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 분노 (53/225)
  • ┃분노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강선영 협회장의 물음에 현성의 몸에서 유형화된 마력이 넘실거리며 진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피부를 짜릿하게 만들 정도의 강한 살기에 강선영 협회장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중국 놈들이 제 가족을 노렸습니다.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 저를 중국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더군요. 실패하면 절 죽일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중국이 확실합니까?”

    “진실의 계약 스킬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현성의 말을 들은 강선영 협회장의 얼굴에 진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타국에 플레이어를 보내 납치 및 살해 공작을 펼치다니.

    도대체 한국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그따위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생포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플레이어 협회에 보고한 정보들은 적들을 모두 죽인 뒤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통해 알아낸 것이다.

    그러니 생포한 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진실의 계약 스킬을 사용한 포로가 있을 것이 아닙니까?”

    강선영 협회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실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죽어 버렸습니다.”

    “휴.”

    현성의 대답에 강선영 협회장이 긴 한숨을 토해 냈다.

    비밀 요원이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리 진실의 계약 스킬이 있어도 상대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설사 받아들이더라도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심문 과정에서 고문은 필수였다.

    “사체는 남아 있습니까?”

    “세 구 정도 남아 있습니다.”

    “세 구요?”

    “예.”

    “중국 플레이어들의 숫자를 모두 합치면 100명을 넘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전투가 너무 치열해서 스킬을 전력으로 사용하다 보니 그대로 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그나마 세 구라도 남아서 다행입니다.”

    “저 그런데 그 세 구의 사체도 외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상태입니다.”

    현성의 말에 강선영 협회장의 얼굴이 무참히 구겨졌다.

    중국을 추궁할 만한 증거를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현성의 증언 외에는 공개할 수 있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조금 골치가 아프겠군요.”

    중국이 오리발을 내밀 게 뻔하니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성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각개격파를 했다지만 고레벨 플레이어 100여 명을 홀로 쓰러트렸다는 말이 아닌가.

    ‘절대 빼앗길 수 없어.’

    현성을 사수해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건해졌다.

    한편 현성은 강선영 협회장이 자신의 거짓말을 의심하는 것 같지 않자 내심 안심했다.

    사실 아무리 전투가 치열했다고 해도 사체가 세 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사체가 세 구밖에 남지 않은 이유는 모두 아이템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저레벨 플레이어가 고레벨 몬스터를 사냥하면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그건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현성은 1레벨 플레이어였고 습격자들은 300레벨 후반대의 고레벨 플레이어였다.

    당연히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거의 99%라고 봐도 무방했다.

    사실 사체가 세 구나 나온 것도 던전 내부에서의 전투 때 아버지와 백우신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사체는 한 구도 남아 있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안전을 위해서 당분간은 가족분들과 함께 협회 본부에서 머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일을 겪게 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앞으로는 가족분들께 더 높은 레벨의 가드들을 붙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협회에서 현성의 가족들에게 가드를 붙인 것은 갑작스러운 차원 게이트 개방이나 몬스터 웨이브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지, 타국의 플레이어들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더 높은 레벨의 가드를 붙인다고 해도 타국의 플레이어들을 잘 막아 낼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가드 일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레벨 업을 포기한 경우가 많았다.

    위험한 던전 생활을 청산하고 비교적 안전한 일을 하기 위해 가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가드들은 전체적으로 레벨이 낮았다.

    아마 최대한 높은 레벨의 가드를 붙여도 타국 플레이어들의 습격에서 현성의 가족을 완벽히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장 조치하겠습니다.”

    현성은 강선영과 좀 더 대화를 나눈 뒤 가족들에게 가 보겠다는 말과 함께 협회장실을 나섰다.

    * * *

    ‘그놈들을 어떻게 제거하지?’

    플레이어 협회에서 배정해 준 임시 숙소로 돌아온 현성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중국으로 넘어가는 건 간단했다.

    그냥 걸어서 가면 된다.

    북한이 멸망하면서 한국과 중국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이가 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현성의 능력으로 국경을 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다.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잠입한 후 사이코 메트리 스킬로 본 중국 비밀 요원들의 집결지를 급습하면 명령을 내린 진원지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현성의 신분이었다.

    현성은 한국의 플레이어였다.

    현성이 중국으로 넘어가 전투를 시작하면 신상이 들통 날 확률이 높았다.

    그럼 모든 게 끝이다.

    무력 보복은 절대 합법적인 절차가 아니다.

    당연히 현성은 국제적인 범죄자가 되어 버린다.

    가족들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다.

    또 현성의 정체가 드러나면 중국 놈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 게 뻔했다.

    ‘아무리 어둠의 장막 스킬이 있다고 해도 내 정체를 완전히 감추기는 힘들어.’

    일단 현성이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주군, 저를 보내 주십시오.”

    현성이 고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루시아가 말했다.

    “그건 안 돼요.”

    루시아에게 맡길 수 있는 임무가 아니었다.

    이번 임무에는 사이코 메트리 스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일 대 다수를 상대로 하는 전투에 있어서 루시아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루시아는 범위 공격 스킬이 부족했다.

    현성처럼 체력과 마력을 회복할 만한 스킬도 없다.

    은신 스킬도 없다.

    “사이코 메트리 스킬이 꼭 필요해서 제가 직접 가야 해요.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이 있으니까 크게 위험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럼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루시아는 여기서 가족들을 지켜 줘요. 또 제가 없는 동안 전자 제품 판매도 맡아 줘야죠.”

