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정권 교체 (101/225)
  • ┃정권 교체

    오해.

    성난 군중의 폭주는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일본 언론이 현성을 은근슬쩍 돌려서 깎아내린 이후 아쿠나베 정권이 현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문은 반쯤 정설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믿지 않는 국민들도 있었다.

    믿는 국민들도 아쿠나베 정권이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현성을 끌어 들였을 뿐 완전히 적대시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성은 일본을 2번이나 구원해 준 은인이자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었다.

    독보적인 무력과 막대한 자본력.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현성은 국제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장 전설 등급 이상의 몬스터가 나타나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현성밖에 없기도 했다.

    일본만 해도 현성이 없었으면 후지산의 화산 폭발을 저지하지 못해 그대로 나라가 망할 뻔했다.

    아니, 지금 당장 현성의 도움이 없으면 후지산 분화구에 열린 차원 게이트를 봉인할 방법이 없다.

    일본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현성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일본인이라면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쿠나베 정권이 최현성 플레이어를 일본에서 내쫓으려고 한다!

    -아쿠나베 총리가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후지산 화산 폭발 저지에 대한 보상을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넘겨줬던 규슈섬과 시코쿠섬의 던전 소유권을 아쿠나베 정권이 강제로 몰수했다!

    -아쿠나베 총리가 일본 이모탈 길드 지부 매출의 90%를 세금으로 걷는다고 발표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아쿠나베 정권의 폭정에 일본을 떠났다!

    출처 없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리지 않았다.

    당연히 그 소문을 들은 일본 국민들은 코웃음을 쳤다.

    아쿠나베 총리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사 아쿠나베 총리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민자당 의원들이 그걸 허락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수십 개에 달하는 녹취 영상과 파일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영상 속의 아쿠나베 총리와 내각 각료들은 최현성 플레이어를 일본에서 쫓아낼 궁리를 하고 있었다.

    현성을 욕하고 헐뜯었다.

    오크 로드와의 접전 당시로 추정되는 영상에는 현성의 죽었으면 좋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 국민들이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던 던전 소유권 몰수와 일본 이모탈 길드 세금 폭탄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매한 민중, 개와 돼지, 매국노 등등의 호칭으로 일본 국민들을 욕하기도 했다.

    -아쿠나베 정권이 일본을 무너트리려고 한다!

    -최현성 플레이어 일본을 떠나면 당장 후지산의 차원 게이트는 누가 막겠는가?

    -아쿠나베 정권을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최현성 플레이어를 다시 일본으로 모셔 올 수 있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멸망한다!

    -일본을 구원하자!

    -나라를 망치는 매국노 아쿠나베 총리와 민자당 의원들을 몰아내자!

    소수의 일본 국민들이 수많은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대중이 이에 동조했다.

    처음에는 수천 명에 불과했던 군중의 숫자가 순식간에 수만을 넘어 수십만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성난 군중이 폭도가 되어 일본 총리 관저와 국회의사당을 점령했다.

    “지금 떠돌고 있는 건 거짓 정보입니다!”

    “우리는 최현성 플레이어를 일본에서 쫓아내려고 한 적이 없어요!”

    “최현성 플레이어는 아직 일본에 있습니다!”

    “아쿠나베 총리는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후지산 사태에 대한 보상을 했습니다!”

    “현 정부와 최현성 플레이어는 절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총리 관저 직원들과 국회의원들이 목이 터져라 진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성난 군중의 귀에 그 말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거짓말쟁이들을 응징해라!”

    “국민을 개와 돼지로 매도한 의원 놈들을 처벌해라!”

    “일본을 수호하자!”

    성난 군중은 총리 관저 직원들과 국회의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일본 전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지방에서 총리 관저와 국회의사당 점령 같은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민자당 의원은 사무실과 자택이 군중에게 포위되어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야당들이 하나로 뭉쳤다.

    야당 의원들은 현민당이라는 새로운 당을 창당했다.

    현민당은 국민들의 분노로 인해 집 안에 갇힌 민자당 의원들을 무시하고 재선 법안을 통과시켰다.

    평소 민자당이 주로 하던 날치기 법안 통과 수법이었다.

    일본의 중의원과 참의원 재선이 결정되었다.

    재선 준비는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빠르게 진행되었다.

    * * *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총리 관저에 갇혀 버린 아쿠나베 총리가 재선 발표가 나오고 있는 TV를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인가?

    일본은 민자당의 나라였다.

    다른 야당이 모두 힘을 합쳐도 민자당을 이길 수는 없었다.

    국민들의 반응도 이상했다.

    “누군가가 조직적으로 선동한 거야.”

    일본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대대적인 폭동을 일으킬 리가 없었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질 수도 없었다.

    누군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쿠나베 총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성난 군중을 피해 몸을 숨기는 게 현재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군중은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아쿠나베 총리와 민자당 의원들이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믿는 이가 없었다.

    ‘계엄령을 내리고 자위대를 동원해야 하나?’

    플레이어들은 이미 아쿠나베 정권의 편이 아니었다.

    현성의 개가 된 이누쿠소와 그 수하들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럼 내전인데.’

    일본 경제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

    ‘최현성, 이 망할 놈.’

    후지산 사태 해결에 대한 보상 합의를 했다.

    지금 돌고 있는 소문은 모두 거짓이다.

    최현성이 직접 나서서 말 몇 마디만 해 주면 성난 군중의 화를 가라앉힐 수 있다.

