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권. 일본의 신(?) (70/225)
  • ┃일본의 신(?)

    현성이 전리품을 모두 정리했을 무렵.

    일본 플레이어들이 허겁지겁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는 일본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인 이노우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 플레이어들은 현성을 발견하자마자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일본을 구한 영웅이십니다!”

    “감사합니다!”

    현성이 연신 허리를 숙이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연발하는 일본 플레이어들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감사 인사는 저한테만 할 게 아닐 텐데요?”

    현성의 말에 이노우에 협회장이 이누쿠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정말 장하네, 이누쿠소! 자네가 일본 플레이어의 자존심을 지켰어!”

    “대단하십니다, 이누쿠소 팀장님!”

    이누쿠소에 대한 칭찬이 줄을 이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누쿠소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현성과 이누쿠소가 한창 공치사를 듣고 있을 무렵, 헬기들이 우르르 날아와 지상에 착지했다.

    헬기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쿠나베 총리?’

    한국 사람들이 수도 없이 물고 뜯고 씹은 아쿠나베 총리였다.

    아쿠나베 총리 뒤에는 방송국 사람들로 보이는 카메라맨과 리포터까지 있었다.

    저벅저벅.

    아쿠나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내각 인사들과 방송국 사람들이 현성에게 다가왔다.

    ‘이놈이 뭔 수작을 부리려고 여기까지 왔으려나?’

    “감사합니다!”

    아쿠나베 총리가 현성과 이누쿠소를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더니 흙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아쿠나베 총리를 시작으로 일본 내각 인사들이 모두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일본 도게자였다.

    ‘아, 쇼하려고 왔구나.’

    왜 나타났나 했더니 쇼하려고 온 거였다.

    “두 분의 활약으로 일본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국민들을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 분은 일본을 구원한 영웅이십니다!”

    현성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특별히 문제 될 건 없겠지만 괜히 목소리가 노출되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대신 이누쿠소를 시켰다.

    -네가 가서 생색 좀 내. 그리고 카메라에 얼굴도 공개하고.

    현성이 이누쿠소에게 군주의 외침을 사용해 지시를 내렸다.

    지금은 이누쿠소를 제대로 띄워 줄 차례였다.

    “일본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만 일어나시죠.”

    “이누쿠소 플레이어!”

    아쿠나베 총리가 감격한 표정으로 이누쿠소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숨을 걸고 무리한 작전을 맡아 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작전? 저게 뭔 개소리야?’

    투구 안에 있는 현성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놈들이 단순한 쇼를 넘어 사기극까지 벌이려는 모양이다.

    ‘확 엎어 버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현성이 나설 필요도 없이 이누쿠소에게 지시를 내리기만 하면 된다.

    ‘아니야. 일단 맞춰 주자.’

    현성이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 쇼에 장단을 맞춰 줘서 나쁠 게 없었다.

    현성으로서는 일본 정부의 약점 하나를 추가로 쥐게 되는 꼴이니까 말이다.

    -적당히 장단 맞춰 줘. 뭐라고 하는지 좀 보자.

    현성이 군주의 외침을 사용해 다시금 지시를 내렸다.

    “그저 제 소명을 다했을 뿐입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히로시마시의 방어진을 준비하는 동안 조인족 무리를 유인하는 위험한 작전을 군말 없이 따라 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거기다 설마, 유인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섬멸해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히로시마시를 버리려고 했던 주제에 방어진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거 제대로 뜯어먹을 수 있겠는데.’

    이 거짓말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어느 정도의 금액을 청구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쿠나베 총리가 예상한 것보다 월등히 큰 액수일 것은 분명했다.

    “일단 헬기에 탑승하시지요. 제가 직접 두 분 영웅을 모시겠습니다.”

    현성은 일단 아쿠나베 총리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헬기로 향했다.

    일단 장소를 이동한 뒤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재청구할 생각이었다.

    현성은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자위대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했고 일본 국민들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환영 행사가 끝난 뒤에야 현성과 이누쿠소는 아쿠나베 총리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일본을 구해 주신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아쿠나베 총리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현성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지금까지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 드렸는데.”

    “하하하, 그 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현성의 물음에 아쿠나베 총리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저 일본 정부를 조금 배려해 주셨으면 하는 차원…….”

