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권. 균열 (62/225)
  • ┃균열

    현성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루시아와 신윤아도 함께였다.

    미국 연방정부는 현성과 신윤아에게 레드 드래곤 레이드에서 활약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훈장도 받았다.

    뭐, 명예훈장이나 금성무공훈장 같은 높은 등급의 훈장은 아니었다.

    레드 드래곤 레이드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을 띄워 주기 위해 일괄적으로 지급한 훈장이었다.

    하지만 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어쨌든 훈장은 훈장이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신윤아와 헤어져 루시아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가족들을 만나 간단하게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현성은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사용해 루시아와 함께 다시 미국으로 갔다.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이 아깝네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도 동의했다.

    “그건 그렇습니다. 시간도 포인트도 너무 아깝습니다.”

    어차피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사용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던 현성과 루시아의 입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온 건 정말 시간 낭비, 포인트 낭비였다.

    “뭐, 어쩔 수 없죠. 기왕 온 거 제대로 본전 뽑고 가자고요.”

    현성과 루시아는 미국까지 오는 데 무려 200억 포인트를 사용했다.

    그런 만큼 빡 세게 사냥을 해야 했다.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아공간에 공간 확장 스킬이 걸린 가방까지 동원해 재고품을 바리바리 싸 왔다.

    미국 51개 주에 있는 던전을 싹쓸이하겠다는 각오였다.

    현성과 루시아가 다시금 던전 순회를 시작했다.

    한국에도 있는 던전은 패스하고 있음에도 돌아야 할 던전이 엄청나게 많았다.

    ‘엄청 빨리 오르네.’

    영웅 등급 던전을 청소하다 일반 등급이나 희귀 등급 던전을 돌기 시작하자 사냥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거기다 미국의 던전들은 한국의 던전들보다 플레이어 밀도가 상당히 낮았다.

    던전보다 플레이어 숫자가 적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왜 원정을 오나 했더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네.’

    자국 던전을 버려두고 타국으로 건너가 사냥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현성은 신이 나서 사냥에 열중했다.

    지금 정도 속도라면 예상보다 빨리 미국 전역의 던전들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국이 끝나면 그다음은 캐나다와 멕시코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던전을 싹쓸이한다.

    그 후에는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면 된다.

    아메리카 대륙의 던전을 모두 클리어하면?

    유라시아 대륙이나 아프리카 대륙으로 가면 된다.

    ‘전 세계에 있는 던전들을 모두 클리어해야겠어.’

    지구에 등장하는 모든 몬스터들을 사냥해 업적을 쌓는다.

    그게 현재 현성의 목표였다.

    * * *

    “도대체 최현성 플레이어는 왜 사냥을 안 하고 있는 겁니까?”

    한국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후보자 이종만이 한국 플레이어 협회장 강선영에게 물었다.

    “글쎄요. 미국에서 고생했으니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럼 신윤아 플레이어는요? 신윤아 플레이어는 지금 거의 던전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 새끼는 왜 정식으로 임명도 되기 전에 나한테 와서 이 지랄을 하는 거야.’

    이종만 장관 후보자의 질책에 강선영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항구 장관이 실각된 후 새롭게 임명된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얌전히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나 여당과 야당이 뒤바뀌었다.

    신임 대통령은 내각 인사를 단행했고 새로운 장관과 차관 후보자를 뽑았다.

    후보자 검증만 끝나면 이종만 장관 후보자는 정식으로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이 된다.

    그런데 이놈이 얌전히 있던 현 장관과 달리 벌써부터 분탕질을 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정식으로 장관 자리에 앉기도 전에 플레이어 협회에 찾아와 꼬투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던전에서 사냥을 하든 하지 않든 그건 플레이어 개인의 자유입니다. 제가 협회장이라고 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습니다.”

    강선영 협회장의 말에 이종만 장관 후보자가 얼굴을 구겼다.

    “이봐요, 강선영 협회장, 내가 말이 장관 후보자지 실질적으로는 장관이 된 거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에요. 당신 직속 상사라 이 말입니다. 그런데 말을 그렇게밖에 못 해요?”

    “예?”

    “상사가 잘못을 지적하면 잘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이런 말이 나와야지 왜 변명이 먼저 튀어나옵니까?”

    강선영 협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누구 앞에서 표정을 굳혀요? 내 말이 기분 나쁘다 이겁니까?”

