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권. 오크 로드와의 혈전 (87/225)
  • ┃오크 로드와의 혈전

    쿵! 쿵! 쿵!

    오크들이 발을 맞춰 진군을 시작했다.

    슈우우우웅!

    그런 오크들의 머리 위로 미사일 세례가 쏟아져 내렸다.

    건물의 파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물질적인 피해보다 오크들의 진군을 막는 게 더 중요했다.

    꽈아아아아앙!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며 커다란 화염 기둥이 치솟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크들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오크 주술사들이 펼친 광역 실드 때문이었다.

    군은 큰 효과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쉬지 않고 미사일과 포탄을 쏘아 보냈다.

    오크 주술사들의 마력을 소모시키기 위해서였다.

    ‘저기 몰려 있구나.’

    현성은 전설 등급 은신 스킬을 사용해 몸을 감추고 광역 실드를 펼치고 있는 오크 주술사들을 주시했다.

    ‘한 번으로 끝나면 좋겠는데.’

    현성은 단신으로 오크 주술사들을 기습할 계획이었다.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현성이 밀어붙였다.

    현성은 김하나의 버프를 풀로 받은 상태였다.

    당연히 스텟이 최대치로 증가했다.

    ‘이 정도면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것도 가능해.’

    기습이 제대로 먹힌다면 오크 주술사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설령 기습이 실패해 오크 주술사들을 일거에 쓸어버리지 못하더라도 놈들이 더 이상 광역 실드를 칠 수 없게만 해도 이득이었다.

    그 뒤부터는 군의 포격이 오크 무리를 쓸어버릴 테니까 말이다.

    현성이 마력을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오크 주술사들을 향해 접근했다.

    오크 주술사들이 뿜어내는 마력 탓에 공간 이동 스킬을 이용한 기습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은신 스킬을 쓰고 가까이 접근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현성이 숨소리조차 죽이고 오크들의 진군에 끼어들었다.

    ‘거의 다 왔어.’

    오크 주술사들과 현성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파직!

    그때 현성의 몸을 휘감고 있던 은신 스킬이 자동으로 캔슬되어 버렸다.

    타악!

    현성이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의 몸에서 피어오른 칠흑빛 뇌전과 화염이 앞으로 가로막고 있던 오크들을 쓸어버렸다.

    -꾸이이이익!

    오크 주술사들이 일제히 현성을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화르르륵!

    강대한 마력을 담은 화염들이 줄기줄기 현성을 향해 날아왔다.

    꽈아아아앙!

    꽈아아아앙!

    현성은 정면으로 화염을 받으며 진군했다.

    그 순간 천뢰신의 갑옷 스킬과 새롭게 태어난 마왕의 갑주가 가진 옵션이 빛을 발했다.

    꽈아아앙!

    오크 주술사들이 날린 공격의 일부가 되돌아간 것이다.

    ‘뚱아.’

    현성이 뚱이를 소환했다.

    파지지직!

    뚱이가 전력으로 칠흑빛 뇌전을 뿜어내며 오크 무리를 쓸어버렸다.

    콰직!

    용혈검을 뽑아 든 현성이 거침없이 오크 주술사들을 베어 넘겼다.

    화르르륵!

    오크 주술사들이 현성을 상대하기 위해 결국 광역 실드를 취소했다.

    꽈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오크 군단의 머리 위로 미사일과 폭격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끼이이이익!

    -꿰에에에엑!

    오크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희귀 등급 오크들은 한 줌의 육편이 되었고 영웅 등급 오크들도 적지 않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계속해서 피해가 누적되었다.

    -쿠워어어어어억!

    그때 커다란 포효와 함께 강대한 마력이 현성의 몸을 짓눌렀다.

    오크 로드가 등장한 것이다.

    휘이이익!

    오크 로드가 휘두른 도끼가 현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현성이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하려고 했다.

    꽈아아앙!

    하지만 도끼 끝자락에 살짝 걸리고 말았다.

    현성의 몸이 쭉 밀려 났다.

    -크륵?

    그런데 오크 로드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얼굴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제대로 걸렸구나.’

    10%의 확률로 적의 물리 공격과 스킬 공격을 튕겨 내는 마왕의 갑주 옵션이 운 좋게 발동한 것이다.

    “어디 한번 놀아 보자!”

    타악!

    현성이 힘찬 외침과 함께 워크라이를 시전하며 오크 로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워어어어억!

    오크 로드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포효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현성은 전처럼 내상을 입지는 않았다.

