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 협회장과의 거래 (46/225)
  • ┃협회장과의 거래

    ‘아직 한참 부족해.’

    전장을 빠져나온 현성이 아쉬움에 이를 악물었다.

    생존 본능 스킬을 발동시키면 오크 대족장을 쓰러트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그 기대는 헛된 망상에 그쳤다.

    생존 본능 스킬을 발동시켰음에도 동수를 이루면서 약간의 우위를 점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건 현성의 생각일 뿐이다.

    살아남은 랭커들은 현성의 전투력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특히 현성이 누군지 알아본 랭커들의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처음에는 랭커들도 갑자기 오크 대족장 레이드에 끼어든 현성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후에는 현성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살아남은 랭커들 중 상당수가 과거 이무기 척살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랭커들의 눈에 비친 현성은 실로 괴물 같은 존재였다.

    현성은 모든 포지션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탱커가 밀려 나면 탱커의 역할을 수행했고, 딜이 부족하면 딜러의 역할을 대신했다.

    심지어 힐양이 조금 달리기는 하지만, 보조 스킬로 익혔다고는 믿을 수 없는 힐양으로 보조 힐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후퇴할 무렵에는 전설 등급 몬스터인 오크 대족장을 잠시나마 혼자 상대하기도 했다.

    아무리 버프 계열의 패시브 스킬을 사용했다고 해도 일개 플레이어가 단독으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다니?

    랭커들은 전원 김하나의 버프를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버프를 받고도 여럿이 힘을 합쳐 오크 대족장을 견제하는 게 고작이었다.

    아니, 현성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전장에서 뼈를 묻을 수도 있었다.

    랭커들은 현성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도대체 기본 스텟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스킬들을 익혔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마지막에 발동시켰다는 버프 계열의 패시브 스킬의 스텟 증폭도가 얼마나 되는지 등등.

    하지만 그 누구도 현성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지 못했다.

    같은 플레이어로서 타 플레이어의 스킬, 스텟, 직업을 물어보는 게 얼마나 실례되는 행동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기억하세요?”

    그때 랭커들 중 하나가 현성에게 말을 걸었다.

    현성이 시선을 돌렸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강인희.

    블루 드레이크를 쓰러트리고 나왔을 당시 만났던 랭커 중 하나였다.

    이무기 척살대의 일원이기도 했다.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강인희 씨였죠?”

    “어머, 제 이름 기억하고 있으셨구나.”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녀는 랭커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딜러였으니까 말이다.

    마창사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방송에도 몇 번 출연해 일반인들에게 유명한 랭커 중 하나였다.

    이무기 레이드 당시에도 신윤아와 함께 엄청난 활약을 한 인물이기도 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현성 씨 도움이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강인희가 말을 붙이자 현성과 안면이 있는 랭커들이 하나둘 현성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전에 만났을 때 랭커들은 현성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저 사람이 드레이크 배 속에서 살아 나온 사람이야?’라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랭커들은 연예인을 바라보는 팬의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성은 랭커들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괜히 랭커들과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오히려 친분을 쌓으면 쌓을수록 좋다.

    현성이 한참 랭커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가 현성에게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현성 씨. 플레이어 협회장 강선영이라고 합니다.”

    터질 듯한 근육을 가진 중년의 사내가 자신을 소개하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랭커들 사이에서 작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에 사내가 살기 어린 표정으로 랭커들을 노려봤다.

    랭커들은 사내의 시선을 못 본 척하며 딴청을 피웠다.

    현성도 살짝 웃음이 나왔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 이름이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였다.

    “반갑습니다, 협회장님.”

    현성도 오른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사내의 물음에 현성이 흔쾌히 대답했다.

    * * *

    현성과 협회장이 집무실에 도착했다.

    “앉으시죠.”

    협회장의 말에 현성이 의자에 착석했다.

    “현성 씨에 대한 보고는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직접 뵙는 건 처음이지만 낯설지가 않네요.”

    협회장의 말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전 협회장님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런지 낯설게 느껴지네요.”

    현성의 말에 협회장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찰나에 불과했다.