    이종만 장관 후보자의 심술에 강선영 협회장은 골이 아파 왔다.

    이항구 전 장관보다 더 권위적이고 생각 없는 놈 같았다.

    ‘도대체 정부 인사를 왜 이따위로 단행하는 거야?’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후보자면 플레이어 협회와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의 관계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종만 장관 후보자님, 플레이어 협회와 협회 직속 플레이어는 종속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해서 사냥을 해라 마라 지시할 수 있는 권리 따위는 없습니다.”

    이종만 장관 후보자는 후보자님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도대체 왜 계약금을 주고 연봉을 지급합니까?”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출동하는 게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입니다. 또 비상 대기조 근무 역시 서고 있고요.”

    “그럼 비상 소집령을 내리면 될 거 아닙니까? 지금 플레이어 협회는 적자투성입니다. 막대한 계약금과 연봉을 지급하긴 했지만 실속이 없다 이 말입니다. 국민의 혈세를 이렇게 낭비해서야 되겠습니까?”

    강선영 협회장은 기가 막혔다.

    플레이어 협회는 사조직이 아니다.

    국가의 국세 지원을 받는 정부 기관이다.

    당연히 사조직처럼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운용되지 않는다.

    플레이어 협회의 존재 의의는 정부가 사조직인 거대 길드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독자적인 플레이어를 양성하는 데 있다.

    또 국가 위기 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된다.

    그 외에도 던전에서 문제가 생겼거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출동해 해결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비상 소집령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거기다 적자 폭이 커진 것도 상당히 최근 일이다.

    그것도 2차 대격변과 이무기 사태 그리고 오크 무리 사태 등을 해결하느라 투입된 자금이었다.

    “혈세 낭비라니 말씀이 심하시군요.”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말이 심해?”

    이종만 장관 후보자의 반말에 강선영 협회장의 표정에 노기가 서렸다.

    마음 같아서는 똑같이 반말로 응대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강선영 협회장은 애써 화를 억눌렀다.

    “플레이어 협회는 혈세를 낭비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걱정이 되시면 정식으로 장관 취임하신 후에 감사라도 진행하시죠.”

    강선영 협회장은 당당했다.

    툭 터놓고 말해 비리를 저지르는 협회 직원들은 차원 게이트 관리부와 연결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비리를 저지르는 직원들을 처리하지 못한 것도 차원 게이트 관리부가 막았기 때문이다.

    강선영 협회장이 전권을 휘두를 수 있었다면 진작 비리를 저지르는 직원들을 색출해 싹 다 쓸어버렸을 것이다.

    강선영 협회장의 당당한 말에 이종만 장관 후보자가 한발 물러났다.

    “뭐, 좋습니다. 그럼 그 건은 넘어가지요. 하지만 막대한 계약금과 연봉을 받은 플레이어가 놀고만 있는 것은 직무유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시정하세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조만간 정식으로 장관 취임식이 있을 예정인데, 그때 최현성 그 친구를 포함해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에 참여했던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 모두 참석하게 하세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강선영 협회장의 말에 이종만 장관 후보자가 얼굴을 확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협회장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저렇게 무능한 놈이 무슨 플레이어 협회장이야? 장관이 시키면 그냥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관님.’ 하고 대답을 해야지 노력은 무슨…….”

    이종만 장관 후보자의 혼잣말을 들은 강선영 협회장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꽝!

    이종만 장관 후보자가 협회장 집무실 문을 거칠게 닫고 모습을 감췄다.

    “아, 뭐 저런 반푼이가 장관이냐?”

    강선영 협회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앞으로 골치깨나 썩을 것 같았다.

    * * *

    “플레이어 협회에서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취임식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고?”

    -어, 문자로 왔어.

    누나 최현지의 말에 현성이 얼굴을 구겼다.

    “바빠서 못 간다고 해.”

    -알았어.

    뚝!

    통화가 끊어졌다.

    “취임식은 무슨 취임식이야?”

    현성은 별생각 없이 중얼거리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현성이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취임식 참석을 거절했듯 다른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 역시 거절의 뜻을 표했다.

    이전까지 그런 행사에 참석하라고 연락이 온 적도 없었고, 참석해야 할 필요도 없었기에 거절한 것이다.

    그 후 얼마 가지 않아 문제가 터졌다.

    “아, 이 또라이 새끼.”

    강선영 협회장이 얼굴을 구겨졌다.

