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권. 10,000 대 1 리턴즈 (69/225)
  • ┃10,000 대 1 리턴즈

    애애애애앵!

    조인족 무리를 막기 위해 모여 있던 작전 본부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휩싸였다.

    ‘뭐야?’

    한참 단잠에 빠져 있던 현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지휘통제실로 향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현성의 물음에 일본 플레이어 협회장 이노우에가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골드 이글이 규슈섬에 있던 조인족 무리를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야마구치시를 지나 히로시마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시의 일반인 대피는 끝났나요?”

    “그, 그게, 아직입니다.”

    현성의 인상이 확 일그러졌다.

    후쿠오카 사태 당시 대피 지역을 축소시켜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던가.

    한 번 실수를 했으면 고쳐질 만도 한데 일본은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난리가 났겠군요.”

    “일단 상부에서 철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철수요?”

    “예, 어차피 현재의 전력으로는 골드 이글이 이끄는 조인족 무리를 막을 수 없으니 신속하게 후퇴하라고…….”

    ‘이놈들은 진짜 개선의 여지가 없는 진성 쓰레기네.’

    이건 완전히 규슈 사태의 재판이다.

    규슈 사태에서 일본 정부는 후쿠오카시의 주민들만 대피시켰다.

    그 결과 구마모토시가 무방비 상태로 조인족들의 습격을 받아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일본 정부는 피해가 더 커질 것을 우려해 구마모토시를 포기했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일본 정부는 규슈섬과 가까운 야마구치시의 주민들만 대피시키고 조금 더 먼 히로시마시의 주민들은 방치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히로시마시를 포기해 버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히로시마시의 주민들은 구마모토시의 주민들과 동일한 전철을 밟을 것이다.

    ‘망할 놈들.’

    현성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싫어한다.

    일본 정부가 그간 해 온 행태를 보면 좋아하고 싶어도 좋아할 수가 없다.

    거기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에서는 현성을 죽이거나 납치하기 위해 암살자까지 보냈다.

    그런 나라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그건 일본 국민들의 잘못이 아니야.’

    잘못은 오로지 일본의 정재계를 장악하고 있는 위선자들에게 있다.

    물론 일본 국민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

    그런 위선자들이 나라를 장악할 수 있게 내버려 두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일말의 책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처사였다.

    “최현성 플레이어도 어서 몸을 피하시죠. 얼마 가지 않아 조인족 무리가 들이닥칠 겁니다.”

    “제가 알아서 피할 테니 신경 끄시죠.”

    현성의 말에 이노우에 협회장이 찔끔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현성이 텅 빈 지휘통제실에서 항공사진으로 촬영된 조인족 무리의 이동 경로를 확인했다.

    “주인님, 어서 피하시지요.”

    이누쿠소가 현성에게 다가와 말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대피 완료했습니다.”

    “이누쿠소.”

    “예.”

    “너 일본의 영웅이 되어 볼 생각 없냐?”

    “일본의 영웅?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사카의 영웅이라는 호칭은 이제 약발이 다했잖아. 일본 열도를 구원한 영웅 어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주인님.”

    이누쿠소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을 발했다.

    현성의 노예가 되어 버린 이누쿠소지만 야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도 딸이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일본 최고의 플레이어가 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크나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딸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비밀 요원이 되었다.

    그러다 작전 수행 과정에서 현성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반쯤 포기했다.

    솔직히 말해 일본의 영웅은커녕 일본의 역적이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 야망을 다시 불태울 기회가 생겼다.

    “잘 생각했어. 내 지시를 좀 더 잘 이행하려면 최소한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정도는 되어야지. 넌 나랑 같이 조인족 무리를 막으러 간다.”

    “주인님과 저 단둘이서 말입니까?”

    “그래, 일단 놈들을 다른 지역으로 유인해 보자. 그 후에 공간 이동 계열 스킬로 도망치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이누쿠소는 암살자 계열 플레이어다.

    몸을 숨기고 도망치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다.

    아, 물론 1만 마리가 넘는 조인족 무리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해 본 적은 없다.

    아마 죽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누쿠소는 현성이 어떻게 든 해결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승낙했다.

    “일단 이거 받아.”

    현성이 이누쿠소에게 아이템과 스킬북 들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주군.”

    이누쿠소가 공손히 현성이 건넨 아이템과 스킬북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영웅 등급 공간 이동 계열 스킬북은 예상했다.