    준신화 등급으로 거듭난 마왕의 갑주와 업그레이드를 거친 천뢰신의 갑옷 스킬 덕분이었다.

    방어구와 스킬에 모두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 옵션이 달려 있는 만큼 현성이 받는 피해가 월등히 경감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내가 갑옷이 없었어!’

    하지만 지금 아니다.

    꽈앙! 꽈앙!

    용혈검과 도끼가 연속적으로 충돌하며 마력의 파편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꿰엑!

    -캬아악!

    괜히 근처에 있던 오크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하늘에서는 미사일과 포탄이 비처럼 떨어졌다.

    중앙에서는 현성과 오크 로드가 맞붙으며 마력의 파편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오와 열을 맞춰 진군하던 오크들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살아남은 오크 주술사들이 광역 실드 복구를 서두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현성이 아니었다.

    ‘가라, 뚱아.’

    현성이 뚱이를 보내 오크 주술사들을 공격했다.

    광역 실드를 펼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꽈아아아앙!

    오크 로드의 도끼와 용혈검이 정면으로 충돌했고 현성이 뒤로 쭉 밀려 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조건 이놈을 잡아야 해.’

    다른 오크들을 다 전멸시켜도 이놈 하나를 쓰러트리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멸망할 판이었다.

    ‘질릴 때까지 싸워 보자.’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을 전력으로 사용하며 오크 로드와 어우러졌다.

    최대한 장기전을 치를 생각이었다.

    자신이 가진 장점이 가장 극대화될 수 있도록 말이다.

    ‘도시락은 많아.’

    오크 군단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체력과 마력이 완전히 바닥날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았다.

    현성이 단독으로 오크 로드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그 시각.

    플레이어들도 반격에 들어갔다.

    “전원 공격!”

    신윤아의 외침과 함께 그녀가 가지고 있던 정신계 공격 스킬 여왕의 위엄이 발동했다.

    여왕의 위엄은 신윤아가 가지고 있는 성장형 정신계 공격 스킬이었다.

    피어를 먹잇감으로 삼아 전설 등급으로 성장한 여왕의 위엄은 오크들에게는 공포와 위압을, 아군에게는 드높은 사기를 선물해 주었다.

    “와아아아아!”

    플레이어들이 힘찬 함성과 함께 오크 무리 공격에 나섰다.

    신윤아는 랭커들과 함께 최전방에서 오크들을 상대했다.

    “체인 라이트닝!”

    “파워 슬래시!”

    “빛의 칼날!”

    “굳건한 장벽!”

    플레이어들이 스킬을 사용하며 오크들과 충돌했다.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 준 것은 역시 랭커들이었다.

    랭커들은 파티를 이뤄 아군의 취약점을 보완하며 튼튼한 장벽을 만들었다.

    화르르르륵!

    강선영 길드장은 오래간만에 랭커로서의 본모습을 보여 주며 강력한 원거리 스킬을 난사해 오크들을 쓸어버렸다.

    화아아악!

    신윤아의 경우 전신이 환한 빛에 휩싸여 진정한 딜탱의 모습을 보여 주며 최전선에서 오크 무리를 막아 냈다.

    백우신과 최형규 역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백우신과 최형규는 절대 뚫리지 않는 굳건한 방패가 되어 아군 플레이어들을 수호했다.

    백우신은 몸으로 아군을 보호했고, 최형규는 광역 실드로 아군을 보호했다.

    현성의 휘하에 들어왔던 병아리들 역시 어느 정도 자기 몫을 소화하며 전투의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쉽게 승기를 잡지 못했다.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오크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어 왔다.

    플레이어들은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이 전선을 사수하고 있는 것은 군대의 도움 덕분이었다.

    강력한 포격이 뒷받침을 해 주니 플레이어들이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다.

    인간과 오크들의 전쟁이 점점 장기전으로 변했다.

    지루한 소모전이 시작된 것이다.

    * * *

    -크워어어억!

    오크 로드 자락쿠트가 분노에 찬 포효를 토해 냈다.

    자신의 동족들이 죽어 가고 있다.

    인간들을 사냥해야 할 동족들이 오히려 인간들에게 사냥당하고 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어서 빨리 동족들을 도우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쥐새끼가 자꾸만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단번에 찢어 죽이고 싶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오히려 패시브 스킬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당했을 정도로 강력했다.

    오크 로드 자락쿠트 가진 유일 등급의 패시브 스킬.

    군신의 분노.

    휘하에 속한 아군이 피해를 당하면 당할수록 모든 스텟이 증가하는 패시브 스킬.