    정부에서 지급해 주는 분기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에게 정해진 월급도 제대로 주기 힘들 정도였다.

    강선영 협회장은 곧바로 차원 게이트 관리부에 전화를 걸었다.

    “왜 이번 분기 예산이 삭감된 겁니까?”

    -정부 예산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아니, 우리나라가 1년에 집행하는 예산이 얼만데 부족합니까? 그리고 지금 집행되는 자금은 이미 전년도에 승인된 거지 않습니까?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예산이 삭감됩니까?”

    -예산이 삭감된 게 아니고 당장 돈이 부족해 지급을 미룬 것뿐입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정부 예산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강선영 협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건 벽에다 대고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강선영 협회장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내일 직접 차원 게이트 관리부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선영 협회장은 또라이 신임 장관이 괜한 심술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플레이어 협회의 방만한 운영이라는 주제의 뉴스가 특집으로 방송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단순히 신임 장관 한 명이 난동을 부린다고 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 * *

    현성은 오늘도 루시아와 함께 미국의 던전을 순회했다.

    미국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반년 가까이 되었다.

    그 결과 미국 던전 클리어도 꽤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조금만 더 하고 캐나다로 넘어가자.’

    파지지직!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을 발동시켜 전방에서 달려들던 몬스터 무리를 전멸시켜 버렸다.

    반년 동안 흑뢰룡의 숨결과 불사의 서 그리고 용혈검은 꾸준히 성장했다.

    신화 등급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전설 등급 스킬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효율을 자랑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전설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몬스터 앤트맨 10,000마리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앤트맨 학살자 - 전설 등급]

    업적 달성이 끝났다.

    “루시아, 저는 업적 클리어됐어요.”

    “저도 끝났습니다.”

    여유 포인트로 영웅 등급 광역 스킬을 구입한 루시아는 업적 클리어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업적 작업을 완료한 현성과 루시아가 던전을 빠져나갔다.

    이제 다음 던전을 향해 이동할 차례였다.

    던전을 빠져나온 현성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은 내용의 문자가 와 있었다.

    “척살대원들이 플레이어 협회와의 계약을 해지해도 되겠냐고 물었다고?”

    현성은 척살대원들을 뽑아 놓고 사실상 방치했다.

    하지만 척살대원들은 알아서 쑥쑥 성장했다.

    애초부터 타고난 자질이 남달랐고 여기에 금적인 지원이 더해졌다.

    거기다 군주의 깃발 효과로 스텟까지 6%나 증가했다.

    척살대원들의 빠른 성장은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또 척살대원들은 자기들끼리 뭉쳐 파티를 이루기도 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파티를 짜 사냥하는 것보다 같은 척살대원들끼리 파티를 짜 사냥하는 게 더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같은 군주를 모시는 신하들끼리 가지는 동질감 역시 큰 효과를 발휘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방치해 놔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커 가던 척살대원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척살대원들은 현성이 플레이어 협회를 통째로 집어삼키기 위한 첨병이었다.

    그들이 플레이어 협회를 탈퇴하면 현성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아무래도 한국에 가 봐야겠어.’

    슬슬 전자 제품을 보충할 때도 됐다.

    결정을 내린 현성은 숙소에 들러 짐을 챙긴 뒤 곧바로 한국으로 향하는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찢었다.

    한국에 도착한 현성은 곧바로 누나 최현지를 통해 전달받았던 내용을 직접 확인했다.

    ‘지원이 넉 달 넘게 끊겼다니…….’

    월급도 마찬가지였다.

    현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의 통장 계좌도 확인해 봤다.

    플레이어 협회에서 지급하는 월급은 현성에게 그리 큰돈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예 어머니에게 맡겨 버린 상태였다.

    스마트폰 뱅킹을 통해 계좌 거래 내역을 확인했다.

    ‘두 달 치가 입금이 안 됐네?’

    현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플레이어 협회를 질타하는 기사들이 많다고 생각은 했는데…….’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현성은 바로 신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최현성입니다.”

    -아, 현성 씨.

    “두 달 치 월급이 입금이 안 돼서요.”

    현성은 플레이어 협회와의 계약을 1년 연장한 상태였다.

    -그게 좀 골치 아픈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전화 통화로 하기는 좀 그렇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현성이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바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현성과 신윤아가 만난 장소는 룸 형식으로 이루어진 커피숍이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게요.”

