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까망이 (95/225)
  • ┃까망이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파르티샤가 공손히 고개를 숙여 현성에게 예를 표했다.

    “저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현성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 호출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2마리나 잡았다.

    현성에게는 무조건 이득이었다.

    탐식의 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전설 등급 몬스터의 사체와 전설 등급 아이템을 얻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전히 상황이 녹록지 않으신가 봅니다.”

    현성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파르티샤의 근거지는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성벽을 보수하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성벽을 담보로 버티고 있을 뿐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영토를 넓히려는 시도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생존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현성 님의 도움 덕에 조만간 영토를 확장할 여력이 생길 듯합니다.”

    현성이 전설 등급 몬스터를 처리해 주다 보니 파르티샤와 그녀를 따르는 플레이어들은 그만큼 전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또 안전하게 희귀나 영웅 등급 몬스터를 사냥해 포인트를 모으고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게임으로 치자면 고레벨인 현성이 저레벨인 파르티샤와 플레이어들을 버스 태워 준 셈이었다.

    “영토를 확장할 때 꼭 불러 주십시오.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파르티샤의 인사에 현성이 별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현성의 입장에서도 파르티샤의 세계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꿀 사냥터였다.

    영웅 등급 몬스터가 사방에 널려 있고 심심치 않게 전설 등급 몬스터가 나타난다.

    거기다 현성이 사냥할 몬스터를 선점하는 경쟁자도 없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사냥터라고 할 수 있었다.

    ‘역시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니까.’

    잡는 몬스터 숫자에 비해 보수가 적다며 용병 고용을 취소했다면 절대 누릴 수 없는 행운이었다.

    파르티샤에게 용병 고용 비용을 대폭 깎아 준 것 역시 신의 한 수였다.

    현성으로서는 파르티샤에게 최대한 많은 도움을 줘서 누군가가 자신의 사냥터를 가로채려는 시도를 막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다음에 또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성은 파르티샤와 짧게 인사를 나눈 후 본래 세계로 돌아갔다.

    슈욱!

    현성이 지구로 복귀했다.

    -크릉?

    갑자기 나타난 현성의 모습에 몬스터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당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크아아아앙!

    -캬아아아앙!

    몬스터들이 본능에 따라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게 다 현성이 던전 안에서 용병 고용을 수락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현성은 당황하지 않았다.

    ‘잘됐네.’

    오히려 좋아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알아서 사냥감들이 몰려드는 꼴이니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었다.

    파지지직!

    현성은 가볍게 흑뢰신의 숨결을 뿜어냈다.

    -캬아아앙!

    -크어어엉!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한 줌의 재로 변했다.

    그 후 아공간을 열어, 아까 잡았던 전설 등급 몬스터의 사체를 꺼낸 후 전리품을 수집했다.

    ‘먹어 치워라.’

    현성의 명령에 따라 탐식의 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직! 콰직!

    탐식의 서가 전설 등급 몬스터의 사체를 먹어 치웠다.

    -액티브 스킬 탐식의 서 - 유일 영웅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액티브 스킬 탐식의 서 - 유일 영웅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액티브 스킬 탐식의 서 - 유일 영웅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후략……

    상위 등급인 전설 등급 몬스터의 사체를 먹이자, 역시 연속적으로 성장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탐식의 서가 순식간에 식사를 마쳤다.

    -탐식의 서가 탐식한 사체의 스텟 중 일부를 영구적으로 흡수했습니다.

    -민첩 스텟이 12 증가했습니다.

    ‘좋네.’

    스텟도 꽤 크게 올랐다.

    ‘어? 이게 뭐야?’

    다시 사냥을 위해 움직이려던 현성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바로 작은 알이었다.

    ‘그놈 배 속에서 나온 건가?’

    탐식의 서는 뿔 달린 늑대 형상의 몬스터를 맛있게 먹어 치웠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알 하나가 남았다.

    ‘늑대가 알을 낳지는 않을 거고? 그놈이 먹었던 다른 몬스터의 알인가?’

    현성이 알을 들어 올렸다.

    꽤 묵직했다.

