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권. 오크 로드 (86/225)
  • ┃오크 로드

    -쿠워어어어억!

    강력한 마력이 담긴 포효가 현성을 강타했다.

    “커억!”

    한창 오크 대족장과 혈투를 벌이고 있던 현성의 입에서 한 움큼의 붉은 핏물이 터져 나왔다.

    포효에 담긴 마력에 내상을 입은 것이다.

    휘익!

    현성이 내상을 입은 틈을 놓치지 않고 오크 대족장이 도끼를 휘둘렀다.

    가까스로 몸을 비틀었다.

    콰직!

    하지만 도끼가 현성의 상체를 스치고 지나갔다.

    영웅 등급 갑옷은 약간의 시간을 벌어 준 뒤 종잇장처럼 찢어져 버렸다.

    그 결과 현성은 가슴부터 배까지 이어지는 큼지막한 상처를 입어 버렸다.

    -크아아앙!

    상처가 회복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오크 대족장이 맹수처럼 포효를 터트리며 현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미친.’

    방금 전보다 더 빨라졌다.

    그뿐 아니라 힘도 더 강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강했던 오크 대족장의 전투력이 더 올라간 것이다.

    ‘설마 버프 기능까지 있는 거냐?’

    적에게는 내상을 입히고 아군에게는 버프를 걸어 주다니?

    이건 워크라이를 능가하는 사기 스킬이었다.

    ‘망할.’

    현성의 몸에만 점점 상처가 늘어났다.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는 속도보다 소모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강력한 마력이 실린 포효 한 방에 갑자기 전황이 뒤집혔다.

    내상을 입은 것은 현성만이 아니었다.

    진형을 이루고 오크들을 밀어붙이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정신력 스텟이 높은 탱커와 힐러 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하지만 정신력 스텟이 낮은 근딜과 원딜 들은 당장 회복하기 힘든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현성이 내상을 입을 정도의 충격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놈만 잡고 간다.’

    현성이 독기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오크 대족장을 바라봤다.

    오크 대족장은 거의 일방적으로 현성을 몰아붙였다.

    현성은 차분하게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광폭화 - 전설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힘, 민첩, 마력, 정신력 스텟이 40% 증가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50% 감소했습니다.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왕의 갑옷 - 준신화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3배 상승합니다.

    광폭화와 천뢰왕의 갑옷의 패시브 효과가 일제히 발동했다.

    꽈아아앙!

    용혈검이 오크 대족장의 도끼를 한 방에 날려 버렸다.

    갑자기 증폭된 현성의 힘과 속도에 놀란 오크 대족장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너만 버프 있는 줄 아냐? 나도 있어.’

    꽈앙! 꽈앙! 꽈앙!

    현성의 연속적이 공격에 오크 대족장의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오크 대족장도 광폭화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광폭화 스킬을 발동한 현성과 오크 대족장이 서로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건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는 싸움이었다.

    현성은 광폭화 스킬의 단점을 천뢰왕의 갑옷 스킬로 해결했다.

    아니, 체력이 떨어지는 비율만큼 저항력이 상승하는 천뢰왕의 갑옷 옵션 덕분에 현성의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은 오히려 체력이 많을 때보다 더 높아졌다.

    양쪽 다 체력이 간당간당하다.

    한쪽은 공격력만 올라가고 방어력은 내려갔다.

    그런데 다른 한쪽은 공격력과 방어력이 둘 다 올라갔다.

    당연히 공력력과 방어력이 둘 다 올라간 쪽이 유리하다.

    거기다 현성은 뚱이와 화염의 서를 통해 체력과 마력을 조금씩이나마 회복하고 있었다.

    천뢰왕의 갑옷 역시 받은 피해의 일부를 흡수해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는 옵션이 붙어 있다.

    좌악!

    용혈검이 오크 대족장의 오른팔을 베어 냈다.

    좌악!

    그 후에는 왼팔 차례였다.

    -쿠워어어억!

    양팔을 모두 잃은 오크 대족장이 처절한 비명을 토해 냈다.

    ‘이제 끝이다. 깔끔하게 보내 주마.’

    서걱!

