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 진한 길드 (39/225)
  • ┃진한 길드

    슈우우우웅!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발사된 미사일들이 일제히 조인족들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조인족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포위망을 갖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원거리 스킬을 날렸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스킬이 날아오고 하늘에서는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지는 상황.

    조인족들이 몸을 피할 곳이 없었다.

    캬아아악!

    그 순간 황금빛 날개의 조인족이 분노 어린 포효를 터트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뒤를 따라 1천여 마리의 조인족들이 일제히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솟구쳤다.

    몬스터 유도 기능을 탑재한 미사일들이 하늘로 날아오른 조인족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지지직!

    황금빛 뇌전의 폭풍이 하늘을 뒤덮었다.

    꽈아아아앙!

    유도 기능에 따라 조인족들을 향해 날아가던 미사일들이 허공에서 연속적으로 폭발했다.

    황금빛 뇌전의 폭풍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유도 미사일을 뚫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저건 영웅 등급 몬스터가 보여 줄 수 있는 수준의 방어력이 아닙니다!”

    “골드 이글의 등급을 전설 등급으로 상향해야 합니다!”

    UN군사령부 역시 난리가 났다.

    UN은 이번 작전을 실행하며 승리를 확신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플레이어들의 전력은 어마어마했다.

    정면으로 조인족들과 충돌해도 필승을 자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조인족들의 기동성과 전술이었다.

    공중전이 가능한 플레이어는 극소수다.

    그 극소수 역시 공중전에 익숙하지 못했다.

    이에 미사일의 화망으로 하늘을 뒤덮는 작전을 계획했다.

    UN군사령부의 계획대로라면 조인족들은 미사일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져 플레이어들에게 달려들었어야 했다.

    그럼 끝이다.

    하늘이라는 도주로가 막힌 조인족들은 결코 플레이어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조인족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선택을 하면 최상이라고 생각했다.

    미사일의 폭발력은 영웅 등급 몬스터가 버텨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한데 그 계획이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조인족 무리가 너무도 손쉽게 화망을 벗어난 것이다.

    화망을 벗어난 조인족 무리가 유유히 플레이어들의 포위망을 벗어났다.

    1만 5천여 명의 플레이어들은 하늘을 날아 도주하는 조인족 무리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닭 쫓던 개 꼴이 된 것이다.

    * * *

    인류의 기습을 받은 조인족들은 더욱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처럼 무방비하기 흩어지지 않았다. 하나로 똘똘 뭉쳐 움직였다.

    순식간에 큐슈섬 전역이 지옥으로 변했다.

    플레이어들이 조인족 토벌을 위해 움직였지만 기동성의 차원이 달랐다.

    플레이어들이 도착하면 조인족은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 그만이었다.

    플레이어들을 분산시켜 기동성을 높이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역으로 플레이어들이 조인족들에게 당할 확률이 높았다.

    조인족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시간이 일주일을 넘겼다.

    결국 UN군사령부는 조인족 토벌을 포기했다.

    플레이어들을 언제까지 큐슈섬에 둘 수는 없었다.

    몬스터에게 점령당한 지역은 큐슈섬만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조인족 토벌 실패.

    이번 일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컸다.

    약소국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나 플레이어의 질과 양으로나 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 몬스터들에게 영토를 빼앗겼다.

    일본이 중국처럼 자존심을 내세워 단독 토벌을 욕심낸 것도 아니었다.

    전 세계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UN연합군이 토벌에 나섰으나 결국 실패했다.

    조인족들이 순식간에 큐슈 지역 전체를 장악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국을 구성하는 네 개의 섬 중 하나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국가의 자존심이 실추된 것은 물론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인명 피해까지 떠맡게 되었다.

    * * *

    현성은 루시아를 데리러 가기 위해 플레이어 아카데미로 향했다.

    루시아를 마중 나가는 일도 오늘로 끝이었다.

    벌써 3주가 지난 것이다.

    루시아는 이론 시험과 실기 시험 모두 무난하게 통과했다.

    ‘이제 더 이상 몰래 던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겠어.’

    그동안은 플레이어 아카데미 교육이 끝나면 루시아를 데리러 와서 고용을 취소한 후 던전 안에서 다시 고용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번거로운 것도 번거로운 거지만 루시아가 플레이어 등록증이 없다는 사실을 들키지는 않을까 항상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도 끝이었다.

    물론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제 갓 플레이어 아카데미 교육을 수료한 1레벨 플레이어가 갑자기 고레벨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이상할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건 현성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현성에게는 플레이어의 던전 출입 기록을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런 권한이 주어진 이유는 현성의 던전 출입 내용이 새어 나가면 타국의 플레이어 협회나 거대 길드들의 시선을 끌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현성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놓고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이 완성된 것이다.

