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성장 (97/225)
  • ┃성장

    설 연휴가 끝난 후 현성은 게스피트에게 쪽지를 날렸다.

    앞으로 진행될 업데이트와 사업 진행에 관해 상의할 일이 있으니 자신을 고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게스피트를 찾은 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쓰는 거야?’

    신화 등급 스킬 흑뢰신의 숨결에 붙어 있는 옵션.

    흑뢰신의 힘 일부를 빌려 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고용주 게스피트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쪽지를 보내자마자 고용 신청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게임 중이 아니셨나 보네.’

    현성이 곧바로 예를 눌러 게스피트의 차원으로 넘어갔다.

    슈욱!

    ‘뭐야?’

    차원을 넘어가자마자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여긴 어디지?’

    평소 게스피트가 현성을 소환했던 장소가 아니었다.

    “왔느냐?”

    게스피트는 평소의 화려한 복장 대신 작업복 같아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주변에는 마계 장인으로 보이는 짜리몽땅한 키의 다크 드워프들이 우글거렸다.

    “예, 게스피트 님, 그런데 여기는……?”

    “네놈이 계속 개선품을 만들어 내라고 날 달달 볶지 않았느냐! 그래서 교류의 보석을 개량하는 연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게스피트의 말에 현성은 내심 안심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일을 하시는구나.’

    스× 크××트 대회에서 4등을 한 이후 다음 대회 우승자가 되겠다며 스× 크××트에 빠져 있더니, 이제는 좀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드디어 작업에 들어가셨군요. 다행입니다.”

    “다행은 무슨. 할 일이나 하고 돌아가도록 해라.”

    게스피트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예, 알겠습니다. 일단 리×지에…….”

    현성이 앞으로의 업데이트 일정과 이벤트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끝났느냐?”

    “예, 게스피트 님도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직접 찾아와서 나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다. 그냥 네가 알아서 진행하고 미리미리 메일로 진행 상황만 알려 주면 된다.”

    “알겠습니다.”

    현성은 대답 후 잠시 머뭇거렸다.

    게스피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라면 용건이 끝나자마자 가 버렸을 현성이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용건이 끝났으면 얼른 가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거냐? 내가 고용 취소를 해서 직접 보내 주랴?”

    게스피트의 말에 현성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번에 신화 등급 액티브 스킬을 얻었는데, 그에 대해서 여쭤볼 게 있습니다.”

    “왜? 신의 힘을 네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기라도 한 거냐?”

    게스피트의 말에 현성이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설마 게스피트 님도?”

    “난 아니다! 난 스킬을 익힌 순간부터 신의 힘 정도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어!”

    게스피트가 발끈하며 외쳤다.

    “아, 그러셨군요. 그럼 전 왜 그게 안 될까요?”

    현성의 말에 게스피트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네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지요?”

    “그래?”

    “정신력 스텟이라도 더 찍어야 합니까?”

    “스텟과는 별개다.”

    “제 의지력이 약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요?”

    현성의 말에 게스피트가 잠시 고민했다.

    “스킬을 얻게 된 후 정말로 간절하게 신의 힘이 필요한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느냐?”

    “없는데요?”

    “신화 등급 스킬을 얻었다는 것은 네가 스킬 설명에 언급된 신의 힘을 빌려 올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는 뜻이다. 자격을 줬으면, 그 후에는 네놈이 알아서 신의 힘을 빼앗아 와야 한다.”

    “빼앗아 온다고요?”

    현성의 반문에 게스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할 거다. 자격이 생겼다고 해서 그놈들이 스스로 자신의 힘을 너에게 넘겨주지는 않을 테니까.”

    “신이 정말 있기는 한가 보군요.”

    게스피트는 신을 그놈들이라고 칭했다.

    “당연히 있다. 그 신이라는 작자들이 일반적인 인간들이 생각하는 자애롭고 대자대비한 존재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것 아니다. 알았으면 그만 돌아가 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슈욱!

    짧은 인사 후 현성이 다시금 본래의 세계로 돌아왔다.

    ‘의지라.’

    전혀 생각도 못 했던 답변이었다.

    ‘빌려 오는 게 아니라 빼앗아 온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지.’

    일단 방법은 알았다.

    그럼 그에 맞춰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 * *

    현성이 물끄러미 욕조 속에서 놀고 있는 까망이를 주시했다.

    까망이는 한 마리의 물뱀처럼 욕조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을 쳤다.

    ‘이 녀석에게도 효과가 있을까?’

    까망이는 전설 등급 몬스터다.

    하지만 아직은 갓 태어난 새끼에 불과하다.

