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순자 씨
“무슨 일이십니까, 주군?”
루시아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대박을 외치니 궁금한 게 당연했다.
“영역 선포라는 직업 전용 스킬이 생겼어요.”
“영역 선포요?”
루시아도 모르는 스킬 같았다.
“군주와 휘하 신하들의 스텟을 10% 상승시키는 버프예요.”
“엄청나군요.”
루시아도 깜짝 놀랐다.
모든 스텟이 10% 증가한다니?
5개의 스텟이 모두 적용을 받으니, 고레벨로 갈수록 더 엄청난 효과를 보는 것이다.
“대신 발동 시간이 좀 짧고 쿨타임이 길어요.”
지속 시간은 고작 70분.
반면 쿨타임은 일주일이나 된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또 주군의 역량이 오르시면 영역 선포라는 직업 전용 스킬이 성장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직업 전용 스킬은 사실상 성장형 스킬이나 마찬가지다.
추가로 전직을 하거나 직업적인 성과를 이루면 알아서 성장해 버리니까 말이다.
“고마워요, 루시아.”
영역 선포 스킬이 튀어나온 것은 루시아의 역할을 컸다.
메시지에도 휘하 기사의 수준이 상승했다고 나왔다.
“모두 주군의 덕입니다.”
현성의 배려 덕에 루시아의 스텟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하하하, 앞으로는 전설 등급 아이템 경매를 좀 더 자주 해야겠어요.”
휘하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늘어나면?
그만큼 현성도 이득을 본다.
말 그대로 양측 모두 윈윈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 저녁 먹고 던전에 같이 가 볼까요? 스킬 테스트는 해 봐야죠.”
“좋습니다.”
현성의 물음에 루시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크허어어엉!
-캬르르르륵!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이거 정말 대박이네.’
현성이 한 게 아니다.
루시아가 한 것도 아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사냥을 나온 백우신이 한 일이었다.
“나 잘했다!”
백우신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칭찬해 달라는 듯 현성과 루시아를 바라봤다.
“잘했다, 우신아. 한 번 더 가 보자.”
현성의 말에 백우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아아아아!”
백우신이 광역 도발 스킬을 시전하고 몰려든 몬스터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검으로 베고 방패로 후려치고, 극단적으로 방어형 스텟을 찍은 탱커인 백우신이 상당히 훌륭하게 몬스터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역시 스킬빨이 좋기는 하네.’
현재 현성은 방금 전에 얻은 영역 선포 스킬을 사용한 상태였다.
그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높은 백우신의 방어력은 더욱 상승했다.
빈약한 공격력 역시 꽤 높아진 상태였다.
반경도 꽤 넓었다.
시전자인 현성을 중심으로 해서 직경 3킬로미터 정도가 버프의 영향을 받았다.
쉽게 말해 시전자인 현성이 움직이면 영역 선포도 같이 따라서 이동했다.
“주군, 제가 테스트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얼마든지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원거리 공격 스킬을 시전했다.
꽈아아아아아!
-크라라락!
-캬아아악!
분명 기사인 루시아가 날린 스킬이었다.
한데 마치 마력 스텟을 주력으로 찍은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가 날린 스킬과 같은 파괴력을 선사했다.
전체적으로 루시아의 스텟이 많이 상승하기도 했고, 영역 선포가 주는 버프 효과가 크기도 했다.
‘아주 좋아.’
군주의 깃발과 영역 선포가 중첩되면서 백우신과 루시아가 상태창에 나온 스텟 이상의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나도 한번 해 볼까?’
현성이 오랜 시간 봉인하고 있던 스킬을 꺼내 들었다.
“아이스 스톰.”
흑뢰룡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주력으로 사용하다 보니 거의 쓸 일이 없었던 냉기 계열 스킬이었다.
사아아아악!
현성이 아이스 스톰을 시전한 순간 몬스터들이 그대로 얼음 조각으로 변해 버렸다.
“좋네.”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전에는 고작 1마리 잡는다고 개고생을 했는데.’
아니, 개고생 수준을 넘어서 죽을 뻔했다.
