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권. 일본 (68/225)
  • ┃일본

    “그, 그게 무슨……?”

    일본 외교부 장관의 반문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또박또박 다시 말해 줬다.

    “규슈 지역에 있는 던전을 다 저한테 넘기셔야 할지도 모른다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큰 보상이 필요한 겁니까?”

    “그건 못 알려 드리죠. 저도 제 개인 사정이라는 게 있는데.”

    현성의 태연한 대답에 일본 외교부 장관은 말문이 막혔다.

    “일 끝나면 3개월 후에 무보수로 도와드릴게요.”

    “당장 도와주실 수는 없으시겠습니까?”

    “그러려면 제가 보는 손해를 보존해 주셔야죠.”

    현성의 말에 일본 외교부 장관의 속이 타들어 갔다.

    3개월 후에 무보수로 도와준단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 한시가 급했다.

    단 일분일초도 양보할 수 없었다.

    ‘협상에서 우위를 가지려고 일부러 비밀로 했는데…….’

    일본은 조인족들의 혼슈 침공을 타국은 물론 자국민들에게까지 비밀로 부쳤다.

    괜한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데 그게 오히려 약점이 되어 버렸다.

    ‘언론 플레이로 가도 승산이 없어.’

    3개월 후에 무보수로 해결해 준단다.

    안 도와준다는 것도 아니고 당장 급한 일이 있어서 3개월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그럼 한국 국민들은 물론 일본 국민들과 세계 각국도 훌륭한 처사라고 박수를 보낼 것이다.

    ‘지금이라도 조인족의 혼슈 침공을 밝혀야 하나?’

    규슈섬에 존재하는 던전을 모두 넘겨주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아 보였다.

    “아, 그런데 장관님.”

    “예?”

    “저한테 숨기거나 거짓말한 게 하나라도 있으면 절대 일본 안 도와줄 겁니다.”

    “그게 무슨……?”

    “나라에 급한 일이 있으면 급행료를 지불하고 해결하셔야죠, 감성에 호소하실 게 아니라.”

    현성의 말을 듣는 순간 일본 외교부 장관은 뒷골이 쩌릿해졌다.

    ‘다 알고 있었어.’

    혼슈에서 벌어진 조인족 침공 사태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혼슈 사태에 대해 알고 있으셨군요. 너무하십니다. 타국의 고통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려 하시다니요.”

    일본 외교부 장관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현성을 질책했다.

    “혼슈 사태요? 그게 무슨 말이신지?”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시는군요. 좋습니다. 던전을 드리죠. 하지만 규슈 지역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은 너무 과한 대가입니다. 던전 30개의 소유권을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가 일본 정부가 양보할 수 있는 최대입니다.”

    일본 외교부 장관이 최후통첩이라는 듯 말했다.

    이 정도 양보하면 국제사회도 국민들도 일본의 편을 들 것이다.

    “하, 나름 배려를 해서 전에 개인적으로 입은 피해 보상은 요구도 안 했는데 너무 막나가시네.”

    “뭐, 뭐라고요?”

    현성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 후 두툼한 서류 뭉치를 툭 하고 바닥에 던졌다.

    “보시죠.”

    일본 외교부 장관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서류 뭉치를 살폈다.

    그러다 입이 쩍 벌어졌다.

    “이, 이게 어떻게……?”

    타나카 전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이 운용했던 비밀 요원들의 임무 수행 기록지.

    서류에는 그간 일본 비밀 요원들이 벌인 악행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거기 보시면 제가 피해 본 내역도 있는데.”

    현성의 말에 일본 외교부 장관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넘겼다.

    있었다.

    정말 있었다.

    “이 장부, 확 공개해 버릴까요? 그럼 제가 일본 안 도와준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요?”

    그렇게 되면 일본은 끝이다.

    “제 배려를 걷어차 버리셨으니 규슈 지역에 있는 던전 소유권 가지고는 협상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시코쿠섬에 있는 던전 소유권도 다 넘기시죠. 그럼 당장 도와드리겠습니다.”

    현성의 말에 일본 외교부 장관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손에 칼만 안 들었지 완전 강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이 문제를 공론화시켜 호소할 수도 없었다.

    일이 공론화되면 현성은 일본을 돕지 않아도 될 명분을 얻게 된다.

    자신을 죽이거나 납치하려 했던 국가.

    그런 국가를 돕지 않겠다고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문제는 일본의 상황이 상당히 급박하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현성이 도와주지 않으면 일본이 이대로 멸망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전설 등급 몬스터가 포함된 1만 마리의 영웅 등급 비행형 몬스터.

    군의 공격도 통하지 않고, 공중형 몬스터라는 특성상 플레이어들도 제대로 대응하기가 힘들었다.

    현재 일본의 유일한 희망은 현성뿐이었다.

    “보, 본국에 연락해 보겠습니다.”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일본 외교부 장관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다음 날 아침.

    일본 사절단이 현성을 찾아왔다.

    현성은 일본 사절단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이누쿠소에게 미리 들었다.

    “규슈섬과 시코쿠섬의 던전 소유권을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넘기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도와주십시오.”

    일본 외교부 장관의 말에 현성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혹시 몰라서 계약서는 제가 준비했습니다. 이의 없으시죠?”

    “없습니다.”

    현성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를 확인한 일본 외교부 장관이 일본 정부를 대표해 서명했다.

    현성 역시 서명을 마쳤다.

    “곧바로 일본으로 가 주시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성이 흔쾌히 승낙했다.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조인족을 말끔하게 토벌해야 했다.

    조인족 토벌이 실패하면 이 계약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휴지 조각으로 변한다.

    현성은 계약서를 국제 공인 기구에 넘겨 공증을 받았다.

