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권. 스카우트 (63/225)
  • ┃스카우트

    -네? 방금 뭐라고 하셨죠?

    당혹감이 가득 담긴 신윤아의 음성이 현성의 귓가를 울렸다.

    “제가 설립할 길드로 들어오실 생각이 없으시냐고 물었습니다.”

    -현성 씨가 길드를 만든다고요?

    “예, 그럴 계획입니다.”

    신윤아는 기가 막혔다.

    신윤아가 전화를 건 이유는 현성과 플레이어 협회의 계약 파기를 막기 위해서였다.

    한데 역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이건 자신에게 플레이어 협회를 나오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전 플레이어 협회를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애국심 때문인가요?”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는 잠시 고민했다.

    그것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간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어 온 강선영 협회장을 비롯한 감찰 대원들의 존재가 더 컸다.

    또 오랜 시간 함께 성장해 나간 플레이어 협회라는 조직에 대한 주인 의식도 강했다.

    플레이어 협회를 떠난다는 것은 신윤아에게 있어 집과 가족을 버리는 것과 같았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에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동료들을 두고 혼자 떠날 수는 없어요. 플레이어 협회가 이대로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생각도 없고요.

    “그럼 다 같이 저한테 오시면 되죠.”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동료분들도 다 데리고 오시라고요. 강선영 협회장님도 같이 오시면 좋겠네요.”

    -현성 씨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겠네요. 하지만 전 플레이어 협회에 속한 플레이들을 단 한 명도 버릴 생각이 없어요.

    “그럼 협회 직속 플레이어분들을 전부 다 모셔 오면 되겠네요.”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플레이어 협회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을 모두 끌어모아 새로운 길드를 조직한다.

    참 좋은 말이다.

    오랜 시간 한솥밥 먹은 동료들과 헤어질 필요도 없고 정부 기관인 플레이어 협회에서 사조직인 길드로 소속이 바뀌는 것 빼고는 달라질 것도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에요.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이 몇 명인지는 알고 있으신가요? 의무 복무 중인 인원을 제외해도 5천 명이 넘어요.

    대한민국의 플레이어 수는 대략 10만.

    북한 지역이 붕괴하고 플레이어의 숫자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14만을 넘지는 못했다.

    5,000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5천 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일 수도 없었고, 설사 움직인다고 해도 그들에게 플레이어 협회와 동일한 대우를 해 주는 것은 대기업도 불가능했다.

    한 번에 5천 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들과 계약해 막대한 계약금과 연봉을 지급할 수 있는 조직은 오직 국가뿐이었다.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거대 길드의 규모도 50개 파티 450여 명 정도의 규모였다.

    -한국에서 날고뛴다 하는 거대 길드들이 대기업 산하에 있는 이유도 막대한 초기 비용 때문이에요.

    몇십 명에서 100여 명 규모의 중소 길드를 만드는 데도 엄청난 초기 비용이 소모된다.

    그런데 갑자기 5천 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들을 끌어모아 길드를 만든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플레이어 협동조합 형식의 길드를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플레이어들이 똘똘 뭉쳐 개인 자금을 출연해 길드를 설립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그런 게 가능했다면 플레이어 협회나 거대 길드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소규모 파티를 만들어서 점점 규모를 늘려 나가는 게 현실적일 거예요.

    현존하는 중소 길드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대기업의 자금 지원을 받고 규모를 키워 거대 길드로 거듭났다.

    “전 플레이어 협동조합 형식의 길드를 생각한 게 아닌데요.”

    -네? 그게 무슨……?

    “협회 직속 플레이어분들에게 지금과 똑같은, 아니 지금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통째로 넘어오시죠.”

    -…….

    신윤아가 할 말을 잃었다.

    현성은 신윤아와 직접 만나기로 했다.

    신윤아는 강선영 협회장을 함께 데리고 가도 괜찮겠냐고 물었고 현성은 흔쾌히 승낙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현성의 눈에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가 들어왔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최현성 씨.”

    “그러게 말입니다, 강선영 협회장님.”

    현성과 강선영 협회장이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정부와 대기업을 물 먹일 수 있는 방법이 뭡니까? 혹시 이항구 전 정관을 실각시킨 것과 같은 방법입니까?”

    강선영 협회장의 말에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플레이어 협회를 포기하기 힘드신 모양이네.’

    “글쎄요.”

    “여론을 뒤집을 수만 있다면 플레이어 협회를 충분히 현재 규모로 존속시킬 수 있습니다. 굳이 현성 씨가 나서서 골치 아프게 새로운 길드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현성 씨, 이 나라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강선영 협회장이 현성이게 고개를 숙였다.

