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위기
‘세상에는 정말 별의별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많구나.’
현성은 최종적으로 선별된 1,000여 명의 신상 정보를 확인했다.
고르고 골라 뽑은 덕분인지 특별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선별하는 것도 일이네.’
그렇다고 대충 할 수도 없었다.
이건 현성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니까 말이다.
‘휘하에 넣어 두면 절대 배신하지 못해.’
단순히 그간 올린 레벨과 그간 익힌 스킬이 날아가기 때문은 아니었다.
현성은 어렴풋이 군주의 숨겨진 직업 효과를 인식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깍듯하게 대하지만 은연중에 현성을 경계하던 각국 랭커들의 태도 변화를 직접 실감했기 때문이다.
또 1기 척살대원들의 과도한 충성심은 인지를 못 하려야 못 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휘하에 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동일한 변화를 보이다 보니, 현성도 자신의 말 한마디가 휘하 신하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휘하에 둘 거라면, 최고의 인재들로 채워야 해.’
현성의 스텟은 한정되어 있다.
업적과 탐식의 서를 통해 꾸준히 스텟을 늘리고는 있지만, 그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았다.
특히 휘하에 든 신하들의 성장은 전설 등급 직업 군주와도 연관되어 있다.
휘하에 있는 신하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직업 군주가 점점 더 성장한다.
그러니 현성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꼼꼼하게 살펴야 했다.
현성은 며칠간 서류 더미를 뒤지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최종 인원 선별을 마쳤다.
* * *
세계 각국의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비행기에 탑승해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에 도착한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바로 이모탈 길드의 본사에 도착했다.
‘많기도 하네.’
아까운 마음에 최대한 많이 뽑았다.
현성이 차례대로 등용 스킬을 사용했다.
등용 스킬을 통해 현성의 휘하로 들어온 플레이어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스텟이 늘어난 것도 좋았고 이모탈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자국에 있는 이모탈 길드 지부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역시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출세가 보장된 것이다.
‘다들 좋아 보이네.’
현성이 옅은 웃음을 지었다.
이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표정은 복권 1등에 당첨이라도 된 것처럼 밝았다.
사실 이들은 복권 1등에 당첨된 것보다 더 빠르게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등용 스킬 시전을 마쳤다.
현성은 단상 위로 올라갔다.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일제히 현성에게 쏠렸다.
“안녕하십니까, 플레이어 최현성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주신…….”
현성의 입에서 의례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와 줘서 고맙다.
여러분이 앞으로 이모탈 길드의 미래다.
더 나아가 인류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해 최고의 자리에 올라라.
……등등.
현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뻔하고 상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기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지루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300여 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은 딴청을 피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지루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현성의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지루해 죽겠네.’
‘끝났으면 빨리 보내 주지, 왜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거야?’
‘차라리 오크 로드와 접전을 벌였던 이야기를 해 주지.’
300여 명의 플레이어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현성의 말소리는 착실하게 그들의 뇌리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서서히 변해 갔다.
현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강해지고 싶다는 의지가 솟구쳐 올랐다.
‘기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
‘나도 빨리 랭커가 되고 싶다.’
‘나 어릴 때 꿈이 슈퍼맨이었는데. 진짜 수퍼맨이 될 기회를 얻었어.’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플레이어들의 표정과 자세가 바뀌었다.
그리고 현성의 설교가 끝나 갈 때쯤 그들은…….
“앞으로 저를 위해, 이모탈 길드를 위해, 인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와아아아!”
짝짝짝짝!
현성의 열렬한 신도가 되어 있었다.
길고 지루한 설교를 한 현성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낼 정도로 말이다.
‘살짝 무섭네.’
현성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의도한 반응이기는 했다.
하지만 현성의 예상보다 반응 자체가 너무 강력했다.
그러나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성의 총스텟은 7,00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았다.
그에 반해 이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총스텟은 200에도 미치지 못했다.
