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권. 오크 군단의 재침공 (85/225)

┃오크 군단의 재침공

쿠웅! 쿠웅! 쿠웅!

커다란 북소리와 함께 오와 열을 맞춰 질서 정연하게 대기하고 있던 오크 군단이 진군을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 선 것은 3미터가 넘는 장신의 오크였다.

멀리서 보면 오크가 아니라 트롤로 착각할 정도로 덩치가 컸다.

장신의 오크는 이미 종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것처럼보였다.

하나 종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은 장신의 오크만이 아니었다.

다른 오크들 역시 오크가 아니라 웨어 울프나 웨어 라이온처럼 보일 정도로 건장한 체격을 자랑했다.

오크들을 태우고 있는 거대 늑대들 역시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했다.

거구의 오크들 뒤로 일반적인 체격의 오크들이 뒤따랐다.

하지만 일반 병졸로 보이는 오크들 역시 일반 오크와는 그 질이 달랐다.

일체화된 무기를 들고 있었고 규격화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오크들은 잘 훈련된 군대처럼 질서 정연하게 발을 맞춰 행군했다.

오크들의 행렬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한참을 이동한 오크들 앞에 거대한 차원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발대가 대패를 거뒀던 차원 게이트였다.

-크워어어억!

장신의 오크가 힘찬 포효를 터트렸다.

-쿼어어어어!

오크 군단이 그에 호응하여 일제히 커다란 함성을 토해 냈다.

그게 시작이었다.

쿵! 쿵! 쿵! 쿵!

힘찬 발소리와 함께 그 끝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오크 군단이 차원 게이트 내부로 진입했다.

* * *

신촌역에 있는 오크 던전.

이곳은 완전히 요새화가 되어 있었다.

높은 장벽이 던전 주변을 물 샐 틈 하나 없이 포위하고 있었고, 장벽 위에는 현대의 최신 화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신촌역 오크 던전은 전설 등급 몬스터 오크 대족장과 오크 주술사가 대규모 오크 무리를 이끌고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 전적이 있었다.

한국 정부는 또다시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신촌역 오크 던전을 완벽하게 요새화시켰다.

하지만 현재까지 신촌역 오크 던전은 평범한 저레벨 던전 중 하나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었다.

게다가 전설 등급 몬스터가 튀어나온 던전에서 다시금 전설 등급 몬스터가 나온 적도 없었다.

그 때문에 괜히 요새를 만든 게 아니냐는 여론도 슬슬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요새 위에서 근무를 서는 군인들과 플레이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심하다.”

ED 길드 소속의 고레벨 플레이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이 정도면 완전 꿀이잖아. 던전 안에서 안전 요원 근무를 선다고 생각해 봐. 완전 끔찍하잖아.”

요새는 근무를 서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수도 있고 인터넷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던전 안에서의 근무는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보거나 보드게임을 해야 했다.

그것도 원시적인 횃불이나 고가의 마석 손전등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그래도 지루한 건 지루한 거지. 넌 돈도 얼마 안 주는 요원 근무가 좋냐?”

“나도 싫지. 그래도 던전 안보다는 밖이 좋잖아. 안 그래?”

“그렇기는 하지.”

고레벨 플레이어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병사들은 그런 플레이어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병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전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과 군인들 모두 이 무료한 경계 근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지루함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사람 살려!”

그때 신촌역 오크 던전의 출입문이 거칠게 열리며 일단의 플레이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뭐야?”

“어리바리한 놈들이 실수한 거 아니야?”

플레이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신촌역 오크 던전 입구를 주시했다.

군인들 역시 아직까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던전에서 몬스터에게 쫓겨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구사일생으로 안전 요원의 도움을 받아 던전 밖으로 탈출해 호들갑을 떠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콰직!

하지만 열린 던전 출입구에서 날아온 도끼가 도주하던 플레이어의 몸에 틀어박히는 순간 분위기가 급변했다.

