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 이누쿠소 (43/225)
  • ┃이누쿠소

    바로 다음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현성은 가족들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정말 호전된 건가요?”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죽어 가던 세포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의사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의사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저한테 감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솔직히 저도 왜 갑자기 환자의 상태가 호전됐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요. 분명히 평소와 똑같은 양의 억제제를 투입했을 뿐인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건지…….”

    “혹시 아버지의 병이 자연적으로 완치된 건 아닐까요?”

    현성의 말에 의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기적이라고 말씀드린 건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지 완치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원인을 모르는 만큼 언제 다시 상태가 악화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시 검사를 해 주세요. 마력 역류증이 완치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뭐,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재검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미리 검사 비용을 전액 결제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해 주십시오.”

    현성의 굳건한 의지를 확인한 의사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며칠 뒤 아버지의 재검 결과가 나왔다.

    놀랍게도 완치 판정이 나왔다.

    어머니와 누나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재활 훈련만 잘 받으시면 정상적인 삶을 사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재활 치료 전문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군요.”

    현성의 말에 의사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옮기실 필요가 있을까요? 병원을 옮기지 않으시더라도 이곳에서 충분히 재활 치료가 가능합니다. 또 혹시 모를 병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재활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옮기겠습니다. 퇴원 절차 진행해 주시죠.”

    현성의 강경한 의지에 의사는 결국 퇴원 수속을 밟아 줄 수밖에 없었다.

    현성은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를 재활 치료 전문 병원으로 모셨다.

    현성 가족이 떠나간 뒤 의사는 불치병이 갑자기 완치된 이유를 찾기 위해 현성의 아버지에게 투입되었던 억제제를 낱낱이 분석했다.

    하지만 아무리 분석에 분석을 거듭해도 불치병인 마력 역류증이 완치된 이유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 * *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비밀 요원 중 하나가 갑갑하다는 듯 물었다.

    “타깃의 던전 출입 패턴이 갑자기 불규칙하게 변했다. 다시 일정하게 변하기 전까지는 대기해야 한다.”

    이누쿠소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냥 던전에 들어갔을 때 공격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전에 말했다시피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움직인다. 그런 만큼 조금의 변수도 용납할 수 없다.”

    이누쿠소의 대답에 다른 비밀 요원들이 긴 한숨을 토해 냈다.

    “자위대 출신이라 그런지 엄청 깐깐하네.”

    “그러게 말이야.”

    이누쿠소는 플레이어로 각성하기 이전에 자위대 특수부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본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자위대에 속해 있을 때 꽤 잘나갔던 모양이더라고.”

    “플레이어 시절에도 잘나갔어. 오사카의 영웅이라고 불리면서 엄청 칭송을 받던 분이잖아. 그런데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왜 우리랑 같이 움직이는지 모르겠어.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지른 거지?”

    “난 미성년자 강간이라고 들었는데?”

    “여자아이가 아니라 남자아이를 강간했다고 하던데?”

    “그냥 강간이 아니라 간살 아니었어?”

    동료들의 비아냥거림이 귓가를 울렸다.

    이누쿠소는 동료들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그들을 동료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와중에 함께하게 된 도구 같은 존재였다.

    도구가 비아냥거린다고 화를 내는 인간은 없다.

    작전을 실행하고 있는 와중에도 저런 태도를 보인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막상 작전에 들어가면 지시는 잘 따른다.

    ‘일주일만 더 지켜본다.’

    목표물의 행동 패턴이 다시금 일정해지기 시작했다.

    일주일간 동일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면 그때 움직일 생각이었다.

    * * *

    현성은 포인트가 모이는 족족 비약을 구매했다.

    루시아를 먹이기 위해서였다.

    루시아 역시 현대 물품을 팔아 번 돈으로 비약을 구매해 섭취했다.

    현성처럼 즉각적으로 강해지지는 못했지만 루시아 역시 빠르게 스텟이 상승했다.

    그와 동시에 그간 소홀했던 사냥에도 열을 올렸다.

    백우신은 혼자서 잘 성장하고 있었다.

    현성과 루시아처럼 빠르게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차곡차곡 업적을 쌓아 칭호를 늘려 가고 있었다.

    “어?”

    사냥에 열중하던 현성의 표정의 굳어졌다.

    “루시아.”

    “왜 그러십니까, 주군?”

    “우리 포위당했는데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본 놈들일까요?”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이네요.”

    그들은 인신매매 조직처럼 어설프지 않았다.