    하지만 전설 등급 아이템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림자 망토 - 전설 등급

    -암살 계열 스킬의 위력이 10% 증가합니다.

    -은신 계열 스킬의 효과가 10% 증가합니다.

    -마력을 소모해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를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쓸 만할 거야.”

    “크나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인님.”

    “앞으로도 지금처럼 딴생각하지 말고 충성을 다해. 그럼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줄 테니까.”

    “충심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누쿠소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이누쿠소는 현성의 말을 절대 거역할 수 없다.

    소모품으로 쓰고 버려도 그만이고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려도 이누쿠소는 따를 수밖에 없다.

    한데 현성이 자신에게 전설 등급 아이템을 투자했다.

    ‘날 크게 쓰려고 하신다.’

    이누쿠소는 자신이 일회용 소모품이 아닌 중요한 장기짝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아, 그리고 네 수하 중에 정의감이 철철 넘쳐흐르는 바보 같은 놈 있냐?”

    “있습니다. 상부의 퇴각 조치에 반발해 강제로 지하 벙커에 넣어 놨습니다.”

    “그놈 좀 꺼내 와 봐.”

    “예?”

    “저번에 한번 경험해 보니까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이 인지도 올리는 데 그렇게 효과가 좋더라고. 그놈보고 촬영 좀 하라고 해. 촬영이랑 방송은 이걸로 하고.”

    현성이 아공간에서 실시간 스트리밍이 가능한 장비들을 꺼내 이누쿠소에게 넘겼다.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원활한 통신이 가능한 위성통신 장비였다.

    “알겠습니다.”

    “난 얼굴 가릴 거지만 넌 노출해.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게. 그래야 인지도를 쌓을 거 아니야?”

    “당장 데리고 오겠습니다.”

    이누쿠소가 재빨리 지하 벙커를 향해 달려 나갔다.

    ‘1만 마리가 넘는 영웅 등급 몬스터라…….’

    이누쿠소에게는 다른 지역으로 유인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게 기본 계획이기는 했다.

    하지만 현성은 유인 전에 한번 제대로 싸워 볼 생각이었다.

    용혈검, 흡혈공, 불사의 서, 흑뢰룡의 숨결, 마왕의 갑주 세트,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

    이 정도 조합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의 스킬은 강력한 단일 개체보다는 다수의 약한 개체를 ‘양민학살’ 하는 데 더 효율적이었다.

    ‘무리라고 생각되면 본래 작전대로 진행한다.’

    반대로 섬멸이 가능하다면?

    ‘모조리 쓸어버려야지.’

    이누쿠소와 함께 히어로 영화 한 편 찍어 볼 계획이었다.

    기무라는 동료들에 의해 강제로 지하 벙커에 갇혔다가 상사인 이누쿠소에 의해 구원받았다.

    “네, 임무는 촬영이다.”

    “예?”

    함께 싸우자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고작 촬영이라니?

    “제가 비록 힐러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전투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촬영하면서도 힐 할 수 있잖아. 그래, 안 그래?”

    “그렇습니다.”

    “다시 지하 벙커로 돌아가고 싶어?”

    “아닙니다!”

    “좋아. 그럼 바로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해.”

    “알겠습니다.”

    “이건 중요한 일이다. 일본 정부의 부도덕함을 전 국민에게 알리는 거니까.”

    이누쿠소의 말에 기무라가 신념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최현성 플레이어님이 놈들을 다른 방향으로 유인할거다.”

    “일본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실 각오를 하고 계시군요. 존경스럽습니다.”

    기무라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누쿠소를 바라봤다.

    “최현성 플레이어님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도록 해. 그분은 자신의 신상이 노출되시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니까.”

    “끝까지 이름 없는 영웅으로 남으시겠다니, 진정한 의인이십니다.”

    기무라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그럼 바로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기무라의 말에 이누쿠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이 시작되었다.

    방송이 시작됨과 동시에 마왕의 갑주 세트로 완전무장을 한 현성과 가벼운 가죽 갑옷 차림에 망토를 착용한 이누쿠소가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은 조인족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본 정부는 히로시마시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한국인 플레이어와 단 한 명의 일본인 플레이어는 히로시마시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기무라가 비장한 어조로 멘트를 쳤다.

    “저 두 분은 히로시마시의 국민 여러분이 대피할 시간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거셨습니다. 제발 두 영웅이 무사히 우리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기무라의 멘트가 끝날 무렵.

