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일본 정부의 꼼수 (100/225)
  • ┃일본 정부의 꼼수

    덕구가 성장했다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령이 성장도 할 수 있었어?’

    뚱이와 덕구에게는 등급 같은 게 없었다.

    그냥 뇌전의 정령과 화염의 정령이다.

    그게 끝이다.

    현성이 뚱이와 처음으로 계약을 맺으며 익힌 것도 전설 등급 액티브 스킬 정령술 하나가 끝이었다.

    덕구의 경우는 아예 스킬도 안 줬다.

    ‘도대체 성장을 하면 뭐가 좋아지는 거야?’

    현성이 정신없이 화염의 정수를 먹어 치우는 덕구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화염의 정령 덕구의 격이 한 단계 높아졌습니다.

    ‘격이 높아졌다고?’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덕구를 바라봤다.

    외견상으로는 전혀 변한 게 없었다.

    ‘어디 보자.’

    현성이 덕구의 내면을 살펴봤다.

    ‘축적할 수 있는 마력 총량이 좀 늘어난 걸 빼면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어? 마력 소모가 줄었네.’

    덕구나 뚱이는 정령이다.

    당연히 소환하고 있는 것만으로 마력이 소모된다.

    비전투 상황에서는 마력 소모량이 상당히 적다. 그렇기에 굳이 의식하지 않으면 마력이 소모되는 걸 알아차리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성의 잔여 마력이 워낙 바닥이다 보니 덕구의 소환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마력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바로 체감되었다.

    ‘전투 시에도 효율이 올라가나?’

    비전투 상황에서만 마력 소모량이 줄어드는 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전투 상황에서 마력 소모량이 감소한다면?

    그건 현성의 전력 자체가 크게 상승한다는 뜻이었다.

    “누가 안 뺏어 먹으니까 천천히 먹어, 덕구야.”

    현성이 덕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재료 아이템만 나와서 완전 꽝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름의 수확을 건진 것이다.

    거기다 전리품이 화염의 정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전설 등급 아이템도 꽤 나왔네.’

    총 6개의 전설 등급 아이템이 나왔다.

    평소에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보다 월등히 많은 양의 아이템이 나온 것이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스킬북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겨우 2개밖에 없네. 일단 확인이나 해 보자.’

    현성이 스킬북들을 집어 들었다.

    [용암 거인의 가호 – 전설 등급]

    -패시브 스킬북

    -물리 공격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스킬 공격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화염 공격에 대한 내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패시브 스킬북 용암 거인의 가호 - 전설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이건 천뢰신의 갑옷이 흡수하겠네.’

    전설 등급치고는 그럭저럭 쓸 만한 스펙이었다.

    현성은 예를 선택했다.

    -패시브 스킬 용암 거인의 가호 - 전설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신의 갑옷 - 유일 신화 등급이 패시브 스킬북 용암 거인의 가호 - 전설 등급을 흡수하였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신의 갑옷 - 유일 신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현성은 다음 스킬북을 살폈다.

    [용암 거인의 분노 – 전설 등급]

    -액티브 스킬북

    -강력한 열기를 지닌 화염 브레스를 뿜어냅니다.

    -액티브 스킬북 용암 거인의 분노 - 전설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화염 브레스?’

    특이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차피 화염의 서에 흡수될 예정이니 특별할 건 없어 보였다.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액티브 스킬 용암 거인의 분노 – 전설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액티브 스킬 화염의 서 - 유일 준신화 등급이 액티브 스킬 용암 거인의 분노 – 전설 등급을 흡수하였습니다.

    -액티브 스킬 화염의 서 - 유일 준신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화염의 서도 무난하게 용암 거인의 분노를 흡수했다.

    ‘이 녀석은 언제 신화 등급으로 성장시키냐?’

    그동안 스킬북을 여러 개 먹였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 언젠가는 성장을 하겠지.’

    스킬북을 계속해서 먹어 치우고 있으니, 분명히 성장하긴 할 것이다.

    ‘공격력도 조금은 올라갔을 거야.’