    ‘뭐, 내가 비리를 저지르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

    현성의 약점을 잡으면 이득을 보는 건 플레이어 협회다.

    아마 현성이 마석과 스킬북을 빼돌려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팔아먹거나, 던전 출입 기록 삭제 권한을 남용해 거대 길드와 뒷거래를 하는 등의 비리를 저지르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성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푼돈을 벌기 위해 괜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루시아의 던전 출입 기록을 삭제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루시아는 마석과 스킬북을 모두 고유 능력을 통해 판매해 버린다.

    플레이어 협회가 꼬투리를 잡을 여지가 없는 것이다.

    현성이 플레이어 아카데미로 들어섰다.

    ‘수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현성은 수료자들 틈에 있는 루시아를 금방 발견했다.

    동양인 일색인 곳에서 백금발의 서양인인 루시아는 눈에 뜨일 수밖에 없었다.

    현성이 루시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뭐지?’

    그런데 루시아의 주변이 조금 소란스러웠다.

    “우리 길드에 들어오기만 하면 내가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니까!”

    “거절하겠습니다.”

    “아,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거절을 해? 너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걸!”

    “후회를 해도 제가 하지 당신이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이만 비켜 주시죠.”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루시아를 붙잡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별일 아닙니다. 가시죠.”

    현성의 물음에 루시아가 간단하게 대답하며 남자를 지나쳤다.

    “야, 너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남자가 루시아의 어깨를 잡으며 외쳤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당사자가 싫다고 하잖아요.”

    현성이 나서서 남자의 손을 치우려고 했다.

    “넌 뭔데 끼어들어?”

    남자가 목소리를 높이며 현성을 밀쳤다.

    하지만 현성이 밀려 날 리 없었다.

    현성이 루시아의 어깨에 올려져 있던 남자의 손을 잡았다.

    애써 저항하는 게 느껴졌다.

    일반인 수준의 힘은 아니었다.

    플레이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현성의 힘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현성이 힘을 주자 버티던 남자의 손이 힘없이 비틀렸다.

    “아악!”

    손목이 잡혀 팔이 꺾인 남자가 비명을 토해 냈다.

    “루시아, 이 사람은 누구예요?”

    “진한 길드라는 곳의 스카우터라고 하더군요.”

    현성의 물음에 루시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혹시 튀는 행동을 한 적 있어요?”

    현성이 마력으로 주변의 소리를 차단한 뒤 물었다.

    “아닙니다. 평범하게 중하위권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크게 튀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루시아를 스카우트하려고 하는 거지?’

    상대가 루시아의 본실력을 알고 있다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 가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진한 길드라는 이름의 듣도 보도 못한 길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당장 이거 안 놔? 너 죽고 싶어?”

    현성이 루시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팔이 꺾인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반항했다.

    있는 힘을 다해 꺾인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무의미한 행동일 뿐이었다.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따위로 행동하는 거야?”

    “그러는 넌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따위로 행동하냐?”

    현성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나 진한 길드 소속이다! 넌 어느 길드 놈이야?”

    “플레이어 협회 감찰 팀 소속인데.”

    현성의 말에 남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플레이어 협회 감찰 팀은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경찰이나 마찬가지다.

    “너, 진한 길드 스카우터야?”

    “그렇다.”

    “진한 길드는 싫다는 뉴비를 억지로 가입시키고 그러나?”

    현성의 물음에 남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싫다는 사람 괴롭히지 말고 그냥 가라.”

    현성이 남자의 팔을 놓아주었다.

    “너 분명히 후회할 거다.”

    자유를 되찾은 남자가 현성을 노려보며 말했다.

    “후회는 무슨. 가죠.”

    “네.”

    현성이 루시아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빌어먹을.’

    남자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멀어지는 현성과 루시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길드원으로 만들라고 하셨는데.’

    상사의 명령을 떠올린 남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 *

    ‘이제 시작이야.’

    현성이 장비를 점검하며 눈앞에 있는 던전을 바라보았다.

    각성한 이후 수없이 많은 던전을 들락날락거렸다.

    하지만 오늘 만큼 긴장한 적은 없었다.

    그간 현성은 자신의 스펙보다 월등히 떨어지는 던전에서 주로 사냥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주로 200레벨 후반에서 300레벨 초반의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영웅 등급 던전.

    이곳이 바로 오늘 현성의 사냥터였다.

    “들어가시죠.”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백우신 씨는 괜찮겠죠?”

