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
‘이겼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제한 시간 안에 오크 대족장을 쓰러트렸다.
시체나 다름없는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던 현성의 몸이 빠르게 본래 모습을 되찾아 갔다.
현성의 몸이 새하얀 빛으로 뒤덮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진 힐러들의 힐과 불사의 서가 가진 효능 덕분이었다.
‘허탈하네.’
전신에 충만했던 힘이 사라졌다.
지독한 무기력증이 현성의 몸을 휘감았다.
‘전리품은 어떤 게 나왔으려나?’
기왕이면 무기, 방어구, 액세서리 같은 아이템보다는 스킬북이 많이 나왔으면 했다.
무기는 용혈검이면 충분했고, 방어구와 액세서리는 마왕의 갑주 세트와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를 모으는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윤아 씨는 성공했으려나?’
어쩌면 아직 전투 중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종실로 향했다.
조종실 근처에는 정보장교가 탑승해 있었다.
“오크 주술사 레이드는 성공했나요?”
현성의 물음에 생존한 랭커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오크 대족장을 처리했으니, 오크 주술사 역시 처리했다면 이번 전투는 승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 그게…….”
현성의 물음에 정보장교가 말꼬리를 흐렸다.
“빨리 말씀해 주시죠.”
현성의 다그침에 정보장교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크 주술사 레이드는 실패했습니다.”
“실패라고요?”
현성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랭커들 역시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크 대족장은 전사 타입의 몬스터다.
반면 오크 주술사는 마법사 타입의 몬스터다.
마법사 타입의 몬스터는 근접 공격에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거기다 강력한 스킬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에 거리를 좁히기만 하면 필승이다.
플레이어 협회는 오크 대족장 레이드의 성공 가능성보다 오크 주술사 레이드의 성공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사실상 승리를 확신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실패했다니.
“놈이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을 사용해 도주하기라도 한 겁니까?”
현성의 물음에 정보장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오크 주술사 레이드에 투입되었던 척살대원의 9할 이상이 사망했을 정도로 대패했습니다.”
정보장교의 말에 현성과 랭커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윤아 씨는? 윤아 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감찰대장님은 생존하셨습니다. 하지만 부상이 심해 후방으로 후송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TS 길드의 제1파티장인 이진국 씨는요?”
“대광 길드의 길드장인 마진광 씨는 생존했습니까?”
랭커들이 앞다투어 자신과 친분이 있는 랭커들의 생존 여부를 물었다.
“생존자 명단입니다. 직접 확인하시죠.”
정보장교가 군용 태블릿 PC를 랭커들에게 건넸다.
확인은 금방 끝났다.
생존한 랭커들의 숫자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랭커들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도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하지만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한데 오크 주술사 척살대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 채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말았다.
* * *
현성은 본대로 귀환한 뒤에야 정확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신윤아가 이끄는 오크 주술사 척살대는 현성이 이끄는 오크 대족장 척살대와 마찬가지로 영웅 등급 은신 스킬로 인해 모습과 소리 그리고 마력의 흐름이 은폐된 수송 헬기를 통해 이동했다.
전체적인 작전의 얼개는 오크 대족장 척살대와 동일했다.
수송 헬기를 통해 오크 주술사의 머리 위로 이동한다.
그 후 지상으로 내려가 탱커가 영웅 등급 오크들의 접근을 막고 신윤아와 근접 딜러들이 오크 주술사를 공격한다.
원거리 딜러와 힐러 들은 수송 헬기에서 공격 스킬과 힐을 사용해 전투를 지원한다.
오크 주술사가 마법사 계열의 몬스터인 만큼 일단 접근하기만 하면 승리는 따 논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했다.
수송 헬기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오크 대족장과 달리 오크 주술사는 영웅 등급 은신 스킬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선공을 날린 것이다.
마법사 계열 딜러들과 힐러들이 다급하게 방어 스킬을 시전했고 탱커들도 예정보다 이르게 희생의 방패 스킬을 사용했다.