스텟 차이가 극심한 만큼 군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휘하 신하들에게 절대 명제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 * *
휘하 플레이어들을 거둔 뒤 군주의 깃발이 주는 버프 효과가 늘어났다.
고작 1%에 불과했지만, 랭커들은 확실하게 그 차이를 체감했다.
갓 현성의 휘하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늘어난 스텟에 자신이 몇 배나 강해진 느낌을 받았다.
현성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플레이어들을 휘하로 받아들인 후 장거리 공간 이동 스크롤을 사용해 루시아와 함께 캐나다로 넘어갔다.
급한 일을 모두 끝낸 만큼 당분간은 사냥에 전념할 계획이었다.
-크아아아앙!
성난 몬스터들이 현성과 루시아에게 달려들었다.
파지지직!
흑뢰신의 숨결이 뿜어져 나갔다.
루시아 역시 공격 스킬을 총동원해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잔뜩 몰려들었던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전멸했다.
‘역시 던전을 통으로 쓰는 게 편해.’
현성은 캐나다 정부에 비공식적으로 던전 대여를 요청했다.
캐나다 정부는 의문스러워하면서도 현성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던전 소유권 이전 요구를 한 게 아니라 며칠간 사냥할 수 있게 빌려 달라는 요구였다.
그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었다.
아니, 이번 일을 빌미로 현성과 친분을 쌓을 수만 있다면, 무조건 이득이었다.
현성과 루시아는 캐나다 정부의 협조하에 빠르게 던전을 클리어해 나갔다.
미국도 그렇고 캐나다도 그렇고, 땅덩어리가 넓은 만큼 던전도 많았다.
‘얼른 캐나다 클리어하고 멕시코로 넘어가야겠다.’
멕시코 정부는 현성에게 켕기는 게 많았다.
그런 만큼 캐나다 정부보다 더 손쉽게 협상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네.’
흑뢰신의 숨결이 가진 옵션 중 하나인 흑뢰신의 힘.
아무리 노력을 해 봐도 흑뢰신의 힘을 빼앗아 오는 일이 참 쉽지가 않았다.
한 번 요령을 파악하면 쉽게 될 것 같은데, 그 한 번이 쉽지가 않았다.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다른 스킬의 숙련도를 올렸듯 흑뢰신의 힘을 빼앗아 오는 일 역시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 *
현성이 캐나다에서 열심히 사냥에 열중하고 있던 그 시각.
위이이이잉!
일본 혼슈섬에 자리한 후지산 분화구에서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일본 정부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도심지에 차원 게이트가 열리면, 대량의 민간인 피해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인적이 없는 후지산 분화구에 차원 게이트가 열리면?
사실상 민간인 피해 제로를 달성할 수 있다.
쿠우웅!
차원 게이트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온몸이 뜨거운 불로 이루어진 화염 골렘이었다.
-그오오오오!
화염 골렘들이 포효를 터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지형이 아니었다.
뜨거운 용암이 끓어올라야 하는데, 너무 잠잠했다.
하지만 화염 골렘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대지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집중했고 공명했다.
그리고…….
화르르륵!
꽈아아앙!
강력한 불길로 지상을 내리찍었다.
쿠우웅! 쿠우웅!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폭음과 함께 후지산 분화구의 대지가 갈라졌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일본 정부가 플레이어들을 파견했다.
하지만 그들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사고가 터졌다.
꽈아아아아아앙!
후지산 분화구가 솟구친 마그마로 인해 폭발한 것이다.
시커먼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었고, 뜨거운 용암이 모든 것을 불태우며 지상을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화산 폭발로 시작된 지진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대재앙이나 다름이 없었다.
* * *
“그놈들이 화산 폭발을 유도할 동안 플레이어들은 도대체 뭘 한 거야!”
아쿠나베 총리가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노성을 터트렸다.
“그게, 진압팀이 도착하기도 전에 후지산의 화산이 폭발해서 플레이어들도 마땅히 대처할 수가 없었습니다.”
“빌어먹을!”
