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 세력 확대 (50/225)
  • ┃세력 확대

    ‘이것들이 선거철이라고 별 지랄을 다 하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현 여당은 정권을 지키기 위해 그간의 플레이어들의 희생으로 이루어 낸 업적을 부풀리고, 자신들의 실책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야당은 신촌역 참사의 피해를 강조하며 정부를 비난했지만, 2차 대격변 조기 극복, 북한 지역 영토 확보, 이무기 레이드와 오크 대족장 레이드 및 오크 주술사 레이드 성공 등의 업적을 가진 현 정부에 비해 많이 밀리고 있었다.

    현성은 괜히 선거철이라고 흥분한 정치인들이 미친 짓을 벌이지 않기를 바랐다.

    예를 들면 일본 지원 같은 미친 짓 말이다.

    다행히 정부는 미친 짓을 벌이지 않았다.

    여당과 야당 모두 일본을 돕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친일 성향의 일부 의원들이 일본의 규슈 사태를 해결해 한국의 레이드 강국 이미지를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한국 정부는 이무기가 튀어나왔던 평양 던전과 마찬가지로 오크 대족장과 오크 주술사가 튀어나왔던 신촌역 던전 역시 요새화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이 되자마자 작업이 시작되었다.

    던전 출입구를 원형으로 포위하는 형태의 커다란 방벽이 만들어졌고 포병 연대가 상시 배치되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가 던전을 빠져나오는 순간 집중 포격하기 위해서였다.

    그 외에도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파티를 편성해 로테이션으로 경계 근무를 서기로 했다.

    현성도 당연히 경계 근무에 포함되어 있었다.

    경계 근무를 서면 동일한 시간만큼 안전 요원 의무 시간을 소거해 주는 것은 물론 별도의 보수도 지급하기로 했다.

    랭커나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 정부에서 지급해 주는 보수는 푼돈에 불과했지만, 주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 * *

    “현성 씨가 맡게 될 팀의 이름을 척살대라 하기로 했습니다.”

    강선영 협회장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척살대를 상시 유지하시려고요?”

    척살대는 플레이어 협회의 정식 조직이 아니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거나 던전 레벨에 맞지 않는 규격 외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순간적으로 편성하는 임시 조직에 가까웠다.

    이무기 척살대, 오크 대족장 척살대, 오크 주술사 척살대 역시 협회 직속 플레이어와 길드 소속 플레이어 들을 모아 만든 임시 조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 생각입니다. 일단 현성 씨를 중심으로 척살대를 만들어 운용하고 전설 등급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는 랭커들을 소집해 규모를 늘릴 계획입니다.”

    “예비군 소집해서 싸우는 동원 사단 느낌이네요.”

    현성의 비유가 적절했다.

    사실 척살대를 정식 조직으로 개편한 것은 현성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꼼수에 가까웠다.

    플레이어 협회는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다.

    그런 만큼 감찰 팀, 작전 팀, 정보 팀, 전투 팀, 수색 팀 등 새로운 팀을 만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조직이 완성되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아무리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새로운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합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야 정부로부터 예산을 타 내서 새로운 팀을 운용할 수 있다.

    강선영 협회장이 떠올린 명분은 전설 등급 몬스터 전담 팀이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의 등장에 대비해 척살대를 상시 운용한다는 명분에는 그 누구도 반기를 들 수가 없다.

    실제로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면?

    그때는 미리 선별해 놓았던 랭커들을 소집해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에 들어가면 된다.

    “일단 현재 척살대 소속은 현성 씨 혼자입니다. 협회 내에 필요한 인원이 있다면 각 팀의 팀장과 협의해서 스카우트하시면 됩니다.”

    “협회 직속이 아닌 인물을 스카우트해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척살대의 명분은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다.

    하지만 그건 현성이 요구한 새로운 팀을 구성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협회 내에서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에 투입될 수 있는 실력자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실력자들도 한 팀의 장이거나 부장이었다.

