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권. 러시아의 선물 (80/225)
  • ┃러시아의 선물

    “이놈들이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이지용 대통령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윌슨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마중을 나갔다.

    그런데 악수 한 번 하고 찬바람을 맞았다.

    그래도 그 후에는 따로 자신을 보러 오겠거니 해서 기다렸다.

    하지만 아니었다.

    윌슨 대통령은 이모탈 길드에 들른 후 바로 평택 미군 기지로 향했다.

    그 후에는 에어 포스 원을 타고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윌슨 대통령의 방한 소식을 홍보한 이지용 대통령은 제대로 개망신을 당했다.

    “이모탈 길드 이 빌어먹을 놈들! 윌슨 대통령하고 약속을 잡았으면 잡았다고 미리 보고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이지용 대통령이 길길이 날뛰었다.

    사실 사전에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이지용 대통령을 무시해 버린 건 윌슨 대통령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인 윌슨에게 화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나마 만만한 상대는 국내법의 적용을 받는 이모탈 길드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각하!”

    한참 울분을 토해 내고 있는데 갑자기 비서실장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소란인가?”

    이지용 대통령의 물음에 비서실장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러시아에서 급보가 날아왔습니다. 지금 표트르 대통령이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오고 있답니다.”

    “뭐?”

    이지용 대통령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이모탈 길드 때문인가?”

    “아마 그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망할.”

    이지용 대통령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통령이 오는데 마중을 안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마중을 나가면 분명히 또 들러리가 될 게 뻔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지용 대통령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냥 무시해?’

    하지만 상대는 러시아의 독재자 표트르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라고는 하지만 러시아를 완전히 무시해 버릴 수는 없다.

    러시아는 경제적으로는 몰라도 군사력과 플레이어 전력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2위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강대국이다.

    거기다 북한 영토를 흡수하며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 분위기가 좋았다.

    그 덕에 현재 한국과 러시아의 가스관 연결과 철도 연결 사업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표트르 대통령을 무시한다?

    그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들러리가 되더라도 마중은 나가야 해.’

    일단 마중 나가는 건 확정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지용 대통령이 맹렬히 머리를 굴렀다.

    어떻게 하면 표트르 대통령의 방한이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아!”

    드디어 해결 방법이 떠올랐다.

    “당장 이모탈 길드에 연락해! 길드장을 비롯한 핵심 간부들 전원 청와대로 오라고! 그리고 최현성 플레이어도 꼭 불러!”

    “알겠습니다!”

    이지용 대통령의 명령에 비서실장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윌슨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도 이 방법을 썼으면 되는 거였는데…….’

    최현성 플레이어를 비롯한 이모탈 길드의 간부들이 청와대에 있으면?

    표트르 대통령은 분명 청와대로 올 것이다.

    진작 이 방법을 썼다면, 아마 윌슨 대통령도 청와대로 왔을 것이다.

    청와대까지 들어왔는데 빈손으로 가겠는가.

    이런저런 정책 회의도 하고 포토 타임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모탈 길드 놈들이 조금만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줬어도 그런 개망신을 당할 일은 없었을 텐데.’

    괜히 이모탈 길드가 더 미워졌다.

    * * *

    “청와대에서 호출이 왔다고요?”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자문위원장님을 포함해서 길드 핵심 간부들을 간담회 형식으로 초대했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의 말에 현성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저번에 한번 밟아 놔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박기만의 당선 무효화.

    박기만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차가운 스위스 감옥에 갇혀 여생을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눈치가 빠른 이들은 그 일에 현성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정치권과 대기업이 이모탈 길드에 이빨을 드러내다가 몇 번 깨지기도 했으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정치권과 대기업이 이모탈 길드를 건드리지 않은 것은 웬만해서는 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무력과 막대한 재력을 양손에 움켜쥐고 있는 현성과 척졌다가는 언제 박기만 꼴이 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그냥 맞춰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맞춰 주자고요?”

    현성의 물음에 강선영 길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굳이 정치권과 척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또 이지용 대통령이 윌슨 대통령 일로 개망신을 당한 전적이 있지 않습니까? 굳이 두 번씩이나 개망신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양보해 주면 그게 당연한 거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현성도 청와대가 그런 착각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적당히 선을 그으면 될 겁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청와대의 초청을 거절하는 건 그리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한 번 정도는 양보해 주죠.”

