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 아버지의 진심 (44/225)
  • ┃아버지의 진심

    던전을 빠져나온 이누쿠소는 바로 본부에 연락을 취했다.

    -작전은 성공했나?

    “실패했습니다.”

    -실패? 도대체 왜?

    타나카 장관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국 플레이어 협회가 움직였습니다. 제가 빠져나온 것도 기적입니다. 당장 본국으로 귀환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리고 최현성과 우시아의 전투력은 확인했나?

    “확인했습니다. 일단 자세한 정보는 본국으로 귀국 후 전달하겠습니다.”

    -알겠네.

    보고를 끝낸 이누쿠소는 바로 이번 작전에 도움을 줬던 정보 요원들을 안가로 호출했다.

    이누쿠소는 범죄를 저지르고 죄를 감형받을 목적으로 비밀 요원이 된 게 아니다.

    당연히 배신할 확률도 제로에 가까웠다.

    그런 이유로 이누쿠소는 현장에 투입된 정보 요원들의 지휘권 역시 가지고 있었다.

    상관의 호출을 받은 정보 요원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모여들었다.

    “다 모였나?”

    “예!”

    이누쿠소의 말에 정보 요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흔적은 철저하게 지웠겠지?”

    “물론입니다.”

    “이제 본국으로 이동하기만 하면 됩니다.”

    정보 요원들의 대답을 들은 이누쿠소가 단검을 뽑아 들었다.

    갑자기 무기를 뽑아 든 상관의 모습에 정보 요원들이 각자 무기를 잡고 주변을 경계했다.

    안가에 침입자가 들어왔다고 착각한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적을 경계하는 정보 요원들을 향해 이누쿠소의 단검이 날아들었다.

    “아아악!”

    “커억!”

    일반인과 비전투 계열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정보 요원들은 이누쿠소의 공격에 무력하게 죽어 나갔다.

    “도대체 왜 대장님이……!”

    “대장님이 미쳤다!”

    당황한 정보 요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했다.

    하지만 민첩 스텟을 주력으로 찍은 이누쿠소의 이동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대장님!”

    마지막으로 남은 정보 요원 하나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애원했다.

    이누쿠소는 훌륭한 상관이었고 그런 만큼 부하들에게 인망도 좋았다.

    이누쿠소 역시 정보 요원들을 도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범죄자 출신인 비밀 요원들과 다르게 정보 요원들은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일본의 영광을 위해 음지에서 활약하는 애국자들이었다.

    “미안하다.”

    푸욱!

    이누쿠소의 단검이 마지막 남은 생존자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누쿠소도 이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주인님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누쿠소의 머릿속은 주인님이 준 임무를 완수하고 딸을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누쿠소는 안가에 남은 폭발물을 작동시켰다.

    그리고 안가를 빠져나갔다.

    * * *

    ‘포인트가 훅 빠져나가서 걱정했었는데 알아서 벌어다 주네.’

    현성은 일본 비밀 요원들을 죽이고 나온 스킬북과 아이템 중 자신과 루사아가 익힐 만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판매창에 올려 버렸다.

    사람을 죽이고 나온 것들이라 조금 찝찝하기는 했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팔리지는 않겠지만, 팔리기만 한다면 꽤 많은 포인트를 가져다줄 것이다.

    스킬북, 무기, 방어구, 장신구를 모두 합치면 판매창에 올린 영웅 등급 아이템만 24개나 됐으니까 말이다.

    ‘이것들만 다 팔려도 지금까지 번 포인트의 절반가량 되겠네.’

    던전에서 강도로 돌변하는 이들이 종종 나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현성은 무고한 플레이어들을 살해하고 아이템을 얻은 게 아니다.

    자신을 죽이러 온 적들을 척살하고 전리품을 얻은 것이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다.

    ‘균형만 잘 잡으면 돼.’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은 제거한다.

    개인의 이득을 위해 죄 없는 이들을 죽이지는 않는다.

    이게 현성이 스스로 만든 규칙이었다.

    * * *

    이누쿠소는 일본으로 귀국한 뒤 바로 타나카 장관을 만났다.