    그런 인물들을 척살대의 일개 대원으로 보직 이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면 기존처럼 랭커들을 소집해 척살대를 운영하고 평시에는 현성 혼자만 존재하는 기형적인 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상 현성에 대한 플레이어 협회의 배려였다.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가 목적이라면 팀원을 받는 기준도 꽤 까다로울 것 같은데요.”

    “그건 현성 씨의 자체적인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척살대는 단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인 성과를 목표로 만들어졌으니까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먼 훗날 전설 등급 몬스터를 레이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인재를 뽑아 주시면 됩니다.”

    ‘이거 너무 잘해 주는데?’

    현성은 강선영 협회장의 말에 약간 의아했다.

    이건 퍼 줘도 너무 퍼 주는 수준이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성이 손해 보는 게 없었다.

    사실 강선영 협회장의 꿍꿍이는 현성을 플레이어 협회와 한 몸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강선영 협회장은 이번 오크 대족장 레이드에서 보여 준 현성의 실력과 희생정신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결정적으로 고유 스킬 보유자이자 전설 등급 스킬을 3개나 보유한 현성을 절대 놓칠 수 없었다.

    ‘가진 게 많은 자는 쉽게 떠나지 못하는 법이지.’

    강선영 협회장은 현성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줄 생각이었다.

    그 선물을 두고 가는 게 아까워서 플레이어 협회를 떠나지 못하도록 말이다.

    현성의 공식 직함이 감찰대원에서 척살대장이 되었다.

    하지만 전에 비해 달라진 점은 없었다.

    ‘대원들을 모아야지.’

    하지만 급하게 모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루시아, 아버지, 백우신을 플레이어 협회로 끌어들일 계획도 없었다.

    아예 새로운 인물들로 척살대를 꾸릴 생각이었다.

    사실 현성이 팀장의 직위를 요구한 건 독자적인 세력을 키움과 동시에 지금은 봉인되어 있는 직업 전용 스킬 군주의 깃발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군주의 깃발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10명 이상의 플레이어를 휘하로 거둬야 한다.

    휘하로 거둔 플레이어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군주의 깃발이 가진 효용성은 커진다.

    백우신이나 이누쿠소처럼 특수한 상황에 처한 플레이어들만을 받아들인다면 언제 10명을 채울지 장담할 수가 없다.

    거기다 휘하에 든 모든 이들에게 비약을 먹일 수도 없다.

    포인트가 많이 드는 것도 문제였지만 휘하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들을 모두 믿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00억 포인트나 하는 영혼의 계약서를 대량 구매해 사용할 수도 없었다.

    ‘오픈할 건 오픈해야지.’

    레벨과 고유 스킬을 공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직업을 공개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전설 등급 직업 군주를 공개한다.

    그 후 플레이어 협회에서 배정해 준 자금과 사비를 털어 스킬북과 아이템으로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인다.

    고레벨 플레이어나 중레벨 플레이어가 아닌 1차 전직도 완료하지 못한 저레벨 플레이어를 주목표로 포섭할 예정이었다.

    고레벨 플레이어는 어딜 가든 좋은 대접을 받는다.

    중레벨 플레이어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다.

    그런 고레벨 플레이어와 중레벨 플레이어가 제약이 있는 등용 제의를 받을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거기다 성장 속도가 너무 느려 자신을 배신하고 휘하에서 탈퇴하더라도 받는 페널티가 너무 적었다.

    결정적으로 소모되는 통솔력이 너무 컸다.

    1차 전직을 하지 못한 저레벨 플레이어는 가장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다.

    거기다 통솔력 소모도 가장 적다.

    저레벨인 만큼 성장 속도는 빠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현성의 휘하에 들어온 뒤 늘어난 레벨, 스텟, 스킬을 포기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세력을 2개로 이원화한다.’