    표트르 대통령을 만나는 장소를 이모탈 길드에서 청와대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그리 힘든 일도 아니니 한 번 정도는 양보해 줄 수 있었다.

    현 정부와 현성은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현 정부가 먼저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굳이 거절해 척질 필요는 없었다.

    트러블이 생기면?

    그때 해결하면 된다.

    ‘주제도 모르고 날뛰면 밟아 버리면 그만이야.’

    힘을 가지고 있기에 여유도 생겼다.

    현성은 신윤아 그리고 강선영 길드장을 비롯한 간부들과 함께 청와대에 도착했다.

    “이모탈 길드다!”

    “뇌신이야!”

    파파파팍!

    연속적으로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현성이 차량 안에서 얼굴을 찌푸렸다.

    청와대 내부가 기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현성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1인 레이드에 성공한 베일 속의 플레이어가 청와대에?

    -뇌신, 이지용 대통령의 초청을 받다.

    -1,000조 원의 플레이어, 이지용 대통령, 표트르 대통령 청와대에서 삼자대면.

    ‘아, 이 미친놈이…….’

    현성은 여태까지 일부러 신상을 가리고 다녔다.

    그런데 그걸 뻔히 아는 이지용 대통령이 현성이 도착하기도 전에 언론에 이 사실을 터트려 버렸다.

    현성은 지금 정장 차림이었다.

    이대로 차 밖으로 나가면 현성의 모습이 고스란히 언론에 공개되어 버린다.

    ‘그냥 돌아갈까?’

    여기서 차를 돌려 이모탈 길드로 돌아가면?

    러시아의 표트르 대통령도 이모탈 길드로 기수를 돌릴 것이다.

    그럼 이지용 대통령은 제대로 개망신을 당하게 된다.

    “기자들 출입을 차단해 달라고 청와대 측에 요청하겠습니다.”

    현성의 표정이 불편해진 것을 알아차린 강선영 길드장이 재빨리 스마트폰을 들었다.

    한데 통화 내용이 그다지 순조롭게 흘러가지는 않는 듯 보였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대통령 각하께서 지금 표트르 대통령과 함께 최현성 플레이어를 마중하기 위해 나가고 있으십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그걸 왜 그쪽에서 결정합니까? 최현성 플레이어는 언론에 얼굴을 알릴 생각이 없습니다!”

    -뭐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숨깁니까? 외국에서 국위 선양한 영웅 아닙니까? 이번 기회에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준다고 생각하세요.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작자가 현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이럴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 번 양보해 주면 그냥 감사하게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정치인이라는 놈들은 감사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걸 바란다.

    “저한테 전화 넘기세요.”

    현성의 말에 강선영이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넘겼다.

    “나 최현성인데.”

    -아, 최현성 플레이어, 반가워요. 나는 청와대 비서…….

    “기자들 당장 철수시켜. 안 그러면 바로 차 돌려서 이모탈 길드로 돌아갈 거니까.”

    -이봐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참고로 이대로 차를 돌려서 이모탈 길드로 돌아가게 되면 그 사유는 비서실장이 너무 예의가 없고 거만해서가 될 거야.”

    현성의 말에 비서실장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기자들 철수시킬 생각이 없나 보네? 아직도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상황 판단이 안 되지? 기사님, 당장 차 돌려 주세요!”

    -아닙니다! 당장 기자들 철수시키겠습니다!

    현성의 외침과 동시에 스마트폰에서 다급한 비서실장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진작 그럴 것이지, 누가 누구를 이용하려고 들어?”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전화를 뚝 하고 끊어 버렸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자다.

    한데 이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인물들이 많았다.

    선거철에는 국민들과 악수를 하고 식사를 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선거만 끝나면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현성은 공직자가 아니라 민간인이다.

    대통령이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뭐라고 지시를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대통령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현성과 이모탈 길드를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

    ‘사전 협조 요청을 하고 애걸복걸해도 들어줄까 말깐데, 어디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고 있어?’

    현성의 입장에서는 당장 차를 돌려 이모탈 길드로 돌아가지 않은 것만 해도 엄청난 배려를 해 준 셈이다.

