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 오크 대족장 레이드 (47/225)
  • ┃오크 대족장 레이드

    신윤아는 현성을 자신의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

    “전 괜찮습니다.”

    현성의 말에 신윤아가 커피 한 잔을 탄 뒤 자리에 앉았다.

    “이야기 들었어요. 1차 토벌전에서 대활약을 하셨다면서요?”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2차 대격변 당시에도 엄청 빠르게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네요. 혹시 그때도 실력을 숨기고 계셨던 건가요?”

    “아닙니다. 그랬다면 블루 드레이크에게 잡아먹혀 죽을 고비를 넘기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럼 그 이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셨다는 거네요.”

    신윤아의 물음에 현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은 긍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1차 토벌전 당시 현성이 전면에 나선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자신을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루시아에게 들은 정보대로라면 점점 더 많은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더 많은 숫자의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할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질 몬스터들의 침공을 막지 못한다면 결국 이 세상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생존을 위해서는 몬스터와 싸워야 했다.

    현성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수동적으로 움직여 인류와 몬스터의 전쟁에서 부속품 중 하나로 전락하느니 전쟁을 주도하고 이끄는 존재가 되는 것이 나았다.

    루시아, 백우신, 아버지.

    작긴 하지만 어느 정도 세력이 갖춰졌다.

    현성과 루시아는 랭커급의 실력자였고, 백우신과 아버지 역시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거기다 유사시에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인 이누쿠소도 있다.

    현성은 자신이 세력을 키워 나갈 발판으로 플레이어 협회를 선택했다.

    세금 혜택도 나쁘지 않았고 현성이 고유 스킬 보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큰 터치를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설 등급 스킬북을 구매할 수 있게 해 주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베풀어 줬다.

    결정적으로 다른 이들의 견제를 받지 않고 세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현성이 플레이어 협회를 떠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구매창에서 아이템을 구매해 팔아 현금화시키면 1조 원 정도는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처음에는 플레이어 협회를 나와 독자적인 세력을 키울 생각을 하기도 했다.

    소규모 파티를 만들든 길드를 만들든 그건 현성의 자유였다.

    하지만 현성은 현대사회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현성이 거대 길드들의 견제를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플레이어 협회라는 방패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플레이어 협회라는 방패를 버린다면 귀찮은 일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또 상당히 희박한 확률이기는 하지만 플레이어 협회 역시 현성을 귀찮게 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이에 현성은 생각을 바꿨다.

    플레이어 협회라는 방패를 조금 더 사용하기로 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방패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플레이어 협회를 자신의 세력 중 하나로 만들고자 했다.

    그 첫 단추가 바로 팀장 직함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협회장이 먼저 제안해서 일이 쉽게 풀렸지.’

    “이번에 큰 손해를 감수하신다고 들었어요. 플레이어 협회를 대표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뭘요. 저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아니요. 아무리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스텟의 영구적인 손실은 절대 복구할 수 없죠. 큰 결심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신윤아의 말에 현성은 양심이 콕콕 찔렸다.

    협회장의 감사 인사를 받았을 때는 통쾌하기만 했는데 신윤아에게 감사 인사를 받으니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현성 씨의 역할을 대신하겠습니다.”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화들짝 놀랐다.

    “이미 결심을 굳혔습니다.”

    현성이 재빨리 대답했다.

    신윤아가 현성을 대신하겠다고 나서면?

    현성으로서는 엄청난 이득을 놓치게 된다.

    ‘전설 등급 아이템 두 개에 1조 원이 넘는 빚까지 탕감받는 일인데, 절대 포기할 수 없지.’

    이런 현성의 본심을 알 리 없는 신윤아가 존경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왔다.

    다시금 양심이 콕콕 찔려 왔다.

    “저, 현성 씨, 실례가 되는 건 알지만 혹시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뭐가 궁금하신지?”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가 표정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이무기 레이드 당시 현성 씨의 기여도를 알고 싶어요.”

    “그걸 왜?”

