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파급력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신윤아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굳이 동네방네 알리지도 않았는데도 소문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모탈 길드의 업무를 담당하는 일반 직원들은 세계 각국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일상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큰 혼란을 겪었다.
‘난리가 났네.’
이 사태를 만든 주범인 현성은 태연했다.
원래 전설 등급 아이템은 고유 스킬을 통해 판매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굳이 아이템을 팔지 않아도 포인트가 쭉쭉 쌓이고 있었기에 랭커들을 포섭하는 미끼로 사용한 건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세계 각국 지부 설립이 빨라질 수 있겠어.’
현재 이모탈 길드는 한국에 있는 본사와 일본 지부밖에 없었다.
타국에서 지부 설립을 문의하는 플레이어들이 있기는 했어도 그냥 찔러보기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지했다.
말 한마디만 하면 당장 각국의 랭커들이 모여 지부를 설립할 각오였다.
멕시코 거대 길드의 길드장은 현성이 허락만 해 주면 자신의 길드를 이모탈 길드 멕시코 지부로 바꾸겠다고 연락을 취해 오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전설 등급 아이템의 힘이었다.
‘역시 랭커들 중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별로 없다니까.’
아마 연락을 취한 이들 중에는 전설 등급 아이템을 얻은 뒤 입 싹 닦으려는 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지.’
현성의 휘하에 들어오는 순간 절대 배신을 할 수가 없다.
배신하는 순간 거액을 주고 구입한 스킬이 사라져 버릴 테니까 말이다.
“저, 자문위원장님?”
이모탈 길드의 팀장급 직원이 현성을 불렀다.
“무슨 일이시죠?”
현성의 물음에 길드 직원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입을 열었다.
“방금 백악관에서 연락이 왔는데, 윌슨 대통령이 자문위원장님과 독대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독대요?”
갑자기 미국 대통령인 윌슨이 만나자고 한다.
“정중하게 거절해 주세요. 제가 미국까지 갈 시간이 없어요.”
사라라는 미국인 플레이어의 스킬을 사용하면 금방 갈 수 있겠지만 귀찮았다.
만나 봐야 무슨 소리를 하겠는가.
전설 등급 아이템 달라고 징징거릴 게 뻔했다.
100조 스톤 달러를 받아먹어 놓고 매정하게 거절하기도 그러니 그냥 안 만나는 게 속 편할 것 같았다.
“그게 이미 출발했다고 합니다.”
“출발요? 그게 무슨……?”
“윌슨 대통령이 에어 포스 원을 타고 한국으로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아아!”
현성의 입에서 짧은 한탄이 터져 나왔다.
‘이러면 피할 수가 없잖아.’
설마 약속을 잡기 전에 출발부터 할 줄은 몰랐다.
‘골치 아프게 생겼네.’
이미 비행기를 타고 오고 있는데 기수를 돌려서 다시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측에서 장소를 정하면 그곳으로 오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건 길드장님과 상의해서 결정하세요.”
어차피 윌슨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면 이모탈 길드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해야 한다.
그런 일에 대해서는 현성이 아니라 강선영 길드장이 전문가였다.
“알겠습니다!”
길드 직원이 다급한 표정으로 길드장 집무실로 향했다.
잠시 후.
이모탈 길드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 * *
이모탈 길드가 한창 손님맞이 준비에 바쁠 무렵.
갑작스럽게 날벼락을 맞은 곳이 있었다.
바로 청와대였다.
“윌슨 대통령이 왜 갑자기 방한을 하는 거야?”
외교부를 통해 윌슨 대통령이 평택 미군 기지로 날아오고 있다는 공문을 받았다.
얼마 전 대선을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이지용은 갑작스러운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반쯤 얼이 나갔다.
아니, 이런 좋은 건수가 있으면 미리 이야기를 해 줘야 홍보도 하고 그럴 게 아닌가?
무려 10년 만에 방한이었다.
“당장 신문사에 연락 돌려!”
북한이 사라지고 몬스터가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서 미국의 중요도가 내려가지는 않는다.
미국은 한국의 최우방이고 한국이 가장 많은 상품을 수출입하는 시장 중 하나다.
또 미국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청와대 홍보 팀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지용 대통령은 이번 일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나 하고 골머리를 썩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방한을 하는 거야?”
온다니까 좋기는 한데, 왜 오는지를 몰라 상당히 의아했다.
청와대 홍보 팀의 활약으로 미국 대통령의 방한 소식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이지용 대통령은 평택 미군 기지로 윌슨 대통령을 마중 나갔다.
