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권. LAN (74/225)

┃LAN

공격 패턴이 지나치게 단조로웠다.

거기다.

‘이런 기초적인 콤보밖에 모르나?’

한때 게임장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던 현성에게 게스피트는 너무도 손쉬운 상대였다.

현성은 가볍게 어울려 줬다.

그리고 일부러 핀치에 몰렸다.

그러다가 연속적인 콤보로 순식간에…….

-KO.

승리해 버렸다.

“이게 뭐야?”

게스피트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네놈 방금 뭘 한 거냐?”

“콤보를 쓴 건데요?”

“콤보?”

게스피트의 의아한 얼굴에 현성이 몇 가지 콤보 기술을 알려 주었다.

게스피트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순식간에 현성이 알려 준 콤보 기술을 습득했다.

그 후 다시금 게임에 들어갔다.

현성과 게스피트는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여 주며 치열하게 게임을 이어 나갔다.

아니, 치열한 게임을 이어 나가는 것처럼 꾸몄다.

현성은 일부러 이기고 지고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최소 고용 시간이 지나갔다.

게스피트는 현성의 고용을 연장하고 게임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무려 8시간이 흘렀다.

‘배고프다.’

강철 같은 육체는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허기가 졌다.

거기다 너무 오랜 시간 지구로 귀환하지 못해 살짝 불안했다.

현성이 여기 있는 동안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했다거나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저, 게스피트 님, 이제 그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벌써?”

게스피트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예.”

“음, 아쉽구나. 좋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또 부르도록 하마.”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말해 보아라.”

“게스피트 님의 세계에서는 차원 게이트가 열리지 않습니까?”

현성은 지구의 미래가 궁금했다.

게스피트는 자신을 마계의 마왕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마계든 어디든 지구와 마찬가지로 독립된 차원인 건 확실했다.

게스피트는 1레벨 플레이어로 각성했고,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었다.

현성은 마계의 상황을 통해 지구에서 연속적으로 열리는 차원 게이트가 언제쯤 안정화될지 알고 싶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 이후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신화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는지, 언제까지 계속해서 몬스터들의 침공을 받아야 하는지 모든 게 궁금했다.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구나.”

“물론입니다.”

“안타깝지만 난 네가 사는 세계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 알려 줄 수가 없다.”

“예?”

알려 주기 싫다가 아니다.

분명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네가 사는 차원은 아직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동맹이라도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차원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하거나 정보를 주는 건 협정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게스피트의 말을 들은 현성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협정요?”

현성의 물음에 게스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누구와 협정을 맺은 겁니까?”

“알려 주고 싶어도 더 이상은 알려 줄 수가 없다.”

“그 굴레라는 걸 벗어나면 진실을 알 수 있습니까? 왜 갑자기 몬스터가 나타났는지, 왜 갑자기 플레이어들이 생겨났는지 말입니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네가 궁금해하는 진실에 대해서 알게 될 거다. 그러니 기다리거라.”

“알겠습니다.”

미래에 벌어질 일과 차원 게이트,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내지 못했다.

더 높은 등급의 용병을 통해 정보를 얻어 내려는 시도는 실패였다.

하지만…….

‘나한테 꽤 호의적이야. 거기다 분명히 동맹이라고 했어.’

현성이 사는 지구와 마계는 서로 동맹 관계다.

이 정보를 얻어 낸 것만 해도 꽤 큰 수확이었다.

‘고유 스킬로 연결되어 있는 플레이어들의 차원과 내가 사는 차원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야.’

최악의 경우 막강한 능력을 가진 다른 차원의 플레이어들과 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그건 아닌 듯했다.

“저, 게스피트 님,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으십니까?”

“말해 보거라.”

“혹시 신화 등급 스킬북을 대신 구입해 줄 수 있으신지요.”

현성의 말을 들은 게스피트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신화 등급 스킬북의 가격은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구매 등급이 올랐어도 신화 등급 아이템에 대한 정보는 이름과 내용이 전부였다.

“아무리 저렴한 스킬북이라도 수백조 포인트가 필요하다.”

“수, 수백조 포인트요?”

현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100조 스톤 달러를 투자했음에도 불사의 서와 흑뢰룡의 숨결의 성장은 준신화 등급에 그쳤다.

그걸 바탕으로 신화 등급 스킬이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를 정도로 많은 포인트를 소모한다는 사실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수십 조 포인트 정도였다.

설마 수백조 포인트일 줄은 몰랐다.

수백조 포인트라니?

너무도 까마득한 수치였다.

“신의 힘의 일부를 얻는 것이다. 제대로 된 신화 등급 스킬을 얻기 위해서는 수천조 포인트는 있어야 할 거다.”

“혹시 저렴한 스킬북이라는 게 준신화 등급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현성의 물음에 게스피트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맞다. 한데 준신화 등급 스킬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걸 보니 이미 보유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습니다.”

“정말 대단하구나.”

게스피트의 얼굴에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너로 인해 네 세계가 굴레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아지겠구나.”

또다시 굴레라는 말을 했다.

궁금했다.

도대체 굴레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알려 주고 싶어도 알려 줄 수 없다고 했어. 그러니 괜히 물어볼 필요는 없어.’

“게스피트 님, 혹시 신화 등급 비약의 가격을 알 수 있을까요?”

현성의 물음에 게스피트가 피식하고 웃음을 지었다.

“그건 상당히 저렴한 편이지, 60억 포인트 정도면 하나를 구입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60억 포인트.

결코 적은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히 살 수 있어.’

3조 포인트 정도면 충분히 신화 등급 비약을 구입할 수 있다.

