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신
‘하!’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거구의 사내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하지만 그가 보이는 행동과 어투는 누가 봐도 정신적인 면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플레이어로 각성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애를 극복하고 랭커의 반열에 오른 플레이어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장애를 가진 플레이어를 이끌어 주는 눈물겨운 동료애가 아니었다.
저들은 철저하게 거구의 사내를 이용하고 있었다.
‘장비 수리비가 아까워서 벗게 한 건가?’
최소한의 장비를 착용하지 않으면 던전에 입장할 수 없다.
플레이어들 곁에는 거구의 사내가 입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갑옷과 방패 그리고 망치가 있었다.
모두 대여한 장비였다.
‘쓰레기 같은 놈들.’
대격변 이전에도 저런 자들은 존재했다.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을 노예처럼 부렸던 이들.
저들은 그 쓰레기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자들이었다.
현성이 어둠의 장막 스킬을 해제했다.
어둠의 장막 스킬을 해제했지만, 그들은 현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사냥에 열중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사냥 방법이라는 것은 거구의 사내를 맨몸으로 몬스터들 사이에 던져 놓는 것이었다.
현성은 이 역겨운 사냥 방법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파지지직!
현성이 사용한 흑뢰룡의 숨결이 몬스터들에게 작렬했다.
캬아아앙!
처절한 비명과 함께 거구의 사내를 둘러싸고 있었던 사슴 뿔 거북이들이 전멸했다.
“뭐야?”
“누가 스틸했어?”
사냥에 열중이던 플레이어들이 방방 뛰기 시작했다.
거구의 사내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저벅저벅.
현성이 거구의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야, 이 미친놈아, 왜 스틸을 하고 지랄이야?”
파티장이 삿대질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파티장의 눈에 거구의 사내를 향해 다가가는 현성의 모습은 스틸한 몬스터에게서 나온 전리품을 가지러 가는 것처럼 보였다.
“뭐? 미친놈?”
현성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다시 한번 말해 봐.”
현성이 파티장을 노려보며 물었다.
“네놈이 우리가 사냥 중인…… 몬스터를 스틸……하셨잖아요.”
잔뜩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던 파티장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에는 존댓말로 바뀌어 버렸다.
몬스터를 스틸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눈에 들어오지 않던 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고가로 보이는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초보 레벨을 졸업했다고 할 수 있는 사슴 뿔 거북이 던전에서 사냥할 장비 수준이 아니었다.
거기다 지나치게 당당한 현성의 태도도 마음에 걸렸다.
“어, 스킬북 나왔다. 대박, 희귀 등급이야!”
그때 플레이어 중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말을 들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눈이 번뜩였다.
“진짜?”
“이거 봐!”
정말이었다.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희귀 등급 스킬북.
일반적으로 100레벨은 넘어야 구경이 가능한 고가의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내자 플레이어들의 눈에 진한 탐욕의 기운이 서렸다.
최하 몇억, 최고 몇십억이 넘는 금액을 자랑하는 게 바로 희귀 등급 스킬북이다.
‘잔존 마력 뭉치기 현상이 일어났네.’
현성은 일거에 사슴 뿔 거북이들을 쓸어버렸다.
그 결과 잔존 마력이 하나로 뭉치는 일이 벌어졌고 희귀 등급 스킬북이 나온 것이다.
‘일부러 작업할 때는 그렇게 안 나오더니.’
고의적으로 잔존 마력 뭉치기를 유도할 때는 잘 나오지 않더니 이번에는 몬스터 숫자도 적었는데 한 번에 나왔다.
“우리 파티가 사냥하던 몬스터를 잡아서 나온 거니까 저건 우리 겁니다.”
파티장이 현성을 노려보며 선언했다.
현성의 장비를 보고 잔뜩 기가 죽었던 파티장은 희귀 등급 스킬북의 등장에 자신감을 회복했다.
스킬북이 나왔다는 것은 고레벨 플레이어로 보이던 현성의 레벨이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현성이 고레벨 플레이어였다면 스킬북이 나올 리가 없었다.
‘끽해 봐야 10레벨 차이야.’
파티장의 레벨은 70레벨이었다.
다른 파티원들의 레벨도 60레벨 중후반이었다.
자신들의 숫자는 총 아홉 명이고 상대는 혼자다.
안전한 사냥을 위해 60레벨 던전인 사슴 뿔 거북이 던전에서 사냥하고 있을 뿐 파티의 전력은 70레벨 몬스터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우리가 꿀릴 건 없어.’
몬스터와 플레이어는 다르다.