    현성이 까망이의 상태창을 읽을 수는 없다.

    하지만 레벨이 1에 불과할 거라는 사실 자체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까망이는 아직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사냥을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현성이 건네주는 몬스터 사체와 마석을 먹었을 뿐이다.

    ‘한번 테스트해 보자.’

    현성이 구매창을 열어 최하급 민첩의 비약 100개를 구매했다.

    과거의 현성이라면 아까워서 테스트용으로 사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까망아, 밥 먹자.”

    현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까망이가 재빨리 다가와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밥 먹자는 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듣네.’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최하급 민첩의 비약을 던져 줬다.

    꿀꺽!

    까망이가 한입에 최하급 민첩의 비약을 삼켜 버렸다.

    ‘일단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네.’

    현성이 계속해서 민첩의 비약을 던져 줬다.

    까망이는 신이 나서 민첩의 비약을 집어삼켰다.

    현성은 평소에 먹이를 많이 주는 주인이 아니었다.

    까망이의 체격에 맞춰 딱 적당한 양을 줬다.

    한데 오늘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먹이를 줬고, 까망이는 잔뜩 신이 났다.

    “이제 놀아.”

    현성의 말에 까망이가 신이 나서 욕조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어.’

    그런 까망이를 관찰하던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훨씬 빨라졌어.’

    욕조를 헤엄치고 있는 까망이의 기동성이 월등히 늘어났다.

    이건 몬스터인 까망이도 비약의 효과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좋아.’

    현성이 다른 최하급 비약들을 모두 구매했다.

    “까망아, 밥 먹자.”

    현성의 말에 까망이가 다시 입을 쩍 벌렸다.

    이 먹보 물뱀은 먹이를 절대 사양하지 않았다.

    현성은 최하급 비약을 모두 까망이에게 먹였다.

    인간인 현성처럼 외형의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까망이가 강해졌다는 것은 확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현성은 최하급인 일반 등급 비약을 시작으로 최상급 신화 등급 비약까지 모두 까망이에게 먹였다.

    그 결과 까망이는…….

    좌아아아악!

    욕조의 물줄기를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물을 엄청 좋아한다 했더니 수 계열 몬스터였냐?’

    까망이는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지배력을 행사했다.

    현성으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까망아, 사냥 갈까?”

    현성의 말에 까망이 욕조에서 뛰어나왔다.

    그 후 자신의 자리라도 되는 양 현성의 팔목을 칭칭 휘감았다.

    그리고 현성은 블루 드레이크 던전으로 향했다.

    * * *

    -크아아아앙!

    블루 드레이크가 성난 포효를 터트리며 현성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현성이 가볍게 왼손을 휘둘렀다.

    휘익!

    그와 함께 현성의 손목에 머물고 있던 까망이가 암기처럼 튀어 나갔다.

    콰직!

    까망이가 블루 드레이크의 코를 물어뜯었다.

    그 후 블루 드레이크의 몸속으로 파고들며 살점을 파먹었다.

    -캬아아아앙!

    블루 드레이크가 발악하며 푸른 번개를 뿜어냈다.

    하지만 블루 드레이크가 뿜어낸 번개는 이미 현성의 지배하에 들어와 오히려 주인의 몸을 해할 뿐이었다.

    현성은 차분하게 까망이의 사냥 모습을 지켜봤다.

    쿠우우웅!

    커다란 블루 드레이트의 사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까망이는 순식간에 블루 드레이크를 사냥했다.

    현성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실로 놀라운 성과였다.

    까망이는 단순히 살을 파먹어 블루 드레이크를 죽인 게 아니었다.

    물을 자유자재로 지배하는 지배력을 이용해 블루 드레이크의 혈류 흐름을 어지럽혔다.

    ‘훌륭해.’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비약을 먹인 보람이 있었다.

    ‘최대한 빨리 레벨을 올려 줘 보자.’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위 레벨의 몬스터를 잡는 것이다.

    물론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육체적인 성장도 중요했다.

    ‘혹시 이것도 되나?’

    현성이 슬쩍 탐식의 서 스킬을 사용해 봤다.

    콰직!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역시 안 되나.’

    현성이 블루 드레이크의 공격을 방어하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블루 드레이크를 사냥한 건 까망이었고, 현성은 간접적으로 사냥에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그 때문인지 직접 사냥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현성이 아쉬운 마음을 애써 지웠다.

    사실 이 정도 간섭이 직접 사냥으로 인정되었다면 러시아가 현성에게 탐식의 서를 넘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음 일을 진행해 보자.’