    “그간 혹독하게 단련시켰으니 충분히 솔로잉이 가능할 겁니다. 혹시 위험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제가 바로 알 수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루시아가 자신의 팔목에 걸린 교류의 팔찌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혹독하게 단련시켰다는 건 인지하고 있으셨군요.”

    백우신을 훈련시키는 루시아의 모습은 지켜보던 현성이 놀랄 정도로 혹독했다.

    대화를 통해 지식을 전달할 수 없으니 몸이 기억하게 하겠다며 정말 혹독하게 밀어붙였다.

    그렇게 밀어붙인 루시아나 그걸 다 소화해 낸 백우신이나 양쪽 모두 괴물이었다.

    현성은 백우신에게 던전 하나를 지정해 줬다.

    상위 레벨의 몬스터를 단독으로 다수 사냥했을 때 주는 업적의 보상은 스텟 증가다.

    현성은 백우신에게 체력과 정신력을 올려 주는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을 알려 주었다.

    그곳에서 솔로잉을 하다 보면 업적을 획득해 체력과 정신력 스텟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현성과 루시아와는 다르게 한계가 명확했다.

    사냥을 하면 할수록 레벨이 오르고 결국은 업적 작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당연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훈련 중에 흘리는 땀 한 방울은 실전에서 흘리는 피 한 방울과 같습니다. 혹독하게 훈련시킬수록 실전에서 백우신 씨의 생존 확률이 올라갑니다.”

    “백우신 씨가 사냥 중에 생존을 걱정할 일은 없을 거 같은데요.”

    “던전 안에서의 사냥도 훈련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루시아의 말에는 현성도 동의했다.

    루시아가 백우신만 훈련시키는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현성과 루시아의 대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백우신 씨가 스텟을 찍을 수 있을까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나중에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력 스텟은 단순히 스킬에만 관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실제로 주군이 주신 비약을 섭취한 후 조금씩 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죠. 백우신 씨가 나중에 미분배 스텟을 체력과 정신력에 모두 투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기는 하네요.”

    “아마 이 세계에 현존하는 탱커 중 가장 단단한 탱커가 될 겁니다.”

    루시아가 확신이 가득한 어조로 대답했다.

    * * *

    현성과 루시아가 던전 안으로 입장했다.

    던전 내부는 높은 수풀과 늪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성과 루시아가 입장한 던전의 이름은 크로커다일맨 던전이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이족 보행을 하는 악어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던전이다.

    크로커다일맨은 일반 악어나 인간이 그렇듯이 무리 생활을 한다.

    그렇기에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기피하는 사냥터 중 하나였다.

    철퍽철퍽!

    환경이 그리 좋지 못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대는 중간중간 갑자기 깊어지는 구간이 있었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는 환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물에서도 뭍처럼 이동할 수 있는 아이템을 발에 착용 중이라는 점이었다.

    “전방에 적이 있어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전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크로커다일맨들은 절대 정면 승부를 하지 않는다.

    늪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기습 공격을 한다.

    하지만 야성의 본능 스킬을 가지고 있는 현성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현성과 루시아가 늪지대를 걸어갔다.

    좌아악!

    늪지대 아래서 창날들이 솟아올랐다.

    현성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수면 아래를 향해 용혈검을 휘둘렀다.

    서걱!

    창대들이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촤아아악!

    늪지대 아래서 물줄기가 날아왔다.

    현성은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다.

    파강!

    루시아의 블록 실드가 펼쳐지며 현성에게 향하던 물줄기들을 방어했다.

    ‘까다로워.’

    늪지대 아래에 숨어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크로커다일맨의 공격 방식은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파지지직!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했다.

    ‘효과가 없어.’

    아예 타격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드넓은 늪지대가 흑뢰룡의 숨결을 대부분 흡수해 버렸다.

    ‘최악의 환경이네.’

    크로커다일맨들에게는 유리하고 현성과 루시아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전장이었다.

    현성은 야성의 본능 스킬에 의지했다.

    늪지대 아래 몸을 감추고 있는 크로커다일맨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눈보다는 스킬에 의지해야 했다.

    좌아악!

    늪지대에서 다시금 창날이 솟아올랐다.

    콰직!

    현성이 창날을 피하며 늪지대 속으로 용혈검을 찔러 넣었다.

    확실하게 꿰뚫리는 느낌이 났다.

    현성이 용혈검을 통해 흑뢰룡의 숨결을 발동시켰다.

    좌아악!

    늪지대 위로 크로커다일맨의 사체가 떠올랐다.

    현성은 야성의 본능 스킬이 알려 주는 경로를 따라 늪지대 속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며 용혈검을 휘둘렀다.

