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권. 아낌없이 주는 드래곤 (61/225)
  • ┃아낌없이 주는 드래곤

    “극단적인 형태의 방어형 몬스터로 보입니다.”

    플레이어들과 레드 드래곤의 전투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분석관의 말에 윌리엄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함께 보고를 듣고 있던 현성을 포함한 랭커들 역시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공격적인 외형을 가진 주제에 극단적인 형태의 방어형 몬스터라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오.”

    윌리엄의 말에 탐색 스킬과 분석 스킬을 가진 분석관들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 강대한 마력이 순수하게 방어용으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브레스가 유일한 원거리 공격 수단인 것 같은데 위력은 생각보다 그리 강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위협적이겠지만 고레벨 플레이어들에게는 아닙니다.”

    “굳이 위력을 따지자면 마법사 계열 희귀 등급 몬스터가 사용하는 공격 스킬 정도입니다.”

    “대신 신체 능력이 상당히 위협적입니다. 아무래도 산 같은 크기의 거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힘이 주무기인 것 같습니다.”

    “다만 스피드는 영웅 등급 몬스터 정도로 판단됩니다. 체력 스텟을 위주로 찍은 탱커들에게는 위협적이지만, 민첩 스텟을 주력으로 찍은 근접 딜러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속도입니다.”

    ‘그냥 전형적인 탱커라는 거잖아.’

    분석관의 설명을 들은 현성의 결론이었다.

    엄청나게 단단하다.

    반면 공격 스킬인 브레스의 위력은 강력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상당히 빈약하다.

    힘은 강하지만,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전형적인 탱커의 특성 아닌가.

    사실 이번 전투에서 사망한 2천여 명가량의 플레이어들은 거의 대부분이 탱커였다.

    탱커가 아닌 경우에는 힐러나 원거리 딜러 들이었다.

    “그럼 탱커 없이 근접 딜러 위주로 척살대를 짜도 된다는 말인가?”

    윌리엄의 물음에 분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오히려 플레이어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럼 화력이 너무 줄어들 텐데.”

    윌리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탱커나 힐러는 몰라도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원거리 딜러들을 배제하는 건 타격이 너무 컸다.

    그때 가만히 회의를 참관하고 있던 현성이 입을 열었다.

    “근접 딜러들이 원거리 딜러를 등에 업고 싸우면 안 됩니까? 그러다 원거리 딜러들의 마력이 고갈되면 근접 딜러들이 공격하면 되고요.”

    현성의 말에 윌리엄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게 좋겠군요.”

    윌리엄이 냉큼 대답했다.

    꼴이 조금 우스꽝스럽기는 하겠지만 현성이 말한 방법을 사용하면 원거리 딜러와 근거리 딜러의 화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레드 드래곤의 방어를 뚫을 수 있을까요?”

    랭커 중 하나가 던진 말에 모두의 시선이 레드 드래곤의 모습을 생중계하고 있는 대형 모니터로 향했다.

    대형 모니터 속에 있는 레드 드래곤은 사방에서 폭격이 떨어지는데도 태연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 * *

    “방어형 몬스터를 많이 보기는 했지만 레드 드래곤 같은 경우는 처음이네요.”

    신윤아의 말에 현성도 동의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붉은빛의 오라를 제거하면 타격을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게 불가능해 보이니…….”

    레드 드래곤은 전설 등급 몬스터였지만 인류를 멸망시킬 정도의 강력함을 가졌다.

    브레스의 공격력은 플레이어에게는 약한 수준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공격이 통하지 않으니 잡을 수도 없다.

    저대로 활보하고 다니면서 도시를 하나둘 멸망시키다 보면 결국 아메리카 대륙 전체가 잿더미로 변할 것이다.

    “잡기는 잡아야 하는데, 잡을 방법이 없네요.”

    “그러게요.”

    현성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레드 드래곤의 방어막을 뚫고 몸에 용혈검을 꽂아 넣기만 하면 이무기 레이드 때처럼 제대로 꿀을 빨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불가능했다.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어떨까요? 레드 드래곤 레이드에 큰 도움을 주기는 힘들 것 같은데…….”

    신윤아의 말은 타당했다.

    현성과 신윤아는 이미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에 참여해 얻을 수 있는 업적은 모두 획득했다.

    설사 레이드에 성공하더라도 미국이 전리품을 나눠 줄 것 같지도 않았다.