“전원, 전투준비!”

“당장 상부에 상황 보고해!”

플레이어와 군인들이 일제히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꽈아아아앙!

그때 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던전 출입구가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다.

꽈아앙! 꽈아앙!

곧이어 차원 게이트를 봉인하고 있던 던전 출입구가 강한 충격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쿠웅! 쿠웅! 쿠웅!

커다란 발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완전히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차원 게이트에서 완전무장을 갖춘 오크들이 질서 정연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게 뭐야?”

“몬스터 맞아?”

전투준비를 하고 있던 플레이어와 군인 들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오크들은 질서 정연하게 발을 맞춰 진군했다.

“이건 몬스터 웨이브가 아니야.”

몬스터 웨이브라기보다는 몬스터 군단의 지구 침공이었다.

“공격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현대 화기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두두두두두!

슈우우우욱!

꽈아아아앙!

군인들의 포격에 이어 플레이어들의 원거리 공격 스킬들이 날아갔다.

“파이어 스톰!”

“파이어 스피어!”

“체인 라이트닝!”

“썬더 볼트!”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지상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폭음이 터져 나왔다.

공격을 퍼붓고 있는 군인과 플레이어 들의 얼굴이 밝았다.

아군은 높은 장벽의 보호를 받으며 일방적으로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그에 반해 오크들은 높은 장벽에 고립되어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미리미리 대비를 해 놓은 보람이 있었다.

군인과 플레이어 들이 날린 공격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장벽 아래는 완전히 지옥이었다.

뜨거운 열기와 먼지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계속 공격해라!”

“오크 놈들을 완전히 전멸시키자!”

군인과 플레이어 들은 잔뜩 흥이 났다.

-쿠워어어억!

그때 장벽 바로 아래서 커다란 포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열심히 공격을 날리던 병사들과 플레이어들의 몸이 일제히 굳어 버렸다.

쿠우우웅!

그와 동시에 장벽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빠직! 빠직!

몬스터의 사체와 마석을 섞어 만든 장벽에 금이 갔다.

쿠우우웅!

다시금 장벽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투둑!

이번에는 금이 가는 정도로 상황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조각난 파편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장벽이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아아악!”

“살려 줘!”

장벽 위에 있던 군인들과 플레이어들이 비명을 지르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크르르르릉!

-캬아아아앙!

무너진 장벽을 타고 거대 늑대들이 내달렸다.

“막아!”

“오크들을 죽여!”

거대 늑대들을 타고 있는 오크 라이더들이 군인과 플레이어 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군인과 플레이어 들은 순식간에 안전한 장벽을 잃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화르르르륵!

꽈아아아앙!

흙먼지로 가득 찬 장벽 내부에서는 온갖 종류의 공격 스킬이 날아들었다.

군인과 플레이어 들은 오크 군단을 상대로 제대로 된 전투를 펼치지 못했다.

-크워어어어억!

중간중간 터져 나온 포효 때문이었다.

포효를 듣는 순간 군인과 플레이어 들의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러니 당연히 제대로 된 전투가 진행될 수 없었다.

-크르르릉!

콰직!

“커억!”

거대 늑대의 이빨에 플레이어들의 몸이 두 동강 났다.

휘익!

오크 라이더의 도끼질에 군인들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이건 더 이상 전투가 아니었다.

그저 일방적인 학살에 불과했다.

* * *

‘차곡차곡 쌓이는구나.’

포인트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뽑기성 과금을 장착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차근차근하자.’

이제부터 슬슬 시동을 걸 생각이었다.

‘과하지 않게 가자.’

너무 초반부터 과금을 유도하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떠나갈 수 있다.

적절하게 수위를 조절을 해 가며 플레이어들의 포인트를 뽑아 먹어야 했다.

‘일단 스킨부터 가 볼까?’

캐릭터가 강해지지는 않지만 외형이 달라지는 스킨.

이게 적당할 것 같았다.

