지.’

    현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화르르륵!

    현성의 의지를 전달받은 화염의 서가 커다란 방패의 형상으로 변했다.

    화염의 서가 몬스터들이 날린 스킬 공격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대박이야.’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이프리트의 겁화와 적의 마력을 불태워 스스로 타오르는 화염의 서.

    이 둘이 하나로 합쳐지자, 몬스터가 날린 스킬에 담긴 마력마저도 불태워 버리는 사기 스킬이 탄생했다.

    * * *

    현성이 캐나다로 건너가 스킬 테스트도 하고 사냥도 하며 스텟을 올리고 있을 무렵.

    일본의 신정부는 몸을 갈아 넣는다는 느낌으로 일에 매진했다.

    무능한 자가 열심히 일하면 그건 독이 된다.

    하지만 유능한 자가 열심히 일을 하면 그건 득이 된다.

    현성의 휘하에 들어온 일본 내각의 각료들은 비교적 유능한 이들이었다.

    아니, 유능한 이들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유능하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현성의 휘하에 든 다른 유능한 인재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파벌 싸움도 없고 가볍고 하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을 각료들이 하나하나 직접 챙겼다.

    이에 부하 직원들도 기합이 잔뜩 들어갔다.

    상사가 지나치게 유능하고 꼼꼼하면 부하 직원들이 괴로워진다.

    평소에 대충 넘겼던 일도 꼼꼼하게 처리해야 하니까 말이다.

    공무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공무를 보는 공무원이 괴로워지면?

    국민들의 삶의 질이 올라가고 국가의 발전이 가속화된다.

    세종대왕님 시절 조선이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벼슬아치들이 죽어나갔던 것처럼 말이다.

    일본은 빠르게 변해 갔다.

    일 처리가 빨라지고 일본에 산재해 있던 문제들이 빠르게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타카히시 총리를 포함한 내각 각료들 중 일부가 과중한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집무실이든 병실이든 나는 일본의 총리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타카히시 총리는 그렇게 주장하며 병상에서도 계속 공무를 봤다.

    그건 쓰러진 다른 일본 각료들도 마찬가지였다.

    타카히시 정부의 이런 모습을 ‘쇼’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일본 국민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간의 행적 때문이었다.

    타카히시 정부는 권위적이지 않았고 국민들을 위해 봉사했다.

    타카히시 정부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은 신정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

    -총리 및 내각 각료들이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한다던데 저러다 요절할 듯.

    -총리님, 일 좀 쉬엄쉬엄하세요.

    -각료들도 몸 좀 챙겨 가면서 일하세요. 그러다 진짜 죽어요.

    오죽하면 일본 국민들이 타카히시 정부 관료들의 건강을 챙겨 줄 정도였다.

    정치 후진국 소리를 듣던 일본이 타카히시 정부로 인해 변했다는 말도 많이 나왔다.

    인류의 수호신교를 제외하면 확고한 지지 기반이 없던 타카히시 정부가 민심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총리 각하, 이러다 정말 쓰러지십니다.”

    쇼가 아니었다.

    타카히시 총리의 건강이 정말 많이 상했다.

    보좌관의 만류에도 타카히시 총리는 손에서 서류 더미를 놓지 않았다.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카미사마께서 미천한 종에게 내려 주신 과업을 완수해야 하네. 나의 부족함으로 카미사마의 위업에 폐를 끼칠 수는 없어.”

    타카히시 총리는 보과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업무에 매달렸다.

    다른 각료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과로사 따위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광신도인 그들은 자신에게 내려진 사명을 완수하기 하기 위해 생명을 불태워 가며 업무에 매진했다.

    애초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광신도와 전설 등급 직업 군주가 가진 효과가 만나 너무 과도한 시너지를 일으킨 것이다.

    * * *

    “…….”

    사냥을 마치고 호텔에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던 현성은 할 말을 잃었다.

    “왜 그러십니까?”

    루시아의 물음에 현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본의 타카히시 총리가 과로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병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고 하네요.”

    “병상에서 말입니까? 참 성실한 공무원이군요.”