    그 배려를 대통령이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잠시 후 청와대 앞에 모여 있던 기자들이 모두 철수했다.

    기자들이 쉽게 떠나지 않으려고 하자 청와대 경호원들까지 동원되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 봐야 하나.’

    스스로가 높은 자리에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꼭 지랄을 하지 않으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달칵!

    기자들이 완전히 철수하자 현성이 차량에서 내렸다.

    그런 현성의 눈에 똥 씹은 표정의 이지용 대통령이 보였다.

    저벅저벅.

    현성이 이지용 대통령을 향해 다가갔다.

    “기껏 초대해서 와 줬더니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제가 와서 불편하세요? 저 그냥 돌아갈까요?”

    현성의 말에 이지용 대통령이 눈꺼풀을 부들부들 떨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이지용 대통령이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청와대의 초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현성 플레이어.”

    “저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대통령님.”

    현성이 손을 내밀었다.

    이지용 대통령도 손을 내밀어 마주 잡았다.

    ‘나름 다 대비를 했네.’

    이지용 대통령은 몸 곳곳에 마력 탐지 아이템과 스킬 방어 아이템들을 덕지덕지 착용하고 있었다.

    현성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하긴 바보가 아니라면 대비를 했겠지.’

    이지용 대통령의 전임자였던 박기만이 현성에게 토사구팽당했다는 사실 정도는 파악하고 있을 거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표트르 대통령님이 기다리고 있으십니다.”

    “알겠습니다.”

    이지용 대통령의 말에 현성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또 여기네.’

    이지용 대통령이 현성을 데리고 간 곳은 청와대의 외빈 접견실인 상춘재였다.

    ‘여기서 박기만 대통령을 보내 버릴 건수를 잡았는데.’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번에는 쉽지 않겠어.’

    청와대의 새로운 주인은 나름대로 대비를 단단히 했다.

    “표트르 대통령님이 왜 갑자기 최현성 플레이어를 찾아온 겁니까?”

    상춘재로 들어가기 전 이지용 대통령이 현성에게 물었다.

    이에 현성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저도 모르죠.”

    “윌슨 대통령과 같은 이유입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윌슨 대통령과 무슨 거래를 하셨습니까?”

    “그걸 제가 대통령님께 알려 드려야 할 이유가 있나요?”

    현성과 이지용 대통령의 문답을 비서실장과 강선영 길드장이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조짐이 좋지 않다.

    꼭 사고가 터지기 직전의 분위기다.

    “기왕이면 그 거래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인 나도 거래 내용을 일정 부분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아!”

    현성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지금부터 네 피를 빨아먹을게.’라는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한다는 말인가?

    현성은 굳이 청와대에서 표트르 대통령을 만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 양보를 해서 청와대로 왔다.

    반면 이지용 대통령은 어떤가?

    이지용 대통령이 이번 일에 도움을 준 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자신의 이득을 위해 기자들을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대놓고 과실을 나눠 달라고 요구한다.

    ‘진짜 국익을 위해서 한 말이면 도와주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도와줬겠다.’

    현성도 한국인인 만큼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은 선에서 조국에 도움을 줄 용의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런 인간이었다면 갑자기 현성을 청와대로 부르지도 않았을 거고, 기자들을 동원하지도 않았을 거다.

    ‘국회의원 시절에 했던 짓만 봐도 답이 나오지.’

    처세술의 달인.

    말 바꾸기의 달인.

    이지용 대통령은 국익보다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와 이익을 우선시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의 입에서 국익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 말을 과연 신용할 수 있을까?

    현성이 몸을 돌려 강선영 길드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선영 길드장님.”

    “예, 자문위원장님.”

    “제 말이 맞죠?”

    “예?”

    “제가 그랬잖아요. 정치인이라는 놈들은 사람이 한번 양보해 주면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호구로 본다고. 지금도 보세요. 하나를 양보해 줬으면 고마워할 줄 알아야지, 오히려 얼굴에 철판 깔고 당당하게 더 달라고 요구를 하잖아요.”

    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지용 대통령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화가 나서였다.

