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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새로운 시황제 (57/225)
  • ┃새로운 시황제

    타악!

    경호원들과 플레이어들의 집중포화로 엉망이 된 잔해를 뚫고 랫맨이 튀어나왔다.

    경호원들과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도주하던 당 대표들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실신하기까지 했다.

    방송을 통해 지겹도록 본 전설 등급 몬스터 랫맨.

    그놈이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끼이이익!

    랫맨이 포효를 터트리며 플레이어 대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신념의 방패!”

    “선더 볼트!”

    플레이어 대표들이 사력을 다해 랫맨에게 저항했다.

    하지만 무기와 갑옷을 온전히 갖춘 상태에서도 이기기 힘든 게 바로 전설 등급 몬스터 랫맨이다.

    한데 제대로 된 전투준비조차 갖추지 못한 상대로 랫맨을 이긴다?

    그건 어불성설이었다.

    콰직!

    랫맨의 손에 들린 검이 플레이어 대표 한 명의 심장을 꿰뚫었다.

    중국 전체 랭킹 50위 안에 드는 실력자였지만,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일단 빠져!”

    플레이어 대표들이 황급히 물러났다.

    일단 싸우더라도 무기와 방어구는 있어야 했다.

    랫맨이 도주하는 플레이어 대표들을 무차별하게 공격했다.

    중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플레이어 대표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플레이어 대표들은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하지만 무의미한 저항일 뿐이었다.

    -찌이이익!

    랫맨의 포효가 터져 나올 때마다 몸이 굳어 버렸고, 그때마다 플레이어 대표들이 하나둘 죽어 나갔다.

    외부에 있던 랭커들이 지원을 올 때까지 살아남은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일단 타깃은 다 처리했고…….’

    당 대표들과 플레이어 대표들 중 죽여야 할 자들은 모두 죽였다.

    겉으로는 무차별하게 학살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름 정직하게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이들은 죽이지 않고 살려 보냈다.

    문제는 그런 이들의 숫자가 말 그대로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점이었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당 대표와 플레이어 대표가 사망했다.

    물론 부패한 이들 중에도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다.

    바로 마분석과 그의 파벌에 속한 인물들이었다.

    당 대표 중에도 마분석과 깊이 엮여 있는 이들은 살려 보냈다.

    그들이 살아남아야 마분석이 권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플레이어 대표들이 당 대회장에 들어오기 전에 맡겨 놓았던 무기와 방어구를 되찾았다.

    외부에 있던 랭커들도 합류했다.

    하지만 플레이어 대표들과 랭커들은 전투를 망설였다.

    전설 등급 몬스터 랫맨.

    무려 1만 명이 넘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쳤지만 쓰러트리지 못한 몬스터.

    자신들이 달려들어 봐야 개죽음만 당할 거라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생각입니까? 여기서 저 괴물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중국은 쑥대밭이 될 겁니다! 중국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그때 분연히 일어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중국 플레이어 협회장 마분석이었다.

    ‘연기 잘하네.’

    마분석의 연기력은 제대로 물이 올랐다.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싸웁시다! 그래야 국민들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마분석이 도주하는 플레이어 대표들을 향해 외치며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콰콰콰!

    마분석의 창이 파괴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검붉은 빛에 휩싸였다.

    마분석은 현성을 만나기 전과 달리 상당히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현성은 비약을 포함해 그간 수집한 아이템들을 가운데 팔아먹을 예정이었던 것들 중 상당수를 마분석에게 넘겼다.

    특히 저 창.

    저 창은 현성이 포인트를 사용해 직접 구매창에서 구입한 물품으로, 무려 전설 등급 무기였다.

    단점이 없는 완성형 무구는 아니었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받는 페널티가 상당히 컸다.

    하지만…….

    ‘가장 빠르게 강해질 수 있지. 겉으로 보기에도 화려해.’

    마분석이 들고 있는 창의 이름은 마왕의 창이었다.

    창을 드는 순간 근력 스텟과 민첩 스텟 그리고 체력 스텟이 대폭 증가한다.

    하지만 페널티가 너무 컸다.

    마왕의 창은 사용자의 마력과 정신력을 빨아먹는다.

    마왕의 창이 가진 힘을 사용하면 마력 스텟과 정신력 스텟이 영구적으로 손실된다.

    그리고 더 이상 빨아먹을 마력과 정신력이 바닥나면 사용자의 생명력을 빨아들인다.

    주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 수 있는 무기가 바로 마왕의 창이었다.

    현성은 마분석에게 비약을 공급해 줄 수 있다.

    현성이 비약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마분석은 마왕의 창을 사용하지 못한다.

    전설 등급 무기를 넘겨주면서 확실하게 족쇄를 채워 놓은 것이다.

    ‘한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을걸.’

    마왕의 창이 주는 강력함에 매료되면 다른 무구로 눈을 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꽈아아앙!

    마분석이 휘두른 마왕의 창과 현성이 들고 있는 용혈검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커다란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현성과 마분석이 어우러지며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마분석의 선전에 플레이어 대표들과 랭커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설마 마분석이 저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랫맨이 왜 저렇게 약해?”

    “그러게.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약한데?”

    “아직 내상을 다 회복하지 못한 거 아냐?”

    무지무지한 위용을 보여 주었던 랫맨의 전투력이 엄청나게 감쇄되어 있었다.

    현성이 의도적으로 스킬의 위력을 줄이고 몸놀림을 느리게 한 게 컸다.

    물론 패시브 스킬들이 발동하지도 않았고 페널티가 큰 소모형 아이템을 복용하지도 않았으니, 실제로 전보다 약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중국 플레이어 대표들과 랭커들에게는 랫맨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마분석 협회장님을 돕자!”