    군신의 분노가 가진 스킬 효과로 오크 로드 자락쿠트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락쿠트는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오크들이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꾸어어어어억!

    오크 로드 자락쿠트가 분노 어린 포효를 터트리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 힘차게 도끼를 휘둘렀다.

    꽈아아앙!

    오크 로드가 들고 있던 도끼와 현성의 손에 들린 용혈검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거친 파공음이 터져 나오며 현성의 팔근육이 뒤틀렸다.

    ‘힘은 무식할 정도로 강하네.’

    현성이 이를 악물었다.

    불사의 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놈은 마력이 얼마나 되는 거야?’

    단순한 탐색전도 아니고 전력을 다해 꽤 오랜 시간을 치고받았다.

    이 정도 싸웠으면 몸을 보호하고 있는 붉은빛 오라가 수그러들 만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오크 로드는 아직도 쌩쌩했다.

    체력도 멀쩡한 듯 보였다.

    현성이야 뚱이와 화염의 서를 통해 어느 정도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고 있다지만 오크 로드는 그것도 아니었다.

    -크와아아아악!

    오크 로드가 포효를 터트리며 다시금 맹공을 퍼부었다.

    현성은 차분히 수비를 하며 전황을 살폈다.

    ‘전체적으로는 괜찮아.’

    오히려 좋았다.

    이렇게 버티다가 타국 랭커들의 지원이 오면 충분히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

    꽈앙! 꽈앙!

    하지만 문제는 오크 로드였다.

    ‘이 자식은 왜 점점 더 강해지는 거야?’

    이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처음에는 오크 로드와의 접전이 나름 할 만했다.

    한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오크 로드의 체력과 마력이 멀쩡한 것을 넘어서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장기전을 벌이는 게 무조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상대도 장기전에 나름 일가견이 있었다.

    ‘내가 버티기 힘들겠어.’

    점점 몸에 가해지는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콰아앙!

    -크웍!

    공격을 가하던 오크 로드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거렸다.

    공격이 튕겨 나간 것이다.

    그나마 10%의 공격을 되돌려주고 열 번 중 한 번의 공격을 튕겨 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오크 로드의 공격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오크 로드가 받는 타격도 커지니까 말이다.

    ‘도대체 무슨 스킬이지?’

    아무런 대가도 없이 강해지는 스킬은 없다.

    오크 로드가 왜 점점 강해지는지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망할, 알면 뭐가 달라지나?’

    오크 로드가 어떤 스킬을 쓰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번 제대로 붙어 보자.’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했다.

    체력과 마력이 뭉텅이로 깎여 나갔다.

    오크 로드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붉은빛 오라 때문에 별다른 효과가 없었지만 현성은 계속해서 공격을 쏟아부었다.

    얼마나 체력과 마력을 낭비했을까?

    드디어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광폭화 - 전설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힘, 민첩, 마력, 정신력 스텟이 40% 증가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50% 감소했습니다.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신의 갑옷 - 준신화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3배 상승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광폭화 스킬과 천뢰신의 갑옷 효과가 발동했다.

    ‘어디 이번에도 막을 수 있나 보자.’

    현성이 힘차게 용혈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앙!

    거칠게 현성을 몰아붙이던 오크 로드가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 났다.

    ‘지금부터는 방금 전이랑 많이 다를 거다.’

    그동안 당했던 것들을 모조리 되갚아 줄 생각이었다.

    꽈앙! 꽈앙! 꽈앙!

    현성이 거칠게 오크 로드를 밀어붙였다.

    오크 로드의 스텟은 방금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반면 현성은 힘, 민첩, 마력, 정신력 스텟이 일제히 증가했다.

    거기에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까지 올라갔으니 전체적인 스펙 자체가 올라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좌악!

    그 덕분인지 현성이 휘두른 용혈검이 오크 로드의 몸을 뒤덮고 있는 붉은빛 오라를 꿰뚫고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유효타가 들어간 것이다.

    현성의 일방적인 공세에 오크 로드가 금방 수세에 몰렸다.

    오크 로드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겨났다.

    가죽이 갈라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으며 새하얀 뼈가 드러날 정도의 부상도 있었다.

    하지만 현성은 여유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숨통을 끊어야 해. 이 자식도 분명히 광폭화가 있을 거야.’

    오크 대족장도 사용하던 스킬인데 더 상위 종인 놈에게 없을 리가 없다.

    일격필살.

    광폭화를 쓸 틈도 없이 일격에 놈의 숨통을 끊어야 했다.