    아쿠나베 총리가 상당히 길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쉽게 말해 현성과 이누쿠소가 단둘이서 조인족을 상대한 게 일본 정부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와 함께 히로시마 시를 버리려고 했다는 사실도 비밀로 해 달라고 덧붙였다.

    “제가 그렇게 하면 뭘 주실 건데요?”

    현성의 직설적인 말에, 아쿠나베 총리의 이마에는 촉촉한 식은땀이 맺혔다.

    일본 정부는 이미 현성에게 규슈섬과 시코쿠섬의 던전 소유권을 넘겼다.

    더 이상 주고 싶어도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본토인 혼슈섬의 던전까지 모조리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일본은 이미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조금만 더 아량을 베풀어 주시지요.”

    현성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말이 좋아 아량이지 쉽게 말해 공짜로 두루뭉술하게 넘기겠다는 뜻 아닌가.

    “그건 싫은데요. 제가 당장 밖에 나가서 기자들이랑 인터뷰 한번 할까요?”

    현성의 말에 아쿠나베 총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혹시나 하고 던져 봤는데, 바늘 하나가 들어갈 틈도 없었다.

    ‘이미 손해가 너무 큰데.’

    일본은 규슈섬을 잃었다.

    혼슈섬 일부 지역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거기다 현성이 너무 대활약을 하는 바람은 은근슬쩍 던전 소유권에 예외 조항을 붙이려던 짓까지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사실 일본 정부는 조인족 무리가 정리되면 현성이 소유한 던전에 특별세를 물릴 계획이었다.

    본래 던전 소유권이란 던전 입장료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을 의미했다.

    사실상 세금 양도권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찬가지인 거지 세금은 아니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은근슬쩍 특별법을 만들어 현성에게 특별세를 물릴 계획을 세웠다.

    그럼 현성이 가지고 가는 수익의 비율을 상당히 크게 낮출 수 있다.

    한데 이제는 그런 장난을 벌일 수 없게 되었다.

    홀로 1만 마리 조인족을 쓸어버리고 전설 등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현성의 무위 때문이었다.

    조인족 무리를 홀로 쓸어버렸다는 말은 거꾸로 말해서 언제든지 조인족 무리 이상의 난동을 부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막말로 현성이 미쳐 날뛰기라도 하면 일본으로서는 전설 등급 몬스터가 나타난 것과 같은 수준의 피해를 입게 된다.

    아니, 어쩌면 더 심할지도 모른다.

    물론 현성이 몬스터처럼 대학살을 저지를 이유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힘이자 권력이었다.

    또 현재 현성에게 쏟아지는 일본 국민들의 지지는 실로 엄청나다는 말을 넘어서 신드롬이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과도했다.

    한 일본 국민은 인터넷에 현성을 천둥과 번개의 신으로 숭배하는 카페를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반쯤 장난처럼 보이는 이 인터넷 카페에 가입한 사람의 숫자가 하루 만에 100만 명을 넘겼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아무리 수백만 신이 존재하는 나라라지만, 이건 과해도 너무 과했다.

    종교 단체가 아니라 단순한 팬클럽으로 격하시켜 바라본다 해도 그 파급력이 너무 거대했다.

    막말로 현성의 말 한마디에 일본 정재계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 누구도 어찌하지 못할 강력한 무력과 일본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인물.

    불과 하루 만에 현성은 아쿠나베 총리가 감히 올려다보기도 힘들 정도의 거물이 되어 버렸다.

    현성의 말 한마디에 아쿠나베 총리의 연임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이미 대세는 정해졌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절대적인 굴종뿐이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엇이든 내어 드리겠습니다.”

    아쿠나베 총리가 항복 선언을 했다.

    하지만 내심 어느 정도 노림수가 있기는 했다.

    ‘과도하게 준다.’

    현성이 일본 전체를 먹어 치운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과도하게 퍼준다.

    그 후 그 사실을 은근슬쩍 일본 국민들에게 퍼트린다.

    고마운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현성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따른 법이다.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으면 일본 국민들은 현성이 너무 과한 욕심을 부렸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어쩌면 현성이 레이드 한 번을 빌미로 일본의 부를 약탈해 간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때가 되면 현성은 일본의 영웅이 아니라 폭군이 되어 있을 것이다.

    “과한 요구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 규슈섬과 시코쿠섬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완전 면세를 보장해 주세요. 괜히 특별법이니 뭐니 하면서 뒤통수칠 생각하지 마시고요.”

    현성의 말을 들은 아쿠나베 총리는 등줄기가 오싹했다.