    신윤아는 한국에 있었고 현성은 미국에 있었으니 만날 수가 없었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거죠? 척살대원들은 벌써 넉 달째 월급을 못 받았다고 하던데요. 지원도 끊겼고요.”

    “휴!”

    신윤아가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정권이 바뀐 건 아시죠?”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저도 투표했으니까요.”

    “새롭게 바뀐 정권이 플레이어 협회를 축소시키려는 것 같아요.”

    “그게 무슨……?”

    현성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전 정권도 문제투성이기는 했다.

    하지만 플레이어 협회를 키우면 키웠지 축소시키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정부 지원금이 대폭 삭감됐어요. 현재 플레이어 협회의 규모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요. 처음에는 신임 장관의 독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정부 차원에서 플레이어 협회를 전 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어요.”

    지원금 삭감, 플레이어 협회 감사, 매일같이 터져 나오는 플레이어 협회를 저격하는 기사들까지.

    제대로 진상을 파악해 보도하면 좋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관리 부실까지 플레이어 협회에 떠넘기고 있었다.

    정부와 언론이 합심해 플레이어 협회를 공격한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아니, 정부가 미친 거 아닙니까?”

    플레이어 협회는 정부 조직이다.

    정부가 스스로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다니,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이라는 말인가.

    이건 제 살 깎아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미친 건 아니더라고요. 아주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플레이어 협회를 공격하고 있었어요.”

    “그 확고한 목적이 도대체 뭔가요?”

    “플레이어 협회의 규모 축소와 인재 유출이죠.”

    “예?”

    현성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플레이어 협회의 규모 축소와 인재 유출이라니?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미친 게 아니라고요?”

    “제 짐작이기는 한데 현 정부와 대기업들 사이에서 불법적인 거래가 있었던 것 같아요.”

    “불법적인 거래요?”

    “예, 플레이어 협회가 축소되거나 사라지면 가장 이득 보는 집단이 어딜까요?”

    신윤아의 질문에 현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플레이어 협회가 축소되거나 사라진다?

    그럼 비상 대기조 근무를 포함해 지금까지 플레이어 협회가 해 오던 일을 대신 해 줄 존재가 필요했다.

    그 일을 누가 대신 하게 될까?

    “거대 길드들이겠네요.”

    그나마 플레이어 협회의 일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조직은 거대 길드들뿐이다.

    “맞아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거대 길드들의 목에 목줄 걸 존재도 사라지겠네요.”

    플레이어 협회가 있기에 거대 길드들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었다.

    그런 플레이어 협회가 사라지거나 축소되면?

    거대 길드 입장에서는 사사건건 자신들의 일을 방해하던 얄미운 감시자가 사라지는 꼴이다.

    또 거대 길드의 영향력이 커진다.

    플레이어 협회가 유명무실해지면 정부는 몬스터 웨이브나 차원 게이트 생성 등의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기업들이 만든 거대 길드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이건 완전히 공기업을 민영화시키는 꼴 아닙니까?”

    “그렇게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윤아의 말에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그 꼴을 국민들이 가만히 내버려 둡니까? 야당은 또 뭘 하고 있고요?”

    “국민 여론은 둘로 갈라졌어요. 정부의 의도를 알아차린 국민들이 반발하고 있기는 한데, 플레이어 협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쪽 의견도 상당히 크거든요.”

    “하!”

    현성은 기가 찼다.

    “플레이어 협회는 현재 언론의 장난질로 완전히 악의 축으로 전락한 상태예요. 그래서인지 플레이어 협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 큰 힘을 얻고 있어요.”

    “야당은요?”

    “처음에 강하게 반발하다 수그러들었어요. 아마 그쪽도 뭔가 받아먹은 게 있겠죠.”

    “골치가 아프네요. 국민들은 무조건 플레이어 협회 편일 줄 알았는데.”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 3연속 성공의 금자탑을 쌓아올린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당연히 레이드를 주관한 플레이어 협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도 상당히 높았다.

    “오크 무리 난동 때 입은 피해 때문에 여론이 그리 좋지는 않아요. 또 국민들이 플레이어에게 열광한다고는 하지만, 플레이어를 특권층이라고 생각하고 싫어하는 국민들도 상당해요.”

    그건 이해했다.

    현성도 그랬다.

    플레이어를 동경했지만 한편으로는 질투하기도 했다.

    “상황이 반전될 가능성은 없나요?”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일단 플레이어 협회가 축소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 같아요. 하지만 규모가 줄어들더라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만은 막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신윤아의 말에 현성은 골치가 아팠다.