그 덕분에 첫 번째 공격은 가까스로 막아 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오크 주술사를 포함한 영웅 등급 오크들의 스킬이 비처럼 쏟아졌다.
영웅 등급 오크들이 날리는 원거리 스킬은 어찌어찌 방어해 낼 수 있었지만 전설 등급 몬스터인 오크 주술사의 일방적은 공격은 도저히 막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방어해 낼 수 있는 한계치를 초월한 마법사 계열 딜러와 힐러 들의 방어 스킬들이 산산조각 났고, 희생의 방패 스킬을 사용했던 탱커들은 수송 헬기로 전달되는 대미지를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그 후 오크들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수송 헬기는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기습을 통해 선공을 가하고자 했던 오크 주술사 척살대가 오히려 선공으로 전투 시작도 전에 엄청난 타격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신윤아와 랭커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신윤아와 생존한 랭커들은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영웅 등급 오크들의 벽을 뚫고 결국 오크 주술사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신윤아와 랭커들이 오크 주술사의 몸에 무기를 박아 넣으려는 순간, 거대한 화염이 솟구쳤다.
오크 주술사의 몸을 매개체로 피어오른 화염이 키가 5미터가 넘는 거인으로 화했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램프의 요정 같은 모습이었다.
화염의 거인으로 화한 오크 주술사의 무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손바닥이 탱커들의 몸을 으깨 버렸고 입에서 뿜어져 나온 열화가 딜러와 힐러 들을 불태웠다.
신윤아를 비롯한 랭커들은 사력을 다해 저항했지만 상황은 너무도 절망적이었다.
신윤아와 랭커들은 결국 탈출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수많은 랭커들이 전사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화염의 거인으로 화한 오크 주술사가 움직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화염의 거인이 요정이라면 오크 주술사는 램프 같은 역할을 했다.
화염의 거인이 활동할 수 있는 반경이 오크 주술사가 서 있는 장소 주변으로 고정된 것이다.
화염의 거인이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었다면 신윤아와 랭커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뼈를 묻었을 것이다.
전투 장면이 담긴 촬영 영상을 본 현성은 기가 막혔다.
‘저놈, 야생의 본능과 비슷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
저렇게 먼 거리에서도 단번에 감지한 것을 보면 전설 등급 탐지 스킬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협회장 강선영이 현성에게 다가와 물었다.
“네, 일단 외상은 다 나았으니까요.”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내상은 치료 스킬로도 완치되지 않으니까요.”
마력이 실린 공격을 받아 상처가 생기면 잔존 마력이 몸에 남아 원활한 마력의 이동을 방해한다.
자잘한 상처는 잔존 마력도 빠르게 소멸하지만 심각한 부상은 잔존 마력도 오래 머문다.
“그보다 윤아 씨는 어떤가요?”
“외상은 완치된 상태지만 내상이 심해서 일주일 정도는 요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투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치열하게 교전 중입니다. 그나마 현성 씨와 척살대원분들이 오크 대족장을 제거해 주신 덕분에 오크 놈들의 기세가 크게 꺾였습니다. 워크라이가 없으니 병력을 운용하기도 수월하고요.”
협회장 강선영의 말에 현성이 내심 안심했다.
오크 주술사 제거에 실패하긴 했지만 전황이 나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저도 돕겠습니다.”
현성의 말에 협회장이 화들짝 놀랐다.
“방금 전에 죽을 고비를 넘기셨습니다. 제가 볼 때는 요양을 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잔존 마력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고 마력을 사용하면 마력끼리 서로 충돌해 내상이 더 커질 수 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손 보태면 조금이라도 아군의 희생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그 말과 함께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장으로 향했다.
‘내가 단단히 오해했구나.’
협회장은 그런 현성의 모습을 보며 깊이 반성했다.
