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40/225)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각성한 지 1년 반밖에 안 된 병아리네.”

조사 결과를 받아 든 진한 길드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거기다 병신도 하나 데리고 있고.”

“한 번에 쓸어버리면 될 것 같습니다.”

보고서를 올린 원중서의 말에 길드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손쉽게 풀릴 것 같았다.

“플레이어 협회 직속이라는 것 빼고는 쥐뿔도 없는 놈이었구먼.”

“임무지가 수시로 바뀌는 걸로 봐서는 실력도 형편없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좋아. 그럼 내일 당장 작업 시작하자.”

루시아, 최현성, 백우신.

셋 모두 작업해도 뒤탈은 없을 것 같았다.

던전 안에서 작업을 해 버리면 감쪽같이 쓸어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상당히 큰 착각이었다.

하지만 길드장의 입장에서는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현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모두 대외비였다.

현성이 최초의 전설 등급 몬스터 이무기 레이드에 참가했다는 사실이나, 플레이어 협회는 물론 정부에서까지 주의 깊게 살피고 있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진한 길드의 정보력으로는 절대 파악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 * *

‘뭐지?’

루시아와 백우신과 함께 아파트 1층에 도착한 현성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선팅이 짙게 되어 있는 승합차 안에서 넘실거리는 마력이 느껴졌다.

현성이 차량 문을 열었고 루시아와 백우신이 탑승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 순간 승합차도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속 따라오네.’

승합차는 백우신이 사냥하는 던전으로 향하는 현성의 차를 계속 따라왔다.

“미행이 있어요.”

“저 검은색 승합차 말인가요?”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이 느껴지는 걸로 봐서 플레이어들이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놈들일까요?”

루시아의 물음에 현성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치고는 미행이 조금 어설프기는 하지만 배제할 수는 없겠죠. 일단 백우신 씨가 사냥하는 던전으로 함께 들어가죠.”

“알겠습니다.”

루시아의 대답을 들은 현성이 차량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해 경호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용건은 간단했다.

경호원 추가 파견.

현성은 일본이 헛수작을 부린 이후 개인적으로 가족들의 경호원을 고용했다.

플레이어들을 경호원으로 고용하는 것은 상당히 큰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영웅 등급 던전으로 사냥터를 옮긴 현성의 입장에서는 거기서 나오는 마석만 팔아도 경호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았다.

던전에 도착한 현성 일행이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현성 일행은 일반 플레이어 코스프레를 하며 몬스터를 사냥했다.

그리고 천천히 던전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성질도 급하네.’

사냥을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현성 일행을 미행하는 마력이 느껴졌다.

나름 은신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야생의 본능 스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판을 깔아 주지.’

현성은 일행을 이끌고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동했다.

애초에 들어온 던전 자체가 비인기 던전이었기에, 얼마 이동하지 않아 다른 플레이어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얼른 들어와라.’

현성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척하며 미행하는 이들의 기척을 살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대범하게 움직였던 것과 달리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성은 일행을 이끌고 일부러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U 자 형태의 지형에 들어갔다.

그 순간 미행하던 이들이 일제히 은신 스킬을 풀었다.

‘엄청 늦게 움직이네.’

기다리다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

챙!

총 12명의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뽑아 들고 입구를 봉쇄했다.

현성과 루시아는 이들의 등장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저 태연한 표정으로 적들의 무장 상태를 확인했다.

‘뭔가 장비가 좀 부실한데.’

전에 왔던 암살자들은 영웅 등급 무기나 방어구 하나둘 정도는 소지하고 있었다.

한데 이들은 좀 달랐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영웅 등급 무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몇몇이 희귀 등급 장비로 무장하고 있을 뿐 대부분이 일반 등급 장비를 들고 있었다.

‘일본 놈들이 아닌 건가?’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이상했다.

일본 놈들이 아니라면 현성 일행을 노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야, 너네 뭐 하는 놈들이야?”

현성이 먼저 말을 걸었다.

일단 말을 걸어 보면 적들의 국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 어린놈의 새끼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파악이 안 돼?”

습격자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의 입에서 나온 언어는 한국어였다.

그것도 상당히 구수한 동네 양아치 말투였다.