    지속적으로 공방이 이어졌다.

    현성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생각할 틈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고 용혈검을 휘둘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늪지대가 크로커다일맨들의 사체로 뒤덮였다.

    “휴!”

    더 이상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이 없는 것을 확인한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할 만하셨습니까?”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최약체답네요.”

    지형의 이점만 아니었다면 더 손쉽게 사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크로커다일맨은 영웅 등급 몬스터 중에서는 최약체에 속한다.

    그런 만큼 공격력과 방어력이 생각보다 약했다.

    하지만 영웅 등급 몬스터는 영웅 등급 몬스터다.

    던전 레벨에 맞는 플레이어였다면 결코 크로커다일맨의 숨통을 일격에 끊지 못했을 것이다.

    현성은 자신이 엄청나게 강해졌음을 실감했다.

    영웅 등급 몬스터인 블루 드레이크의 배 속에서 죽을 뻔했던 처지에서 이제는 영웅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플레이어의 위치로 올라갔다.

    물론 크로커다일맨과 블루 드레이크는 같은 영웅 등급 몬스터라고 해도 그 격이 달랐다.

    크로커다일맨은 영웅 등급 최하위 몬스터였고 드레이크는 영웅 등급 최상위 몬스터였으니까 말이다.

    ‘이제 시작이야.’

    크로커다일맨을 시작으로 하위 등급의 영웅 등급 몬스터들을 사냥해 업적을 쌓고 스텟을 올린다.

    현성은 지금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홀로 블루 드레이크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질 것이다.

    현성은 루시아와 함께 사냥을 이어 나갔다.

    크로커다일맨 사냥은 순조로웠다.

    던전 안은 늪지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성과 루시아는 수풀 지대를 어슬렁거리던 크로커다일맨들을 사냥하기도 했고, 때로는 늪지대 속에 있는 크로커다일맨들을 뭍으로 유인해 사냥하기도 했다.

    ‘빠르게 익숙해지네.’

    현성은 야성의 본능 스킬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사실 야성의 본능 같은 패시브 스킬은 수련하기가 힘들었다.

    특정 조건에서 발동되다 보니 액티브 스킬처럼 임의로 수련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시아는 숙련도를 계속 올리면 패시브 스킬 역시 임의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모두 가능한 것은 아니다.

    뇌전룡의 비늘 같은 패시브 스킬은 임의 사용이 불가능했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야성의 본능이나 생존 본능 같은 스킬은 수련을 통해 임의로 발동 조건을 만족시켜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당연히 피나는 노력을 동반해야 했지만 말이다.

    ‘최고의 수련장이야.’

    크로커다일맨 던전은 야성의 본능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는 데 최적화된 사냥터였다.

    * * *

    “겨우 뉴비 하나 영입하는 손쉬운 일도 실패하다니, 넌 도대체 잘하는 게 뭐야?”

    길드장의 외침에, 진한 길드 스카우터 원중서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따위로 할 거면 당장 때려치워!”

    “그게, 갑자기 플레이어 협회 감찰 팀이 끼어들어서…….”

    원중서가 변명하듯 대답했다.

    “플레이어 협회 감찰 팀?”

    “예.”

    “플레이어 협회 감찰 팀이 뭐? 그놈들이 무슨 명분으로 우리 길드의 뉴비 영입 활동을 방해해?”

    “목표물과 친분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목표물이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어 보여서…….”

    원중서의 변명에 길드장이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영입 조건을 먼저 이야기했었어야지!”

    “몇 번이나 이야기했어요. 그런데도 거절했습니다.”

    원중서의 말에 길드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건을 듣고도 거절했다고?”

    “예.”

    “벌써 스폰이 붙은 건가? 아니면 돈이 아쉽지 않은가?”

    길드장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길드장님, 그냥 포기하는 게 어떨까요? 플레이어 협회 감사 팀원이 끼어 있습니다. 괜히 일이 꼬이면 어떻게 합니까?”

    “이게 얼마짜리 일인데 포기를 해? 물주가 그년을 콕 집어서 데리고 오라고 했단 말이야. 일단 그 플레이어 협회 감사 팀원이라는 놈 신상부터 털어 봐.”

    “알겠습니다.”

    “빌어먹을…….”

    길드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진한 길드는 양지가 아니라 음지에서 활동하는 길드다, 대기업이나 거대 길드들의 구린 일을 처리해 주는.

    그리고 그 구린 일 중에는 플레이어 공급도 있었다.

    플레이어의 존재는 현대 과학으로도 완벽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미스터리 중 하나다.