방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사람이라면 다시금 위험한 전쟁터로 떠나고 싶지 않을 터였다.
거기다 지금 합류해 전투를 치르면 몸속에 남아 있는 잔존 마력으로 인해 내상이 더욱 심해진다.
당장 전투를 포기하고 휴식을 취해도 오크 대족장을 쓰러트리느라 큰 부상을 입었던 현성을 원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데 현성은 그 모든 부담감을 짊어지고 스스로의 의지로 아군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전장으로 향했다.
‘스텟이 영구 손실된 것 때문에 마음이 쓰릴 텐데, 내색조차 하지 않고 전장으로 향하다니.’
현성의 자기희생적인 모습은 모든 플레이어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건 협회장의 착각에 불과했다.
다른 플레이어는 몰라도 현성은 내상이라는 말과 거리가 멀었다.
불사의 서 덕분이었다.
엄청난 회복력을 가진 불사의 서는 내상, 외상 가리지 않고 현성의 몸을 멀쩡한 상태로 되돌렸다.
영구적으로 손실된 신체를 다시 복원할 정도의 회복력인데, 고작 잔존 마력으로 인한 내상 따위를 회복하지 못하겠는가.
거기다 현성이 전장으로 향하는 이유는 아군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아군의 희생도 줄이고 영웅 등급 오크들을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생각이었다.
영웅 등급 오크를 잡으면 포인트도 많이 얻을 수 있고 아이템과 마석도 얻을 수 있다.
현성으로서는 아군의 희생도 줄이고 포인트도 쌓고 아이템과 마석까지 챙길 수 있는 일석사조의 기회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위대한 희생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몸을 회복했으니 전장으로 가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마력도 어느 정도 차올랐으니 전사한 동료들의 복수를 해야죠.”
현성의 행동에 자극을 받은 랭커들이 일제히 휴식을 포기하고 전장 참여를 선언했다.
협회장 역시 지친 몸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했다.
그는 이번 전투의 지휘관이자 전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스킬을 다수 보유한 마법사 계열의 플레이어였다.
* * *
현성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파지지직!
흑뢰룡의 숨결이 오크들의 한복판으로 날아들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오크들이 몰살을 당했다.
다수의 오크들이 죽어 나감과 동시에 현성의 체력과 마력이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
현성은 연속적으로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하며 전장을 주도했다.
‘이게 훨씬 편하네.’
흑뢰룡의 숨결은 강력한 적 하나보다는 약한 적을 다수 상대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었다.
이 모두가 흡혈공과 흡혈왕의 액세서리 세트 중 일부가 가진 힘 덕분이었다.
“다 쓸어버려!”
“본때를 보여 주자!”
“동료들의 복수를 하자!”
현성의 행동에 자극을 받은 오크 대족장 척살대까지 전장에 가세했다.
그러자 전장의 흐름이 확 뒤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조심해야 할 상대인 오크 주술사는 동족들이 죽어 나감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화르르륵!
한창 전투를 치르던 현성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마력의 흐름과 열기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협회장.’
강선영이라는 여성스러운 이름과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거구를 가진 그가 스킬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 외모에, 저 이름에 마법사 계열이라니…….’
말 그대로 언밸런스의 극치였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
꽈아아아앙!
완성된 협회장의 스킬이 오크 무리의 허리 부분에 작렬했다.
그리고 불지옥이 현세에 강림했다.
족히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순식간에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오크 주술사가 사용했던 화염 스킬보다는 약했지만 타 마법사 계열 랭커들을 압도할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크와아아악!
그때 오크 무리 후방에 위치한 오크 주술사가 커다란 포효를 터트렸다.
그와 함께 오크 무리가 물밀듯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쫓아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잔뜩 흥분한 플레이어들이 고함을 지르며 오크 무리의 뒤를 추격했다.
현성 역시 추적에 가세했다.
지금이 바로 오크 놈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 * *
오크 무리가 퇴각하는 장소는 자신들이 튀어나왔던 던전이었다.