    신화 등급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전설 등급 스킬북 하나를 먹어 치웠으니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화염의 서 공격력이 약간이나마 상승하긴 했을 것이다.

    -멍멍!

    현성이 스킬북을 익히는 사이에 덕구의 식사가 모두 끝났다.

    “배부르게 먹었냐?”

    -멍!

    덕구가 힘차게 대답했다.

    현성은 미소를 지으며 덕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마음 같아서는 던전으로 들어가 달라진 덕구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지쳤다.

    또 한가하게 던전으로 테스트를 하러 갈 상황이 아니었다.

    사건을 마무리 지었으니 이제 뒤처리를 해야 했다.

    ‘뭘 달라고 해야 하나?’

    일본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혼슈섬을 지켜 줬다.

    ‘역시 던전 소유권이 가장 좋겠지.’

    다 날아갈 뻔한 걸 지켜 줬으니 ‘혼슈섬에 있는 던전의 절반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쿠나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내각 각료들이 들었다면 기겁할 요구였다.

    하지만 현성은 전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절반 정도면 양심적이지.’

    일본이 멸망할 수도 있는 대재앙을 인명 피해 하나 없이 막아 냈다.

    혼슈섬에 있는 던전의 전부도 아니고 절반만 요구할 것이다.

    이건 일본 정부를 배려한 양심적인 요구였다.

    보상 목록을 결정한 현성이 산 아래로 내려갔다.

    * * *

    -최현성 플레이어, 후지산 분화구를 점령했던 몬스터들을 퇴치하다!

    -일본의 멸망을 막은 일본의 영웅!

    -후지산의 화산이 2차, 3차 폭발을 일으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최현성 플레이어, 인류의 수호신 타이틀 수성에 성공!

    현성이 용암 거인 레이드를 끝마치자마자 전 세계에서 기사가 연속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이 현성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일본 언론사의 기류는 뭔가 달랐다.

    -후지산 1차 화산 폭발로 인한 인명 피해 수천 명에 달해!

    -지진으로 인해 집을 잃은 수만 명의 이재민들!

    -뒤늦은 몬스터 진압으로 인한 피해, 사전에 예방할 수는 없었을까?

    직접적으로 현성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후지산 1차 피해에 대한 소식을 보도하고 부상당한 이들이나 집을 잃은 이재민들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피해를 입었으니 그걸 보도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기는 했다.

    일반적으로 몬스터로 인한 재해가 발생하면 각국의 정부는 의도적으로 피해 상황을 축소한다.

    반대로 몬스터를 사냥한 플레이어들을 띄워 준다.

    국민들이 혼란과 불안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오히려 이렇게 훌륭한 플레이어들이 있으니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홍보하기에 바빴다.

    한데 현재 일본 언론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본 언론의 비정상적인 흐름은 곧바로 현성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니까 보상을 주기 싫어서 이러는 거라 이거지?”

    현성이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겸 일본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누쿠소에게 물었다.

    “예, 특히 아쿠나베 총리 및 내각 관료들은 주인님의 영향력이 일본 내에서 더 커지는 것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후지산 용암 거인 레이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든 실패했든 일본 언론의 태도는 주인님께 비판적이었을 겁니다.”

    이누쿠소의 말에 현성의 얼굴에 진한 노기가 서렸다.

    “이것들이 나라가 멸망할 뻔한 걸 두 번씩이나 막아 준 사람한테 이런 배은망덕한 짓을 해?”

    이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었다.

    이번 후지산 화산 폭발 사태를 막기 위해 현성은 직접 위험을 감수하고 용암이 들끓는 화산 분화구로 뛰어들었다.

    그런 현성에게 저런 소리를 하다니?

    “주인님의 선의에 악의로 보답한 건 일본의 위정자들입니다. 절대 다수의 일본 국민들은 주인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 점을 헤아려 주십시오.”

    이누쿠소의 간언에 현성이 노기를 가라앉혔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겠어.”