현재 사냥 중인 던전은 다른 플레이어가 아무도 없었다.
현성이 정부로부터 소유권을 양도받은 블루 드레이크 던전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아버지와 백우신의 2인 사냥터로 쓰인다.
굳이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스킬 테스트도 하고, 탐식의 서도 사용하고, 뇌전 계열 스킬북도 주워 먹을 겸 해서 현성의 개인 던전을 찾아온 것이다.
그날 블루 드레이크 던전은 불과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영업을 종료했다.
던전에 가득했던 블루 드레이크의 씨가 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 * *
“드디어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멕시코 시날로 길드의 길드 마스터 아르치발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보고해 봐.”
“예, 국적 한국, 이름 최현성…….”
수하의 입에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1,000조 원의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가 술술 흘러나왔다.
“미국, 유럽, 러시아, 중국도 그의 눈치를 본다지?”
“그런 소문이 파다합니다. 결정적으로 윌슨 대통령과 표트르 대통령이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가 최현성 플레이어를 만난 건 절대 숨길 수 없는 팩트입니다.”
“좋아, 아주 좋아.”
아르치발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전설 등급 아이템을 많이 가지고 있다지?”
“이번 오크 로드 레이드 성공으로 전설 등급보다 상위 등급의 아이템을 손에 넣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잘만 하면 그게 다 내 것이 되겠군.”
아르치발도의 두 눈이 진한 탐욕으로 물들었다.
‘그게 끝이 아니야. 그자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전 세계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어.’
“하지만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보스. 중국이 그 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르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멕시코 정부야?”
“아닙니다.”
“일이 틀어져도 우리는 입 다물고 있으면 끝나는 일이야. 그리고 중국 일도 항의하고 보상을 받는 선에서 간단하게 마무리 지었잖아? 최현성 플레이어는 너무 물러. 우리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테러를 해서라도 배 이상으로 갚아 줬을 텐데 말이야.”
아르치발도의 말에 수하는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해도 잃을 것이 없다.
이런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결정적으로 시날로 길드는 이미 이모탈 길드에게 미운털이 박힌 상태다.
최현성 플레이어와 이모탈 길드에 잘 보인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것이다.
멕시코에 자리를 잡은 시날로 길드는 과거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자신의 길드를 이모탈 길드의 멕시코 지부로 만들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무참히 거절당했다.
그 이후 설립된 전 세계 이모탈 길드 지부 설립에서도 멕시코 길드들은 철저하게 배척당했다.
그 결과 멕시코 길드들은 전설 등급 아이템을 구경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하나 이는 실로 타당한 처사였다.
시날로 길드를 포함한 멕시코 거대 길드들은 말이 길드지 사실상 범죄 조직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기도 하지만 부수입으로 마석과 스킬북 밀수입은 물론 마약 판매와 인신매매까지 서슴지 않았다.
말이 길드지 사실상 법 위에 있는 범죄 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
애초에도 멕시코 범죄 조직들은 법을 우습게 알았다.
그런 그들에게 플레이어라는 날개가 달렸다.
현재 멕시코 정부는 거대 길드의 탈을 뒤집어쓴 범죄 조직에게 장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를 노리는 게 좋겠나?”
“최현성 플레이어의 아버지는 고레벨 플레이어라 성공할 확률이 낮습니다. 노린다면 어머니와 누나를 노려야 합니다.”
“으흠, 그렇단 말이지.”
납치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멕시코까지 데리고 오는 거였다.
“그놈 교육은 끝났나?”
“네, 언제든지 작전에 투입할 수 있을 만큼 길을 잘 들여 놓은 상태입니다.”
“좋아. 그럼 바로 처리해 버리자고.”
아르치발도가 작전 시작을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보스.”
보스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날 저녁 시날로 길드의 길드원들이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 * *
현성이 루시아와 함께 캐나다 던전에서 한창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쯤.
시날로 길드의 길드원들이 한국에 도착했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던전에서 사냥 중인 건가?”
“그럴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정보원의 제보로는, 이런 경우 짧게는 보름에서 길게는 몇 달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던전에서 투숙하며 사냥이라도 하는 건가?”
