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웨이브
한국은 2차 대격변으로 인한 여파를 완전히 극복했다.
일반인들은 생업으로 복귀했고 플레이어들은 던전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신촌역 인근에 자리 잡은 45~50레벨의 오크 던전.
이 던전 역시 2차 대격변 이후 생겨났다.
하지만 오크 던전은 동 레벨 플레이어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무리를 짓는 오크들의 습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이 솔로잉을 하기 위해 자주 찾는 사냥터 중 하나였다.
59레벨의 플레이어 박진영도 솔로잉을 위해 오크 던전을 찾아온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뀌이익!
꿰에엑!
던전 안에 돼지 멱따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박진영은 화염에 휩싸인 대검을 휘두르며 오크들을 학살했다.
박진영은 아직 길드에 들어가지 못했다.
고정 파티도 만들지 못했다.
그런 그가 레벨을 올리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런 저레벨 던전에 들어와 몬스터를 잡는 것뿐이었다.
박진영은 효율을 올리기 위해 차원 게이트 근처를 사냥터로 정했다.
그 때문에 차원 게이트를 넘어 던전 안으로 들어온 오크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박진영의 대검에 목이 날아갔다.
‘나도 여기서 근무하면 좋을 텐데.’
박진영이 안전 요원으로 근무하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근무지가 여기로 결정되면 몬스터도 잡고 의무 기한도 채우고, 일석이조였다.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었다.
이곳에서 안전 요원으로 근무하기 위해서는 레벨이 80은 되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80레벨이 되면 오크를 잡아 경험치를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안전 요원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파수꾼이다.
그런 만큼 던전 레벨보다 월등히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를 배정했다.
사냥할 생각 따위는 하지 말고 안전 요원 임무에나 충실하라는 정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배치였다.
‘그냥 안전 요원 임무 서면서 사냥도 할 수 있게 해 주지.’
정부에 대한 불만을 떠올리던 박진영의 눈에 차원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오크 무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박진영이 잡생각을 지우고 차원 게이트를 빠져나온 오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르륵!
스킬이 발동하며 박진영의 대검이 화염에 휩싸였다.
박진영이 있는 힘껏 대검을 휘둘렀다.
콰직!
뼈와 살이 산산조각 나는 소음과 함께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어?’
박진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에는 오크가 휘두른 거대한 도끼가 꽂혀 있었다.
‘이게 무슨…….’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도 전에 의식이 끊어져 버렸다.
“뭐야? 죽었잖아!”
“도대체 뭔 병신 짓을 했기에 오크한테 당한 거야?”
안전 요원들이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를 뽑아 들었다.
하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저 플레이어가 방심해 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체는 수습해 줘야 했다.
차원 게이트를 지키는 임무를 맡은 안전 요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고 오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걱!
오크의 도끼가 일격에 안전 요원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어?”
동료의 죽음에 당황한 안전 요원 하나가 재빨리 거리를 벌리려 했다.
휘익!
그런 그를 향해 도끼가 날아왔다.
좌악!
도끼가 안전 요원의 몸을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둘로 쪼개 버렸다.
순식간에 안전 요원 둘을 처리한 오크들이 던전 출구 쪽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차원 게이트는 계속해서 오크들을 쏟아 냈다.
그리고 차원 게이트를 빠져나온 오크들이 질서 정연하게 반대쪽 차원 게이트를 향해 이동했다.
기존에 던전에서 서식하고 있던 오크들은 새롭게 등장한 오크들을 본 순간 좌우로 물러나 머리를 땅에 박고 몸을 덜덜 떨었다.
오크들을 사냥하던 플레이어들은 질서 정연하게 행군하는 오크들을 보고 좋다고 달려들었다가 채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갈가리 찢긴 육편이 되어 던전 바닥에 흩뿌려졌다.
오크 무리는 얼마 가지 않아 반대쪽 차원 게이트에 도착했다.