    “정보 요원들까지 모두 당했다니, 한국이 미친 모양이군.”

    타나카 장관이 상처 입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 정부에서 공식적인 항의가 들어왔습니까?”

    이누쿠소의 물음에 타나카 장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국 놈들도 이걸 당장 공론화시킬 생각은 없는 것 같네. 아마 결정적인 순간에 써먹겠지.”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이번 일이 실패했으니 장관님이 자리를 유지하시기가 힘들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누쿠소의 말에 타나카 장관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주물렀다.

    “피해가 너무 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난 완전히 매장당할 거야.”

    큐슈 지역 일도 모자라 비밀 요원들까지 대거 잃어버렸다.

    “정보를 쥐고 있는 게 힘 아니겠습니까? 최현성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움켜쥐고 있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딜이 가능합니다.”

    “알고 있네.”

    “혹시 정보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경우는 없을까요?”

    최현성에 대한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타나카 장관의 재기는 완전히 물거품이 된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를 포함해 내 최측근들밖에 모르는 정보니까.”

    이누쿠소는 타나카 장관의 오른팔 같은 존재였다.

    “정보를 철저하게 차단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최측근들이라고 해도 조심하십시오.”

    이누쿠소의 말에 타나카 장관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딸 병원비 때문에 그러는 모양이군. 걱정하지 말게 내가 실각하고 후임자가 와도 자네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그대로 유지될 걸세. 자네 실력은 비밀 요원들 중 최고 아닌가? 사실 그놈들이 랭커급이라고 자처하고 다니지만, 그놈들 중에서 진짜 랭커급 실력자는 자네밖에 없네.”

    “제가 타나카 장관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 가능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게. 어차피 후임자도 같은 당 사람이니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거야. 그보다 최현성과 우시아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게.”

    타나카 장관의 말에 이누쿠소는 현성의 지시대로 적당히 꾸민 정보를 전달했다.

    그리고 타나카 장관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타나카 장관이 자택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되었다.

    타나카 장관의 최측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 * *

    “깔끔하네.”

    현성이 타나카 장관의 자살 소식이 실린 일본 인터넷 기사를 보며 말했다.

    “그자는 어떻게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루시아의 물음에 현성이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고 정보만 빼먹어도 괜찮고, 그게 아니면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하는 것도 괜찮겠죠.”

    이누쿠소는 두 개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음지에서 활동하는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비밀 요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양지에서 활동하는 일본 플레이어 협회의 간부였다.

    둘 중 어느 신분을 사용하더라도 이용해 먹을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일단 사냥이나 가죠.”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현성은 루시아보다 더한 사냥광이었다.

    * * *

    아버지가 의식을 차렸다.

    현성은 곧바로 가족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마른 장작 같던 아버지의 몸에 약간의 살이 붙어 있었다.

    아직 말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조금씩이나마 움직였다.

    “여보!”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어머니의 손을 붙잡으려고 했다.

    “무리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의 눈꺼풀이 깜빡였다.

    “제 말이 들려요?”

    어머니의 물음에 아버지가 다시 눈꺼풀을 깜빡였다.

    “병은 다 나았어요. 이제 회복하시기만 하면 돼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뭔가 말을 하려고 했다.

    “프허억.”

    하지만 기도에 뚫린 구멍 때문에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몸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했던 신체는 아직 많은 것이 부족했다.

    스스로 자가 호흡을 하지도 못했고 음식물을 씹을 수도 없었다.

    “나중에 말씀하세요.”

    어머니의 말에 결국 아버지가 말하기를 포기했다.

    “아빠…….”

    누나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현성도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전처럼 차갑지 않았다.

    따듯한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어억!”

    아버지가 현성을 향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현성이 아버지의 손을 더욱 꼭 잡아 주었다.

    “어억!”

    한데 뭔가 이상했다.

    아버지가 계속 현성을 향해 말을 걸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아버지가 너한테 고맙다고 하시려나 보다.”

    어머니의 말에 현성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

    그때 현성의 손에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력?”

    현성이 황당한 표정으로 야성의 본능 스킬에 집중했다.