    “이러지 마십시오, 강선영 협회장님. 일단 제 이야기부터 들어 보시죠.”

    현성의 말에 강선영 협회장이 고개를 들었다.

    “말씀하시죠.”

    “제가 수집한 정보는 강선영 협회장님이 알고 있는 것과 대동소이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현 정부와 대기업들 간의 거래에 대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정부와 대기업에게 어떻게 복수를 한다는 말입니까?”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는 현성이 이항구 장관 실각 때 보여 준 정보 수집 능력을 주목했다.

    정부와 대기업에게 한 방 먹여 줄 수 있다기에 당연히 정보전을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니라니?

    “정부가 플레이어 협회를 축소시키려는 이유는 대기업을 밀어주기 위해섭니다. 겸사겸사 인재 유출도 하고요.”

    “맞습니다. 특히 최현성 씨와 윤아를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습니다.”

    현성과 신윤아가 고유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라는 정보는 이미 거대 길드에 넘어갔다.

    사실 고유 스킬 여부를 떠나서 그간 현성과 신윤아가 보인 활약만 봐도 포섭할 가치는 충분했다.

    “그런데 그게 다 무산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

    “플레이어 협회가 정부 소속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길드로 바뀌는 겁니다. 그럼 정부와 대기업 모두를 물 먹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플레이어 협회의 규모가 축소될 일도 없고 인재가 유출될 일도 없습니다. 그냥 간판만 바꿔 달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전 반대입니다. 사조직인 길드는 이득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건 국가 조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말할 것도 없고 산하 기관인 던전 관리청이나 플레이어 관리청에도 비리가 만연하지 않습니까? 강선영 협회장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플레이어 협회도 마찬가지고요.”

    “그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저는 순기능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비리는 하나하나 척결해 나가면 됩니다.”

    “비리가 척결되기는커녕 더 커지고 있는데 가능할까요?”

    현성의 물음에 강선영 협회장이 할 말을 잃었다.

    방금 전 했던 말은 강선영 협회장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정권이 들어오면서 그 신념이 무참히 꺾여 버렸다.

    설마 대통령과 여당이 국가의 자산을 사기업에 넘겨 버리려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강선영 협회장님이 제가 만들 길드로 오신다면 길드장 자리를 드리겠습니다. 윤아 씨한테는 부길드장 자리를 드리고요.”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는 꼭 품고 가야 했다.

    사실 강선영 협회장과 현성의 사이가 그리 좋았던 것은 아니다.

    강선영 협회장은 최대한 적은 보상으로 현성을 플레이어 협회에 종속시키고자 했다.

    반면 현성은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 내고자 했다.

    그래서 트러블이 생겼다.

    하지만 신윤아가 중간에서 잘 봉합해 준 덕분에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았다.

    ‘강선영 협회장과 윤아 씨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신뢰도는 상당히 높아.’

    강선영 협회장과 현성의 사이는 그리 매끄럽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랭커나 고레벨 플레이어 들과는 상당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협회 직속 랭커나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거대 길드 대신 협회를 선택한 것 역시 강선영 협회장의 공이다.

    약간 짠돌이 같은 면이 있고 작은 것을 보다가 큰 것을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기는 하지만, 그런 단점은 신윤아가 보완해 줄 것이다.

    정 아니다 싶으면 현성이 제동을 걸어도 된다.

    “네? 그게 무슨……?”

    자신에게 길드장 자리를 맡기고 신윤아에게 부길드장 자리를 맡긴다는 말에 강선영 협회장이 적지 않게 당황한 듯 보였다.

    “길드 운영권도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비상 대기조를 운영하든 국가의 인재가 될 저레벨 플레이어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든 전혀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이어지는 현성의 말에 강선영 협회장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정말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원하신다면 문서로 남겨 드릴 수도 있습니다.”

    현성의 말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 말이 정말로 지켜진다면 강선영 협회장은 자신의 이상을 마음껏 실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플레이어 협회 1년 예산이 얼만 줄은 아십니까?”

    “어마어마하겠죠. 하지만 초기 투자 비용이 클 뿐 적자를 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맞는 말이다.

    플레이어는 현대 경제의 핵심이다.

    길드가 돈만 먹는 하마였다면, 대기업들이 돈을 투자해 거대 길드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비상 대기조 운영과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후원에 들어가는 자금은 정부에 이자까지 쳐서 받아 낼 생각이었다.