    루시아를 중심으로 현성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이들을 음지에서 성장시킨다.

    플레이어 협회를 등에 업고 공개적으로 대량의 플레이어를 확보해 양지에서 성장시킨다.

    현성의 진정한 힘은 음지에서 나올 테지만, 휘하에 들어온 플레이어의 숫자가 늘어나면 음지에 있는 세력도 동일한 버프 효과를 받는다.

    거기다 양지에서 성장시킨 플레이어들도 레벨이 오르면 페널티가 두려워 현성을 배신할 수가 없다.

    그 후 그렇게 늘어난 양지의 세력을 중심으로 플레이어 협회 전체를 집어삼킨다.

    그게 바로 현재 현성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었다.

    아마 플레이어 협회장 강선영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 달려와 자신의 약속을 철회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플레이어 협회장 강선영이 현성의 속마음을 알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 * *

    이수진은 오늘도 던전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수진은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이수진은 7남매 중 장녀였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가족들의 생계는 온전히 이수진의 몫이었다.

    다행히 플레이어로 각성한 이수진의 실력은 제법 뛰어났다.

    공수의 조화라는 희귀 등급 패시브 스킬 덕분이었다.

    이수진은 플레이어 아카데미 졸업하는 순간, 플레이어 협회를 비롯해 수많은 길드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가장 많은 연봉을 약속한 플레이어 협회와 계약했다.

    이수진은 악착같이 사냥을 했다.

    하지만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플레이어로서의 성장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자신에게 투자해야 했고,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도 책임져야 했다.

    플레이어 협회에서 받은 계약금과 연봉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처음 플레이어로 각성했을 때는 금방이라도 고레벨이 되어 억대 연봉자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꽤 많은 투자가 필요했다.

    동생들에게 많은 돈을 쓰고 있는 이수진으로서는 비슷한 수입을 올리는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성장이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나마 플레이어 협회 직속이 되어 적지 않은 계약금과 연봉을 약속받았기에 어느 정도 비슷한 시기에 각성한 플레이어들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다.

    아마 희귀 등급 스킬이 없어 플레이어 협회 직속이 되지 못했다면 빚까지 져야 했을 것이다.

    플레이어 협회는 이수진에게 실력에 합당한 대접을 해 줬다.

    하지만 이수진은 그 정도 수입에 만족하지 못했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려면 실력을 올려야 했다.

    문제는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단 것이다.

    공수의 조화 스킬을 가진 이수진의 단점은 낮은 정신력 탓에 스킬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낮은 정신력 스텟을 보완하려면 스킬 저항력을 올릴 수 있는 스킬북이나 아이템이 필요했다.

    문제는 둘 다 엄청난 고가라는 점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이수진의 애매한 포지션.

    이수진은 딜탱이다.

    딜도 되고 탱도 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엄청 좋아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딜도 애매하고 탱킹도 애매하다는 뜻이다.

    ‘대기만성형 스킬이면 뭘 하냐고,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파티원을 구하는 플레이어들은 완벽한 탱커나 완벽한 딜러를 원했지, 탱도 딜도 애매한 이수진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딜탱이라는 애매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이수진은 희귀 등급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정 파티를 구하지 못했다.

    ‘돈이 원수다, 원수야.’

    돈만 있으면 스킬북을 잔뜩 구매해 부족한 스킬 저항력과 공격력을 확 상승시켜 진정한 딜탱의 길을 걸을 텐데…….

    “휴우!”

    긴 한숨을 토해 낸 이수진이 지갑에서 로또를 꺼내 번호를 맞춰 봤다.

    당연히 꽝이었다.

    ‘어떻게 일치하는 숫자가 하나밖에 없냐.’

    이수진이 로또를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수진 씨?”

    그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이수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누구세요?”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 봐도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플레이어 협회의 척살대장 최현성이라고 합니다.”

    “아! 어? 그러니까…….”