    2명의 플레이어와 1만 마리 조인족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그와 함께 기무라가 촬영하는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의 시청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현성이 마력을 끌어 올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1만 마리가 넘는 조인족 무리가 하늘을 뒤덮으며 활공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주 좋아.’

    조인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지 않았다.

    최대한 똘똘 뭉쳐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철새 떼의 대이동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폭격을 대비한 건가?’

    조인족들은 UN 연합군의 공세 이후 이동할 때면 항상 저런 형태를 유지했다.

    각개격파를 피하고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하지만 현성에게는 아주 잘된 일이었다.

    ‘잘될지 모르겠네.’

    파지직!

    흑뢰룡의 숨결이 현성의 몸을 뒤덮었다.

    화르륵!

    전설 등급으로 성장시킨 화염의 서 역시 현성의 몸을 뒤덮었다.

    칠흑빛 뇌전과 화염이 하나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화염의 서는 공격 대상의 마력을 연료 삼아 계속 불타오른다.

    그뿐 아니라 마력을 타고 계속 번진다.

    흑뢰룡의 숨결은 번개 속성으로 스킬 시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

    또한 전류의 특성상 주변에 있는 전도체로 빠르게 번져 나간다.

    이 두 가지 옵션이 하나로 합쳐지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까?

    ‘대박이 터질 수도 있어.’

    현성이 최대한 응축한 마력을 일제히 폭발시켰다.

    “아아아아아!”

    가장 먼저 터진 것은 워크라이였다.

    워크라이에 걸린 조인족 무리의 몸이 일순간 경직되었다.

    슈슈슈슉!

    칠흑빛 뇌전을 품은 화염의 비가 몸이 굳어 버린 조인족 무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골드 이글이 전신에서 황금빛 광채를 뿜으며 수하 조인족들을 보호했다.

    하지만 워크라이에 걸린 수하 조인족들의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워크라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재빨리 움직여 골드 이글이 뿜어낸 보호막 아래로 몸을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경직되어 평소처럼 민첩하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결과 하늘에서 떨어진 화염의 비가 대다수의 조인족들에게 적중했다.

    퍼퍼퍼퍽!

    화염의 비에 적중당한 조인족들은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겉으로 보자면 그저 작은 불똥이 튄 것 같은 형상이었다.

    워낙 넓은 범위에 화염의 비를 뿌렸기에 공격 하나하나에 실린 마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화르르륵!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작은 불똥이 순식간에 퍼져 나가며 조인족들의 전신을 불태웠다.

    조인족들이 괴롭다는 듯 불을 끄기 위해 거칠게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 다른 동족과 몸을 부딪쳤다.

    불길이 순식간에 번져 나가 몸이 부딪쳤던 동족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하늘을 뒤덮었던 조인족 무리가 시뻘건 불길에 휩싸였다.

    투두둑!

    잠시 후 불길에 휩싸인 조인족 무리가 유성우처럼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너무 좋은데?’

    현성은 당황했다.

    화염의 서는 공격 대상의 마력을 완전히 연소시킬 때까지 타오르는 옵션을 가지고 있다.

    화염이 마력을 타고 번진다는 옵션도 있다.

    여기에 흑뢰룡의 숨결이 가진 마비 옵션과 빠른 전도율 그리고 워크라이가 합쳐지면 꽤 훌륭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영웅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몬스터 조인족 5,000마리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조인족 살해자 - 영웅 등급]

    단번에 영웅 등급 업적이 떠 버렸다.

    무려 단 한 번의 공격에 5,000마리가 넘는 조인족을 사냥한 것이다.

    사실 현성의 공격에 죽은 조인족 무리는 5,000마리를 훌쩍 넘겼다.

    눈대중으로 대충 가늠해 보더라도 거의 7,000~8,000마리 정도 되어 보이는 조인족들이 일거에 쓸려 나갔다.

    거의 바닥을 보였던 마력과 체력도 순식간에 차올랐다.

    ‘저놈들은 운이 좋았네.’

    살아남은 조인족들은 골드 이글의 보호를 직접적으로 받은 개체들이었다.

    -캬아아아악!

    그때 하늘을 찢어발기는 듯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슈우우욱!

    골드 이글이 무서운 속도로 현성을 향해 날아왔다.

    ‘이 자식, 화가 많이 났나 보네.’

    순식간에 수하들의 대다수가 전멸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현성이 용혈검을 뽑아 들고 골드 이글을 향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슈욱!

