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 습격 (52/225)
  • ┃습격

    “그게 정말인가?”

    “추정이기는 하지만 요원들이 보내온 정보를 취합한 결과 그럴 확률이 99% 이상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윌슨 대통령의 물음에 CIA 국장이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99% 이상이라…….”

    이건 당사자한테 직접 확인하지만 못했을 뿐 100%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그 최현성이라는 플레이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게.”

    “예, 우선 최현성 플레이어는…….”

    CIA 국장의 입에서 현성에 대한 정보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CIA 국장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윌슨 대통령과 참모들의 입이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특히 플레이어 최현성이 각성한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뉴비라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성장 속도가 정말 말도 안 되게 빠르군. 최현성 플레이어가 가진 그 고유 스킬을 다른 플레이어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나?”

    “그 부분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특이사항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게 뭔가?”

    “일단 이걸 봐 주시죠.”

    CIA 국장이 여러 각도에서 찍힌 최형규와 백우신의 사진이 첨부된 보고서를 공개했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아버지 최형규와 옆집에 사는 백우신이라는 플레이어 대한 정보입니다.”

    “최형규 플레이어는 각성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는데 100레벨대 던전에 출입하는군.”

    윌슨 대통령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돈을 처발라도 기본적인 스텟이 달리면 상위 던전에 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데 저 두 사람은 그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현재 한국 플레이어 협회의 척살 팀을 맡고 있습니다. 그 후 316명의 저레벨 플레이어들을 지원했는데, 그 결과가 실로 놀랍습니다.”

    CIA 국장이 이번에는 현성의 휘하로 들어간 316명의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사진과 프로필이 기록된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성장 속도가 꽤 빠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조사 결과 확 눈에 드러날 정도는 아니지만,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포섭된 이후 전체적인 스텟이 상승한 걸 확인했습니다.”

    “스텟이 상승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설마 그렇게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보여 준 인물이 버퍼라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버퍼처럼 많은 이들의 스텟을 증가시켜 주는 종류의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말 알 수가 없는 인물이군.”

    20레벨의 법칙 파괴.

    엄청나게 빠른 성장.

    수많은 전투 스킬 보유.

    거기다 다수의 플레이어에게 스텟을 상승시켜 주는 스킬까지…….

    “꼭 포섭해야 하는 인물이군.”

    “그렇습니다. 자국민으로 끌어들이면 본국의 전설 등급 몬스터 방어 능력이 상승하는 것은 물론 자국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빠르게 상승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포섭 성공 확률은?”

    “상당히 낮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돈도 아쉬울 것이 없고, 한국 플레이어 협회 내에서의 지위도 높습니다.”

    “하긴, 한국 정부가 머저리들만 있는 게 아니라면 최현성 플레이어에 대한 대접을 소홀히 할 리가 없지.”

    “일단 천천히 접근해 친분을 쌓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자국과 한국의 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인 만큼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용병으로 써먹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CIA 국장의 말에 윌슨 대통령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호적이라고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미국의 요구를 한국이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고가 터졌을 때 부르는 건 너무 늦으니 장기 파견 형태로 하는 게 좋겠군.”

    일단 미국에 불러 앉혀 놓고 천천히 구워삶아 보면 될 것 같았다.

    설사 포섭에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장기 파견 형태를 유지하며 미국에 붙들어 놓는다면 포섭한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일단 한국 정부를 압박할 초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미국이 현성에 대한 정보를 손에 넣고 작전을 개시했다.

    하지만 현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미국만이 아니었다.

    오크 대족장 레이드와 오크 주술사 레이드에서 큰 활약을 보인 현성은 미국을 제외한 강대국들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탐나는 먹잇감이었다.

    그리고 그 강대국들 중 하나는 좀 더 과격한 방법을 선택했다.

    * * *

    중국은 이제 겨우 자국의 2차 대격변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손해가 막심했다.

    던전 안전 등급과 국가 신용 등급이 폭락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추가 투자를 망설였고 기존에 투자했던 자금도 회수하기 바빴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명성답게 중국 현지에는 수많은 기업들의 공장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다 이번 2차 대격변 사태로 엄청난 피해를 봤다.

    각국의 기업들은 중국 공장 재건을 망설이기 시작했다.

    중국은 자국 내에 만들어진 타국의 공장을 인질로 삼아 외국계 기업들을 협박한 사례가 수도 없이 많았다.