    자신의 것이라고 침 발라 놓은 플레이어 협회가 졸지에 사라지거나 대폭 축소되게 생겼다.

    설마 정부에서 자신의 수족이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어 협회를 팔아먹으려고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잠깐만.’

    한참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던 현성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굳이 플레이어 협회를 살릴 필요가 있나?’

    플레이어 협회가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잠깐 착각을 했다.

    플레이어 협회는 현재 현성의 소유가 아니다.

    또 현성이 플레이어 협회를 장악하더라도 정부의 지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냥 내가 먹으면 안 되나?’

    정부와 대기업들의 목적은 플레이어 협회를 축소시켜 거대 길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부수적으로 플레이어 협회의 인재들을 거대 길드로 끌어들이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현성은 대기업이 아니다.

    하지만 현성에게는 마분석이라는 화수분이 존재했다.

    마분석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중국의 막대한 자금을 유용할 수 있다.

    G2 중 하나인 중국의 자금이 많을까, 아니면 국내 대기업들의 자금이 많을까?

    ‘국내 대기업들이 다 달려들어도 안 되지.’

    중국이 큰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

    거기다 마분석의 활약으로 외국계 회사 투자도 늘어나 점점 과거의 영광을 회복해 가고 있었다.

    ‘한번 해 보자.’

    플레이어 협회를 집어삼키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생겼다.

    현성은 신윤아와 헤어지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길드 설립을 위한 절차와 플레이어 스카우트에 대한 조건을 살펴봤다.

    ‘엄청 완화됐네.’

    길드 설립 절차는 동일했지만 까다로웠던 스카우트 조건이 상당히 많이 완화되어 있었다.

    아마 플레이어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을 빼내 가기 위해 스카우트 조건을 완화시킨 듯했다.

    ‘좋아, 아주 좋아.’

    잘만 하면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만이 아니라 거대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도 얼마든지 빼내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상당히 많은 자금이 소모되겠지만, 거기에 대한 걱정은 1%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현성은 플레이어 협회에 정식으로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또 척살대원들에게도 플레이어 협회와의 계약을 해지하라고 지시했다.

    당장 신윤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성 씨, 전에 만났을 때 플레이어 협회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계약 해지라뇨?

    “플레이어 협회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기다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요.”

    -그렇기는 하지만…….

    “또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차원 게이트 관리부에서 저를 그렇게 물고 늘어진다면서요?”

    그건 사실이었다.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현성의 계약 문제를 집중 공격했다.

    현성이 있었음으로써 얻은 이득은 무시하고 손해만 따진 것이다.

    현성으로 인해 얻은 이득을 무시한 근거는 비상 소집령이었다.

    이무기 사태나 오크 무리 사태 당시 거대 길드 소속의 고레벨 플레이어들도 참여했다.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그렇게 막대한 투자를 해 가면서까지 현성을 끌어안고 있는 게 손해라고 주장했다.

    굳이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아도 필요할 때 비상 소집령을 발동시켜 부려 먹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결정적으로 물고 늘어진 건 던전 소유권이었다.

    어떻게 일개 개인이 국가 소유인 던전을 소유할 수 있냐며 게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현성의 던전 소유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관리 능력이 충분하고 그간 국가에 오랜 시간 봉사해 온 거대 길드들의 공이 월등히 크다며, 대놓고 거대 길드들에게도 던전 소유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성은 척살대원들이 수집해 온 정보와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통한 조사로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윤아 씨도 집중 공격 대상이라고 들었습니다.”

    던전 소유권을 가진 건 현성만이 아니다.

    신윤아도 던전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현성과 함께 정부가 보유한 유이한 고유 스킬 플레이어다.

    -공격만이 아니라 스카우트 제의도 엄청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절 회유하려는 거죠.

    “다 거절하셨겠네요.”

    -당연하죠. 그놈들이 플레이어 협회를 궁지에 몰아넣은 장본인들인데 어떻게 굴복하겠어요.

    “그놈들한테 복수하고 싶으시겠네요?”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당연히 복수하고 싶죠.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요.

    “제가 그놈들 제대로 물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그게 정말인가요?

    “물론입니다.”

    -그 방법이 뭐죠?

    “그걸 말씀드리기 전에 윤아 씨에게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습니다.”

    -제안요?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혹시 제가 설립할 길드로 들어오실 생각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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