    ‘어, 어떻게?’

    정확하게 자신의 계획을 간파했다.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단순한 짐작?

    아니면 내부의 첩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대답이 없으신 걸 보니까 역시 나중에 뒤통수치려고 하셨던 모양이네요?”

    “아닙니다! 규슈섬과 시코쿠섬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완전 면세를 문서로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현성의 말에 화들짝 놀란 아쿠나베 총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멍청한 놈.’

    현성은 당황한 아쿠나베 총리를 보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이누쿠소라는 훌륭한 첩자가 있는 한 아쿠나베 총리는 절대 정보전에서 현성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규슈섬 같은 경우는 완전히 폐허가 됐잖아요?”

    “그렇습니다.”

    “땅값이 많이 떨어졌겠네요.”

    “땅값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본 정부는 보상 차원에서 규슈섬의 생존자들에게 일정 금액의 보상금을 주고 토지 소유권을 사들였다.

    영원히 버려진 땅이 될 수도 있는지라 생존자들은 적은 돈이라도 건지기 위해 일본 정부에 토지 소유권을 팔았다.

    일본 정부는 나중에 규슈섬을 수복하면 제대로 된 계획도시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제가 그 땅을 좀 무상으로 불하받았으면 하는데요?”

    “무, 무상 불하 말씀이십니까?”

    “네.”

    “어느 정도 양을 원하시는지?”

    “깔끔하게 던전 근처 3km 정도만 불하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던전 관리하기가 편하죠.”

    던전 근처는 높은 위험도에도 불구하고 땅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헌터들에게 꼭 필요한 장비점, 식당, 숙박 시설 등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는 유흥 시설이 들어서 있는 경우도 많다.

    “그, 그게…….”

    아쿠나베 총리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유상 불하면 모를까 무상 불하라니, 완전 날강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쿠나베 총리가 할 말은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아쿠나베 총리가 속으로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과도하게 내줄 각오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막상 내어 주려다 보니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여론이 뒤집히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아쿠나베 총리가 와신상담의 마음가짐으로 보이지 않게 칼을 갈았다.

    하지만 그 칼을 뽑을 수 있는 날이 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전설 등급 몬스터 슬레이어인 현성과 과연 척질 수 있을까?

    그것도 조인족 무리로 인해 고레벨 플레이어의 전력을 절반 이상 날려 먹은 일본이 말이다.

    “아, 그리고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저한테만 모든 보상이 들어오는 건 불공정한 것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살점은 물론 뼈까지 통째로 씹어 먹었으면서 왜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다른 일본인 플레이어들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누쿠소 님은 다르죠. 목숨을 걸고 조인족 무리와 싸운 영웅 아닙니까?”

    “그렇죠. 맞습니다.”

    일본 정부의 실책을 감추기 위해 어떻게든 이누쿠소를 띄워야 하는 아쿠나베 총리의 입장에서는 결코 나쁜 말이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이누쿠소 님께 어떤 보상을 생각하고 있으신가요?”

    “일단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 자리를 드릴 생각입니다. 일본 플레이어의 귀감이 되신 분이니 당연히 그에 합당한 대접을 해 드려야죠.”

    “고작 그걸로 말입니까?”

    “예?”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도 겸직하게 하세요. 상황 판단도 못 하는 현 장관보다는 이누쿠소 님이 100배는 더 잘하실 겁니다.”

    빠직.

    아쿠나베 총리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이건 엄연히 내정간섭이었다.

    왜 한국인인 현성이 일본의 장관 자리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말인가?

    “싫으세요?”

    현성의 물음에 아쿠나베 총리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장관 자리는 제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각 관료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후에…….”

    “또 몬스터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사람한테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자리를 맡기려고요?”

    현성이 아쿠나베 총리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인사를 단행하니까 지금 일본이 이 모양 이 꼴 난 거 아닙니까?”

    현성의 질책에 아쿠나베 총리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아쿠나베 총리의 말에 현성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아쿠나베 총리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조금만 더 나가면 현성이 자기 마음대로 총리도 갈아 치울 것 같았다.

    “그리고 일본의 영웅인 이누쿠소 님께 물질적인 보상은 어느 정도 해 주실 생각입니까?”

    “물질적인 보상요?”

    “예, 외국인인 제가 던전 소유권을 받았는데 자국인인 이누쿠소 님도 동일한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 그게 무슨……?”