    또 압도적인 수입 물량과 수출 물량을 무기로 타국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런 위험 부담이 존재함에도 이미 투자해 놓은 설비와 중국 내부에 벌어들이는 매출 때문에 외국계 기업들은 중국 시장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한데 모든 것이 초기화됐다.

    외국계 기업들은 중국이 돌발적인 차원 게이트 생성 사태에 제대로 대응할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특히 전설 등급 몬스터 이무기를 상대로 두 번이나 대패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외국계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엄청난 피해가 계속해서 발생한다면 중국에 투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중국은 자국의 공장을 인질로 삼아 외국계 기업들을 압박하거나 수출 물량과 수입 물량을 미끼로 타국을 압박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또한 플레이어 긴급 출동 시스템을 만들어 차원 게이트 생성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국제 신용도가 워낙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2차 대격변 사태를 마무리 지은 중국 정부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런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반쯤 자신들의 땅이라고 생각했던 옛 북한 영토를 빼앗아 갔다.

    그것도 모자라 이무기 레이드를 멋지게 성공하고 중국 랭커들의 행동을 폭로해 중국을 전 세계의 우스갯거리로 만들었다.

    중국은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국은 지리학적으로 중국의 턱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이 성장하면 중국에 이로울 것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해 2마리의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했다.

    중국은 한국이 처참하게 무너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한국은 멋지게 2마리의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고 오히려 더 명성을 높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최현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플레이어의 존재가 중국 측에 감지되었다.

    중국 정부는 최현성이라는 플레이어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면 제거해 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포섭할 수 있으면 포섭하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제거해 버리도록.

    결국 납치 및 살해 지령이 떨어졌다.

    중국 비밀 요원들이 위장 여권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했다.

    * * *

    현성은 루시아와 함께 영웅 등급 던전을 순회하며 사냥에 열중했다.

    업적을 쌓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영웅 등급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오히려 일반 등급 던전이나 희귀 등급 던전 클리어할 때보다 적게 들 것으로 예상됐다.

    일반 등급 던전과 희귀 등급 던전에 비해 영웅 등급 던전의 숫자가 월등히 적었기 때문이다.

    2차 대격변을 통해 영웅 등급 던전의 숫자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기존에 존재했던 던전과 같은 종의 몬스터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손해였다.

    업적을 쌓기 위해서는 동일한 종의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 10개 있는 것보다 각기 다른 종의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 2개 있는 게 더 좋았다.

    ‘생각보다 빨리 던전이 바닥나겠어.’

    북한 지역을 흡수해 한국의 영토가 넓어지기는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조그마한 면적일 뿐이다.

    당연히 던전의 숫자도 월등히 적었고, 던전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종류도 적었다.

    ‘타국에 나가서 사냥을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으려나.’

    레벨 업을 할 수 없는 현성이 강해지는 방법은 업적을 통한 스텟 상승뿐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플레이어 협회에 밝힐 수는 없다.

    현성이 1레벨 플레이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많은 이들의 의문을 품고 달려들 게 뻔했다.

    고유 스킬 판매, 구매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1레벨 플레이어라는 사실은 절대적으로 비밀에 부쳐야 했다.

    현성이 1레벨 플레이어라는 비밀을 알고 있는 이는 같은 1레벨 플레이어인 루시아밖에 없었다.

    ‘플레이어 협회가 게거품을 물고 반대할 텐데.’

    현성도 자신의 위치가 어떤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플레이어 협회는 절대 현성을 타국으로 돌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현성이 타국으로 갔다가 그대로 정착이라도 해 버리면 난리가 난다.

    꼭 현성이 타국에 정착하지 않더라도 사냥 중에 변을 당하기라도 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내가 얻을 수 없다면 제거해 버린다.’라는 재정신이 아닌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국가가 한둘이 아니었다.

    ‘나중에 슬쩍 UN 연합군 소속으로 갈 수 없냐고 찔러봐야겠다.’

    UN 연합군 소속이면 그나마 한국 정부도 어느 정도 안심을 할 것이다.

    현성이 던전 안에서 사냥을 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시각.

    중국 비밀 요원들이 현성의 집에 도착했다.

    * * *

    “목표물은?”

    -집 안에 있는 걸 확인했다.

    “플레이어 협회에서 파견한 가드들이 교대하자마자 작전을 시작한다.”

    -알겠다. 다른 팀에도 동일하게 전달하겠다.

    중국 비밀 요원들은 총 3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 팀이 노리는 타깃은 집에 있는 현성의 어머니였다.