보좌관의 말에 아쿠나베 총리가 욕설을 내뱉었다.
“화산 폭발로 인한 피해는?”
“다행히 그리 크지 않습니다. 용암은 천천히 분출되고 있고 지진도 진도가 약한 편입니다.”
일본으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후지산의 화산이 1차 폭발로 마무리될지 2차 폭발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몬스터 놈들은 뭘 하고 있나?”
“화산재와 용암 때문에 제대로 된 위치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망할!”
아쿠나베 총리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조인족 무리의 난동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한데 이번에는 후지산에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화산이 폭발했다.
아쿠나베 총리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도대체 왜 자신의 임기 중에 이런 일이 연달아 터진다는 말인가?
쿠우웅!
그때 회의실 내부가 작게 진동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아쿠나베 총리가 사색이 된 얼굴로 보좌관에게 물었다.
덜컹!
그때 회의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회의실 내부로 들어온 것은 화산 전문가였다.
“큰일입니다! 후지산의 화산이 2차 폭발의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화산 지대 내부에서 무언가가 계속해서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분명히 2차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아니, 어쩌면 3차 폭발까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화산 전문가의 말에 아쿠나베 총리의 눈이 이누쿠소에게로 향했다.
“몬스터 놈들 짓이겠지?”
“그럴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아쿠나베 총리의 말에 이누쿠소가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번에 출현한 몬스터는 화염 골렘.
이미 한 번 화산 폭발을 유도한 놈들이다.
두 번이라고 못 할 것도 없다.
“플레이어들이 몬스터 놈들을 사냥할 수 있겠나?”
“불가능합니다. 플레이어도 사람입니다. 용암 속으로 뛰어 들어가 화염 골렘을 사냥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실드를 덕지덕지 발라도 용암의 열기를 완전히 막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용암의 열기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화염 골렘을 공격한다?
실드만 깨져도 전멸이다.
랭커들로 이루어진 파티라도 이런 악조건 속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불가능했다.
자위대를 동원할 수도 없다.
이미 한차례 폭발하고 2차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인 화산 지대에 폭격을 가한다?
그건 2차 폭발을 부추기는 행위일 뿐이었다.
“후지산의 화산이 계속해서 폭발하면 어떻게 되겠나?”
아쿠나베 총리가 화산 전문가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피해는 어린아이 장난에 불과합니다. 후지산의 화산이 제대로 폭발한다면, 혼슈섬은 지옥으로 변할 겁니다.”
혼슈섬은 일본의 본토다.
섬나라인 일본을 구성하는 4개의 섬 중 가장 큰 섬이며, 일본의 중심이다.
혼슈섬이 지옥으로 변한다는 말은 일본이 지옥으로 변한다는 말과 동일했다.
“이누쿠소 방법이 없겠나?”
한시라도 빨리 화산 폭발을 유도하는 몬스터들을 잡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
“일본 플레이어들의 전력으로는 분화구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유일하게 지금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이 있는 플레이어는…….”
“있는 플레이어는?”
“최현성 플레이어뿐입니다.”
이누쿠소의 말에 아쿠나베 총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 * *
위이이잉!
현성이 루시아와 함께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누나 최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본에서 너한테 도움을 요청했어.
“일본? 왜 또 조인족 무리라도 나타났어?”
-인터넷 검색해 봐.
최현지가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현성이 재빨리 인터넷을 검색했다.
바로 정보가 나왔다.
-후지산 분화구에 차원 게이트가?
-화염계 몬스터 후지산을 폭발시키다.
-후지산 1차 화산 폭발.
-2차 화산 폭발 임박.
“진짜 큰일 났네.”
후지산이 제대로 폭발하면 일본은 그대로 무너진다.
일본이 무너지면 세계경제도 타격을 받는다.
거기다 한국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다.
그런 만큼 자칫 잘못하면 경제적인 여파뿐만이 아니라 물리적인 여파가 올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규슈섬과 시코쿠섬이 위험해!”
