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권. 난장판 (67/225)
  • ┃난장판

    업무 위탁 계약을 마치고 사진 촬영까지 마친 이종만 장관의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이제 잠시 후면 내가 1조 원의 자산가가 된다.’

    박기만 대통령이 약속받은 10조 원보다는 적다. 하지만 10조 원보다 적을 뿐 1조 원 역시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다.

    ‘솔직히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박기만 대통령에게 말 몇 마디 한 것 외에는 크게 한 역할이 없었다.

    툭 까놓고 말해 1조 스톤 달러가 든 통장을 본 순간 박기만 대통령은 눈이 뒤집혔다.

    이종만 장관이 몇 마디 보태지 않았어도 당연히 이모탈 길드를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운이 좋았어.’

    이종만 장관 입장에서는 땡잡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종만 장관이 바로 청와대로 향했다.

    청와대에서는 박기만 대통령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이종만 장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하, 자네 왔나?”

    “예, 각하! 무사히 업무 위탁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나도 TV로 봤네.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최현성 플레이어한테서 문자가 왔어.”

    “곧바로 말입니까?”

    “그래, 최현성 플레이어도 TV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럼 나한테도 곧 오겠구나.’

    이종만 장관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축하드립니다, 각하!”

    “하하하! 그래, 고맙네. 자네 공이 아주 커.”

    박기만 대통령이 대소를 터트리며 이종만 장관을 칭찬했다.

    하지만 절대 자신이 받은 돈의 일부를 떼어 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입으로만 공치사를 했을 뿐이다.

    위이이잉!

    그때 이종만 장관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확인해 보게.”

    평소 같으면 대통령인 자신을 만나러 오는데 왜 무음으로 해 놓지 않았냐고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박기만 대통령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문자 확인까지 허락해 줬다.

    이종만 장관이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1818

    문자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번호도 모르는 번호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문자를 보냈겠는가.

    최현성 플레이어가 확실했다.

    박기만 대통령과 이종만 장관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덜컹!

    그때 대통령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예의 없게 이게 무슨 짓거리야?”

    박기만 대통령이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실장에게 노성을 토해 냈다.

    “각하, 큰일입니다!”

    비서실장의 외침에 박기만 대통령의 얼굴에 의아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다 잘 마무리됐는데 큰일 날 일이 뭐라는 말인가.

    “무슨 일인데?”

    “대선 당시 우호 단체들을 동원하며 지급했던 비자금 내역이 공개됐습니다!”

    “뭐!”

    박기만 대통령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각하께서 국회의원 시절 받으셨던 비자금 내역이 인터넷에 모두 공개됐습니다.”

    “막아!”

    “예?”

    “무조건 막으라고!”

    “알겠습니다!”

    박기만 대통령의 외침에 비서실장이 다시금 청와대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비서실장이 무슨 수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무조건 막으라는 지시를 내렸던 박기만 대통령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감히 어떤 놈이……!”

    임기 1년도 다 차지 않은 대통령이다.

    권력의 날이 가장 날카로운 시점.

    박기만 대통령은 자신의 치부를 밝힌 자가 누구든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기업 놈들인가?’

    박기만 대통령은 최근 사이가 벌어지다 못해 거의 원수 사이가 되어 버린 대기업을 의심했다.

    * * *

    당일 저녁.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업무 위탁 계약은 짤막하게 언급되었을 뿐 기사 메인을 차지하지 못했다.

    -박기만 대통령의 비리!

    -박기만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저지른 뇌물 수수 사건만 100건이 넘는다?

    -박기만 대통령, 대선 당시 우호 단체에 비자금 전달한 증거 포착!

    -박기만 대통령, 후보 시절 조직적으로 인터넷 댓글 조작단을 운영해 대선 당시 여론 조작 시도!

    -박기만 대통령, 돈으로 우호 단체를 운영해 상대 후보 비난!

    -박기만 대통령의 부정 선거!

    -박기만 대통령, 선거 관리 규정 위반. 당선 무효 가능할까?

    오프라인이고 온라인이고, 현존하는 모든 기사에서 박기만 대통령의 선거 관리 규정 위반과 국회의원 시절 저지른 비리를 꼬집었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박기만 대통령이 이럴 줄은 몰랐다.

    -이럴 줄 모르긴 뭘 모름? 박기만 대통령 국회의원 시절부터 비리 많기로 유명했음.

    -저런 놈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니…….

    -당장 대통령 당선 무효 시켜야 한다.