    협회의 높으신 분이라는 말에 이수진의 머리에 버퍼링이 걸렸다.

    “아, 안녕하세요!”

    한참 어리바리하던 이수진이 힘찬 외침과 함께 허리를 90도 꺾었다.

    * * *

    “그러니까 수락만 하면 연봉도 올라가고 지원도 늘어난다는 거죠?”

    이수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스킬 저항력을 올릴 수 있는 스킬북도 지원해 드릴 겁니다.”

    “할게요!”

    현성의 말에 이수진이 단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무조건 할게요!”

    “저…… 페널티는 미리 말씀드린 걸로 알고 있는데요?”

    현성에게 상태창이 공개된다.

    그뿐 아니라 현성의 휘하에서 나가는 순간 그동안 올린 레벨, 스텟, 스킬이 증발한다.

    “상태창이야 어차피 진작 협회에 공개했어요. 거기다 제가 지금 너무 급해서 뒷일까지는 걱정할 겨를이 없거든요.”

    “그럼 알겠습니다.”

    현성이 이수진에게 등용 스킬을 사용했다.

    -플레이어 이수진에게 등용을 제의하셨습니다.

    “이거 수락하면 되는 건가요?”

    이수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 이수진이 등용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통솔력 10이 소모됩니다.

    -휘하에 5명의 신하를 거느렸습니다.

    -직업 전용 스킬 - 군주의 외침이 생성되었습니다.

    ‘어라?’

    그냥 스카우트하러 온 거였는데 추가 스킬이 생겼다.

    현성이 바로 군주의 외침을 확인했다.

    군주의 외침 - 직업 전용 스킬

    -거리와 상관없이 휘하 신하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습니다.

    ‘거리와 상관없이 지시를 내릴 수 있다.’

    대화가 아니라 지시라는 표현이 붙은 걸 보니 쌍방 통행이 아니고 일방통행인 모양이다.

    “우와, 저한테 소속이라는 게 생겼어요.”

    현성은 테스트 삼아 스킬을 사용해 봤다.

    대상은 눈앞에 있는 이수진이었다.

    -원래 그렇습니다.

    “어?”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이수진이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왜 머릿속에서 현성 씨 목소리가 들리죠?”

    -직업 전용 스킬입니다.

    “그렇구나. 완전 신기해요.”

    이수진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현성을 바라봤다.

    ‘마력 소모는 거의 없네.’

    있기는 있는데 엄청 미미한 수준이었다.

    현성은 일단 이수진에게 미리 약속한 정신계 저항력 상승 스킬북들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이수진이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외쳤다.

    현성은 약간 민망했다.

    영웅 등급도 아니고 희귀 등급도 아니다.

    고작 일반 등급 스킬북이다.

    그걸 받고 저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일반 등급 스킬북이라고 해도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물품이다.

    그걸 여러 개나 받았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저레벨 플레이어 이수진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큰 선물이었다.

    거기다 연봉도 올라가고, 협회 지원도 해 준다고 하지 않는가.

    “큼큼,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올라간 연봉은 내일부터 바로 적용될 겁니다.”

    “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현성은 이수진의 90도 인사를 받으며 머쓱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부터 현성은 부지런히 플레이어 협회에 기록된 정보를 열람했다.

    플레이어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꽤 많았다.

    현성은 그중에서 저레벨, 재능, 절박함을 중심으로 후보를 선정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어차피 뽑을 거라면 잠재력이 높고 실력도 뛰어난 플레이어를 뽑는 게 나았다.

    동료들의 인사 평가도 중요한 참고 자료 중 하나였다.

    어느 정도 후보를 뽑은 현성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플레이어로 살아가는 것도 결코 만만치가 않구나.’

    중간에 1~2명은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후보들이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 현성의 제안을 수락했다.

    플레이어라고 모두 풍족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저레벨 플레이어의 경우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했다.

    사실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사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저레벨의 플레이어들이 받는 보수는 박봉 중에 박봉 수준이었다.