    허공에서 사라진 현성이 순식간에 골드 이글의 이동 예상 경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골드 이글이 현성의 손에 들린 용혈검에 자신의 몸을 들이받는 형국이었다.

    휘익!

    하지만 골드 이글은 생명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방향을 전환하며 손에 들린 창을 찔러 왔다.

    현성은 피하는 대신 용혈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오며 골드 이글과 현성의 몸이 동시에 뒤로 밀려 났다.

    골드 이글의 창에는 황금빛 뇌전이 흐르고 있었다.

    현성의 손에 들린 용혈검은 칠흑빛 뇌전과 화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엄청난 마력이 응축된 무구끼리의 충돌은 실로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대기가 뒤틀리고 구름이 갈라질 정도였다.

    ‘화염의 서는 저놈한테 안 통하네.’

    현성이 화염의 서 스킬을 취소했다.

    마력 통제력이 좋은지 화염의 서로 생겨난 불길은 골드 이글의 마력을 불태우지 못하고 금방 사그라져 버렸다.

    화염의 서는 전형적인 양민학살용 스킬이었다.

    ‘다시 한번 해 보자.’

    현성이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을 발동시켜 골드 이글의 후방으로 이동했다.

    파지지직!

    그 순간 황금빛 뇌전이 현성의 몸을 뒤덮었다.

    “크윽!”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압도적인 정신력 스텟과 마왕의 갑주 그리고 뇌전룡의 비늘 스킬이 있었음에도 엄청난 타격이 들어왔다.

    뇌전룡의 비늘 스킬은 스킬 저항력도 상승시켜 주지만 중복으로 전격 공격에 대한 내성 역시 올려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살이 타들어 가고 근육이 녹아내릴 정도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휘익!

    골드 이글의 창이 현성의 심장을 향해 날아왔다.

    재빨리 몸을 비틀었다.

    파각!

    골드 이글의 창이 마왕의 갑주를 꿰뚫고 현성의 가슴에 작은 상흔을 남겼다.

    ‘이 자식 엄청나게 강하잖아.’

    지금까지 상대했던 전설 등급 몬스터 중 가장 강한 것 같았다.

    파지지직!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을 전력으로 발동시켰다.

    현성의 몸이 칠흑빛 뇌전에 휩싸였다.

    파지지직!

    그런 현성의 변화에 맞대응해 골드 이글 역시 몸을 황금빛 뇌전으로 뒤덮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칠흑빛 뇌전과 황금빛 뇌전이 충돌하며 하늘이 무너질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기무라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기무라가 중계하는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보고 있던 수백만 시청자들의 입 역시 쩍 하고 벌어졌다.

    -저게 사람이냐?

    -혼자서 몇 마리를 쓸어버린 거야?

    -조인족 무리의 80% 정도를 혼자서 쓸어버렸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 플레이어는 혼자서 전설 등급 몬스터 골드 이글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고!

    -순식간에 영웅 등급 몬스터 조인족 무리를 쓸어버린 실력자야. 전설 등급 몬스터를 홀로 상대하는 것 정도는 당연한 결과라고.

    -저런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처음 기무라의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일본인이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소식이 퍼져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수도 없이 몰려들었다.

    -현재 12,357,672명 시청 중

    지금 당장 시청하고 있는 사람만 1천만 명이 넘었다.

    그런데 시청자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지금도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러다 서버가 터지는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홀로 수천 마리의 조인족을 쓸어버리더니 혼자 전설 등급 몬스터와 일대일 접전을 벌이고 있다.

    시청자가 끊임없이 늘어나는 게 당연했다.

    슈우우욱!

    그때 카메라를 향해 조인족 무리가 달려들었다.

    -조심해! 조인족 몰려온다!

    -카메라맨, 당장 도망쳐!

    -카메라맨이 도망가면 촬영은 어떻게 하고?

    -넌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촬영이 문제냐?

    기무라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조인족을 보면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자신이 비록 전투에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진실을 알리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

    죽더라도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야, 이 또라이 자식아, 도망치라고!

    -왜 가만히 있어?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솔직히 조인족 1만 마리가 하늘에 떠 있는데 도망 안 치고 촬영한답시고 카메라 꺼내 든 놈이니 정상은 아닐 듯.

    -캬아아악!

    조인족 한 마리가 기무라를 덮쳤다.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자신이 조인족에게 습격당하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콰직!

    그때 누군가가 조인족의 심장을 꿰뚫었다.