“일본 놈이 아니었네?”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새끼가 장난하나! 내가 어딜 봐서 쪽바리 새끼처럼 보이냐?”

“그럼 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냐?”

현성의 물음에 우두머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성이 전혀 겁을 먹지 않으니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웬만하면 몸 성히 데리고 가려고 했더니 안 되겠네. 얘들아!”

“예, 형님!”

“저 새끼 버릇 좀 고쳐 줘라. 주둥아리는 반쯤 찢어 버리고.”

“알겠습니다, 형님!”

플레이어들이 힘차게 외치며 현성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현 길드 같은 놈들인 거 같은데, 왜 날 노리는 거지?’

왜 자신을 노리는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덤벼드는 놈들을 모두 제압한 후에 직접 물어보면 되니까 말이다.

현성이 용혈검을 뽑아 들었다.

루시아 역시 검과 방패를 꺼내 들고 전투준비를 했다.

그때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우와아아악!”

백우신이 커다란 괴성을 터트리며 앞으로 튀어 나간 것이다.

“어?”

현성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로 보아 수준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상대의 정확한 레벨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예상보다 레벨이 높다고 해도 현성이나 루시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백우신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습격자들의 레벨이 200레벨 수준이라고 해도 백우신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콰아앙!

백우신의 실드 차지가 제대로 들어갔다.

검과 방패를 들고 가장 앞에서 힘차게 달려들던 적의 왼팔과 안면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방패가 달려 있던 왼팔은 부러져 덜렁거렸고, 피투성이로 변한 안면에서는 새하얀 이빨이 우수수 떨어졌다.

“백우신 씨의 안전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루시아의 말에 현성도 동의했다.

백우신은 마치 광전사처럼 적들을 공격했다.

도발 스킬을 비롯해 온갖 스킬을 사용해 적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와 함께 현성이나 루시아에게로 가려는 적들을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아까 차에서 이번 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 않았나요?”

“백우신 씨가 이해하기는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차로 이동하는 와중에 자신들 뒤에서 얌전히 대기하고 있으라고 이야기했다.

백우신도 알겠다고 대답했다.

한데 결과는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저와 주군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루시아의 말에 현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백우신의 모습은 새끼 곰을 지키는 어미 곰의 형상이었다.

좁은 입구를 틀어막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좋은 실전 훈련이 될 것 같습니다.”

루시아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드는지 입가에 옅은 미소가 배어 있었다.

“적들의 레벨이 낮아서 망정이지 높았으면 위험했을 수도 있어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군주의 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사는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할 수 없는 법이지요. 앞으로 전투 상황에서 철저하게 주군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더 강하게 훈련시키겠습니다.”

‘괜히 말했나.’

왠지 앞으로 백우신의 훈련 난이도가 더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과 루시아는 느긋하게 백우신의 전투 모습을 지켜보았다.

백우신은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상당히 잘 싸우고 있었다.

습격자들의 레벨은 대략 100레벨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스텟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백우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아래에 있는 수준이다.

적의 숫자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백우신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백우신은 상당히 잘 싸우고 있었다.

조금씩 밀리고 있기는 하지만 순간순간 적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이는 루시아의 혹독한 훈련의 결과물이자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백우신은 절박했다.

현성이 차에서 대충 상황을 설명해 주기는 했지만 백우신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현성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 알겠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무기를 뽑아 들며 덤벼드는 순간, 백우신의 머릿속에는 현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현성이 과거 자신을 노예처럼 부렸던 자들을 일거에 쓸어버릴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은 백우신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백우신은 필사적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로 전투에 임했다.

그에 반해 적들은 소극적이었다.

가장 처음 실드 차지에 당해 만신창이가 된 동료의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동료가 처참하게 당한 모습에 분노가 솟아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반대로 겁을 집어먹었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길드의 길드원들에게 제대로 된 동료애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실력도 없었다.

실력이 좋았다면 이런 일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해 오던 일은 자신들보다 한참 약한 상대를 짓밟는 것뿐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드는 백우신은 처음 상대해 보는 난적이었다.

“이 병신 새끼들아, 언제까지 눈치만 보고 있을 거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우두머리가 노성을 토해 냈다.