    플레이어 협회가 하던 업무를 거대 길드에 위탁하려는 정부의 뜻을 꺾고 중간에 계약을 가로채기만 하면 된다.

    “그 초기 투자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한동안 미국에 있었던 건 아시죠? 그때 친분을 맺은 분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저한테 투자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그래서 제 명의로 작은 투자회사를 하나 설립했습니다. 아마 제가 직접 길드를 설립한다고 하면 당장 30조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겁니다.”

    현성의 말을 들은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30조라니?

    대기업도 쉽게 동원할 수 없는 액수였다.

    “상당히 큰돈이군요. 하지만 그 정도 금액으로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을까요?”

    “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할까요?”

    강선영 협회장의 물음에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30조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큰돈은 아닙니다. 협회 직속 고레벨 플레이어의 숫자만 해도 500명이 넘습니다. 계약금만 해도 한 사람당 300억 원 정도는 줘야 할 겁니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계약금만 지불해도 15조 원이 사라집니다. 투자금의 절반을 써야 하는 거죠. 또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연봉도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다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의 계약금과 매달 지불해야 하는 월급까지 생각하면 30조 원은 상당히 빠듯한 금액입니다.”

    솔직히 말해 좋게 말해 빠듯한 금액이지, 대놓고 말하자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여기에 대기업을 뒷배로 둔 거대 길드가 스카우트 경쟁에 가세하면 실력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뛸 게 분명했다.

    사실 그 정도 금액으로 플레이어 협회 정도 규모의 단체를 만들 수 있었다면 대기업들이 진작 만들었을 것이다.

    “아, 왜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나 했더니 제 설명이 부족했군요. 제가 말씀드린 30조는 원이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스톤 달러입니다.”

    스톤 달러는 마석이 등장한 이후 만들어진 화폐다.

    차원 게이트와 몬스터의 등장 이후 세계는 급변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그 틈을 노려 마석을 담보로 하는 스톤 달러를 발행했다.

    달러를 발행하는 연방준비은행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스톤 달러 발행 이후 달러의 위상은 상당히 떨어졌다.

    그 결과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달러보다 스톤 달러를 더 선호했다.

    “스톤 달러라고요?”

    “네, 저랑 친분 있는 투자자들은 다 외국인이잖아요.”

    “그럼 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300조 원 정도 되겠네요.”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300조 원이라고요?”

    강선영 협회장이 놀라서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한국의 1년 세수가 600조 원 정도다.

    300조원이면 한국 1년 세수의 절반에 달하는 액수다.

    돈이 원이 아니라 스톤 달러라는 점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화폐가 바로 스톤 달러였으니까 말이다.

    또 스톤 달러는 국제사회의 파워 게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스톤 달러는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마석과의 교환이 가능했다.

    마석은 석유를 대체한 에너지원이자 의학, 건설, 제조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만능처럼 사용되는 물질이었다.

    마석의 가치와 안정성은 금보다 높다.

    그런 마석을 담보로 하는 화폐가 바로 스톤 달러다.

    그 결과 스톤 달러는 현재 전 세계의 공용 화폐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현성의 물음에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왜 말씀들이 없으시죠? 혹시 부족한가요?”

    현성의 물음에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대 부족할 리가 없다.

    무려 300조 원이다.

    한국 정부도 저런 엄청난 금액을 플레이어 협회에 투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분들이 정말 현성 씨에게 300조 원을 투자할까요?”

    강선영 협회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성과 친분을 쌓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100조든 1,000조든 얼마든지 공수표를 남발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돈을 현성 하나만 믿고 투자하는 건 다른 문제다.

    현성의 잠재력은 인정한다.

    언젠가는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가 될 것이다.

    지금도 거의 그에 근접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300조 원은 절대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네, 투자할 겁니다.”

    “현성 씨, 지금부터 제가 할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성 씨가 만들 길드가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건 맞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강선영 협회장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으며 공수표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신윤아 역시 강선영 협회장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신윤아의 경우에도 협회에서 나와 길드를 설립하면 투자금을 대 주겠다는 투자자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신윤아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말로는 뭘 못 하겠는가.

    하지만 말과 행동은 그 무게가 다른 법이다.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현성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는지 현성이 영어로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런데 통화 내용이 심상치가 않았다.

    “제가 길드를 하나 설립하려고요. 그래서 말인데 전에 약속하셨던 투자금을 지금 당장 보내 주실 수 있나요? 아, 계좌 번호요? 제 명의로 된 투자회사 계좌를 문자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고 전화 끊겠습니다.”

    비슷한 형태의 통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현성은 통화를 끝내고 단체 문자를 보냈다.