    현성이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다행히 현성이 원하는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루시아는 장르 소설을 읽고 있었고 아버지와 백우신은 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루시아, 이거 받아요.”

    현성이 루시아에게 아이템 하나를 넘겨줬다.

    “정령의 돌?”

    루시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한번 사용해 보세요. 저는 이걸로 뚱이 녀석을 얻었거든요.”

    현성은 아버지와 백우신에게도 정령의 돌을 넘겼다.

    수천억 포인트짜리 아이템으로, 현성도 구입 당시 많은 고민을 했던 물건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현성 자신뿐 아니라 주변에 나눠 줄 수 있을 정도로 포인트가 넉넉했다.

    “음, 예라고 하면 되는 거겠지?”

    아버지가 그 말과 함께 정령의 돌을 사용했다.

    파삭!

    정령의 돌이 산산이 부서지며 아버지의 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꽝이네.’

    현성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나도 해 볼게, 형!”

    백우신이 해맑은 웃음을 터트리며 정령의 돌을 사용했다.

    파삭!

    역시 정령의 돌이 산산이 부서지며 백우신의 몸을 휘감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우직! 우직!

    백우신의 몸을 중심으로 황갈색 빛이 피어나며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북이다!”

    거북이였다.

    신이 난 백우신이 거북이를 끌어안고 방바닥을 나뒹굴었다.

    ‘무슨 정령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나는 건졌네.’

    꽝이 하나에 성공이 하나.

    현성이 루시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으흠.”

    루시아가 약간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정령의 돌을 사용했다.

    파삭!

    산산이 부서진 정령의 돌이 루시아의 몸을 휘감았다.

    ‘꽝인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휘이이이잉!

    바람 한 점 없는 실내에서 돌풍이 피어났다.

    그리고 거대한 체구를 지닌 말의 형태로 변했다.

    “스캇!”

    루시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성공했네.’

    3개를 사용했다.

    그중에 2개가 성공했다.

    ‘생각보다 성공 확률이 높은데.’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두 사람 다 계약은 했죠? 일단 던전으로 가서 어떤 정령인지 한번 확인해 봐요.”

    “알겠습니다.”

    “알았어, 형!”

    현성의 물음에 힘차게 대답한 루시아와 백우신이 외출 준비를 한 후 던전으로 향했다.

    “…….”

    졸지에 집에 혼자 남겨진 현성의 아버지 최형규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야구 경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방금 전처럼 야구 경기가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텅 빈 집 안이 왜인지 모르게 썰렁하게 느껴졌다.

    “나도 데리고 가지.”

    정령과의 계약에 실패했더라도 던전은 같이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 * *

    던전으로 온 후 백우신의 거북이 형상의 정령과 루시아의 말 형상의 정령이 가진 속성은 금방 그 정체를 드러냈다.

    백우신이 계약을 맺은 정령은 대지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성향이 잘 맞아.’

    백우신은 방어력에 모든 것을 몰빵한 오리지널 탱커다.

    그런 백우신과 대지의 정령은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

    루시아가 계약을 맺은 정령은 바람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덕에 루시아의 기동성이 올라갔고 더 유려한 검술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루시아는 정령에게 스캇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며 애지중지했다.

    현성의 뚱이처럼 루시아의 스캇도 과거 키웠던 동물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 녀석들에게도 하나씩 보내 줘야겠네.’

    현성은 일본에 있는 이누쿠소와 중국에 있는 마분석에게도 정령의 돌을 하나씩 선물해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부릴 똘마니들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강한 게 부려 먹기 편했다.

    ‘나도 한번 더 써 볼까?’

    정령의 돌은 재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 자체가 희박했다.

    한 사람이 2개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고 구매평 후기에 나와 있었으니까 말이다.

    ‘한번 해 보자.’

    설사 실패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정도 손해는 충분히 감수 할 수 있었다.

    현성은 정령의 돌 하나를 구매했다.

    그 후 사용했다.

    파삭!

    정령의 돌이 깨지며 현성의 몸 주변을 휘감았다.

    화르르륵!

    그와 함께 붉은 불꽃이 넘실거리며 현성에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화염의 정령 소환에 성공했습니다.

    ‘성공했어.’

    포인트 낭비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성공했다.

    넘실거리던 화염이 강아지의 형상으로 변했다.

    -멍멍!

    녀석이 반가운지 현성에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었다.

    ‘난 강아지를 키운 적은 없는데?’

    키운 반려 동물은 뚱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

    그런데 외형이 많이 익숙했다.

    ‘할머니가 기르시던 덕구랑 닮았네.’

    시골 똥개 덕구랑 똑같이 생긴 녀석이었다.