오크들은 차원 게이트를 지키던 안전 요원들을 순식간에 도륙했다.
그리고 현대사회와 연결된 차원 게이트를 통과했다.
크와아아악!
던전을 빠져나온 오크 한 마리가 커다란 포효를 터트렸다.
그와 함께 던전을 빠져나온 오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피의 살육을 시작했다.
* * *
사냥을 마친 현성과 루시아가 던전을 빠져나왔다.
위이잉!
그런데 던전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비상 호출기가 진동을 했다.
“뭐지?”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플레이어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주군,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루시아가 현성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며 말했다.
기사에는 ‘긴급 속보, 신촌역 몬스터 웨이브’라는 기사가 떠 있었다.
기사가 올라온 시간은 2시간 전이었다.
“아니, 아직도 진압을 못 했어?”
한국만큼 몬스터 웨이브에 대한 대비가 잘되어 있는 나라도 드물다.
그런 한국이 고레벨 던전도 아니고 저레벨 던전에서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를 2시간째 제압하지 못했다니.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제대로 된 오크 무리가 차원 게이트를 넘은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루시아의 말을 들은 현성은 뭔가 있음을 느꼈다.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몬스터들 역시 계속해서 성장하고 강해진다고요.”
“이번에 넘어온 오크들이 그렇게 성장한 놈들 중 하나라는 말씀이시군요.”
“오크는 인간과 가장 닮은 몬스터입니다. 그런 만큼 개체끼리의 레벨 격차도 큽니다. 비전투 직군의 오크들은 일반 등급의 몬스터지만 전사급만 되어도 희귀 등급 몬스터가 됩니다.”
루시아의 말에 현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혹시 그 위도 있나요?”
“물론입니다. 전사장이나 족장급은 영웅 등급 몬스터고,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대족장급은 전설 등급 몬스터입니다.”
“오크가 전설 등급 몬스터가 될 수 있다고요?”
현성이 기겁해서 물었다.
오크는 대표적인 저레벨 몬스터다.
지능도 떨어지고 전투력도 낮다.
장점이라고는 무리를 짓는다는 점뿐이다.
희귀 등급 오크를 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전설 등급이라니.
“제가 직접 목격했습니다.”
루시아의 말에 현성은 할 말을 잃었다.
* * *
사건 초기.
대한민국 정부와 플레이어 협회는 신촌역에서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튀어나온 몬스터가 저레벨의 대명사, 오크이지 않은가.
플레이어 협회는 신촌역 근처의 길드와 플레이어 들을 비상소집해 오크 무리 제압에 나섰다.
군대도 세 개 연대가 동원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순식간에 전멸한 후에는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상소집에 응해 오크 무리 제압에 나섰던 길드 중에는 영웅 등급 던전을 밥 먹듯이 드나들던 중견 길드도 둘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길드원의 평균 레벨이 300에 달하는 중견 길드가 둘이나 무너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와 플레이어 협회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에게 비상소집령을 내렸다.
군대 역시 사단급 병력이 동원되었다.
랭커를 포함한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속속 신촌역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오크 무리 토벌이 시작되었다.
“오크 놈들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단번에 쓸어버리자!”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현재 한국의 랭커들은 절반 이상이 타국에 있었다.
UN연합군에 소속되어 몬스터에게 빼앗긴 인간의 영토를 수복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의 전력은 평소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고작 오크다.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패배할 리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쉽게 생각하면 안 될 텐데…….’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과 함께 전투준비를 하고 있는 현성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루시아에게 들었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최소 영웅 등급 오크는 무조건 포함되어 있을 거야.’
그건 기본이었다.
‘전설 등급 오크만 없었으면 좋겠는데.’
전설 등급 몬스터 오크 대족장.
그놈이 끼어 있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일본 큐슈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능이 뛰어난 인간형 몬스터들은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다.
그 까다로운 상대 중에 자연재해 수준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전설 등급 몬스터가 끼어 있다?