    “제가 이무기 레이드에서 기여도 2위를 기록했거든요. 그래서 1위가 누군지 찾기 위해 이무기 레이드에서 끝까지 함께하셨던 랭커분들에게 순위를 여쭤봤어요.”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랭커들이 이무기 레이드가 끝나고 나올 정산금을 생각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기여도를 공개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분들 중 그 누구도 기여도 1위가 아니더군요. 의아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그냥 넘겼어요. 이무기 척살대원분들을 일일이 찾아가 기여도를 확인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제가 이무기 레이드에서 기여도 1위를 기록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윤아의 맑은 눈동자와 현성의 칠흑빛 눈동자가 정면으로 마주쳤다.

    “제가 1위를 기록한 게 맞습니다.”

    현성은 순순히 인정했다.

    거짓을 말하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아예 대답을 하지 않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거짓을 말해 신윤아를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협회가 큰 실수를 했군요. 이무기 레이드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신 분께 가장 적은 보상을 드렸으니까요.”

    신윤아는 시스템을 신뢰했다.

    기여도 1위의 주인공이 현성이라면?

    그건 자신이 알지 못할 뿐 현성이 이무기 레이드에게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뜻이었다.

    “협회장에게 이야기해서 보상을 다시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현성은 신윤아의 저런 고지식한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항상 한결같은 모습의 신윤아를 신뢰했다.

    “굳이 주신다면 사양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무기 레이드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챙겼다. 하지만 굳이 더 주겠다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다.

    “하하하!”

    현성의 말에 신윤아가 작은 웃음을 토해 냈다.

    “정말 현성 씨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네요. 저에게 숨기고 있는 게 많이 있겠죠?”

    “글쎄요.”

    “억지로 캐묻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말씀하시죠.”

    “지금처럼 플레이어 협회의 일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해 주세요.”

    역시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현성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 *

    다음 날 아침, 다시금 회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회의실의 분위기는 어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협회장 강선영과 연합군의 리더 제이슨은 서로 자신의 주장만 이야기할 뿐 좀처럼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오늘도 회의만 하다 끝나겠네.’

    현성이 답답한 표정으로 강선영과 제이슨을 바라봤다.

    위이이잉!

    그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회의실 안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무슨 일이야?”

    협회장 강선영의 물음에 정보 담당자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오크 무리가 홍대 쪽으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협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당장 전 병력 소집해!”

    “예, 협회장님!”

    플레이어 협회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방어선으로 이동했다.

    “UN연합군도 힘을 보태 주시겠죠?”

    협회장 강선영의 물음에 제이슨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전투다.

    UN연합군은 한국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오크들이 민간인 거주지로 진군하는 상황에서까지 전투를 피한다면 세계 각국의 비난이 빗발칠 것이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협회장 강선영이 살짝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하고 방어선으로 이동했다.

    제이슨도 UN연합군 소속 플레이어들을 소집해 방어선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제이슨은 전력을 다해 싸울 생각이 없었다.

    ‘적당히 싸우는 시늉만 하고 빠져야겠군.’

    그게 UN연합군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면서도 비난도 받지 않을 최적의 방법이었다.

    * * *

    현성은 랭커들과 함께 영웅 등급 은신 스킬로 모습과 소리, 그리고 마력의 흐름을 은폐한 수송 헬기에 탑승했다.

    현성과 랭커들은 오크 대족장을 제거하기 위해 꾸려진 척살대였다.

    오크 주술사는 신윤아를 중심으로 꾸려진 척살대가 제거하기로 했다.

    ‘버프가 좋기는 좋네.’

    현성은 수송 헬기에 탑승하기 전 김하나의 버프를 풀로 받았다.

    김하나의 풀 버프는 과거 이무기 레이드 당시 받았던 자잘한 버프와는 그 격이 달랐다.

    ‘버프 스킬도 좀 올라왔으면 좋겠는데.’