“그럴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군.”
던전은 전자기기를 통한 통신이 불가능하다.
납치 사건이 벌어져도 현성이 바로 움직이기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바로 움직인다.”
시날로 길드의 길드원들이 인원을 둘로 나눴다.
첫 번째 납치 대상은 현성의 어머니 박미숙이었고, 두 번째 납치 대상은 현성의 누나 최현지였다.
“경호가 꽤 철저한데?”
최현성 플레이어의 어머니 박미숙을 목표로 잡은 시날로 길드 서열 3위 페르텍토가 얼굴을 찌푸렸다.
“랭커 및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자칫 잘못했다가는 위험할 것 같습니다.”
“외출할 때를 노린다. 안드레스에게도 그렇게 전달하도록.”
“알겠습니다.”
안드레스는 시날로 길드 서열 5위로 현성의 누나인 최현지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박미숙에 비해 최현지는 꽤 손쉬운 상대였다.
하지만 시날로 길드의 길드원들은 최현지를 노리는 대신 때를 기다렸다.
기왕이면 두 사람을 동시에 납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복 이틀 만에 기회가 왔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모친인 박미숙 여사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직접 장도 보고 지인들도 만났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것 같습니다. 가사 도우미 허순자와 둘이서 집을 나섰습니다.”
“순식간에 경호원들을 제압한다.”
페르텍토의 말에 시날로 길드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에 동원된 시날로 길드원들의 레벨은 평균 300레벨 초중반이었다.
랭커에는 들지 못했지만 고레벨이라고 충분히 자부할 수 있는 수준의 실력자들이었다.
경호원들의 평균 레벨은 높아 봐야 200레벨 초중반.
시날로 길드원들에게 있어서는 순식간에 제압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일이 꽤 손쉽게 풀리는군.’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겹겹이 호위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도 예상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하긴 고레벨 플레이어의 몸값이 얼만데.’
“바로 움직인다. 안드레스에게도 전해.”
동시에 공격을 시작해 최현성 플레이어의 혈육인 박미숙과 최현지를 납치한다, 그 후 그놈을 통해 멕시코로 보낸다.
그럼 해피엔딩이다.
“가자!”
페르텍토의 명령과 함께 박미숙 납치 작전이 시작되었다.
시날로 길드원들은 꽤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첫 번째로 주변에 통신 교란 장치를 가동시켰다.
두 번째로 경호원 중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을 익힌 이가 있을 것을 대비해 마력 역장을 펼쳤다.
자신들의 습격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 목표가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을 통해 도주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을 사전에 방지한 것이다.
“죽음의 낙인!”
“파멸의 창!”
시날로 길드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막아!”
“적이다!”
경호원들이 경호 대상인 박미숙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만들고 재빨리 자신들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일부는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고 비상 호출기를 눌렀다.
“뭐야?”
“먹통이잖아.”
하지만 그중 하나도 제대로 작동되는 게 없었다.
콰직!
스킬에 적중당한 경호원 하나가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
“꺄아아악!”
박미숙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품에서 장거리 공간 이동용 스크롤 꺼내 찢었다.
하지만 마력 역장이 펼쳐진 상황에서 장거리 공간 이동용 스크롤이 작동할 리가 없었다.
“어서 빨리 정리해!”
페르텍토의 명령에 시날로 길드원들이 무자비하게 경호원들을 학살했다.
시날로 길드원들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보다 같은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게 더 익숙한 살인마들이었다.
순식간에 경호원들이 전멸했다.
남은 것은 두 눈을 꾹 감고 몸을 웅크린 박미숙과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중년의 가사 도우미 허순자뿐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끝났는데?”
페르텍토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저벅저벅.
피로 물든 무기를 들고 있는 시날로 길드원들이 박미숙을 향해 다가갔다.
“상처 하나 없이 소중히 잘 모셔라.”
페르텍토의 말에 부하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큭, 그렇게 하겠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벌벌 떨고 있는 중년 여성 하나 잡아 오는 일이다.