    현성은 머리와 심장 같은 급소만을 노리고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오크 로드는 쉽게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신장을 이용해 머리와 심장만은 철저하게 보호했다.

    사아아악!

    설상가상으로 오크 로드는 회복력도 좋았다.

    불사의 서처럼 순식간에 완치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뼈가 드러날 정도의 큰 상처가 서서히 아물 정도는 되었다.

    -패시브 스킬 불사의 서 - 유일 준신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망할.’

    오크 로드의 피를 흡수한 불사의 서가 성장했다는 메시지를 토해 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좀 죽어라.’

    현성이 더 강하게 오크 로드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현성의 스텟이 오크 로드를 앞선다고 해도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었기에 점점 더 시간이 끌렸다.

    현성은 점점 초조해졌다.

    ‘어째 이러다 난리 날 것 같은데.’

    이런 불길한 예감은 이상하게 빗나가는 일이 없었다.

    -크워어어억!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든 오크 로드가 힘찬 포효를 터트렸다.

    그와 함께 전신에서 핏빛 오라가 피어올랐다.

    방금 전까지 뿜어내던 붉은빛 오라는 방어적인 성향의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

    반면 지금 뿜어내는 핏빛 오라는 엄청나게 공격적인 마력의 향기가 물씬 풍겨져 나왔다.

    꽈아아아앙!

    용혈검과 도끼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우득!

    충돌한 순간 뼈에 금이 가고 근육이 뒤틀렸다.

    꽈앙! 꽈앙! 꽈앙!

    오크 로드의 연속적인 공세에 현성의 몸에 쭉쭉 뒤로 밀려 났다.

    ‘빌어먹을.’

    광폭화만 걸린 게 아니다.

    오크 로드의 전투력이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상승했다.

    광폭화를 포함한 여러 가지 자체 버프 스킬이 중복적으로 적용된 듯했다.

    ‘뭐, 이렇게 강한 거야?’

    현성도 스킬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많다.

    영웅 등급 스킬도 많았고, 전설 등급 스킬도 많았다.

    심지어 준신화 등급 스킬도 무려 4개나 있다.

    그런데 스킬빨 싸움에서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세와 수세가 바뀌었다.

    현성은 겨우겨우 악착같이 버텼다.

    꽈앙! 꽈앙! 꽈앙!

    하지만 오크 로드의 맹렬한 공격에 점점 내상이 누적되어 갔다.

    불사의 서로 신체가 회복되기 무섭게 부상을 입었다.

    지속적으로 체력이 빠져나가며 점점 힘이 빠졌다.

    화염의 서와 뚱이가 보충하는 체력과 마력보다 소모되는 마력과 체력이 더 많았다.

    꽈아아아앙!

    힘겹게 버티던 현성을 향해 오크 로드가 마력을 끌어올려 강타 계열의 공격 스킬을 날렸다.

    용혈검으로 가까스로 막아 냈다.

    하지만 그 결과 현성의 몸이 야구 배트에 맞은 야구공처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크워어어억!

    그 기회를 놓칠 오크 로드가 아니었다.

    쿵! 쿵! 쿵!

    거대한 신체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으로 순식간에 현성에게 다가온 오크 로드가 힘차게 도끼를 내리찍었다.

    현성은 중국에서의 그날 이후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오랜 시간 동안 봉인되어 있던 패시브 스킬들이 일제히 발동했다.

    -패시브 스킬 생존 본능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살인자의 광분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피의 미치광이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살육의 광기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후략……

    꽈아앙!

    현성의 몸을 두 조각으로 갈라 버릴 것 같은 기세로 날아오던 오크 로드의 도끼가 역으로 튕겨져 나갔다.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든 현성의 몸에서 광폭한 마력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파지지직!

    칠흑빛 뇌전에 휩싸인 현성이 오크 로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아아아앙!

    천지가 뒤흔들리는 것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현성이 오크 로드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현성의 맹공으로 인해 생겨난 충격파가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쿠구구궁!

    그 여파로 건물들이 연속적으로 무너졌으며…….

    -꿰에에엑!

    근처에 있던 오크들이 떼로 몰살을 당했다.

    이성이 날아간 현성은 그런 상황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오크 로드 역시 자신의 목숨이 간당간당했기에 휘하 오크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오크들이 죽어 나간 건 현성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는 소식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오크들이 죽어 감에 따라 군신의 분노 스킬이 발동해 오크 로드의 스텟이 지속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꽈앙! 꽈앙! 꽈앙!

    현성에게 정신없이 밀리던 오크 로드가 더 이상 뒤로 밀리지 않았다.