‘이놈들이 이렇게 분탕질을 쳐 놓고 어딜 도망가려고. 블링크.’
현성이 블링크 스킬을 사용해 공간을 뛰어넘어 던전 입구에 자리한 차원 게이트를 가로막았다.
쿠워어억!
오크들이 성난 포효를 터트리며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흑뢰룡의 숨결.’
파지지직!
흑뢰룡의 숨결이 강력한 흑뢰를 토해 내며 현성에게 달려들던 오크들을 시커먼 숯덩이로 만들었다.
‘아까보다 상황이 좋아.’
오크 대족장을 상대할 때는 흑뢰룡의 숨결이 제대로 먹히지 않아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희귀 등급 오크들은 흑뢰룡의 숨결 한 방에 재로 변했고, 영웅 등급 오크들 역시 심대한 타격을 입으며 현성의 체력과 마력을 지속적으로 회복시켜 주었다.
현성은 마력과 체력이 회복되는 즉시 연속적으로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했다.
차원 게이트를 가로막은 현성의 앞으로 오크들의 사체가 수북이 쌓여 나갔다.
화르르륵!
그때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화염구가 현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현성이 재빨리 몸을 피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지상을 뒤덮었다.
화염구는 한 발이 아니었다.
꽈아앙! 꽈아앙!
강대한 마력을 담은 화염구가 연속적으로 날아들었다.
결국 현성은 화염구를 피하기 위해 차원 게이트 옆으로 비켜날 수밖에 없었다.
‘오크 주술사.’
현성을 공격한 범인은 바로 오크 주술사였다.
‘놈을 잡아야 해.’
현성이 빠르게 목표를 수정했다.
오크 주술사가 나타난 이상 어차피 혼자서 차원 게이트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우선순위를 선정해 오크들을 제거해야 했다.
신윤아가 이끄는 척살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수많은 랭커들을 살해한 전설 등급 몬스터 오크 주술사는 당연히 제거 대상 1순위였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넌 절대 못 돌려보낸다. 블링크.’
현성이 블링크 스킬을 사용했다.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한 장소입니다. 액티브 스킬 블링크 – 영웅 등급의 발동이 캔슬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대비가 되어 있었다.
타악!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을 전력으로 전개하며 오크 무리를 가로질러 오크 주술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크 주술사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성을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현성이 오크 주술사를 향해 용혈검을 휘둘렀다.
화르르륵!
그 순간 시뻘건 화염이 오크 주술사의 몸을 집어삼켰다.
꽈아아앙!
화염과 충돌한 용혈검이 커다란 폭발과 함께 튕겨져 나갔다.
휘익!
현성을 향해 불길로 이루어진 거인의 손이 날아들었다.
타악!
현성이 간발의 차로 거인의 손길을 피했다.
하지만 거인의 손이 곁을 스치고 지나간 것만으로도 현성의 머리카락과 눈썹이 타들어 가고 피부가 녹아내렸다.
실로 엄청난 열기였다.
현성이 그레이트 힐 스킬을 사용했다.
불사의 서와 그레이트 힐의 효과가 중복되며 녹아내린 피부가 순식간에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한 줌의 재로 변했던 머리카락과 눈썹도 다시 자라났다.
현성은 흑뢰룡의 숨결을 날리며 화염 거인으로 화한 오크 주술사를 공격했다.
하지만 일절 통하지가 않았다.
꽈앙! 꽈앙!
오히려 맹공을 퍼붓는 화염 거인의 공격에 뒤로 물러나야 했다.
“공격!”
“동료들의 복수를 하자!”
다행히 적절한 순간에 지원군이 도착했다.
현성을 따라 전장에 뛰어든 랭커들이 합류한 것이다.
현성은 랭커들과 함께 오크 주술사를 공격했다.
오크 주술사는 거칠게 날뛰며 현성과 랭커들을 공격했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졌다.