    잠시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잉!

    그때 현성의 스마트폰이 연속적으로 진동했다.

    현성이 스마트폰 뱅킹에 접속해 계좌 잔액을 확인했다.

    “음, 대충 30조 2,000억 스톤 달러 정도 들어왔네요.”

    현성의 말에 강선영 협회장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게 달아올랐다.

    신윤아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의심스러우면 직접 계좌 확인해 보실래요?”

    현성의 물음에 잠시 망설이던 강선영 협회장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현성이 흔쾌히 자신의 스마트폰을 강선영 협회장에게 넘겼다.

    신윤아도 재빨리 다가와 현성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현성의 명의로 된 투자회사 계좌의 잔고를 확인한 강선영 협회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 정말이셨군요.”

    “당연히 정말이죠. 제가 귀한 분 모셔다 놓고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이시나요?”

    현성이 농담조로 물었다.

    “말 한마디 듣고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 큰 액수라서요. 솔직히 지금도 이 은행 어플이 가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돕니다.”

    “가짜 아니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스타우트 제의에 동의하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계약서 사인 즉시 계약금 지급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강선영 협회장님은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이나 잘 설득해 주세요.”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거액을 투자한 투자자들이 길드 경영에 간섭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못해요. 이미 투자금이 제 계좌로 들어왔잖아요. 돈을 먼저 줬는데 무슨 수로 간섭을 해요. 그리고 투자자들은 길드가 정상 궤도에 오르고 적당히 수익 분배만 해 주면 만족할 거예요.”

    “투자 금액을 회수한다고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못 해요. 투자 계약서에 경영권에 절대 간섭하지 않고 일방적인 투자금 회수도 불가능하다고 명시해 놨어요. 국제 투자 기구 공증까지 받아서 투자자도 마음대로 돈 못 빼 가요. 아마 저랑 척질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쓸데없는 헛수작은 못 부릴 겁니다.”

    현성의 말에 강선영 협회장이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 투자자는 돈이 썩어 나나? 어떻게 이렇게 큰돈을 간섭도 하지 않고 남에게 맡길 생각을 하지?’

    물론 강선영 협회장이 길드장이 된다고 해도 투자금을 횡령한다거나 낭비할 생각 따위는 없다.

    하지만 국가의 공익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 사용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것도 쿨하게 용인했다.

    강선영 협회장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하지만 굳이 현성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강선영 협회장에게는 무조건 잘된 일이다.

    괜한 말을 꺼내 초 칠 필요가 없었다.

    ‘투자금이 날아가면 그걸로 현성 씨를 옭아맬 생각인가? 혹시 미국 연방정부가 개입되어 있는 건가?’

    랭커 확보에 혈안이 된 미국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선영 협회장이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그럼 무조건 길드를 정상화시켜야 해. 절대 투자금을 날리면 안 돼. 현성 씨를 미국에 빼앗길 수는 없어.’

    하지만 그 헛다리의 결과가 상당히 좋게 작용했다.

    ‘완전히 넘어왔네.’

    현성은 생각에 빠진 강선영 협회장을 보고 자신이 던진 낚싯바늘에 제대로 걸렸음을 확신했다.

    돈은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는 길드 가입이 아니라 현성을 설득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

    하지만 어느새 분위기가 바뀌었다.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는 자신도 모르게 현성이 만든 길드의 가입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하긴 300조 원이면 사람을 홀릴 만하지.’

    물론 300조 원이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의 개인 재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두 사람이 꿈꾸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될 뿐이다.

    하지만 강선영 협회장이나 신윤아 같은 타입의 사람에게 있어 이상의 실현은 개인의 재산을 늘리는 것보다 더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을 설득하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전부 다는 힘들겠지만 거의 대부분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현성의 물음에 강선영 협회장이 재빨리 대답했다.

    본인의 길드 가입 여부는 이미 허락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바로 진행하죠. 쇠뿔도 단숨에 빼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며칠 후 강선영 협회장과 신윤아가 정식으로 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플레이어 협회를 나왔다.

    * * *

    차원 게이트 관리부 이종만 장관이 최현성과 신윤아를 포함한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의 계약 해지 서류를 확인했다.

    ‘결국 꼬리를 내릴 거면서 버티긴 왜 버텨?’

    이종만 장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반년간의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드디어 목적을 이룬 것이다.

    ‘역시 규제를 풀기 잘했어.’