    용혈검이 오크 대족장의 목을 날려 버렸다.

    쿵! 쿵! 쿵!

    땅이 진동했다.

    -쿠와아아아악!

    분노로 가득 찬 포효가 터져 나오며 다시 내부가 진탕되는 충격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었던 강력한 마력 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현성이 재빨리 오크 대족장을 쓰러트리고 얻은 전리품을 아공간에 쓸어 담았다.

    ‘블링크.’

    그 후 곧바로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을 사용해 일단 몸을 피했다.

    ‘저 괴물은 도대체 뭐야?’

    겨우 몸을 피한 현성이 강력한 마력의 근원을 주시했다.

    꽈아아앙!

    일반 오크들의 2배는 넘어 보이는 신장을 가진 거인 오크가 플레이어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크우어어어억!

    현성과 오크 대족장이 혈투를 벌였던 장소에 도착한 거인 오크가 다시 한번 포효를 터트렸다.

    “큭!”

    현성은 다시금 내부가 진탕되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저놈 짓이네.’

    거인 오크는 현성이 쓰러트린 3미터 크기의 오크 대족장이 어린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우람한 체격을 자랑했다.

    마치 오크가 아니라 오우거같이 보일 정도였다.

    ‘오크 로드라도 되는 건가?’

    파지지직!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광폭화 스킬의 버프 효과가 남아 있을 때 원거리에서 요격을 해 볼 생각이었다.

    ‘이거나 먹어라!’

    칠흑빛 뇌전의 창이 오크 로드를 향해 날아갔다.

    화아아아악!

    오크 로드의 몸이 붉은빛 오라로 휩싸였다.

    꽈아아아앙!

    칠흑빛 뇌전의 창이 붉은빛 오라와 충돌했다.

    쿵! 쿵! 쿵!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오크 로드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휘이이익!

    흙먼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오크 로드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미친.’

    전력을 다해 날린 일격이었다.

    그런데 오크 로드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남기지 못했다.

    마왕의 갑주 세트를 벗어 마력이 평소보다 떨어진 상태이기는 했다.

    하지만 광폭화 스킬의 버프가 있지 않은가.

    ‘레드 드래곤처럼 극단적인 형태의 방어형 몬스터인가? 그럼 물리 공격력은 강하지만 스킬 공격력이 약할 텐데.’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꽈아아아앙!

    하지만 오크 로드가 사용한 원거리 스킬 한 방에 플레이어 수십 명이 한꺼번에 쓸려 나갔다.

    ‘아니네.’

    물리 공격력은 물론 스킬 공격력 역시 엄청나게 강력했다.

    꽈앙! 꽈앙!

    오크 로드가 마력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강력한 위력을 가진 공격 스킬들을 난사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지반이 붕괴했다.

    ‘원거리 스킬 위력이 거의 오크 주술사 수준이잖아.’

    방어력도 높은 놈이 공격력까지 높았다.

    그것도 원딜 근딜 가리지 않고 다 해 먹는다.

    완전 개사기였다.

    -꿰에에에엑!

    오크들이 힘찬 포효를 터트렸다.

    왕이 오셨다.

    왕이 함께하는 군단의 진군은 무적이었다.

    사기충천한 오크들이 플레이어들과 군대를 밀어붙었다.

    성난 오크들의 공격에 플레이어와 군대는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 * *

    한국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오크 대군 때문이었다.

    세계 각국은 한국이 무난하게 오크 대군을 격퇴할 거라고 예상했다.

    한국은 이미 한차례 오크 무리의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낸 경험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한국에는 세계 최강의 플레이어 최현성이 있었다.

    플레이어 최현성은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혼자서 전설 등급 몬스터가 섞인 영웅 등급 몬스터 1만 마리를 몰살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 준 인물이다.

    그런 최현성이 한국에 있다.

    고작 오크들이 일으킨 몬스터 웨이브 하나 정리하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느긋하게 한국의 승전보를 기다렸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한국이 몬스터들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물러났다.

