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 10,000 대 1 (55/225)
  • ┃10,000 대 1

    ‘드디어 잡았다.’

    중국 플레이어 협회장 마분석이 포위망 안에 갇힌 랫맨을 당장에라도 찢어 죽일 듯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마분석 협회장은 랫맨을 잡기 위해 비밀 요원들을 미끼로 삼았다.

    미끼로 선정된 비밀 요원들 역시 자신들이 미끼라는 사실을 몰랐다.

    랫맨이 미끼를 물었다는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마분석은 미리 대기시켜 놓은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을 동원했다.

    이들은 비밀 요원이 아닌 길드에 속한 지방 정부 랭커들과 고레벨 플레이어들이었다.

    전설 등급으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나타나 사냥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비상 소집령을 내린 것이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지시였다.

    그들은 차원 게이트가 추가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듣지도 못했고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지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플레이어 협회장의 명령이었다.

    플레이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나왔다.

    그런데 정말 몬스터가 있기는 있었다.

    “랫맨이잖아?”

    “꼴랑 최하급 몬스터 1마리 잡겠다고 우리를 부른 거야?”

    “도대체 마력 역장은 왜 치라고 한 거야?”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해서 단단히 마음의 각오를 했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 보니 전설 등급 몬스터는커녕 영웅 등급 몬스터도 없었다.

    있는 건 고작 일반 등급 최하급 몬스터 랫맨 1마리였다.

    “전원 공격!”

    그때 마분석 협회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은 당황했다.

    “지금 설마 랫맨한테 총공격하라고 한 거야?”

    “협회장 미친 거 아니야?”

    “제정신이 아니야, 약간 맛이 간 거 같아.”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을 무렵!

    -찌이이이익!

    랫맨이 힘찬 포효와 함께 중국 지방 정부의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현성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 후 아공간 안에 들어 있던 오우거의 진혈, 드레이크의 심장, 트롤의 간 등을 꺼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모두 소모형 아이템으로 영구적으로 스텟을 손실시키지만 단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스텟 증가와 함께 공격력, 방어력, 회복력 등을 상승시켜 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속전속결. 최대한 빨리 포위망을 뚫고 나간다.’

    -찌이이이익!

    워크라이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현성의 몸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파지지직!

    워크라이 스킬에 의해 경직되어 있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흑뢰룡의 숨결이 날아들었다.

    꽈아아아앙!

    칠흑빛 뇌전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범위 안에 있던 플레이어 수백 명이 새카만 숯덩이로 변했다.

    ‘젠장.’

    한 번에 적의 숫자를 대량으로 줄여 놓기는 했지만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저들은 살인, 납치, 방화, 고문 같은 중범죄를 밥 먹듯이 저지르던 중국 비밀 요원들이 아니다.

    일반인들을 대신해 던전의 몬스터를 사냥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플레이어들일 뿐이다.

    ‘기분 더럽네.’

    비밀 요원들을 처리할 때와는 다른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죽어 줄 수는 없지.’

    이건 전쟁이었다.

    서로 죽고 죽여야지만 살 수 있는 전쟁.

    전력을 다해도 이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절대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적의 사정을 봐준다?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현성이 용혈검을 휘두르며 빠르게 포위망을 돌파해 나갔다.

    사방에서 온갖 종류의 스킬들이 비처럼 쏟아졌지만 방어 스킬과 스킬 저항력을 통해 악착같이 버텼다.

    흑뢰룡의 숨결을 전력으로 사용해 적들을 불태우고 용혈검을 휘둘러 뼈와 살을 베어 냈다.

    하지만 포위망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두껍게 변했다.

    현성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불사의 서가 쉴 새 없이 발동되며 상처를 치료했다.

    하지만 상처가 치료되는 와중에도 새로운 상처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체력이 빠르게 떨어졌다.

    흡혈공, 용혈검,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로 흡수하는 체력보다 소모되는 체력이 더 많았다.

    이 자리에 뼈를 묻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나마 페널티가 있는 소모형 아이템을 사용해서 이 정도로 버티는 것이지 아이템 효과가 없었다면 진작 죽었을 것이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현성의 상반신이 반쯤 녹아내렸다.

    불사의 서가 손실된 육체를 빠르게 복구했다.

    “효과가 있다! 더 강하게 밀어붙여!”