최악의 상황에는 일본이 큐슈를 포기한 것처럼 한국은 서울을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중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있는 것은 현성뿐이었다.
거대 길드 소속의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은 물론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 역시 별다른 긴장감 없이 토벌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오크에 대한 고정관념 탓이었다.
‘윤아 씨도 없고…….’
신윤아는 일본 큐슈 지역에 투입된 이후 아직까지 한국으로 귀국하지 못했다.
UN이 큐슈 지역을 포기한 후 바로 병력을 미국과 유럽 지역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신윤아는 지금쯤 미국이나 유럽 지역에서 열심히 몬스터와 드잡이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진압 개시!”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플레이어들은 각자 조를 이뤄 시내로 진입했다.
현성과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은 최후방에 위치해 있었다.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은 거대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졌기에 당연한 조치였다.
플레이어 협회에서는 현재 현성의 실력을 200레벨 중후반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사격 실시!”
두두두두두!
장갑차에 탑승한 군인들의 사격이 비처럼 쏟아졌다.
플레이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원거리 스킬 발사!”
“아이스 스톰!”
“선더 볼트!”
꿰에엑!
총알과 스킬에 적중당한 오크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크와아악!
분노한 오크들이 토벌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챙! 챙!
크롸롹!
“죽여!”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오크들은 결국 선두에 선 탱커와 근접 딜러 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주축이 된 토벌대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오크들을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의 보호를 받는 군인들은 안정적으로 사격을 이어 나갔다.
‘내가 너무 과한 걱정을 했나 보네.’
선두의 활약을 지켜보던 현성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열의 후미에 있는 현성은 몬스터를 향해 스킬 한 번 날려 보지 못했다.
오크들은 상당히 강했다.
대부분이 희귀 등급이었고 영웅 등급 오크들 역시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토벌대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쿠와아아악!
토벌전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커다란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큭!”
“뭐야?”
포효를 들은 토벌대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광역 정신계 공격 스킬이었다.
-정신계 위압 스킬 워크라이에 걸리셨습니다.
-위압에 잠식당한 신체가 10초간 경직 상태에 빠집니다.
-패시브 스킬 굴하지 않는 정신이 발동합니다.
-워크라이 스킬에 완벽하게 저항했습니다.
‘최악이다.’
현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유 만만한 표정이던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의 역시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신계 공격 스킬의 위력은 이무기 레이드 당시 충분히 실감했다.
크와아악!
경직 상태가 된 플레이어들을 향해 오크들이 성난 늑대처럼 달려들었다.
“커억!”
“아아악!”
순식간에 희생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워크라이 스킬에 걸리지 않은 랭커나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숫자가 너무 적었다.
설상가상 워크라이 스킬이 사용된 후 오크들이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오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전사들이었다.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도, 몸에 창이나 칼이 박혀도 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플레이어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직 상태에서 벗어난 플레이어들이 다시금 반격을 시작했다.
쿠와아아악!
그 순간 다시금 워크라이 스킬이 작렬했다.
“으악!”
“살려 줘!”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졌다.
진영을 이뤄 싸우던 플레이어들이 오크 무리와 뒤섞이기 시작했다.
성난 오크들이 탱커를 무시하고 후방에서 안전하게 사격을 하던 군인들과 원거리 딜러 및 힐러 들에게 달려들었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 * *
치밀한 포위망을 갖추고 착착 진행되던 토벌전이 갑자기 난전으로 바뀌었다.
이런 난전에 유리한 건 플레이어들이 아니라 몬스터인 오크들이었다.
크와악!
콰직!
오크의 도끼가 힐러의 몸을 두 쪽으로 갈라 버렸다.
뒤늦게 탱커가 다가와 도발 스킬을 사용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오크들은 방금 전과 달랐다.
워크라이 스킬이 사용된 이후 오크들은 광분한 맹수처럼 날뛰고 있었다.
두 번에 걸친 워크라이 스킬이 토벌대의 진형을 완전히 망가트려 버렸다.