‘왜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는지 알겠네.’
현성은 오크 주술사를 공격하면 할수록 신윤아를 포함한 척살대가 왜 대패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공격이 일절 통하지 않았다.
반대로 오크 주술사의 공격은 실로 무시무시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전과 달리 현재 오크 주술사는 혼자였다.
오크 주술사를 돕던 영웅 등급 오크들 역시 거의 괴멸 직전이었다.
현성과 랭커들은 치고 빠지는 차륜전을 통해 오크 주술사를 공격했다.
화르르륵!
지속적인 공격에 거인의 형상을 하고 있던 화염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현성과 랭커들은 계속해서 맹공을 퍼부었다.
화염이 더욱 빠르게 줄어들었다.
파삭!
그러다 결국은 스킬이 사라져 버렸다.
푸욱!
몸을 지켜 주던 화염을 잃어버린 오크 주술사의 심장에 용혈검이 틀어박혔다.
털썩!
차가운 사체로 변한 오크 주술사가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와아아아아!”
“이겼다!”
랭커들이 승리의 함성을 터트렸다.
* * *
UN연합군을 이끄는 사령관인 제이슨이 경악에 물든 눈빛으로 승리의 함성을 터트리고 있는 현성을 바라봤다.
제이슨은 본래 적당히 싸우는 시늉만 하다 UN연합군을 철수시킬 계획이었다.
한국 플레이어 협회가 세운 전설 등급 오크 제거 작전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데 그 작전이 성공했다.
정확히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오크 대족장 레이드는 성공했지만 오크 주술사 레이드는 실패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UN연합군이 가장 경계하던 정신계 공격 스킬을 시전할 수 있는 오크 대족장이 제거되었으니까 말이다.
제이슨은 재빨리 철수 계획을 취소했다.
그리고 한국 플레이어들을 도와 전력을 다해 오크 무리 섬멸에 들어갔다.
한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오크 대족장 레이드에 참가했던 플레이어들이 휴식 대신 참전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활약을 보여 주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오크 대족장의 숨통을 끊었던 플레이어의 활약은 실로 인상적이었다.
홀로 오크들의 퇴로를 막았다.
홀로 오크 주술사와 격전을 치렀다.
그리고 결국은 랭커들의 도움을 받아 오크 주술사의 숨통을 끊었다.
제이슨은 오크 대족장과 오크 주술사의 숨통을 끊은 플레이어의 뛰어난 실력과 지칠 줄 모르는 투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검사 계열인 것 같기는 한데 정말 대단하군.’
오크 대족장을 상대로는 탱커와 딜러를 뒤섞은 딜탱의 모습을 보여 주더니, 오크 무리의 퇴로를 봉쇄할 때는 광역 스킬을 사용해 웬만한 마법사 계열 랭커 이상의 대활약을 했다.
‘꼭 끌어들여야 한다.’
저 정도 실력의 플레이어라면 억만금을 주더라도 포섭할 가치가 있었다.
‘한국에 신윤아 외에 저런 실력자가 있을 줄이야.’
제이슨은 이번 전투가 마무리는 되는 즉시 이 사실을 본국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전투는 인간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오크 무리를 완전히 전멸시키지는 못했다.
오크 주술사의 발악 덕분에 일부 오크 무리가 자신들이 나왔던 차원 게이트를 통해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대대적으로 2차 토벌전의 승리 사실을 알렸다.
피난길에 올랐던 국민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정부는 한국이 첫 번째 전설 등급 몬스터 이무기 레이드 성공에 이어 세 번째 전설 등급 몬스터인 오크 대족장과 네 번째 전설 등급 몬스터인 오크 주술사 레이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전 세계적으로 홍보했다.
그 덕에 한국은 Aaa 던전 안전 등급을 지킬 수 있었다.
아니, 지키는 수준을 넘어서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 3연속 성공이라는 대업적을 달성했다.