    두 번째 팀이 노리는 타깃은 전자 제품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현성의 누나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팀이 노리는 타깃은 던전에서 사냥 중인 현성의 아버지였다.

    일가족 3명을 모두 납치해 인질로 잡는다.

    그게 중국 비밀 요원들이 세운 계획이었다.

    중국 비밀 요원들은 바보가 아니다.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현성의 예상 전투력은 최상위 랭커를 능가하는 수준.

    추정 레벨 500이 넘는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죽이거나 납치하는 일이 조용히 끝날 리가 없다.

    분명 소란이 일어날 것이고 그러면 한국 플레이어 협회가 움직일 것이다.

    그럼 작전에 실패한다.

    중국 비밀 요원들은 장수가 아니라 장수가 아끼는 말을 노리기로 했다.

    성공 확률이 거의 100%였다.

    300레벨 후반대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비밀 요원들에게 있어 일반인인 현성의 어머니와 누나를 납치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현성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플레이어이기는 하지만 고작 100레벨대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중, 저레벨 플레이어일 뿐이다.

    -가드들이 교체됐다. 지금 바로 작전을 실행한다.

    그 말과 함께 세 팀이 동시에 움직였다.

    현성의 집에서 대기하던 중국 비밀 요원들이 은신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이동했다.

    첫 번째로 제거해야 할 대상은 플레이어 협회에서 파견한 가드들이 아니라 사설 경호원들이었다.

    ‘고작해야 200레벨 초중반 정도군.’

    제1팀의 팀장 소일홍이 팀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푸욱!

    팀원들의 손에 들린 단검이 거의 동시에 경호원들의 목을 꿰뚫었다.

    “컥!”

    “큭!”

    현성의 집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경호원들의 시체가 순식간에 아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경호원들을 모조리 제거한 중국 비밀 요원들이 가드들을 향해 움직였다.

    푸욱!

    가드들 역시 손쉽게 처리했다.

    사설 경호원과 플레이어 협회 직속 가드 들이 너무도 무력하게 목숨을 잃었다.

    경호원과 가드 제거가 끝나자 중국 비밀 요원 중 하나가 현성의 집에 걸려 있는 보안 장치를 무력화시켰다.

    그는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으로, 보안 장치 해제 전문가였다.

    순식간에 플레이어 협회가 설치해 놓은 보안 장치가 뚫렸다.

    달칵!

    열린 문을 통해 중국 비밀 요원들이 현성의 집 내부로 들어갔다.

    현성의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TV 소리 때문인지 현성의 어머니는 집에 누가 침입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중국 비밀 요원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현성의 어머니에게 접근했다.

    파직!

    중국 비밀 요원의 손에서 튀어나온 뇌전 계열 스킬이 스파크와 함께 현성의 어머니를 덮쳤다.

    퍼엉!

    하지만 작은 폭발음과 함께 스킬이 막혀 버렸다.

    중국 비밀 요원들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현성의 어머니 박미숙이 고개를 돌렸다.

    “꺄아아악!”

    절대 집에 있어서는 안 될 괴한의 등장에 박미숙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공격 스킬을 사용했기에 은신 스킬이 풀린 중국 비밀 요원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지자 크게 당황했다.

    뇌전 계열 스킬을 상당히 약하게 사용하기는 했다.

    중국 비밀 요원들의 목표는 현성의 어머니인 박미숙을 살해하는 게 아니라 납치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약하게 사용했다고 해도 일반인을 기절시킬 정도의 위력은 가지고 있었다.

    파지지직!

    마음이 급해진 중국 비밀 요원이 더 강력한 파워로 스킬을 사용했다.

    꽈아앙!

    하지만 더 큰 폭발음이 터져 나올 뿐 타깃인 박미숙은 멀쩡했다.

    아니, 완전히 멀쩡하지는 못했다.

    갑작스러운 공격과 폭발에 놀란 박미숙이 기절해 버렸으니까 말이다.

    일이 틀어진 것을 직감한 중국 비밀 요원들이 일제히 스킬을 해제했다.

    그와 함께 정신을 잃은 박미숙을 납치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파직!

    하지만 그들의 손은 허공에서 멈춰 버렸다.

    수호의 반지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중국 비밀 요원들의 접근을 공격으로 간주하고 막아 냈기 때문이다.

    “아이템이다!”

    팀장의 외침과 함께 더욱 강력한 공격이 쏟아졌다.