    적들은 포위망을 완성하고 서서히 좁혀 들어오는 식으로 접근해 왔다.

    그 덕분에 적들의 존재를 너무 늦게 인지했다.

    “숫자가 꽤 많은 것 같아요.”

    느껴지는 마력의 덩어리 수가 열다섯을 넘겼다.

    “용병 고용은 가능하십니까?”

    루시아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인트가 쌓이는 족족 비약을 구입해 루시아에게 먹였다.

    그 덕분에 지금 남아 있는 포인트는 100억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막대한 포인트를 소모한 만큼 현성과 루시아는 엄청나게 강해졌으니까 말이다.

    “일단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적들을 갉아먹어 보죠. 우측으로 100미터쯤 가면 적이 있을 거예요. 그 후 좌측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적들을 섬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주군.”

    타악!

    현성의 지시를 받은 루시아가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현성은 그대로 블링크 스킬을 사용했다.

    슈욱!

    현성의 모습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현성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곳은 포위망을 갖추고 있던 적의 머리 위였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한 상대가 몸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첩 스텟이 800을 넘어선 현성의 눈에는 굼벵이처럼 보일 정도로 느렸다.

    서걱!

    용혈검이 일격에 상대의 목을 베어 냈다.

    타악!

    적의 목을 베어 냄과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나간 현성이 다음 목표물을 향해 움직였다.

    “아이스 스톰!”

    당황한 적이 스킬을 날렸다.

    광역 공격 스킬인 아이스 스톰이 현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피할 틈은 없었다.

    현성은 그대로 아이스 스톰을 뚫고 전진했다.

    당황한 적이 계속해서 스킬을 날렸다.

    하지만 현성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850을 넘어선 정신력 스텟이 주는 스킬 저항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거기에 마왕의 건틀릿과 뇌전룡의 비늘이 추가해 준 스킬 저항력까지 합쳐졌다.

    미리 준비한 것도 아니고 다급하게 날린 스킬 정도는 맨몸으로 씹어 먹을 수 있었다.

    서걱!

    현성의 검이 스킬을 난사하던 적의 목을 날려 버렸다.

    블링크 스킬의 쿨타임이 돌아왔다.

    현성은 다음 목표물을 향해 블링크 스킬을 사용했다.

    “모두 모여!”

    이누쿠소의 외침에, 넓게 흩어져 포위망을 갖췄던 일본 비밀 요원들이 재빨리 하나로 뭉쳤다.

    하지만 피해가 막심했다.

    이번 작전에 동원된 인원은 총 19명.

    한데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여덟 명이 사망했다.

    남은 인원은 고작 11명뿐이었다.

    하나로 뭉친 일본 비밀 요원들을 향해 첫 번째 타깃과 두 번째 타깃이 달려들고 있었다.

    일본 비밀 요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탱커들이 전면을 가로막고 방어 스킬을 사용했고, 마법사 계열 딜러들은 마력을 끌어모으며 강력한 공격 스킬을 준비했다.

    파지지직!

    그 순간 칠흑빛 뇌전이 하나로 뭉쳐 있던 일본 비밀 요원들을 뒤덮었다.

    꽈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방어 스킬이 소멸했다.

    방어 스킬을 소멸시킨 칠흑빛 뇌전이 원거리 공격을 준비하던 마법사 계열 딜러들을 뒤덮었다.

    “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마법사 계열 딜러들의 몸이 한 줌의 숯덩이로 변해 버렸다.

    당황한 탱커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두 번째 타깃이 달려들었다.

    콰아앙!

    두 번째 타깃의 실드 차지가 전방의 탱커들을 날려 버렸다.

    서걱!

    두 번째 타깃의 검이 자세가 흐트러진 탱커들을 무자비하게 베어 내기 시작했다.

    탱커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작전을 포기한다! 흩어져서 도주하라!”

    그 말과 함께 이누쿠소가 가장 먼저 도주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비밀 요원들 역시 전력을 다해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푸욱!

    “커억!”

    파지지직!

    “아악!”

    도주하는 이누쿠소의 귀로 동료들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이누쿠소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방심하지 않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상대를 세계 랭킹 1위라고 가정하고 움직였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수십 개 준비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자를 사냥할 계획을 세웠지 드래곤을 사냥할 계획을 세운 게 아니었다.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누쿠소와 동료들은 자신들을 사냥꾼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자신들은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이었다.

    ‘첫 번째 타깃에 대한 평가도 잘못됐지만 두 번째 타깃에 대한 평가도 잘못됐어.’