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업적이었다.
한국은 전 세계에 플레이어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 줬다.
하지만 속내는 그리 좋지 못했다.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인명 피해 중에서도 고레벨 플레이어와 랭커 들의 피해가 실로 엄청났다.
이무기 레이드 때도 적지 않은 숫자의 고레벨 플레이어들과 랭커들이 사망했다.
이번 오크 대족장 레이드와 오크 주술사 레이드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다시 한번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한다면 과연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거기다 한번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했던 차원 게이트 관리 문제 또한 남아 있었다.
일반적으로 일반 등급 몬스터가 등장했던 던전에서 희귀 등급 몬스터가 나오면 그 뒤로는 지속적으로 희귀 등급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다.
그럼 정부는 던전 등급을 일반 등급에서 희귀 등급으로 상향시킨다.
한데 이번에는 일반 등급 던전에서 전설 등급 몬스터 둘과 영웅 등급 몬스터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이론적으로는 던전 등급을 전설 등급으로 상향시켜야 할 상황이다.
전 세계에 등장한 전설 등급 몬스터는 총 넷.
그중 셋이 한국에서 나왔다.
이미 한번 전설 등급 몬스터가 튀어나온 던전이다.
전설 등급 몬스터가 몇 번 더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한국 정부로서는 언제 또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할지 몰라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상당히 강한 척을 했지만, 한국 정부의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 * *
“몸은 좀 괜찮으세요?”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가 수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외상은 다 나았으니까요. 일부러 마력을 운용하지만 않으면 며칠 안에 내상도 다 나을 거예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현성의 말에 신윤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작전이 처음부터 어긋난 게 신윤아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잘못된 판단을 내린 건 신윤아 본인이었다.
그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수많은 랭커들이 목숨을 잃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실패를 인정하고 탈출을 목표로 움직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랬다면 훨씬 더 많은 랭커들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제 실수가 커요.”
신윤아가 자책하며 말했다.
현성은 더 이상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신윤아의 표정이 너무도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더 강해져야겠어요, 두 번 다시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윤아는 일반인들에게 존재가 알려진 랭커는 아니다.
뉴스에 출현한 적도 없었고 예능 프로에 나간 적도 없다.
하지만 랭커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무기 레이드를 마치고 전설 등급 무기와 스킬북의 주인공이 되면서 그 위치는 더욱더 확고해졌다.
그렇기에 이렇게 처참한 좌절감과 무기력증을 느끼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신윤아는 이대로 무너져 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신윤아는 더욱더 강한 독기를 품었다.
전과 같은 위기 상황을 실력으로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에 오크 주술사를 만나면 전장에서 희생된 동료들의 복수를 해 주겠다고 맹세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현성은 신윤아의 대답을 듣고 내심 안심했다.
너무도 슬프고 처절해 보였지만 신윤아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강해졌다.
신윤아의 눈빛에서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하긴 이 정도에 무너지고 꺾일 사람은 아니지.’
“제 대신 동료들의 복수를 해 주셔서 감사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저 혼자 한 일도 아니고요.”
“그렇기는 하지만 현성 씨가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사실이잖아요. 아마 현성 씨가 아니었다면 오크 주술사를 놓칠 수도 있었어요.”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현성 씨 몸은 괜찮으세요? 무리하게 연속적으로 전투를 벌이셨잖아요.”
“전 괜찮습니다.”
현성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신윤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전투 후 처음으로 짓는 미소였다.
신윤아는 현성의 밝은 모습에 힘이 솟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대단하세요. 아무리 전설 등급 스킬북을 얻게 되셨다고 해도 잃어버린 스텟은 복구할 수가 없으실 텐데…….”
현성도 많은 동료를 잃었다.
거기다 스텟도 잃었다.
하지만 자신처럼 좌절하거나 무기력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욱 밝은 모습을 보여 줬다.
신윤아는 현성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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