    사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몰라도 최현성과 신윤아의 계약 해지는 절대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조건부이긴 했지만 플레이어 협회와 종신 계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최현성과 신윤아를 성장시키는 데 투입된 국가 재정이 얼마인가.

    그걸 생각하면 절대 종신 계약을 해지해 줘서는 안 됐다.

    하지만 이종만 장관과 현 정권은 죽이 착착 맞아 플레이어 스카우트 규제를 완화시켰다.

    그 결과 의무 계약 기간 2년이 지나면 남은 계약 기간과 무관하게 계약 중도 해지가 가능했다.

    쉽게 말해 10년짜리 장기 계약을 맺고 계약금 1,000억을 받았으면, 2년 후 800억을 내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식으로 법을 바꿔 버린 것이다.

    계약 연장 같은 경우는 2년의 유예 기간도 없었다.

    대기업 로비의 결과물이었다.

    이번 법 개정은 국가 재정을 투자해 키운 플레이어들을 대기업이 만든 거대 길드로 넘기기 위한 발판이었다.

    농사는 국가가 짓고 과실은 대기업이 따는 형국이다.

    플레이어 협회는 앞으로도 이런 역할을 소화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놈까지 그만둘 줄은 몰랐는데.’

    플레이어 협회장 강선영.

    그가 사표를 던질 줄은 몰랐다.

    강선영은 플레이어 협회가 플레이어 위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협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최상위 랭커였고, 업무 수완도 뛰어났고, 정치적인 이해도도 높았다.

    무엇보다 플레이어들을 아꼈고 애국심이 투철했다.

    ‘생각보다 빨리 포기했네. 더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한 건가?’

    빠른 항복 선언에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종만 장관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군.’

    강선영이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으로 있으면 곤란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플레이어 협회 장악이 목표인 이종만 장관에게 있어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플레이어가 던전에서 사냥이나 하고 마석이나 가지고 나오면 되지, 협회장은 무슨.’

    이종만 장관은 전처럼 플레이어 협회장은 정치권 인사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농사를 잘 지어 과실을 대기업에 넘길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머리가 조금만 잘 돌아가는 놈이었으면 제대로 꿀을 빨았을 텐데…….’

    이종만 장관이 강선영이었다면 진작 대기업과 손을 잡고 인재 유출을 단행했을 것이다.

    성장 가능성이 높지만 성장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플레이어들을 대거 스카우트해 적극적으로 밀어준다.

    그 후 대기업과 딜을 해 리베이트를 받고 성장이 끝난 플레이어를 거대 길드에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

    완전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인 사업이었다.

    계약 기간만 잘 조정하면 법에 저촉될 위험도 없었다.

    ‘이런 알토란 같은 사업을 외면하다니.’

    이종만 장관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단 연락부터 돌려야겠다.’

    이종만 장관이 강선영에 대한 생각을 접어 두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 이종만 장관일세.”

    -예, 장관님,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 있나. 그보다 한 가지 알려 줄 게 있어서 전화했네.”

    -경청하겠습니다.

    “최현성과 신윤아가 플레이어 협회와의 계약을 해지했네.”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다네. 이걸로 전에 한 약속은 다 지킨 거네. 이 이상은 자네가 알아서 해야 해.”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뒷일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꽤 오래 버티더니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월급도 안 주고 지원도 안 해 주는데 지들이 뭘 어쩌겠나?”

    -이게 다 장관님 덕입니다. 제가 따로 사례하겠습니다.

    “흠흠,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제 성의입니다. 제발 받아 주십시오.

    “뭐,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야.”

    이종만 장관이 못 이기는 척 대답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 줄 게 있네.”

    -경청하겠습니다.

    “강선영이 그놈이 사퇴를 했어. 협회 직속 계약도 해지했고.”

    -그게 정말이십니까?

    “내가 굳이 자네에게 거짓을 말할 필요가 뭐가 있나?”

    -정말 잘됐군요.

    “그러게 말일세. 한참은 더 고생해야 내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났어.”

    -이게 다 장관님의 공입니다. 그 건에 대해서도 제가 따로 사례하겠습니다.

    “너무 받으면 내가 미안한데.”

    -제 성의입니다. 받아 주십시오.

    “뭐,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그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내 알아서 잘 챙겨 줄 테니.”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하지만 이종만 장관은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방금 전과 비슷한 대화가 반복되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전화 통화가 끝났다.

    통화를 마친 이종만 장관의 안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게 다 얼마냐?’

    일은 하나만 했는데, 보수는 여러 곳에서 받는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위이이잉!

    그때 이종만 장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뭐지?’

    가장 먼저 통화했던 오성 그룹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장관님, 저 이현국입니다.