    확실했다.

    상당히 미약하기는 하지만 분명 마력이었다.

    “분명히 완치되셨다고 했는데?”

    마력 역류증은 엘릭서로 인해 말끔하게 치료되었다.

    그런데 왜 그런 아버지의 몸에서 마력이 느껴진다는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이니?”

    “완치되신 거 아니야?”

    어머니와 누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현성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때 현성 가족을 따라 함께 병원에 왔던 루시아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플레이어로 각성하신 게 아닐까요?”

    루시아의 말에 현성과 가족들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루시아가 그 말과 함께 현성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님, 현성 씨에게 상태창을 공개한다는 의지를 보내 보시죠.”

    루시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성의 눈앞에 상태창 하나가 떠올랐다.

    이름 : 최형규

    플레이어 레벨 : 1

    메인 직업 : 없음.

    스텟 : [힘 1] [민첩 1] [체력 1] [마력 60] [정신력 10

    미분배 스텟 : [0]

    액티브 스킬 : [파이어 스피어 – 희귀 등급] [파이어 애로우 – 일반 등급

    패시브 스킬 : 없음.

    상당히 단출하기는 하지만 분명 플레이어의 상태창이었다.

    “정말 각성하셨네.”

    현성의 말에 어머니와 누나의 표정이 기쁨으로 물들었다.

    “네 아버지 병이 갑자기 나으신 게 각성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의사도 원인을 모르더니, 그래서 나으셨구나.”

    어머니와 누나는 순수하게 아버지의 플레이어 각성을 기뻐했다.

    아버지의 병이 치료된 이유가 각성을 해서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성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병이 치료된 원인은 엘릭서를 복용했기 때문이지 각성을 해서가 아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단순한 우연? 그게 아니면 혹시 엘릭서에 일반인을 플레이어로 만들 수 있는 힘이라도 있는 건가?’

    현성은 혼란스러웠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어머니와 누나에게도 엘릭서의 존재를 밝힐 수는 없었다.

    자칫 엘릭서의 효능이 외부로 흘러 나가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엘릭서는 모든 부상과 질병을 치료하는 기적의 포션이다.

    엘릭서의 존재가 알려지면 탐욕을 부리는 이들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에는 늙고 병든 권력자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부자들은 제대로 활용도 하지 못하는 거액의 패시브 스킬북을 구입해 건강을 위해 익힌다.

    그런 이들에게 엘릭서의 존재가 알려지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게 자명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오히려 잘된 일이다.

    진실을 모르는 이들은 어머니와 누나처럼 플레이어로 각성했기에 아버지의 마력 역류증이 완치되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 * *

    의식을 되찾은 이후 아버지는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플레이어의 회복력은 일반인과 차원이 달랐으니까 말이다.

    불과 일주일 만에 음식물을 직접 섭취하고 보조 기구에 의존한 상태로나마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기도에 뚫린 구멍도 말끔하게 메워졌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아버지가 깨어난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 곁에 착 달라붙어 재활 훈련을 도왔다.

    사냥을 끝낸 현성이 병원을 찾았다.

    “저 왔어요!”

    현성이 병실 문을 열며 외쳤다.

    “현성이 왔니?”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현성을 반겼다.

    “오늘도 고생 많았다.”

    미안함이 가득 담긴 아버지의 말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고생은요. 별로 힘들지도 않았어요. 아빠는 어제보다 더 좋아 보이시네요.”

    “하루가 다르게 몸에 힘이 붙는구나.”

    “플레이어로 각성하셨잖아요.”

    현성과 아버지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온 김에 잠깐 집에 좀 다녀와야겠다. 챙겨 올 게 좀 있어서.”

    “아예 주무시고 오세요. 오늘 밤은 제가 여기서 자고 갈게요.”

    현성의 말에 어머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도 사냥하고 와서 힘들잖아. 그냥 집에서 편하게 자.”

    “여기도 편해요. 특실이잖아요.”

    현성의 말에 어머니가 잠시 망설였다.

    “당신은 집에서 편히 쉬고 와요. 오늘은 아들이랑 둘이서 오붓하게 보낼 테니까.”