    현성과 신윤아의 입장에서는 강력한 방어형 몬스터인 레드 드래곤과 장기간 실랑이를 하느니 영웅 등급 던전에서 사냥을 하는 게 더 이득이었다.

    “일단 조금만 더 공략해 보고 정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현성의 말을 들은 신윤아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토해 냈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는 걸 보니 미국에 눌러앉을 계획은 아니었나 보다.

    “그럼 한국 플레이어 협회에 그렇게 보고를 올릴게요.”

    그 말과 함께 신윤아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잡을 방법이 없을까?’

    현성이 고심에 고심을 이어 갔다.

    계속해서 미련을 가지는 이유는 용혈검 때문이다.

    히드라의 피를 잔뜩 흡수하기는 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했다.

    ‘전설 등급 용종 몬스터가 언제 또 등장할지 알 수 없어.’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용혈검을 성장시켜야 했다.

    현성이 구매창을 열었다.

    항상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책이 되어 주던 존재가 바로 구매창이었다.

    전설 등급 스킬북을 쭉 훑어봤다.

    혹시 매물이 나왔나 싶어 뇌전 계열과 회복 계열 스킬북도 살펴봤다.

    하지만 역시 씨가 마른 상태였다.

    현성이 천천히 구매창을 둘러봤다.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스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흑뢰룡의 숨결보다 강해 보이는 스킬은 없었다.

    현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웅 등급 스킬로 시선을 낮췄다.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템도 한번 볼까?’

    소모형 아이템 중에는 특이한 효력을 가진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 정답이 있을지도 몰랐다.

    ‘어?’

    그러던 중 현성의 눈에 한 가지 아이템이 들어왔다.

    드레이크 전용 간식 - 희귀 등급

    -드레이크들이 좋아하는 몬스터들의 사체와 마석을 버무려 만든 영양 간식입니다.

    -드레이크뿐 아니라 용종 몬스터들에게도 인기가 좋습니다.

    -소모형 아이템입니다.

    -판매자 : 불카드곤

    -판매가 : 9,999,999포인트

    ‘불카드곤이면 용종 몬스터의 알을 전문적으로 파는 사람인데?’

    설마 간식까지 팔 줄은 몰랐다.

    현성이 후기를 살폈다.

    베스트 구매평

    바르투크 - 정말 잘 먹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드레이크들이 간식을 통째로 삼키다 보니 가끔 목에 걸리기도 하네요.

    ↳ 사드비이 - 몬스터 뼈가 섞여 있어서 종종 그런 일이 있기는 하죠. 그래도 물 좀 먹여 주면 금방 넘어가던데요?

    ↳ 바르투크 - 그렇기는 하죠.

    ……후략……

    ‘간식이 가끔 목에 걸린다고?’

    중요한 정보가 하나 나왔다.

    ‘잘만 하면 될 것도 같은데. 한번 사 보자.’

    -소모형 아이템 드레이크 전용 간식 - 희귀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망설이지 않고 예를 눌렀다.

    고작 1000만 포인트짜리 아이템이다.

    머릿속의 계획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그 정도 포인트는 충분히 투자할 수 있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엄청나게 큰 고깃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 크네.’

    드레이크가 한입에 먹기 딱 좋은 크기였다.

    현성에게 배정된 숙소가 컸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난리가 날 뻔했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에게는 너무 작아. 그래도 테스트는 한번 해 보자.’

    현성이 드레이크 전용 간식을 아공간에 넣은 뒤 어둠의 장막 스킬을 사용해 조용히 숙소를 빠져나갔다.

    연속적으로 이동 스킬을 사용한 현성의 눈앞에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미군도 참 대단하네.’

    별다른 효과가 없음에도 미군은 계속해서 폭격을 퍼붓고 있었다.

    현성은 드레이크 전용 간식을 아공간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 후에는 간식 냄새가 퍼지도록 바람 계열 스킬을 사용했다.

    -크르르릉!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레드 드래곤이 벌떡 일어났다.

    쿵! 쿵! 쿵!

    레드 드래곤이 전력으로 질주해 드레이크 전용 간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놈 보게.’

    레드 드래곤은 붉은빛 오라를 넓게 펼쳐 간식을 보호했다.

    그러더니 거대한 입을 벌려 드레이크 전용 간식을 한입에 삼켜 버렸다.

    ‘화약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도 간식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네.’