파티 하나가 10레벨 차이가 나는 몬스터를 이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10레벨 차이가 나는 플레이어를 이기는 건 쉽다.
플레이어는 동 레벨의 몬스터보다 월등히 약하니까 말이다.
‘저놈이 미치지 않은 이상 우리를 먼저 공격할 일도 없고…….’
파티장이 현성을 보고 긴장했던 이유는 이곳이 던전이기 때문이다.
던전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살인, 강도, 강간 등의 중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바로 던전이다.
플레이어들은 그렇기에 낯선 이의 등장을 경계한다.
하지만 현성의 레벨이 확인된 이상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무력 싸움이 아니라 명분 싸움으로 가도 불리할 게 없었다.
이번 일은 명백하게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건 상황이다.
자신들이 사냥 중인 몬스터를 상대가 스틸한 것이니까 말이다.
파티장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무렵.
현성은 거구의 사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현성의 물음에 거구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갑옷이랑 방패도 없이 사냥을 하고 계신 거죠? 저 사람들이 그러라고 시켰나요?”
거구의 사내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냥 후에 정산은 제대로 받고 있습니까? 혹시 정산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정산은 제대로 받고 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현성의 행동에 파티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파티의 탱커에게 관심을 보이는 현성의 행동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봐요, 갑자기 나타나서 사냥 중인 몬스터를 스틸하는 것도 모자라서 왜 남의 파티 정산 금액을 물어봅니까?”
“그거야 네놈들 파티가 딱 봐도 비정상적이니까 그렇지.”
장비 하나 착용하지 않은 맨몸의 탱커.
확실히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이든 비상식적이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곱게 말할 때 우리 파티 일에 신경 끄고 사냥이나 해라,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파티장의 말이 다시금 반말로 바뀌었다.
현성이 품에서 플레이어 등록증을 꺼냈다.
현성의 플레이어 등록증은 일반 플레이어 등록증과 색깔부터 달랐다.
거기다 감찰 팀원이라는 글자와 협회 마크가 붙어 있었다.
“난 플레이어 협회 감찰 팀원이다. 이제 네놈들 파티 일에 신경을 써도 되겠지?”
현성의 말에 파티장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플레이어 협회 감찰 팀.
던전에서 사냥을 하는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경찰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X발, X됐다.’
파티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건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번 사냥하면 정산금을 얼마나 받으시죠?”
“엄청 많이 받는다.”
거짓말일 확률이 높았다.
아마 파티장과 파티원들이 그렇게 대답하라고 시켰을 것이다.
‘물어본다고 진실을 말할 거 같지는 않네.’
거구의 사내가 한 대답에 현성이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사용했다.
그와 동시에 거구의 사내가 겪은 최근 한 달간의 생활이 현성의 눈앞에 펼쳐졌다.
“야, 이 병신 새끼야, 왜 그것밖에 못 버텨?”
몬스터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거구의 사내에게 파티원들의 욕설과 구박이 이어졌다.
“도대체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게 하는 거야?”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파티원들은 온갖 구박과 조롱을 쏟아 내며 거구의 사내를 괴롭혔다.
탱커의 이름은 백우신.
지적장애 2급의 장애인이었다.
파티장과 파티원들은 모두 같은 기수 플레이어 아카데미 출신이었다.
그들은 의기투합해 파티를 꾸렸지만 탱커를 구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들의 눈에 뜨인 인물이 바로 같은 기수의 백우신이었다.
지적장애를 가진 백우신은 플레이어 협회에서 이론교육 시험을 면제받았다.
실기 시험 성적이 기대 이하였다면 플레이어 등록증을 발급받지 못했겠지만 백우신은 실기 시험에서는 상당히 뛰어난 성적을 보여 플레이어 등록증을 발급받는 데 성공했다.
백우신은 돈을 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적장애를 가진 그를 파티원으로, 그것도 파티원 전체의 안전을 책임지는 탱커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파티는 없었다.
그들도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당장 사냥을 가고 싶다는 마음에 백우신을 파티에 넣어 던전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백우신은 탱커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특히 희귀 등급 광역 도발 스킬과 방어 스킬을 가지고 있었기에 오히려 다른 탱커들보다 월등히 손쉽게 사냥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초기 스텟 역시 일반적인 플레이어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백우신은 훌륭한 탱커였다.
파티원들은 백우신을 파티의 탱커로 인정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레벨 업을 하면서부터였다.
백우신은 아무리 알려 줘도 스텟을 찍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못 해?”
파티원들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이제 한계야.”