    아버지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집에서 자고 내일 짐 챙겨서 다시 올게요.”

    “그렇게 하세요. 제가 집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넌 병실 지켜야지. 마중도 나오지 마라.”

    어머니가 그 말과 함께 짐을 챙겨 병실을 나갔다.

    “현성아.”

    “네, 아버지.”

    “고맙다. 내가 나은 건 다 네 덕분이다.”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다 아버지가 각성하신 덕분이죠.”

    현성의 대답을 들은 아버지가 잠시 주위를 살폈다.

    특실 병동에는 현성과 아버지 말고 아무도 없었다.

    “현성아, 네 덕분인 거 다 안다. 네가 먹인 약 덕분에 내가 나았어.”

    아버지의 말에 현성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내가 그동안 몸은 움직이지 못했어도 정신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리고 네가 병문안 왔을 때 했었던 말들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 넌 내 병을 고쳐 준다고 했어. 그리고 진짜 고쳐 줬다.”

    “아버지.”

    “네가 준 약을 먹고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 약이 몸을 좀먹던 마력을 모조리 흡수하더구나. 흡수가 끝난 후 난 플레이어로 각성했다. 내가 플레이어로 각성했기 때문에 병이 나은 게 아니다. 네가 병을 치료해 줬기에 내가 플레이어로 각성하게 된 거야.”

    아버지의 말에 현성은 할 말을 잃었다.

    그와 함께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가 마력 역류증을 앓고 있었기에 플레이어가 된 건지, 아니면 엘릭서 때문에 플레이어가 된 건지 말이다.

    하지만 실험해 보기에 엘릭서는 너무 고가였다.

    또 실험을 해 볼 대상도 없었다.

    설사 엘릭서가 일반인을 플레이어로 만들어 준다고 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엘릭서는 무려 1,000억 포인트나 하는 고가의 포션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약에 대해 깊게 캐물을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불치병을 고친 약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좋을 게 없다는 거 나도 잘 안다. 그냥 너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미안하다. 네가 나 때문에 얼마나 큰 고생을 했을지…….”

    현성의 아버지 최형규는 자신의 병을 고친 약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약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능히 짐작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아직 한창 일할 나이 아니냐.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다.”

    “전 그냥 집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돈은 제가 충분히 잘 벌고 있잖아요.”

    현성의 말에 아버지가 쓴웃음을 지었다.

    “쉰일곱이면 한창 일할 나이다. 벌써부터 뒷방 늙은이 취급하지 마라.”

    “던전은 위험한 곳이에요. 언제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몰라요. 몬스터도 위험하지만 사람이 더 위험해요.”

    “험한 일을 많이 겪은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나는 자식이 목숨 걸고 번 돈으로 호의호식하고 싶은 생각 없다. 오히려 너나 앞으로 던전에 들어가지 마라. 돈도 어느 정도 벌었으니 더는 위험한 일을 할 필요가 없지 않냐?”

    아버지의 말에 현성이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는 원래 이런 분이셨다.

    책임감이 강하셨고, 늘 가족에게 헌신하는 분이셨다.

    자식들에게 주는 것은 아끼지 않으셨지만 받는 것은 꺼려 하셨다.

    “정말 던전에 들어가실 생각이세요?”

    “이미 마음 굳혔다.”

    “엄마가 가만히 있지 않으실걸요.”

    현성의 말에 아버지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네 엄마 허락은 이미 받았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정말 엄마가 허락하셨어요?”

    현성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아버지가 던전에 들어간다고 고집을 피울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

    아버지의 성격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허락하실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 그러니까 네 엄마 걱정은 하지 마라.”

    “도대체 왜 엄마가…….”

    현성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현성의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현성은 대학교를 휴학했다.

    최현지는 파혼당했다.

    그 후 현성은 막노동을 해서 병원비를 댔다.

    최현지는 결혼 비용으로 모아 뒀던 돈도 모자라 월급과 아르바이트비까지 모두 병원비로 쏟아부었다.

    현성이 플레이어가 되어 경제적으로 여력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 등골 빼먹은 일이 없던 게 되는 건 아니었다.