    슈욱!

    그 후 순식간에 화면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카메라를 향해 덤벼드는 조인족 등 뒤였다.

    콰직!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가죽 갑옷에 망토를 두른 플레이어가 순식간에 단검을 휘둘러 조인족 한 마리의 숨통을 끊었다.

    계속해서 같은 모습이 반복되었다.

    조인족이 지상이 근접하면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나 단검을 휘둘러 조인족의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금 모습을 감췄다.

    “이누쿠소 팀장님이십니다!”

    기무라가 잔뜩 흥분한 어조로 외쳤다.

    “이누쿠소 팀장님은 대피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조인족을 막기 위해 홀로 남으신 일본 플레이어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기무라의 외침에 일본어 채팅이 미친 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누쿠소 팀장님은 한국 플레이어를 도와 조인족을 막기 위해 나선 유일한 일본인 플레이어입니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한 진짜 일본 플레이어다!

    -일본 국민의 위기를 외면한 차원 게이트 관리부와 플레이어 협회는 각성하라!

    -이누쿠소는 일본의 영웅이다!

    -그가 일본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누쿠소 만세!

    일본인들이 잔뜩 흥분해 열광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시청자들도 이누쿠소의 전투 모습을 보며 크게 놀랐다.

    이누쿠소의 실력은 순식간에 대다수의 조인족을 쓸어버리고, 홀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는 한국인 플레이어와 비교해 상당히 떨어졌다.

    솔직히 말해 그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한국인 플레이어가 너무 상식 밖의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누쿠소가 홀로 영웅 등급 몬스터 조인족들을 학살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단했다.

    특히 끝도 없이 이어지는 연속적인 공간 이동 스킬은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했다.

    -정말 대단한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다.

    -일본에 저렇게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는 줄은 몰랐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조국을 지키겠다는 결심으로 목숨을 건 용기가 대단하다.

    -목숨 건 거 맞음?

    -처음에는 엄청 비장했음. 이누쿠소라는 플레이어도 한국 플레이어의 실력이 저 정도일 줄은 몰랐을 거 같음.

    -저 말이 맞음. 솔직히 한국 플레이어 실력이 저 정도인 거 알았으면 일본 정부가 히로시마시를 버렸겠음?

    -그러게 일본 정부 완전 병신이네. 같이 힘 합쳐서 싸웠으면 UN 연합군 도움 없이 조인족들 섬멸했을 거 같은데.

    -일본 플레이어 놈들은 제 목숨이 아까워서 다 도망쳤음.

    -자국 플레이어들은 다 도망치고, 타국에서 지원 온 한국인 플레이어가 혼자 조인족을 맞상대하다니, 일본의 미래가 어둡다.

    -이누쿠소가 있잖습니까?

    -맞습니다. 일본 플레이어도 목숨을 걸고 나섰습니다.

    -꼴랑 1명 가지고 생색은.

    ……후략……

    채팅장이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그러는 와중에도 하늘에서 치열한 접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상에서는 이누쿠소가 최선을 다해 기무라를 노리는 조인족 무리를 처치했다.

    그리고 방송을 본 일본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 * *

    “최현성 플레이어도 대피했다고 하지 않았나!”

    일본 아쿠나베 총리가 노성을 터트렸다.

    “그, 그게 분명히 그렇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럼 이건 뭔가? 이게 뭐냐는 말이야!”

    아쿠나베 총리가 기무라의 실시간 스트리밍 채널이 방송되고 있는 지휘통제실 모니터를 가리키며 외쳤다.

    “…….”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에 저 광경이 생중계되고 있어! 저 모습을 본 세계 각국이 우리 일본 정부를 얼마나 무능하게 생각하겠나!”

    “지금 당장 이노우에 협회장에게 연락을 넣어 조인족을 격퇴하라는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예?”

    “지금 나서 봐야 오히려 우리 일본 정부의 꼴만 더 우스워질 뿐이야.”

    아쿠나베 총리는 작금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자국민을 버린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플레이어들 역시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해 자국민을 버린 비겁자로 낙인찍혔다.

    전황이 우세해졌다고 갑자기 나선다?

    그럼 기회주의자라고 욕만 더 먹을 뿐이다.

    거기다 자칫 잘못하면 최현성 플레이어의 업적에 편승해 전리품을 탐하려는 하이에나 취급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누쿠소 플레이어의 현재 직책이 뭐지?”