    현성의 말에 루시아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현성의 가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또 현성이 자리를 비우면 전자 제품을 판매해 지속적으로 포인트를 수급해야 했다.

    현성과 루시아가 함께 움직이면 포인트 손해 너무 크다.

    루시아를 설득한 현성이 구매창을 열었다.

    ‘분명히 구매창에 답이 있을 거야.’

    현성이 열심히 아이템을 뒤졌다.

    그리고 드디어 원하던 아이템을 찾아냈다.

    랫맨 변신 주문서 - 전설 등급

    -랫맨으로 변신합니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소모형 아이템입니다.

    -판매자 : 맥커바이스

    -판매가 : 29,999,999,999포인트

    효과는 단순히 랫맨으로 변신한다가 끝이었다.

    스텟이 늘어난다거나 후각이나 청각이 좋아진다거나 하는 버프 효과는 전혀 없었다.

    ‘단순한 코스프레용 아이템이 엄청 비싸네.’

    무려 300억 포인트.

    외형이 변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 쓰잘머리도 없는 주제에 비싸기는 엄청나게 비쌌다.

    무려 주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웅 등급 스킬 하나 가격이다.

    심지어 한 번만 구입하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북도 아니고, 소모형 아이템이었다.

    더 비싼 것도 많이 있었다.

    고블린, 코볼트, 오크, 놀, 리자드맨, 웨어 울프, 트롤, 오우거 등등.

    인간형 몬스터로 변신할 수 있는 온갖 소모형 아이템이 가격대별로 쭉 펼쳐져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가격이 싼 게 랫맨 변신 주문서였다.

    몬스터의 등급이 올라가면 가격도 같이 따라서 올라갔다.

    ‘맥커바이스 이 사람은 판매 물품이 거의 다 이런 흥미 위주의 소모형 아이템이네. 그런데 이름이 낯이 익은데?’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현성의 우량 고객 중 1명이었다.

    ‘가끔 이런 분들 물건도 팔아 드려야지.’

    현성은 전설 등급 아이템 랫맨 변신 주문서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소모형 아이템 랫맨 변신 주문서 - 전설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바로 예를 눌렀다.

    -소모형 아이템 랫맨 변신 주문서 - 전설 등급을 구매하셨습니다.

    ‘이거면 내 정체가 드러날 확률은 제로나 마찬가지야.’

    현성이 적당히 변장을 하고 중국 비밀 요원들의 안가를 공격하면?

    당연히 범인을 찾기 위해서 난리가 날 것이다.

    범인을 인간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랫맨 변신 주문서를 사용한 후 중국 비밀 요원들의 안가를 공격하면?

    난리는 나겠지만 범인은 인간형 몬스터 중 하나인 랫맨이 된다.

    인간이 용의선상에 오를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현성은 랫맨의 모습으로 분탕질을 친 후에 유유히 현장을 벗어나 아이템 효과를 해제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중국은 난리가 날 것이다.

    최하급 몬스터인 랫맨이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때려잡는 꼴이 되니까 말이다.

    어쩌면 세계 각국에서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성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비싸기는 하지만 본전 이상은 뽑을 수 있어.’

    안가를 습격해 중국 비밀 요원을 하나 이상 잡기만 해도 변신 주문서 값은 뽑고도 남았다.

    * * *

    한국 정부는 중국 비밀 요원들이 저지른 납치 및 살인 미수 사건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증거는 시체 세 구가 전부였다.

    하지만 단순한 한국 정부의 뇌피셜로 보기에는 폭로한 정보의 수준이 심상치 않았다.

    한국 정부는 현성이 진실의 계약(?)을 통해 알아낸 중국 비밀 요원들의 신상 정보와 그간 그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낱낱이 공개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중국 비밀 요원들의 이름, 레벨, 주력 스킬, 양지에서 활동할 때의 신분 등의 정보를 알렸고, 그것도 모자라 중국 비밀 요원들이 지난 한 달간 저지른 살인, 폭행, 협박, 납치 등의 범법 행위를 모조리 까발린 것이다.

    당연히 전 세계는 난리가 났다.

    사실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플레이어를 비밀 요원으로 운용했다.

    혹독한 특수 훈련과 교육 과정을 이수했지만, 결국 일반인에 불과한 기존의 비밀 요원.

    동일한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체 능력과 스킬이라는 신비한 힘까지 가진 플레이어 비밀 요원.

    어느 쪽이 우수할지는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한국도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비공식적인 조직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공식적으로 각국에서 운영하는 플레이어 조직은 플레이어 협회뿐이다.

    또한 그런 비공식적인 플레이어 비밀 요원이 있다고 해도 요인 호위, 정보 수집 등의 임무에 활용하지 타국에 잠입해 이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데 활용하지는 않는다.

    한국 정부의 폭로로 시작된 중국 비밀 요원들의 만행이 세계 각국에 알려졌다.

    당연히 비난이 빗발쳤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비밀 요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이 중국을 음해하고 있다.

    -증거도 없지 않느냐?

    중국의 오리발에 강한 비난 여론이 일었지만 결국 거기서 끝이었다.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공개한 정보는 뇌피셜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기존에 벌어졌던 사건들과 딱딱 들어맞았다.

    하지만 결국 증거는 없었다.

    심증은 있지만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중국을 몰아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2차 대격변을 겪으며 크게 휘청하기는 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G2 중 하나였다.

    결국 중국의 위신이 엄청나게 손상되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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