사냥이나 전투에 영향을 끼치는 아이템은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하지만 스킨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리X지는 제외하고 다른 게임들에 적용을 해 보자.’

현성이 GM들에게 스킨 판매 이벤트를 시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들어오려나.’

잘하면 이번 이벤트 한 번에 누적 금액 1,000조 포인트를 넘겨 신화 등급 스킬을 구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현성이 한참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을 때.

위이이잉!

현성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윤아 씨?’

신윤아였다.

‘뭔가 불길한데.’

신윤아가 현성에게 전화를 해 올 때는 주로 사고가 터졌을 경우가 많았다.

“예, 윤아 씨.”

-현성 씨, 큰일이에요! 신촌역 오크 던전이 다시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켰어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현성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바로 몸을 날렸다.

* * *

-크아아아앙!

성난 오크의 포효와 함께 긴급 소집된 플레이어들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몸이 굳어 버린 플레이어들을 향해 오크들이 달려들었다.

콰직!

“아악!”

“사람 살려!”

“난 죽기 싫어!”

공포에 질린 플레이어들이 처절한 비명을 토해 냈다.

하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오크의 도끼에 머리가 박살 나고 플레이어의 시체가 거대 늑대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후퇴! 후퇴하라!”

ED 길드의 길드장 강서욱이 절망 어린 표정으로 후퇴를 명령했다.

‘너무 강해.’

ED 길드는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길드다.

하지만 오크들의 공세 앞에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키가 3미터가 넘는 오크의 외침 한 방이면 모든 방책이 무력화됐다.

정신계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투입해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오크를 제거하려고 해 봤다.

하지만 실패했다.

오크 우두머리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다른 오크들의 공격을 받아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전멸했다.

오크 숫자가 너무 많았다.

‘지원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ED 길드의 능력으로는 잠시 시간을 끄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파지지직!

그때 칠흑빛 뇌전이 지상의 오크들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 살았다.’

ED 길드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뇌신이 도착한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처참하네.’

신촌역에 도착한 현성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신촌역은 완전히 오크들의 소굴로 변해 있었다.

정부에서 만든 장벽이 어느 정도 시간을 끌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장벽은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고 전사한 오크와 인간의 사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문제는 인간의 시체가 오크의 사체보다 월등히 많다는 점이었다.

군대와 플레이어 들이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뜻이다.

아니, 지금도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화염의 서.’

화르르륵!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동시에 사용했다.

하늘에서 뇌전과 화염의 비가 지상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최대한 빨리 정리한다.’

영웅 등급 몬스터인 조인족 무리를 일거에 쓸어버렸던 조합이다.

저 많은 오크들이 모두 영웅 등급 몬스터라고 해도 흑뢰룡의 숨결과 화염의 서 조합이라면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었다.

화악!

하지만 붉은 빛무리가 오크들의 머리 위를 뒤덮는 순간, 자신감 넘치던 현성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붉은 빛무리가 현성이 전력을 다해 사용한 흑뢰룡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완벽하게 막아 냈기 때문이다.

‘망할.’

마력과 체력을 최대치로 쥐어짜서 날린 공격이 완벽하게 막혀 버렸다.

쓸데없이 마력 낭비만 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저놈들을 먼저 잡아야 해.’

지팡이를 들고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오크 주술사들.

그놈들이 붉은 빛무리를 만들어 내 현성의 공격을 막아 낸 원흉이었다.

‘설마 다 전설 등급은 아니겠지?’

현성이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을 사용했다.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한 장소입니다. 액티브 스킬 블링크 – 영웅 등급의 발동이 캔슬되었습니다.

‘칫.’

하지만 대비가 되어 있었다.

현성이 용혈검을 꾹 하고 움켜쥐었다.

남은 방법은 오크 무리를 뚫고 전진하는 것뿐이었다.

흑뢰룡의 숨결과 화염의 서 광역 공격은 많은 마력과 체력을 갉아먹었다.