    “하하하, 사실 초면이니 낯설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죠. 친분은 앞으로 쌓아 나가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협회장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죠. 무슨 일로 절 찾아오신 겁니까?”

    “오크 대족장과 오크 주술사가 전설 등급 몬스터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무기 척살대와 마찬가지로 오크 대족장과 오크 주술사를 제거할 척살대를 꾸릴 계획입니다.”

    “이무기 레이드 때보다 훨씬 어려운 전투가 되겠군요.”

    이무기는 엄청나게 강했다.

    하지만 단 한 마리였다.

    그런 만큼 척살대의 레이드에 방해가 될 요소가 없었다.

    하지만 오크는 무리 생활을 한다.

    첫 번째 전투처럼 다수의 영웅 등급 오크들이 레이드에 끼어들 확률이 높았다.

    거기다 전설 등급 몬스터가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되지 않는가?

    “아무래도 그렇겠죠. 현대 화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왜 사용할 수 없다는 거죠? 시설물 파괴를 걱정하기 때문인가요?”

    현성은 그 점이 의문이었다.

    사실 첫 번째 토벌전 당시에도 플레이어들이 투입되기 전에 대규모 폭격을 가했다면 전설 등급 몬스터인 오크 대족장과 오크 주술사는 몰라도 희귀 등급과 영웅 등급 오크의 숫자를 대폭 줄여 놓을 수 있었다.

    “국민들이 오크 놈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폭격이 불가능합니다.”

    “인질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현성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몬스터가 인질을 잡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말인가.

    “정확히는 인질로 잡고 있는 게 아니라 비상식량 정도로 생각하고 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상식량이라고요?”

    “예, 오크 무리의 중심에 대략 7천여 명의 민간인들이 고립되어 있습니다. 오크 놈들은 평소에는 방치하다가 배가 고파지면 몇 명씩 잡아먹더군요.”

    현성은 할 말을 잃었다.

    오크가 식인을 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인간을 잡아먹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크처럼 인간을 살려서 데리고 있다가 잡아먹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골치가 아프네요.”

    민간인들이 있는 곳에 폭격을 날릴 수는 없다.

    “일단 다시금 군과 함께 플레이어들을 대거 투입시킬 계획입니다. 그와 함께 두 개의 척살대를 조직해 오크 대족장과 오크 주술사를 동시에 노릴 겁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따로 불러서 말씀하시는지?”

    그 점이 이상했다.

    현성이 이번 전투에서 대활약을 했다고는 하지만 굳이 따로 불러 이런 사실을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투입되는 척살대 중 하나의 대장으로 최현성 씨를 임명할 생각입니다.”

    “왜 저를……?”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랭커들 중에도 대장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최현성 씨가 잠시나마 홀로 오크 대족장을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오크 대족장을 상대로 발동시켰던 버프 계열 패시브 스킬의 상세 정보를 오픈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협회장의 말에 현성은 그제야 상대가 원하는 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세 정보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발동 조건과 유지 시간 그리고 쿨타임 정도는 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만 오픈해 주셔도 충분합니다.”

    “그 전에 그걸 왜 궁금해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솔직히 김하나 씨의 버프를 받는다고 해도 오크 대족장을 버프 계열 패시브 스킬의 유지 시간 안에 쓰러트릴 자신은 없습니다.”

    “현성 씨에게 소모형 아이템 하나를 제공해 드릴 생각입니다.”

    그 말과 함께 협회장이 피처럼 붉은 보석을 꺼내 들었다.

    “아이템 정보를 확인해 보시죠.”

    협회장의 말에 현성이 붉은 보석의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오우거의 진혈 - 영웅 등급

    -오우거의 신체 능력의 일부를 빌려 옵니다.

    -30분간 힘, 민첩, 체력 스텟이 40% 증가합니다.

    -오우거의 진혈이 모두 소모되면 힘, 민첩, 체력 스텟이 영구적으로 10% 줄어듭니다.

    -사용 방법 : 섭취

    ‘이건 완전히 웨어 울프 킹의 심장 업그레이드판이잖아.’

    지속 시간은 줄었지만 증가하는 스텟은 오히려 늘어났다.

    페널티는 동일했다.