    한국 정부의 지원 요청이 UN을 통해 세계 각국에 전해졌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한국에서 온 지원 요청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거절하셔야 합니다. 최현성 플레이어도 어찌하지 못한 몬스터입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한국이 멸망하면 최현성 플레이어가 본국으로 귀화할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최현성 플레이어와 힘을 합쳐 오크들을 토벌하고 이번 기회에 돈독한 친분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본국의 랭커들이 대거 전사하기라도 하면 어쩔 생각이오?”

    “그럼 저 오크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오? 지금은 한국에 있지만 나중에는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모르오.”

    “설마 제 놈들이 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까지 오겠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고…….

    “…….”

    러시아 크렘린 궁에서는 합죽이가 된 관료들이 표트르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으며…….

    ‘설마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지는 않겠지? 그냥 오크 놈들한테 죽어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혹시 한국이 망하고 중국으로 넘어와서 자리를 잡으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중국의 마분석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앓던 이가 빠진 것같이 속이 시원합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이런 개망신을 당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습니까?”

    “아예 오크들과 싸우다 공멸해 버리면 좋겠습니다.”

    일본은 이누쿠소가 회의 내용을 영상 녹화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신이 나서 주둥이를 나불거리고 있었다.

    * * *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현성은 지금까지 적지 않은 숫자의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했다.

    하지만 저런 놈은 처음이었다.

    공격력도 강하고 방어력도 강하다.

    어디 그뿐인가?

    마력과 체력 역시 무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았다.

    오크 대족장을 홀로 처리했지만 전혀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리품 중에 당장 도움이 될 만한 것도 없고.’

    전설 등급 도끼 두 자루, 워크라이 스킬북, 광폭화 스킬북 등등.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전에 사냥했던 오크 대족장과 똑같은 아이템이 나왔다.

    그 말은 즉 현성에게 필요한 아이템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저놈을 과연 잡을 수 있을까요?”

    “저렇게 강력한 전설 등급 몬스터는 처음입니다.”

    “다른 놈들은 또 어떻고요. 최현성 플레이어가 전설 등급 몬스터 1마리를 처리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오크 무리에는 최소 둘 이상의 전설 등급 몬스터가 있습니다.”

    오크 주술사들의 우두머리와 마지막에 등장했던 오크 로드를 말하는 것이었다.

    “일단 타국의 지원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UN에서 지원을 해 줘야 할 텐데요?”

    “이모탈 길드 해외 지부의 인원들을 소집하면 안 됩니까? 지부 소속이기는 하지만 그들도 이모탈 길드원 아닙니까?”

    “시도는 해 보겠지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길드의 속성을 아시지 않습니까?”

    “본부의 부름에 응하지 않으면 탈퇴시킨다는 강수라도 쓰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모탈 길드를 포함한 각 길드의 길드장들과 랭커들이 어우러져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현성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순식간에 신촌역을 포함해 그 일대 지역을 모조리 오크들에게 빼앗겼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분명 휴식을 취한 후에는 진군을 시작할 것이다.

    문제는 진군하는 오크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현재 전력으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제대로 부딪쳐 본 건 아니지만 현성으로서도 지금 당장 오크 로드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일단 무장이라도 제대로 갖춰야 해.’

    게스피트에게 마왕의 갑주 세트라도 받아야 어느 정도 비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마왕의 갑주 세트가 있다고 해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놈을 어떻게 잡지?’

    현성이 한참 고심에 빠져 있을 무렵.

    ‘어?’

    -누적 습득 포인트가 1,000조를 돌파했습니다.

    -등급이 상승합니다.

    -전설 등급이 되셨습니다.

    -신화 등급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구매할 수 있는 목록이 늘어납니다.

    -판매창이 10,000개 증가합니다.

    이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알아서 굴러들어왔다.

    현성은 재빨리 구매창을 열었다.

    그동안 봉인되어 있었던 신화 등급 스킬북의 봉인이 풀려있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뇌신 – 신화 등급

    -액티브 스킬북

    -뇌신의 힘을 일부 빌려 올 수 있습니다.

    -판매자 : 뇌신

    -판매가 : 9,999,999,999,999,999포인트

    ‘무슨 가격이 이따위야?’

    게스피트에게 대략 듣기는 했다, 제대로 된 신화 등급 스킬을 얻기 위해서는 수천조 포인트는 필요하다고.