    -당선 무효 가자아아아아!

    대대적으로 박기만 대통령 당선 무효 운동이 벌어졌다.

    청와대에서 상황을 막기 위해 사방팔방 손을 쓰고 있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정치인들은 혹시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몸을 사렸다.

    이미 원수가 된 대기업과 언론은 돕기는커녕 더욱더 가열하게 박기만 대통령을 물어뜯었다.

    사방이 적인 형국이다.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부정선거진상규명회가 조직되었다.

    그와 함께 당선 무효 소송이 들어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전국에서 박기만 대통령 당선 무효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 * *

    현성은 자신이 붙여 놓은 불씨가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박기만 대통령은 스스로 하야하거나 그게 아니면 당선 무효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기록 자체가 사라질 판이었다.

    어느 쪽이든 현성에게는 나쁠 게 없었다.

    ‘그런데 이놈 이거 완전 헛다리 짚었네.’

    박기만 대통령은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대상을 대기업으로 오해했다.

    이에 강하게 대기업을 물어뜯었다.

    두 마리 똥개의 피 튀기는 혈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가세한 이상 승부는 갈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박기만 대통령은 벌써부터 레임덕 사태에 빠져 버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당선 무효가 확실했다.

    아마 당선이 무효로 돌아가면 그대로 감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놈들은 아직도 포기를 못 했네.’

    현성은 대기업들의 수작질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대기업들은 당선 무효가 진행되면 박기만 대통령이 했던 모든 정책이 효력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그 모든 정책에는 당연히 이모탈 길드와 맺은 업무 위탁 계약도 들어가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려나?’

    박기만 대통령은 절대 순순히 감옥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성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박기만 대통령은 어지러운 국내 정세를 뒤로하고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박기만 대통령의 해외 순방 사실이 알려지자 난리가 났다.

    법원은 박기만 대통령에게 소환장을 날렸다.

    하지만 박기만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순방 일정이 끝났음에도 박기만 대통령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일국의 대통령이 자국을 탈출한 것이다.

    법원은 박기만 대통령의 직위를 정지시켰다.

    일시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직위를 잃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기만 대통령은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았다.

    * * *

    박기만 대통령은 떨리는 마음으로 스위스 은행을 찾았다.

    마지막 순방 장소를 스위스로 정한 이유는 바로 시크릿 계좌에 잠들어 있는 1조 스톤 달러를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돈만 있으면 돼.’

    돈과 명예 다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 놈들의 수작질에 명예는 잃었다.

    그렇지만 돈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간 모아 온 비자금은 이모탈 길드를 밀어주느라 모두 써 버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에게는 1조 스톤 달러가 든 통장이 있으니까 말이다.

    박기만 대통령이 은행 창구에서 통장의 잔고 확인을 요청했다.

    통장을 받아 든 직원이 박기만 대통령을 VVIP 전용 접객실로 안내했다.

    박기만 대통령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앞으로 어떤 노후를 보낼까 고민하며 행복한 상상의 나래에 빠져들었다.

    달칵.

    VVIP 전용 접객실 문이 열렸다.

    박기만 대통령은 은행장이 직접 찾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기만 대통령을 찾아온 건 은행장이 아니라 경찰이었다.

    “당신을 사문서 위조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그 말과 함께 박기만 대통령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사문서 위조라니? 그게 무슨……?”

    당황한 박기만 대통령의 물음에 경찰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위조 통장이 상당히 정교하긴 하더군요. 하지만 그 정도로 은행과 당국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박기만 대통령이 경찰에 의해 끌려 나갔다.

    “이 개자식이……!”

    박기만 대통령은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거 놔! 경찰 나부랭이 주제에 내가 감히 누군 줄 알고 연행하는 거야? 당장 수갑 풀어!”

    박기만 대통령이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퍼억!

    경찰봉이 박기만 대통령을 향해 날아들었다.

    “컥!”

    박기만 대통령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당신에게 공무집행방해죄를 추가합니다. 아, 그리고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조사 시에 진술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깜빡했다는 듯 미란다원칙을 고지한 경찰관들이 박기만 대통령을 경찰차에 태웠다.

    한편 그 시각.

    이종만 장관 역시 박기만 대통령과 동일한 전철을 밟고 있었다.

    * * *

    -박기만 대통령 스위스에서 사문서 위조 및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

    -나라 망신 다 시킨 대통령!

    박기만 대통령의 구속 소식이 대문짝만 하게 기사에 났다.