    “설마 이걸 이용해서 오크 대족장을 쓰러트리라는 말입니까?”

    현성의 물음에 협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최현성 씨가 가진 버프 스킬과 이 아이템의 효과가 동시에 발동한다면 충분히 오크 대족장을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하나 플레이어의 버프와 랭커들의 협력까지 함께한다면 설사 오크 대족장이 광폭화 스킬을 시전한다고 해도 100%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말을 마친 협회장이 초조한 표정으로 현성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다지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30분간 강해지기 위해서 힘, 민첩, 체력 스텟이 영구적으로 10% 줄어드는 걸 감수한다?

    어느 플레이어가 그걸 반기겠는가.

    “최현성 씨가 수락만 해 주신다면 전설 등급 스킬북을 구매하느라 진 빚을 모두 탕감해 드리겠습니다. 또 오크 대족장 레이드가 끝난 뒤 나온 전리품 중 원하는 것 하나를 무상으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현성이 긴 장고에 들어갔다.

    ‘나쁘지 않아.’

    다른 랭커들이 들었다면 미친 소리였다.

    하지만 스텟을 다시 복구할 수 있는 현성의 입장에서는 절대 나쁜 거래가 아니었다.

    기존의 빚을 탕감해 주고 전설 등급 아이템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실질적으로는 전설 등급 아이템을 두 개 받는 꼴이었다.

    전설 등급 아이템의 가격을 생각하면 소모된 스텟을 복구하는 데 들어갈 포인트는 새 발의 피나 마찬가지였다.

    현재 현성의 힘, 민첩, 체력의 기본 스텟은 400.

    10%가 줄어든다면 힘, 민첩, 체력이 각각 40씩 줄어들어 총 120의 스텟이 증발한다.

    360억 포인트면 잃어버린 스텟의 복구가 가능하다.

    수천억 포인트짜리 전설 등급 아이템을 두 개나 받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거저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김하나의 버프와 랭커들의 도움까지 있다는 걸 생각하면 광폭화 스킬을 포함한 온갖 변수를 고려해도 오크 대족장 레이드의 성공률은 거의 100%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협회장은 그걸 모르지.’

    그 말은 조금 더 배짱을 튕겨도 된다는 뜻이었다.

    “오크 대족장 레이드가 끝난 뒤 제가 원하는 아이템 두 개를 무상으로 지급해 주십시오. 또 그와는 별개로 기여도에 걸맞은 전리품 판매 정산금을 원합니다.”

    협회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가 할 대답은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협회장의 승낙에 현성은 쾌재를 불렀다.

    전설 등급 아이템이 하나 더 늘었다.

    거기다 전리품 판매 정산까지!

    현성이 기여도 1위를 기록할 것이 당연했으니 거액의 판매 정산금이 들어올 게 자명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현성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저 역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어려운 결심을 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로 손을 맞잡은 현성과 협회장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양측 모두 만족하는 거래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협회장은 현성이 큰 손해를 감수했다고 생각했다.

    플레이어에게 스텟 증발은 절대 복구할 수 없는 영구적인 손실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포인트만 있으면 얼마든지 스텟을 복구할 수 있는 현성의 입장에서 스텟 증발은 영구적인 손실이 아니라 일시적인 손실에 불과했다.

    그 후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생각하면 아무런 손해 없이 이득만 잔뜩 챙기는 부당 거래나 마찬가지였다.

    협회장이 진실을 안다면 사기라고 난리를 치겠지만, 그가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제 권한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협회 내에서 제 직급을 팀장급으로 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팀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현성의 말에 협회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플레이어 협회는 협회장과 부협회장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팀이 존재한다.

    그 팀들이 사실상 플레이어 협회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감찰 팀이었다.

    감찰 팀의 팀장은 신윤아가 맡고 있었다.

    감찰 팀은 감찰대로도 불리고, 리더는 팀장 또는 대장이라고 불린다.

    팀장의 권한은 상당히 강력하다.

    배정되는 예산도 많았고, 팀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진다.

    거기다 협회장과 부협회장을 제외하면 플레이어 협회 내에서도 딱히 터치할 수 있는 직급을 가진 이도 없었다.