    “어설픈 공격은 소용없어! 최대한 마력을 응집해 공격해라!”

    플레이어들이 나름대로 작전을 세우고 전투를 진행했다.

    -찌이이이익!

    파지지직!

    현성이 워크라이 스킬과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해 수백의 적을 불태웠다.

    빠르게 체력이 차오르며 손실된 육체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저 괴물 쥐새끼!”

    “탱커들은 몸으로라도 막아!”

    현성을 중심으로 탱커들의 방벽이 만들어졌다.

    탱커들은 자신들의 몸을 방패 삼아 현성의 진로를 방해했다.

    꽈아앙! 꽈아앙!

    연달아 폭발음이 터져 나오며 탱커들이 무력하게 죽어 나갔다.

    하지만 죽어 나가는 숫자만큼 새로운 숫자의 탱커들이 보충되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몰려온 거야?’

    지금까지 현성의 손에 죽은 플레이어의 숫자만 천이 넘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적의 숫자가 대략 수천은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데 그 생각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수천이 아니라 수만은 모인 듯했다.

    회복되고 소모되기를 반복하던 현성의 체력이 결국 바닥을 드러냈다.

    그와 함께 랫맨의 형상을 하고 있던 현성의 두 눈이 진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광폭화다!”

    “거의 다 잡았어! 더 강하게 공격해!”

    플레이어들의 외침대로 광폭화 스킬이 발동했다.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광폭화 - 전설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힘, 민첩, 마력, 정신력 스텟이 40% 증가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50% 감소했습니다.

    광폭화 스킬만 발동한 게 아니었다.

    -패시브 스킬 생존 본능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60초 간 전 스텟이 50% 증가합니다.

    생존 본능 스킬 역시 발동했다.

    파지지직!

    현성이 전력을 다해 흑뢰룡의 숨결을 발동시켰다.

    -찌이이익!

    워크라이 스킬 역시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아아악!”

    “살려 줘!”

    현성의 진로를 막고 있던 탱커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체력이 빠르게 차올랐다.

    “반격해!”

    “못 빠져나가게 막아!”

    딜러들의 스킬이 흑뢰룡의 숨결을 뚫고 들어와 현성의 몸을 타격했다.

    체력이 소모되고 채워지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너무 아슬아슬해.’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질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었다가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용혈검, 흡혈공, 마왕의 갑주 세트,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

    넷 중 하나만 없었어도 현성은 이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현성은 포위망을 뚫기 위해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하지만 그런 현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두꺼운 포위망이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중국 플레이어들은 인해전술의 진수를 보여 주듯 계속해서 현성을 몰아붙였다.

    현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몸이 찢기고 터져 나가고 다시 회복되는 과정을 묵묵히 참아 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했다.

    ‘얼마 남지 않았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던 포위망이 어느새 옅어졌다.

    현성은 사력을 다해 포위망을 뚫고 뚫었다.

    그 결과 현성은 시산혈해를 뒤로하고 겨우 포위망을 뚫어 낼 수 있었다.

    소모형 아이템들의 효과가 바닥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이뤄 낸 성과였다.

    퍼억!

    그때 흑뢰룡의 숨결을 뚫고 날아온 화살 한 발이 현성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그 뒤를 이어 강력한 공격 스킬들이 연달아 날아들어 현성의 몸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공격을 가한 것은 중국 플레이어 협회장 마분석을 비롯한 중앙 정부 소속의 랭커들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번 전투에 사활을 걸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 랫맨은 꼭 잡아야 했다.

    이무기에게 대패한 것에 이어 랫맨에게도 대패한다?

    그럼 중국의 몬스터 대응 능력은 시궁창으로 처박힌다.

    이에 중국 정부는 독한 마음을 먹고 지방 정부의 랭커 및 고레벨 플레이어 들을 몬스터의 체력과 마력을 소모시키는 소모품으로 던져 넣었다.

    중앙 정부 소속의 랭커들은 계속해서 마력을 중첩시키며 강력한 한 방을 준비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방 정부 소속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다 소모된 후 나서야 했다.

    하지만 포위망이 뚫려 버렸기에 어쩔 수 없이 조기에 나서고 말았다.

    “총공격!”

    협회장 마분석의 명령과 함께 중앙 정부 소속의 랭커들이 그간 끌어모은 마력을 모두 쏟아부어 스킬을 날렸다.