    레벨 업 시스템이 왜 갑자기 생기는지.

    플레이어는 도대체 어떻게 마력을 사용하게 되는지.

    임의로 플레이어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지.

    국가 차원에서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고 기업 차원에서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그리 시원치 않았다.

    현대 문명의 윤리상 인체 실험을 진행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을 허락하는 플레이어를 찾기가 힘들었다.

    플레이어는 대부분이 고소득자다.

    하다못해 노가다를 나가도 일반 인부의 세 배에 달하는 보수를 받는다.

    그런 플레이어가 뭐가 아쉽다고 인체 실험의 대상이 되겠는가.

    결국 공식적인 플레이어 연구 프로젝트는 대격변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 취소되었다.

    하지만 소수의 기업들은 비공식적으로 실험을 계속해 왔다.

    플레이어의 비밀을 완전히 밝혀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이득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공식적인 실험을 위한 주재료가 바로 플레이어다.

    그리고 진한 길드의 주력 사업은 플레이어 공급이었다.

    목표물은 주로 친인척이 없는 플레이어들이다.

    그런 면에서 멸망한 나라 출신의 외국인 플레이어는 최고의 목표물이었다.

    갑자기 실종당해도 찾는 사람도 없고 신고할 사람도 없다.

    아예 실종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뒤탈이 날 염려가 없으니 진한 길드의 사업은 오랜 시간 순조롭게 순항 중이었다.

    ‘담당자 자식이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게 분명한데.’

    목표물이 플레이어 등록을 신청하고 플레이어 아카데미에 입소한 순간부터 브로커에게서 연락이 왔고 진한 길드가 움직였다.

    진한 길드는 불법적인 일을 하는 만큼 상당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사실 지금처럼 잡음이 낄 만한 상황에서는 그냥 목표물을 포기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담당자가 콕 집어 목표물을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단순히 실험체로 쓰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흑심도 있어 보였다.

    ‘망할 놈의 새끼.’

    마음 같아서는 무시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힘들었다.

    ‘일단 그놈에 대해 조사해 보면 뭔가 결과가 나오겠지.’

    길드장은 최대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소망했다.

    * * *

    크로커다일맨 던전에서의 사냥을 마무리한 현성은 루시아와 함께 백우신을 찾아갔다.

    “사냥하면서 문제는 없었나요?”

    현성의 물음에 백우신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석과 스킬북이 가득 담긴 가방을 내밀었다.

    “이만큼 벌었다!”

    백우신이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백우신은 기분이 좋았다.

    전 파티원들과 사냥할 때보다 월등히 많은 마석을 얻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다.”

    백우신이 현성에게 마석과 스킬북이 담겨 있는 가방을 내밀었다.

    “저한테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백우신 씨 겁니다.”

    현성의 말에 백우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라오세요.”

    현성은 백우신을 데리고 경매장으로 향했다.

    경매장에서 백우신이 사냥해 얻은 마석을 시세대로 팔았다.

    스킬북은 경매장에 올렸다.

    “이건 마석을 판 돈입니다. 스킬북을 판매한 돈은 경매가 끝나야 들어올 겁니다.”

    1만 원짜리 지폐가 빽빽하게 들어 있는 돈 봉투를 받은 백우신의 얼굴이 환해졌다.

    백우신은 현성이 준 돈의 가치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에 비해 많은 금액이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백우신이 돈 봉투에서 1만 원짜리 지폐를 한 움큼 꺼냈다.

    “은혜 갚는다.”

    백우신은 현성이 자신에게 준 보석과 책 들이 엄청나게 비싸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또 자신이 던전에서 사냥을 하고 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가 현성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자 돈을 건넸다.

    “나중에 천천히 갚으셔도 됩니다. 일단 어머니와 여동생 몫으로 남겨 두세요.”

    현성의 말에 백우신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다!”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새로운 집은 어떠세요?”

    “좋다! 우희가 엄청 좋아한다!”

    현성은 백우신을 어머니와 누나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옆집으로 이사시켰다.

    백우신 가족의 편의를 위한 목적도 있었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보험이기도 했다.

    백우신은 꼭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고 잠도 집에서 잤다.

    가드들을 믿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막아 내기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꼭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일본 놈들이 언제까지 잠잠할지 알 수가 없으니까.’

    조인족들로 인해 난리가 난 상태이기는 하지만, 언제 마수를 뻗어 올지 몰랐다.

    ‘어머니랑 누나도 좋아하시고.’

    어머니와 누나는 백우신의 동생인 백우희를 무척 귀여워했다.

    “내일도 오늘처럼만 하시면 됩니다.”

    현성의 말에 백우신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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