    아니, 협회장과 부협회장이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팀장에게 지시를 하거나 징계를 내릴 수는 없다.

    팀장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협회 내에서 독자적인 파벌을 키우는 것이 가능했다.

    ‘나쁠 건 없다.’

    잠시 고민하던 협회장이 결론을 내렸다.

    현성이 감수한 손해에 비하면 그 정도 요구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었다.

    거기다 현성은 상당히 특별한 플레이어다.

    고유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불과 2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랭커급 강자로 성장한 인물.

    플레이어 협회의 팀장 자격이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협회장은 현성의 태도 변화에 주목했다.

    현성은 그간 계속 플레이어 협회를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렇기에 협회장은 현성이 종신 계약 파기를 요구할 줄 알았다.

    한데 의외로 팀장 직급을 요구했다.

    팀장 자리를 달라는 현성의 요구는 플레이어 협회를 박차고 나갈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는 뜻과 동일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라도 생긴 건가?’

    나쁠 게 없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플레이어 협회 입장에서는 고유 스킬 보유자이자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 속도를 보여 준 현성을 무조건 붙잡아야 했다.

    현성이 권력에 욕심을 부린다면?

    주면 그만이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협회장이 허락하자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감사합니다. 사실 거절하시면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했거든요.”

    “플레이어 협회는 실력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최현성 씨 같은 실력과 인품을 가지신 분이라면 충분히 팀장 자리를 맡을 자격이 있으십니다.”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뇨. 대의를 위해 큰 희생을 감수하신 분 아닙니까?”

    현성과 협회장이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버프 계열 패시브 스킬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협회장의 물음에 현성이 흔쾌히 생존 본능 스킬의 발동 조건과 발동 시간을 알려 주었다.

    “발동 조건이 조금 까다롭군요.”

    현성의 설명을 들은 협회장이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제가 혼자 놈을 상대해 보겠습니다. 그럼 스킬이 발동할 확률이 높습니다.”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죠. 이대로 오크 놈들을 방치하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최대한 빨리 놈들을 처리해야죠.”

    그 말을 들은 협회장은 현성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위기 대응반을 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킬이 발동하지 않아 현성이 큰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게 둘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큰 실수를 했군.’

    첫 번째 토벌 당시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데 나선 점.

    자신의 스텟이 깎여 나가는 손해를 감수하고 작전을 수락한 점.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방법을 스스로 제안하는 모습까지.

    협회장은 그런 현성의 행동에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그와 함께 그간 현성을 오해했던 자신의 행동을 크게 반성했다.

    하지만 협회장은 몰랐다.

    현성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또 스킬 블링크와 불사의 서라는 확실한 생존기를 보유하고 있는 현성의 입장에서 단독으로 전설 등급 몬스터와 맞서는 것은 결코 목숨을 건 도박이 아니었다.

    * * *

    오크 토벌대가 대패했다.

    이 사실은 거의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토벌대가 대패한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전설 등급 오크 두 마리였다.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두 마리의 전설 등급 오크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접한 국민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특히 서울과 경기도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일본 큐슈 사태에서 보듯 한번 토벌에 실패한 몬스터 웨이브는 점점 더 규모를 키워 나간다.

    일본도 후쿠오카 사태를 초기에 수습하지 못해 결국 큐슈 지역 전체가 몬스터의 소굴이 되지 않았는가.

    서울과 경기도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피난 행렬이 줄을 이었다.

    서울과 경기도에 거주하는 국민들이 집을 버리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우선 UN연합군 소속이 되어 타국에서 몬스터 토벌전을 벌이고 있는 자국의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을 불러들였다.

    그와 함께 UN군 사령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곧 2차 토벌전이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정부는 2차 토벌전에서는 확실하게 오크들을 토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표하며 민심을 다독였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혼란에 빠진 민심을 수습할 수는 없었다.

    * * *

    신윤아를 포함한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일제히 귀국했다.

    그들만 온 것이 아니었다.

    UN연합군 소속의 타국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 역시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 정부는 지원군이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오크 토벌 계획을 공표했다.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오크들을 일거에 쓸어버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UN연합군은 그 계획에 난색을 표했다.