당연히 대대적으로 기자들을 동원했다.
미국 대통령 10년 만에 방한.
한미 정상회담 성사.
등등 이미 인터넷 기사는 윌슨 대통령의 방한 소식이 점령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에어 포스 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택 미군 기지에 에어 포스 원이 착륙하고 윌슨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지용 대통령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윌슨 대통령을 반겼다.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윌슨 대통령님.”
윌슨 대통령이 웃는 얼굴로 이지용 대통령의 손을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이지용 대통령님.”
찰칵! 찰칵!
한미 양국의 대통령이 악수를 하는 순간 카메라 불빛이 마구 튀었다.
“환영 행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시죠.”
이지용 대통령의 말에 윌슨 대통령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환영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급히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네?”
이지용 대통령은 당황했다.
하지만 윌슨 대통령은 이지용 대통령이 당황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미국 대통령 전용 차량인 비스트에 탑승했다.
그리고…….
부우우웅!
그대로 자리를 떠나 버렸다.
이지용 대통령은 졸지에 닭 쫓던 개 꼴이 되고 말았다.
* * *
부우우웅!
미국 대통령 전용 차량인 비스트가 성조기를 휘날리며 서울 시내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당연히 기자들이 따라붙었다.
내신 외신 가릴 것 없이 카메라를 들고 미국 대통령이 탑승하고 있는 비스트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이모탈 길드다!”
“역시 이모탈 길드로 가는 거였어!”
내신 기자와 외신 기자들이 바로 속보 기사를 썼다.
윌슨 대통령 이모탈 길드 방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 플레이어를 만나러 가는 거겠지?”
“뇌신 말이지? 아마 그럴 확률이 높을 거야. 아니, 확실해!”
“잘하면 그 플레이어 사진을 찍을 수도 있겠어.”
기자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윌슨 대통령의 뒤를 쫓았다.
미국 대통령 전용 차량인 비스트가 드디어 이모탈 길드에 도착했다.
이모탈 길드 앞에는 길드장 강선영과 부길드장 신윤아를 포함한 간부진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반갑습니다.”
“이모탈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윌슨 대통령님.”
강선영 길드장과 윌슨 대통령이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포옹을 했다.
파파파팍!
카메라에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강선영 길드장과 윌슨 대통령이 웃는 낯으로 이모탈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기자들이 따라붙었다.
“내부로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밖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이모탈 길드 소속 경호원들이 기자들을 막았다.
당연히 그런다고 포기할 기자들이 아니었다.
“윌슨 대통령의 방문을 사전에 알고 있으셨습니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윌슨 대통령이 이모탈 길드를 방문한 겁니까?”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이에 대한 대응을 맡은 인물은 신윤아였다.
“이모탈 길드의 부길드장 신윤아입니다. 간단한 인터뷰를 통해 기자님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경호원들의 통제에 따라 지정된 장소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윤아가 기자들을 달래고 있는 사이, 이모탈 길드 내부에서는 현성과 윌슨 대통령의 독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윌슨 대통령님.”
“하하하, 저도 반갑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을 흔쾌히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성과 윌슨 대통령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저를 찾아오신 건지……?”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발동시켜 정확한 목적과 의도를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온몸에 마력 탐지 및 방어 아이템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었기에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다.
“당연히 이번에 경매에 부칠 전설 등급 아이템 때문입니다.”
“그게 윌슨 대통령님이 직접 한국으로 날아오실 만큼 대단한 일인가요?”
“물론입니다. 최현성 플레이어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아이템이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아니지 않습니까?”
윌슨 대통령이 솔직하게 자신의 목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전설 등급 아이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
“제대로 된 값을 치르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경매에 부칠 전설 등급 아이템을 미국에 팔아 주십시오.”
윌슨 대통령의 말에 현성은 말문이 턱 막혔다.
‘무슨 정치인이 이렇게 직설적이야?’
보통 정치인이라 함은 이리저리 말을 빙빙 돌리다 알아듣기 어렵게 용건을 이야기하는 게 정상 아닌가.
“전설 등급 아이템을 원하신다면 이모탈 길드의 미국 지부를 설립하고 정당하게 낙찰받으시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성이 정론을 이야기했다.
“우리 미국이 원하는 건 단지 1~2개의 전설 등급 아이템이 아닙니다.”
“예? 그게 무슨?”
“최현성 씨가 앞으로 판매하실 전설 등급 아이템 전부를 원합니다.”
“전부를 원한다고요?”