    “그게 타카히시 총리가 저러는 게 저 때문이거든요.”

    “그럼 적당히 일하라고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잠시 고민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타카히시 총리 및 각료들이 열심히 일한 대가로 일본 국민들의 신임을 얻었다.

    원래 놀던 놈이 놀면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던 놈이 놀면 욕을 먹는다.

    그게 인간의 마음이다.

    “어쩔 수 없네요. 일본에 잠시 다녀와야겠어요.”

    “비약을 주시려는 겁니까?”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약해서 부려 먹기 힘들면 몸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면 그만이죠.”

    힘이나 마력 같은 공격적인 부분을 올려 줄 필요는 없다.

    일을 잘할 수 있게 체력과 정신력 스텟만 팍팍 올려 주면 그만이다.

    “그럼 다녀올게요.”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장거리 공간 이동용 스크롤을 찢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현성의 모습이 호텔 객실에서 사라졌다.

    * * *

    현성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총리 관저였다.

    “카미사마!”

    대기하고 있던 광신도 하나가 현성 앞에 부복했다.

    ‘아, 진짜 적응 안 되네.’

    광신도들의 신 노릇은 정말 할 게 못 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해 교인이 아닌 다른 이들이 있을 때는 현성을 신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대접한다는 점이었다.

    “타카히시 총리를 만나야겠다.”

    “당장 부르겠나이다.”

    “아니다. 내가 직접 만나러 가겠다.”

    병실에서 골골거리며 과로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생하는 사람을 부르기는 좀 그랬다.

    “하면 제가 모시겠나이다.”

    현성이 광신도의 안내를 받아 비밀리에 타카히시 총리 및 내각 각료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현성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타카히시 총리를 찾았다.

    “카미사마시여!”

    현성을 보자마자 타카히시 총리가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으흠…….”

    현성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타카히시 총리의 건강은 딱 봐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살이 쏙 빠져 볼이 푹 들어가 있었고 눈은 퀭해서 마치 썩은 동태 눈깔을 보는 것 같았다.

    “건강이 좋지 않은 것 같구나.”

    “송구합니다, 카미사마시여.”

    타카히시 총리는 자신의 건강이 안 좋아진 것보다 현성이 내린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가졌다.

    “받아라.”

    현성이 타카히시 총리에게 체력의 비약을 주었다.

    “감사하옵니다, 카미사마!”

    타카히시 총리는 현성이 넘겨준 비약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먹어라.”

    현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타카히시 총리가 체력의 비약을 먹었다.

    현성은 계속 비약을 줬고 타카히시 총리는 계속해서 비약을 받아먹었다.

    비약을 받아먹을수록 타카히시 총리의 모습이 점점 변해 갔다.

    비쩍 말라 있던 몸에 살이 붙었고 퀭하던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

    또 푸석푸석한 피부가 탱탱해졌으며 주름이 펴지며 얼굴이 젊어졌다.

    “기적이다!”

    “카미사마께서 교주님께 기적을 베푸셨다!”

    “오오오! 카미사마시여!”

    주변에 있던 광신도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 미친놈들.’

    미친놈들만 모여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제 건강 걱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무를 볼 수 있겠지?”

    현성의 물음에 타카히시 총리가 다시금 병실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물론이옵니다, 카미사마.”

    “다른 녀석들의 병실로 안내하라.”

    현성의 말에 광신도들이 재빨리 길을 안내했다.

    현성은 광신도들에게 체력의 비약과 정신력의 비약을 나눠 줬다.

    너무 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최하급 비약과 하급 비약만 먹였다.

    하지만 그 두 가지만으로도 업무에 치여 골골거리던 이들이 달라졌다.

    ‘다른 녀석들도 예방을 해야지.’

    현성은 다시 총리 관저로 돌아가 휘하에 들어 있는 내각의 각료들을 모두 불러 모아 비약을 주었다.

    “오! 카미사마시여!”

    “이 목숨을 바쳐 카미사마를 위해 일하겠나이다!”

    광신도들이 잔뜩 감격해 외쳤다.