    ‘지금쯤 강선영 협회장 귀에 들어갔으려나?’

    현성은 공개적으로 움직였다.

    그런 만큼 강선영 협회장도 현성의 행동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의아해할 것이다.

    포섭한 인물들은 모두 현성과 일면식도 없는 남이었으니까 말이다.

    거기다 1차 전직도 하지 못한 병아리들이다.

    ‘내 직업에 대한 비밀이 얼마나 지켜지려나.’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결국 발설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아니, 사실 중간에 현성의 제의를 거절하는 사람이 나오면 자동으로 발설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발설돼도 상관없었다.

    그냥 직업이 드러나는 게 꺼림칙해서 그랬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이제 마지막이야.’

    1명만 더 포섭하면 군주의 깃발 스킬의 효력이 드러난다.

    현성은 오늘의 마지막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감사합니다!”

    현성보다 연배가 많은 30대 중반의 사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살펴 가십시오!”

    ‘드디어 끝났어.’

    30대 중반의 사내와 헤어진 현성이 상태창을 열어 직업 스킬 군주의 깃발이 가진 정보를 확인했다.

    군주의 깃발 - 직업 전용 스킬

    -휘하에 거둔 신하들의 숫자에 따라 군주와 신하의 스텟이 증가합니다.

    -휘하 신하의 수 - 10명.

    -모든 스텟이 1% 증가합니다.

    ‘1%라…….’

    역시 예상대로 박했다.

    하지만 모든 스텟이 1% 증가했다는 게 중요했다.

    현성의 스텟 총합은 4,000이 넘는다.

    4,000의 1%는 40이다.

    무려 레벨 업을 여덟 번해야 올릴 수 있는 스텟을 거저 얻은 것이다.

    ‘다음 업그레이드는 몇 명을 포섭해야 이루어지려나.’

    지금은 고작 1%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휘하에 거둔 플레이어의 숫자가 늘어나면 증가 폭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1%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이제 겨우 2차 각성을 마친 중레벨 플레이어들의 스텟은 대략 550정도다.

    여기의 1%는 5다.

    1레벨을 올린 만큼의 스텟이 늘어나는 것이다.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 스텟 5는 결코 우습게 볼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

    * * *

    ‘늘어났어.’

    현성이 20명을 기록하고 있는 세력 현황판을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스템의 스텟 증가는 보통 배수로 늘어나는 성향을 보였다.

    최초 업적이 일반 등급이면 모든 스텟 5, 희귀 등급이면 모든 스텟 10, 영웅 등급이면 모든 스텟 20, 전설 등급이면 모든 스텟 40.

    현성은 군주의 깃발의 증폭도 역시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휘하에 거느린 플레이어가 20명에 도달하는 순간 증가 폭이 2%로 늘어났다.

    ‘증가 폭도 2배로 늘어나면 대박인데.’

    현성이 더 바쁘게 움직였다.

    어서 빨리 휘하에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를 늘려야 했다.

    ‘배수가 아니네.’

    현성이 40명을 기록하고 있는 세력 현황판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군주의 깃발은 3%의 버프 효과를 주었다.

    ‘배수로 늘어날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필요 인원은 배수로 늘어나지만, 증가 폭은 1%씩인 모양이었다.

    ‘하긴 증가 폭이 배수로 늘어나면 엄청난 사기이긴 하지.’

    현성에게 남은 통솔력은 3,500이 조금 넘었다.

    1차 각성을 하지 않은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하면 대략 350명을 더 휘하에 거둘 수 있었다.

    ‘6% 정도 늘어나겠네.’

    필요 인원이 배수로 늘어나니 남은 통솔력을 다 털어도 어차피 군주의 깃발 효과를 7%까지 증폭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현실적으로 6%를 증폭시키기 위해서 추가로 필요한 인원은 280명.

    필요 통솔력은 2,800이었다.