혼슈섬에서 대참사가 벌어지면 현성의 사유지로 변해 버린 규슈섬과 시코쿠섬도 무사할 수 없다.
현성의 가장 큰 재산이 위기에 처한 것이다.
현성은 바로 일본 규슈섬을 목적지로 지정해 놓은 장거리 공간 이동용 스크롤을 찢었다.
화악!
밝은 빛무리가 현성의 몸을 휘감았다.
* * *
규슈섬에 도착한 현성은 연속적으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하며 후지산으로 향했다.
문제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장거리 공간 이동용 스크롤은 장소를 지정해 놓지 않으면 이동하기가 힘들단 말이야.’
공간 이동 스킬은 많은데 다 단거리라는 게 문제였다.
현성은 열심히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다행히 단거리 공간 이동 스킬도 말이 단거리지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꽤 멀었기에 예상보다 빨리 후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지산에는 일본 플레이어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하지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슈욱!
현성이 일본 플레이어들 앞으로 공간 이동 했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됩니까?”
“뭐야?”
“누구냐?”
현성의 물음에 일본 플레이어들이 펄쩍 뛰며 경계했다.
“한국에서 온 최현성입니다.”
현성의 말에 일본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최현성 플레이어님, 잘 오셨습니다. 제발 저 몬스터 놈들 좀 잡아 주십시오.”
“이러다가 화산이 폭발하면 우리 일본은 망합니다.”
일본 플레이어들이 다급하게 말했다.
“일단 자세한 정황을 설명해 주세요.”
현성의 말에 일본 플레이어들이 재빨리 상황을 설명했다.
‘골치 아프네.’
설명을 다 들은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화산에 자극을 줄 만한 강한 공격을 하면 안 된다.
이건 원거리 공격 카드가 막혔다는 뜻이다.
그런데 몬스터들은 용암이 펄펄 끓는 분화구 안에 있다.
분화구 내부로 들어가 화염 골렘, 아니 용암 골렘이 되어 있을 놈들과 전투를 치른다?
이건 현성으로서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악조건이었다.
‘방어 스킬이 잠시라도 빈틈을 보이면 위험해.’
현성의 스킬 저항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용암을 온몸에 두르고 있을 몬스터의 공격을 받고도 무사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특히 용암지대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
불사의 서로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었다.
물론 불사의 서가 가진 옵션이라면 다시 부활할 수 있다.
하지만 불사의 서의 성장치가 대폭 깎여 버린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지.’
현성은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화산 분화구 근처로 이동했다.
그 후 덕구를 소환했다.
-멍멍!
덕구가 힘차게 꼬리를 흔들며 현성을 반겼다.
‘용암 분화구가 전장인 만큼 뇌전의 정령인 뚱이보다는 화염의 정령인 덕구가 낫겠지.’
몬스터도, 플레이어도, 정령도 환경의 영향에 따라 전투력이 달라진다.
용암이 들끓는 분화구는 현성에게는 최악의 환경이다.
하지만 용암 골렘과 불의 정령인 덕구에게는 최고의 환경이다.
‘가라, 덕구야.’
현성이 덕구를 분화구로 보냈다.
지금부터 현성이 할 일은 마력 저장소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뿐이었다.
덕구가 화염 분화구 속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꽈아아앙!
화산 분화구 내부에서 연달아 폭음이 터져 나왔다.
마력이 물밀듯이 소모되기 시작했다.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화염의 서로 덕구의 몸을 구성하고 그것도 모자라 흑뢰신의 숨결까지 불어 넣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영웅 등급 몬스터였다면 덕구가 순식간에 정리를 했을 것이다.
한데 결판은 나지 않고 마력만 쭉쭉 빨리고 있었다.
‘전설 등급까지 나온 건가?’
전설 등급 용암 골렘이 있다면, 덕구로는 승부를 장담하기가 힘들었다.
덕구는 뚱이와 마찬가지로 정령이었고 현성의 입장에서는 원거리 스킬만 사용해서 전투를 치르는 꼴이 된다.