실수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이X은 완전히 정신 줄을 놨나 보네.”
시날로 길드원 중 하나가 무표정하게 박미숙 앞에 서 있는 중년 여성을 바라봤다.
펑퍼짐한 옷에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가사 도우미 허순자는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휘익!
시날로 길드원이 장검을 휘둘렀다.
일격에 목을 날려 버릴 생각이었다.
파강!
그 순간 허순자의 손과 장검이 부딪치며 금속음을 토해 냈다.
푸욱!
그와 함께 허순자가 내지른 손날이 너무도 손쉽게 시날로 길드원의 목을 꿰뚫어 버렸다.
“어?”
갑작스러운 동료의 죽음에 시날로 길드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툭!
죽은 시날로 길드원이 떨어트린 장검을 허순자가 발끝으로 툭 차올렸다.
그 후 너무나 자연스럽게 오른손으로 장검을 집어 들었다.
타악!
그와 함께 허순자가 장검을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시날로 길드원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아악!”
“막아!”
시날로 길드원들은 처절하게 저항했다.
한꺼번에 합공을 하기도 했고, 원거리에서 파괴력이 강력한 스킬을 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허순자는 평균 레벨이 300대 초중반에 달하는 시날로 길드원들을 일방적으로 쓸어버렸다.
탱커나 근거리 딜러는 장검을 휘둘러 죽여 버렸고, 원거리에서 스킬을 난사하던 시날로 길드원들은 노획한 무기를 투척해 숨통을 끊었다.
“이, 이게 무슨…….”
수하들이 금방 박미숙을 데리고 올 거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기다리던 페르텍토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시날로 길드원들은 사전에 철저한 조사를 마쳤다.
당연히 최현성의 집에서 일하는 가사 도우미 허순자에 대한 조사도 끝마친 상태였다.
무엇 하나 특별할 게 없는 조선족 출신의 평범한 일반인 중년 여성.
그게 전부였다.
“미친!”
한데 평범한 중년 여성이어야 할 허순자가 랭커 수준의 무용을 보여 주며 시날로 길드원들을 쥐 잡듯이 잡고 있었다.
더 이상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볼 때가 아니었다.
페르텍토가 자신의 무기를 움켜쥐고 접전에 합류했다.
페르텍토의 레벨은 389레벨.
랭커에 거의 근접한 레벨이었다.
파강!
페르텍토의 손에 들린 대검이 허순자의 손에 들린 장검과 충돌했다.
그 순간 허순자가 다른 한 손에 들린 창을 찔러 넣었다.
페르텍토가 재빨리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하려고 했다.
좌악!
하지만 허순자의 공격 속도가 너무 빨랐다.
허순자의 손에 들린 창날이 페르텍토의 어깻죽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말 랭커 수준이잖아.’
그것도 근접 계열 딜러 수준의 스피드였다.
파강! 파강!
페르텍토와 수하들이 사력을 다해 허순자를 공격했다.
하지만 허순자는 한 손엔 장검을 들고 한 손엔 창을 든 상태로 박미숙을 보호하며 치열한 접전을 이어 나갔다.
허순자는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머리와 심장을 향해 무기를 찔러 넣어도 무표정한 얼굴로 적들의 공격을 몸으로 받으며 반격했다.
“방어력이 탱커 수준이야!”
“아무리 탱커라도 급소를 맞고 멀쩡할 수는 없어. 저건 괴물이야!”
스킬 공격을 날려도 물리 공격을 날려도 허순자는 터프하게 맨몸으로 받아 내면서 전진했다.
수많은 공격에 적중당했지만 허순자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무표정하게 적들을 학살하는 허순자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 괴물 같은 년!”
페르텍토의 표정에 공포가 피어올랐다.
방금 전의 여유로운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페르텍토는 몰랐다.
전설 등급 골렘으로 400레벨의 고정 레벨을 가지고 있는 허순자가 현재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허순자의 목적은 마스터인 현성의 어머니 박미숙의 보호.
그렇기에 철저하게 박미숙을 중심으로 일정 반경 이상 벗어나지 않았다.