    -당장 당선 무효화시켜라!

    -박기만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범법자다!

    국민들이 불같이 들고일어났다.

    선거 조작 및 해외 도피만으로도 난리가 났다.

    그런데 해외에서 경찰에 구속되다니.

    법원이 속도를 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박기만 대통령의 당선을 무효화한다고 선언했다.

    스위스에서 현행범으로 구속된 박기만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저 전직 정치인에 불과한 일반인이었다.

    스위스에서 사문서 위조는 중죄다.

    더군다나 통장을 위조해 빼내려고 한 액수가 무려 1조 스톤 달러다.

    좋은 변호사를 써도 감형이 될까 말까인데 박기만은 변호사를 쓸 돈도 없었다.

    아마 박기만은 여생을 차가운 스위스 감옥에서 마칠 확률이 높아 보였다.

    국무총리가 업무를 대행하고 다시금 대선을 치를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와중에 대기업의 사주를 받은 언론이 슬금슬금 머리를 디밀었다.

    -무효화된 박기만 정권이 했던 일들, 모두 과거로 되돌려야!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업무 위탁 계약 이대로 괜찮은가.

    -이모탈 길드는 부정의 온상 플레이어 협회와 한통속?

    이모탈 길드의 것이 된 업무 위탁 계약을 무효화시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현성은 가볍게 응대했다.

    박기만과 대기업 그리고 언론이 하나로 뒤엉켜 있는 비리 자료를 인터넷에 올려 버린 것이다.

    * * *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짓거리를 벌인 거야?”

    오성 그룹 회장 이부관이 노성을 터트렸다.

    자회사인 오성 길드를 키워 주려다 모회사인 오성 그룹 자체가 망할 뻔했다.

    아직도 안정권이 아니었다.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어야 할 시기.

    그런데 핵폭탄이 터져 버렸다.

    그간 오성 그룹이 비밀리에 역대 대통령 후보들에게 건넸던 선거 자금이 드러났다.

    그것뿐이면 말을 안 한다.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주도하고 온갖 로비를 벌여 법을 피하고 왜곡했던 과거의 비리가 모두 까발려졌다.

    오성 그룹 회장 이부관은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이 정도면 정말 오성 그룹이 망할지도 모른다.

    아니, 망하지는 않더라도 기둥뿌리가 뽑힐 정도의 타격을 입을 게 자명했다.

    “당장 언론이랑 검찰부터 틀어막아!”

    “알겠습니다!”

    회장의 분노에 전략기획팀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인 기업은 오성 그룹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이라고 할 만한 기업들이 모두 꼬리에 불이 붙은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TV와 신문은 조용했다.

    하지만 인터넷은 아니었다.

    -지저분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건 완전히 지들 세상이네.

    -박기만도 썩었고 대기업도 썩었고 언론도 썩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전부터 정치권, 대기업, 언론이 손을 잡은 거야?

    -인터넷 뉴스는 올라가기 무섭게 내려가고, TV 뉴스에서는 아예 이 사실을 언급도 안 한다.

    -언론과 검찰이 입을 닫았다.

    -가자.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들고일어났다.

    과거에는 언론을 틀어막으면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진실을 감출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인터넷이 있었다.

    그날 저녁, 분노한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정치인들이 재빨리 반응했다.

    얼마 후면 새로운 대선이 치러진다.

    그때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마음을 자신의 쪽으로 끌고 와야 했다.

    소수당이 포문을 열었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관련자를 모조리 구속 수사하겠습니다!

    -부패한 대기업과 언론에 공정하게 그 죄를 묻겠습니다!

    소수당의 대통령 후보가 대기업과 언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여론이 소수당 대선 후보에게로 몰려들었다.

    원래대로라면 거대 당 대선 후보들에게 밀려 들러리나 섰어야 할 소수당 대선 후보가 갑자기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다.

    당연히 거대 당 대통령 후보들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정치권이 일제히 대기업과 언론을 공격했다.

    순식간에 대기업과 언론이 궁지에 몰렸다.

    더 이상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업무 위탁 계약을 떠올릴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말이다.

    * * *

    ‘끝났네.’

    현성은 정치인과 대기업에 대한 신경을 껐다.

    이제 자기들이 알아서 지지고 볶을 것이다.

    현성으로서는 플레이어 협회의 알짜배기들을 모조리 끌어모아 만든 이모탈 길드를 손에 넣은 것으로 만족했다.