    “정보팀 팀장입니다.”

    “이번 전투가 끝나는 즉시 이누쿠소 플레이어를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으로 임명하게.”

    “예?”

    “일본인 플레이어 중 전투에 참여한 유일한 플레이어가 이누쿠소네. 이누쿠소를 최대한 띄워 줘야 해. 그를 일본의 영웅으로 만들어 한단 말일세.”

    그래야만 자신들의 실책을 최대한 감출 수 있다.

    “또 최현성 플레이어와 이누쿠소가 일본 정부와의 합의하에 자의로 나섰다고 발표하게. 우리가 더 많은 플레이어를 지원해 주려고 했지만 두 사람이 거절했다는 식으로 몰고 가란 말이네. 알겠나?”

    “알겠습니다!”

    “또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몸을 피한 게 아니라 목숨으로 히로시마시를 사수하려고 했다고 발표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쿠나베 총리의 지시를 받은 참모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세계인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일본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대처를 하려고 해 봤자 이미 한발 늦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로서는 두 번이나 자국민을 버렸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해야 했다.

    * * *

    꽈아아앙!

    현성의 손에 들린 용혈검과 골드 이글의 손에 들린 창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손아귀가 쩌릿쩌릿했다.

    흑뢰룡의 숨결에 의해 보호받고 있음에도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이 자식, 정말 엄청 강하네.’

    마석을 얼마나 주워 먹었는지 지치지도 않는다.

    현성이 골드 이글의 강함에 놀라고 있을 때, 골드 이글 역시 엄청나게 당황하고 있었다.

    고작 인간 하나가 자신의 수하들을 거의 대부분 전멸시켜 버렸다.

    그리고 자신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골드 이글은 영웅 등급 몬스터를 넘어서 전설 등급 몬스터가 되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가 된 후에도 신화 등급 몬스터가 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마석을 먹어 치웠다.

    골드 이글은 처음 전설 등급 몬스터가 되었을 당시보다 족히 2배 이상은 강해졌다.

    그럼에도 눈앞의 인간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눈앞의 이 인간은 자신을 상대하는 와중에도 여유가 있는지 중간중간 자신의 수하들을 공격했다.

    현성이 다른 조인족들을 공격한 첫 번째 이유는 지상에 있는 이누쿠소와 기무라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이유는 소모되는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흑뢰룡의 숨결을 전력으로 사용하자 현성의 체력과 마력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 희생양으로 가장 적합한 대상이 바로 영웅 등급 조인족들이었다.

    한데 그것도 이제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전설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몬스터 조인족 10,000마리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조인족 학살자 - 전설 등급]

    전설 등급 업적이 떴다.

    그리고 그나마 남아 있던 조인족들의 씨가 말랐다.

    체력과 마력을 보충할 도시락이 모두 바닥난 것이다.

    ‘이제 진검 승부다.’

    현성이 아공간을 열어 소모형 아이템을 모조리 섭취했다.

    그와 동시에 흑뢰룡의 숨결을 전력으로 사용해 일부러 자신의 체력을 떨어트렸다.

    그 순간…….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광폭화 - 전설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힘, 민첩, 마력, 정신력 스텟이 40% 증가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50% 감소했습니다.

    광폭화 스킬이 발동했다.

    현성이 강하게 골드 이글을 몰아붙였다.

    골드 이글 역시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화악!

    골드 이글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골드 이글 역시 광폭화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하늘이 둘로 갈라지는 것 같은 광음과 함께 칠흑빛 뇌전과 황금빛 뇌전이 충돌했다.

    ‘이 자식, 언제까지 버틸 생각인 거야? 다른 패시브 스킬이 발동하면 큰일 나는데.’

    중국에 가기 전이었다면 생존 본능을 발동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생명의 위기를 느끼면 생존 본능만 발동하는 게 아니라 다른 스킬들 역시 연속적으로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 스킬들이 모두 발동하면 현성은 피에 미친 광인이 된다.

    골드 이글은 손쉽게 때려죽일 수 있겠지만 그 후에 미쳐 날뛰며 일본을 지옥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현성이 애써 버티고 버티는 사이.

    서걱!

    용혈검이 골드 이글의 왼팔에 깊은 자상을 남겼다.

    광폭화 덕분에 물리 방어력과 스킬 방어력이 낮아졌기에 얻어 낸 결과였다.

    -캬아아악!

    골드 이글이 괴성을 터트리며 반격을 가했다.