    현성의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능력이 없으면 모를까 현성의 아버지가 플레이어로 각성했다.

    플레이어로 각성했다면 현성과 동등한 조건이다.

    던전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누나도 알아요?”

    “모른다.”

    “누나가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너희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결심 바꿀 생각 없다.”

    아버지의 고집에 현성은 누나에게 SOS를 쳤다.

    최현성과 최현지는 사흘 동안 부모님을 설득했다.

    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부모님은 생각을 바꿀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하아, 골치가 아프네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렇게 싫으십니까?”

    “당연히 싫죠.”

    “전 그렇게 무작정 반대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네?”

    “플레이어가 되었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험난한 시기에 큰 축복입니다. 일반인들은 갑자기 차원 게이트가 열리거나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다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확률이 상당히 낮잖아요.”

    “확률은 점점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차원 게이트는 계속 열릴 거고 위험한 몬스터는 끊임없이 등장할 겁니다.”

    대격변과 같은 극심한 변화는 당분간 없다.

    하지만 자잘한 변화는 계속해서 일어난다.

    플레이어가 몬스터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면 그때부터는 일반인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루시아의 말대로 플레이어로 각성하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일반인보다는 최소한의 대비를 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생존 경쟁에서 월등히 유리했다.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본의 경우만 봐도 몬스터의 위험성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럼 아버지가 던전에 들어가시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던전은 위험해요. 루시아도 알잖아요.”

    “주군의 힘이라면 아버님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수호의 반지, 교류의 팔찌, 이동용 스크롤만 있어도 웬만한 위기는 모두 넘길 수 있다.

    “아버님은 이미 엘릭서의 존재를 알고 계십니다. 비약이라는 비밀이 하나 더 풀려도 문제 될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아버님이 강해지시면 주군의 부담이 줄어들게 됩니다.”

    맞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강해지면 현성의 입장에서는 지켜야 하는 대상 중 하나가 줄어드는 셈이 된다.

    유사시 아버지가 가족들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될 수도 있다.

    ‘좋게 생각하자.’

    현성이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반대를 해도 결국 아버지는 던전에 들어가실 것이다.

    어차피 던전에 들어가실 거라면 안전이라도 확보해 드리는 게 나았다.

    결정적으로 아버지는 현성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우군이다.

    백우신이나 이누쿠소 같은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설사 휘하에 들어왔다고 해도 함부로 비약을 건넬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르다.

    현성이 다시금 병원을 찾았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갈 거다.”

    아버지의 말에 현성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어요. 반대하러 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따라 주셔야 해요, 아버지.”

    “네가 하는 말?”

    “플레이어로서는 제가 아버지 선배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렇게 하마. 나도 일부러 위험을 자처할 생각은 없다.”

    현성의 아버지 최형규는 아들이 던전에서의 주의 사항 같은 걸 알려 주려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제가 하는 제의부터 받아들이세요.”

    -플레이어 최형규에게 등용을 제의하셨습니다.

    “이게 뭐냐?”

    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단 받아들이세요.”

    현성의 말에 아버지가 결국 등용 제의를 수락했다.

    -플레이어 최형규가 등용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통솔력 10이 소모됩니다.

    “엄마랑 누나는 모르지만 전 조금 특별한 플레이어예요.”

    “그런 것 같구나.”

    현성의 가족들은 플레이어 최현성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플레이어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거라고만 판단했다.

    아버지 최형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구해 온 약이 특별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최현성은 각성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신규 플레이어다.

    우연히 약의 존재에 대해 알았고, 그 후 온갖 고생을 하며 약을 구했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엄마나 누나한테도 비밀이에요.”

    “그렇게 하마.”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성이 비약 하나를 구매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최하급 힘 스텟 증가 비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뭐냐?”

    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보석이 생겨났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드셔 보세요.”

    “이걸 먹으라고?”

    아무리 봐도 먹는 용도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이 하는 말이었다.

    최형규가 보석을 입에 넣었다.

    입에 들어간 순간 보석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강한 쾌감이 전신을 뒤덮었다.