    이모탈 길드는 플레이어 협회가 가지고 있던 권한의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

    쉽게 말해, 골치 아픈 일은 플레이어 협회에 떠넘기고 감찰권, 단속권 같은 핵심 권한만 빼 온 셈이었다.

    ‘한동안은 사냥에 집중해도 되겠어.’

    이모탈 길드를 만들고 그로 인해 발생한 뒤처리를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길드 운영은 강선영 길드장이 알아서 잘하고 있을 테니 이제 현성은 미국으로 넘어가는 일만 남았다.

    한데 그때 새로운 문제가 현성의 발목을 잡았다.

    일본에 있는 이누쿠소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려고 한다고?”

    -그렇습니다, 주인님. 국민들의 요구가 워낙 거세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 같습니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 나선다는 말이겠네?”

    -예, 그렇습니다. 외교부 장관과 차원 게이트 장관이 직접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저도 수행원 자격으로 함께 한국에 갈 것 같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런 협의를 할 여력이 없을 텐데.”

    -일단 의례적으로 대통령 업무 대행인 국무총리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고, 그 후 이모탈 길드를 직접 찾아가 도움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보상 조건은?”

    -규슈 지역을 수복하면 그곳에 있는 던전 일부의 소유권을 양도할 계획인 것 같습니다.

    “던전 소유권 양도?”

    -예, 그렇습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협상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훌륭한 정보원인 이누쿠소가 있으니까 말이다.

    서로 패를 까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협상은 어렵다.

    하지만 양쪽 패를 모두 볼 수 있다면?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손쉽게 협상의 우위를 점해 일방적인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협상이 깨져도 현성은 손해 볼 게 없다.

    반면 일본은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그동안 날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받아 내야겠어.’

    현성은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타나카 전 차원 게이트 장관이 자신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받아 낼 생각이다.

    증거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 역시 이누쿠소가 알아서 수집해 줄 테니까 말이다.

    * * *

    대선 준비가 한창인 와중에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사절단을 보냈다.

    목적은 간단했다.

    와이번 던전 몬스터 웨이브 사태를 종결시킨 플레이어를 일본 규슈 지역에 파견해 달라는 것.

    이 사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위안부 할머님들께 사과도 안 하는 놈들 도와줄 필요 없다.

    -강제징용 당하신 분들한테 피해 배상도 제대로 안 함.

    -우리 땅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놈들 아니냐?

    -임나일본부설 주장하며 역사 왜곡하는 놈들 도와줄 필요 없다.

    -전범기 쓰는 놈들 도와주지 마라.

    -저놈들은 꼭 지들 필요할 때만 도와 달라고 하더라?

    거센 반일 감정이 불어닥쳤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치인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본 사절단은 한국 정치인들의 물음을 두루뭉술하게 넘기고 이모탈 길드를 찾아갔다.

    이모탈 길드 역시 일본 사절단의 말을 두루뭉술하게 넘겼다.

    길고 긴 협상이 이어졌다.

    이모탈 길드는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배짱을 튕겼다.

    일본 사절단 역시 생각보다는 간절하지 않은지 적극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이누쿠소의 말에 따르면 국민들의 등쌀에 못 이겨 나왔을 뿐이란다.

    적당한 손해라면 몰라도 큰 손해와 정치적 부담까지 감수하면서 규슈 지역을 수복할 의지는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일본 사절단의 태도가 급변했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로 고통받으신 대한민국 희생자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로 인해 고통받으신 분들에게 그에 걸맞은 배상을 하겠습니다.

    -독도는 한국 영토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일제 침략의 상징인 전범기를 영원히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일본 사절단이 먼저 허리를 숙여 사과를 했다.

    단순한 쇼가 아니었다.

    위안부 할머님들 및 강제징용자들에게 배상.

    독도 한국 영토 인정.

    임나일본부설 역사 왜곡 사실 인정.

    전범기 영구 사용 중지.

    그간 줄기차게 부정했던 일들을 모두 인정하고 배상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보상이 아니라 배상이다.

    보상은 합법적인 행위에 대한 피해 손실을 갚는 것이다.

    배상은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피해 손실을 갚는 것이다.

    글자 하나 차이지만 그 의미는 천양지차였다.

    그간 일본은 보상이라는 말만 했지, 배상이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이 갑작스러운 태세 변화에 한국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들까지 깜짝 놀랐다.

    그건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현성이 의아한 목소리로 이누쿠소에게 물었다.

    일본 사절단은 그다지 간절하지 않았다.