    “아니, 이번 일에 자기가 도움 준 게 뭐가 있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떡고물 나눠 달라고 요구를 하죠?”

    현성의 물음에 강선영 길드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신윤아를 비롯한 이모탈 길드의 간부진도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현성은 태연했다.

    “양심이 없는 건지 지능이 떨어지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네.”

    뿌드득.

    현성의 중얼거림을 들은 이지용 대통령의 입에서 이 갈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촉즉발의 상황.

    현성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지용 대통령을 바라봤다.

    폭발할까?

    아니면 참을까?

    “후우! 제가 무례한 요구를 한 것 같군요. 실례했습니다, 최현성 플레이어.”

    이지용 대통령의 선택은 후자였다.

    ‘박기만보다는 낫네.’

    아무리 화가 나는 상태라도 현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머리 정도는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 이지용 대통령과 현성이 정면으로 각을 세운다?

    그럼 손해를 보는 건 이지용 대통령뿐이다.

    “일단 들어가시죠. 표트르 대통령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지용 대통령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상춘재로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최현성 플레이어.”

    상춘재에 들어서기 무섭게 표트르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성을 반겼다.

    “저도 반갑습니다, 표트르 대통령님.”

    현성과 표트르 대통령이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지용 대통령님.”

    표트르 대통령이 현성과 인사를 끝낸 후 이지용 대통령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인 내가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라는 말이지.’

    이지용 대통령은 속으로 열불을 삼키며 억지로 표정을 관리했다.

    “별말씀을.”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어 참으로 큰 영광입니다. 저도 조인족 토벌 당시 실시간으로 최현성 플레이어의 활약을 지켜봤습니다. 정말 그 누구도 쉽게 낼 수 없는 결단이자…….”

    표트르 대통령이 현성에 대한 칭찬을 청산유수처럼 쏟아냈다.

    ‘차라리 기자들을 철수시키길 잘했군.’

    이지용 대통령은 본래 상춘재에서 진행되는 삼자회담을 국내외 기자들에게 공개할 생각이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오히려 더 큰 망신만 당할 뻔했다.

    반대로 현성에 대한 지지도는 더욱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을 것이다.

    러시아의 절대자인 표트르 대통령이 누군가를 이렇게 대놓고 칭찬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니, 이걸 칭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사실상 아부에 가까웠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이지용 대통령은 현성의 위상에 대한 평가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이지용 대통령이 이런 생각을 하든 말든 현성과 표트르 대통령은 통역을 끼고 서로 칭찬 일색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시간이 흘러도 절대 본론이 나오지 않았다.

    “저는 공무가 바빠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이지용 대통령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이상 절대 본론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내가 김칫국을 제대로 마셨군.’

    현성은 물론 표트르 대통령 역시 이지용 대통령에게 떡고물을 나눠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공무가 바쁘시면 어서 가 보셔야겠군요.”

    현성과 표트르 대통령은 빈말로라도 이지용 대통령을 붙잡지 않았다.

    냉혹한 현실을 실감한 이지용 대통령이 자신의 일행과 함께 상춘재를 떠났다.

    “이제야 방해꾼이 사라졌군요.”

    표트르 대통령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현성을 찾아 한국까지 날아온 진짜 이유가 나올 차례였다.

    “최근 미국과 상당히 가깝게 지내시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잘해 주니까요.”

    미국은 현성이 필요한 걸 알아서 챙겨 준다.

    그것도 후불이 아닌 선불로 말이다.

    “우리 러시아도 최현성 플레이어와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습니다.”

    “전설 등급 아이템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네요.”

    “관심이 없을 리가 없지요.”

    플레이어의 전력이 상승하면 갑작스러운 차원 게이트 생성이나 몬스터 웨이브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게 된다.

    국가 안정성이 올라가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플레이어의 전력이 강해지면 수익도 늘어난다.

    강해진 플레이어들이 더 손쉽게 몬스터를 사냥해 더 많은 마석과 아이템을 손에 넣을 테니까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플레이어의 전력 상승은 국력 상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설 등급 아이템을 손에 넣고 싶으시다면 이모탈 길드 러시아 지부를 설립하시고 경매에서 승리하시면 됩니다.”

    현성이 정론을 이야기했다.