    콰직!

    골드 이글이 휘두른 창의 창날이 마왕의 갑주를 꿰뚫고 현성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광폭화 스킬로 인해 물리 방어력과 스킬 방어력이 떨어진 건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서로 부상을 입기 시작한 순간부터 승부가 갈렸다.

    현성의 몸은 불사의 서의 효능으로 인해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며 출혈이 사라졌다.

    반면 골드 이글의 몸에 난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콰직!

    서걱!

    현성과 골드 이글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늘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건 골드 이글이 아니라 현성이었다.

    -키이이익!

    전신이 피투성이로 변한 골드 이글이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하지만 현성의 공세를 감당하기는 무리였다.

    체력과 마력이 바닥난 것은 현성만이 아니었다.

    골드 이글 역시 엄청난 체력과 마력을 소모했다.

    사용할 수 있는 자체 버프 스킬도 대부분 사용한 상태였다.

    화악!

    골드 이글이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규슈 방향을 향해 전력으로 도주했다.

    이대로 계속 싸우다가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지능이 높은 놈답게 상황 판단도 빠르네.’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죽을 때까지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골드 이글은 후퇴를 선택했다.

    ‘절대 안 놓친다.’

    슈욱!

    현성이 연속적으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지금도 저렇게 강한데 시간이 흐르면 얼마나 더 강해질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무조건 이 자리에서 숨통을 끊어 놓아야 했다.

    절대 자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가게 둘 수 없었다.

    슈욱! 슈욱!

    현성이 연속적으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골드 이글을 앞질렀다.

    콰직!

    그리고 용혈검을 골드 이글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캬아아악!

    골드 이글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파지지직!

    현성이 전력을 다해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했다.

    용혈검을 통해 분출된 흑뢰룡의 숨결이 골드 이글의 내부를 강타했다.

    파삭!

    검게 타 버린 골드 이글의 사체가 힘없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와아아아아!

    -이겼다!

    -봤어? 봤냐고? 저놈이 도망치다 잡혔어!

    -하하하, 제깟 놈이 도망쳐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에 손오공이지.

    -혼자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에 성공하다니, 정말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다.

    -전설 등급 몬스터만 레이드한 게 아니야. 영웅 등급 몬스터도 1만 마리 넘게 있었다고.

    -저런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저 한국인 플레이어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으면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해도 아무 문제 없다.

    -그러게. 일본 정부처럼 바보짓만 안 하면 전설 등급 몬스터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은 없을 듯.

    -일본 정부는 그동안 뭘 한 거냐? 진작 한국인 플레이어의 도움을 받았다면 규슈 대참사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다!

    -이게 다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지 않은 일본 정부 탓이다.

    -한국인 플레이어는 일본을 구한 영웅이다!

    -이누쿠소도 나름 활약했음.

    레이드가 끝나자 다시금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세계 각국의 언어가 뒤엉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아, 레이드가 끝났군요. 그럼 이만 방송 종료하겠습니다.”

    기무라의 말에 채팅창이 다시금 난리가 났다.

    -방종이라니?

    -야, 너 미쳤냐! 지금 왜 방종을 해?

    -저 한국인 플레이어와 인터뷰하면 안 됨?

    -인터뷰! 인터뷰!

    채팅창에 인터뷰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하지만 기무라는 스트리머가 아니라 플레이어였다.

    방송 자체도 이누쿠소의 지시를 받아 얼떨결에 켰을 뿐이다.

    “일본을 구한 두 영웅에게 박수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기무라가 수천만 시청자의 염원을 뒤로하고 그대로 방송을 종료했다.

    현성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진한 무력감이 전신을 강타했다.

    승리하긴 했지만 현성도 엄청나게 지친 상태였다.

    마력은 바닥났고, 체력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골드 이글이 먼저 꼬리를 말지 않았다면?

    패시브 스킬들이 일제히 발동해 이성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 현성은 패시브 스킬을 발동시키지 않고 승리했다.

    ‘이겼어.’

    강한 성취감이 느껴졌다.

    고유 스킬에 대한 비밀이 새어 나가 인간 자판기 신세가 될지 모른다고 걱정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굳이 비밀을 밝힐 생각은 없었지만 설사 밝혀진다고 해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췄다.

    홀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히드라 잡았을 때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네.’

    히드라가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기에 지금과 같은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또 그때는 고블린의 모습으로 몰래 레이드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신상 정보를 완전히 오픈하지는 않았지만 플레이어로서 홀로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에 성공했다.