    지방 정부 소속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도 동참했다.

    현성은 자신을 향해 빗발치는 스킬의 향연을 보며 죽음을 직감했다.

    엘릭서를 마신다고 해도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는 없었다.

    엘릭서는 부상과 질병 그리고 저주를 치료해 주는 이능을 가지고 있지, 바닥난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켜 주거나 스텟을 강화시켜 주는 이능 따위는 없었다.

    ‘어쩔 수 없어.’

    최후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현성은 아공간에서 스킬북들을 꺼냈다.

    그리고 모두 익혔다.

    익히는 순간 스킬의 효과가 일제히 발동되었다.

    -패시브 스킬 야성의 분노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살인자의 광분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피의 미치광이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살육의 광기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후략……

    현성의 몸이 진한 살기로 뒤덮였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칠흑빛 뇌전이 하늘과 대지를 뒤덮었다.

    “아아아악!”

    “커억!”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현성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간 칠흑빛 뇌전의 파도가 모든 것을 뒤덮었다.

    -캬아아아악!

    현성의 입에서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현성의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패시브 스킬 중에는 생존 본능처럼 장점만 있는 스킬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상당히 강력한 페널티가 존재하는 스킬들도 있었다.

    일시적으로 스텟이 하락하는 경우도 있었고, 살육에 미친 살인귀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 비밀 요원들을 제거하고 나온 전리품 중에는 그런 종류의 패시브 스킬북들이 상당히 많았다.

    현성은 그런 스킬북들을 익히지 않고 아공간에 넣어 놨다.

    섣불리 익히기에는 위험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꽈아아앙!

    대학살극이 펼쳐졌다.

    흑뢰룡의 숨결을 포함해 그간 현성이 익혔던 온갖 종류의 스킬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닥치는 대로 플레어들을 학살했다.

    학살을 통해 수급된 체력과 마력은 다시 스킬로 치환되어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이성을 잃은 현성의 뇌리에 탈출이라는 선택지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했다.

    피와 살육에 미친 광인으로 변한 현성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날뛰며 무차별한 학살을 자행했다.

    -캬아아아악!

    랫맨의 포효에 담긴 정신계 공격 스킬이 모든 플레이어의 몸을 경직시켰다.

    파지지직!

    그 순간 랫맨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빛 뇌전이 플레이어들의 몸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칠흑빛 뇌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블리자드, 파이어 레인 같은 광역 스킬이 연달아 터져 나오며 플레이어들의 몸을 얼리고 불태웠다.

    유리하던 상황이 갑자기 뒤바뀌어 버렸다.

    “공격해! 절대 물러서지 마!”

    마분석의 명령에 플레이어들이 더 가열하게 랫맨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건 활활 타오르는 불에 스스로 뛰어드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성을 잃은 현성은 몬스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성은 잃었지만 전투력은 더 올라갔다.

    페널티가 있는 소모형 아이템, 조건부 패시브 스킬, 전설 등급 무기, 방어구, 액세서리까지.

    현재 현성의 전투력은 전설 등급 몬스터와 대등하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전설 등급 몬스터보다 더 까다로웠다.

    현성은 작았고, 온갖 종류의 스킬을 사용하며, 죽어 가는 적의 피를 통해 체력과 마력을 지속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 현성에게 인해전술은 무의미했다.

    오히려 소수의 강자들만을 규합해 현성을 상대하려 했다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승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앙 정부 소속 랭커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방 정부 소속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을 대거 투입했다.

    이게 중국 정부의 최대 실수였다.

    용혈검, 흡혈공,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가 가지고 있는 옵션이 중첩되어 현성의 체력과 마력을 끊임없이 회복시켰다.

    현성에게 있어서 지방 정부 소속 랭커와 플레이어 들은 까다로운 적이 아니라 자신의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영양분이었다.

    * * *

    중국 친황다오시에서 다섯 번째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했다.

    이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등장한 몬스터는 최하급 몬스터 랫맨.

    크게 당황할 일은 아니었다.

    전설 등급 오크의 등장 이후 몬스터도 레벨 업을 통해 성장한다는 건 상식이 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랫맨도 충분히 전설 등급 몬스터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중국이 입은 피해였다.