    -화염의 정령이 최현성 플레이어님과의 계약을 요청했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은 예를 선택했다.

    화염의 정령에게서 뿜어져 나온 한 줄기 화염이 현성의 마력과 하나로 뒤엉켰다.

    “반갑다, 덕구야.”

    현성의 말에 덕구가 달려와 현성에게 애교를 부렸다.

    “뚱아.”

    현성은 뚱이도 소환했다.

    “둘이서 합동 공격 한번 해 봐.”

    현성의 명령에 뚱이가 뚱한 표정으로 덕구를 바라봤다.

    덕구 역시 띠꺼운 표정으로 뚱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명령은 명령.

    두 정령이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냐앙!

    -멍멍!

    겉으로 보면 뚱뚱한 고양이와 시골 똥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파지지지직!

    화르르르륵!

    두 녀석이 보여 주는 합동 공격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공격력은 확실히 부족하네.’

    흑뢰신의 숨결과 달리 화염의 서는 모든 스킬에 적용되지 않았다.

    덕구 녀석도 현성의 스킬인 만큼 흑뢰신의 숨결을 사용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효율이 그리 좋지 못했다.

    “덕구야, 혹시 이걸로도 네 몸을 구성할 수 있니?”

    현성이 화염의 서로 넘실거리는 화염을 가리키며 말했다.

    -멍멍!

    덕구가 힘차게 대답하며 화염의 서와 하나로 어우러졌다.

    ‘좋은데.’

    난전이 벌어졌을 때 화염의 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줄 일꾼이 생겼다.

    ‘하나 더 써 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성은 정령의 돌 하나를 더 구입해 사용해 봤다.

    파삭!

    하지만…….

    ‘꽝이네.’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현성은 테스트를 마무리하고 던전을 나섰다.

    * * *

    ‘군주의 깃발 효과를 더 올려야겠어.’

    현성은 그간 사냥을 통해 업적을 쌓고 탐식의 서가 가진 옵션을 활용해 스텟을 계속 상승시켰다.

    특히 제1차 스× 크××트 대회가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모든 스텟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통솔력 스텟이 대량으로 늘어났다.

    그동안 랭커들을 휘하로 받아들이며 거의 바닥을 치던 통솔력 스텟이 3,200을 넘어섰다.

    ‘통솔 스텟 3,200이면, 군주의 깃발 효과를 1% 상승시킬 수 있어.’

    오랜 시간 6%에 머물렀던 버프 효과를 7%로 늘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1차 전직을 마치지 못한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필요해.’

    현성은 곧바로 이모탈 길드의 본사로 향했다.

    과거에는 현성이 일일이 접선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세계 각국의 저레벨 플레이어 300여명을 모아 달라고요?”

    강선영 길드장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랭커들을 꽤 받아들여 사실 300명이 안 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기왕 받아들이는 거 성장 가능성 높은 인재가 있다면 300명이 넘더라도 휘하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네, 하지만 1차 전직을 마치지 못한 50레벨 미만의 플레이어여야만 합니다.”

    “왜 그들을 필요로 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강선영 길드장의 말에 현성이 군주의 깃발이 가진 옵션 효과에 대해 설명해 줬다.

    “그래서 그때 척살대원들을 1차 전직을 마치지 못한 플레이어들로 구성하셨던 거군요.”

    강선영 길드장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성의 과거 행적이 이제야 이해가 된 것이다.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각 지부별로 할당량을 정해 보고서를 올리라고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할당량은 최대한 넉넉하게 잡아 주십시오.”

    “최대한 넉넉하게요?”

    “예.”

    “300명 정도만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모집풀이 너무 적으면 실력 있는 인재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이가 후보로 올라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만 뽑을 거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각국 지부의 역량에 따라 후보자들의 기량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각 지부에서 후보를 3명씩만 뽑는다면?

    미국 지부에서 아깝게 낙마한 이가 그리스 지부의 후보 3명보다 더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굳이 각 지부 간 균형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실력이 뛰어난 지부에서 300명이 모두 선발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오직 가능성과 실력으로만 평가해 주세요. 선발된 인원들에 대해서는 제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현성의 지시에 따라 강선영 길드장이 각 지부에 넉넉한 할당량을 배분했다.

    그 결과…….

    세계 각국에서 난리가 났다.

    * * *

    미국 워싱턴 D.C에 자리한 백악관.

    윌슨 대통령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휘하에 들일 저레벨 플레이어를 뽑는다고요?”

    “예, 대통령님. 거기다 대대적인 지원까지 약속했습니다.”