    현성이 구매창을 뒤지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매창을 뒤졌지만 버프 스킬북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생존 본능 같은 스킬이 몇 개만 더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생존 본능을 제외하면 기본 스텟을 올려 주는 스킬북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웨어 울프 킹의 심장이나 오우거의 진혈같이 기본 스텟을 올려 주는 소모형 아이템은 몇 개 있었다.

    하지만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

    아무리 현성이라고 해도 일회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거기에 더해 손실된 스텟을 복구할 포인트까지 생각하면 소모형 아이템을 구매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였다.

    ‘전설 등급 몬스터를 솔로잉할 때를 제외하면 쓸 일이 없겠어.’

    전설 등급 몬스터를 솔로잉으로 사냥하면 분명 삼두표나 블루 드레이크를 사냥했을 때와 같은 업적을 줄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지만 다음에는 다를 거야.’

    오크 대족장도 솔로잉으로 잡고 싶었지만 아직까지는 실력이 부족했다.

    플레이어 협회도 허락해 주지 않을 것이다.

    현성이 솔로잉에 실패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게 자명했으니까 말이다.

    ‘다음에는 꼭 혼자 도전한다.’

    현성이 전설 등급 몬스터의 솔로잉 사냥을 다짐하는 사이, 수송 헬기가 목적지에 도달했다.

    * * *

    오크 대족장은 오크 무리의 최전방에 위치해 있었고, 오크 주술사는 최후방에 위치해 있었다.

    현성이 낙하를 준비하며 영웅 등급 오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오크 대족장을 바라봤다.

    ‘미친 짓이기는 하네.’

    전설 등급 몬스터와 영웅 등급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곳에 홀로 내려간다?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긴장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이 정도면 지상에 내려가는 즉시 생존 본능 스킬이 발동할 것 같았다.

    ‘화려하게 놀아 보자.’

    출동 명령을 받은 현성이 수송 헬기에서 지상으로 몸을 날렸다.

    파지지직!

    현성의 전신을 흑뢰룡 숨결이 휘감았다.

    ‘최대 출력으로 간다.’

    꽈아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현성의 마력과 체력을 최대치로 빨아들인 흑뢰룡의 숨결이 지상에 강림했다.

    크와아악!

    쿠아악!

    오크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현성이 착지한 지점에 있던 영웅 등급 오크들이 한 줌의 재로 변했다.

    근방에 있던 영웅 등급 오크들 역시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심지어 전설 등급 몬스터인 오크 대족장 역시 피부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흡혈공의 공능에 따라 소모된 마력과 체력이 빠른 속도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현성이 용혈검을 뽑아 들었다.

    크와아아악!

    그와 동시에 오크 대족장이 분노가 가득 실린 포효를 터트리며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이잉!

    오크 대족장의 오른손에 들린 도끼가 어마어마한 파공성을 토해 내며 날아들었다.

    휘익!

    현성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했다.

    그 순간 피부가 타들어 가 시뻘건 근육이 드러난 영웅 등급 오크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피할 공간은 없었다.

    애초에 적진 한가운데로 혼자 뛰어든 셈이니 몸을 피할 공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휘이잉!

    그런 현성을 향해 오크 대족장의 도끼가 다시금 날아들었다.

    사방에서 영웅 등급 오크들이 달려들고 정면에서는 오크 대족장의 도끼가 날아든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당장에라도 블링크 스킬을 이용해 몸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성은 블링크 스킬의 존재를 잊었다.

    그리고 또다시 자기 자신을 속였다.

    -패시브 스킬 생존 본능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기다리던 문구가 떠올랐다.

    현성은 입안에 머금고 있었던 오우거의 진혈을 그대로 삼켰다.

    오우거의 진혈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스텟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용혈검이 흑뢰룡의 숨결에 뒤덮였다.

    현성이 그대로 용혈검을 휘둘렀다.

    휘익!

    용혈검을 뒤덮고 있던 흑뢰룡의 숨결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꽈아아아아앙!