    한데 폭동 직후 최현성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다.

    ‘야당 놈들과 손을 잡은 게 분명해.’

    민자당을 완전히 몰락시키고 현민당을 띄워 주기 위한 수작이었다.

    ‘이대로 몰락할 수는 없어.’

    아쿠나베 총리의 두 눈이 광기로 물들었다.

    그때였다.

    “총리 각하, 현민당의 당수가 찾아왔습니다.”

    “뭐?”

    아쿠나베 총리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민자당을 궁지로 몰아넣은 놈이 자기 발로 찾아왔다.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데리고 오게.”

    일단 만나서 대화를 해야 했다.

    놈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협상을 해야 했다.

    계엄령과 자위대 동원이 최악의 카드라는 것은 아쿠나베 총리도 인지하고 있었다.

    협상의 여지가 있다면…….

    협상을 하는 게 최상이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전혀 생소한 얼굴을 가진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놈이 현민당의 당수라고?’

    그동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놈이었다.

    “반갑습니다, 총리 각하.”

    현민당의 당수라는 자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그대로 아쿠나베 총리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반갑소. 그래, 왜 날 찾아온 거요?”

    아쿠나베 총리가 애써 여유로운 척 물었다.

    “엉뚱한 생각 하지 마시고 사퇴하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왔습니다.”

    “뭐라?”

    아쿠나베 총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차피 대세는 결정됐습니다. 괜한 소란 일으키지 마시고 그냥 자진 사퇴 하세요. 선거에서 패배해 추하게 밀려나는 것보다는 스스로 물러나는 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선거는 무슨 놈의 선거!”

    아쿠나베 총리가 노성을 터트렸다.

    민자당 입장에서 날치기 법안으로 인한 재선은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음, 재선 후에 감옥에 수감되시는 것보다는 자진 사퇴가 명예롭다고 생각해서 권해 드린 건데, 별로 생각이 없으신가 보군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감옥에 간다는 말인가! 이건 국민들이 화를 가라앉히면 다 해결될 일이야! 감옥에 가는 건 내가 아니라 자네들이 될 거란 말이네!”

    아쿠나베 총리가 악을 쓰듯 외쳤다.

    “살인교사죄를 저지르시지 않았습니까?”

    “뭐?”

    아쿠나베 총리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민자당 내부의 반대 파벌과 야당 당수들을 자살로 위장해 암살하신 일 말입니다. 설마 기억이 나지 않으시는 건 아니겠죠?”

    아쿠나베 총리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난 그런 적 없네.”

    “이누쿠소 장관님께서 이미 증거를 다 수집해 놓으셨습니다. 법정에서 증언을 하실 준비도 끝마치셨고요.”

    “그놈이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쿠나베 총리가 거듭 범죄 사실을 부인했다.

    ‘이누쿠소 그놈이 나랑 같이 죽을 리가 없어.’

    그 일이 밝혀지면 아쿠나베 총리만 곤란해지는 게 아니다.

    암살을 실행한 이누쿠소도 곤란해진다.

    “뭐,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저도 이누쿠소 장관님이 좀 과한 농담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은 타살이 아니라 자살 아닙니까?”

    ‘이놈이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오자마자 사퇴하라고 했다.

    그 후에는 살인교사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런데 이제는 갑자기 과한 농담이란다?

    “자네, 지금 날 놀리는 건가?”

    “그럴 리가요. 그저 지금 총리님의 상황이 그때 목을 매달으셨던 분들보다 더 절박해 보이셔서 드린 말씀입니다.”

    아쿠나베 총리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제야 상대가 이런 말을 꺼낸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이놈이 감히.’

    협박.

    이건 명백한 살해 협박이었다.

    자살로 위장해 살해당한 이들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사퇴하라는 압박 말이다.

    “저랑 같이 나가서 사퇴 발표를 하시죠. 그러지 않으시면 총리 관저의 유무선 통신망을 모조리 끊어 버릴 겁니다.”

    그 말은 완전한 고립을 의미한다.

    계엄령을 내릴 수도 자위대를 동원할 수도 없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상대의 압박에 아쿠나베 총리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그간의 실책을 인정하고 총리 자리에서 자진 사퇴 하겠습니다.

    아쿠나베 총리가 백기를 들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민자당 소속의 의원들이 줄줄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자진 사퇴를 강하게 거부하던 몇몇 의원들은 며칠 뒤 자택에서 목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후 민자당 소속 의원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자진 사퇴를 했다.

    * * *

    일본 재선이 끝났다.

    현민당은 재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자연스럽게 현민당의 당수 타카히시가 일본의 새로운 총리가 되었다.

    타카히시 총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식적으로 현성과 만난 것이었다.

    사진도 찍고 감사 인사도 전하면서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현성은 일본과의 우호 관계를 강조했다.

    과거는 말끔하게 잊고 함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나아가자는 내용의 연설도 했다.

    또 최선을 다해 이해득실에 상관없이 일본을 수호하겠다는 말도 했다.

    일본 국민들이 열광했다.

    현성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난 뒤.

    “카미사마, 미천한 종들의 인사를 받아 주시옵소서.”

    타카히시 총리가 그 말과 함께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공손히 현성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미천한 종들이 카미사마를 영접하나이다!”

    내각 각료들 역시 일제히 현성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현성은 자신의 앞에 납작 엎드린 타카히시 총리와 내각 각료들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 광신도들을 어떻게 하냐?’

    설마 이렇게까지 중증일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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