    밤새워 기다릴 각오를 했는데, 바로 먹어 버렸다.

    ‘좋아. 한번 도전해 보자.’

    현성이 드레이크 전용 간식 하나를 구입했다.

    푸욱!

    현성이 간식 깊숙이 용혈검과 아이템 하나를 꽂아 넣었다.

    그 후 드레이크 전용 간식을 연속적으로 구입해 하나로 합쳤다.

    순식간에 엄청나게 큰 드레이크 전용 간식이 만들어졌다.

    ‘제대로 박히기만 하면 되는데…….’

    현성이 초거대 드레이크 전용 간식을 만들 때 용혈검과 함께 넣었던 아이템은 일종의 시한폭탄이었다.

    폭발력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용혈검을 날려 보낼 정도는 되었다.

    현성이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을 사용해 초거대 드레이크 전용 간식을 레드 드래곤 근처에 놓고 물러났다.

    킁! 킁!

    얼마 지나지 않아 레드 드래곤이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초거대 드레이크 전용 간식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똑같네.’

    레드 드래곤이 붉은빛 오라를 확장시켜 초거대 드레이크 전용 간식을 보호하고 그대로 삼켰다.

    ‘성공이다.’

    레드 드래곤이 스스로 용혈검을 삼키게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건은 폭발이었다.

    -캬아아아앙!

    초거대 드레이크 전용 간식을 삼키고 다시 잠들었던 레드 드래곤이 갑자기 비명과 함께 날뛰기 시작했다.

    ‘성공했나?’

    레드 드래곤이 발광하는 것을 보니 성공한 것 같기는 한데, 아직 확신할 수가 없었다.

    현성은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단기간에 성과를 확인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한편 그 시각.

    갑자기 날뛰는 레드 드래곤 때문에 대책 본부는 난리가 났다.

    곤히 자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급하게 소집되었고, 전투준비가 갖춰졌다.

    대책 본부에 도착한 현성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전투준비를 갖췄다.

    현성의 무장은 달라진 게 없었다.

    레드 드래곤의 몸속 어딘가에 박혀 있는 용혈검을 대신할 무기를 미리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현성은 용혈검과 최대한 흡사한 외형의 영웅 등급 검 한 자루를 구입했다.

    그 후 형태 변환 주문서를 발라 용혈검과 동일한 외형으로 변형시켰다.

    현성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사건 현장으로 출동했다.

    레드 드래곤은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전투준비!”

    윌리엄의 외침과 함께 플레이어들이 각자 무기를 뽑아 들었다.

    “정면충돌을 피하고 레드 드래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견제하는 데 주력한다!”

    윌리엄의 지시에 플레이어들이 포위망을 갖췄다.

    윌리엄과 플레이어들은 지속된 미군의 포격이 레드 드래곤에게 타격을 줬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크르르릉!

    발광하던 레드 드래곤의 시선이 자신을 포위한 플레이어들에게로 고정되었다.

    -캬아아아앙!

    레드 드래곤이 성난 포효와 함께 플레이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플레이어들과 레드 드래곤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미군이 공격이 멈췄다.

    이제는 플레이어들 차례였다.

    “공격!”

    윌리엄의 공격 명령과 함께 원거리 딜러들이 일제히 스킬을 날렸다.

    “파이어 버스터!”

    “파이어 스톰!”

    “선혈의 화살!”

    꽈아아앙!

    커다란 폭발이 터져 나왔지만, 레드 드래곤은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거리가 좁아지자 마법사 계열 딜러들을 등에 업고 있던 근접 딜러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근접 딜러들이 말이 되고 마법사 계열 딜러들이 기수가 되어 움직이는 우스꽝스러운 전술이 펼쳐졌다.

    다행히 민첩 스텟도 높고 마력 스텟도 높은 현성은 궁수 계열 플레이어들처럼 누군가를 등에 업거나, 누군가의 등에 업힐 필요가 없었다.

    ‘언제쯤 신호가 오려나?’

    현성이 스킬을 날리며 때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전설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신호가 왔다.

    * * *

    ‘제대로 꽂혔어.’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실패하면 옵션을 발동시켜 용혈검을 회수한 뒤 다시 시도할 생각이었다.

    한데 다행히 성공했다.

    ‘실패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레드 드래곤이 발광하는 모습을 보고 성공했을 거라고 짐작하기는 했다.