    처음 지상으로 떨어질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현성에게 달려들던 영웅 등급 오크들은 한 줌의 재로 변했고 오크 대족장은 힘없이 튕겨져 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거 잘하면 혼자서 잡을 수도 있겠는데.’

    현성이 그런 생각을 하며 오크 대족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와아아악!

    분노한 오크 대족장 자리에서 일어나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화아악!

    현성을 향해 달려드는 오크 대족장의 몸이 순식간에 붉은빛으로 뒤덮였다.

    꽈아아앙!

    흑뢰룡의 숨결에 휩싸인 용혈검과 붉은빛 기운에 휩싸인 오크 대족장의 도끼가 충돌했다.

    ‘강해.’

    현성이 이를 악물었다.

    손아귀가 찢겨져 나가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 손아귀가 찢겨져 나갔다.

    불사의 서에 의해 순식간에 치유되어 상처가 없을 뿐이었다.

    꽈앙! 꽈앙!

    오크 대족장이 양손에 들린 도끼를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며 현성을 몰아붙였다.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용혈검을 쥐고 있는 손아귀와 팔근육이 찢어졌다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현성이 정신없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흑뢰용의 숨결을 이용해 공격해 봤지만 오크 대족장의 몸을 휘감은 붉은빛의 기운에 막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혼자서는 죽어도 무리다.’

    생존 본능 스킬이 발동된 상태에서도 이 모양이다.

    생존 본능 스킬이 끝나면 일방적으로 당할 것 같았다.

    꽈아아아앙!

    그때 적절하게 지원이 들어왔다.

    수송 헬기에 탑승해 있던 원거리 딜러들이 일제히 공격 스킬을 쏟아 냈고, 힐러들의 힐이 현성에게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탱커와 근접 딜러 들은 일제히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강대한 마력의 흐름에 수송 헬기에 걸려 있던 영웅 등급 은신 스킬이 해제되어 버렸지만, 이미 비밀리에 접근한다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오크 대족장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현성이 다시금 공격을 시도했다.

    파강!

    오크 대족장이 도끼의 날을 방패처럼 사용해 현성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 순간 탱커들과 근딜들의 스킬이 일시에 오크 대족장의 등을 공격했다.

    크와아악!

    오크 대족장의 몸을 돌려 탱커와 근딜 들을 공격했다.

    그 틈을 현성이 놓칠 리 없었다.

    현성이 재빨리 달려들어 오크 대족장에게 용혈검을 휘둘렀다.

    좌악!

    가죽과 근육이 갈라지며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오크 대족장이 분노한 표정으로 다시금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함께 영웅 등급 오크들이 오크 대족장을 돕기 위해 몰려들었다.

    탱커들이 원형으로 진을 치며 각자의 방어 스킬을 발동시켰다.

    “신념의 방패!”

    “굳건한 장벽!”

    퍼억!

    영웅 등급 오크들의 돌진이 탱커들의 방어 스킬에 막혀 버렸다.

    꽈앙! 꽈앙!

    영웅 등급 오크들이 연속적으로 탱커들의 방어 스킬을 두드렸다.

    하지만 탱커들의 방어 스킬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공격력이 약하고 기동성도 떨어지지만 제자리에서 버티는 것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게 바로 탱커들이다.

    종종 방어 스킬을 꿰뚫고 날아오는 공격에 탱커들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탱커들이 부상당하기 무섭게 수송 헬기에 있던 힐러들이 힐을 날렸다.

    탱커들이 원을 이뤄 영웅 등급 오크들의 진입을 차단하자 내부에는 오크 대족장과 현성 그리고 근접 딜러들만 남았다.

    현성은 딜탱 역할을 소화했고 근접 딜러들은 최선을 다해 오크 대족장에게 딜을 넣었다.

    수송 헬기에 있는 원거리 딜러들 역시 지속적으로 오크 대족장을 공격했다.

    크와아악!

    분노한 오크 대족장이 도끼 하나를 수송 헬기를 향해 집어 던졌다.

    화악!