    중국은 무려 1만 명이 넘는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사망하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중국은 단일국으로는 가장 많은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하지만 아무리 중국이라도 고레벨 플레이어를 1만 명 넘게 잃은 것은 엄청난 타격이었다.

    한국처럼 대규모 오크 무리가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고작 전설 등급 몬스터 한 개체에 의해 이런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역시 중국의 플레이어는 수준이 떨어진다.

    -아무리 머릿수가 많아도 질이 떨어지면 전설 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아무런 소용이 없다.

    2차 대격변과 이무기 사태로 바닥에 떨어진 중국의 평판이 완전히 나락으로 추락했다.

    던전 안전 등급 역시 Baa 등급에서 Caa 등급으로 폭락했다.

    그 이유는 1만 명의 고레벨 플레이어를 잃었음에도 사태의 원흉인 랫맨을 사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두 번째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는 엄청난 피해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그 말은 언제 다시 전설 등급 몬스터 랫맨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말과 동일했다.

    외국계 기업과 외국인 투자자 들은 중국 투자 의지를 완전히 접어 버렸다.

    완전히 달라졌다는 중국의 선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 사태를 보고 깔끔하게 마음을 접은 것이다.

    사실 달라지기는 했다.

    전설 등급 몬스터의 등장에 발 빠르게 대응해 무려 2만 명이 넘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끌어모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겠는가, 결국 사건을 수습하지 못하고 엄청난 피해만 남기고 끝나 버렸는데.

    두 번에 걸친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스 실패.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는 전설 등급 몬스터의 존재.

    중국은 더 이상 기회의 땅도 아니었고, 투자하기 적합한 땅도 아니었다.

    * * *

    “크윽!”

    현성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다.

    ‘살았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다행히 살아남았다.

    ‘여기가 어디지?’

    현성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시궁창이었다.

    랫맨의 형상을 하고 있는 지금의 현성과 참 어울리는 장소였다.

    ‘힘이 없어.’

    강한 무기력감이 현성의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상태창.’

    현성이 상태창을 소환했다.

    이름 : 최현성

    플레이어 레벨 : 1

    메인 직업 : 군주 - 전설 등급

    칭호 : [뿔 토끼 학살자 - 전설 등급] [블러드 폭스 학살자 - 전설 등급] [최초의 영웅 등급 업적 달성자 - 영웅 등급] [최초의 전설 등급 업적 달성자 - 전설 등급] [흡혈 박쥐 학살자 - 전설 등급] [핏빛 쥐 학살자 - 전설 등급] [거대 개미 학살자 - 전설 등급] [푸른 도마뱀 학살자 - 전설 등급] [최초의 레벨 파괴자 - 일반 등급] [붉은 갈기 늑대 학살자 - 전설 등급] [토드맨 학살자 - 전설 등급] ……후략……

    스텟 : [힘 210(-70) +461] [민첩 210(-70) +461] [체력 210(70) +464] [마력 240(-50) +1015] [정신력 240(-50) +1011]

    직업 전용 스텟 : [통솔력 2102]

    미분배 스텟 : [0]

    고유 능력 : [판매] [구매]

    직업 전용 스킬 : [세력 현황 - 직업 전용 스킬] [군주의 깃발 - 직업 전용 스킬] [등용 - 직업 전용 스킬] [철회 - 직업 전용 스킬] [군주의 외침 - 직업 전용 스킬]

    액티브 스킬 : [힐 - 일반 등급] [파이어 볼 - 일반 등급] [도발 - 일반 등급] [매직 미사일 - 일반 등급] [실드 - 일반 등급] [은밀한 기습 - 일반 등급] [은신 - 일반 등급] [실드 스턴 - 일반 등급] [큐어 - 일반 등급] [아공간 - 희귀 등급] ……후략……

    패시브 스킬 : [단단한 몸 - 일반 등급] [강인한 체력 - 일반 등급] [삼재심법 - 일반 등급] [초급 검술 지식 - 일반 등급] [초급 마법 지식 - 일반 등급] [초급 방패술 지식 - 일반 등급] [스톤 바디 - 일반 등급] [불사의 서 - 유일 전설 등급] [생존 본능 - 영웅 등급] ……후략……

    ‘엄청 떨어졌네.’

    영구적으로 손실된 스텟도 있었고 일시적으로 손실된 스텟도 있었다.

    ‘어라?’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스텟이 올랐어?’