    표트르 대통령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최현성 플레이어께서는 습득하신 전설 등급 아이템을 모두 경매에 내놓으실 생각이십니까?”

    표트르 대통령의 물음에 현성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역시 일부만 경매에 내놓으실 생각이시군요.”

    현성은 개인이다.

    이모탈 길드도 현성이 소유한 사기업에 불과하다.

    당연히 손에 넣은 전리품을 온전히 공개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그 전리품을 공정하게 판매할 필요도 없었다.

    주고 싶은 사람이나 국가에 사적으로 따로 챙겨 줘도 타인이나 타국이 간섭할 근거가 없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몸이 달아오른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한국으로 날아온 것이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통령 역시 전설 등급 아이템이라는 특별한 만찬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얼마 전부터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회복 계열, 방어 계열, 뇌전 계열, 화염 계열 스킬북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더군요.”

    표트르 대통령의 말에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다 알고 찾아온 거네.’

    표트르 대통령은 미국이 사 모은 스킬북이 누구 손에 들어왔는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표트르 대통령께서도 스킬북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현성의 말에 표트르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별로 효과를 볼 것 같지는 않은데.’

    이미 4개의 스킬이 준신화 등급으로 성장했다.

    현성은 준신화 등급에 머물러 있는 4개의 스킬을 신화 등급으로 승급시키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성장의 재료가 되는 스킬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하지만 전설 등급이 아닌 일반, 희귀, 영웅 등급의 스킬북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아마 웬만한 수량으로는 이미 준신화 등급에 오른 4가지 스킬의 성장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러시아가 미국만큼 대량의 스킬북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현성의 떨떠름한 표정을 확인했음에도 표트르 대통령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게 제가 드릴 선물입니다. 일단 확인해 보시죠.”

    표트르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행원 중 하나가 공손히 스킬북 하나를 현성에게 진상했다.

    현성이 스킬북을 받았다.

    그 순간 스킬북의 정보가 현성의 눈앞에 펼쳐졌다.

    탐식의 서 - 유일 영웅 등급

    -액티브 스킬북

    -직접 사냥한 대상의 사체를 탐식합니다.

    -탐식한 사체의 스텟 중 일부를 영구적으로 흡수합니다.

    -성장형 스킬입니다.

    -액티브 스킬북 탐식의 서 - 유일 영웅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순간 눈이 돌아갈 뻔했다.

    ‘이런 미친, 스텟의 일부를 영구적으로 흡수한다고?’

    현성의 경우 예외이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스텟을 늘리기 위해서는 무조건 레벨 업을 해야 했다.

    현성은 비약과 업적을 통해 스텟을 늘렸다.

    하지만 이제 비약으로 인한 스텟 증가는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남은 것은 업적을 통한 스텟 증가뿐이었다.

    ‘하지만 이 스킬이 있으면?’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계속해서 스텟을 올릴 수 있다.

    거기다 유일 등급에 성장형 스킬북이었다.

    성장 방법만 알아내면 계속해서 성장시켜 전설 등급이나 신화 등급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다.

    “제 선물이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표트르 대통령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현성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 스킬북을 왜 선물이라고 하시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탐식의 서는 타국의 플레이어에게 넘길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탐식의 서를 자국 플레이어에게 준다면?

    러시아는 훗날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

    “보물은 그에 합당한 주인이 있기 마련이죠. 러시아에는 그 보물을 감당할 만한 인재가 없습니다.”

    개소리였다.

    보물을 감당할 인재가 없다?

    그럼 직접 만들 나라가 러시아다.

    ‘뭔가 있는 거 같은데.’

    표트르 대통령은 아이템 정보에 나와 있지 않은 단점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플레이어의 사체에서 나온 스킬북인가?’

    아이템 정보에 나와 있지 않은 장단점은 스킬을 직접 익혀야지만 파악할 수 있다.

    탐식의 서가 몬스터에게서 드롭된 스킬북이든, 각성 순간 가지고 있던 스킬이 스킬북으로 화한 것이든 간에.

    과거 탐식의 서를 익혔던 플레이어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선물은 마음에 드십니까?”

    표트르 대통령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숨겨진 단점이 있다고 해도 스텟을 늘려 주는 유일 등급 성장형 스킬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현성이 물었다.