    목표는 기절한 타깃의 팔이나 다리였다.

    꽈아앙! 꽈아앙!

    연속적으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왜 이렇게 안 깨지는 거야?’

    중국 비밀 요원들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마력으로 소음을 차단하기는 했지만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거기다 타깃은 이미 기절해 소파에 쓰러져 있었다.

    그저 들고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데, 정신을 잃은 타깃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파각!

    그때 수호의 반지에 미세한 금이 생겼다.

    수호의 반지에 내장된 마력이 거의 다 고갈된 것이다.

    중국 비밀 요원들의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파삭!

    그리고 대신 받을 수 있는 대미지를 초과해 버린 수호의 반지가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됐어!”

    저항하던 마력의 기운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팀장이 타깃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악!

    그때 밝은 빛무리와 함께 절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그들의 진짜 타깃인 플레이어 최현성이었다.

    파지지직!

    칠흑빛 뇌전이 중국 비밀 요원들을 향해 쏟아졌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팀의 리더인 팀장의 몸이 숯덩이로 변했다.

    팀장 뒤에 있던 팀원 둘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 * *

    ‘이 새끼들이……!’

    현성의 두 눈이 진한 살기로 물들었다.

    방금 전까지 현성은 던전에서 루시아와 함께 사냥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팔에 착용하고 있던 교류의 팔찌가 붉은빛으로 변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그간 팔찌의 색이 붉은색으로 변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팔찌의 색이 순식간에 보라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했다.

    이에 현성은 바로 어머니를 이동 대상으로 지정했던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찢었다.

    그런 현성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검은 옷을 입은 괴한들이 어머니를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이었다.

    현성은 황급히 영웅 등급 방어 스킬인 앱솔루트 실드를 어머니에게 걸고 전력을 다해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해 괴한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한 번에 적들을 다 제거하지는 못했다.

    휘익!

    현성이 칠흑빛 뇌전에 휩싸인 용혈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괴한들의 방어 스킬이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칠흑빛 뇌전이 게걸스럽게 괴한들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다 잡지는 못했다.

    괴한들이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멈춰!”

    현성의 외침과 함께 도주하던 괴한들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오크 대족장 레이드 이후 얻은 워크라이 스킬을 시전한 것이다.

    콰직!

    몸이 굳어 버린 괴한들의 몸에 용혈검이 박혀 들었다.

    하지만 괴한 셋은 워크라이 스킬에 걸려들지 않았다.

    정신계 스킬 저항력이 제법 높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현성이 목표물 추적 기능이 있는 트레이스 애로우 스킬을 시전했다.

    빛으로 이루어진 화살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는 괴한들의 뒤를 쫓았다.

    “추적 스킬을 파쇄한 뒤 흩어진다!”

    우두머리의 외침에 괴한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다.

    트레이스 애로우 스킬은 피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끈질겼다.

    하지만 공력력 자체는 크게 강력하지 않다.

    괴한들은 자신의 위치를 현성에게 알려 주는 트레이스 애로우 스킬을 박살 낸 뒤 도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그들의 최대 실수였다.

    꽈아앙!

    괴한들의 무기와 충돌한 트레이스 애로우가 일제히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트레이스 애로우 스킬 속에 숨어 있던 흑뢰룡의 숨결이 그 흉포한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서걱!

    콰직!

    현성은 흑뢰룡의 숨결에 중상을 입은 괴한들의 숨통을 끊었다.

    차라리 괴한들이 계속 흩어져 도주했다면 오히려 살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희귀 등급 스킬인 트레이스 애로우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파쇄하려 한 게 오히려 그들의 명을 재촉했다.

    현성이 재빨리 어머니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수호의 반지 덕에 아무런 외상도 없었다.

    그저 놀라셔 기절하셨을 뿐이다.

    ‘다행이다.’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때 남은 2개의 팔찌 중 하나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누나 최현지와 짝을 이룬 교류의 팔찌였다.

    -루시아, 어머니를 보호해 주세요.

    현성이 군주의 외침 스킬을 사용해 루시아를 불렀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루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현성이 품에서 누나 최현지를 이동 대상으로 지정한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화악!

    밝은 빛무리가 현성의 몸을 집어삼켰다.

    현성이 이동한 곳은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를 쌓아 둔 창고였다.

    누나 최현지는 정신을 잃은 상태로 괴한들에게 붙잡혀 있었다.

    “움직이지 마!”

    괴한들이 누나 최현지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외쳤다.