    ‘700 정도는 비상시를 대비해서 남겨 놔도 괜찮겠지.’

    이누쿠소 같은 특수한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니 그 정도는 세이브해 놔도 괜찮았다.

    ‘그런데 왜 안 알려졌지?’

    지금까지 현성의 제안을 거절한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루시아들을 제외하고 포섭한 플레이어의 숫자가 36명이나 된다.

    상식적으로 그들 중 1명은 약속을 어길 만도 했다.

    익명으로 현성의 직업 정보를 넘기고 플레이어 협회나 거대 길드와 거래를 할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무려 최초로 등장한 전설 등급 직업 아닌가.

    한데 단 1명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뭐, 늦게 알려지면 늦게 알려질수록 좋은 거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현성의 직업 정보가 플레이어 협회나 거대 길드에 넘어가지 않은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현성이 저레벨 플레이어들과 맺은 관계는 상당히 얄팍했다.

    당연히 충성심도 바닥이었다.

    서로의 이득을 위해 손을 잡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솔직히 백우신과 같은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면 등용되었다고 해서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주의 명령이 강제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군주가 지시를 내리면 신하는 무의식적으로 그 명령을 따르기 위해 노력한다.

    문제는 그 강약이 군주와 신하의 능력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군주가 나약하고 신하가 강하면 그만큼 지시를 따를 확률이 낮아진다.

    능력치 차이가 심하다면 군주의 명령을 옆집 개 짖는 소리 정도로 취급하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반대로 군주가 강하고 신하가 나약하면 지시에 따를 확률이 높아진다.

    능력치 차이가 절대적이라면?

    무의식적으로 신하의 뇌리에 군주의 명령이 절대 어겨서는 안 될 절대 명제로 각인된다.

    현성은 능력치로만 따지면 세계 최강이다.

    그에 반해 1차 각성도 하지 못한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능력치상 최약체다.

    당연히 현성의 지시는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현성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고 행동했다.

    현성과 루시아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전설 등급 직업 군주의 숨겨진 효능이었다.

    현성은 계속해서 휘하 플레이어를 늘려 나갔다.

    놀랍게도 320명을 포섭할 때까지 현성의 제안을 거절하는 이가 단 1명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계약금과 연봉이 올라가고 현성이 사비로 아이템까지 지원해 준다.

    거절하면 바보였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현성의 제안을 받아들인 뒤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주는 건 받고 보자는 생각에 등용 제의를 받아들였다.

    등용을 받아들이면 스킬북이 굴러들어 온다.

    그걸 익히지 않고 팔면 무조건 이득이다.

    하나 그런 식으로 현성의 뒤통수를 칠 준비를 했던 이들 중 그 누구도 본래의 계획을 실현하지 못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강제한 것도 아니건만, 그냥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현성의 지원을 받고 성장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버렸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기존의 계획을 폐기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현성이 내린 지시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현성이 고레벨 플레이어나 중레벨 플레이어를 포섭했다면 전설 등급 직업 군주의 숨겨진 효능이 이렇게 강하게 발휘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1차 전직도 마치지 못한 저레벨 플레이어들이었기에 현성의 지시가 너무도 잘 지켜졌다.

    ‘뭐, 비밀이 지켜지면 나쁠 건 없지.’

    현성 스스로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나쁠 것은 없었다.

    전설 등급 직업을 공개할 마음을 먹었던 건 사실이지만 기왕이면 감추고 있는 게 더 좋았으니까 말이다.

    ‘이걸 보고 강선영 협회장님이 무슨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네.’

    현성은 전설 등급 몬스터 척살을 명분으로 만들어진 팀에 1차 전직도 하지 못한 저레벨 플레이어들을 무려 300명 넘게 끌어모아 팀원으로 삼는 기행을 저질렀다.

    이 모습을 보고받은 플레이어 협회장 강선영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불현듯 그게 궁금해졌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