그 결과 후방에 있던 현성에게도 오크들이 달려들었다.
서걱!
현성이 번개 같은 속도로 검을 휘둘러 오크의 목을 베어 냈다.
‘흑뢰룡의 숨결은 쓸 수가 없어.’
아군과 오크가 뒤섞여 있는 상황이다.
흑뢰룡 숨결 스킬을 자칫 잘못 사용했다가는 아군 역시 피해를 본다.
현성이 용혈검을 휘두르며 빠르게 오크들을 정리했다.
크와아악!
그 순간 다시금 워크라이 스킬이 터져 나오며 3미터에 달하는 장대한 체구를 가진 오크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자신의 체격에 걸맞은 거대한 도끼를 양손에 쥐고 있었다.
휘익!
높게 도약한 거구의 오크가 그대로 전장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콰직!
거구의 오크에게 깔린 탱커 하나가 그대로 압사당했다.
휭휭휭!
“아악!”
“컥!”
거구의 오크가 양손에 들린 도끼를 휘두르며 무차별하게 플레이어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랭커들이 거구의 오크를 상대하기 위해 튀어 나갔다.
꽈아앙!
랭커의 방패와 거구의 오크가 휘두른 도끼가 충돌하는 순간 폭탄이 터진 것 같은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랭커의 몸이 뒤로 쭉 밀려 났다.
하지만 랭커는 한 명이 아니었다.
다른 랭커들이 연속적으로 거구의 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꽈앙! 꽈앙!
랭커와 거구의 오크가 충돌하며 연속적으로 폭음이 터졌다.
결과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랭커들이 정신없이 밀리고 있었다.
크와악!
그때 일단의 오크 무리가 등장해 랭커들을 공격했다.
영웅 등급 오크들이었다.
랭커들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졌다.
거구의 오크를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서 갑자기 영웅 등급 오크들까지 등장해 자신들을 공격했다.
광전사처럼 흥분한 오크들과 뒤엉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랭커들을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랭커들은 순식간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버렸다.
‘빌어먹을.’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어.’
‘오크 따위가 왜 이렇게 강한 거야?’
랭커들은 어떻게든 몸을 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사방을 포위하고 있는 영웅 등급 오크들 때문에 거구의 오크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파지직!
그때 칠흑빛 뇌전이 거구의 오크에게 작렬했다.
크와아아악!
거구의 오크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 냈다.
슈욱!
그 순간 거구의 오크 등 뒤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성이었다.
현성이 거구의 오크를 향해 용혈검을 찔러 넣었다.
좌악!
‘빗나갔어.’
일격에 심장을 관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거구의 오크가 너무 빠르게 반응했다.
현성의 공격은 거구의 오크의 등가죽을 살짝 베어 내는 데 그쳤다.
휘이익!
강맹한 위력이 실린 도끼가 현성을 향해 날아왔다.
현성이 용혈검을 방패처럼 이용해 도끼를 막았다.
파강!
용혈검과 도끼가 충돌하며 현성의 몸이 뒤로 밀려 났다.
그런 현성을 향해 영웅 등급 오크들이 일제히 무기를 휘둘렀다.
파지지직!
현성을 향해 몰려든 영웅 등급 오크들에게 칠흑빛 뇌전이 강림했다.
쿠아아악!
영웅 등급 오크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서걱!
용혈검이 가볍게 회전하며 영웅 등급 오크들의 목을 베어 냈다.
쿠와아악!
부하들의 죽음에 화가 났는지 거구의 오크가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막아!”
“아이스 스톰!”
“냉기의 사슬!”
“실드 스턴!”
그런 거구의 오크를 향해 랭커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현성은 랭커들의 도움을 받아 거구의 오크가 휘두른 도끼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그와 함께 다시금 전투가 재개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상당히 불리하게 돌아갔다.