    그러다 용혈검의 성장 메시지가 들리자 짐작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위로 직행하지는 않았네.’

    현성은 과거 블루 드레이크의 몸속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때 뼈와 살을 녹이고 마력을 분해시키는 위장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걱정이 컸다.

    용혈검이 살에 박히지 않고 레드 드래곤의 위장으로 들어갔다면 바로 옵션을 사용해 회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계속 주의 깊게 관찰해야지.’

    용혈검이 옅게 박혀 있다면 위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현성은 일정 시간 이상 성장했다는 메시지가 들리지 않으면 옵션을 발동시켜 용혈검을 회수할 계획을 세웠다.

    플레이어들의 공격은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

    아니, 제대로 먹혀든 것처럼 보였다.

    레드 드래곤이 고통으로 가득 찬 포효를 터트리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이 고통 어린 포효를 터트리는 이유는 플레이어들의 공격이나 미군의 포격에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먹이를 삼킬 때 목구멍에 걸린 작은 가시.

    그 가시가 레드 드래곤의 피를 무지막지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피는 생명의 원천이다.

    레드 드래곤의 체력과 마력이 점점 고갈되어 갔다.

    그와 함께 레드 드래곤의 몸을 뒤덮고 있는 붉은빛의 오라가 아주 조금 약해졌다.

    플레이어들은 그것을 자신들이 날린 공격의 성과로 생각했다.

    “더 강하게 공격해! 효과가 있다!”

    윌리엄의 명령에 플레이어들이 더욱 가열하게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마력 조루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들의 한계는 금방 찾아왔다.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말 노릇을 하던 근접 딜러들이 나설 차례였으니까 말이다.

    그동안 마법사 계열 딜러들을 업고 다니느라 제대로 공격에 참여하지 못했던 근접 딜러들이 맹공을 가했다.

    하지만 근접 딜러들의 공격 역시 실질적인 타격은 없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레드 드래곤 레이드에서 제대로 딜을 하고 있는 존재는 오직 용혈검뿐이었다.

    플레이어들과 레드 드래곤의 접전은 무려 열흘 동안 이어졌다.

    플레이어들은 로테이션으로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며 레드 드래곤을 공격했다.

    자신들이 날린 공격이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말이다.

    아, 부수적인 효과는 있었다.

    레드 드래곤이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방해했으니까 말이다.

    또 레드 드래곤이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르려던 것도 막아 냈다.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부어 추력과 양력을 없앤 것이다.

    레드 드래곤은 순수하게 마력으로 비행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날개를 펄럭여 바람을 타고 날아야 했다.

    한데 플레이어들의 지속적인 공격이 대기의 마력과 바람의 흐름을 엉망으로 만들어 레드 드래곤의 비행을 방해했다.

    몇 번 날개를 펄럭이다 지상으로 추락한 이후 레드 드래곤은 비행을 포기했다.

    사실 정상적인 몸 상태였다면 붉은빛 오라의 역장을 만들어 플레이어들의 방해를 뿌리치고 하늘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용혈검이 지속적으로 피를 빨아 레드 드래곤의 체력과 마력을 빼앗아 갔고, 그 결과 붉은빛 오라를 넓게 펼칠 수가 없었다.

    현재 레드 드래곤의 몸을 뒤덮고 있던 붉은빛 오라는 상당히 옅어진 상태였다.

    처음에는 약간 비만처럼 보였던 거체 역시 삐쩍 마른 상태였다.

    마치 뼈에 가죽을 붙여 놓은 형상이랄까?

    ‘거의 다 잡은 거 같은데.’

    레드 드래곤의 체력과 마력이 눈이 띄게 줄어들었다.

    현성은 레드 드래곤 레이드의 끝이 왔음을 직감했다.

    ‘신화 등급은 불가능한가 보네.’

    용혈검이 성장했다는 메시지는 지속적으로 떴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전설 등급으로 승급한 뒤 이제 겨우 2마리 용종의 피를 빨았을 뿐이야.’

    아마 용혈검이 신화 등급으로 성장하려면 전설 등급 용종 몬스터의 피를 족히 수십 수백 번은 빨아야 할 것이다.

    현성은 애써 실망감을 덜어 냈다.

    파삭!

    그때 레드 드래곤의 몸을 뒤덮고 있던 옅은 붉은빛 오라가 완전히 사라졌다.

    퍼억!