압도적인 기본 스텟과 희귀 스킬빨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백우신은 파티의 계륵이 되어 버렸다.
“저 녀석 버리고 새 탱커를 구하자.”
“그래, 그게 낫겠어.”
파티원들은 백우신을 버리고 새 탱커를 구하려고 했다.
문제는 파티원들의 실력이 평균 이하라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탱커를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 새 탱커 구할 때까지는 저 녀석이랑 같이 사냥해야겠다.”
어쩔 수 없이 파티원들은 다시 백우신과 함께 사냥을 했다.
하지만 탱커인 백우신의 탱킹력이 떨어지니 자연스럽게 공격형보다는 방어형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밖에 없었다.
파티의 수익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게 다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네가 책임져.”
“너도 동의하지?”
파티장과 파티원들이 합심해서 백우신의 수익 비율을 줄였다.
백우신 때문에 수익이 줄었으니 당사자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백우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심은 있었는지 파티장과 파티원들은 백우신의 수익 비율을 아주 약간만 줄였다.
하지만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저 병신한테 정산금을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니야?”
“그래, 스텟도 못 찍는 탱커한테 이건 너무 많다.”
“우리 아니면 누가 저놈을 던전에 데리고 가서 사냥시켜 주겠어?”
파티원들은 온갖 이유를 붙여 백우신의 몫으로 배정되는 수익금의 비율을 줄였다.
탱커와 힐러가 딜러보다 더 많은 비율의 정산금을 받는다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사기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백우신이 아예 탱커 역할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사냥터의 레벨이 올라갈수록 백우신의 정산 비율이 점점 더 줄어들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거의 노예 계약 수준으로 바뀌어 버렸다.
“야, 저놈 갑옷 벗겨! 수리비 아까우니까!”
그리고 결국 파티원들은 백우신이 착용하는 장비에까지 손을 댔다.
장비 수리비를 아끼기 위해서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백우신의 장비를 업그레이드해서 방어력을 올려 주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파티원들은 정상적인 사고 대신 비정상적인 사고를 했다.
백우신은 스텟을 찍지 못하는 플레이어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입혀도 한계는 분명했다.
언젠가는 갈라서야 하는 사이다.
파티원들은 버리는 패인 백우신의 장비에 돈을 투자하느니 차라리 그 돈을 자신들이 나누어 먹는 선택을 했다.
명백한 학대와 갈취였다.
분노가 치솟았다.
같은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는 쓰레기들.
현성은 백우신에게 지적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백우신이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들과 함께 사냥을 하는 것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백우신의 어머니는 병에 걸려 있었다.
그리 심각한 병은 아니었다.
대격변 이후 발생한 현대 의학의 힘이라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의 질병이었다.
저들이 사냥 후 정산금만 제대로 분배를 해 줬어도 백우신의 어머니는 완치되었을 것이다.
백우신은 스스로를 가장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해 몬스터에게 생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견디며 사냥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냥을 하고 정산받은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고 여동생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백우신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파티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 백우신, 다른 사람한테 정산금 얼마 받았는지 이야기하지 마.
-던전 내에서 갑옷 벗는 것도 말하면 안 된다. 그럼 더 이상 우리랑 사냥 못 해.
파티원들은 백우신의 그런 사정을 약점으로 잡아 이용했다.
-나 버리지 마라. 말 안 한다.
백우신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며 학대하는 파티원들에게 같이 사냥하게 해 달라고 매달렸다.
그나마 백우신을 파티에 넣어 주는 플레이어가 그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네놈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알고 있겠지?”
“개소리하지 마.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서슬 퍼런 현성의 눈빛에 파티장이 발악하듯 외쳤다.
“맞아! 우리는 저 녀석을 보살펴 준 거라고!”
“우리가 아니었으면 저 자식이 던전에서 사냥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파티장과 파티원이 목소리를 높이며 백우신을 노려보았다.
“야, 네 입으로 말해 봐! 우리가 잘 대해 줬지? 우리가 너 구박하거나 정산 제대로 안 해 준 적 없잖아!”
파티장의 말에 백우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봤지? 당사자가 괜찮다잖아. 그러니까 당신은 그만 빠져.”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
“그렇게 못 하면 어쩔 건데!”
“파티원 전원 당장 던전을 빠져나가 조사를 받는다. 그렇게 당당하면 심문관들을 만나 조사받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현성의 말에 파티장과 파티원들의 표정이 흙빛으로 변했다.
심문관의 진실의 계약 앞에서는 그 어떤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다.
“네가 뭔데 우리한테 조사를 받으라 마라야? 플레이어 협회 감사 팀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알아!”