    업적과 아이템 효과로 추가된 스텟이 더 높아졌다.

    현성이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일반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 300명을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플레이어 사냥꾼 - 일반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희귀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 1,000명을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플레이어 포식자 - 희귀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영웅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 5,000명을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플레이어 살해자 - 영웅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전설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 10,000명을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플레이어 학살자 - 전설 등급]

    기가 찼다.

    플레이어 역시 몬스터와 동일하게 취급해 업적을 준 것이다.

    남아 있는 칭호도 전설 등급 하나뿐이었다.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중복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 이상한데?’

    그걸 감안해도 너무 많이 올랐다.

    현성이 칭호를 확인했다.

    플레이어 학살자 - 전설 등급

    -모든 스텟 40 증가.

    ‘몬스터랑은 다르게 취급해 준다는 거냐?’

    몬스터는 등급에 상관없이 힘, 민첩, 체력, 마력, 정신력 중 하나의 스텟을 8 올려 줬다.

    그런데 플레이어는 다른 모양이었다.

    모든 스텟 증가였고 증가 폭도 최초 업적과 동일하게 줬다.

    중복이 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실로 엄청난 수치였다.

    하지만 현성은 그리 기쁘지가 않았다.

    플레이어 학살자 칭호는 현성이 1만 명이 넘는 플레이어를 죽였다는 낙인이었다.

    ‘일단 몸부터 회복하자.’

    현성이 비약을 구입해 손실된 스텟을 복구했다.

    일시적으로 하락한 스텟은 복구할 수 없었지만 페널티가 끝나면 정상으로 돌아올 터였다.

    현성이 변신 주문서 효과를 해제시킨 뒤 숙소로 돌아갔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숙소로 돌아온 현성이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다.

    ‘난리가 났네.’

    2차 대격변 이후 겨우 회복세를 향해 나아가던 중국 주가가 폭락했다.

    친황다오시 근방에 살던 국민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중국 내부에서 자국을 비난하는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왕진광은 국민들 앞에 허리를 숙이고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중국 정부는 결국 자존심을 꺾었다.

    UN 연합군에 전설 등급 몬스터 랫맨 토벌을 부탁한 것이다.

    세계 각국의 여론은 사라진 전설 등급 몬스터 랫맨에 집중되어 있었다.

    특히 랫맨 사태가 벌어진 친황다오시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 몽골, 러시아에도 덩달아 비상사태가 걸렸다.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어.’

    설마 그렇게 함정을 팔 줄은 몰랐다.

    아니, 공간 이동 계열 스킬과 아이템을 그렇게 완벽하게 봉쇄당할 거라는 예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중국으로 넘어온 뒤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렸다.

    그러다 보니 현성도 모르게 방심을 해 버렸다.

    ‘빨리 마무리하고 돌아가자.’

    현성이 인터넷으로 사퇴 의사를 표명한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왕진광의 현재 위치를 검색했다.

    ‘자택에 고립되어 있다 이거지?’

    왕진광의 자택은 기자들과 성난 국민들로 인해 완벽히 봉쇄되어 있었다.

    평소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던 플레이어 경호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밤 처리한다.’

    목표물을 정한 현성이 침대 누워 잠을 청했다.

    아직 몸의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았다.

    또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 역시 편하지 않았다.

    * * *

    “빌어먹을!”

    왕진광 장관의 입에서 절로 욕이 터져 나왔다.

    이번 일에 대한 잘못을 시인하고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대중은 조금도 진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벌 떼처럼 들고일어나 비난을 퍼부었다.

    당장 사형시켜야 한다는 말부터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날 버린 거야.’

    언론 통제와 국민 통제가 강한 중국에서 이 정도로 강한 반발이 일어난다는 건 당에서 자신을 버렸다는 말과 동일했다.

    아니, 버리는 걸 넘어서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도저히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벌컥! 벌컥!

    왕진광 장관이 독한 독주를 안주도 없이 들이켰다.

    스르륵.

    그때 창문이 열리고 침입자들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왕진광 장관은 술에 취해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침입자 중 하나가 왕진광 장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 읍!”

    왕진광 장관이 발악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왕진광이 맞군.”

    왕진광의 얼굴을 확인한 침입자가 여름 이불을 돌돌 말아 올가미를 만들었다.