    일정 숫자 이상의 휘하 오크들이 죽어 군신의 분노 스킬이 100%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오크 로드가 현성과 대등하게 맞서기 시작했다.

    -쿠워어어어억!

    “으아아아아아!”

    오크 로드가 마력이 가득 실린 포효를 토해 냈다.

    현성도 지지 않고 커다란 함성을 터트렸다.

    현성과 오크 로드가 한 발도 물러나지 않고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리고 그 주변이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퍼퍼퍼펑!

    포들이 연속적으로 불을 뿜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오며 한 무리의 오크들이 쓸려 나갔다.

    하지만 죽은 놈은 거의 없었다.

    계속되는 한국군의 포격에 희귀 등급 오크들은 전멸한 지 오래였다.

    살아남은 놈들은 모두 영웅 등급 오크였기에 포격으로 인한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다.

    “막아!”

    “절대 뚫리면 안 돼!”

    “파이어 스톰!”

    플레이어들이 사력을 다해 오크들을 막았다.

    플레이어와 한국군은 치열한 혈전을 벌이며 오크 대군의 진군을 막았다.

    하지만 그냥 버티는 게 한계였다.

    현성과 오크 로드의 접전에 대한 정보가 계속 들어오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 현성을 도와줄 만한 여력이 없었다.

    오크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현성 같은 규격 외의 강자가 아니라면 오크들이 바글거리는 적진의 중심으로 들어가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현재 플레이어와 한국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버티며 타국 플레이어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한데 그런 그들에게 커다란 재앙이 들이닥쳤다.

    -쿠워어어어억!

    오크 로드의 포효에 플레이어들이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일반인으로 이루어진 군인들은 피해가 더 심했다.

    오크들이 신이 나서 플레이어들을 밀어붙였다.

    “으아아아아아!”

    그때 현성의 워크라이가 터져 나왔다.

    오크들의 몸이 돌처럼 굳어졌고 군인과 플레이어들의 사기가 치솟았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공격을 가하던 오크들과 수비를 하던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몸을 움찔거리며 마력의 파동이 터져 나온 근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꽈앙! 꽈앙! 꽈앙!

    오크와 플레이어 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규격 외의 괴물 두 마리가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저, 저게 인간이야?”

    “몬스터보다 더하잖아.”

    현성이 뿜어내는 마력의 파동은 마력 스텟을 주력으로 찍은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들이 기겁할 정도로 강력했다.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도대체 민첩 스텟이 얼마나 되는 거야?”

    “저 힘은 어떻고? 단순한 충격파에 건물이 무너지고 오크들이 쓸려 나가잖아.”

    근접 딜러와 탱커 들 역시 현성과 오크 로드의 접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들이 저 접전에 끼어들었다가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수준이 달라.’

    ‘최현성 플레이어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랭커들의 심정 역시 일반 플레이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랭커들이었기에 현성의 강함에 더 크게 놀랐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더 높은 수준에 올라 있었기에 현성과 오크 로드의 강함을 더욱 절실하게 실감했다.

    천외천.

    스스로를 최고라고 자부했던 랭커들이었기에 더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그 시각.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랭커들이 한국에 도착하는 즉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두두두두두!

    러시아와 일본의 랭커들이 한국군과 미군이 제공해 준 수송기를 타고 사건 현장으로 이동했다.

    지리상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가장 먼저 도착했고,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뭐지?”

    “엄청난 마력 파동이다!”

    수송기를 타고 전투 현장 근처에 도착한 러시아와 일본의 랭커들은 점점 강해지는 파괴적인 마력의 흐름에 화들짝 놀랐다.

    “도대체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우리가 저런 괴물들을 상대해야 하는 건가?”

    러시아와 일본의 랭커들은 괜히 한국에 온 게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랭커도 사람이다.

    당연히 자기 목숨 아까운 줄은 알았다.

    승산이 있는 전투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승산 없는 전투에 뛰어들어 개죽음을 당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지금이라도 기수를 돌려야 하나?’

    ‘이건 자살행위야. 한국을 버려야 한다고.’

    러시아와 일본의 랭커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불안해했다.

    “최현성 플레이어다!”

    그때 일본의 궁수 플레이어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러시아와 일본의 랭커들이 일제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장과의 거리가 멀어 아직은 정확한 전황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거리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전투의 윤곽이 드러났다.

    거인처럼 보이는 장신의 오크와 플레이어 하나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강대한 마력의 주인 중 하나가 아군이라는 사실에 러시아와 일본의 플레이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 날 뻔했구나.’