    언론을 통해 국민들을 선동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다행히 과거와는 달리 인터넷을 통한 여론의 발달로 언론의 보도가 유일한 정보 수단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는 것 역시 사실인 만큼 한번 제대로 손봐 줄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수집한 자료 풀어. 나랑 관련된 건 말고 비리 자료 위주로.”

    현성이 명령을 내렸다.

    “주인님, 그간 제가 수집한 정보가 적은 건 아니지만, 파괴력이 너무 약합니다. 사과 정도라면 모를까 아쿠나베 총리와 내각 각료들을 퇴진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놈들의 이미지에 흠집은 낼 수 있겠지.”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놈들이 뒤로 구린 짓을 했다.

    흔히 있는 일이다.

    보통은 사과나 부인 정도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현성은 그걸 시작으로 일을 점점 더 키울 생각이었다.

    “그럼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이누쿠소가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물러났다.

    ‘프레임을 바꿔 주마.’

    일본 정부는 국가의 국익과 현성 개인이 취하는 이익의 대립 프레임을 짜고 있다.

    이대로 가면 현성이 이길 수가 없다.

    강압적으로 힘으로 일본 정부를 압박하면 당장 목적은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본 국민들의 지지를 잃게 되고 세계인들의 인심을 잃게 된다.

    일본 정부가 고맙다고 던전 소유권을 넘겨주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현성이 강압적으로 빼앗는 구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프레임의 구도를 부패한 정치인과 국민으로 바꾸어야 한다.

    ‘스스로 혼슈섬 던전들의 소유권을 가져와 내 앞에 바치도록 만들어 주마.’

    규슈섬과 시코쿠섬 던전도 있어서 양심적으로 절반 정도로 만족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먼저 선빵을 날렸다.

    일본 정부의 버르장머리를 뜯어고치기 위해서라도 혼슈섬의 던전을 모조리 대가로 받아야 할 것 같았다.

    * * *

    “국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아쿠나베 총리가 내각정보조사실장에게 물었다.

    “전체적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돕자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아쿠나베 총리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일본 내에 현성의 지지자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이 직접 현성을 공격한 건 아니다.

    그저 피해 상황을 우선해서 이들을 돕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수준에서 기사를 내보냈을 뿐이다.

    이번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사람은 현성뿐이다.

    은근히 현성이 더 열심히 노력했어야 했다고 돌려 깐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린 이들은 아직까지 많지 않았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본 국민들은 현성을 원망하기보다 무능한 일본 플레이어들을 원망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흐름이지. 이번 기회에 이누쿠소 그놈도 쳐 내야지.”

    이누쿠소는 유능한 인재다.

    또한 일본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애국자이자 아쿠나베 정권에 친화적인 인물이다.

    일본을 구한 영웅이라는 칭호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딱 하나.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너무 우호적이라는 점이었다.

    애초에 이누쿠소가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장관이 된 것도 현성의 입김 때문이었다.

    “이누쿠소 장관이 이 정도 일로 실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내각정보조사실장의 말에 아쿠나베 총리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완전히 실각시킬 생각은 없네. 그냥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사퇴하는 정도면 될 거야.”

    “플레이어 협회장 자리는 유지시켜 주실 생각이시군요?”

    “그 정도는 괜찮지. 협회장 정도는 되어야 사냥개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지 않겠나? 어찌 보면 제자리로 돌아간 거지.”

    아쿠나베 총리는 플레이어인 이누쿠소가 장관 자리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플레이어는 잘 훈련된 사냥개에 불과하다.

    절대 주인의 자리를 넘봐서는 안 된다.

    이누쿠소가 훈련이 잘된 사냥개이기에 주인을 물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인을 물 수 있는 위치에 사냥개를 올려놓았다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내각정보조사실장이 아쿠나베 총리의 말에 동의했다.

    그 역시 플레이어가 정치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덜컹!

    그때 아쿠나베 총리의 집무실 문이 열리며 내각정보조사실의 요원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자네, 총리 각하 앞에서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인가?”

    내각정보조사실장이 자신의 수하를 꾸짖었다.