    이 스킬북은 순수한 의미의 선물이 아니다.

    대가를 바라고 가지고 온 뇌물에 가까웠다.

    뇌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경매에 붙일 전설 등급 아이템 물량의 20%를 원합니다.”

    표트르 대통령이 담담하게 자신이 생각한 보물의 가치를 말했다.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시는 것 같은데요?”

    현성의 말에도 표트르 대통령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전설 등급 아이템을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겁니다. 우리 러시아는 단지 탐식의 서를 통해 전설 등급 아이템을 선점할 기회를 얻고 싶을 뿐입니다.”

    ‘미국이랑 서로 짜기라도 했나?’

    어째 원하는 게 똑같았다.

    “탐식의 서가 가진 가치가 그 정도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탐식의 서가 대단한 스킬북이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탐식의 서가 1,000조 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투자 명목으로 1,000조 원어치의 스킬북을 현성에게 선물했다.

    어디 그뿐인가?

    선불로 300조 원에 해당하는 스킬북을 넘겨주기도 했다.

    그에 반해 러시아의 선물은 특별한 영웅 등급 스킬북 하나였다.

    당연히 이 둘을 동일하게 대우해 줄 수는 없었다.

    탐식의 서를 얻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한 바가지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최현성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물을 몇 가지 더 준비해 봤습니다.”

    표트르 대통령이 손을 들자 보좌관이 서류 한 장을 현성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전과 천연가스 생산 지대의 토지 장기 임대 계약서입니다.”

    “유전과 천연가스 장기 임대 계약서요?”

    현성이 화들짝 놀랐다.

    유전과 천연가스는 과거에 비해 그 중요도가 많이 떨어졌다.

    마석의 등장 때문이다.

    하지만 그 효용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마석은 결코 저렴한 에너지원이 아니다.

    의학, 건설, 제조 등 수많은 분야에 소모되는 만큼 아직까지 생산량보다는 소모량이 많았다.

    당연히 마석만으로 전 세계인들이 소비하는 에너지를 충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에 세계 각국은 마석을 희석시켜 석유, 가스, 석탄의 효율을 높이는 선에서 타협을 봤다.

    국가 재정이 좋지 않은 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순수한 석유, 가스, 석탄을 사용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도 극빈층의 경우 순수한 석유, 가스, 연탄으로 난방을 유지했다.

    석유와 가스가 완전히 퇴출되었다면 현성이 게스피트를 비롯한 VVIP들에게 경유로 구동되는 대형 발전기를 팔아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아직까지 충분히 값어치가 있어.’

    전문가들은 시간이 흘러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대폭 늘어나고 레벨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 되어야만 마석이 온전히 석유와 가스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 러시아는 현재 한국과 천연가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마 최현성 플레이어께 무상으로 장기 임대해 드릴 지역의 매장량이라면 한국 전체 소비량을 감당하고도 남을 겁니다.”

    무상 장기 임대.

    분명히 들었다.

    “방금 무상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무상입니다.”

    “임대 기한은 어떻게 되죠?”

    “임대 기한은 100년입니다.”

    표트르 대통령이 자신만만한 어조로 대답했다.

    100년.

    그거면 충분했다.

    그 이상 시간이 흐르면 석유와 가스는 완전히 똥값이 될 확률이 높았다.

    ‘이놈들이 돈이 없으니까 자원으로 밀고 들어오네.’

    러시아의 GDP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돈으로는 크게 힘을 쓰기 힘들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원으로 따지면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천연 에너지 자원이 없는 나라다.

    석유는 말할 것도 없고 가스 역시 전체 소비량의 1% 정도만 자체 생산하고 있다.

    나머지는?

    당연히 모두 수입이다.

    “에너지 사업을 손에 쥐고 있으면 한국에서 운신하기가 월등히 편해지실 겁니다.”

    표트르 대통령의 말에 현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한민국에서 마석을 생산하는 플레이어를 가장 많이 보유한 조직이 바로 이모탈 길드다.

    현성은 이미 에너지 사업의 큰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까지 손에 움켜쥔다면?

    대한민국 에너지 사업을 독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족하셨습니까?”