압도적인 머릿수를 가지고도 머뭇거리며 물러나기만 하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우두머리의 노성에 공격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습격자들은 최대한 몸을 사리며 백우신을 공격했다.

“하!”

우두머리가 갑갑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곳이 던전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다른 플레이어가 올지 모른다.

최대한 빠르게 목표물을 확보하고 빠지는 것이 최선이다.

한데 이대로 가다가는 생각 외로 많은 시간을 허비할 것 같았다.

‘저놈은 왜 저렇게 강한 거야?’

손쉽게 생각했던 목표물 중 하나의 반항이 생각보다 강했다.

‘어쩔 수 없네.’

우두머리가 무기를 뽑아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았다.

‘저 두 연놈만 잡으면 끝이야.’

백우신이라는 머저리가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우고 있지만, 최현성과 루시아라는 애송이는 잔뜩 겁을 집어먹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년을 가장 먼저 확보해야지.’

가장 높은 값을 받을 사냥감인 만큼 상처 없이 제압해 데리고 가야 했다.

은신 스킬을 사용한 우두머리가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백우신을 지나 루시아에게 향했다.

바로 근처까지 다가왔지만 목표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우두머리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목표물은 겨우 얼마 전 플레이어 아카데미를 수료한 초짜 중에 초짜였으니까 말이다.

목표물의 뒤로 다가간 우두머리가 적당히 힘 조절을 하며 손날을 휘둘렀다.

콰직!

기이한 소음과 함께 우두머리의 안면이 으스러졌다.

“아악!”

우두머리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만히 있었으면 좋은 교보재가 되었을 것을…….”

루시아가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루시아의 방패에 안면을 정면으로 강타당한 우두머리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코뼈와 턱뼈가 산산조각 났다.

그 과정에서 부러진 이빨이 입안에 틀어박혔다.

“컥! 컥!”

우두머리가 목을 부여잡으며 괴로워했다.

터져 나온 피가 코와 입을 막아 호흡곤란을 일으킨 것이다.

현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힐 스킬을 시전했다.

막대한 마력을 쏟아붓자 서서히 상처가 아물며 피가 멈췄다.

하지만 이건 결코 치료 행위가 아니었다.

부서진 코뼈와 턱뼈를 제대로 맞추지도 못한 상태에서 상처가 아물어 버렸다.

그 결과 산산조각 난 뼈와 이빨이 그대로 살에 파묻혔다.

제대로 된 치료를 하려면 아물어 버린 살을 다시 베어 내고 뼛조각과 이빨을 뽑아내야 했다.

아마 지금보다 더한 고통을 겪어야 하리라.

하지만 현성의 목적은 치료가 아니라 일단 숨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힐은 충분히 자기 역할을 다 했다.

“뭐야?”

“형님이 당했어!”

머리를 잃은 습격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방향을 바꿔 도주하기 시작했다.

타악!

현성이 가볍게 몸을 날려 습격자들의 퇴로를 차단했다.

U 자 형태의 지형은 습격자들의 공격을 유도함과 동시에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현성 일행을 가둬 두기 위해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장소가 반대로 자신들을 가두는 감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으아아아!”

습격자들이 괴성을 터트리며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출구가 하나뿐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콰직!

현성의 주먹이 습격자들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서걱!

기동성을 제거하기 위해 다리를 잘라 버리기도 했다.

습격자들이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현성은 힐 스킬을 사용해 적당히 치료한 뒤 습격자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피투성이가 된 습격자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왜 우리를 노린 거지?”

현성이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습격자들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특히 루시아를 습격했던 우두머리의 충격은 엄청나게 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 괴물이 이제 갓 플레이어 아카데미를 수료한 뉴비라고?’

정보 수집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우두머리의 레벨은 220이 넘었다.

수하들은 3차 전직도 하지 못한 어중이떠중이지만 우두머리는 아니었다.

심지어 우두머리의 직업은 탱커였다.

그런데 단 일격에 전투 불능이 되어 버렸다.

“주군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거냐?”

루시아가 살기가 풀풀 날리는 표정으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진한 마력이 유형화되어 너풀거렸고,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강력했다.