    ‘이건 수천조 포인트 수준이 아니잖아.’

    1경 포인트에서 1포인트 부족한 수치다.

    수천조 포인트라고 포장할 수 있는 최대치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것도 비슷해.’

    준신화 등급이 아닌 신화 등급 스킬은 모두 1경에 가까운 가격을 자랑했고 어떤 건 1경이 넘는 것도 있었다.

    ‘당장 살 수 있는 게 없잖아.’

    신화 등급 스킬을 구입할 만한 포인트가 없었다.

    아니, 신화 등급 스킬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 동안 포인트를 모아야 할 것 같았다.

    ‘준신화 등급 스킬이라도 사야겠어.’

    꿩 대신 닭이라도 잡아야 할 판이다.

    ‘어디 보자.’

    현성에게는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이 필요했다.

    ‘좋은 게 많네.’

    아무리 준신화 등급이라고 해도 신화 등급은 신화 등급.

    전설 등급 중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좋은 스킬들이 많았다.

    분신술 – 준신화 등급

    -액티브 스킬

    -시전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의 30%를 보유한 분신을 만든다.

    -유지 시간 : 24시간

    -쿨타임 : 72시간

    -판매자 : 환신

    -판매가 : 499,999,999,999,999포인트

    문제는 좋은 스킬 하나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를 다 털어 넣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해.’

    포인트는 빠른 속도로 모이고 있다.

    게임 캐시 아이템 판매 덕분이다.

    문제는 지금 당장 전력 상승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스킬북을 구매해야 한다는 점이다.

    많고 많은 준신화 등급 스킬북들 중에서 오크 로드를 상대할 수 있을 만한 것을 골라 구매해야 했다.

    ‘버프 계열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현성이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내 장점을 극대화해야 해.’

    얼핏 보면 현성의 장점은 흑뢰룡의 숨결을 주력으로 하는 강력한 공격력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부수적인 힘일 뿐이다.

    현성의 진짜 장점은 불사의 서를 바탕으로 버티고 적의 체력과 마력을 빼앗아 와 장기전을 벌일 때 두드러졌다.

    ‘과거에 만났던 오크 대족장도 내 공격에 꼼짝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결국 장기전으로 가서 붉은빛 오라를 갉아 먹고 승리를 거뒀다.

    오크 로드가 괴물같이 강하기는 하지만 체력과 마력이 무한하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장기전으로 몰고 가고 뚱이를 통해 체력과 마력을 회복한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문제는 버티는 건데…….’

    방어력, 공격력, 마력, 체력.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적을 상대로 버티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성이 준신화 등급 스킬북들을 쭉 살펴봤다.

    그러던 도중 뭔가 낯익은 스킬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천신의 갑옷 – 준신화 등급

    -패시브 스킬북

    -물리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스킬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전격 공격에 대한 내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화염 공격에 대한 내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중략……

    -받은 피해의 10%를 적에게 되돌려 줍니다.

    -판매자 : 천신

    -판매가 : 499,999,999,999,999포인트

    ‘초창기 천뢰왕의 갑옷하고 비슷한데.’

    방어력만을 극단적으로 올려 주는 형태의 패시브 스킬북.

    하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받은 피해의 10%를 적에게 되돌려 준다라…….’

    이거라면 오크 로드의 강력한 공격력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

    거기다 성장형 아이템인 천뢰왕의 갑옷과의 융합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버티기만 하면 무조건 이겨.’

    스킬 저항력이 높아 현성의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한 공격이 되돌아온다면 버티기 힘들 것이다.

    천신의 갑옷은 현성의 장점인 장기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많은 힘을 받을 수 있는 스킬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홀로 다수를 상대하는 상황에서도 상당히 큰 도움이 되는 스킬이다.

    현성이 일일이 되받아치지 않아도 알아서 반격을 가해 준다.

    얼마나 좋은가.

    ‘좋아, 결정했어.’

    현성이 천신의 갑옷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자리를 좀 피하자.’

    지금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편하게 스킬북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은…….

    화장실밖에 없었다.