    그 순간 레드 드래곤의 비늘이 깨지고, 뼈와 살이 부러지고 찢겼다.

    삐쩍 마른 몸으로 버티고 버티던 레드 드래곤의 몸이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캬아아악!

    레드 드래곤이 단말마의 비명을 터트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죽은 것이다.

    열흘 넘게 버틴 것은 붉은빛 오라의 힘이었다.

    붉은빛 오라가 사라지자 레드 드래곤은 플레이어들의 포화를 불과 몇 초도 버티지 못했다.

    “와아아아아!”

    “성공했다!”

    “우리가 잡았어!”

    플레이어들이 승리의 함성을 토해 냈다.

    그와 함께 기대감을 피어올랐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전설 등급 몬스터 중에 가장 까다롭고 강했던 레드 드래곤이 어떤 전리품을 줄지 기대됐기 때문이다.

    사아아악!

    레드 드래곤의 사체가 분해되며 잔존 마력이 하나로 뭉쳐졌다.

    ‘소환.’

    현성이 소환 스킬을 사용해 재빨리 용혈검을 회수했다.

    툭!

    용혈검의 회수가 끝남과 동시에 레드 드래곤의 잔존 마력이 뭉쳐 만들어진 아이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멍청한 놈.’

    용혈검이 든 드레이크 전용 간식을 삼키지 않았더라면 레드 드래곤은 지금도 힘차게 아메리카 대륙을 질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등장한 전설 등급 몬스터 중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레드 드래곤이 너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러게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안 되지.’

    용혈검이 든 간식을 먹은 대가는 죽음이었다.

    저벅저벅.

    윌리엄은 기대감이 잔뜩 어린 표정으로 아이템을 회수하기 위해 움직였다.

    랭커들 역시 신이 나서 달려갔다.

    “전설 등급 아이템이 몇 개나 나왔을까?”

    “그 전의 사례를 봤을 때 무조건 3~4개는 나오지 않을까?”

    “그렇겠지?”

    “난 그 붉은빛 오라를 형성하는 스킬이 나왔으면 좋겠다. 탱커가 사용하면 얼마나 좋겠어?”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에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윌리엄과 랭커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하지만 아이템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윌리엄과 랭커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

    “설마 하나가 끝이야?”

    잔존 마력이 뭉쳐 만들어진 아이템은 딸랑 스킬북 하나였다.

    “그 붉은빛 오라를 형성하는 스킬북 아닐까?”

    “오오오, 그렇지 그게 분명해!”

    “그런데 왜 색이 파란색이야? 전설 등급 스킬북은 황금색이라고 하지 않았냐?”

    “그러게 나도 그렇게 들었던 거 같은데?”

    윌리엄이 스킬북을 회수했다.

    스킬북을 움켜쥔 윌리엄의 팔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빌어먹을…….”

    윌리엄이 낮게 중얼거렸다.

    “무슨 일입니까?”

    “왜 그래요?”

    랭커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윌리엄이 노성을 터트리며 스킬북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화들짝 놀란 랭커들이 스킬북을 줍기 위해 몸을 날렸다.

    “윌리엄, 왜 그래요? 당신 미쳤어요?”

    스킬북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몸을 날려 주은 랭커 하나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윌리엄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런 젠장!”

    그 랭커도 스킬북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뭐야? 너까지 왜 그래?”

    “도대체 다들 왜 그러는 거야?”

    “이 스킬북이 도대체 뭐길래?”

    놀란 랭커들이 스킬북을 확인했다.

    그리고 모두 얼굴을 찌푸리고 욕설을 내뱉었다.

    열흘 밤낮을 쉬지 않고 사냥해 잡은 레드 드래곤이 준 유일한 아이템.

    그건 고작 희귀 등급 스킬북이었다.

    그것도 일반 등급 스킬인 ‘단단한 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고 조롱받는 ‘강철 피부 스킬’ 스킬북이었다.

    강철 피부 스킬북은 희귀 등급 스킬북 중에서도 상당히 저렴한 가격대의 스킬북이었다. 당장 스킬북 판매점에 가면 단돈 30만 달러에 구입할 수 있는.

    윌리엄과 랭커들이 혼란에 빠져 욕설을 내뱉고 있을 때.

    현성은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 용혈검을 기특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제대로 빨아먹었구나.’

    잔존 마력이 모두 뭉쳐 겨우 희귀 등급 스킬북 하나를 만들어 낼 정도로 독하게 빨아먹었다.