    마분석의 측근들이 선동과 함께 합류해 전투에 끼어들었다.

    “합류하자!”

    “랫맨이 정상이 아니야!”

    “잡을 수 있어!”

    플레이어 대표들과 랭커들도 전투에 합류했다.

    파지지직!

    그리고 합류한 플레이어 대표들과 랭커들에게 화끈한 흑뢰의 비가 쏟아졌다.

    “크아아악!”

    “커억!”

    플레이어 대표들과 랭커들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일격에 즉사할 정도로 강한 위력은 아니었다.

    나가떨어졌던 플레이어 대표들과 랭커들이 다시 합류했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단연 마분석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랫맨의 공격에 픽픽 쓰러지는 데 반해 마분석은 꿋꿋이 버티며 최전방에서 전투를 이어 나갔다.

    꽈아아앙!

    건물의 벽이 무너지며 전투 장소가 외부로 변했다.

    현성와 마분석은 전투를 벌이며 마력 역장이 펼쳐지지 않은 장소로 이동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투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동하는 와중에 수많은 카메라가 현성과 마분석의 전투 모습을 담았다.

    현성은 마분석에서 보여 주기식 공격을 퍼부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난 위력을 담은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속 빈 강정 같은 공격이었다.

    반면 마분석을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제대로 힘을 실어 공격을 가했다.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당분간 운신하기 힘들 정도의 타격을 준 것이다.

    당연히 다른 플레이어들은 약해 보였고 마분석의 강함은 돋보였다.

    진짜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이들은 곁다리로 전락하고, 한 편의 연극을 펼치고 있는 마분석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전투가 길어지면서 사방에서 랭커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슬슬 퇴장할 때가 됐네.’

    현성이 마분석에게 약속된 신호를 보냈다.

    이에 마분석의 몸이 검붉은 빛에 휩싸였다.

    “하아아압!”

    마분석이 커다란 기합과 함께 창을 내질렀다.

    검붉은 기운이 현성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하지만 그 폭발의 한가운데 있는 현성은 멀쩡했다.

    마분석의 공격은 현성을 공격하기는커녕 주변의 시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현성이 아이템과 마석 들을 바닥에 뿌려 놓고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찢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현성의 모습이 사라졌다.

    잠시 후 비처럼 쏟아지던 마분석의 공격이 끝났다.

    랫맨은 없었다.

    그저 아이템과 마석 몇 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와아아아아!”

    “랫맨이 죽었다!”

    “마분석 협회장님이 전설 등급 몬스터 랫맨을 쓰러트리셨다!”

    마분석의 추종자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중국의 영웅 마분석 협회장님 만세!”

    “만세!”

    분위기에 휩쓸린 랭커들도 만세 행렬에 동참했다.

    그날, 중국 랭킹 1위가 새롭게 갱신되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 슬레이어 마분석.

    그는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고, 중국의 영웅이 되었다.

    * * *

    ‘난리가 났네.’

    마분석의 이름이 인터넷을 도배했다.

    중국은 마분석 열풍이었다.

    마분석과 랫맨이 싸우는 영상이 TV를 점령했다.

    마분석의 어린 시절 친구들이라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 어렸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는 식의 인터뷰를 했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너무 좋은데.’

    중국에 불어닥친 마분석 열풍은 현성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화끈했다.

    물론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살아남은 당 간부들은 당 대표들이 몰살당한 충격을 감추고 싶어 했다.

    그래서 마분석을 띄웠다.

    또 살아남은 당 간부들은 마분석과 관계가 돈독했다.

    마분석의 이름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신들에게도 이득이었다.

    거기다 마분석이 전설 등급 몬스터 슬레이어로 이름을 높이면, 중국에 완전히 등을 돌린 외국계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데도 유리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마분석이라는 이름에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마분석이 중국인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는 점이었다.

    중국인들은 이무기 레이드 실패와 랫맨 레이드 실패로 깊은 패배감에 빠져 있었다.

    자국의 플레이어들을 세계 최강이라고 생각하던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두 번의 패배는 너무도 뼈아픈 상처였다.

    실질적인 피해도 컸다.

    경제가 어려워졌고,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 주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마분석은 중국인들의 실추된 자존심을 세워 주었다.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품게 만들었다.

    또한 다시금 전설 등급 몬스터가 나타나도 얼마든지 쓰러트릴 수 있다는 안정감을 선물해 줬다.

    마분석은 중국인들의 근심을 한 방에 해결해 준 축복 같은 존재였다.

    위이이잉!

    현성의 전화기가 울렸다.

    중국의 영웅 마분석이었다.

    -군부 장악이 끝났습니다.

    마분석이 현성에게 공손히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그놈들도 대세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으니까요. 또 하급 군인들 중에 저를 추종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금의 열기가 식기 전에 확실히 매듭을 짓는 게 좋을 거야.”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당 대표들은 저와 한배를 탄 상태고 군부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반항하는 이들이 조금 남아 있기는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처리될 겁니다. 그리고 조만간 중간에 중단된 당 대회가 다시 열릴 예정입니다.

    “공석이 된 국가 주석도 새로 뽑겠지?”

    -물론입니다.

    “네가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나?”

    -당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가 부주석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국가 부주석이라…….”

    -주인님께서 근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주석은 제 수족 같은 존재가 될 테니까요.

    “기대하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뚝.

    통화가 끝났다.

    중국이 마분석의 손에 들어갔다.

    마분석은 중국의 새로운 시황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시황제로 거듭날 마분석의 목줄을 현성이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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