“예, 당연히 최현성 씨가 직접 사용하실 아이템은 제외입니다. 하지만 판매하실 예정인 전설 등급 아이템이 있다면 단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미국에 팔아 주십시오. 가장 높은 판매액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윌슨 대통령이 미국에서 한국까지 날아온 이유는 고작 전설 등급 아이템 1~2개 때문이 아니었다.
현성은 전설 등급 몬스터 1인 레이드가 가능한 전 세계 유일의 플레이어다.
CIA는 현성이 비공식적인 방법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던전에 출입하고 있다고 추측했다.
그 추측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바로 전설 등급 아이템의 등장이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규격 외의 존재다. 그에게 있어 전설 등급 아이템의 가치는 랭커들이 영웅 등급 아이템을 바라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아.’
쓸 만한 스킬이라면 직접 익히겠지만 그게 아니면 팔아 버리는 게 이득이다.
윌슨 대통령은 딜을 통해 전설 등급 아이템을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가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윌슨 대통령은 모르지만 현성은 고유 스킬을 통해 얼마든지 전설 등급 아이템을 팔아치울 방법이 존재한다.
물론 20%에 달하는 막대한 수수료를 물어야 하긴 하지만 말이다.
“저는 최현성 플레이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미국은 전설 등급 아이템 구매 대금을 현물로 치를 계획입니다.”
“현물요?”
“예, 회복 계열 스킬북, 방어 계열 스킬북, 뇌전 계열 스킬북, 화염 계열 스킬북. 이 네 가지 종류의 스킬북으로 전설 등급 아이템을 구입하고 싶습니다.”
“설마 저와 거래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스킬북들을 모으셨습니까?”
현성의 물음에 윌슨 대통령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미국 중앙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네 종류의 스킬북 가격만 해도 족히 30조 스톤 달러어치는 될 겁니다.”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미국은 준비성이 철저했다.
현성과의 딜을 위해 미리미리 대비를 해 놓은 것이다.
한 번의 거래를 통해 현성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정확히 파악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유용한 카드를 미리 손에 쥐고 있었다.
윌슨 대통령은 현성이 미국의 용의주도함에 놀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현성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떨어지지 않는 스킬북 가격 때문에 오랜 시간 속앓이를 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범인을 잡았다.
‘이 자식들 때문에 스킬북 가격이 안 떨어진 거였어.’
스킬북 가격 뻥튀기의 주범은 바로 미국이었다.
‘망할 놈의 시키들.’
100조 스톤 달러어치의 스킬북을 사재기한 것도 모자라 30조 스톤 달러어치를 추가로 사재기했다고 한다.
‘이러니까 스킬북 가격이 안 떨어지지.’
미국이 막대한 예산을 동원해 스킬북을 사들였으니 가격이 떨어질 리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30조 스톤 달러어치라.’
그 정도라면 지난번에 승급에 실패한 화염의 서와 천뢰왕의 갑옷을 준신화 등급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한다?’
현성이 고민에 빠져들었다.
“우리 미국은 예치금 성격으로 30조 스톤 달러어치의 스킬북을 선지급해 드릴 수 있습니다.”
윌슨 대통령이 통 크게 나왔다.
“경매에 부칠 물량의 1/5을 비공식적으로 판매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구입자는 이모탈 길드 미국 지부 소속이어야 합니다.”
현성이 먼저 딜을 했다.
“이미 이모탈 길드 미국 지부를 설립할 준비는 끝났습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허락만 하면 바로 가동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1/5은 곤란합니다. 미국은 전부를 원합니다.”
“그건 제가 곤란합니다.”
현성과 윌슨 대통령이 티격태격하며 물량 조절에 나섰다.
하지만 쉽게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1년에 3개 이하의 전설 등급 아이템이 나온다면 전량 미국에 넘기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 나온다면 3개를 제외하고 전부 경매에 부치겠습니다.”
‘1년에 3개?’
윌슨 대통령이 고심에 들어갔다.
1년에 3개는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오히려 윌슨 대통령의 예상보다 많은 물량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현성의 생산량이다.
‘최현성 플레이어라면 전설 등급 몬스터를 발견하는 족족 사냥할 수 있다. 1마리당 전설 등급 아이템이 대략 3~4개 정도 나온다고 가정할 때 결코 많은 양이 아니야.’
미국은 플레이어 세계 최강대국의 면모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설 등급 아이템이 필요했다.
“그냥 1/5로 하시죠.”
윌슨 대통령이 먼저 양보의 뜻을 내비쳤다.
“경매에 9개를 푼다면 미국에 2개를 주십시오.”