    상황 파악을 잘못해서 수송기를 돌리라는 말이라도 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표트르 대통령께서 옳은 결정을 하셨다.’

    최현성이 있는 한국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기를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러시아가 가장 먼저 지원 요청에 응하고 지원군을 보냈으니,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가산점(?)을 받았을 확률이 높았다.

    “역시 뇌신이시다!”

    “뇌신께서는 무적이시다!”

    일본의 랭커들은 현성의 활약에 광신도처럼 열광했다.

    일본에 유행처럼 번지던 최현성의 신격화가 랭커들에게도 뿌리를 내린 결과였다.

    물론 최현성 신격화가 랭커들에게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이누쿠소의 꾸준한 노력과 관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자!”

    “신을 도우러 가자!”

    사기충천한 일본 랭커들이 수송기에서 뛰어내려 전장에 합류했다.

    “우리도 간다.”

    러시아 랭커들 역시 일본 랭커들의 뒤를 이어 전장에 합류했다.

    러시아와 일본의 뒤를 이어 미국과 유럽연합을 포함한 지원군들이 속속 전장에 합류했다.

    그들 역시 처음에는 경악했고 그 후에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한국을 지원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전장에 도착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싸웠다.

    늦게 지원군을 보냈다는 현성의 질책을 피하고, 한국을 도왔다는 생색을 최대한 많이 내기 위해서였다.

    타국의 랭커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싸워 주니 점점 전장의 상황이 한국 측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반대로 오크들은 점점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 * *

    꽈앙! 꽈앙!

    현성과 오크 로드가 미친 듯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현성은 중첩되어 발동한 패시브 스킬 탓에 이성을 잃었다.

    이성을 잃은 것은 오크 로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몬스터 특유의 흉성이 폭발한 오크 로드는 눈앞의 적을 찢어 죽이기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들었다.

    현성과 오크 로드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 갔다.

    차이가 있다면 현성의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는 데 비해 오크 로드의 상처는 조금 더디게 회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겉으로 볼 때는 현성이 조금 유리해 보였지만 사실 큰 차이는 없었다.

    광전사로 변한 이 둘의 승부에서 작은 상처 몇 개 정도는 승패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사지 중 하나를 날려 버릴 정도는 되어야 승부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상대의 숨통을 끊어 버리거나 말이다.

    플레이어와 오크 들은 현성과 오크 로드를 돕고 싶었다.

    그렇지만 서로 전투를 벌이느라 이 전투에 끼어들고 싶어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이 전투에 끼어들 수 있는 존재가 등장했다.

    -냐앙!

    바로 현성이 소환해 놓은 뚱이였다.

    뚱이는 현성의 지시에 따라 오크 주술사들을 집중 공격한 뒤 주변에 있는 다른 오크들을 공격했다.

    그런 뚱이의 활약 덕분에 현성은 지속적으로 체력과 마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뚱이는 치열하게 싸웠고, 결국 오크 주술사들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현성이 명령한 대로 전리품도 착실하게 모아 놨다.

    그런데 다음 지시를 내려 줘야 하는 계약자 현성이 완전히 정신 줄을 놔 버렸다.

    지능이 낮은 하급 소환수였다면 별다른 생각 없이 계속 오크들을 공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뚱이는 정령술로 탄생한 정령이었고, 지능도 상당히 높았다.

    -냐앙.

    뚱이가 계약자인 현성을 한심하단 눈초리로 바라보고는 전투준비를 갖췄다.

    뚱이는 지금 엄청나게 강해진 상태였다.

    광폭화를 포함한 온갖 종류의 버프는 현성의 스텟을 증가시키고 물리 공격력과 스킬 공격력을 올려 주었다.

    뚱이는 현성의 스킬 중 하나였고, 당연히 스텟과 스킬 공격력 증가 효과를 온전히 전달받았다.

    그 결과 뚱이는 엄청나게 파워 업이 된 상태였다.

    얼마나 강해졌냐 하면 전설 등급 몬스터가 포함되어 있던 오크 주술사 무리를 홀로 전멸시킬 정도였다.

    -냐앙!

    뚱이가 힘찬 포효와 함께 현성과 오크 로드의 접전에 끼어들었다.

    정신줄을 놓고 짐승처럼 싸우고 있는 계약자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칠흑빛 뇌전을 가득 품은 뚱이의 앞발이 오크 로드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꽈아아앙!

    강력한 충격파와 함께 오크 로드의 머리가 획하고 돌아갔다.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던 상황이었다.