    그 순간 밝은 빛무리가 수송 헬기를 뒤덮었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오크 대족장이 던진 도끼는 원거리 딜러와 힐러 들이 친 방어막을 부수고 헬기에 적중했다.

    팅!

    하지만 수송 헬기에 부딪친 도끼가 맥없이 튕겨져 나갔다.

    “쿨럭!”

    그와 함께 수송 헬기 안에 탑승해 있던 탱커들이 일제히 피를 토했다.

    탱커들 중 일부가 지상으로 내려가지 않고 헬기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 스킬 희생의 방패 때문이었다.

    희생의 방패는 타인이나 사물이 받는 피해를 대신 받아 주는 탱커 전용 직업 스킬이다.

    사실 수송 헬기를 이용한 전투가 가능했던 것도 희생의 방패 덕분이었다.

    희생의 방패가 없었다면 수송 헬기는 영웅 오크들이 던진 무기와 스킬로 인해 진작 지상으로 추락했을 것이다.

    수송 헬기 내부에 탑승해 있는 탱커들이 희생의 방패 스킬을 사용해 영웅 오크들이 던진 무기와 스킬의 타격을 대신 받았기에 계속 비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송 헬기에 부딪쳐 튕겨져 나간 오크 대족장의 도끼가 탱커들의 방어 스킬 밖으로 떨어졌다.

    졸지에 무기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현성과 딜러들의 공격이 다시금 쏟아졌다.

    오크 대족장이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오크 대족장의 팔과 다리가 피투성이로 변했다.

    자잘한 상처가 아니라 꽤 깊숙이 들어간 상처도 꽤 많이 생겼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오크 대족장의 숨통을 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현성의 전신에 넘쳐흐르던 힘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생존 본능의 발동 시간이 끝난 것이다.

    ‘칫.’

    현성은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실망하기는 아직 일렀다.

    오우거의 진혈이 주는 힘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현성과 딜러들이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오크 대족장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현성이 약해진 이후 오히려 더 거칠게 날뛰었다.

    크와아악!

    오크 대족장이 워크라이 스킬을 시전하며 포위망을 구성한 탱커들의 뒤를 노렸다.

    현성이 온갖 도발 스킬을 사용하며 정면으로 오크 대족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다행히 현성이 날린 도발 스킬에 오크 대족장이 걸려들었다.

    도발 스킬은 정신력의 영향을 받는 스킬이다.

    현성의 정신력 스텟은 랭커의 경지에 오른 탱커들보다 높았다.

    그 결과 다행히 오크 대족장의 발을 묶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실로 참혹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오크 대족장의 공격이 온전히 현성에게 쏟아졌다.

    현성은 피할 수 있는 공격은 피하고 막을 수 있는 공격은 막아 내며 사력을 다해 버텼다.

    근육이 찢겨지고 뼈가 부러져 나갔다.

    다행히 불사의 서와 힐러들의 힐 덕분에 현성은 어찌어찌 오크 대족장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현성은 오크 대족장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내면서도 공격적으로 용혈검을 휘둘렀다.

    그 결과 오크 대족장의 몸에 새겨진 검상이 하나둘 늘어났다.

    오크 대족장이 도끼를 휘두르는 힘과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승기를 잡은 현성과 딜러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공격을 날렸다.

    현성과 랭커들에게는 시간제한이 있었다.

    오우거의 진혈이 가진 효과가 사라지는 순간, 현성은 더 이상 딜탱의 역할을 소화하지 못한다.

    ‘거의 끝났어.’

    전신이 피투성이로 변한 오크 대족장을 바라보며 모두가 승리를 확신했다.

    크와아아악!

    그 순간 커다란 포효를 터트린 오크 대족장의 눈이 핏빛으로 변했다.

    “광폭화다!”

    현성의 외침과 함께 오크 대족장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콰직!

    오크 대족장의 도끼에 근접 딜러의 몸이 두 조각 났다.