윌슨 대통령은 현성의 생산력을 믿었다.
“음…….”
현성이 잠시 고민했다.
아니, 고민하는 척했다.
‘30조 스톤 달러면 300조 원이 넘는 돈이야.’
전설 등급 아이템의 가치를 최대한 부풀려 3조로 치더라도 100개는 넘겨야 다 깔 수 있는 양이다.
“좋습니다.”
현성이 결국 윌슨 대통령의 딜을 받아들였다.
현성은 화염의 서와 천뢰왕의 갑옷을 준신화 등급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 현성에게 30조 스톤 달러어치의 스킬북을 선금으로 주겠다는 윌슨 대통령의 유혹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것이었다.
역시 돈지랄도 해 본 놈이 잘하는 모양이다.
“그럼 계약서를 쓸까요?”
윌슨 대통령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윌슨 대통령이 독대를 끝내고 보좌관들을 불러들였다.
현성 역시 강선영 길드장과 이모탈 길드 소속의 국제 변호사들을 불렀다.
양측의 입회하에 계약서가 완성되었다.
현성이 먼저 사인을 했고 그다음에는 윌슨 대통령이 사인을 했다.
계약 기간은 3년.
그 전에 예치금이 다 떨어지면 계약은 자동 종료된다.
반대로 계약 기간이 끝나도 예치금이 남아 있으면 상호 합의하에 예치금을 반환하거나 계약을 연장하기로 했다.
“미국의 제안을 받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윌슨 대통령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서로에게 득이 되는 거래였을 뿐입니다.”
현성이 윌슨 대통령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팔아야 할 전설 등급 아이템을 일반, 희귀, 영웅 등급 아이템으로 바꾼 것뿐이었다.
그것도 단 한 푼의 수수료도 없이 말이다.
그게 중요했다.
고유 스킬을 이용해 전설 등급 스킬을 팔고 현성에게 필요한 일반, 희귀, 영웅 등급 스킬북을 구매했다면 20%라는 엄청난 수수료가 발생했을 것이다.
이건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계약이었다.
“스킬북은 바로 넘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에어 포스 원에 실어 왔거든요.”
윌슨 대통령의 말에 현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준비성 하나는 철저했다.
“저도 아이템 하나를 바로 넘겨드리겠습니다.”
현성이 아공간에서 삼지창을 꺼냈다.
피어 스킬북은 경매로 팔아먹을 예정이었다.
윌슨 대통령의 보좌관 중 하나가 재빨리 다가와 삼지창을 건네받았다.
“감사합니다, 최현성 플레이어.”
말은 분명히 감사하다고 하는데 윌슨 대통령의 표정은 약간 떨떠름했다.
‘스킬북을 기대했던 모양인데, 그건 못 주지.’
피어 스킬북의 값어치는 삼지창보다 월등히 높다.
앞으로도 아이템 배분은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이었다.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걸 무조건 미국에 준다.
가치가 높은 건?
당연히 경매로 팔아 치울 생각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윌슨 대통령님. 살펴 가시길.”
현성과 윌슨 대통령이 서로의 속내를 감추고 웃는 낯으로 헤어졌다.
윌슨 대통령이 이모탈 길드를 직접 방문한 일은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언론이 윌슨 대통령과 이모탈 길드가 왜 만났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윌슨 대통령도 이모탈 길드도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대중의 호기심이 극에 달했다.
그때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다.
미국에 이모탈 길드 지부가 설립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모탈 길드 미국 지부에 속한 플레이어들이었다.
미국 플레이어 랭킹 1위 죠셉을 시작으로 최상위 랭커들이 모조리 이모탈 길드 미국 지부로 소속을 옮겨 버렸다.
미국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세계 최고다.
그런데 그런 미국의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해 있는 이들이 모조리 이모탈 길드 미국 지부 소속이 되었다.
전 세계를 기준으로 해도 랭커 중에 랭커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 길드 본부도 아니고 지부에 소속된 것이다.
* * *
‘이게 30조 스톤 달러어치라는 말이지.’
현성이 산처럼 쌓인 스킬북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거면 충분해.’
현성이 환한 미소와 함께 스킬북을 움켜쥐었다.
-액티브 스킬 파이어 스피어 – 희귀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액티브 스킬 화염의 서 - 유일 전설 등급이 액티브 스킬 파이어 스피어 – 희귀 등급을 흡수하였습니다.