    본능으로만 움직이고 있던 현성이 그 빈틈을 놓칠 리가 만무했다.

    좌악!

    용혈검이 오크 로드의 어깨를 꽤 깊숙이 베고 지나갔다.

    -크워어어억!

    오크 로드가 포효를 터트리며 자신을 공격한 뚱이를 찾아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현성이 맹공을 퍼붓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기가 쉽지가 않았다.

    사실 생명체였다면 이 둘이 충돌하며 내뿜는 마력의 파편을 뚫고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접근했다고 해도 웬만한 실력자가 아닌 이상 공격 한두 번 날리고 마력의 파편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뚱이는 정령이자 스킬이다.

    계약자인 현성이 마력만 계속 공급해 준다면 사실상 불사의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뚱이는 현성의 마력을 쭉쭉 빨아먹으며 여유롭게 이 둘의 접전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꽈아아앙!

    뚱이가 엄청나게 강해진 몸뚱이를 기반으로 연속해서 냥냥 펀치를 날렸다.

    -크워어어억!

    오크 로드가 열심히 발악을 했지만…….

    -냐앙!

    꽈앙! 꽈앙! 꽈앙!

    마력 덩어리이자 흑뢰룡의 숨결로 이루어져 있는 뇌전의 정령인 뚱이의 몸은 흉기 그 자체였다.

    순식간에 승부의 추가 기울어 버렸다.

    뚱이가 전투에 합류하며 많은 마력을 빼앗아 가는 바람에 현성의 마력도 간당간당했다.

    체력도 종잇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받은 피해의 일부를 흡수해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는 천뢰신의 갑옷 옵션 덕에 어찌어찌 버티고 있었다.

    거기다 오크 로드 몸에 생긴 상처를 통해 회복하는 체력과 마력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반면 오크 로드는 체력과 마력을 지속적으로 쭉쭉 빨리는 것도 모자라 현성을 공격하면 자신도 피해를 받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냐앙!

    꽈아아앙!

    뚱이의 냥냥 펀치가 오크 로드의 발목을 후려쳤다.

    순간적으로 무게중심이 흐트러진 오크 로드가 몸을 비틀거렸다.

    푸욱!

    그 순간 현성의 용혈검이 오크 로드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크워어어억!

    오크 로드가 도끼를 휘두르며 반격하려 했지만…….

    좌아아악!

    현성은 그대로 용혈검을 내리그으며 가볍게 몸을 피했다.

    가슴부터 배까지 내려오는 긴 검상을 따라 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우워어어억!

    오크 로드가 부상을 입은 상태 그대로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피를 흘린 탓인지 속도가 전과 같지 않았다.

    서걱!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러 자신에게 달려들던 오크 로드의 목을 베어 냈다.

    툭!

    오크 로드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고…….

    쿠우우웅!

    뒤이어 오크 로드 육중한 몸이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와아아아악!”

    현성이 힘차게 승리의 외침을 터트렸다.

    그리고 곧바로 주변에 있던 오크들을 향해 달려들어 용혈검을 휘둘렀다.

    -냐앙.

    뚱이가 정신 줄을 놓은 현성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오크 로드의 잔존 마력이 뭉쳐 생성된 아이템들을 회수해 현성의 뒤를 따랐다.

    * * *

    현성과 오크 로드의 접전은 수많은 군사 장비들에 의해 촬영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둘의 접전을 지켜봤다.

    그렇기에 현성이 오크 로드의 목을 날려 버리는 순간…….

    “와아아아아!”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 쓸어버려!”

    “우리가 이겼다!”

    사기가 충천한 플레이어들이 오크들을 밀어붙였다.

    반면 오크들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오크들은 계속해서 인간들과 싸워야 하는지 아니면 이대로 후퇴해야 하는지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오크들을 이끌어 줘야 할 오크 로드와 오크 대족장 그리고 오크 주술사 같은 지휘관들이 모두 전사했기 때문이다.

    -꾸웨에엑!

    -쿠룩!

    오크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온 랭커들이 도착한 순간부터 이미 승기는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크 로드마저 쓰러져 버렸다.

    오크 로드를 쓰러트린 현성은 후방에서 닥치는 대로 오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전후좌우 할 것 없이 사방이 포위된 상황에서 오크들은 후퇴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꽈아아아앙!

    군대의 원거리 포격이 끝도 없이 쏟아지고 근거리에서는 플레이어들이 포위망을 좁히며 오크들을 밀어붙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도주하려고 해도 그곳에는 자신들의 군주마저 쓰러트린 괴물이 날뛰고 있다.