    그런데 크기는 닭이 낳은 달걀보다 조금 큰 수준에 불과했다.

    감촉 역시 딱딱한 조류의 알이라기보다는 파충류의 알처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다.

    ‘몬스터가 이렇게 작은 알도 낳나?’

    현성은 잠시 고심에 빠졌다.

    몬스터의 알이나 이계의 식물을 던전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그냥 죽여?’

    인류의 적인 몬스터의 알이다.

    그냥 이 자리에서 깨트려 버리면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된다.

    찌익!

    그때 알이 찢어졌다.

    ‘어라?’

    찌익! 찌익!

    부드러운 알의 표면이 찢어지며 뱀과 악어를 반쯤 섞은 듯한 몬스터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삐비비빅!

    알에서 머리만 빠져나온 몬스터가 현성을 바라보며 반가움이 가득 담긴 울음을 터트렸다.

    곧이어 꿈틀거리며 알에서 기어 나왔다.

    그러더니 현성의 손바닥을 지나 갑옷 소매로 기어들어 갔다.

    ‘이게 뭐야?’

    생긴 건 꼭 뱀처럼 생겼다.

    그런데 비늘이 부드럽지 않았다.

    크로커다일맨이나 드레이크처럼 날카롭고 단단했다.

    스르르륵.

    소매로 기어 들어간 녀석이 마치 팔찌처럼 현성의 손목을 휘감았다.

    현성이 팔을 들고 갑옷 소매 속에 숨은 녀석을 끄집어냈다.

    -삐이이이익!

    녀석이 항의라도 하듯 현성을 노려봤다.

    그러다 갑자기 현성의 손에 머리를 부비며 친한 척을 했다.

    ‘으흠.’

    천진난만하게 현성에게 친한 척을 하는 갓 태어난 새끼 몬스터.

    원래 아무리 사나운 맹수라도 새끼 때는 다 귀엽게 생겼다.

    그 논리는 몬스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귀엽긴 하네.’

    파충류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삐익! 삐익!

    녀석이 짧게 울며 투정을 부렸다.

    ‘다시 손목으로 가고 싶다는 건가? 그게 아니면 밥이라도 달라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공간에 챙겨 놓았던 식량 중 마른 소고기를 꺼내 줬다.

    덥석!

    놈이 재빨리 먹이를 먹어 치웠다.

    현성은 계속 고기 조각을 줬다.

    녀석은 현성이 주는 고기 조각을 모두 먹어 치웠다.

    ‘식성이 엄청 좋네.’

    놈은 작은 몸뚱이에 어울리지 않게 엄청난 먹성을 보여 주었다.

    ‘죽이기는 조금 그런데.’

    살짝 마음이 약해졌다.

    여기에 풀어 주면 금방 다른 몬스터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던전 밖으로 데리고 나가자니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

    몬스터는 위험하다.

    현성이 안일하게 생각하고 이 녀석을 던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면?

    누군가가 이 녀석에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

    ‘혹시 이게 먹히려나?’

    현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기 몬스터를 향해 직업 전용 스킬 등용을 시전해 봤다.

    -전설 등급 무명 몬스터에게 등용을 제의하셨습니다.

    ‘어라, 먹히네?’

    이름이 없어서 무명으로 표시되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등용 스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는 했다.

    거기다 무려 전설 등급 몬스터였다.

    ‘생각보다 꽤 등급이 높네.’

    몬스터도 플레이어처럼 성장한다.

    현성은 태생이 영웅 등급 몬스터인 조인족이 전설 등급까지 성장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오크의 경우에는 일반 등급에서부터 준신화 동급까지 다양하게 성장했다.

    ‘그럼 이 녀석은 도대체 어디까지 성장이 가능하다는 거야?’

    갓 태어난 새끼가 전설 등급이라는 건 어쩌면 놈이 신화 등급이나 초월 등급의 괴물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냥 등급 자체가 전설 등급으로 고정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설 등급만 해도 상당히 위험했다.

    ‘역시 죽여야 하나?’

    기르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삐이익?

    그때, 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후.