    자신의 힘이 강해졌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 스텟이 올랐어?”

    1이던 힘이 2로 바뀌었다.

    “스텟을 올려 주는 비약이에요.”

    현성이 비약 하나를 더 구매해 아버지에게 건넸다.

    이번에는 바로 먹지 않고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이, 이런 게 있다니.”

    최형규는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은 후 플레이어에 대해 공부했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삶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와 함께 아들이 엄청난 역경을 뚫고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내에게 2차 대격변 당시 현성이 죽은 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더더욱 던전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현성 혼자만 그 위험을 짊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어서 힘을 키워 아들을 돕고 싶었다.

    아들에게 두 번씩이나 생명이 위태로운 위기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최형규가 던전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아들을 지켜 주기 위해서였다.

    어서 빨리 성장해 아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아들 역시 고작 1년 차를 갓 넘긴 신규 플레이어다.

    최형규는 자신이 가진 스텟과 스킬이 꽤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죽어라 노력하면 금방 아들과 같이 사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함께 사냥하다가 전과 같이 아들의 생명이 위태로운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의 목숨을 다해 보호할 각오를 했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최형규의 아들은 이제 겨우 1년 차에 불과한 신규 플레이어가 절대 가지고 있을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드세요.”

    현성의 말에 최형규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이거 엄청 귀한 물건 아니냐?”

    스텟을 올려 주는 비약.

    비록 제한이 있다고는 하지만 존재가 알려지는 순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엄청 귀하죠. 이 세상에서 저밖에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니까요.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다른 사람한테는 몰라도 저한테는 그다지 값어치 있는 물건은 아니니까요.”

    수천억 포인트짜리 아이템을 구매할 재력을 가진 현성에게 고작 500만 포인트짜리 비약은 티끌이나 다름없었다.

    “너밖에 구할 수 없다고?”

    “네, 그래서 엄마랑 누나한테도 비밀로 했어요. 자칫 비약의 존재가 알려지기라도 하면 난리가 날 테니까요.”

    “나를 치료한 약도 이렇게 얻은 거냐?”

    “맞아요.”

    “그것도 엄청 귀한 물건이었겠구나.”

    “저밖에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니까요. 하지만 크게 부담될 정도의 가격은 아니었어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구나.”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냥 제가 특별한 플레이어라는 사실만 알고 있으시면 돼요.”

    “넌 이걸 다 먹은 거냐?”

    최형규의 물음에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도 먹었어요.”

    “난 안 먹어도 된다.”

    최형규가 손사래를 쳤다.

    이런 물건이 값어치가 없을 리 없었다.

    아들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괜히 아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걱정하지 말고 드세요. 저한테는 정말 값어치가 큰 물건이 아니니까요.”

    현성이 연속적으로 비약을 구매했다.

    순식간에 비약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누가 오기 전에 어서 드세요. 일단 구매한 이상 환불도 못 해요. 얼른 그거 드시고 절 도와주셔야죠.”

    환불도 못 한다는 말과 자신을 도와 달라는 현성의 말을 들은 최형규의 손이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약을 모두 섭취한 최형규의 모습은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건강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마른 체형이었던 최형규의 몸이 탄탄한 근육질로 변했다.

    “정말 엄청나구나.”

    최형규 역시 스스로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이것도 익히세요.”

    현성이 스킬북들을 꺼내며 말했다.

    모두 원거리 공격 스킬북과 방어 스킬북이었다.

    “원거리에서 엄호만 하라는 뜻이냐?”

    스킬북을 확인한 최형규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아버지 포지션 자체가 원거리 딜러였잖아요.”

    “그렇게 하마.”

    최형규가 스킬북을 모두 익혔다.

    “던전은 제가 지정해 준 사람과 함께 가세요.”

    “시아를 말하는 거냐?”

    최형규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지를 지켜 줄 튼튼한 탱커가 한 분 있어요. 그분과 함께 가세요.”

    “그렇게 하마. 그런데 이 비약이라는 거 일반인도 먹을 수 있냐?”