    저 둘을 생포하기 위해서는 19명이 아니라 190명의 비밀 요원이 필요했다.

    아니, 그 정도 숫자가 모여도 저 두 사람을 어찌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누쿠소는 은신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전력을 다해 도주했다.

    ‘머저리 같은 놈들. 저런 괴물들을 고작 이 정도 인원을 가지고 상대하라고 하다니.’

    도망치는 와중에도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와 정보부에 대한 원망이 치솟았다.

    파지지직!

    그 순간 칠흑빛 뇌전이 이누쿠소의 몸을 뒤덮었다.

    “하아! 하아!”

    현성이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짧은 전투였지만 체력 소모가 꽤 컸다.

    흑뢰룡의 숨결을 전력으로 여러 번 사용한 게 그 원인이었다.

    그 덕분에 적들의 굳건한 방어를 일격에 박살 낼 수 있었지만 마력과 체력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적들의 수가 많았다면 그들의 피를 흡수해 체력과 마력을 충분히 회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숫자가 적다 보니 회복되는 양보다 소모되는 양이 많았다.

    ‘좀 더 가다듬어야겠어.’

    흑뢰룡의 숨결 숙련도를 올리는 데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듯했다.

    “살아남은 놈들을 한곳에 모아 놨습니다, 주군.”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암살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생포한 적은 고작 셋.

    나머지는 모두 죽었다.

    생포한 적들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다.

    거의 반시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현성이 그레이트 힐 스킬을 사용했다.

    희귀 등급 스킬로 일반 힐보다 효과가 좋았다.

    마력을 지속적으로 투자하자 반시체 상태였던 적들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나자 현성이 그레이트 힐 스킬을 중단하고 놈들의 소지품을 뒤졌다.

    다행히 마력이 깃든 아이템이 아닌 일반 물품이 꽤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시전한 현성의 눈에 적들이 보내 온 지난 한 달 동안의 생활이 펼쳐졌다.

    * * *

    ‘역시 일본 놈들이었어.’

    놈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나였다.

    “으윽!”

    현성이 사이코 메트리 스킬로 펼쳐진 과거의 행적을 읽는 사이 정신을 잃었던 적들이 깨어났다.

    정신을 차린 적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전력이면 타깃이 최상위 랭커라고 해도 충분히 제압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일방적으로 당해 버렸다.

    현성이 깨어난 놈들에게 스킬을 시전했다.

    “진실의 계약.”

    이는 심문관들이 사용하는 스킬로, 얼마 전 구입해서 익힌 상태였다.

    “살고 싶다면 동의하는 게 좋을 거야.”

    현성의 경고에 세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스킬을 받아들였다.

    동의 절차가 끝나자 현성의 마력이 세 사람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남아 있는 비밀 요원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지?”

    현성의 물음에 두 사람이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렸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달랐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략 20~30명 정도는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입을 연 사람은 이들의 리더였던 이누쿠소였다.

    당황한 두 사람이 이누쿠소를 노려봤다.

    퍼억!

    그런 그들에게 루시아의 방패가 날아들었다.

    겨우 회복되었던 두 사람의 몸이 다시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내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지?”

    “차원 게이트부 장관 타나카와 그 측근들만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타나카 장관이 공을 세울 요량으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현성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이누쿠소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묵비권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그는 정말 성심성의껏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살고 싶은가 보네?”

    현성이 이누쿠소에게 물었다.

    이누쿠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살고 싶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의리 따위는 얼마든지 집어던질 수 있었다.

    “딸 때문이야?”

    현성의 물음에 이누쿠소가 화들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현성이라고 자세한 사정을 아는 건 아니었다.

    그저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통해 이누쿠소가 딸과 영상통화하는 걸 봤을 뿐이다.

    스마트폰 영상 속 이누쿠소의 딸은 병원복을 입고 있었다.

    “네놈 사정을 이야기해 봐. 최대한 간결하게.”

    현성의 말에 이누쿠소가 입을 열었다.

    이누쿠소는 본래 자위대 특수부대 군인 출신이었다.

    그러다 12년 전 플레이어로 각성했다.

    이누쿠소는 플레이어가 되어서도 승승장구했다.

    각성하는 순간부터 영웅 등급 스킬을 가지고 있었기에 제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일본 플레이어 협회와 계약을 맺은 후 말 그대로 대활약을 했다.

    오사카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를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오사카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유일한 혈육인 딸이 치사율 100%라고 불리는 마력 잠식증에 걸리면서였다.