    현성은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아 구매창에서 천신의 갑옷을 선택했다.

    -패시브 스킬북 천신의 갑옷 – 준신화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곧바로 예를 눌렀다.

    결정을 내린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붉은색 가죽에 황금빛 테두리를 가진 스킬북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성이 천신의 갑옷 스킬북을 움켜쥐었다.

    -패시브 스킬북 천신의 갑옷 - 준신화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그와 동시에 예상과는 조금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패시브 스킬 천신의 갑옷 - 준신화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신의 갑옷 - 준신화 등급과 패시브 스킬 천뢰왕의 갑옷 – 유일 준신화 등급이 융합됩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신의 갑옷 – 유일 준신화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천신의 갑옷이 천뢰왕의 갑옷을 흡수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융합되어 버린 것이다.

    ‘좋아.’

    이건 천뢰왕의 갑옷이 천신의 갑옷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동급의 스킬이라는 의미였다.

    ‘그동안 죽어라 스킬북을 퍼먹인 보람이 있구나.’

    500조 포인트짜리 스킬북과 동급의 대접을 받았다.

    ‘어떻게 변했는지 한번 보자.’

    현성이 천뢰신의 갑옷이 가진 옵션을 확인해 봤다.

    천뢰신의 갑옷 - 유일 준신화 등급

    -패시브 스킬북

    -물리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스킬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전격 공격에 대한 내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화염 공격에 대한 내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중략……

    -체력이 낮아질수록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동일한 비율로 상승합니다.

    -체력이 10% 이상 낮아지면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3배 상승합니다.

    -받은 피해의 일부를 흡수해 체력과 마력을 회복합니다.

    -받은 피해의 10%를 적에게 되돌려 줍니다.

    -방어 계열 스킬과 아이템을 흡수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훌륭해.’

    신화 등급으로 승급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준신화 등급 스킬 중에서는 독보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효율이 좋아졌다.

    저항력이 높아진 것은 물론 받은 피해를 흡수해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고 10%를 적에게 되돌려 주기까지 한다.

    가히 방어 스킬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텅 빈 포인트가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포인트는 무섭게 차오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복구될 거야.’

    그러면 그때 또다시 스킬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일단 나가자.’

    현성이 화장실 문을 열고 회의실로 돌아갔다.

    “지원 요청에 응한 나라가 있습니까?”

    현성이 가장 먼저 타국의 지원에 대해 물었다.

    “아직입니다.”

    “음, 그렇다는 말이죠.”

    현성의 눈에 스산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내가 직접 도움을 줬는데 안 온단 말이지?’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연합은 한국에 도움을 줘야 했다.

    ‘내가 다 적어 놓는다.’

    현성은 살생부 작성을 시작했다.

    끝까지 응하지 않는 나라들과는 모든 거래를 끊어 버릴 요량이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로 나라가 망하든 말든 내버려 두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었다.

    그때였다.

    “러시아로부터 회신이 왔습니다! 자국의 상위 랭커들을 모두 한국에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러시아가 가장 먼저 결단을 내렸다.

    ‘러시아에는 가산점 준다.’

    그게 시작이었다.

    “미국에서 랭커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유럽연합에서도 랭커들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일본이 랭커를 파견하겠답니다!”

    러시아가 물꼬를 터 주자 타국들이 일제히 지원을 약속했다.

    ‘이것들이 눈치 게임을 했다 이거지.’

    러시아가 나서지 않았다면?

    최악의 경우 한국 홀로 오크 대군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나중에 두고 보자.’

    지금은 때가 아니다.

    도움받는 처지에 조금 늦게 왔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현성은 오늘 일을 쉽게 잊을 생각이 없었다.

    ‘꼭 되갚아 준다.’

    되로 주면 말로 갚는 것이 한국인의 정이었다.

    * * *

    던전을 빠져나온 오크들은 반나절 동안 편안한 휴식을 즐겼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휴식하고 있는 오크들의 머리 위로 폭격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오크들을 자극할 수도 있었기에 참았다.

    민간인 대피가 이루어지는 중이었고 아직 타국의 지원군이 오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는 단독으로 오크들과 전투를 벌이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오크들이 진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간인 대피는 완료했나?”