    현성에게 넘어간 던전만 생각해도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누쿠소에게도 던전을 넘기라니?

    용기가 가상하긴 했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누쿠소가 크게 활약한 건 없지 않은가.

    “혼슈섬에 있는 던전 소유권 정도면 되려나?”

    현성의 혼잣말에 아쿠나베 총리의 얼굴이 무참히 구겨졌다.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현성 님, 저는 그런 과분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설사 받더라도 국가에 모두 헌납할 생각입니다.”

    이누쿠소의 말에 아쿠나베 총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 장관 자리랑 협회장 자리 겸직하는 정도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것도 저에게는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이 너무 없으시네. 제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누쿠소 님한테는 최대한 챙겨 드리고 싶은데.”

    현성의 말에 아쿠나베 총리의 이마에 다시금 힘줄이 돋아났다.

    ‘챙겨 주려면 자기 거 뚝 떼서 챙겨 줄 것이지, 왜 우리 나라 살림을 마음대로 떼 주려고 하는 거야?’

    현성이 받기로 한 규슈섬이나 시코쿠섬의 던전 중 몇 개를 떼어서 주면 된다.

    그런데 그러겠다는 말은 절대 안 한다.

    “뭐, 본인 뜻이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현성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

    아쿠나베 총리는 일이 이 정도에서 마무리된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현성이 마음먹고 깽판을 치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기 때문이다.

    ‘훗날을 기약하자.’

    아쿠나베 총리는 일단 참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국민 여론이 가라앉으면 그때 반격을 모색해야 했다.

    다행히 그 후로는 별다른 문제 없이 대화가 진행되었다.

    현성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표했고 아쿠나베 총리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현성이 일본에 계속 남아 있어 봤자 일본 정부에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현성이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물론 곱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지는 않았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이누쿠소 칭찬하기.

    일본에 이런 훌륭한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누쿠소는 일본 플레이어의 희망이다.

    이누쿠소를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겸 플레이어 협회 협회장으로 삼기로 한 일본 정부의 결정을 지지한다.

    이누쿠소가 있는 이상 일본은 달라질 것이다.

    현성의 인터뷰는 기승전 이누쿠소였다.

    인터뷰 이후 일본인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반쯤 장난이기는 하지만 일본에서 살아 있는 신으로까지 추앙받는 현성이 이누쿠소를 높게 평가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누쿠소가 한 건 별거 없지 않느냐는 해외 네티즌들의 주장에 기가 눌려 있던 일본인들이 환호하는 건 당연했다.

    이누쿠소는 어느새 일본인들의 상징이자 자존심이 되었다.

    반면 현성의 인터뷰에 일본 정부는 적지 않게 당황스러워했다.

    이누쿠소를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 자리에 앉힐 계획이기는 했지만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까지 겸직시킬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성이 공식적으로 지지를 선언한 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누쿠소에게 플레이어 협회장과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을 겸직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누쿠소가 일본 정부에 무척이나 협조적이라는 점이었다.

    엄청난 지지 세력과 권력을 얻었지만 이누쿠소는 항상 자신을 낮췄다.

    또 전과 다름없이 아쿠나베 정권에 충성했다.

    이누쿠소의 이런 모습에 아쿠나베 총리를 비롯한 내각 의원들은 크게 만족했다.

    사실 아쿠나베 정권은 이누쿠소를 영웅으로 대접하면서 은근슬쩍 견제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는 했다.

    상부의 지시를 무시한 점.

    현성과의 친분이 두터운 점.

    인지도가 급상승한 점.

    일본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이 모든 게 권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아쿠나베 정권에게는 큰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누쿠소의 처신이 빛을 발했다.

    결국 아쿠나베 정권은 생각을 고쳐먹고 이누쿠소를 자신들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게 자신들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누쿠소는 플레이어 최초로 일본 정계에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 * *

    현성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좋네.’

    일본어로 가득한 풍경만 보다 한글로 가득한 풍경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푸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공항 밖에서 잔뜩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이었다.

    ‘뭐, 저렇게 많이 왔어?’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장사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결과였다.

    현성이 홀로 조인족 무리를 쓸어버리는 모습이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그때 일본인들 못지않게 흥분한 게 바로 한국인들이었다.

    현성은 이미 와이번 던전 사태로 유명세를 치렀다.

    그런데 와이번 던전 사태가 잠잠해지기도 전에 일본에서 더 큰 대박을 터트렸다.