하지만 그게 단점만 된 건 아니었다.

천뢰왕의 갑옷 스킬이 가진 효과로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상승했으니까 말이다.

‘마왕의 갑주 세트가 없는 단점을 어느 정도 커버해 주겠지.’

마왕의 갑주 세트를 게스피트에게 맡겨 놓은 상황이기에 현재 현성은 임시로 영웅 등급 갑주 세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타악!

현성이 오크 주술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쿠어어어억!

오크들이 자신의 무기를 휘두르며 현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의 몸이 칠흑빛 뇌전과 화염에 휩싸였다.

꽈아아아앙!

현성이 한 줄기 뇌전이 되어 오크 무리를 꿰뚫고 전진했다.

오크들은 현성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칠흑빛 뇌전과 화염을 뚫지 못했다.

오히려 현성에게 접근하기 전에 알아서 감전되거나 불타올랐다.

‘좋은데.’

화염의 서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알아서 오크들의 마력을 갉아먹으며 무서운 속도로 번져 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근접전으로 할 걸 그랬나 보네.’

오크 주술사들이 광역 실드를 펼칠 수는 있어도 수많은 오크들에게 각각 실드를 펼쳐 주는 건 무리인 모양이었다.

화염의 서가 오크들 사이에 퍼져 나가며 소모되었던 체력과 마력이 쭉쭉 차올랐다.

현성이 용혈검을 휘두르며 파죽지세로 오크 무리를 가로질렀다.

-꽤에에엑!

-캬아아악!

오크들이 비명을 토해 내며 죽어 나갔다.

현성은 오크 사체는 탐식의 서로 처리했고 마석이나 아이템은 아공간 스킬을 사용해 모두 쓸어 담았다.

‘제대로 꿀 빨아 보자.’

희귀 등급도 있었지만 영웅 등급이 꽤 많이 섞여 있어서 나름 수입이 짭짤했다.

휘이이잉!

그때 현성을 향해 커다란 도끼 한 자루가 날아왔다.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러 도끼를 쳐 내려고 했다.

파강!

하지만 오히려 현성이 휘두른 용혈검이 튕겨져 나갔다.

‘어라?’

당황한 현성의 눈에 키가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우두머리구나.’

현성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오크 주술사도 까다로운 상대였지만 오크 대족장 역시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번 붙어 보자.’

현성이 자신 있게 오크 대족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크 대족장은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다.

현성 역시 과거에는 다른 랭커들의 도움과 희생을 바탕으로 레이드를 벌였고, 결국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혼자서도 충분해.’

다른 랭커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 없이 현성 혼자서도 충분히 오크 대족장을 사냥할 자신이 있었다.

꽈아앙! 꽈아앙!

현성의 손에 들린 용혈검과 오크 대족장의 양손에 들린 도끼가 연속적으로 충돌했다.

“큭!”

현성의 입에서 절로 침음이 터져 나왔다.

‘힘과 속도가 장난이 아니잖아?’

전에 상대했던 오크 대족장보다 더 강한 놈 같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때랑 비슷한데.’

두 자루의 도끼를 무기로 쓰는 것도 그렇고 도끼를 휘두르는 부법의 경로도 과거 현성이 상대했던 오크 대족장과 비슷했다.

‘헤어스타일도 똑같네.’

아무래도 이번 오크 침공은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전에 왔던 놈들과 같은 무리인 것 같은데.’

그때 도주했던 오크들이 지원군을 끌고 온 것 같았다.

‘그때 오크 주술사 놈만 아니었어도.’

그놈이 목숨 걸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일부 오크들을 살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단 1마리도 살려 보내서는 안 돼.’

무조건 전멸시켜야 했다.

패잔병들이 다른 오크 무리를 이끌고 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이놈들이 그때 왔던 오크 무리의 본대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또다시 오크 무리의 침공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꽈아앙! 꽈아앙!

