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권. 유럽 연합 (82/225)
  • ┃유럽 연합

    현성이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뜻밖의 얼굴들이 현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프랑스의 마크 앙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관료들이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크 앙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현성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막상 감사 인사를 받는 현성의 표정은 뚱했다.

    ‘이놈들도 쇼를 하네.’

    내외신 기자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일본과 똑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현성이 짧게 대답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엘리제 궁에 잠시 들러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마크 앙 대통령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은 아직 유럽 국가들과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이참에 적당한 인맥을 만들어 놓으면 득이 되었으면 득이 되었지 손해 볼 일은 없었다.

    “가시지요.”

    현성이 마크 앙 대통령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엘리제 궁으로 향했다.

    -뇌신 프랑스에 나타난 블랙 웜 사냥!

    -프랑스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은 블랙 웜! 뇌신에게 사냥당하다!

    -프랑스의 영웅이 된 일본의 신.

    -뇌신을 직접 마중 나온 마크 앙 대통령.

    -뇌신, 엘리제 궁에 초대받다.

    전 세계 언론들이 프랑스에 나타난 블랙 웜 사냥을 주제로 온갖 기사를 쏟아 냈다.

    사실 현성이 프랑스에 도착한 순간부터 전 세계 언론이 현성을 주목하고 있었다.

    언론뿐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보 요원들이 현성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낸 사실은 별다른 게 없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던전 입구 붕괴로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를 제압했다.

    그 후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나타나 블랙 웜 레이드가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게 끝이었다.

    정보 요원들은 상부로부터 강한 질책을 들어야 했다.

    기자들은 특종을 놓쳤다는 사실에 아쉬워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역사상 최초로 지상이 아닌 지하에서 진행된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였으니까 말이다.

    현성의 블랙 웜 사냥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던 그 시각.

    현성은 마크 앙 대통령과 함께 엘리제 궁에 도착했다.

    ‘뭐야?’

    현성이 살짝 표정을 굳혔다.

    마크 앙 대통령을 따라 엘리제 궁에 들어온 현성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프랑스 정치인들이 아니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최현성 플레이어.”

    독일 전권 대사가 현성에게 인사를 했다.

    “저 역시 최현성 플레이어를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영국 전권 대사가 현성에게 인사를 했다.

    이 둘이 끝이 아니었다.

    유럽 연합 소속의 전권 대사들이 엘리제 궁에 모여 현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작정을 했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미리부터 한자리에 모여 현성이 블랙 웜 사냥을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앉으시지요?”

    마크 앙 대통령의 말에 현성이 자리에 착석했다.

    “이분들은 언제 프랑스에 오신 겁니까?”

    현성이 물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한국에서 우리 프랑스로 출발한 순간 바로 넘어오셨습니다.”

    마크 앙 대통령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무슨 목적이시죠?”

    “최현성 플레이어와 정당한 거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이나 러시아와 했던 정당한 거래 말입니다.”

    정당한 거래를 두 번이나 강조하는 마크 앙 대통령의 말에 현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 퍼져 나갔구먼.’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윌슨 대통령이 에어포스 원을 타고 날아왔다.

    러시아에서는 표트르 대통령이 하늘을 나는 크렘린 궁을 타고 날아왔다.

    당연히 비밀 따위가 지켜질 리가 없었다.

    정확한 거래 내용은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은 하고 있을 게 확실했다.

    유럽 연합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다.

    당연히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나 러시아의 표트르 대통령처럼 단독으로 유럽 연합을 대표해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런 기이한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전설 등급 아이템을 원합니다.”

    현성의 물음에 마크 앙 대통령이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즉답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우리 유럽 연합 역시 합당한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럼 먼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시죠.”

    원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었다.

    “50조 스톤 달러어치의 회복 계열, 방어 계열, 뇌전 계열, 화염 계열 스킬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현성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이놈들도 범인이었구나.’

    스킬북 가격을 올린 주범.

    미국의 단독 범행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공범이 있었다.

    ‘뭐, 나쁠 건 없지.’

    어차피 현성의 손아귀로 들어오게 될 물건이었다.

    살짝 아쉬운 게 있다면 규모가 너무 적다는 점이었다.

    미국은 투자금으로 100조 스톤 달러를 쐈고 추가로 30조 스톤 달러를 더 쐈다.

    러시아는 탐식의 서와 천연자원을 넘겼다.

    50조 스톤 달러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좀 달랐다.

    “또 추가로 유럽 연합이 가지고 있던 던전 소유권을 드리겠습니다.”

    마크 앙 대통령의 말에 현성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다지 끌리지 않는 조건이었다.

    “아마 웬만한 나라가 가지고 있는 던전보다 그 숫자가 더 많을 겁니다.”

    마크 앙 대통령의 말에 현성이 흥미를 보였다.

    “보시죠.”

    마크 앙 대통령이 현성에게 서류를 넘겼다.

    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는 던전들이 빼곡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N분의 1 했구나.’

    유럽 연합에 가입한 국가들이 각자 보유하고 있던 던전들을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그렇게 모인 던전의 숫자는 실로 놀라웠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유럽 각국이 조금씩 내놓은 던전의 숫자는 한국 전체 던전 숫자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베팅을 꽤 크게 하셨네요?”