    * * *

    무려 열흘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레드 드래곤 레이드가 끝났다.

    미국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레드 드래곤은 지금까지 등장한 전설 등급 몬스터 중 가장 강력한 개체로 소개되었다.

    이건 엄연한 진실이었다.

    미국 연방정부는 최강의 전설 등급 몬스터 레드 드래곤을 레이드하는 데 성공한 플레이어들을 세계 최고라며 추켜세웠다.

    레드 드래곤 레이드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은 미국을 구한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세계 각국에서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레드 드래곤 레이드 성공은 충분히 축하받을 만한 일이었다.

    미국은 자국의 건재함을 제대로 과시했다.

    하지만 속내는 그리 좋지가 못했다.

    전리품이 너무도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철저한 조사에 들어갔다.

    최강의 전설 등급 몬스터를 잡았는데, 고작 희귀 등급 스킬북 하나가 전리품으로 나왔다.

    이건 미국이 모르는 무언가가 개입했다는 증거였다.

    조사 끝에 드디어 원인을 찾아냈다.

    -레드 드래곤이 발광하기 전 먹은 무언가가 레이드에 큰 영향을 끼친 게 분명합니다.

    -두 번에 걸쳐 섭취한 물질로 인해 레드 드래곤의 몸에 큰 이변이 생겨났습니다.

    -정밀 분석 결과 레드 드래곤이 발광한 이유는 군의 포격 때문이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을 섭취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누군가가 레드 드래곤에게 독을 먹였습니다.

    문제는 원인은 찾아냈는데, 그 원인 제공자가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수사력을 총동원해 레드 드래곤을 죽인 독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그 독을 가져다 놓은 존재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한편 그 시각, 미국 연방정부가 총력을 다해 찾고 있는 원인 제공자는 태평하게 아이템을 확인하고 있었다.

    “대박! 설마 스킬이 추가될 줄은 몰랐는데!”

    역시 전설 등급 몬스터 하나를 잘근잘근 씹어 먹은 효과가 있었다.

    용혈검 - 유일 전설 등급 - 귀속 아이템

    -주변에 흩어진 피를 흡혈해 사용자의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킵니다.

    -용종의 피를 흡수할 경우 공격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체력과 마력 회복 속도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용종의 피를 지속적으로 흡수할 경우 성장이 가능합니다.

    -블루 드레이크 제토스의 마력과 이무기 구프의 마력 그리고 플레이어 최현성의 마력이 뒤섞여 본래의 한계를 월등히 뛰어넘었습니다.

    -플레이어 최현성 외의 인물이 사용할 경우 옵션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 최현성의 의지에 따라 하루 세 번 용혈검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액티브 스킬 - 용의 혈조 사용 가능.

    -액티브 스킬 - 용의 혈갑 사용 가능.

    용의 혈조 - 전설 등급

    -액티브 스킬

    -용종의 피로 이루어진 손톱을 날립니다.

    -용종의 피가 있어야만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용혈검을 쥐고 있어야만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용의 혈갑 - 전설 등급

    -액티브 스킬

    -용종의 피로 이루어진 갑옷을 만들어 냅니다.

    -용종의 피가 있어야만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용혈검을 쥐고 있어야만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용의 혈갑이라는 스킬이 추가로 생겨났다.

    아쉬운 게 있다면 레드 드래곤이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스킬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 용종의 피가 있어야만 발동시킬 수 있다는 페널티도 있었다.

    하지만 현성은 충분히 만족했다.

    시범 삼아 드레이크 던전에 들어가 테스트를 해 본 결과 용혈검의 기본 성능이 월등히 올라갔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검날의 예기가 월등히 상승했고 피를 흡혈해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키는 양도 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피를 흡수할 수 있는 범위도 늘어났다.

    용의 혈갑 역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용의 혈조처럼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기는 했지만 방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용한 용혈의 양에 따라 방어력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웬만한 전설 등급 갑옷 이상의 성능을 보여 주었다.

    또 공격도 가능했다.

    용의 혈갑은 현성의 의지대로 형상이 변했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공격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레드 드래곤, 고맙다.’

    히드라를 빈사 상태로 만들어 손쉽게 사냥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모자라 죽은 뒤에 이런 큰 선물을 주다니.

    머릿속에 절로 ‘아낌없이 주는 드래곤’이라는 명작이 떠올랐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