    ‘빌어먹을.’

    어머니를 먼저 구하느라 한발 늦어 버렸다.

    ‘어떻게 하지?’

    괴한들과 누나 최현지가 코앞에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다.

    하지만 현성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현성이 스킬을 사용하거나 검을 휘둘러 괴한들을 제압하는 것보다 괴한들이 누나 최현지의 목에 칼을 꽂아 넣는 게 더 빠를 상황이었다.

    워크라이 스킬을 시전하는 것도 위험했다.

    아까처럼 워크라이 스킬이 통하지 않는 적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물러서.”

    괴한들의 말에 현성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망할 중국 새끼들.’

    처음에는 이미 전적이 있는 일본을 의심했다.

    하지만 괴한들은 중국어를 사용했다.

    범인은 중국일 확률이 높았다.

    ‘어떻게 하지?’

    현성이 뒷걸음질을 치며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수락해라.”

    괴한의 말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공간 스킬이 시전되었습니다. 스킬을 받아들여 아공간 속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이 새끼들 준비도 철저하게 해 왔네.’

    현성이 이를 악물었다.

    생명체를 수납할 수 있는 영웅 등급 아공간 스킬.

    현성을 본국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준비한 게 분명했다.

    “어서 수락해라, 네 가족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괴한의 손에 들린 칼이 누나 최현지의 목에 닿았다.

    누나의 목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좋아. 들어가지. 하지만 누나를 더 다치게 만들면 너희들을 전부 죽여 버리겠다.”

    현성의 경고에 괴한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도 소중한 인질을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네놈이 아공간 안으로 들어간다면 네 누나도 따라 들어갈 거다.”

    “알겠다.”

    현성이 예를 눌렀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현성의 몸 사라졌다.

    현성의 눈앞에 칠흑밖에 없는 어둠이 펼쳐졌다.

    ‘여기가 아공간 내부인가?’

    아공간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아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시간이 멈출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가능할까?’

    현성이 품에서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동 대상은 누나 최현지가 운영하는 전자 제품 매장의 사장실로 지정되어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추가 구입해 지정해 놓은 것이었다.

    누나 최현지가 이동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는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사용해 봤자 같은 일이 반복될 게 뻔했다.

    그렇기에 이동 대상이 사장실로 되어 있는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제발 가능해야 할 텐데.’

    아공간 안에서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일단 사용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좌악!

    현성이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찢었다.

    화악!

    밝은 빛무리가 현성의 몸을 휘감았다.

    ‘성공했다.’

    목표물이 아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 걸 확인한 중국 비밀 요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공간 스킬을 시전한 대상자가 출구를 개방해 주거나 죽지 않는 이상 목표물은 절대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어서 타깃을 깨워라.”

    팀장의 말에 중국 비밀 요원들이 수 계열 스킬을 시전했다.

    좌악!

    차가운 물이 최현지의 몸에 쏟아졌다.

    “으으으.”

    전격 스킬에 의해 정신을 잃었던 최현지가 정신을 차렸다.

    “죽고 싶지 않다면 수락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말과 함께 최현지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플레이어가 아닌 최현지는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수호의 반지는 이미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현성이 준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이 들어 있는 지갑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당장 수락해!”

    최현지가 망설이자 중국 비밀 요원이 목에 칼을 들이밀며 강하게 위협했다.

    최현지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서걱!

    그때 최현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던 중국 비밀 요원의 팔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파지지직!

    그와 함께 최현지를 중심으로 칠흑빛 뇌전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아아악!”

    “크악!”

    중국 비밀 요원들이 비명과 함께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렸다.

    “뭐야?”

    “최현성? 저놈이 어떻게……?”

    살아남은 중국 비밀 요원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아공간에 들어가 있어야 할 목표물이 인질의 바로 옆에 자리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비밀 요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공간 스킬을 가지고 있는 동료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분명 최현성이 자신의 아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했다.

    그 후 자신은 아공간을 개방하지 않았다.

    그럼 당연히 최현성은 자신의 아공간 안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있다는 말인가.

    “이게 무슨……?”

    당황한 중국 비밀 요원이 아공간 스킬을 다시 사용했다.

    “어? 있는데?”

    아공간 안에 생명체가 있는 게 느껴졌다.

    파지지직!

    그때 아공간 안에서 칠흑빛 뇌전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악!”

    “아아악!”

    한자리에 뭉쳐 있던 중국 비밀 요원들이 순식간에 몰살당했다.