    딸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다.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전 재산을 쏟아부었다.

    재산이 바닥날 때까지 치료제는커녕 억제제조차 개발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몬스터를 사냥하고 대출까지 받아 병원비를 냈다.

    그러다 사채에까지 손을 댔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돈이 부족했다.

    그때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가 접근해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속삭였다.

    이누쿠소는 그 유혹에 넘어갔다.

    그리고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했다.

    이누쿠소가 사망하면 돈을 벌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딸은 죽는다.

    이누쿠소의 이야기를 들은 현성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했다.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상태창.’

    현성이 상태창을 열었다.

    아버지의 마력 역류증을 치료하기 위해 현성은 구매창에 존재하는 모든 포션을 일일이 살펴봤었다.

    수많은 종류의 포션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마력 역류증 치료제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병에 대한 치료제는 꽤 많이 존재했다.

    ‘마력 잠식증 치료제라……. 분명히 이쯤에서 본 것 같은데.’

    희귀 등급 포션을 열심히 뒤지던 현성의 눈에 드디어 치료제가 들어왔다.

    마력 중화제 – 희귀 등급

    -마력 잠식증과 마력 소모증을 치료할 수 있다.

    -소모형 아이템입니다.

    -판매자 : 리커머스

    -판매가 : 9,999,999포인트

    ‘있다.’

    심지어 엄청 쌌다.

    하긴 희귀 등급 포션이니 싼 게 당연했다.

    ‘1,000만 포인트면 해결할 수 있어.’

    1,000억 포인트도 아니고 1,000만 포인트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푼돈이나 마찬가지다.

    “이봐, 당신.”

    “예!”

    “혹시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 있나?”

    현성의 물음에 이누쿠소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상태창 공개해 줘.”

    현성의 말에 이누쿠소는 재빨리 자신의 상태창을 개방했다.

    ‘꽤 쓸 만하네.’

    이누쿠소는 전형적인 암살자였다.

    민첩은 스텟이 1,000을 넘겼지만 다른 스텟은 상대적으로 무척 비루했다.

    부족한 공격력은 약점 간파나 불의의 일격 같은 스킬로 해결하는 듯했다.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이누쿠소가 오체투지를 했다.

    “좋아. 살려 주지. 내가 제안한 거래를 승낙하기만 한다면 말이야.”

    쿵!

    “감사합니다!”

    이누쿠소가 머리를 땅에 찧으며 대답했다.

    현성이 구매창에서 아이템 하나를 골랐다.

    영혼의 계약서 – 영웅 등급

    -계약서에 적힌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려 할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계약서에 적힌 내용을 불이행하면 극심한 고통 속에 사망한다.

    -계약서는 강제적인 위력 없이 순수한 자신의 의지로 동의했을 때만 효력을 발휘한다.

    -판매자 : 리오스

    -판매가 : 9,999,999,999포인트

    -소모형 아이템 영혼의 계약서 - 영웅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바로 예를 눌렀다.

    -소모형 아이템 영혼의 계약서 - 영웅 등급을 구매하셨습니다.

    ‘치료제보다 계약서가 더 비싸네.’

    치료제는 1,000만 포인트인데, 계약서는 100억 포인트나 했다.

    ‘하지만 확실한 게 좋지. 그리고 100억 포인트로 저런 실력자를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으면 그것도 이득이고.’

    현성이 계약서를 들고 원하는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계약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현성이 이누쿠소의 딸이 가지고 있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를 준다.

    치료제를 받는 순간, 이누쿠소는 현성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다한다.

    그와 더불어 현성의 지시에 절대복종한다.

    “자, 서명해.”

    현성이 이누쿠소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마력 잠식증 치료? 정말 마력 잠식증을 치료하실 수 있습니까?”

    이누쿠소가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도 아이템 효과 볼 수 있잖아. 보면 알 거 아니야. 이거 이행 안 하면 죽는다.”

    현성의 말에 이누쿠소가 몇 번이고 영혼의 계약서가 가진 아이템 효과를 확인했다.

    “당장 서명하겠습니다!”

    이누쿠소가 재빨리 서명을 했다.

    화악!

    그 순간 계약서가 보라색 빛에 휩싸여 둘로 갈라졌다.

    그리고 현성과 이누쿠소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저, 저도 서명하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약서를 주십시오!”

    살아남은 두 놈이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은 안 돼. 이건 강제적인 위력이 없을 때만 발동하는 거거든.”