    공식적으로 플레이어 최초 단독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에 성공한 것이다.

    “휴우!”

    휴식을 통해 체력을 회복한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인족 무리가 떨어트린 마석과 아이템은 아공간을 사용해 모두 회수했다.

    이제 남은 건 골드 이글이 떨어트린 아이템이었다.

    ‘생각보다 적네.’

    아이템은 골드 이글이 들고 있던 창을 포함해 총 4개였다.

    2개는 아이템이었고 2개는 스킬북이었다.

    창은 전설 등급이 아니라 영웅 등급이었다.

    ‘전설 등급 아이템 3개라…….’

    현성이 가장 먼저 아이템인 망토를 확인했다.

    조인족 로드의 망토 - 전설 등급

    -조인족 로드의 마력이 깃들어 있다.

    -물리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스킬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전격 공격에 대한 내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약간의 마력을 소모해 자유자재로 창공을 누빌 수 있습니다.

    ‘오호, 좋은데?’

    마왕의 갑주 세트에 망토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저항력도 늘려 주고 거기다 약간의 마력을 소모해 비행이 가능하다라…….’

    사실 골드 이글과 싸우면서 비행 스킬과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마력을 잡아먹었다.

    현성의 등에 날개가 달린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공중전에서 쓸데없이 과한 마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약간의 마력이라고 써 있는 걸 보면 효율이 정말 좋을 것 같아.’

    현성이 망토를 착용했다.

    그리고 가볍게 몸을 띄워 봤다.

    마력 소모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약했다.

    ‘좋아. 이제는 스킬북 차례다.’

    현성이 2개의 스킬북을 집어 들었다.

    첫 번째 스킬북은 현성이 예상했던 대로 뇌전 계열 스킬북이었다.

    천뢰 - 전설 등급

    -액티브 스킬북

    -모든 스킬과 행동이 뇌전의 힘을 부여받습니다.

    -천뢰에 적중당한 적들의 신체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킵니다.

    -쿨타임이 존재하지 않는 스킬입니다.

    -액티브 스킬북 천뢰 - 전설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스킬 내용이 상당히 심플했다.

    ‘약간 흑뢰룡의 숨결 하위 호환 버전 느낌인데?’

    하지만 어쨌든 위력은 상당히 강력했다.

    거기다 같은 뇌전 계열 스킬이니 흑뢰룡의 숨결을 성장시키는 좋은 영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현성은 곧바로 예를 눌렀다.

    -액티브 스킬북 천뢰 - 전설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액티브 스킬 흑뢰룡의 숨결 - 유일 전설 등급과 액티브 스킬 천뢰 - 전설 등급이 융합됩니다.

    ‘칫.’

    혹시나 하고 기대했지만 여기서 끝이었다.

    신화 등급으로 성장했다는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지.’

    현성이 유일하게 남은 스킬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천뢰왕의 갑옷 - 유일 전설 등급

    -패시브 스킬북

    -물리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스킬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전격 공격에 대한 내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방어 계열 스킬과 아이템을 흡수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패시브 스킬북 천뢰왕의 갑옷 - 전설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대박!’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솔직히 말해 조인족 로드의 망토와 천뢰는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천뢰왕의 갑옷은 아니었다.

    전설 유일 등급.

    거기다 성장이 가능했다.

    현성은 성장이 가능한 유일 전설 등급 무기 용혈검과 유일 전설 등급 스킬 흑뢰룡의 숨결과 불사의 서 그리고 화염의 서를 보유하고 있었다.

    모두 공격 계열이었다.

    한데 드디어 성장이 가능한 유일 전설 등급의 방어 계열 스킬이 생겼다.

    현성이 재빨리 예를 눌렀다.

    -패시브 스킬 단단한 몸 - 일반 등급이 패시브 스킬 천뢰왕의 갑옷 - 유일 전설 등급에 흡수되었습니다.

    -패시브 스킬 스톤 바디 - 일반 등급이 패시브 스킬 천뢰왕의 갑옷 - 유일 전설 등급에 흡수되었습니다.

    -패시브 스킬 강철 피부 - 희귀 등급이 패시브 스킬 천뢰왕의 갑옷 - 유일 전설 등급에 흡수되었습니다.

    ……후략……

    익히는 순간 천뢰왕의 갑옷이 현성이 그간 습득했던 방어 계열 스킬들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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