현성의 전투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화산 분화구만 아니면 그냥 끝내 버릴 수 있는데.’
화산 분화구 내부로 들어가기 위험하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화산 분화구에서 연달아 충돌음이 들렸다.
그리고 현성의 마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승부가 나지 않았다.
‘망할.’
현성은 일단 후퇴를 선택했다.
덕구의 몸을 구성한 화염의 서 스킬이 용암 골렘들에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근접전으로 핵을 부숴 버리는 게 상책인데.’
덕구를 이용한 원거리 전투만으로 용암 골렘들을 제압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현성이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일본 정부.
아니, 세계 각국의 정부가 경악했다.
* * *
“최현성 플레이어가 몬스터 사냥을 포기했다니? 그게 정말인가?”
아쿠나베 총리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직접 화산 분화구로 들어간 건 아니지만 일단 물러났습니다.”
“그럼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세계 최강의 플레이어가 포기했다.
그럼 남은 방법은?
혼슈섬을 포기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건 일본이 망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 * *
“최현성 플레이어도 환경의 영향을 무시하지는 못한 모양이군. 직접 들어가지 않고 블랙캣과 같은 개체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걸 보면 말이야.”
윌슨 대통령의 물음에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성 플레이어도 인간입니다. 용암이 넘쳐흐르는 곳으로 들어가 용암 골렘과 전투를 벌인다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작은 실수 하나만으로도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차라리 원거리 폭격으로 승부를 본다면 모를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는 최현성 플레이어도 블랙캣과 같은 개체를 사용하는 것 왜에는 뾰족한 수가 없을 겁니다.”
미국이 파악한 현성의 가장 강력한 공격 스킬은 칠흑빛 뇌전이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공격을 퍼부으면 후지산의 화산이 폭발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보다는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블랙캣과 같은 존재가 얼마나 더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하긴 그것도 중요하지. 블랙캣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개체가 등장했으니까 말이오.”
“어쩌면 상당히 많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평소에는 블랙캣만 사용했지만, 이번에 일이 터지자마자 불 속성을 지닌 파이어독을 꺼내 들었으니까 말입니다.”
“파이어독이라.”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이 방금 붙인 이름이었다.
하지만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하긴 땅, 바람, 물 같은 게 더 나와도 이상할 게 없겠지.”
윌슨 대통령은 현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그런 현성으로서도 후지산의 화산 폭발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 * *
“부탁드립니다! 제발 일본을 구원해 주십시오!”
일본 총리인 아쿠나베가 현성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걸복걸했다.
현성도 일본이 무너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당연히 2차 시도를 계획하고 있었다.
“저도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마력이 회복되었으니 다시 용암 골렘을 공략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니 그만 가 보십시오. 여기 있어 봤자 방해만 됩니다.”
“죄송합니다. 당장 물러가겠습니다. 부디 일본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아쿠나베 총리가 연신 허리를 숙이며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직접 들어가기는 위험하고 분신술을 사용해야겠네.’
현성이 직접 들어가는 것만은 못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분신술밖에 없었다.
‘분신술도 안 먹히면 직접 화산 분화구에 진입해서 때려잡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그런 상황은 현성으로서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문제가 있다면 분신의 방어력이다.
분신은 본신에 비해 모든 능력치가 하락한다.
스텟도 그렇고 스킬 옵션 효과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열기에 저항하는 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해결책은 그것뿐이야.’
현성이 다시금 덕구를 소환했다.
-멍!
덕구가 힘차게 짖으며 현성의 뺨에 머리를 부볐다.
“덕구야, 내 분신을 잘 지켜 줄 수 있겠니?”
-멍!
현성의 물음에 덕구가 힘차게 대답했다.
현성이 분신술 스킬을 사용했다.
화아악!
그와 동시에 현성과 동일한 외형을 갖춘 분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통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일시적으로 2개의 몸을 통제하게 되면서 자신이 자신을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일단 집중하자.’