죽은 영웅 등급 오크들의 자리를 또 다른 영웅 등급 오크들이 채웠기 때문이다.
“후퇴해야 해요!”
랭커 중 하나가 외쳤다.
현성도 동의했다.
현재 전력으로 전설 등급으로 추정되는 오크 대족장을 쓰러트릴 수는 없었다.
‘첫 번째 기습이 성공했어야 했는데.’
성공만 했다면 일격에 숨통을 끊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전설 등급 몬스터라도 심장이 꿰뚫리면 죽는 건 똑같았으니까 말이다.
현성과 랭커들은 영웅 등급 오크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현성의 합류는 엄청나게 큰 힘이 되었다.
오크 대족장을 상대하기 위해 모인 랭커들은 탱커와 근접 딜러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거리 딜러와 힐러 들은 진작 난전에 휩싸여 전사했거나 후방으로 몸을 피했다.
탱커는 공격력이 약하다.
근접 딜러는 딜의 지속성은 높지만 몬스터의 숨통을 일격에 끊어 버릴 정도의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현성은 달랐다.
현성은 탱커처럼 오크들의 공격을 막아 냈고, 근접 딜러처럼 빠르고 연속적으로 공격을 날렸으며, 원거리 딜러들처럼 강력한 위력을 가진 스킬을 사용했다.
중간중간 치유 계열 스킬을 사용해 랭커들의 부상을 치료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현성은 말 그대로 만능 캐릭터처럼 랭커들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며 전투를 주도했다.
그 결과 퇴로가 만들어졌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군인들 역시 조금씩 물러나며 퇴각할 준비를 갖췄다.
쿠와아악!
그 순간 워크라이 스킬이 다시금 터져 나왔다.
랭커들은 괜찮았다.
그들 모두가 과거 이무기 척살대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사정이 달랐다.
“아아악!”
“살려 줘!”
순식간에 플레이어의 숫자가 확 줄어들었다.
군인들은 거의 전멸 상태가 되었다.
그와 함께 겨우 만들어 놓은 퇴각 진형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으아아아!”
“도망쳐!”
플레이어와 군인 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런 플레이어와 군인 들의 뒤를 오크들이 추격했다.
대살육이 펼쳐졌다.
제대로 된 퇴각 진형도 없이 엉망으로 뒤섞여 등을 보이고 도주하는 플레이어와 군인 들은 오크에게 있어 맛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이만 빠집시다!”
랭커 중 하나가 외쳤다.
이미 전세는 기울었다.
다른 플레이어와 군인 들을 구하려고 하다가는 자신들까지 위험해진다.
결정적으로 랭커들 역시 체력과 마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현성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이 자리에서 계속 오크 대족장을 상대하는 것은 절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오크 무리 속에 완전히 고립될 수도 있다.
‘같이 움직이는 게 좋겠지?’
사실 현성은 빠지려면 언제든지 빠질 수 있었다.
영웅 등급 공간 이동 스킬 블링크를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현성이 랭커들과 함께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크 대족장이 그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볼 리 만무했다.
크와아악!
오크 대족장이 사나운 포효를 터트리며 현성과 랭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앙!
방패로 오크 대족장의 공격을 막아 낸 랭커 하나가 힘없이 뒤로 밀려 났다.
오크 대족장이 다음 목표로 삼은 것은 현성이었다.
휘익!
오크 대족장의 도끼가 현성을 향해 날아왔다.
‘할 수 있을까?’
현성은 당장에라도 블링크 스킬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그리고 오크 대족장을 향해 달려들며 용혈검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루시아에게 훈련받은 그대로 스스로를 속였다.
‘죽는다.’
현성과 오크 대족장이 가진 힘의 차이는 명백했다.
속도는 현성이 약간 더 빨랐지만 힘은 오크 대족장의 압도적인 우위였다.
이대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충돌하면?
죽거나 반병신이 된다.
불사의 서나 블링크로 인한 변수는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죽어. 죽는다.’