또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적들의 공격을 일부러 몸으로 받아 내며 박미숙을 보호하고 있었다.
허순자에게 그런 제약이 없었다면 페르텍토를 비롯한 시날로 길드원들은 이미 차가운 시체로 변해 바닥을 나뒹굴고 있을 것이다.
허순자가 가진 고정 레벨 400은 플레이어 기준이 아닌 몬스터 기준이다.
허순자는 영웅 등급 몬스터 최상급, 혹은 전설 등급 몬스터 최하급 수준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허순자에게 있어서 300레벨대 초중반으로 이루어진 시날로 길드원들은 너무도 손쉬운 상대였다.
결국 페르텍토를 위시한 시날로 길드원들은 목표물이었던 박미숙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최현지를 목표물로 삼았던 안드레스와 그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꽈아아앙!
전자 제품 매장에 쌓여 있던 제품들이 터져 나가며 피투성이로 변한 시날로 길드원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저 괴물 같은 년.”
안드레스와 그 수하들은 사장실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사장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오피스룩 차림의 젊은 여성 비서 하나를 뚫지 못해서였다.
허명자.
허순자와 마찬가지로 조선족 출신의 평범한 30대 여성이다.
그런 허명자가 맨손으로 시날로 길드원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무기를 든 시날로 길드원들이 무기 하나 없는 허명자를 어찌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해 버렸다.
무기를 든 뒤에는?
더 무섭게 날뛰며 시날로 길드원들을 쓸어버렸다.
허명자가 사장실 입구를 지키지 않고 매장 안으로 뛰어들었다면?
아마 안드레스와 그 수하들은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후, 후퇴한다!”
결국 안드레스가 퇴각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안드레스와 시날로 길드원들이 도주할 곳은 없었다.
최현지가 사장실에 준비된 유선 통신망을 통해 이모탈 길드에 습격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전자 제품 매장을 탈출한 안드레스와 시날로 길드원들을 반겨 준 것은 완벽하게 포위망을 갖춘 이모탈 길드 소속의 랭커들이었다.
“저놈들 모두 잡아! 저항이 심한 놈들은 죽여도 상관없다!”
평균 레벨이 400 초중반에 달하는 이모탈 길드 소속 랭커들의 합공이 시작되었다.
안드레스와 그 수하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거나 사로잡혔다.
물론 그건 박미숙을 노렸던 페르텍토와 그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 * *
‘이런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새끼들을 봤나.’
뒤늦게 소식을 들은 현성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중간에 팔찌의 색이 붉은색으로 변하기는 했다.
하지만 가끔 있는 일이기에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수준의 일이 터져 버렸다.
“어떤 놈들입니까?”
병원에 들러 어머니와 누나를 만난 후 곧바로 이모탈 길드로 달려온 현성이 물었다.
“시날로 길드원의 짓으로 밝혀졌습니다. 시날로 길드는 길드의 탈을 뒤집어쓴 멕시코 마피아 조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강선영 길드장이 재빨리 대답했다.
“멕시코의 시날로 길드라 이거죠?”
“아마 멕시코 정부와는 무관한 일일 겁니다.”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 이모탈 길드 지부를 만들 때 멕시코의 거대 길드라는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충분히 확인했다.
‘어떻게 하지? 중국처럼 변신 주문서를 사용해 쓸어버릴까?’
그게 가장 편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럼 지금과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
이번 일이 벌어진 건 현성이 중국 납치 사건을 대외적으로 유순하게 봉합했기 때문이다.
‘직접 가서 쓸어버려?’
그럼 뒷말이 나올 게 분명했다.
어디 그뿐일까?
현성에 대한 좋은 여론이 뒤집힐 가능성이 높았다.
“저, 최현성 자문위원장님?”
“예.”
“설마 멕시코로 직접 가실 생각은 아니시죠?”
“그럴까도 했는데요.”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이 10년은 폭삭 늙은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것만은 제발 참아 주십시오.”