    한국인들은 현성을 한국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문제는 현성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점이었다.

    현성은 일본에서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얼굴과 목소리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대중은 현성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런 대중의 호기심을 풀기 위해 움직인 것이 바로 기자들이었다.

    기자들은 현성에 대한 작은 정보라도 포착하기 위해 기를 쓰고 공항에 모여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현성이 출구 게이트를 향해 이동했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 아마 이모탈 길드에 와서 진을 칠 게 뻔했다.

    어차피 부딪쳐야 한다면 차라리 공항이 나았다.

    현성을 일단 투구를 착용해 얼굴을 가렸다.

    파파파파박!

    현성이 모습을 드러내자 쉴 새 없이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다.

    ‘얼굴도 안 나오는데 뭘 저렇게 열심히 찍는 거야?’

    현성은 기자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주로 조인족 무리를 처음 상대했을 때의 심정 같은 것을 물어봤다.

    현성은 일본에서 했던 인터뷰와 대동소이한 대답을 들려줬다.

    목소리는 당연히 변조한 상태였다.

    중간중간 현성의 신상 정보를 묻는 질문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어느 정도 인터뷰를 마친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런 현성을 향해 두 무리의 집단이 다가왔다.

    파파파파박!

    그들을 향해서도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어라?’

    현성을 향해 다가오는 무리의 선두에 선 사람들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었다.

    ‘대선 후보들이잖아?’

    거대 당 대선 후보들이 수행원들을 이끌고 현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대선을 앞두고 현성과 인증 샷 한 장 찍으러 온 것 같았다.

    투구 안에 가려져 있던 현성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저것들이 겁도 없이…….’

    현성이 두 대선 후보 중 하나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하면 균형의 추가 확 기울어져 버린다.

    그런데 겁도 없이 기자들이 쫙 깔린 상태에서 현성을 찾아왔다.

    “타국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국을 빛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선 후보 두 사람이 웃는 낯으로 현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현성이 건성으로 인사를 받았다.

    대충 상대해 주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두 대선 후보의 말이 점점 길어졌다.

    ‘이 자식들이 나를 세워 놓고 왜 지들 정책 홍보를 해?’

    말하는 뉘앙스가 은근슬쩍 자신을 지지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제가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제가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았군요.”

    “그럼 이만.”

    현성이 두 대선 후보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누구를 지지하냐는 기자들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아, 귀찮아 죽는 줄 알았네.”

    “그게 다 현성 씨가 너무 잘나가서 그런 거예요.”

    현성을 마중 나온 신윤아가 웃으며 말했다.

    “미리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윤아 씨.”

    신윤아가 이모탈 길드 소속 가드들을 동원해 기자들을 막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집까지 따라올 기세였다.

    아니, 지금도 분명히 미행하는 기자들이 있을 터였다.

    “별거 아닌데요, 뭐. 그나저나 저도 깜짝 놀랐어요. 언제 그렇게 레벨을 올리신 거예요?”

    신윤아가 기자들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지겹도록 들었던 질문이지만 신윤아의 입에서 나오니 지겹게 들리지가 않았다.

    “그냥 열심히 사냥했죠.”

    “그럼 골드 이글 잡았을 때 상황 좀 자세히 알려 주세요.”

    신윤아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현성에게 물었다.

    현성은 웃음을 터트리며 실감나게 전투 상황을 풀어냈다.

    “정말 죽을 뻔하셨네요. 그러게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하신 거예요?”

    신윤아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다음부터 절대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마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등.

    신윤아의 잔소리를 듣던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신윤아가 자신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성이 이룬 성과를 보고 열광한다.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가족들과 통화하며 잔소리를 엄청 들었다.

    루시아도 현성에게 엄청나게 긴 잔소리를 했다.

    잔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현성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신윤아도 똑같았다.

    자신을 걱정하기에 이런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제 말 제대로 듣고 있는 거 맞아요? 왜 자꾸 웃으세요?”

    “그냥 윤아 씨가 제 걱정을 많이 해 주신 게 좋아서요.”

    “제가 무슨 걱정을 했다고 그래요? 아니, 그렇다고 걱정을 아예 안 했다는 건 아니지만…….”

    얼굴을 붉게 물들인 신윤아가 연신 앞뒤가 안 맞는 말들을 쏟아 냈다.

    그 모습이 귀엽게 보여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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