    현성이 연속적으로 도발 스킬을 사용했지만, 광폭화 상태에 들어간 오크 대족장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공격에 집중해!”

    현성의 외침에 근접 딜러들이 더욱 가열하게 딜을 넣었다.

    현성도 더욱 적극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콰직!

    오크 대족장의 공격에 근접 딜러 하나가 또다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근접 딜러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어차피 작은 원 안에 고립된 상태다.

    피할 곳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탱커들이 공격을 당해 방어진이 깨지면 성난 영웅 등급 오크들이 이곳으로 난입할 테니까 말이다.

    근접 딜러들의 수가 하나둘 줄어들었다.

    그와 비례해 오크 대족장의 몸에 치명적인 상처가 점점 늘어났다.

    오크 대족장의 왼팔은 어깨에서 떨어져 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가슴팍과 옆구리에도 뼈와 장기가 드러날 정도로 극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제발 좀 죽어라!’

    현성이 사력을 다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현성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왼팔이 반쯤 잘려 나가 덜렁거리고 얼굴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오우거의 진혈이 주는 버프 효과도 얼마 남지 않았다.

    현성이 오크 대족장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현성을 향해 오크 대족장의 도끼가 날아들었다.

    현성의 몸을 비틀며 오크 대족장의 목을 향해 용혈검을 휘둘렀다.

    콰직!

    오크 대족장의 도끼가 현성의 쇄골과 갈비뼈를 부숴 버렸다.

    현성은 살이 베이고, 뼈가 부서지며 내부 장기가 찢기는 고통을 참아 내면서도 끝까지 용혈검의 경로를 바꾸지 않았다.

    서걱!

    손끝에서 뼈와 살이 베이는 감촉이 전해졌다.

    툭!

    오크 대족장의 머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쿠웅!

    그와 함께 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오크 대족장의 몸도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현성이 오크 대족장의 목을 베어 낸 것이다.

    “커억!”

    현성이 피를 토해 냈다.

    불사의 서가 손상된 신체 조직을 복구하고 힐러들의 힐이 비처럼 쏟아졌지만, 순식간에 회복되기에는 현성의 부상이 너무 컸다.

    “철수!”

    근접 딜러 중 하나가 상황 종료를 알렸다.

    근접 딜러들이 부상당한 현성과 동료들을 챙겼다.

    사아아악!

    그러는 와중에 오크 대족장의 사체에서 뿜어져 나온 잔존 마력이 아이템으로 화했다.

    근접 딜러들은 전사한 동료의 시신과 오크 대족장의 사체에서 나온 아이템까지 모조리 챙긴 뒤 일회용 비행 아이템을 사용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근접 딜러들이 철수를 완료했다.

    이제는 탱커들 차례였다.

    수송 헬기에 타고 있던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이 탱커들을 둘러싸고 있는 영웅 등급 오크들에게 비처럼 쏟아졌다.

    순간 영웅 등급 오크들이 쓸려 나가자 탱커들이 남은 마력을 모두 쥐어짜 방어 스킬을 시전하며 비행 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런 탱커들을 향해 영웅 등급 오크들의 무기와 스킬이 날아들었다.

    불행히도 몇몇 탱커들은 영웅 등급 오크들이 던진 무기와 스킬에 맞아 비행 아이템의 효과가 캔슬되어 지상으로 추락했다.

    지상으로 추락한 탱커들에게 오크들이 개미 떼처럼 달려들었다.

    “아아악!”

    “살려 줘!”

    탱커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죽어 나갔다.

    하지만 다행히 대다수의 탱커들은 무사히 수송 헬기로 귀환할 수 있었다.

    “생존자 전원 탑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송 헬기에 탑승한 탱커의 외침에 헬기 조종사가 빠르게 고도를 올렸다.

    지상에서 영웅 등급 오크들이 날린 무기와 스킬 들이 날아왔지만, 다행히 원거리 딜러들과 힐러의 방어막 그리고 탱커들이 사용한 희생의 방패 덕에 무사히 전장을 이탈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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