    표트르 대통령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청와대에서 벌어진 삼자 회담은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과 러시아를 비교하는 기사가 수도 없이 나왔다.

    그와 함께 이모탈 길드와 1,000조 원의 플레이어라는 이름이 다시금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현성이 미국, 러시아와 어떤 협의를 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떤 기자는 현성이 3,000조 원의 플레이어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현성은 그런 세계인들의 관심에 대해 신경을 껐다.

    현재 현성은 러시아가 선물로 준 탐식의 서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테스트를 해 보자.’

    러시아가 말하지 않은 하자가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엄청나게 나쁜 단점은 아닐 것 같은데.’

    러시아는 현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만큼 겉만 번지르르한 쓰레기를 선물이랍시고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성은 일단 근처에 있는 일반 등급 던전으로 향했다.

    ‘오랜만이네.’

    흡혈 박쥐 던전.

    플레이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비인기 던전이자 현성에게 용혈검이라는 보물을 선물해 준 곳이었다.

    “와라!”

    현성이 광역 도발 스킬을 사용했다.

    후드드득!

    그와 함께 흡혈 박쥐들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현성은 방어 스킬을 사용한 뒤 그대로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했다.

    파지지직!

    칠흑빛 뇌전의 파도가 흡혈 박쥐 무리를 휩쓸었다.

    “음.”

    현성이 재로 가득한 바닥을 바라보며 탐식의 서를 발동시켰다.

    콰직!

    검붉은 외형의 거대한 입이 나타나 재로 변한 흡혈 박쥐들의 사체를 먹어 치웠다.

    -탐식의 서가 탐식한 사체의 스텟 중 일부를 영구적으로 흡수했습니다.

    -마력 스텟이 2 증가했습니다.

    ‘오!’

    현성의 입에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올리기 힘든 스텟이 무려 2나 늘어났다.

    현성은 잔뜩 신이 났다.

    “뚱아.”

    현성이 뚱이를 소환했다.

    “싹 끌어와.”

    현성의 지시를 받은 뚱이가 귀차니즘이 가득한 표정으로 흡혈 박쥐 던전의 몬스터들을 몰아왔다.

    “아아아아아!”

    현성 역시 도발 스킬을 사용해 최대한 많은 몬스터들을 끌어모았다.

    파지지직!

    다시금 흡혈 박쥐 무리가 떼 몰살을 당했다.

    현성이 탐식의 서를 사용했다.

    -탐식의 서가 탐식한 사체의 스텟 중 일부를 영구적으로 흡수했습니다.

    -마력 스텟이 3 증가했습니다.

    ‘엄청 좋잖아.’

    이런 개꿀 스킬북을 완전 헐값에 얻었다.

    현성이 정신없이 흡혈 박쥐 무리를 사냥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탐식의 서가 흡혈 박쥐 사체에 질렸습니다.

    -탐식의 서가 새로운 먹이를 원합니다.

    ‘아니, 무슨 스킬이 이따위야?’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닌 스킬이다.

    그런데 호불호가 아주 극명했다.

    ‘좋아. 원하는 대로 해 준다.’

    던전은 옮기면 그만이다.

    * * *

    -크아아아앙!

    썬더 라이온들이 포효를 터트리며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지지직!

    썬더 라이온들이 날린 뇌전이 현성의 앞에서 그대로 U턴했다.

    -캬아아악!

    썬더 라이온들이 자신이 날린 공격에 자신이 당하며 무력하게 쓸려 나갔다.

    ‘부지런히 잡아 보자.’

    현성은 도발 스킬과 뚱이를 이용해 썬더 라이온들을 한자리로 끌어모았다.

    그 뒤에는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해 손쉽게 썬더 라이온들을 사냥했다.

    -탐식의 서가 탐식한 사체의 스텟 중 일부를 영구적으로 흡수했습니다.

    -체력 스텟이 2 증가했습니다.

    ‘스텟이 늘어나는 폭은 몬스터의 레벨이나 등급과 관련이 없나 보네.’

    흡혈 박쥐와 썬더 라이온은 비슷한 비율의 스텟을 줬다.

    ‘좀 아쉽네.’

    저레벨 몬스터는 한 번에 대량의 몰이사냥이 가능하다.

