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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레드 드래곤 (60/225)
  • ┃레드 드래곤

    캬아아앙!

    차원 게이트를 넘은 몬스터가 포효를 터트렸다.

    피처럼 붉은 비늘에 박쥐의 날개를 가진 몬스터는, 전설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드래곤과 꼭 닮아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앞발이 상당히 짧다는 것 정도?

    휘이이잉!

    몬스터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였다.

    그와 함께 서서히 거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늘 높이 올라간 몬스터가 바람을 타고 하늘을 활공하며 미 영공을 가로질렀다.

    슈우우우웅!

    몬스터를 향해 수백 수천 발의 미사일이 날아왔다.

    화르르르륵!

    몬스터가 입을 벌리고 화염을 뿜어냈다.

    몬스터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이 순식간에 허공을 붉게 뒤덮었다.

    꽈아아아앙!

    미사일들은 몬스터의 근처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허공에서 폭발했다.

    화염과 미사일이 폭발하며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미사일은 계속해서 날아왔다.

    입으로 화염을 뿜어내던 몬스터의 몸이 붉게 빛났다.

    붉은빛의 오라에 휩싸인 몬스터가 유유히 미 영공을 가로질렀다.

    미군이 쏘아 보낸 미사일은 몬스터의 몸을 뒤덮고 있는 붉은빛 오라를 뚫지 못하고 허공에서 폭발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하늘을 활공하던 몬스터가 토페니시에 도착했다.

    휘이이익!

    몬스터가 매처럼 날개를 접고 지상으로 활강했다.

    몬스터를 발견한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몬스터는 완전히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그저 토페니시를 훑고 지나가며 붉은 화염을 토해 냈을 뿐이다.

    토페니시가 불바다로 변했다.

    순식간에 도시 하나를 불바다로 만든 몬스터가 계속해서 비행을 이어 나갔다.

    * * *

    미국 연방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워싱턴 주 정부도 난리가 났다.

    “레드 드래곤의 이동 상황은?”

    윌리엄이 부관에게 물었다.

    “현재 시애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중간에 지나친 모든 도시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미군의 대응은 소용이 없나?”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윌리엄이 욕설을 토해 냈다.

    이무기의 경우도 처음에는 현대 화기의 화력에 타격을 입었다.

    그 후에 등장한 전설 등급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현대 화기는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에서도 당당하게 한 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현대 화기가 완전히 무용지물이었다.

    그나마 레드 드래곤의 마력이라도 소모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미사일을 쏟아붓고 있지만, 시애틀에 도착하면 그것도 무용지물이 된다.

    “주민 대피 상황은?”

    “이제 겨우 전체 주민의 5분의 1 정도가 대피를 완료했습니다. 레드 드래곤이 도착하기 전에 전원 대피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플레이어들 소집은?”

    “빠르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레드 드래곤이 시애틀에 도착하기 전에 전원 소집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나마 비행 속도가 빠르지 않아 다행이군. 그런데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윌리엄이 불안한 표정으로 부관에게 물었다.

    히드라는 날개가 없는 지상형 몬스터였다.

    그런 만큼 레이드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은 비행형 몬스터.

    다행히 곁을 지키는 영웅 등급 몬스터 무리는 없지만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대응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UN 연합군이 일본의 규슈 지역 수복을 포기한 이유 역시 조인족이 공중형 몬스터라는 점 때문이었다.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놈을 사냥하지 못하면 미국 전역이 불바다로 변할 겁니다.”

    부관의 말에 윌리엄이 표정을 굳혔다.

    맞는 말이었다.

    잡을 수 있을까 없을까 가능성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미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잡아야 했다.

    레드 드래곤 레이드에 실패하면 미국은 불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최현성 플레이어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나?”

    “예! 현재 전투기에 탑승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신윤아 플레이어도 돕겠다는 뜻을 보내왔고, 현재 이동 중입니다.”

    미국은 빠른 기동성 확보를 위해 전투기를 동원했다.

    전투기는 최대 2인승이 한계였다.