용혈검과 도끼가 연속적으로 충돌하며 마력의 파편을 흩뿌렸다.

현성과 오크 대족장의 결투장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수많은 오크 무리 사이에서 하나의 결투장이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이놈한테 잡혀 있을 수는 없지. 뚱아.’

현성은 뚱이를 소환했다.

합공을 하기 위해 뚱이를 소환한 건 아니었다.

‘저놈들을 잡아.’

현성의 명령에 뚱이가 오크 주술사들을 향해 맹렬히 날아갔다.

파지지직!

꽈아아앙!

뚱이와 오크 주술사들의 전투가 벌어졌다.

‘대족장과 주술사만 잡고 있어도 이득이야.’

인간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갑작스러운 기습을 받아 흔들리고 있을 뿐 약간의 시간만 주어지면 신윤아와 강선영 길드장이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지원을 올 것이다.

-크워어어어억!

오크 대족장이 커다란 포효를 터트렸다.

-정신계 공포 스킬 워크라이에 걸리셨습니다.

-공포에 잠식당한 신체가 10초간 경직됩니다.

-패시브 스킬 굴하지 않는 정신이 발동합니다.

-패시브 스킬 꺾이지 않는 신념이 발동합니다.

……중략……

-피어 스킬에 완벽하게 저항합니다.

플레이어들의 몸이 굳어졌고 오크들의 사기가 치솟았다.

순식간에 플레이어들의 피해가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이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현성이 아니었다.

‘너만 있는 줄 아냐? 나도 있어.’

현성이 곧바로 워크라이 스킬을 시전했다.

“아아아아아아!”

현성의 워크라이에 이번에는 오크들의 몸이 굳었고, 플레이어들의 사기가 치솟았다.

오크들의 피해가 급격히 늘었다.

-크워어어어억!

“아아아아아아!”

현성과 오크 대족장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워크라이 스킬을 연속적으로 시전했다.

이에 죽어 나가는 것은 플레이어들과 오크들이었다.

수시로 상태 이상에 걸리다 보니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이기가 힘들 정도였다.

오크 대족장이 먼저 워크라이 스킬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마력을 잔뜩 머금은 도끼를 휘둘렀다.

서걱!

현성이 입고 있던 영웅 등급 갑옷이 종잇장처럼 잘리며 어깨가 반쯤 베어져 나갔다.

“큭!”

워크라이 스킬에 마력을 소모하다 보니 방어가 약해졌다.

현성 역시 워크라이 스킬을 거둬들였다.

‘이놈을 먼저 쓰러트려야 해.’

워크라이 스킬만 써서는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다.

현성과 오크 대족장이 전력을 다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꽈아앙! 꽈아앙!

용혈검과 도끼가 연속적으로 충돌하며 커다란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속도가 장난이 아니네.’

민첩 스텟과 힘 스텟이 현성보다 높은 것 같았다.

마력은 현성이 약간 우위에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리가 이긴다.’

속속 플레이어들이 충원되고 있었다.

오크 주술사는 뚱이가 잘 상대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아까 퍼트린 화염의 서가 넘실넘실 퍼져 나가며 오크들을 불태워 현성의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켜 주고 있었다.

장기전으로 갔을 때 유리한 건 오크 대족장이 아니라 현성이었다.

현성과 오크 대족장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와중에 플레이어들과 군대가 차분히 오크 무리를 진압해 나갔다.

꽈아아아앙!

현대 화기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탱커들이 스크럼을 짜고 오크들을 밀어붙였고 후방에서 딜러들과 힐러들의 지원이 쏟아졌다.

‘우리도 제대로 승부를 보자.’

현성이 더욱 강하게 오크 대족장을 몰아붙였다.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뼈를 주고 살을 취하겠다는 각오로 오크 대족장에게 달려들었다.

현성이 더 큰 부상을 입어도 오크 대족장의 몸에 적당한 상처 하나를 남기면 이득이라는 계산이었다.