    “그래, 어쩐 일로 다시 전화를 했나?”

    -최현성과 신윤아가 이미 길드에 가입되어 있던데,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뭐?”

    플레이어 협회를 나가자마자 길드에 들어갔다는 소리에, 이종만 장관도 적지 않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일이지 않나. 다른 기업에서 먼저 채 간 모양이지. 자네도 방금 전에 분명히 뒷일은 알아서 한다고 하지 않았나?”

    -다른 기업에서 채 간 거라면 이해라도 하고 넘어가죠. 최현성과 신윤아가 들어간 길드의 길드장이 누군지 아십니까?

    “누군데 그러나?”

    -플레이어 협회 협회장이었던 강선영입니다.

    이종만 장관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게 정말인가?”

    -물론입니다. 거기다 그 길드에 들어간 게 최현성과 신윤아만이 아닙니다. 최우선 포섭 대상이었던 협회 직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모두 강선영이 길드장으로 있는 길드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이종만 장관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일이 이렇게 되면 우리가 얻을 과실이 없지 않습니까?

    “크흠, 그건 자네들의 실수 아닌가? 난 내 할 일을 다 했을 뿐이네.”

    이종만 장관이 일단 책임 회피를 위해 발뺌부터 했다.

    -방금 한 그 말, 회장님께 그대로 전해 드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회장님께 그대로 전해 드려도 괜찮겠냐고 했습니다.

    “…….”

    이종만 장관이 할 말을 잃었다.

    -당장 강선영이 만든 길드에 대해 파악부터 하세요.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와해시키십시오. 꼬투리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요. 아시겠습니까?

    “알겠네.”

    -만약 이대로 일이 무산되면 다른 그룹 회장님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최선을 다하겠네.”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그렇게 하십시오.

    “아, 알겠네.”

    -장관 자리에서 내려온 후 편하게 살고 싶으시면 일 처리 똑바로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뚝!

    통화가 끊겼다.

    위이이잉!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두 번째로 전화를 걸었던 그룹의 이사였다.

    ‘망할.’

    이종만 장관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해결하겠네. 미안하네.”

    -미안하다는 말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해결하십시오.

    뚝.

    이종만 장관의 등과 이마가 식은땀 범벅이 되었다.

    방금 전까지 감사하다고 따로 사례드리겠다고 공손하게 말하던 이들의 태도가 갑자기 180도 바뀌어 버렸다. 마치 빚 받으러 온 빚쟁이처럼 이종만 장관을 무섭게 독촉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겉으로는 이종만 장관이 갑처럼 보였다.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행동해도 대기업 이사들은 허리를 낮춰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대기업이 갑이고, 이종만 장관이 을이었다.

    대기업이 돈을 주기로 하고 이종만 장관에게 일을 시켰다.

    고용주와 피고용자 관계인 것이다.

    일을 잘했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었겠지만 일이 꼬인 이상 이종만 장관이 직접 책임지고 돈값을 해야 했다.

    “당장 강선영이가 설립한 길드 자료 싹 다 긁어 와!”

    이종만 장관의 외침에 보좌관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신생 길드 이모탈의 자료를 모아 왔다.

    “뭐야? 자본금이 고작 1,000억밖에 없잖아?”

    1,000억.

    큰돈이기는 하지만 그건 개인이 가졌을 때 이야기다.

    최현성과 신윤아 같은 톱클래스 랭커와 거대 길드가 점찍은 인재를 빼내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정에 이끌려서 들어간 건가?’

    거대 길드들은 최현성과 신윤아를 끌어들이기 위해 수천 억 원의 자금을 쓸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돈이 아니라 정에 이끌려 간 거라면 수천억 원의 자금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골치가 아프군.’

    최현성은 잘 모르겠지만, 신윤아의 경우 물욕이 없기로 유명한 플레이어 아닌가.

    최현성이 신윤아와 비슷한 부류라면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낮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개인주의가 강한 인물로 파악되고 있었는데 왜 이런 선택을 한 거지?’

    강선영 전 플레이어 협회장과의 친분도 그리 두텁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조사를 해 봐야겠어.’

    신윤아는 포기해도 최현성은 포기할 수 없다.

    대기업들이 가장 먼저 빼내 달라고 요구한 플레이어도 최현성이었다.

    “저, 장관님.”

    “왜 그러나?”

    “그게…… 강선영이한테 길드 지분이 하나도 없는데요. 완전 바지 길드장입니다.”

    길드는 엄연히 법인 사업체다.