    하지만 고레벨 몬스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던전의 숫자도 적고 몬스터의 숫자도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아.’

    스텟을 공짜로 올려 준다.

    더군다나 현성에게는 용병 지원이 있다.

    타 차원으로 넘어가면 혼자 독점하기 힘든 고레벨 몬스터이 사방에 널려 있다.

    업적을 통해 스텟을 늘리고 탐식의 서로도 스텟을 늘린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완전 꿩 먹고 알 먹기였다.

    ‘그런데 이놈은 왜 성장했다는 메시지가 안 떠?’

    탐식의 서는 현성이 익혔던 스킬들을 단 하나도 흡수하지 못했다.

    스텟을 늘려 주는 스킬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몬스터의 사체를 먹고 성장한다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탐식의 서가 성장했다는 메시지가 단 한 번도 뜨지 않았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성장시키는 거야?’

    탐식의 서를 어서 빨리 전설 등급이나 신화 등급으로 성장시키고 싶었다.

    한데 도대체 뭘 먹고 성장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템은 아니야. 불사의 서랑도 달라.’

    불사의 서는 회복 계열 아이템을 흡수함과 동시에 몬스터의 피를 흡수해 성장한다.

    탐식의 서도 분명 아이템이 아닌 무언가를 흡수해 성장할 게 확실했다.

    ‘일단 부딪쳐 보자.’

    해결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괜히 끙끙거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

    부지런히 사냥을 하다 보면 뭔가 방법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표트르 대통령은 이걸 왜 나한테 넘긴 거지?’

    잡는 몬스터 대비 늘어나는 스텟으로 볼 때 탐식의 서는 그리 효율이 좋은 스킬이 아니다.

    하지만 레벨 업과 특별한 아이템 또는 업적으로밖에 늘릴 수 없는 스텟을 늘어나게 해 준다.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는 지고의 보물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한데 그런 보물을 왜 타국인인 자신에게 넘겼을까?

    아무리 전설 등급 아이템을 원해도 이건 절대 밖으로 돌릴 물건이 아니다.

    ‘분명히 뭔가 하자가 있는 물건인데…….’

    그 하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사냥이나 하자.’

    현성은 생각을 그만두고 다시금 썬더 라이온들을 사냥했다.

    * * *

    “항의 전화가 안 오는군.”

    표트르 대통령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20레벨의 법칙을 초월한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보좌관의 말에 표트르 대통령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괜히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 준 건 아닌지…….”

    보좌관의 말에 표트르 대통령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가지고 있어 봤자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었던 물건이야. 차라리 최현성 플레이에게 넘겨주고 호감을 사는 편이 나아. 그는 돈보다 강해지는 걸 더 좋아하네.”

    1,000조 원 대신 동일한 값어치를 가진 스킬북을 원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처음부터 유전과 천연가스를 들이밀었다면?

    거래가 무산되었을 수도 있었다.

    탐식의 서가 현성과 러시아의 연결 고리가 되어 준 것이다.

    “탐식의 서는 이제 그만 잊어버리게.”

    “네.”

    표트르 대통령의 말에 보좌관이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보좌관의 얼굴에는 짙은 아쉬움이 깔려 있었다.

    사실 표트르 대통령도 아쉬웠다.

    탐식의 서는 옵션만 보면 전설 등급 아이템을 능가했다.

    문제는 효율이었다.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

    동일종의 몬스터를 족히 1만 마리 이상을 잡아먹어야 스텟이 늘어난다.

    문제는 20레벨의 법칙이었다.

    탐식의 서는 플레이어의 레벨에 영향을 받는다.

    플레이어의 레벨이 100레벨이라면 80레벨 이하의 몬스터는 아무리 잡아도 스텟이 늘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한 종의 몬스터를 1만 마리 이상 잡으면 레벨 업을 해 버린다는 점이다.

    몬스터 사체가 잔존 마력으로 변해 마석이나 아이템으로 변하는 경우까지 가정하면, 동일종의 몬스터를 족히 수만 마리는 잡아야 스텟이 올랐다.

    계륵.

    탐식의 서는 러시아에게 있어 계륵 같은 존재였다.

    탐식의 서가 그런 단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러시아는 절대 탐식의 서를 현성에게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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