    “큰일입니다! 아키 여사님의 비리 의혹이 터졌습니다.”

    내각정보조사실 요원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아쿠나베 총리와 내각정보조사실장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자, 자네, 방금 뭐라고 했나?”

    아쿠나베 총리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키 여사님이 운영하시는 사학 재단의 비리 의혹이 터졌습니다.”

    아쿠나베 총리의 몸이 휘청거렸다.

    “괜찮으십니까, 총리 각하?”

    내각정보조사실장이 아쿠나베 총리를 부축했다.

    “막아.”

    “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라는 말이야! 이게 터지면 나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 몰라!”

    “예! 총리 각하!”

    아쿠나베 총리의 노성에 내각정보조사실장이 재빨리 대답한 뒤 수하와 함께 달려 나갔다.

    “도대체 왜 갑자기…….”

    아쿠나베 총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내가 관리하는 사학 재단은 민자당 비자금의 핵심이다.

    차라리 아내의 도덕적인 일탈 정도로 끝나면 좋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아쿠나베 정권의 핵심인 민자당 자체가 몰락할 수도 있다.

    아쿠나베 총리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이번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하지만 아쿠나베 총리는 몰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비리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아쿠나베 정권에 대한 비리 증거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아키 여사 사학 재단에 막대한 혈세 투입!

    -사학 재단으로 들어간 혈세가 민자당 의원들에게 되돌아가!

    -관방장관과 대기업의 비밀 계약 녹취록 공개!

    -민자당 의원 자신보다 10살 많은 비서에게 욕설 폭언!

    -육아휴직하겠다던 민자당 의원 불륜 들통!

    아키 여사의 사학 재단 비리를 시작으로 폭격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수많은 비리 문제가 연달아 흘러나왔다.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다.

    단순히 인터넷 찌라시 정보가 아니었다.

    아쿠나베 정부가 저지른 비리의 증거 목록과 녹취 파일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굳건하게 정권을 쥐고 있던 아쿠나베 정권의 위치가 흔들릴 정도였다.

    아쿠나베 정부와 유착 관계에 있던 언론사는 이에 대한 보도를 의도적으로 막았다.

    그러자 의혹이 더욱 커졌다.

    -큰 사건은 더 큰 사건으로 막아야 한다.

    아쿠나베 총리의 지시에 따라 일본 언론사들이 일제히 현성이 보수로 요구했던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최현성 플레이어 일본의 수호신인가, 강탈자인가?

    -혼슈섬에 존재하는 던전의 절반 소유권 요구 과연 정당한가?

    -일본의 영웅? 최현성 플레이어는 일본인이 아니다.

    -한국으로 넘어가는 일본의 부, 과연 정당한가?

    -규슈섬과 시코쿠섬의 점령자, 혼슈섬을 탐하다!

    언론은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를 잔뜩 올렸다.

    대중의 관심을 아쿠나베 정부의 비리에서 현성으로 돌리기 위함이었다.

    이런 언론의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때 현성이 공식적으로 인류의 수호신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플레이어 최현성입니다. 최근 올라온, 일본의 부가 한국으로 넘어간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저를 욕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에 대한 진실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규슈섬과…….

    현성은 한국어 원문과 일본어 번역문을 동시에 올렸다.

    당연히 일본인들도 별도의 번역 없이 바로 읽을 수 있었다.

    글의 내용은 간단했다.

    규슈섬과 시코쿠섬의 던전에서 얻은 이익은 단 한 푼도 한국으로 가지 않는다.

    모두 규슈섬과 시코쿠섬에 재투자되고 있다.

    혼슈섬의 던전 절반을 요구했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는 엉터리다.

    일본 정부가 먼저 그런 제안을 했다.

    자신은 현재 고민 중이며 설사 소유권이 넘어온다고 해도 규슈섬과 시코쿠섬의 던전처럼 수익금 전액을 혼슈섬에 재투자할 계획이다.

    현성의 글이 퍼져 나가자 일본은 더욱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패가 둘로 갈려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패가 갈렸다고는 하지만, 현성을 옹호하는 쪽의 목소리가 훨씬 컸다.