    “혀, 현성아.”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광경을 목격한 최현지가 놀라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돌렸다.

    “헉!”

    고개를 돌린 최현지는 기겁했다.

    자신의 등 뒤에 있던 동생의 몸이 상체의 일부뿐이었기 때문이다.

    머리와 가슴 일부 그리고 오른팔.

    그게 동생의 전부였다.

    “아!”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최현지가 다시금 기절해 버렸다.

    “크윽.”

    짧은 침음을 터트린 현성이 마력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허공으로 띄웠다.

    저벅저벅.

    아공간에서 빠져나온 하반신과 상체의 일부를 포함한 왼팔이 현성의 찢겨진 상체를 향해 걸어왔다.

    둘로 찢겨졌던 현성의 몸이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죽을 뻔했네.’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공간 안에서 사용한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은 다행히 캔슬되지 않았다.

    하지만 온전히 제 기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

    절반의 성공.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은 현성의 상체 일부와 오른팔을 목적지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현성의 심장과 왼팔을 포함한 상체 일부와 하반신은 그대로 아공간에 남아 버렸다.

    아마 불사의 서가 아니었다면 몸이 둘로 찢겨지는 순간 그대로 사망했으리라.

    완벽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통해 현성은 아공간을 탈출해 사장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성은 어둠의 장막 스킬을 사용해 자신의 모습, 소리, 마력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워 버렸다.

    그 후 마력을 이용해 신체를 움직여 누나와 괴한들이 있는 창고에 도착했다.

    다행히 적들은 방심하고 있었다.

    거기다 야생의 본능 같은 탐지 스킬을 가진 이도 없었다.

    그 덕분에 현성은 손쉽게 적들을 기습해 누나를 구해 낼 수 있었다.

    ‘어쨌든 성공했으니 됐어.’

    현성이 그레이트 힐 스킬을 사용해 몸을 회복시켰다.

    불사의 서와 그레이트 힐 스킬의 도움으로 현성은 금세 멀쩡한 모습으로 변했다.

    하지만 체력 소모와 마력 소모가 컸다.

    현성은 기절한 누나를 안아 들고 어머니가 이동 대상으로 지정된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찢었다.

    화악!

    현성의 눈앞에 어머니와 루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루시아, 누나도 같이 지켜 줘요.”

    “제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현성이 아버지와 연결된 교류의 팔찌를 확인했다.

    붉은색.

    다행히 검은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와 누나를 노렸던 놈들이 아버지를 노리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현성이 아버지를 이동 대상으로 지정해 놓은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찢었다.

    화악!

    밝은 빛이 현성의 몸을 휘감았고, 시야가 바뀌었다.

    “현성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성이 주변을 살폈다.

    던전 안이었다.

    꽈앙! 꽈앙!

    반투명한 막 밖에서 맹렬히 공격을 퍼붓는 괴한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버지 역시 습격을 당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버지와 백우신이 힘을 합쳐 잘 버텼다는 점이다.

    괴한들은 안간힘을 쓰며 현성의 아버지와 백우신이 사용한 방어 스킬을 뚫으려고 했다.

    하지만 레벨은 낮아도 아버지와 백우신의 스텟은 고레벨 플레이어를 넘어선 수준.

    쉽게 뚫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타악!

    현성이 방어막 밖으로 몸을 날렸다.

    서걱!

    가장 가까이서 방어 스킬을 공격하던 괴한들의 목이 일제히 잘려 나갔다.

    “뭐야?”

    “최현성이다!”

    “최현성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적들은 갑작스러운 현성의 등장에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괴한들이 당황했건 당황하지 않았건 현성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용혈검이 날카로운 예기를 자랑하며 적들의 몸을 베어 넘겼고, 마력을 가득 머금은 흑뢰룡의 숨결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괴한들의 몸을 새카맣게 불태웠다.

    “퇴각한다!”

    현성의 등장에 놀란 괴한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현성이 아니었다.

    ‘아이스 월.’

    으드드득!

    거대한 빙벽이 나타나 괴한들의 퇴로를 차단했다.

    꽈아앙!

    괴한들이 빙벽을 부수고 탈출을 시도하려는 그때 아이스 스톰이 던전 내부를 점령했다.

    광범위하게 사용된 아이스 스톰은 괴한들에게 큰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냉기 속성 스킬의 특성 탓에 기동성이 저하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파지지직!

    움직임이 느려진 괴한들을 향해 흑뢰룡의 숨결이 쏟아졌다.