    한데 왜 갑자기 태도가 급변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경제적, 정치적 부담을 지면서까지 말이다.

    -조인족들이 규슈섬을 벗어나 혼슈섬으로 넘어왔습니다.

    이누쿠소의 말을 듣는 순간 현성은 왜 일본이 갑자기 꼬리를 내렸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혼슈섬은 일본의 본토다.

    혼슈섬에서 규슈섬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일본은 그대로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규슈섬과 인접한 혼슈섬 지역의 거주민들을 모두 대피시켜 아직 언론에 노출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번 넘어온 이상 조인족들이 혼슈섬 전역으로 흩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혼슈섬으로 넘어온 조인족 무리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데?”

    -대략 5천 마리가 넘습니다.

    “엄청나네.”

    -그동안 조인족 무리의 숫자가 계속 불어났습니다. 총숫자는 대략 1만 마리 정도로 추정됩니다.

    “절반 정도가 넘어온 건가?”

    -그렇습니다. 아마 빠른 시일 내에 나머지 절반도 규슈섬에서 혼슈섬으로 넘어올 것으로 추정됩니다.

    “난리가 났겠네.”

    -예! 일본 정부는 현재 패닉 상태입니다. 오늘 아침 사절단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인님을 본토로 모셔 오라는 일본 정부의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호오, 그래?”

    일본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더 이상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이모탈 길드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일본은 그대로 멸망할 수도 있다.

    일본은 현성에게 무조건 백지수표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 * *

    현성이 일본 사절단을 만나기 위해 직접 움직였다.

    그동안 일본 사절단은 강선영 길드장이 상대해 왔다.

    “아무래도 도와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이 백기를 든 상황에서 지원 요청을 거부할 명분이 없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의 말에 현성도 동의했다.

    지원 요청은 들어줘야 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강선영 길드장님.”

    “예.”

    “이번 일은 저에게 전적으로 맡겨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실 이번 일은 제가 결정을 내려도 자문위원장님이 거절하면 끝나는 일 아닙니까?”

    사실 그랬다.

    강선영은 이모탈 길드의 길드장이다.

    하지만 현성은 이모탈 길드의 주인이다.

    현성의 말 한마디면 강선영 길드장은 길드장 자리를 반납해야 하는 처지다.

    또 일본이 원하는 것은 현성의 도움이지 이모탈 길드의 도움이 아니다.

    협상에 대한 모든 권한이 전적으로 현성에게 있는 것이다.

    “거절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시죠.”

    “현명하신 선택이십니다.”

    혹시나 하고 걱정하던 강선영 길드장이 현성의 확답을 받고 안심했다.

    “여긴가요?”

    “예, 그대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사절단이 있는 접객실 문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이모탈 길드의 자문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최현성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최현성 플레이어님. 제발 일본을 도와주십시오!”

    일본 사절단이 일제히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털썩!

    그 후에는 무릎도 꿇었다.

    “이렇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현성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 자식들이 감성 팔이를 사용해서 날로 먹으려고 하네.’

    이직 협상의 협 자도 안 나왔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시죠.”

    현성의 말에 일본 사절단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최현성 플레이어님은 하늘이 내린 천인이십니다.”

    “최현성 플레이어님은 규슈의 영웅이라 불리실 겁니다.”

    일본 사절단이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현성에게 아부를 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좀 급한 일이 있어서 당장 일본에 가기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예?”

    현성의 말에 일본 사절단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한 석 달 뒤가 어떻겠습니까?”

    석 달 뒤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일본 사절단들이 입을 열었다.

    “그, 죄송하지만 일정을 조금만 당겨 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일본 국민들은 한시라도 빨리 규슈섬을 회복하고 싶어 합니다.”

    “제발 일본 국민들의 열망을 헤아려 주십시오.”

    ‘일본 국민의 열망은 개뿔.’

    그동안 급할 거 하나도 없다는 듯 뭉그적거리면서 시간만 끌던 놈들이 이제 와서 국민을 끌어들인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이기에 그러십니까?”

    일본 외교부 장관의 물음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엄청나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건수가 하나 있어서요. 석 달 후면 마무리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성의 말에 일본 외교부 장관의 얼굴이 환해졌다.

    “돈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시지요. 일본을 돕느라 발생하는 손해는 일본 정부에서 전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상당히 큰돈인데요?”

    “얼마든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규슈 지역에 있는 던전을 다 저한테 넘기셔야 할지도 모르는데요?”

    현성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던 일본 외교부 장관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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