    그래서 조종사 외에 1명밖에 더 태우지 못하지만 먼 거리에 있는 랭커들을 빠르게 불러들이기에는 제격이었다.

    “제발 성공해야 할 텐데.”

    윌리엄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모니터에 비친 레드 드래곤의 모습을 주시했다.

    * * *

    ‘이게 뭔 난리야?’

    현성은 난생처음 전투기를 타 봤다.

    전투기 탑승의 필수 코스라는 비행 환경 적응 훈련 같은 건 받아 본 적 없지만 특별히 어지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마 다른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플레이어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인들이니 말이다.

    ‘그놈이 히드라를 그렇게 만든 놈인가?’

    히드라는 외관상으로는 멀쩡했지만 사실 심대한 내상을 입고 있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에게 그런 심대한 부상을 입힐 정도라면 당연히 동급의 전설 등급 몬스터여야 했다.

    어쩌면 신화 등급 몬스터일 수도 있었다.

    ‘신화 등급이면 큰일인데.’

    영웅 등급 몬스터와 전설 등급 몬스터의 전투력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아마 전설 등급 몬스터와 신화 등급 몬스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레드 드래곤이 정말 신화 등급 몬스터라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었다.

    ‘일단 도착해 보면 알겠지.’

    현성은 제발 최악의 상황이 아니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다.

    나중이라면 몰라도 아직은 신화 등급 몬스터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현성이 전투기에서 내렸다.

    그 뒤를 이어 신윤아를 포함한 랭커들이 줄줄이 도착했다.

    워싱턴주에서 급하게 끌어모은 고레벨 플레이어들과 미국 전역에서 모여든 랭커들의 숫자는 무려 8,000에 달했다.

    먼 지역에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들 역시 비행기를 타고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전투가 끝날 확률이 높아 보였다.

    레드 드래곤이 벌써 시애틀 바로 앞까지 도착했기 때문이다.

    “레드 드래곤의 등급은 전설 등급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윌리엄의 말에 현성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신화 등급은 아니었다.

    “공중전은 승산이 없습니다. 이에 레드 드래곤의 날개를 집중 공격해 지상전을 벌일 계획입니다.”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합니까?”

    한 랭커가 물었다.

    “실패한다면 최대한 지상으로 유인해 공격합니다. 도발 스킬이 먹히길 기도해야겠죠.”

    윌리엄의 말에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요격에 실패하면 탱커와 근거리 딜러 들은 거의 허수아비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들이 각자 무기를 점검하고 전투준비를 갖췄다.

    멀리서 붉은 구름이 서서히 접근해 왔다.

    ‘아직도 타격을 못 입혔나?’

    현성의 눈에 레드 드래곤의 붉은빛 오라와 미사일이 충돌하며 강력한 폭발을 만들어 내는 장면이 보였다.

    “원거리 딜러진 전원, 요격을 준비!”

    윌리엄의 외침과 함께 선별된 원거리 딜러들이 마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스킬들이 마력을 집중적으로 공급받으며 힘을 키워 나갔다.

    현성 역시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흑뢰룡의 숨결을 준비했다.

    플레이어들과 레드 드래곤의 위치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와 함께 피부가 쩌릿쩌릿해질 정도로 강력한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플레이어들이 술렁거렸다.

    현성 역시 동요를 감추기가 힘들었다.

    야성의 본능 스킬을 가지고 있는 현성은 레드 드래곤이 뿜어내는 마력의 강력함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무기나 오크 대족장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네.’

    순간적으로 ‘진짜 전설 등급 몬스터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생긴 건 티라노사우루스의 등에 익룡 날개를 붙인 것처럼 생긴 주제에 풍기는 위압감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공격!”

    윌리엄의 명령과 함께 원거리 딜러들이 일제히 준비했던 스킬을 날려 보냈다.

    현성 역시 전력을 다해 흑뢰룡의 숨결을 레드 드래곤의 날개를 향해 날렸다.

    꽈아아아앙!

    원거리 딜러들의 스킬과 레드 드래곤의 붉은빛 오러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엄청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미국이 쏘아 낸 미사일 역시 계속해서 레드 드래곤을 요격하고 있었다.