    꽈아앙! 꽈아앙!

    연속적인 폭발이 터져 나왔다.

    “놈을 죽여!”

    퇴각을 포기한 괴한들이 무언가를 삼켰다.

    그리고 일제히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익!

    괴한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화르르륵!

    파지직!

    현성을 향해 화염 계열 스킬과 뇌전 계열 스킬이 연달아 날아왔다.

    현성이 재빨리 앱솔루트 실드를 사용했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앱솔루트 실드가 터져나갔다.

    그 사이 현성에게 다가온 괴한들이 일제히 무기를 휘둘렀다.

    파지지직!

    괴한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현성이 전력으로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했다.

    거리를 좁혔던 괴한들의 몸이 칠흑빛 뇌전에 휩싸였다.

    하지만 괴한들이 흑뢰룡의 숨결을 뚫고 현성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좌악!

    현성의 몸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휘익!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러 적들을 공격했다.

    서걱!

    파강!

    괴한 중 둘이 죽고 나머지는 현성의 공격을 막아 냈다.

    ‘칫!’

    던전에서 사냥을 하던 도중 휴식 시간도 없이 연속으로 세 번이나 전투를 치렀다.

    거기다 여러 스킬들을 전력으로 사용해 체력과 마력이 고갈되었다.

    흡혈공과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가 있다고는 하지만 적들의 숫자가 너무 적어 소모한 체력과 마력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이 자식들, 뭘 처먹은 거야?’

    갑자기 적들의 힘과 속도가 올라갔다.

    스킬의 위력도 상승했고,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도 올라갔다.

    웨어 울프 킹의 심장이나 오우거의 진혈같이 페널티가 큰 소모형 도핑 아이템을 섭취한 것 같았다.

    스텟이 강화된 괴한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들었다.

    파강! 파강!

    하지만 전투는 전체적으로 현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현성의 전투 스타일은 공격 일변도.

    서로 부상을 각오하고 전투를 벌인다면 현성이 유리했다.

    현성의 체력과 마력은 용혈검과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 덕에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반면 괴한들의 계속해서 체력과 마력을 소모하기만 했다.

    부상을 입었을 때 상처가 회복되는 속도도 현성이 더 빨랐다.

    “하압!”

    거기다 중간중간 현성의 기합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워크라이 스킬은 괴한들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게 만들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치열한 전투 중에 몸이 굳어 버리는 건 상당히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했다.

    콰직!

    괴한들의 숫자가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악!”

    그때 백우신이 괴성을 터트리며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현성의 아버지 최형규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현성에게 연속적으로 방어 스킬과 힐 스킬을 시전하며 괴한들에게 공격 스킬을 난사했다.

    현성 하나도 제압하기 힘든 상황에서 백우신과 최형규가 가세했다.

    괴한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괴한들은 목표물을 수정했다.

    현성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탱커인 백우신 역시 너무 단단해 빠른 제압이 불가능했다.

    “잡아!”

    괴한들이 일제히 최형규에게 달려들었다.

    마법사 계열의 플레이어인 만큼 근접전이 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드를 서 주던 백우신이 공격에 가담해 방어도 허술해졌다.

    거기다 장기인 방어 스킬을 자신이 아닌 아들인 현성의 몸에 주로 사용해 주다 보니 상대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방어가 허술해졌다.

    현 상황에서는 가장 만만한 공격 대상인 것이다.

    “멈춰!”

    현성이 워크라이 스킬을 사용하며 최형규에게 달려드는 괴한들을 공격했다.

    “컥!”

    “아악!”

    괴한들은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며 계속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결과 5명의 괴한이 본래 타깃이었던 최형규의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이놈만 인질로 잡으면 된다.’

    최형규를 인질로 잡으면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물론 본래의 목적까지 달성할 수 있다.

    괴한들이 일제히 최형규를 향해 자신들의 무기를 휘둘렀다.

    슈욱!

    그때 최형규의 몸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사라진 최형규가 나타난 곳은 탱커인 백우신의 뒤였다.

    코앞에서 인질을 놓친 괴한들의 표정이 허탈하게 변했다.

    그런 괴한들을 향해 칠흑빛 뇌전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휴!”

    상황이 종료되자 현성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현성아!”

    아버지 최형규의 부름에 현성이 고개를 돌렸다.

    “너 도대체 얼마나 다친 거냐?”

    “그냥 피가 묻은 거지 부상은 없어요.”