범죄자라고 해도 적법한 절차 없이 사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시날로 길드는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근거지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현성이 직접 멕시코로 날아간다고 해도 시날로 길드를 일망타진하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시날로 길드를 찾아서 응징하는 과정에 민간인이라도 휘말려 버리면 골치가 아프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놈들 길드 감옥에 구금되어 있죠?”
이모탈 길드는 한국 플레이어 협회의 업무 대부분을 대신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플레이어를 체포하고 조사하는 권한도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
현성의 어머니와 누나를 습격했던 시날로 길드원들은 현재 이모탈 길드 감옥에 구금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경찰이나 플레이어 협회는 고레벨 플레이어 범죄자들을 관리할 능력 자체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이 울상이 된 표정으로 말했다.
강선영 길드장의 대답을 들은 현성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일단 제가 직접 그놈들을 봐야겠습니다.”
“제발 죽이지만 말아 주십시오.”
강선영 길드장이 애원 섞인 어조로 말했다.
“안 죽입니다.”
“고문도 안 됩니다!”
“고문하면서 괴롭힐 생각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이시죠? 그 말 믿고 있겠습니다!”
현성이 강선영 길드장의 외침을 뒤로하고 이모탈 길드 감옥으로 향했다.
‘걱정만 많으셔 가지고.’
왜 고문을 하겠는가?
고문 말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거기다 이놈들에게 편안한 죽음은 사치다.
평생을 차가운 감옥에서 보내게 하는 게 더 큰 처벌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현성이 감옥에 도착하자 근무를 서던 플레이어가 힘차게 경례를 붙였다.
현성의 휘하에 속해 있는 척살대원이었다.
“늦은 시간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오늘 잡혀 온 놈들을 좀 보러 왔습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척살대원의 안내를 받은 현성이 범죄자들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현성의 진짜 목적은 범죄자들을 보는 게 아니었다.
“이놈들의 소지품을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척살대원이 범죄자들의 소지품을 가지고 왔다.
현성은 소지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발동시켰다.
‘근거지를 수시로 바꾸는군.’
놈들은 길드의 탈을 뒤집어쓴 범죄 조직답게 수많은 비밀 거점을 만들어 놓았다.
조직의 보스인 아르치발도는 불규칙적으로 비밀 거점을 바꾸며 활동했다.
현재 아르치발도가 어디 있는지는 조직원들도 모르고 있었다.
‘꽤 긴 싸움이 되겠어.’
하지만 비밀 거점을 하나하나 족치다 보면 분명히 아르치발도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성은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통해 시날로 길드의 비밀 거점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 후 그 장소를 스마트폰 위치 어플을 통해 저장했다.
‘어라?’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사람은 조직원이 아니잖아.’
감옥에 갇혀 있기는 했지만 그 역시 피해자였다.
‘미국의 사라라는 플레이어와 같은 스킬이네.’
영웅 등급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
이놈들은 영웅 등급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을 가진 가브리엘라라는 플레이어를 이용해 현성의 어머니와 누나를 멕시코로 납치해 갈 계획이었다.
가브리엘라의 경우 끝없이 반복된 폭력과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 있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 범죄에 가담한 케이스였다.
‘나중에 따로 신경 좀 써 줘야겠네.’
평생 감옥에서 썩기에는 좀 억울한 면이 있었다.
가브리엘라의 소지품을 마지막으로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통한 정보 수집이 끝났다.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크나큰 영광입니다!”
현성의 말에 척살대원은 신의 칭찬을 들은 신도처럼 기뻐했다.
“그럼.”
현성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아르치발도와 시날로 길드를 어떻게 조져 버릴까 고민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냥 변신 주문서를 쓰고 쓸어버리는 거다.
하지만 그럼 현성이 그들을 처벌했다는 증거가 아예 남지 않는다.
이번 같은 일이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성이 직접 처벌을 했다는 심증은 남겨 두되 물리적인 증거는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감히 현성의 가족들을 건드리려는 시도를 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
그때 현성의 머릿속에 한 가지 방책이 떠올랐다.
‘이거라면 충분히 가능해.’
현성이 직접 보복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현성을 추궁하거나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완전범죄를 저지를 방법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