‘난 체력과 마력을 회복할 수 있어. 하지만 넌 불가능하지.’

이건 현성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 * *

“속보입니다! 신촌역 오크 던전에서 다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습니다!”

“현장 상황은 어떤가요, 정한울 기자?”

“예, 지금까지는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쳐 잘 막아 내고 있습니다.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해 만들어 놓았던 방어벽이 허무하게 뚫리기는 했지만 이모탈 길드가 발 빠르게 대응한 덕분에 추가 피해를 막았습니다.”

“몬스터 소탕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가 커질 수도 있었지만 뇌신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이모탈 길드의 자문위원장이 홀로 전설 등급 몬스터들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플레이어와 오크 들의 모습을 비췄다.

방송사 방송이 아니었다.

뉴스 콘셉트의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이었다.

과거 지성규라는 스트리머가 우연히 현성의 전투 영상을 방송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지성규는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지금 뉴스 형식으로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을 하고 있는 정한울 역시 그런 대박을 노리고 있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정한울은 도망치는 대신 카메라를 들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1인 2역을 하면서 전투 상황을 생중계했다.

시청자 수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대박이야.’

이런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다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나도 이제 인기 스트리머가 될 수 있어.’

지성규에게 찾아온 대박이 자신에게도 찾아왔다.

-그런데 아직 차원 게이트 봉쇄 못 한 거 아님? 몬스터들이 계속 나오는데?

-아직까지 차원 게이트를 봉쇄할 여력은 없는 듯.

-와, 오크들 물량 장난 아니다. 도대체 몇 마리가 나오는 거냐?

-지금까지 나온 놈들만 해도 1만 마리는 넘어 보이는데, 아직도 계속 나오고 있음.

-역시 물량하면 오크!

-인해전술의 진수를 보여 주는구나.

시청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올라왔다.

정한울은 더욱 열성적으로 방송에 임했다.

특히 세계 랭킹 1위로 평가받고 있는 이모탈 길드의 자문위원장과 오크 대족장의 전투를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중간중간 카메라를 돌려 전체적인 상황을 보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시 오기를 잘했어.’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플레이어들이 오크 무리를 잘 막아 주고 있었기에 정한울이 있는 건물까지는 오크들이 다가오지도 못했다.

안전하게 꿀 빨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어, 한울아, 잠깐 차원 게이트 좀 클로즈업해서 비춰 봐! 엄청 큰 놈이 나온다!

한 시청자의 말에 정한울이 고개를 돌려 차원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어, 저게 뭐야?’

정한울의 눈에 거인처럼 보이는 커다란 체구의 오크가 들어왔다.

‘대박이다.’

정한울이 재빨리 카메라를 틀었다.

“속보입니다! 현재 차원 게이트에서 새로운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했습니다!”

정한울의 외침에 채팅 창이 난리가 났다.

-방금 전까지 나온 오크보다 더 큰 놈 같은데?

-저놈도 오크 대족장인가?

-오크들은 대족장이 2명이나 있음? 웃기는 놈들이네.

시청자들이 신이 나서 떠들었다.

-쿠워어어어억!

그때 커다란 포효가 마이크를 타고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아씨, 저놈은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저거 정신계 공격 스킬임.

-ㅋㅋㅋㅋㅋ 우리 스트리머님 또 몸 굳으셨겠네.

-정신계 공격 스킬에 당해서 몸 굳는 것도 중계해 주면 재미있을 듯.

시청자들이 신이 나서 채팅을 쳤다.

“커억!”

그때 방송을 중계하고 있던 정한울이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탁!

정한울의 손에 들려 있던 카메라가 옥상 바닥을 나뒹굴다가 쓰러진 주인의 모습을 찍었다.

-저, 저게 뭐야?

-설마 죽은 거야?

시청자들이 패닉에 빠졌다.

죽은 듯이 쓰러진 정한울의 눈, 코, 입, 귀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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