    이누쿠소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딸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계약서에 서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놈들은 살기 위해 거짓 서명을 하려는 것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아니었다면 절대 서명을 할 리가 없다.

    저놈들에게 계약서를 줘 봤자 100억 포인트만 날리는 꼴이 된다.

    결정적으로 저놈들은 진성 쓰레기였다.

    당장 사형당해도 할 말이 없는 죄를 저지른 놈들이 비밀 요원으로 활동하는 조건으로 감형받은 것이다.

    현성이 가볍게 용혈검을 휘둘렀다.

    서걱!

    두 놈의 목이 동시에 잘려 나갔다.

    쓸모가 없는 두 놈을 처리한 후 현성이 구매창을 열고 마력 중화제를 선택했다.

    -소모형 아이템 마력 중화제 - 희귀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바로 예를 눌렀다.

    -소모형 아이템 마력 중화제 - 희귀 등급을 구매하셨습니다.

    푸른 빛과 함께 마력 중화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 받아.”

    현성이 마력 중화제를 이누쿠소에게 넘겼다.

    이누쿠소가 마력 중화제를 받는 순간…….

    -영혼의 계약서의 이행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영혼의 계약서가 발동합니다.

    현성과 이누쿠소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단순히 시스템 메시지만 떠오른 게 아니었다.

    이누쿠소의 마음속에서 저절로 현성에 대한 충성심이 치솟았다.

    “방금 본 이상한 현상이나 영혼의 계약서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 아니, 내가 허락한 게 아닌 이상 나에 대한 정보를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

    현성의 말에 이누쿠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설하는 순간 계약을 어긴 게 되고 자신은 죽는다.

    하지만 그러한 강제적인 조치에도 반발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지시처럼 느껴졌다.

    “일단 계획이 실패했다고 하고 일본으로 복귀한 뒤, 나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모조리 죽여.”

    “알겠습니다.”

    “음, 지금 스펙으로는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 조금 도움을 줄게.”

    -플레이어 이누쿠소에게 등용을 제의하셨습니다.

    “일단 수락부터 해.”

    “예.”

    -플레이어 이누쿠소가 등용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통솔력 60이 소모됩니다.

    “일단 능력치도 업그레이드를 시켜야 하는데.”

    당장은 포인트가 없었다.

    “루시아, 포인트 얼마나 남았어요?”

    “50억 포인트 정도밖에 없습니다.”

    “일단 수거부터 하죠.”

    현성과 루시아는 죽은 암살자들이 지니고 있던 장비와 그들이 죽으면서 토해 낸 스킬북과 아이템을 챙겼다.

    이것만 해도 수천억 포인트어치는 될 듯했다.

    현성은 그중에서 암살에 관련된 스킬북들을 골라 이누쿠소에게 넘겨줬다.

    “익혀.”

    “예.”

    그다음에는 루시아에게 있는 포인트를 탈탈 털어 비약을 구매했다.

    중간중간 물건이 팔려 나갔기에 다행히 목표치로 하는 비약을 모두 구매할 수 있었다.

    “먹어.”

    현성의 지시에 이누쿠소가 군말 없이 비약을 섭취했다.

    그 덕분에 이누쿠소의 빈약한 힘, 체력, 마력, 정신력 스텟이 300까지 상승했다.

    현성은 비밀 요원들이 사용하던 대포폰 하나를 자신이 쓰기로 했다.

    이누쿠소가 비밀 요원으로 활동할 때 사용하는 대포폰 번호도 받았다.

    “그럼 이제 가 봐. 아, 그리고 딸을 치료하는 건 임무를 완수한 후에 하도록 해. 괜히 의심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인님.”

    “왜?”

    “작전이 실패했다고 보고하면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에서 그 이유를 물어 올 겁니다. 또 의심받지 않으려면 주인님과 주모님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알려야 합니다. 그때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한국 플레이어 협회가 끼어들어서 겨우 도망쳤다고 해. 나에 대한 정보는 적당히 고레벨 플레이어 수준이라고 보고하고, 루시아는 그냥 저레벨 플레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가 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예.”

    이누쿠소가 대답과 함께 출구 쪽으로 사라졌다.

    “저자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요?”

    루시아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해낼 거예요. 실패하면 딸을 살릴 수 있는 기회도 날아가는 거니까요.”

    현성은 분명 임무를 완수한 후에 딸을 치료하라고 했다.

    이누쿠소의 입장에서는 딸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암살을 실행해야 했다.

    암살이 실패하면 자신의 목숨은 물론 딸의 목숨까지 사라지는 꼴이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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