이번 작전의 핵심은 덕구였다.
덕구 하나 믿고 실행하는 작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구의 방어가 현성의 예상과 달리 믿음직하지 못하다면?
이번 작전은 자동 실패였다.
현성은 자신의 본신을 은신 스킬을 사용해 감췄다.
그 후 모든 감각을 분신에 집중했다.
“덕구야.”
현성의 분신이 말하자 강아지의 형상을 하고 있던 덕구의 몸이 인간 형태의 불길로 변했다.
화르르륵!
인간 형태의 불길로 변한 덕구가 현성의 분신을 뒤덮었다.
겉으로만 보자면 타오르는 불길이 현성의 분신을 집어삼킨 꼴이었다.
하지만 현성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덕구가 내뿜는 화염은 현성 분신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
화염의 정령인 덕구가 계약자인 현성의 지시에 따라 전달되는 열기를 인위적으로 차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듯하네.’
강철도 녹여 버릴 수 있는 덕구의 열기가 현성 분신에게는 적당히 따듯한 정도로만 전달되었다.
‘가 보자.’
현성의 분신이 화산 분화구로 몸을 날렸다.
이번 작전의 요점은 단 하나.
불은 불로 막는다는 것이었다.
* * *
“최현성 플레이어가 다시 화산 분화구로 향했습니다.”
이누쿠소가 아쿠나베 총리에게 보고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
아쿠나베 총리의 말에 이누쿠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현성의 능력을 그 누구보다도 믿고 있는 이누쿠소조차도 이번 일에 관해서는 섣불리 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국민들의 대피 상황은?”
“소개령에 따라 황급히 이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화산 폭발 전까지 혼슈섬을 모두 떠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쿠나베 총리의 물음에 관방장관이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희생양이 필요하겠군.”
후지산의 화산이 2차 폭발을 일으키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용암 골렘들을 처리하지 못해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화산 폭발을 거듭한다면?
정말 일본이 멸망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해결책이 없다고 해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자연재해건 몬스터로 인한 피해건 누군가는 그걸 막지 못한 책임을 져야 했다.
관방장관과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인 이누쿠소가 동시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연재해와 몬스터로 인해 발생한 피해인 만큼 이 두 사람도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내각 총사퇴를 각오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번 일을 최현성 플레이어 탓으로 돌릴 수 있도록 여론을 몰아 보게.”
“예?”
“그게 무슨?”
아쿠나베 총리의 지시에 자리에 모여 있던 내각 각료들이 모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시였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탓하는 게 가능할까요?”
“자칫 잘못하면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밉보일 수도 있습니다.”
“타국의 여론도 좋지 못할 겁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어찌 되었든 우리 일본을 도와주기 위해 온 지원군입니다.”
내각 각료들의 반대 의견에 아쿠나베 총리가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트렸다.
“그럼 어쩌자는 말인가? 자네들이 책임을 질 텐가? 이게 단순히 각료 몇 명 자리에서 물러나는 정도로 해결될 일 같아? 내각 총사퇴를 해도 수습될까 말까 한 일이야!”
후지산의 화산이 2차 폭발로 끝나든 계속 폭발하든 일본이 엄청난 피해를 입는 것은 확정되어 있다.
아쿠나베 총리는 그 책임을 자신이 뒤집어쓸 생각이 없었다.
“타국의 여론은 무시해도 좋아. 이번 일을 통해 최현성 플레이어의 영향력을 줄이는 게 중요하네. 우리 일본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면, 이 정도 문제는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만약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인간으로 돌아가야지.”
오히려 과도하게 올라 있는 현성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지지를 꺼트릴 생각이었다.
국민 여론이 전환되어야만 현성에게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규슈섬과 시코쿠섬을 되찾을 수 있다.
“명심하게, 이건 단순히 내각의 책임 회피를 떠나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이 나라를 빼앗기느냐 지키느냐의 싸움이라는 걸.”
아쿠나베 총리의 말을 끝으로 일본 내각이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