    “저도 모르겠어요. 테스트해 본 적이 없어서요. 함부로 테스트해 볼 수도 없는 일이고요.”

    “스킬북도 익힐 수 있다는 거 보면 이것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버지의 중얼거림에 현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엄마한테 드리고 싶으세요?”

    현성의 물음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먹으니 몸이 정말 날아갈 것같이 상쾌하구나. 30년은 젊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네 엄마도 먹으면 좋을 것 같다.”

    “그건 안 돼요. 사실 아버지가 엘릭서를 드신 걸 기억하지 못하셨거나 던전으로 들어가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아버지께도 비약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을 거예요.”

    “하긴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게 없지.”

    최형규는 순순히 현성의 말을 수긍했다.

    아까워서가 아니라 비밀이 새어 나가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을 염려하는 것이다.

    “내일 당장 퇴원하세요.”

    “그렇게 하마. 던전은 언제부터 들어갈 수 있는 거냐? 내일 당장 갈까?”

    최형규는 의욕이 넘쳤다.

    “일단 플레이어 아카데미부터 수료하세요.”

    현성의 말에 최형규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내가 마음이 앞섰구나. 깜빡했다.”

    부끄러워하는 최형규의 모습을 본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 * *

    일본 정부는 타나카 장관의 죽음을 자살로 보도했다.

    일본 국민들은 타나카 장관이 큐슈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했다.

    언론 보도가 그런 방향으로 여론을 몰고 갔기 때문이다.

    가장 큰 책임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자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반발도 약간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그건 대외적인 발표였을 뿐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타나카 장관의 암살 사건으로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영웅 등급 은신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의 소행이 확실합니다.”

    조사관의 보고에 아쿠나베 총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범인의 신원은?”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일본 내에 영웅 등급 은신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가 몇이나 되지?”

    “플레이어들이 스킬 공개를 꺼리는 상황이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으득!

    아쿠나베 총리가 이를 악물었다.

    “감히 플레이어 나부랭이가 정부의 고위 관료를 죽이다니.”

    이건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죽은 타나카 장관은 아쿠나베 총리의 사람이었다.

    물론 조만간 큐슈 사태의 책임을 뒤집어씌워 실각시킬 예정이긴 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실각시키는 것과 누군지도 모르는 플레이어에게 암살당한 것은 사태의 경중이 달랐다.

    장관을 자살로 위장시켜 죽였다.

    그 말은 다른 고위 관료들 역시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결정적으로 장관을 죽인 놈이 총리를 노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경계를 세 배로 강화하게.”

    “예!”

    경계 강화를 명령한 아쿠나베 총리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했다.

    도대체 왜 플레이어가 타나카 장관과 최측근들을 제거했을까?

    절대 단순한 암살이 아니다.

    정치적인 이득을 노린 행위였다.

    ‘내가 타나카 장관을 경질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럴 수도 있다.

    ‘야당 놈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어.’

    야당은 타나카 장관이 자살했다고 해서 아쿠나베 정부의 무능을 덮을 수는 없다고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사실 야당은 일본 정치계에서 큰 존재감이 없었다.

    한데 이번 큐슈 사태를 계기로 점점 존재감을 키워 가고 있었다.

    ‘야당 놈들 짓인가? 아니면 당내 다른 파벌의 소행인가?’

    아쿠나베 총리는 적이 너무 많았다.

    물론 그 적들의 세력은 상당히 보잘것없었다.

    ‘누구 짓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놈들 중 하나가 확실해.’

    아쿠나베 총리의 두 눈이 진한 살기로 물들었다.

    ‘가만두지 않겠어.’

    적이 누군지 알 수 없다?

    그럼 다 쓸어버리면 된다.

    “현재 비밀 요원들을 총괄하고 있는 자가 누군가?”

    아쿠나베 총리가 비서에게 물었다.

    “상급자가 전부 사망해서 현재는 이누쿠소가 임시로 맡고 있을 겁니다.”

    “오사카의 영웅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이누쿠소라면 믿을 수 있다.

    그는 타나카 장관의 오른팔이자 자신의 파벌에 속해 있는 플레이어였으니까 말이다.