    비상장주식회사라고 해도 당연히 주식 지분을 쥐고 있는 사람이 실질적인 회사의 오너다.

    “이모탈 길드 대주주가 누구야?”

    “그게…… 최현성 플레이어입니다.”

    “뭐?”

    “이모탈 길드는 최현성 플레이어 지분 100%로 만들어진 1인 주주 형태의 법인 회사입니다.”

    이종만 장관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강선영이 몸통인 줄 알았다.

    한데 강선영은 껍데기에 불과했고, 진짜 알맹이는 거대 길드들이 점찍은 최현성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종만 장관의 머리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역시 강선영 협회장이네.’

    현성이 자신이 만든 신생 길드 이모탈로 넘어온 플레이어들의 명단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계약금과 연봉을 거대 길드보다 더 준다고 해도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이름값도 없는 듣도 보도 못한 신생 길드에 몸을 맡기기는 쉽지 않다.

    직장인을 기준으로 예를 들자면, 연봉 9천만 원을 받고 대기업에 이직하기로 확정되어 있는 인재를 설득해 인터넷에 검색 기록도 안 나오는 신생 기업이 연봉 1억을 준다며 데려온 꼴이다.

    돈도 중요하지만 안정성과 신뢰도는 더 중요하다.

    입사한 회사가 몇 달 만에 망할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거대 길드가 아닌 신생 길드 이모탈을 선택했다.

    이건 전적으로 강선영 전 협회장의 공이었다.

    강선영 전 협회장이 길드장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수십 년을 노력해도 쌓을 수 없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현성이 길드장이 되었다면 절대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역시 명성이 중요하다니까.’

    현성이 이모탈 길드를 설립한 후 한 일은 바지 길드장 하나 영입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 후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감찰팀, 전투팀, 수색팀 등등 한국 플레이어 협회의 알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팀들이 고스란히 이모탈 길드에 둥지를 틀었다.

    바지 길드장인 강선영 전 협회장이 평생을 쌓아 온 명성과 신뢰도가 고스란히 이모탈 길드로 옮겨 온 것이다.

    물론 이탈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그건 현성에게 있어 실이 아닌 득이 되었다.

    고레벨 플레이어 중 이탈자의 숫자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미미했다.

    반면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은 상당수가 신생 길드인 이모탈로 가는 것을 꺼려 했다.

    강선영 협회장과의 신뢰 관계도 깊지 않았고 어차피 이직을 한다면 어느 정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중견 길드나 거대 길드를 더 선호했다.

    중저레벨 플레이어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그런 만큼 현재 벌어지는 일들의 진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정부와 거대 길드가 나서서 벌인 일에 강선영 전 협회장이 반기를 든 상황이다.

    정부와 거대 길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모탈 길드가 언제 풍비박산 날지 모르는 것이다.

    랭커나 고레벨 플레이어 들은 이모탈 길드가 사라져도 갈 곳이 많다.

    원하는 곳에 골라 갈 수 있을 정도의 스펙이다.

    반면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은 윗사람들에게 찍히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다.

    아니, 자칫 잘못하면 영원히 이 바닥을 떠나야 할 위험성도 존재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돈을 굳힐 수 있어 좋았다.

    ‘알짜배기만 몰렸어.’

    설립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생 길드 이모탈의 규모가 순식간에 거대 길드들을 눌러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현재 이모탈 길드에 가입한 길드원의 숫자는 무려 1,500명이 넘었다.

    500명은 4차 전직을 마친 고레벨 플레이어였고 나머지도 대부분 3차 전직을 마쳤다.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현성의 휘하에 있는 척살대원들밖에 없었다.

    ‘아마 지금쯤 난리가 났을 텐데.’

    협회 직속 플레이어의 숫자는 5천 명이다.

    한데 그중에서 1,500명이 일거에 빠져나갔다.

    그것도 실질적으로 성장이 끝나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의 고레벨과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말이다.

    현재 플레이어 협회는 업무가 마비 수순을 넘어서 아예 붕괴된 수준이었다.

    ‘이 정도에서 끝낼 수는 없지.’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선영 길드장을 만날 생각이었다.

    용건은 랭커 스카우트.

    거대 길드를 이루는 핵심이자 뼈대인 그들을 고스란히 이모탈 길드로 빼돌릴 생각이었다.

    ‘규제를 풀어 줬으니까 철저히 이용해 줘야지.’

    플레이어 스카우트 규제 완화가 적용된 대상은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만이 아니다.

    거대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 역시 그 대상이다.

    ‘대부분 2년은 넘었지.’