    “오크 대족장이 사용하는 정신계 공격 스킬을 막을 방법이 있습니까? 오크 대족장을 막지 못한다면 앞으로 시행될 토벌전도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첫 전설 등급 몬스터 이무기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UN연합군 소속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있는 제이슨의 말에 한국 플레이어 협회장 강선영이 얼굴을 찌푸렸다.

    “전설 등급 몬스터는 척살대가 외곽으로 끌어내 처리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설 등급 몬스터를 단시간 안에 사냥할 수 있겠습니까? 전투 중에 정신계 공격 스킬이 한 번만 터져 나와도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요. 그럼 오크 무리를 저대로 내버려 두자는 말입니까?”

    “우리는 정신계 공격 스킬에 대한 대비책이 확보되지 않는 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지원군 아닙니까? 위험이 있다고 전투를 피하기만 할 겁니까?”

    “승리를 위한 희생이라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만 이런 불완전한 계획에 동참해 개죽음을 당할 생각은 없습니다.”

    협회장 강선영과 연합군의 리더 제이슨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개판이네.’

    현성이 간단한 감상평을 남겼다.

    UN연합군 소속 플레이어들은 군인이 아니다.

    그들이 UN연합군에 소속된 것 역시 임시적인 조치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너무 안전을 추구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 몬스터 토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이다.

    UN연합군의 몬스터 토벌은 철저하게 전력적 우위를 가지고 있을 때만 이루어졌다.

    일본 큐슈 사태의 경우만 봐도 압도적인 전력을 모은 후에야 토벌을 시작했다.

    그러다 조인족들을 놓쳐 버리자 아예 토벌을 포기했다.

    전력을 나눠 끝까지 추격해 전투를 벌였다면 조인족들을 섬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각개격파의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결국 철수했다.

    사실 그건 반쯤 핑계였다.

    각개격파 당할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인족 토벌을 포기한 진짜 이유는 UN연합군의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UN연합군의 장점이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세계 각국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다.

    큰 피해가 예상되면 플레이어들이 먼저 전투를 거부한다.

    사실 한국에서도 랭커를 일본에 파견할 당시 큰 피해가 예상되면 그냥 귀국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협회장 강선영과 연합군의 리더 제이슨은 결국 합의를 보지 못했다.

    제이슨이 먼저 자리를 떴고 결국 회의장에는 한국인 플레이어들만 남게 되었다.

    “저 망할 놈의 플레이어 우월주의자 자식. 일부러 시간을 끄는 거야.”

    랭커 윤인환이 분통을 터트렸다.

    한국이 대규모 폭격을 가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크 무리에 잡혀 있는 인질들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인질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아마 이삼일만 지나도 인질들은 모두 오크들의 배 속에 들어가 버릴 것이다.

    제이슨은 그때를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인질이 사라지면 폭격을 가할 수 있게 되고, 그럼 월등히 적은 피해로 오크 무리를 토벌할 수 있게 된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제이슨은 일반인들의 인명 피해에 무감각했다.

    반면 플레이어의 피해는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그간 그런 제이슨의 행동 방침 때문에 많은 일반인들이 희생당했다.

    그 모습을 수없이 목격한 윤인환은 제이슨을 골수 플레이어 우월주의자라고 생각하고 혐오했다.

    “단독 토벌은 무리겠죠?”

    신윤아의 물음에 협회장 강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1차 토벌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수많은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죽어 나갔다.

    그런 상황에서 2차 토벌을 한국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한국은 UN연합군을 설득하기 전까지 발이 묶여 있어야 했다.

    “저놈들이 그때까지 가만히 있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윤인환이 다시금 분통을 터트렸다.

    오크는 몬스터다.

    그들이 언제까지 얌전히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막말로 지금 당장이라도 사방으로 흩어져 대학살을 벌일 수도 있었다.

    “일단은 내일 다시 회의를 진행해 보는 방법밖에는 없겠군. 먼 길 오느라고 다들 고생했다. 오늘 밤은 푹 쉬도록.”

    협회장 강선영의 말에 랭커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회의실을 빠져나가려는 현성에게 신윤아가 다가왔다.

    “최현성 씨,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신윤아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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