    “예, 대피 지역에 거주하는 민간인 소거는 완료했습니다. 그렇지만 오크들의 진군 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빠릅니다. 아무래도 대피 지역을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

    보고를 받은 사성장군의 아미가 일그러졌다.

    대피 지역은 이미 엄청나게 넓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피 지역을 더 늘린다?

    그건 서울 전체를 비워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5이 서울에 살고 있다.

    상식적으로 1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한 번은 부딪칠 수밖에 없군.”

    목숨을 걸고 오크들의 진군을 막아야 했다.

    “이모탈 길드에 지원을 요청하게.”

    타국 랭커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투가 벌어지게 생겼다.

    군으로부터 정보를 전달받은 플레이어들이 전투준비를 갖췄다.

    현성도 전투준비를 갖추고 전장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고용주 게스피트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게스피트에게서 호출이 왔다.

    잠시 고민하던 현성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예를 눌렀다.

    화악!

    현성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 * *

    “왔구나.”

    게스피트가 안면 가득 미소를 지은 채로 현성을 반겼다.

    “저, 게스피트 님, 현재 제 세계에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나서 바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성이 속사포처럼 말했다.

    “네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몬스터가 있단 말이냐?”

    게스피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전력을 다해서 원거리 공격을 날렸는데 제대로 먹히지도 않더군요.”

    “으흠, 그렇다면 그 몬스터의 등급이 최소 준신화 등급은 되겠구나.”

    “저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오크 로드는 절대 전설 등급 몬스터가 아니었다.

    최하 준신화 등급.

    최악의 경우 신화 등급 몬스터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럼 내가 너를 잘 불렀구나. 받거라.”

    게스피트가 현성에게 마왕의 갑주 세트를 내밀었다.

    “완성된 겁니까?”

    “그래, 다 끝났다.”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그렇지 않아도 마왕의 갑주 세트가 없어서 살짝 아쉬웠던 참이다.

    한데 때마침 갑옷의 보수가 끝났다.

    현성이 마왕의 갑주 세트를 착용하고 정보를 불러왔다.

    마왕의 투구 – 준신화 등급

    -물리 공격 저항력이 10% 상승합니다.

    -스킬 공격 저항력이 10% 상승합니다.

    -암흑 계열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10% 상승합니다.

    -마력과 정신력 스텟이 각각 50 증가합니다.

    -세트 아이템 마왕의 갑주 중 하나.

    -세트 효과 : 물리 공격 저항력, 스킬 공격 저항력, 암흑 계열 공격 저항력이 추가로 40% 상승합니다. 마력과 정신력 스텟이 각각 300 증가합니다. 적의 물리 공격과 스킬 공격을 10%의 확률로 시전자에게 튕겨 냅니다.

    -최상급 마룡의 가죽과 비늘을 사용해 만들어졌습니다.

    -플레이어 최현성을 위해 맞춤 제작된 아이템입니다.

    -작용자의 의지에 따라 형태를 변환합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전설 등급

    최초로 준신화 등급 방어구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준신화 등급 방어구를 손에 넣은 자 - 전설 등급]

    “준신화 등급?”

    무려 업적이 떴다.

    “내가 힘 좀 썼느니라.”

    게스피트의 거드름을 피웠다.

    “감사합니다, 게스피트 님.”

    “뭐 그 정도를 가지고 그러느냐. 앞으로 네가 나에게 더 많은 부를 가져다줄 텐데 말이다.”

    게스피트의 말에 현성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완벽해.’

    마왕의 갑주가 가지고 있는 성능이 대폭 상승했다.

    거기다 천뢰신의 갑옷 스킬이 가지고 있는 피해 반사와 마왕의 갑주 세트가 가지고 있는 피해 튕겨 내기가 중복적으로 적용된다면?

    지속적으로 받은 피해의 10%를 되돌려 주고 열 번의 공격 중 한 번은 온전히 되돌려 줄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20%의 피해를 반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오크 로드의 등급이 준신화 등급인지 신화 등급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사냥이 가능할 것 같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게스피트 님.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현성은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지구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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