    -전설 등급 무명 몬스터가 등용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통솔력 10이 소모됩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전설 등급]

    -최초로 몬스터를 휘하에 들이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몬스터를 휘하에 넣은 자 - 전설 등급]

    ‘받아들였어.’

    뭔가 안심이 됐다.

    거기다가 업적도 줬다.

    그것도 무려 전설 등급 업적을 말이다.

    ‘보험이 생겼어.’

    갓 태어난 새끼인 녀석의 레벨은 1이 분명했다.

    1레벨에 현성의 휘하에 들어왔다.

    그 말은 녀석이 아무리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도 현성이 등용을 철회하는 순간 1레벨 몬스터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달랑 10이네.’

    통솔력 소모도 엄청 낮았다.

    나중은 어떨지 몰라도 지금 당장은 저레벨 플레이어의 발길질 한 번에 세상을 하직할 수도 있을 만큼 엄청 연약했다.

    ‘일단 확인 좀 해 보자.’

    현성은 세력 현황을 통해 녀석의 상태창을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이름 : 없음.]

    몬스터 레벨 : ?

    종족 : ????

    등급 : ??

    스텟 : [힘 ??] [민첩 ??] [체력 ??] [마력 ??] [정신력 ??]

    플레이어는 현존하는 모든 문자와 언어를 자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덕분에 타 차원의 존재와도 자유롭게 대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몬스터와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그 기능이 상태창에도 적용되었다.

    분명히 상태창이 나오기는 했다.

    그런데 그 상태창에 적힌 내용을 현성이 읽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상태창이 보이지 않는다고 녀석이 현성의 휘하에 들어온 게 부정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름을 뭐라고 짓지?’

    계속 녀석, 놈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일단 휘하로 거둔 이상 이름을 지어 줄 필요가 있었다.

    ‘삐익거리니까 삐익이라고 할까? 아니다 그냥 까망이라고 하자.’

    푸른빛이 도는 검은 비늘을 가지고 있으니 까망이가 가장 무난한 것 같았다.

    삐익이는 뭔가 어감이 이상했다.

    스르륵!

    먹이를 다 먹어 치운 녀석이 다시금 현성의 갑옷 틈새로 파고들어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무슨 팔찌라도 찬 것 같네.’

    겉으로 보기에도 정말 정교하게 디자인된 팔찌 같아 보였다.

    ‘뭐, 크게 문제 될 건 없겠지.’

    현성이 다시금 사냥에 나섰다.

    팔이 계속 움직여 까망이가 어지럽다고 느끼면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녀석은 현성이 무기를 휘두르고 빠르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팔목에 착 달라 붙여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 * *

    까망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현성은 사냥하고 나온 몬스터의 사체 일부를 까망이의 먹이로 줬다.

    처음에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줬는데, 태생이 몬스터이다 보니 마력이 스며들어 있는 몬스터 고기를 가장 좋아했다.

    -캬아아아!

    까망이는 입을 쩍쩍 벌리며 마석을 달라고 졸랐다.

    까망이는 몬스터 고기도 좋아했지만 역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마석이었다.

    마석이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까망이가 밖에서 사고를 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직 새끼라 그런 건지 성격도 상당히 순했고 군주의 외침으로 내리는 현성의 지시도 상당히 잘 알아들었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까망이와 현성의 스텟 차이는 실로 까마득했다.

    당연히 직업 군주의 숨겨진 효과로 인해 까망이는 현성에게 완전히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까망이는 알에서 깨어난 순간 난생동물의 특성인 각인 현상을 통해 현성을 자신의 부모로 인지했다.

    그렇기에 알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현성에게 친근하게 애교를 부렸던 것이다.

    ‘이 녀석은 물뱀인가?’

    까망이는 물을 무척 좋아했다.

    마시기도 많이 마셨고 물에서 헤엄치는 것도 좋아했다.

    중간중간 마력을 이용해 물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모습도 보였다.

    ‘정체가 뭐든 무럭무럭 잘만 자라라.’

    전설 등급 몬스터인 만큼 잘만 키우면 구매창에서 봤던 영웅 등급 몬스터 레드 드레이크 정도는 가볍게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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