    아마 상관의 암살에 강한 분노를 느끼고 있을 터.

    그런 만큼 이번 일을 시행하는 데 가장 적격인 인물이었다.

    “그자를 비밀리에 부르게. 지시할 일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 * *

    현성은 다시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현성과 루시아는 던전을 돌며 칭호를 하나둘 늘려 나갔다.

    아버지는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입소했고, 백우신도 부지런히 칭호를 늘려 나갔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이누쿠소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인님, 이누쿠소입니다.

    “무슨 일이지?”

    현성은 이누쿠소에게 물었다.

    현성은 이누쿠소에게 특별히 추가 임무를 하달하지 않았다.

    이누쿠소의 입장에서는 현성의 지시가 내려오기 전까지 자유를 만끽하고 있으면 그만이다.

    굳이 먼저 현성에게 연락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쿠나베 총리를 만났습니다.

    “무슨 일로?”

    현성의 물음에 이누쿠소가 아쿠나베 총리를 만나 들은 지시 사항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누쿠소의 이야기를 들은 현성은 기가 막혔다.

    아쿠나베 총리는 제대로 헛다리를 짚었다.

    아쿠나베 총리는 이누쿠소에게 당내 적대 파벌과 야당의 비리 혐의를 조작하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했다.

    -최종적으로는 자살을 위장해 제거할 계획입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아쿠나베 총리의 의지였다.

    “그 일을 너한테 맡겼다고?”

    -예, 현재 아쿠나베 총리 파벌에 있는 플레이어 중에서는 제가 가장 큰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현성은 기가 막혔다.

    타나카 장관과 그 최측근들을 암살한 인물이 바로 이누쿠소다.

    한데 그런 이누쿠소에게 타나카 장관 암살 사건의 보복을 맡기다니.

    “꽤 큰 신임을 받고 있는 모양이군.”

    -그런 편입니다. 주인님을 납치하는 작전의 총책임자로 제가 임명된 이유도 정부 관료들이 다른 비밀 요원들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현성의 입장에서는 우연히 고른 패가 최상의 패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타나카 장관 암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당내 적대 파벌과 야당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것이다.

    자신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대한 보복으로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건 현성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행동할까요?

    이누쿠소의 물음에 현성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당내 적대 파벌과 야당에 이 사실을 흘리는 방법도 있고, 아쿠나베 총리의 지시를 철저히 따라 신임을 쌓는 방법도 있다.

    “일단 아쿠나베 총리의 지시에 따르면서 신임을 쌓아 봐. 가능하다면 플레이어 협회나 차원 게이트 관리부 쪽에 세력을 키우고.”

    -알겠습니다, 주인님.

    “아, 그리고 미국은 잘 다녀왔나?”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주인님이 주신 약 덕분에 딸아이가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주인님의 크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딸은 일본으로 데리고 올 생각인가?”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게 할 계획입니다.

    좋은 선택이었다.

    이누쿠소가 하는 일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당장 타나카 장관 암살 사건의 진실만 드러나도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거기다 이누쿠소의 딸이 갑자기 완치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봐야 좋을 게 없었다.

    “딸의 완치 사실은 숨기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일단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전과 같이 거액의 치료비를 계속 송금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해.”

    이누쿠소가 혹시 잘못될 때를 대비해서라도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현성은 이누쿠소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까지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나 한국에 영향이 올 만한 큰 사건이 터지지 않은 이상 나에게 연락할 필요 없어. 모든 일은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움직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누쿠소와의 통화가 끝났다.

    ‘내가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일본의 정치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현성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이누쿠소에게 세력을 키우라는 지시를 내리기는 했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유사시에 써먹기 편하려면 어느 정도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현성이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다.

    바로 이누쿠소가 상당히 유능한 인재라는 점이었다.

    타나카 장관과 아쿠나베 총리가 괜히 이누쿠소를 신임하는 게 아니었다.

    이누쿠소는 윗사람에게 신뢰받는 방법과 아랫사람에게 지지받는 방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처세술의 달인이었다.

    그런 그가 현성의 지시에 따라 본격적으로 세력을 키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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