    “이번과 같은 참사가 발생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성의 물음에 마크 앙 대통령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경매에 판매되는 물량의 20%를 드리죠.”

    “그건 너무 적습니다!”

    현성의 말에 마크 앙 대통령이 강하게 항의했다.

    “그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입니다. 이것도 제가 많이 양보한 겁니다. 만약 더 많은 물량을 배정받고 싶으시다면 미국이나 러시아를 넘어서는 성의를 보이셔야 할 겁니다.”

    “미국과 러시아가 배정받은 물량이 20%입니까?”

    마크 앙 대통령이 물었다.

    “그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어차피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치이기는 했지만 비밀은 비밀이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마크 앙 대통령이 수긍했다.

    아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현성에게 건넨 것만 해도 유럽 연합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대출혈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미국이나 러시아를 넘어서는 성의를 보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것도 최대한 쥐어짠 한계였다.

    더 주고 싶어도 줄 여유가 없었다.

    현재로서는 그저 미국이나 러시아와 대등한 지분을 확보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현성은 유럽 연합과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미국, 러시아, 유럽 연합.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네.’

    셋이나 되는 바이어에게 물건을 팔아먹으려면 지금보다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 * *

    현성은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금 일상에 복귀했다.

    장거리 공간 이동용 스크롤을 이용해 타국의 던전을 순회하며 업적을 늘렸고, 용병 지원을 통해 꾸준히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했다.

    포식의 서 덕분에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현성의 스텟이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유럽 연합에서 보내 준 스킬북은 준신화 등급으로 성장한 스킬들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성장했습니다라는 메시지는 계속 떠올랐지만 결국 신화 등급으로 승급하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현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부지런히 돈과 포인트를 긁어모으며 신화 등급 스킬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고용주 게스피트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게스피트가 다시금 현성을 소환했다.

    ‘무슨 일이지?’

    현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예를 눌렀다.

    * * *

    “어서 오너라.”

    게스피트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현성을 반겼다.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게스피트에게 홀려 버릴 뻔했다.

    하지만 빠르게 정신을 수습했다.

    그래도 전에 몇 번 봤다고 전보다 빨리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혹시 서버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게스피트가 현성을 고용했을 때는 주로 서버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였다.

    그게 아니라면 가끔 같이 게임 한판 하자고 부르는 경우였다.

    “그런 이유는 아니다. 오늘 너를 부른 것은 한 가지 사업을 제안하기 위해서다.”

    “사업 제안요?”

    “그래.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동업이 되겠지.”

    현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간 현성이 많이 성장하기는 했다.

    하지만 게스피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현성의 전 재산을 다 털어도 게스피트가 지니고 있는 신화 등급 아이템 하나 살 포인트가 안 된다.

    그런 자신을 불러 놓고 동업을 하자니?

    현성이 게스피트에 비해 우위에 서 있는 건 지구의 물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밖에 없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게스피트는 현성에게 호의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아군은 아니다.

    게스피트가 먼저 동업을 하자고 나왔다.

    그건 지구의 물품을 원한다는 뜻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밑천을 털릴 수도 있어.’

    현성이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동업이라……. 그게 무슨……?”

    현성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LAN이라는 이름의 근거리 통신망 말이다. 그걸 시스템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예?”

    현성이 화들짝 놀랐다.

    시스템은 절대적인 갑이다.

    플레이어는 을이다.

    갑인 시스템은 을인 플레이어의 편의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구매와 판매 시스템을 개편하기만 해도 편해지는 일이 많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걸 용납해 주지 않았다.

    아무리 불편해도 플레이어는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현성은 시스템을 통해 다른 차원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지구의 물품을 팔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한다.

    시스템의 허락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엄청나다.’

    신과 같은 존재인 시스템에 근거리 통신망을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니?

    게스피트는 확실히 현성과 차원이 다른 수준의 플레이어였다.

    “그게 정말 가능한 겁니까?”

    “가능하다. 대신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만만치 않은 대가요? 포인트를 지불해야 하는 겁니까?”

    판매와 구매 용병 시스템 모두 20%의 수수료를 받아 간다.

    “맞다. 포인트로 시스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지.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갈 것 같다.”

    수천조 포인트를 가볍게 생각하는 게스피트의 입에서 ‘많은 금액’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건 정말 엄청난 거액을 요구한다는 뜻이었다.

    “초기 비용이 꽤 많이 들겠군요.”

    “물론이다. 잠깐이라면 나 혼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 것 같더구나. 내가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게스피트 님이 근거리 통신망과 시스템을 접목시킨 이유는 다른 플레이어분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입니까?”

    현성의 물음에 게스피트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수하들과 하는 게임은 그다지 재미가 없더구나. 실력도 떨어지고 진심으로 이기겠다고 덤벼드는 놈도 없다.”

    확실히 게스피트는 진성 게이머였다.

    ‘당연히 만족할 수가 없지.’

    게스피트가 원하는 건 현실의 힘과 지위에 상관없이 대등하게 게임을 펼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게스피트와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존재는 동일한 고유 스킬을 가진 1레벨 플레이어뿐이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시네.’

    다른 1레벨 플레이어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근거리 통신망을 시스템에 접목시키다니.

    정말 엄청난 재능 낭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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