    ‘미친놈들이 더 미쳐 버렸어.’

    그렇지 않아도 현성에 대한 충성심이 맥스를 찍었는데, 이제는 하늘을 뚫고 대기권을 돌파할 기세였다.

    현성은 적당히 광신도들을 달래 주고 장거리 공간 이동용 스크롤을 이용해 다시금 캐나다로 갔다.

    그 모습을 보고 광신도들이 더욱 열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현성에 의해 건강을 회복한 타카히시 총리 및 내각 각료들이 병원을 나와 일터로 복귀했다.

    그리고 더욱더 열심히 임무에 매진했다.

    거의 매일 야근을 했고 수면 시간은 하루에 4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타카히시 총리 및 내각 각료들은 절대 지치는 일이 없었다.

    마치 초인이라도 된 것처럼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 * *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백악관.

    “예상이 빗나갔군.”

    윌슨 대통령이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대통령님.”

    CIA 국장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다.

    일본 신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빠르게 올라갔다.

    어디 그뿐인가?

    광신도들이 스스로 자멸할 것이라는 예측도 완전히 빗나갔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카히시 정부는 일본을 위해 성실히 일하고 있었다.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특혜를 베풀어 준다거나, 아니면 국가 자산을 팔아먹는 짓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기본적인 포교 활동도 하지 않았다.

    CIA 국장 입장에서도 저들이 정말 인류의 수호신교의 광신도가 맞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이걸로 일본은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완전히 넘어갔군.”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일본을 전처럼 편하게 부려 먹기는 힘들겠어.”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아시아에서 자국의 이익을 대변해 주고 영향력을 확대해 주는 최선봉장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 가장 말 잘 듣는 따까리였다.

    한데 앞으로는 일본에게 그와 같은 역할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눈치가 보여 전처럼 압박을 가하기도 힘들었다.

    “최악의 경우 아시아 전역에서 우리 미국의 영향력이 대폭 축소될 수도 있겠군.”

    “최현성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아시아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없지만.”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고 일본이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둘 모두를 합쳐도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변수가 끼어든 시점에서부터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보다 인류의 수호신교 광신도들을 조사해 본 건 어떻게 되었나?”

    “최현성 플레이어를 만난 후 신체 능력이 상승한 게 확실합니다.”

    윌슨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군주의 깃발 버프 효과를 비각성자인 일반인에게 주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군.”

    “확실합니다.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버퍼의 버프 효과 역시 효율이 극악일 뿐이지 비각성자인 일반인에게 그대로 적용되니까요.”

    “그렇기는 하지만, 이건 좀 골치가 아프겠어.”

    버퍼의 버프는 시간제한이 있다.

    마력 소모도 많아 걸어 버프를 걸어 줄 수 있는 대상의 숫자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군주의 깃발은 그렇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수만 명이 아니라 수십만 아니 수백만 명이 넘는 이들에게도 얼마든지 걸어 줄 수 있다.

    “최대한 숨기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알려지면 난리가 날 거야.”

    생존에 대한 욕구는 모든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오래 생존하기 위해서는 몸이 건강해야 한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해도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먹으며 신체 능력은 서서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데 만약 아무런 노력도 없이 건강해질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체력도 좋아지고 몸도 민첩해지고 힘도 강해질 수 있다면?

    모두가 그 축복을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축복 안에 달콤한 독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전 세계인이 최현성 플레이어의 노예가 될 수도 있어.”

    윌슨 대통령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국은 자국 랭커들의 변화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전설 등급 직업 군주에는 미약한 세뇌 효과가 있다.

    사람이 한순간에 극단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서히 변한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최현성 플레이어의 말과 의중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통령님.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막고 있습니다. 최현성 플레이어 역시 광신도들을 상대로 입단속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전 인류를 자신의 휘하에 두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와 싸워야 할까?

    아니면 그와 손을 잡아야 할까?

    “골치가 아프군.”

    윌슨 대통령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최현성 플레이어.

    그의 존재가 인류에게 있어 축복인지 저주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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