    그러더니 그 올가미를 왕진광 장관의 목에 걸었다.

    왕진광 장관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난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공포에 질린 왕진광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제발 누가 좀 살려 줘.’

    왕진광 장관이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도와주는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올가미가 목에 걸린 왕진광 장관의 몸이 점점 위로 올라갔다.

    “컥! 커억!”

    목이 졸리며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침입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왕진광 장관의 사형을 집행했다.

    그때였다.

    서걱!

    침입자 중 하나의 목이 그대로 베어졌다.

    털썩!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침입자가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다른 침입자가 놀라 대응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이마에 검이 틀어박혔다.

    털썩!

    왕진광 장관의 사형을 집행하던 침입자 둘이 목숨을 잃었다.

    “컥! 컥!”

    그 결과 왕진광 장관은 죽음의 구렁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왕진광 장관은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헉!”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에 솟아 있는 귀.

    툭 튀어나온 주둥이에서 유난이 돋보이는 앞니.

    전신을 뒤덮은 검은 털까지.

    “래, 랫맨…….”

    왕진광 장관이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 * *

    ‘이런 강단 없는 놈이 장관이라니.’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현성이 목숨을 잃은 복면인들의 소지품을 뒤졌다.

    종이가 하나 나왔다.

    자필로 쓴 유서였다.

    내용은 자신의 목숨으로 이번 랫맨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비밀 요원이었군.’

    비밀 요원을 부리는 위치에 있던 왕진광 장관이 비밀 요원에게 죽을 뻔한 것이다.

    ‘충분히 써먹을 수 있어.’

    현성이 기절한 왕진광 장관의 뺨을 툭툭 쳤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짜악!

    “악!”

    살짝 힘을 주어 때리자 그제야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으아아아아!”

    현성을 목격한 왕진광 장관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기어갔다.

    턱!

    현성이 왕진광 장관의 잡아 입을 막고 그의 눈앞에 유서를 내밀었다.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왕진광 장관이 정신을 차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왕진광 장관은 랫맨이 자신을 해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니, 랫맨이 아니었다면 왕진광 장관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유서를 읽은 왕진광 장관의 턱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따위 짓을 하다니!”

    왕진광 장관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었다.

    “복수하고 싶지 않나?”

    현성이 영어로 물었다.

    “하고 싶습니다! 무조건 해야죠!”

    왕진광 장관의 말에 현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널 죽이려고 한 놈들의 비리를 터트려 버려. 놈들의 치부를 인터넷에 올려서 제대로 복수해 버리라고.”

    “네, 그렇게 해야죠. 당장 그렇게 할 겁니다.”

    왕진광 장관이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서재로 들어갔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좋네.’

    현성은 과거 한국에서 이항구 장관을 상대로 격노 스킬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격노 스킬보다 더 효과가 좋은 스킬을 두 가지나 사용했다.

    몬스터를 혼란 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영웅 등급 스킬과 매혹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영웅 등급 스킬이었다.

    이는 당연히 비밀 요원들이 사용하던 스킬이었다.

    격노 스킬과 함께 사용하니 왕진광 장관이 완전히 분노에 휩싸여 정신줄을 놔 버렸다.

    그러면서도 매혹 스킬의 효과로 인해 현성의 말은 또 잘 들었다.

    왕진광 장관은 현성의 말대로 상부의 비리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기자와 국민 들에게도 알려 줘야지.”

    현성의 말에 왕진광 장관이 반쯤 혼이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더니 집밖으로 나갔다.

    자택에 칩거하던 왕진광 장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플래시를 터트렸다.

    “저는 당의 지시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동안 당의 명령에 따라 개같이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이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왕진광 장관이 미친 사람처럼 떠들며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기밀 서류를 기자들에게 뿌렸다.

    “특종이다!”

    “당장 생중계해!”

    난리가 났다.

    이 자리에 있는 건 중국 기자들만이 아니었다.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당이 비밀 요원들을 보내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제가 쓰지도 않은 유서까지 준비해서요!”

    왕진광 장관은 유서까지 공개했다.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저는 저를 희생양으로 삼아 꼬리를 자르려는 당의 부패와 비리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푸욱!

    한창 열변을 토하던 왕진광 장관의 머리에 비수 하나가 틀어박혔다.

    털썩!

    뇌가 곤죽이 된 왕진광 장관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