    언론에도 곧바로 이 사실을 알렸다.

    나중에 일본이 딴소리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해야 할 일 처리를 모두 마친 현성이 일본 사절단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다.

    * * *

    일본에 도착했다.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일본은 평화로웠다.

    2차 대격변 당시 규슈섬을 잃는 큰 타격을 입은 일본이지만 그 후에는 나름 순조롭게 재기에 성공했다.

    현성은 곧바로 조인족들이 넘어왔다는 접경지대로 향했다.

    “UN 연합군이 도착하는 즉시 토벌을 시작하시게 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일본이 하루 만에 백기를 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UN 연합군의 합류 여부 때문이었다.

    일본은 현성과 접촉한 다음 날, UN 연합군에 조인족 무리의 혼슈 침공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 후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영웅 등급 몬스터인 조인족의 숫자가 무려 1만 마리가 넘는다.

    이놈들을 제압하려면 고레벨 플레이어가 최소 10만 명 이상 필요했다.

    그것도 조인족 무리가 정면 대결을 해 준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결정적으로 조인족 무리 중에는 전설 등급 몬스터가 끼어 있었다.

    고레벨 플레이어 10만 명을 동원한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UN 연합군은 핵 공격을 제안했다.

    일본은 기겁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두 번씩이나 핵 공격을 당했던 일본 입장에서 핵은 공포의 상징이었다.

    거기다 방사능 피해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기술이 좋아져 방사능 유출 범위가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 이야기다.

    핵이 떨어질 규슈섬과 혼슈섬 일부 지역은 물론 근접해 있는 시코쿠섬까지 방사능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했다.

    일본 정부는 UN 연합군에 제발 플레이어를 파견해 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이에 UN 연합군이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일본 파견을 조건부로 수락했다.

    그 조건은 바로 한국 플레이어 최현성의 합류였다.

    놀라운 신위를 보여 준 최현성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전설 등급 조인족 척살대를 꾸릴 수 있다면, 플레이어 파견을 고려해 보겠다는 뜻을 전달해 온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규슈섬과 시코쿠섬의 던전 소유권을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 현성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핵이 떨어질 상황이니까 말이다.

    어차피 핵이 떨어지면 규슈섬과 시코쿠섬은 버려야 한다.

    그것도 방대한 영토의 혼슈섬 일부를 포함해서 말이다.

    현성이 곧바로 현장에 도착한 것에 비해 UN 연합군은 한자리에 모이기까지 최소한 사흘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워낙 많은 숫자의 고레벨 플레이어를 끌어모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본으로서는 제대로 기둥뿌리가 뽑히게 생겼다.

    UN 연합군으로 도움을 주러 합류하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줘야 했기 때문이다.

    전사할 위험이 매우 높은 토벌전이다.

    합당한 보상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UN 연합군의 소집에 응할 리가 없었다.

    ‘피해 복구하려면 10년도 더 걸리겠네.’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현성조차 안쓰러운 감정이 생길 정도였다.

    아마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일본은 아시아 경제 대국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놔야 할 것이다.

    * * *

    늦은 밤.

    휘이이잉!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이 야마토 마석 보관소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에 착지했다.

    그리고 열심히 건물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은 인간들에게 골드 이글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두 번째 전설 등급 몬스터였다.

    골드 이글은 현존하는 유일한 전설 등급 몬스터였다.

    이무기를 시작으로 그 뒤에 등장했던 전설 등급 몬스터들은 모두 플레이어들에 의해 토벌당했다.

    레드 드래곤 이후에도 전설 등급 몬스터는 계속해서 등장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나름 잘 대처한 덕분에 현성의 도움 없이도 큰 피해 없이 퇴치할 수 있었다.

    -캬아악?

    야마토 마석 보관소를 모두 뒤진 골드 이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에도 먹을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조인족 무리가 규슈섬에서 혼슈섬으로 넘어온 이유는 규슈섬에 존재하던 마석 보관소를 모두 털어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땅으로 넘어왔다.

    한데 이곳에도 먹을 만한 게 별로 없었다.

    당연했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언제 조인족들이 습격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장소에 마석을 보관해 둘 이유가 없었다.

    거주하던 사람들이 대피하면서 기업들은 마석 보관소의 마석을 모두 안전한 장소로 옮겨 놓았다.

    -캬아아아악!

    골드 이글이 커다란 포효를 터트렸다.

    골드 이글의 포효를 들은 조인족들이 순식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규슈섬에 남아 있던 조인족 무리 역시 골드 이글의 포효 소리를 듣고 혼슈섬으로 몰려들었다.

    골드 이글의 눈빛이 사납게 빛났다.

    골드 이글은 영웅 등급 마석을 연속적으로 먹어 치우고 강해진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차원 게이트를 통과한 후 나타난 새로운 세상은 골드 이글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굳이 사냥을 하지 않아도 대량의 마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마석이 잔뜩 들어 있는 먹이통이 사방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먹이통이 모두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는 새 먹이통을 찾아야 할 때였다.

    골드 이글은 영웅 등급 몬스터에서 전설 등급 몬스터로 거듭났다.

    그 후에도 수많은 영웅 등급 마석을 먹어 치웠다.

    하지만 골드 이글은 아직도 배가 고팠다.

    더 강해지고 싶었다.

    전설 등급을 넘어서는 상위 개체로 성장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석으로 가득 찬 새 먹이통이 필요했다.

    수하 조인족들이 모두 모였다.

    -캬아앙!

    골드 이글이 힘찬 포효를 터트리며 황금빛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푸드드득!

    그와 함께 수하 조인족들 역시 일제히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석으로 가득 찬 젖과 꿀이 흐르는 새 먹이통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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