‘뉴비라며…….’

우두머리는 정보를 수집해 왔던 부하 원중서를 원망했다.

우두머리는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기만 하면 원중서를 가만두지 않을 것을 결심했다.

하지만 원중서는 죄가 없었다.

그가 정보를 어디서 얻었겠는가?

플레이어 협회의 직원들이었다.

그들을 통해 세 사람의 플레이어 등록 일자를 확인하고 출입한 던전 목록을 확인했을 뿐이다.

다만 그 정보가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니었을 뿐이다.

“저희는 그저 길드장의 말씀을 따랐을 뿐입니다.”

“맞습니다. 그냥 길드장이 공격하라고 해서 공격했습니다.”

부하들이 일제히 우두머리를 지목했다.

우두머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진실을 이야기하면 생존 확률이 더 떨어진다.

차라리 입을 꾹 담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게 생존 확률이 더 높았다.

하지만 우두머리의 결심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현성이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현성의 눈앞에 이들이 지난 한 달 동안 벌였던 온갖 더러운 짓거리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인신매매.

전혀 예상치 못한 극악무도한 범죄가 튀어나왔다.

‘내가 아니라 루시아가 목표물이었어.’

현성의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영웅 등급 스킬을 저따위 일에 사용하다니.’

진한 길드가 인신매매에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길드장인 마조윤이 가지고 있는 영웅 등급 아공간 스킬 덕분이었다.

무생물을 비롯해 살아 있는 생명체까지 담을 수 있는 아공간을 이용해 던전에서 저레벨 플레이어들을 납치해 실험체로 팔아먹었다.

‘죽여 버릴까?’

이 자리에서 목을 베어 버려도 시원치 않을 짓을 저질렀다.

하지만 마조윤은 플레이어 인신매매 조직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열쇠이기도 했다.

우드득!

현성이 발을 들어 마조윤의 무릎을 그대로 짓밟았다.

“아아악!”

뼈와 관절이 으스러진 마조윤이 처절한 비명을 토해 냈다.

현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조윤의 사지 관절을 하나하나 짓이겼다.

그 후 힐 스킬을 사용해 치료했다.

부러진 뼈와 관절이 그대로 살로 뒤덮였다.

영웅 등급 힐 스킬이라면 부러진 뼈와 관절까지 완벽하게 치료했겠지만, 현성이 사용하는 힐 스킬은 일반 등급 스킬이었다.

엉망진창으로 치료가 완료되어 버린 마조윤은 남에게 위해를 가하기는커녕 자기 앞가림조차 하기 힘든 처지로 전락했다.

눈앞에서 길드장이 폐인이 되어 버렸다.

그 모습을 목격한 길드원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이놈들도 다 똑같은 놈들이야.’

인신매매 조직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있는 건 마조윤뿐이다.

하지만 이 일에 가담했던 놈들 역시 대충은 자신들이 납치한 사람들의 미래를 예상하고 있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우드득!

“아아악!”

던전 내부가 처절한 비명과 진한 피비린내로 물들었다.

반항하거나 도주를 시도하는 놈은 더 많은 비명을 토해 내야 했다.

현성은 플레이어 인신매매에 가담했던 플레이어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져 주었다.

그들의 우두머리였던 길드장처럼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할 수 없도록 말이다.

현성은 플레이어 협회 감찰 팀에 연락해 던전 밖에 있던 진한 길드원들도 모조리 잡아들였다.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언론에서도 기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알음알음 제압당한 인신매매 조직원들의 모습이 퍼져 나가며 과잉 진압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성난 여론의 뭇매를 맞고 금방 수그러졌다.

‘죽어 마땅한 놈들은 죽어야지. 아니면 그만큼 고통스럽게 살든가.’

현성은 플레이어 인신매매 조직원들을 불구로 만든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형은 사실상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설사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선고받더라도 감옥 안에서 평생 잘 먹고 잘 산다.

자유를 빼앗기기는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인명을 빼앗아 간 범죄자들에게 그건 너무 가벼운 형벌이었다.