    군과 원거리 플레이어들의 집중 포격은 실로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그 결과, 레드 드래곤이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이 전투준비를 갖췄다.

    원거리 플레이어들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고 탱커와 근접 딜러 들은 전투를 준비했다.

    슈우우우욱!

    빠르게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레드 드래곤의 입에서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피어올랐다.

    “피해!”

    “방어 스킬 사용해!”

    상황을 파악한 플레이어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화르르륵!

    붉은 화염이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플레이어들은 몸을 날리거나 방어 스킬을 사용해 레드 드래곤이 뿜어내는 화염을 피하거나 막아 냈다.

    그리고 반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레드 드래곤을 공격할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빠르게 지상으로 추락하던 레드 드래곤이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날개가 멀쩡하잖아!”

    레드 드래곤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린 건 날개를 다쳐서가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을 공격하기 위해 낮게 난 것이다.

    “사상자는?”

    윌리엄이 플레이어들의 피해를 물었다.

    “그, 그게…… 전원 무사합니다.”

    “뭐?”

    윌리엄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아군의 피해가 없다는 건 상당히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기는 했다.

    무려 전설 등급 몬스터의 공격이다.

    뿜어내는 마력도 살이 떨릴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데 아군의 피해가 없다니?

    “다시 하강합니다!”

    “전원 공격!”

    윌리엄이 다시금 공격 명령을 내렸다.

    플레이어들의 공격 스킬이 레드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탱커들도 최선을 다해 도발 스킬을 시전했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은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플레이어 전원 무사합니다!”

    다시 같은 결과가 나왔다.

    레드 드래곤은 몇 번이고 동일한 공격을 반복했다.

    하지만 피해는 전무했다.

    플레이어도 피해를 입지 않았고, 레드 드래곤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크르르릉!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레드 드래곤이 낮게 으르렁거리더니 스스로 날개를 접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쿠우웅!

    레드 드래곤의 거체가 지상에 착지하는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총공격!”

    레드 드래곤이 왜 내려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플레이어들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플레이어들이 레드 드래곤을 향해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

    휘이이익!

    레드 드래곤의 꼬리가 플레이어들을 향해 날아왔다.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하지만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콰직!

    레드 드래곤의 꼬리에 적중당한 플레이어들이 한 줌의 핏물로 변했다.

    “죽여 버려!”

    레드 드래곤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플레이어들이 레드 드래곤을 공격했다.

    하지만…….

    “뭐 이렇게 단단해?”

    “붉은 빛을 뚫을 수가 없어!”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을 막아 냈던 붉은빛의 오라가 근접 딜러들의 공격도 튕겨 냈다.

    현성도 신윤아와 함께 공격에 가담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게 뭐야?’

    전력을 다해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하고, 있는 힘을 다해 용혈검을 찔러 넣었다.

    그런데 레드 드래곤의 몸을 뒤덮고 있는 붉은빛의 오라를 뚫을 수가 없었다.

    공방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루한 소모전이 벌어졌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무려 9시간이 지났다.

    9시간이나 전투를 벌였음에도 레드 드래곤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반면 플레이어 측에서는 2천여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나왔다.

    레드 드래곤은 브레스를 제외한 그 어떤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꼬리를 휘두르고, 발로 짓밟고, 입으로 물어뜯는 기본적인 방식으로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방식에 벌써 2천 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사망했다.

    먼저 나가떨어진 건 플레이어들이었다.

    체력은 어느 정도 남아 있었지만 마력이 바닥났다.

    “철수!”

    윌리엄이 철수 명령을 내렸다.

    더 이상의 전투는 플레이어의 희생만 불러올 뿐이다.

    시애틀을 포함해 레드 드래곤의 이동 경로에 있던 주민들의 대피는 이미 완료된 상황이었다.

    굳이 희생을 감수하며 싸울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플레이어들이 물러났다.

    -크아아앙!

    레드 드래곤은 플레이어들을 추격하는 대신 승리의 포효를 터트렸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몸을 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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