    오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쿠에에엑!

    “밀어붙여!”

    “단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

    오크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수만에 이르던 오크들의 숫자가 수천으로 줄어들었고, 그 수천은 순식간에 수백으로 줄어들었다.

    푸욱!

    -꾸이이익!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오크의 숨통이 끊어졌다.

    “와아아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만세!”

    플레이어들이 승리의 함성을 터트렸다.

    몬스터와 전쟁에서 또다시 인간들이 승리한 것이다.

    ‘시끄러워.’

    현성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함성에 얼굴을 찌푸렸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왔다.

    귀를 찌르는 함성과 힘찬 마력의 흐름이 거슬렸다.

    ‘다 쓸어버릴까?’

    눈앞에 있는 존재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패시브 스킬 굴하지 않는 정신이 발동합니다.

    -패시브 스킬 꺾이지 않는 신념이 발동합니다.

    -패시브 스킬 불타는 투지가 발동합니다.

    ……후략……

    적이 아닌 아군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 순간 현성이 그간 익혀 놓았던 정신계 공격 저항 스킬들이 일제히 발동했다.

    현성의 정신을 잠식해 적아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살의를 정신계 공격으로 판단한 것이다.

    정신계 공격 저항 스킬들과 높은 정신력 스텟이 어우러져 현성은 가까스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었다.

    ‘한숨 푹 자고 싶다.’

    살육에 대한 욕망이 수그러들자 그간의 전투로 누적된 피로가 몰려왔다.

    체력과 마력이 모두 바닥을 드러냈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많이 지쳐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신윤아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신윤아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놓였다.

    ‘괜찮겠지.’

    이대로 정신을 잃어도 뒷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현성은 그대로 두 눈을 감았다.

    수마에 빠져든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현성 씨!”

    화들짝 놀란 신윤아가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현성을 안아 들었다.

    “현성 씨, 괜찮으세요?”

    신윤아가 현성에게 물었다.

    하지만 현성은 아무런 말도 없이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

    “힐러랑 의사 좀 불러오세요!”

    신윤아의 외침에 미국 랭커 중 하나가 재빨리 달려왔다.

    “그레이트 힐!”

    미국 랭커가 힐을 퍼부으며 현성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단순히 잠이 든 것뿐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요?”

    신윤아의 물음에 힐러로 보이는 미국 랭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하기 전에 제 직업이 의사였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병원으로 모신 후에 정밀 검사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좋겠네요.”

    신윤아가 현성을 품에 꼭 껴안은 상태로 몸을 날렸다.

    -냐앙.

    그 모습을 한심하단 표정으로 지켜보던 뚱이 한숨을 푹 쉬고는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아이템을 몸속에 잔뜩 집어넣어 한층 더 비대해진 뚱이의 모습에 몇몇 플레이어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뚱이를 제지하거나 공격하려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오히려 뚱이가 자신 근처로 다가오면 화들짝 놀라 서둘러 몸을 피했다.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는 냥냥 펀치로 오크 로드를 두들겨 패던 뚱이의 모습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 * *

    신윤아는 현성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현성이 병원에 도착하자 소식을 들은 최고의 의사들이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의사들은 온갖 최첨단 기기를 동원해 정밀 검사를 시작했다.

    신윤아는 초조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반면 뚱이는 ‘편하게 잘 자는 사람을 왜 저렇게 괴롭히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의사들을 바라봤다.

    그나마 계약자인 현성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얌전히 있었다.

    사실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신윤아와 뚱이의 모습에 신경이 바짝 곤두선 상태였다.

    신윤아는 전신에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윤기나는 검은색 머리카락은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몸에는 반쯤 굳은 피와 살점이 눌어붙어 있었다.

    그런 신윤아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일반인인 의사들 입장에서는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뚱이는 한술 더 떴다.

    그저 통통한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던 뚱이의 몸은 지금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상태였다.

    몸속에 현성이 사냥한 전리품들을 모두 넣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대해지면서 뚱이의 몸이 약간 반투명하게 변했다는 점이다.

    현성의 마력이 충분했다면 아예 덩치를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현성의 마력이 간당간당했다.

    뚱이 입장에서는 계약자의 사정을 고려해 마력을 최소로 소모하는 형태를 취했다.

    그 결과 뚱이의 현재 모습은 뭔지 모를 무언가를 몸속에 잔뜩 넣고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고스트 계열의 몬스터처럼 보였다.

    피를 뒤집어쓴 광녀와 고양이 요괴가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피가 마르고 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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