    현성을 비판하는 이들은 소수의 골수 반한 종자들밖에 없었다.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은 왜 갑자기 언론이 일본의 은인인 현성을 걸고넘어졌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때 아쿠나베 정부가 자신들의 실책을 가리기 위해 현성을 끌어 들인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일본 국민들이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프레임은 아쿠나베 정부의 비리가 진짜인가 가짜인가로 짜여 있었다.

    이미 현성의 혼슈섬 던전 소유권 문제가 완전히 묻혀 버린 것이다.

    아쿠나베 정권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언론을 통해 도게자를 하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와 동시에 성역 없는 수사를 약속했다.

    하지만 알맹이가 쏙 빠진 사과였다.

    아쿠나베 정권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사과했을 뿐이다.

    성역 없는 수사 역시 제대로 진행될 확률은 상당히 낮았다.

    그저 일시적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가리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한 것이다.

    아쿠나베 정부는 제발 이번 소동이 이 정도에서 마무리되기를 바랐다.

    그때 현성이 일본 총리 관저를 방문했다.

    “갑자기 어쩐 일이신지?”

    사전 약속도 없이 갑자기 현성이 방문했다.

    아쿠나베 총리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내가 왜 왔겠어요? 외상값 받으러 왔지.”

    “외, 외상값요?”

    “후지산 추가 화산 폭발을 막아서 일본을 구원해 준 값은 주셔야죠?”

    현성의 말을 들은 아쿠나베 총리의 등 뒤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원래 계획은 여론을 조작해 현성이 제대로 된 보수를 요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한데 그 계획이 어긋나도 크게 어긋났다.

    국민들은 더 이상 현성의 보수에 관심이 없었다.

    일부 과격한 추종자들은 현성에게 일본의 던전 소유권을 전부 넘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패한 관료들보다 일본의 구원자인 현성이 더 믿을 만하다는 논리였다.

    또 현성이 일본의 던전을 모두 관리하게 되면, 몬스터 웨이브나 전설 등급 몬스터 등장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더 빠르고 안전하게 수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런 정신 나간 소리에 호응하는 일본 국민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2002년 월드컵 당시 히×크 감독이 한국 대통령 선거에 나가도 당선될 거라는 우스갯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것과 비슷했다.

    하나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현성은 정말 일본의 던전 소유권을 모두 빼앗아 올 힘과 명분이 있다는 점이었다.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아쿠나베 총리는 국민들의 반발로 그것을 막고자 했다.

    한데 국민들이 먼저 현성의 편을 들어 주니, 아쿠나베 총리 입장에서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 버렸다.

    ‘어쩔 수 없나.’

    혼슈섬에 존재하는 던전의 절반.

    이건 규슈섬과 시코쿠섬의 던전 소유권을 잃은 것보다 더 큰 손실이었다.

    “알겠습니다. 혼슈섬에 존재하는 던전 중 절반의 소유권을 드리겠습니다.”

    아쿠나베 총리가 침통한 표정으로 백기를 들었다.

    “그걸로는 안 되죠. 제가 아니었으면 어차피 혼슈섬의 던전은 사용도 못 했을 거 아닙니까? 그냥 전부 다 넘기세요.”

    하지만 이어지는 현성의 말에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저, 전부 다 말씀이십니까?”

    아쿠나베 총리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아쿠나베 총리가 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규슈섬, 시코쿠섬, 혼슈섬의 던전이 모두 현성의 소유가 된다?

    그건 일본이 자국 내에 존재하는 던전을 모두 빼앗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단순히 던전이 문제가 아니라 자국의 안보, 경제, 영토를 모두 잃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절대 안 된다?”

    현성의 물음에 아쿠나베 총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지산에 열린 차원 게이트가 아직 봉인되지 않은 건 알고 있으시죠?”

    현성의 물음에 아쿠나베 총리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후지산 분화구는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차원 게이트를 던전으로 만드는 작업 역시 아직 착수하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 차원 게이트에서 더 이상 몬스터가 나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게 누굽니까?”