현성이 자기 자신을 속였다.
-패시브 스킬 생존 본능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현성의 용혈검과 오크 대족장의 도끼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놀랍게도 현성은 단 한 발짝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오크 대족장이 뒤로 밀려 났다.
타악!
현성이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용혈검을 휘둘렀다.
좌악!
오크 대족장의 두꺼운 가죽과 질긴 근육이 갈라지며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크와악!
오크 대족장이 노성을 터트리며 현성을 향해 양손에 들린 도끼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파강! 파강! 파강!
용혈검과 쌍도끼가 충돌하며 강한 충격파를 토해 냈다.
놀랍게도 오크 대족장이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랭커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어찌하지 못했던 괴물 오크를 혼자 상대하고 있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랭커들이 도주 대신 공격 준비를 했다.
현성을 도와 오크 대족장의 숨통을 끊어 버릴 작정이었다.
오크 대족장만 잡으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전황을 단숨에 뒤집을 수도 있다.
“도망쳐요!”
전투에 합류하려는 랭커들을 향해 현성이 외쳤다.
“버프 계열의 패시브 스킬이에요! 오래 못 버텨요!”
현성의 말에 합류하려던 랭커들이 재빨리 후퇴하기 시작했다.
‘엄청 강하네.’
현성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존 본능 스킬이 발동했음에도 오크 대족장을 압도하지 못했다.
오크 대족장은 조금씩 뒤로 밀릴 뿐 결코 일방적으로 압도당하지 않았다.
현성은 랭커들이 오크 대족장과 거리를 벌린 것을 확인한 후 블링크 스킬을 발동했다.
슈욱!
오크 대족장과 싸우던 현성이 랭커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와 함께 퇴각이 시작되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퇴각하는 현성의 눈에 오크들에게 무참히 살육당하는 플레이어와 군인 들의 모습이 보였다.
귀로는 살려 달라는 처절한 외침과 죽어 가는 이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마치 지옥도를 보는 것만 같았다.
현성이 중간중간 용혈검을 휘두르고 스킬을 사용해 몇몇 플레이어와 군인 들을 구하기는 했지만, 죽어 나가는 이들의 숫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렇게 구함을 받은 플레이어와 군인 들이 현성과 랭커들이 뚫어 놓은 퇴로를 통해 지옥 같은 전장을 탈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성과 랭커들이 거의 전장을 벗어났을 무렵…….
‘뭐지?’
하늘에서 강렬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피해!”
현성의 외침에 랭커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현성이 블링크 스킬을 사용해 몸을 피했다.
현성의 경고를 들은 랭커들도 재빨리 몸을 피했다.
하지만 모두 다 화를 피하지는 못했다.
꽈아아아앙!
마력이 가득 실린 화염의 폭풍이 현성과 랭커들이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몸을 피하지 못한 랭커들이 그대로 화염에 휩싸여 한 줌의 재로 변했다.
현성과 랭커들의 뒤를 따라 도주하던 플레이어와 군인 들 역시 모조리 재가 되었다.
실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현성이 마력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든 오크 한 마리가 자리해 있었다.
‘전설 등급 오크가 한 마리가 아니었어.’
현성이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미리 준비를 했다지만 수백 명에 달하는 고레벨 플레이어를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는 위력의 스킬이다.
전설 등급 몬스터가 아니라면 절대 보여 줄 수 없는 파괴력이었다.
‘블링크.’
현성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목표는 지팡이를 든 오크였다.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한 장소입니다. 액티브 스킬 블링크 – 영웅 등급의 발동이 캔슬되었습니다.
‘대비를 해 놨구나.’
현성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저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아마 오크 대족장이 아니라 저놈을 노렸을 것이다.
크와아악!
등 뒤에서 오크 대족장의 포효가 들려왔다.
처음부터 부지런히 쫓아오더니 어느새 근처까지 도착한 모양이었다.
현성은 살아남은 랭커들과 함께 전장을 이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