    의무 계약 기간을 넘긴 랭커는 계약금만 물어 주면 얼마든지 빼돌릴 수 있다.

    ‘돈지랄 한번 시원하게 해 보자.’

    마분석이라는 든든한 화수분이 있는 한 현성의 지갑이 쓰러질 일은 없었다.

    * * *

    “랭커들을 스카우트해 오자고요?”

    강선영 길드장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거대 길드들과 전면전을 치르자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닐까요?”

    강선영 길드장의 말에 현성이 피식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강선영 길드장님.”

    “예, 최현성 자문위원장님.”

    길드 내 현성의 직책은 자문위원장이었다.

    “협회 직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이모탈 길드로 끌어들인 순간 전쟁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고 거대 길드에서 얌전히 있을까요?”

    강선영 길드장은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을 자신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강선영 길드장의 생각일 뿐이다.

    거대 길드 입장에서는 이모탈 길드는 자신들이 데리고 가려고 침 발라 놨던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강탈해 간 도둑에 지나지 않았다.

    “음…….”

    강선영 길드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 현재 강선영 길드장은 약간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는 웬만하면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을 모두 데리고 오고 싶었다.

    한데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선선히 강선영 길드장의 요청에 응한 반면 중저레벨 플레이어들이 대거 이탈했다.

    강선영 길드장은 거대 길드의 랭커들을 스카우트해 분란을 일으키느니 플레이어 협회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오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지금 설득 작업 중인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온 후 진행하겠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예?”

    강선영 길드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직도 망설이는 플레이어들은 포기하기로 하죠. 그들은 이모탈 길드로 넘어올 생각이 없습니다.”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을 모두 데리고 와도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강선영 길드장의 물음에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하지만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여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굳이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요.”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이 할 말을 잃었다.

    “정히 신경이 쓰이시면 망설이는 플레이어들의 스카우트 작업은 계속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랭커 스카우트 작업을 뒤로 미룰 수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결국 강선영 길드장이 백기를 들었다.

    강선영 길드장은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두뇌 회전이 빠르고 똑똑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현성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뭔지 알고 있었다.

    “친분 있는 랭커들은 좀 있습니까?”

    “많죠.”

    강선영 길드장은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이 되기 전부터 랭커들과의 친분이 두터웠다.

    강선영 길드장은 1차 대격변이 발발한 해에 각성한 초창기 플레이어다.

    강선영 길드장은 다른 초창기 플레이어들과 함께 몬스터를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수많은 동료들이 죽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소수의 초창기 플레이어들은 모두 랭커의 자리에 올랐다.

    오랜 시간 생사를 함께한 초창기 플레이어들끼리는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서로 반목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긴 했지만 강선영 길드장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강선영 길드장은 같은 초창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엄청나게 좋았다.

    강선영 길드장이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평판의 힘이 컸다.

    “대부분이 권력에 큰 관심이 없는 녀석들이기는 하지만요.”

    권력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은 모두 거대 길드나 중견 길드의 길드장이 되어 있었다.

    “잘됐군요.”

    현성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한번 자리를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윤아도 따로 친분 있는 랭커들이 있을 겁니다.”

    “신윤아 씨께는 제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계약금의 상한선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까요?”

    랭커들의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당연히 지금 현재도 거대 길드에서 극상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아마 웬만큼 불러서는 지금 살고 있는 둥지를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무제한으로 하죠.”

    “예?”

    “투자금 300조 원을 다 쓰셔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투자야 또 받으면 되는 거니까요.”

    “투자를 더 받을 수도 있는 거였습니까?”

    강선영 길드장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물론입니다. 지금도 저한테 투자 못 해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담담한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하하하, 이거 랭커들의 몸값이 엄청나게 뛰겠군요.”

    강선영 길드장이 멋쩍은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사실 국내 랭커들의 몸값이 국제 표준보다 좀 낮은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현성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 모든 게 국내 대기업들의 담합 때문이었다.

    “국내 랭커들의 몸값을 제대로 띄워 보죠. 대기업들이 기겁할 정도로요.”

    “알겠습니다.”

    수백조 단위의 돈이 쏟아지면 기겁하는 정도가 아니라 게거품을 물며 기절할 것이다.

    아, 국내 대기업 말고 기겁할 존재가 하나 더 있기는 했다.

    바로 현성의 돼지 저금통이 되어 버린 마분석이었다.

    30조 스톤 달러를 마련하느라 죽을 똥을 쌌던 마분석은 현성이 추가 자금 요청을 하면 게거품을 물고 쓰러질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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