    윌슨 대통령의 물음에 미국 플레이어 협회장이 재빨리 대답했다.

    “각 지부에 자신의 추종자들을 심어 놓겠다는 속셈이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가장 신뢰하는 이들은 단순한 길드 가입원이 아니라 휘하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이니까요.”

    “음…….”

    잠시 고민하던 윌슨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미합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저레벨 플레이어들을 소집해 주세요.”

    “그들이 최현성 플레이어의 수족이 된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미국 플레이어 협회장이 우려를 표했다.

    미국 이모탈 길드 지부장으로 임명된 죠셉의 언행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미합중국 랭킹 1위의 플레이어 죠셉.

    그는 조국인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움직이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은근히 이모탈 길드 미국 지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면서요? 인원 제한도 없고?”

    “그렇습니다.”

    “최현성 플레이어 스스로 한 지부에서 300명을 다 뽑아도 상관없다고 했다면서요? 만약 우리가 쭉정이들을 보내고 러시아나 중국 놈들이 최고 정예들을 보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윌슨 대통령의 말에 미국 플레이어 협회장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새롭게 최현성 플레이어의 휘하에 들어간 이들은 막대한 지원과 버프를 받고 쭉쭉 성장할 겁니다. 한국 척살대원들을 보세요.”

    1차 전직도 못 했던 햇병아리 척살대원들이 현재 모두 200레벨을 넘겼다.

    현성의 대대적인 지원과 본인들의 필사적인 노력, 거기다 군주의 깃발이 가진 옵션 효과까지 버무려진 결과였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척살대원들이 빠르면 3년, 길면 5년 안에 랭커급의 실력자들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정말 대통령님의 말씀대로 된다면, 우리 미합중국의 플레이어 전력이 뒤떨어지고 러시아와 중국의 플레이어 전력이 대폭 상승하겠군요.”

    미국 플레이어 협회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바로 그겁니다. 어차피 최현성 플레이어는 거스르기 힘든 흐름입니다. 일단은 러시아와 중국을 앞서 나가는 게 중요해요.”

    “알겠습니다.”

    윌슨 대통령의 지시에 미국 플레이어 협회장이 조용히 물러났다.

    그 후 미국 전역을 이 잡듯이 뒤지며 성장 가능성이 높은 저레벨 플레이어를 찾았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논외로 친다.

    그게 오크 로드와 현성의 결투를 지켜본 미합중국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런 결론은 타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인도 등등…….

    세계 각국이 조금이라도 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저레벨 플레이어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전 세계에 때아닌 플레이어 오디션 열풍이 불어닥쳤다.

    갓 각성했거나 아직 1차 전직을 마무리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각국의 플레이어 협회의 업무가 순식간에 마비될 정도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들었다.

    각국의 플레이어 협회는 그중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인원을 선별해 자국의 이모탈 길드 지부로 보냈다.

    또 이미 타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 중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설득해 이모탈 길드 지부로 보냈다.

    * * *

    “이거 많아도 너무 많은데요.”

    신윤아가 얼굴을 찌푸리며 산더미같이 쌓인 서류 더미를 바라봤다.

    300명을 뽑는데 거르고 걸러 이모탈 길드 본사에 도착한 플레이어들의 명단이 3만 개를 넘어섰다.

    “예상 인원을 너무 넉넉하게 잡았나 봐요.”

    “휴우! 그렇긴 하지. 하지만 어쩌겠어, 다 확인해야지.”

    긴 한숨을 토해 낸 강선영 길드장이 서류 더미에 덤벼들었다.

    3만 개가 넘는 명단을 300개로 추려야 할 차례였다.

    “그런데 탈락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다 길드원으로 받아들여야지.”

    신윤아의 물음에 강선영 길드장이 뭘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느냐는 듯 대답했다.

    “현성 씨 휘하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은 300명이잖아요?”

    “그렇다고 나머지 인원을 버릴 수는 없잖아.”

    세계 각국에서 고르고 골라 뽑은 후보들이다.

    지금은 단순한 저레벨 플레이어에 불과하지만, 충분한 투자가 바탕이 된다면 각국에서 이름을 날릴 랭커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 받아들이면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게 나갈 것 같은데…….”

    “돈 걱정하지 마.”

    이모탈 길드가 본사와 각국 지사에서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수입만 해도 웬만한 소국의 재정에 필적할 정도다.

    거기다 회사의 오너가 엄청난 부자가 아닌가?

    “자문위원장님이 유럽 던전에서 들어오는 수익 모두 길드에 재투자한다고 하셨으니까,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이 될 거야.”

    강선영 길드장의 말을 들은 신윤아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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