    “최현성 플레이어입니다.”

    현성이 주기적으로 차원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염 골렘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현성이 없으면?

    화염 골렘이 용암 골렘이 되고 다시금 후지산의 화산이 폭발할지도 몰랐다.

    후지산의 화산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나설 수도 없다.

    화산 지대는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최악의 환경이다.

    반면 용암 골렘들은 화산 지대라는 환경의 버프를 받아 전투력이 급격히 상승했다.

    현성이 고작 전설 등급 몬스터 한 마리 잡는 데 그 고생을 했다.

    그럼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떻겠는가?

    용암이 넘실거리는 환경에서 제대로 된 진형을 잡기도 힘들었다.

    실수 한 번 하면 그대로 용암으로 다이빙을 해야 한다.

    “제가 아쿠나베 총리님의 무례에 분개해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겨우 막았던 참사가 다시 재발할 수도 있다.

    “그간 아쿠나베 총리님이 저에게 한 짓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정도면 제가 한국으로 돌아갈 명분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현성의 말에 아쿠나베 총리가 고개를 푹 숙였다.

    후지산 분화구를 지키고 있던 현성이 아쿠나베 총리 때문에 돌아간다?

    단순히 실각이 문제가 아니다.

    분노한 일본 국민들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그건 정의롭지 못합니다. 일본 국민들이, 전 세계인들이 최현성 플레이어의 행동을 지탄할 겁니다.”

    아쿠나베 총리가 현성의 명예를 물고 늘어졌다.

    “글쎄요? 과연 일본 국민들이 이걸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할까요?”

    현성이 스마트폰을 켜고 그간 이누쿠소가 수집한 영상을 재생했다.

    현성의 명예에 흠집을 내고, 실추시키려는 작당 모의.

    현성을 욕하고 헐뜯는 외침.

    “이걸 언론에 공개하면 일본 국민들도 절 이해할 것 같은데요?”

    아니,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당장 아쿠나베 총리 및 내각을 해체시켜 현성의 분노를 풀려고 할 것이다.

    “이, 이누쿠소 이놈이!”

    아쿠나베 총리가 이를 빡빡 갈았다.

    영상에서 유일하게 목소리와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 인물.

    그건 내각 각료들 중 이누쿠소밖에 없었다.

    “지금 이누쿠소를 욕할 때가 아니실 텐데?”

    현성의 말에 아쿠나베 총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혼슈섬의 던전 소유권을 모두 넘겨드리겠습니다.”

    “진작 그렇게 나오셨어야지.”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아, 그리고 이누쿠소는 건드리지 마세요. 장관 자리에서 사퇴시키지도 마시고. 아시겠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쿠나베 총리가 두 주먹을 꽉 움켜쥐며 대답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어가 피가 났다.

    하지만 아쿠나베 총리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억누르고 또 억누를 뿐이었다.

    “길게 끌 것 있나요? 제가 서류 준비해 왔으니까, 이 자리에서 바로 서명하시죠?”

    현성이 서류를 내밀었다.

    아쿠나베 총리는 화를 억누르며 팬을 들어 서류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성이 총리 관저를 떠났다.

    “이누쿠소, 이 개 같은 놈!”

    아쿠나베 총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성을 터트렸다.

    “감히 나를 배신해! 나라를 팔아먹어!”

    개똥이라는 이름답게 상당히 말을 잘 듣는 사냥개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누쿠소는 자신의 사냥개가 아니었다.

    현성의 사냥개였다.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

    현성을 어찌하는 건 아쿠나베 총리의 능력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이누쿠소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아쿠나베 총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누쿠소를 죽여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덜컹!

    그때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내각정보조사실장이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총리 각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나?”

    “포, 폭도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당장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폭도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당황한 아쿠나베 총리의 귀에 성난 군중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쿠나베 총리를 잡아라!”

    “매국노 아쿠나베 총리를 때려죽이자!”

    “와아아아아아!”

    성난 군중의 함성과 함께 총리 관저가 난장판으로 변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