-액티브 스킬 화염의 서 - 유일 전설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강철 피부 – 희귀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왕의 갑옷 - 유일 전설 등급이 패시브 스킬북 강철 피부 - 희귀 등급을 흡수하였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왕의 갑옷 - 유일 전설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후략……
정신없이 스킬북을 흡수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액티브 스킬 화염의 서 - 유일 전설 등급이 액티브 스킬 화염의 서 - 유일 준신화 등급으로 성장했습니다.
먼저 화염의 서가 준신화 등급이 되었다.
그다음은 천뢰왕의 갑옷 차례였다.
-패시브 스킬 천뢰왕의 갑옷 - 유일 전설 등급이 패시브 스킬 천뢰왕의 갑옷 - 유일 준신화 등급으로 성장했습니다.
‘됐어!’
드디어 성장형 스킬 네 가지를 모두 준신화 등급으로 성장시켰다.
‘뭐가 달라졌을까?’
화염의 서 - 유일 준신화 등급
-액티브 스킬북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화염을 부립니다.
-화염이 공격 대상의 마력을 연소시킵니다.
-공격 대상의 마력을 완전히 연소시킬 때까지 계속 타오릅니다.
-화염이 마력을 타고 계속 번집니다.
-화염이 불태운 마력의 일부를 흡수합니다.
-화염 계열 스킬과 아이템을 흡수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오오오오!”
추가된 건 단 하나뿐이다.
화염이 불태운 마력의 일부를 흡수한다.
하지만 그 하나가 현성에게 꼭 필요한 옵션이었다.
‘대박.’
용혈검, 흡혈공,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에 이어 마력 회복 수단이 하나 더 늘었다.
‘잡몹이 많으면 많을수록 효율이 올라가겠어.’
체력은 몰라도 마력이 바닥날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천뢰왕의 갑옷 차례다.’
천뢰왕의 갑옷 - 유일 준신화 등급
-패시브 스킬북
-물리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스킬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전격 공격에 대한 내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화염 공격에 대한 내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중략……
-체력이 낮아질수록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동일한 비율로 상승합니다.
-체력이 10% 이상 낮아지면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3배 상승합니다.
-받은 피해의 일부를 흡수해 체력과 마력을 회복합니다.
-방어 계열 스킬과 아이템을 흡수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와아아아!”
현성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체력과 마력 흡수 옵션이 붙었다.
연달아 대박이 터진 것이다.
현성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거래하길 잘했어.’
미국에게 스킬북을 받지 않았다면 절대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혹시 모르니까…….’
슬그머니 욕심이 생긴 현성이 회복 계열 스킬북과 뇌전 계열 스킬북을 차례로 흡수했다.
하지만 스킬북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원하는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뭐, 당연한 거지.’
너무 과한 기대를 했다.
사실 이 정도 소량의 스킬북을 흡수해 불사의 서와 흑뢰룡의 숨결을 준신화 등급에서 온전한 신화 등급으로 승급시킬 생각을 했던 것 자체가 현성의 잘못이었다.
* * *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 궁.
이곳에서는 회의가 한창이었다.
“역시 예상대로였습니다. 우리도 최대한 빨리 이모탈 길드 러시아 지부를 설립해야 합니다.”
“미국에게 전설 등급 아이템을 모두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회의에 참가한 내각 각료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이모탈 길드 지부를 설립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겠나?”
표트르 대통령의 물음에 각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이미 최현성 플레이어를 만나 담판을 지었다.
뒤늦게 이모탈 길드 지부를 설립한다고 해서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그것도 이모탈 길드와 제대로 된 협의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사 파견을 준비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다녀오겠습니다.”
각료들의 말에 표트르 대통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국은 윌슨 대통령이 직접 움직였어. 그런데 우리 러시아가 특사를 파견한다? 그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각료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사실 각료들도 알고 있었다.
특사 파견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러시아의 절대자인 표트르 대통령에게 ‘직접 비행기 타고 한국으로 날아가서 최현성 플레이어 비위 좀 맞춰 주고 오십시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실효성 없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특사를 파견하면 최현성 플레이어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불쾌해할 수도 있어. 내가 직접 가겠네.”
이게 표트르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만난 인물이다.
세계 최강대국의 수장과 독대를 할 정도로 사회적 위치가 높아졌다.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특사를 파견했다가는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문전박대를 당할 수도 있다.
표트르 대통령은 최현성 플레이어와 제대로 된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바로 한국으로 가겠네. 준비해 놓은 선물도 함께 가지고 갈 생각이니 준비하도록.”
표트르 대통령이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료들이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몇 시간 후.
러시아 대통령의 전용기 ‘하늘을 나는 크렘린’이 한국을 향해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