“혹시 신화 등급 비약을 저 대신 구매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현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 줄 이유가 없지 않느냐? 난 이미 너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었다.”

게스피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적당한 대가를 지급하겠습니다.”

“포인트로 말이냐? 나에게 만족감을 주려면 최하 수천조 포인트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포인트 대신 다른 대가를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현성이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그게 뭐냐?”

게스피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근거리 통신망을 아십니까?”

“그게 뭐냐?”

게스피트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처럼 싱글 플레이를 즐기거나 2인 대전 게임을 즐기는 것 말고 여러 명이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LAN.

누구나 어릴 적, 인터넷이 되지 않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LAN을 이용해 게임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은 불가능하지만 근거리 통신망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지금까지 싱글로 즐겨야 했던 게임들을 멀티 플레이로 즐길 수 있다.

“여러 명이서 게임을 한다고?”

“예, 아직 판매하지 않은 상품입니다. 수십, 수백 명이 서로 소통하며 게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좋다. 일단 그 물품을 나에게 가지고 와 보거라. 그럼 그 후에 결정을 내리도록 하마.”

조건부 허락이 떨어졌다.

‘조금 이르지만 괜찮아.’

어차피 대량 판매는 불가능한 상품이었다.

자신 혼자 즐기는 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까지 포인트를 물 쓰듯이 쓸 수 있어야 구축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VVIP 중에서도 게스피트나 백화 정도의 재력을 가진 이가 아니면 사용하기 힘들 것이다.

“3일 뒤에 저를 다시 고용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다. 그만 돌아가 보도록 해라.”

게스피트의 허락과 함께 현성이 지구로 귀환했다.

‘같이 게임하고 놀았을 뿐인데 거의 1조 포인트 조금 안되게 벌었네.’

포인트 벌기가 이렇게 쉬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일단 장비부터 구입하자.’

현성이 거실로 나갔다.

“꽤 오래 머무르셨군요. 목적은 이루셨습니까, 주군?”

어두컴컴한 거실에 있던 루시아가 현성에게 물었다.

“안 자고 기다린 건가요?”

“예.”

“다음부터는 괜히 기다리지 마세요. 그냥 자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잠도 안 와서요.”

그 말을 들은 현성은 루시아가 들고 있던 태블릿 PC로 시선을 옮겼다.

스트리밍 중이던 드라마가 정지되어 있었다.

드라마도 볼 겸 겸사겸사 기다린 모양이다.

“다음 판매 작품을 검토하던 중이었습니다.”

루시아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전 아무것도 안 물어봤는데요?”

“으흠, 성과는 좀 있으셨습니까?”

루시아가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네, 아직 애매하기는 한데, 성공 가능성은 꽤 높은 것 같아요.”

현성이 그와 함께 게스피트와 나눴던 대화를 루시아에게 전달해 주었다.

“굴레라……. 저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군요.”

“뭐, 어쩔 수 없죠. 일단 강해지는 것부터 신경 쓰자고요.”

포인트를 모아 강해진다.

그럼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대처할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현성은 직접 발품을 팔아 근거리 통신망 구성에 필요한 장비들을 구입했다.

구입한 장비들은 모조리 아공간에 넣어 버렸다.

그 후에는 게임사들을 방문해 근거리 통신망을 통해 구동이 가능한 프리 서버를 구입했다.

사실 게임사에서 근거리 통신망 구동이 가능한 프리 서버를 판매하지는 않는다.

어떤 회사가 자사 서버 운영에 독이 되는 상품을 판매하겠는가.

하지만 현성이 보수를 약속하며 요구하자 직접 만들어서 제공해 줬다.

현성이 게임 회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구매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대주주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현성은 대외적으로 1,000조 원의 플레이어로 알려져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업을 상대로 적대적 M&A가 가능한 개인이었다.

괜히 거절했다가 회사를 통째로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게임 회사 입장에서는 절대 현성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적당히 현성의 부탁을 들어주고 이를 홍보에 이용하는 게 좋았다.

3일 만에 준비가 모두 끝났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게스피트가 다시금 현성을 고용했다.

-고용주 게스피트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은 예를 눌러 게스피트의 요청을 수락했다.

슈욱!

현성의 모습이 다시금 지구에서 사라졌다.

* * *

3일 전에 봤던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준비는 잘해 왔느냐?”

“물론입니다.”

게스피트의 물음에 현성이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대답했다.

“한번 설치해 보거라.”

“알겠습니다.”

현성이 근거리 통신망 설치를 시작했다.

컴퓨터와 노트북이 여러 대 있었기에 설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끝났습니다.”

“음…….”

그러나 게스피트의 표정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현성은 자신감이 있었다.

“일단 여러 명이 즐겼을 때 재미있는 게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현성은 스X XX프트, 리XX, 디XX로 등의 게임을 깔았다.

“근거리 통신망 [LAN]을 누르시면 접속이 됩니다.”

“그래?”

“예, 이 장비를 통해 다른 이들과 실력을 겨루실 수 있을 겁니다.”

현성은 RTS 게임과 RPG 게임을 동시에 준비했다.

게임사의 주식을 산 것은 RPG 게임을 위해서였다.

“한번 플레이해 보시죠. 수천 명이 동시에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놨습니다.”

이걸 위해 경유를 소모하는 대형 발전기까지 구매했다.

경유는 나중에 판매창을 통해 판매할 계획이었다.

“여러 명이서 같이하면 과연 재미있을까?”

게스피트의 표정은 그리 탐탁지 않았다.

“일단 사용해 보시죠. 만족하시면 그 후에 제 부탁을 들어주셔도 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마. 일단 다시 네 세계로 돌아가 있거라.”

게스피트의 말에 현성은 다시금 지구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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