    사실이었다.

    불사의 서와 더불어 아버지 최형규가 미친 듯이 사용한 방어 스킬과 힐 스킬 덕분에 현성의 몸에 생긴 상처는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다행이구나.”

    최형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형규는 아들인 현성이 괴한들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당할 때마다 자신의 살이 찢겨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아버지가 방어 스킬도 써 주시고 힐도 사용해 주셨잖아요.”

    아닌 게 아니라 최형규의 도움 덕분에 현성은 큰 부상 없이 전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도대체 왜 우리를 공격한 거냐?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중국 놈들 같던데.”

    최형규의 물음에 현성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러게요. 이제부터 그 이유를 알아봐야죠.”

    현성이 죽은 괴한들의 소지품을 뒤져 마력이 담겨 있지 않은 물건을 찾아냈다.

    현성이 곧바로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사용했다.

    현성의 눈앞에 괴한들의 과거 행적이 펼쳐졌다.

    괴한들의 정체는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은 중국 비밀 요원들이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사실 대놓고 중국어를 하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중국 정부의 지시는 가족을 인질로 삼아 현성을 중국으로 데리고 오거나 제거하는 것이었다.

    생명체를 수납할 수 있는 영웅 등급 아공간과 도핑 아이템이 있으니 불가능한 지시도 아니었다.

    ‘이 새끼들 가만히 놔두면 안 되겠네.’

    약간 수준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중국 비밀 요원들의 숫자는 일본 비밀 요원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많았다.

    지금과 같은 규모의 습격을 수십 번 이상 재개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다 중국 정부가 한번 실패했다고 현성을 포기할 것 같지도 않았다.

    중국은 한국의 성장과 미국과의 연계를 강하게 경계했다.

    또 내가 가지지 못하면 차라리 부숴 버려야 한다는 사상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아마 당분간은 잠잠하겠지만 또 현성의 가족들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제대로 싹을 뽑아야 해.’

    그러지 못하면 가족들이 또 지금과 같은 위험을 겪게 된다.

    ‘나를 건드린 걸 피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하게 해 주마.’

    살심이 불같이 일어났다.

    일본 비밀 요원들이 자신을 습격했을 때는 이렇게 화가 나지 않았다.

    현성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도 없었고 오히려 많은 것을 얻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숨겨 놓은 것이 더 많았다.

    그간 그 사실을 모르고 현성을 노렸던 적들은 오히려 현성의 성장을 도와주는 촉진제가 되어 주었다.

    그간 일본 비밀 요원을 처리하고 얻은 포인트만 따져도 현성이 사냥이나 장사를 통해 번 포인트와 비슷할 정도였다.

    비밀 요원 1명이 최소 영웅 등급 아이템을 1개 이상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또 비밀 요원들의 사체에서 뿜어져 나온 잔존 마력으로 생성된 아이템 역시 기본이 영웅 등급이었다.

    현성으로서는 불시에 기습을 당했는데 오히려 이득을 본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중국은 현성 본인이 아닌 가족들을 노렸다.

    쓰러진 어머니와 누나의 모습이 현성의 머릿속에 화인처럼 단단히 박혀 버렸다.

    ‘이번 일에 관련된 놈들은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않는다.’

    결심을 굳힌 현성이 아버지, 백우신과 함께 던전을 빠져나갔다.

    * * *

    난리가 났다.

    플레이어들이 마력과 스킬을 사용해 싸움을 벌이는 것은 상당한 중죄다.

    초인이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난동을 부리거나 싸움을 벌이면 그 피해가 전쟁 수준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전투가 일반인들이 살고 있던 아파트 내부에서 벌어졌다.

    당연히 비상 대기조 근무를 서고 있던 협회 플레이어들이 출동했다.

    하지만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현성은 아버지, 백우신과 함께 던전을 빠져나와 사정을 설명하고 현장을 수습했다.

    현성의 보고를 받은 한국 플레이어 협회가 발칵 뒤집혔다.

    중국 플레이어들이 현성의 가족들을 노렸다.

    플레이어 협회에서 파견한 가드들과 사설 경호원들이 무참히 살해당했다.

    습격을 가한 괴한들은 영웅 등급 아공간 스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명백하게 현성을 노린 납치 미수 사건이었다.

    플레이어 협회는 현성의 가족을 일단 협회 본부로 불러들였다.

    추가 습격으로부터 현성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현성이 가족들과 함께 플레이어 협회 본부에 도착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