특히 무기징역의 경우 운이 좋으면 가석방이 될 수도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현성은 의도치 않은 실수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전부 죽여 버리려다가 플레이어 인신매매 조직을 아예 뿌리 뽑기 위해 목숨 줄은 붙여 놓았다.

하지만 그건 결코 자비가 아니었다.

그들은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처절한 삶을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 * *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군.”

타나카 장관이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인 타나카의 입장에서 조인족들의 큐슈 점령은 악몽 같은 일이었다.

일본의 랭커들과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상당수 잃었고,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며, 영토까지 잃었다.

사고가 생기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 일본 국민들의 분노는 엄청났다.

진작에 큐슈 지역에 살고 있던 국민들을 전원 대피시켰어야 했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었다.

일본 고위층들이 보기에 이번 일은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지난 한 달의 시간 동안 경질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은 정부가 아직 조인족 사태의 여파를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 정도 더 지나 급한 문제가 해결되면 분명 국민들의 분노를 풀어 줄 희생양을 뽑을 것이다.

문제는 그 희생양이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인 타나카가 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었다.

‘물러나기 전에 그 일을 마무리해야지.’

타나카 장관이 대대적으로 비밀 요원들에게 지령을 내렸다.

목표물은 전과 동일했다.

최현성.

20레벨의 법칙을 풀 수 있는 열쇠.

단기간에 랭커급으로 강해질 수 있는 비밀을 쥐고 있는 존재.

‘최현성만 손에 넣는다면 충분히 재기할 수 있어.’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완전히 실각한다.

아니, 실각 수준을 넘어서 큐슈에서 벌어진 천문학적인 경제적 피해와 인명 피해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낙인찍혀 전 일본인들의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다.

타나카 장관은 희생양이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저 조용히 현직에서 물러나 다른 힘 있는 자리로 보직 이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간의 과를 공으로 뒤집을 만한 큰 성과가 필요했다.

고위층들이 절대 자신을 버리지 못할 큰 성과가 말이다.

* * *

인천공항을 통해 19명의 일본인들이 한국에 입국했다.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었다.

최근 일본인과 중국인 들이 한국에 여행을 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으니까 말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단순한 관광 목적이 아니라 거주를 목적으로 찾아왔다.

이민을 오기 전에 사전 탐색차 찾아온 것이다.

일본은 몬스터의 습격에 큐슈 지역을 잃었다.

중국은 엄청난 피해를 받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던전 안전 등급 역시 엄청나게 하락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던전 안전 등급이 떨어지기는커녕 최고 등급으로 상승했다.

2차 대격변에 대한 피해가 가장 적은 국가.

세계 최초로 등장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한 국가.

자국의 상황이 불안한 일본인과 중국인 들에게 한국은 상당히 매력적인 거주지였다.

일본인과 중국인들은 세계 최강 대국이기는 하지만 영토가 넓어 오히려 던전 안전 등급이 떨어지는 미국보다 가깝고 안전한 한국을 더 선호했다.

또 미국은 아무래도 인종차별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한국은 같은 동양인이기에 언어만 제대로 익히면 중국과 일본 출신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감출 수 있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 정부 역시 플레이어와 그 가족에 한해 중국인과 일본인 들의 이주를 적극 허용했다.

던전이 늘어난 만큼 플레이어 숫자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평범한 관광객으로 위장한 19명의 일본 비밀 요원들은 무난히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 역시 일본인인 그들이 몰려다니는 것을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밀 요원들은 목표물이 살고 있는 장소까지 손쉽게 이동했다.

이제는 작전을 실행하는 일만 남았다.

“목표물이 하나 추가되었다.”

비밀 요원들의 리더인 이누쿠소의 말에 다른 비밀 요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첫 번째 타깃의 동료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이누쿠소가 동료들에게 사진을 돌렸다.

“미인인데?”

“거기다 서양인이야.”

몇몇 비밀 요원들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 속의 인물을 주시했다.

“두 번째 타깃은 한국으로 귀화한 망국인이다. 한데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이누쿠소의 말에 다른 비밀 요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류상으로는 불과 한 달 전 플레이어 아카데미를 졸업한 뉴비다. 그런데 현재는 최현성과 함께 영웅 등급 던전을 출입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누쿠소의 말을 들은 비밀 요원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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