파티장이 발악하듯 외쳤다.
“좋게 말할 때 조사받는 게 좋을 거다,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현성의 말에 파티장이 얼굴을 구겼다.
플레이어 협회 감사 팀원이 의심스러운 현황을 포착했다.
이 자리에서 어물쩍 넘어간다 해도 어차피 조사는 들어올 것이다.
그럼 큰일이다.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그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는 백우신을 노예처럼 부려 먹고 학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출입구 관리인에게 뇌물을 주고 마석과 아이템 수량을 속이기도 했다.
조사가 시작되고 그 사실이 밝혀진다면?
‘플레이어 등록을 박탈당할 수도 있어.’
최하가 플레이어 등록 정지, 일이 커지면 플레이어 등록 취소였다.
플레이어 등록이 취소되면 타국으로 넘어가지 않는 한 다시 플레이어 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없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던전 관리법 위반에 대한 벌금과 그간 밀반출한 마석과 아이템에 대한 추징이 들어올 것이다.
던전 관리법 위반은 엄청난 중범죄다.
그간 물품을 밀반출해서 본 이득의 수십 배를 토해 내야 했다.
‘저 새끼만 없어지면 아무도 몰라.’
파티장의 눈에 진한 독기가 피어올랐다.
“야, 니들은 이대로 조사받을 거냐?”
파티장의 물음에 파티원들의 눈에도 독기가 피어올랐다.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행위가 드러나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 말이다.
알거지가 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스르릉!
파티원들이 무기를 꺼내 들고 일제히 현성을 겨눴다.
“이게 무슨 뜻이지?”
살기를 줄줄 흘리며 무기를 꺼내 든 플레이어들을 보며 현성이 물었다.
“왜? 이제 와서 쫄리냐?”
“이건 네가 자초한 거다. 그러게 왜 오지랖 넘게 남의 일에 끼어들고 지랄이야?”
“걸치고 있는 장비가 꽤 좋아 보이네. 그건 우리가 잘 써 줄게.”
자신을 포위한 상태로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던 현성의 시선이 백우신에게 향했다.
백우신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왜? 그 병신이 널 도와줄 것 같아?”
파티장의 말에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백우신 씨, 두 눈을 감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러면 어머니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동생에게 새 책가방도 사 줄 수 있을 거고요.”
현성의 속삭임에 백우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던전 내부에서 같은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건 사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중죄다. 그건 알고 있겠지?”
현성의 말에 파티원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너무도 태연자약한 현성의 태도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순순히 내 말에 따르면 사지 멀쩡하게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다. 무기 버리고 던전 밖으로 나가.”
“어디서 허세를 부리고 있어? 조져!”
파티장의 말과 함께 파티원들이 일제히 현성을 향해 덤벼들었다.
근접 딜러들이 가장 먼저 달려들었고 원거리 딜러들은 일제히 스킬을 날렸다.
현성이 용혈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원거리 딜러들의 스킬을 가볍게 회피한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렀다.
서걱!
장검을 들고 있던 근접 딜러의 오른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아아악!”
오른팔을 잃은 근접 딜러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콰직!
현성의 주먹이 비명을 지르던 딜러의 입에 처박혔다.
왼팔에 장착된 금속 보호대가 피로 물들었다.
적 하나를 침묵시킨 현성이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다음 목표는 창을 들고 있는 딜러였다.
현성의 목표물이 된 딜러가 창대를 들어 용혈검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용혈검의 예기를 일반 등급 무기로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서걱!
강철로 이루어진 창대는 채 0.1초도 버티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났다.
창대를 벤 용혈검이 딜러의 양팔을 잘라 냈다.
“아악! 내, 내 팔이!”
양팔이 사라진 비현실적인 상황에 딜러가 비명을 토해 냈다.
그런 그의 입에 현성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이건 전투가 아니었다.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현성의 손에 들린 용혈검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적들의 사지 중 하나가 피를 흩뿌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투가 시작된 지 몇 초 만에 근접 딜러들은 모두 전투 불능이 되어 버렸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원거리 딜러와 힐러 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 넌 안 덤비냐?”
현성이 파티장에게 물었다.
파티장은 공격 명령을 내려놓고 막상 자신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저벅저벅.
현성이 파티장을 향해 걸어갔다.
파티장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땡그랑.
파티장이 들고 있던 무기를 버렸다.
“조, 조사받겠습니다.”
파티장의 말에 현성이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퍼억!
현성의 주먹이 파티장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아악!”
파티장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면이 함몰되고, 부서진 치아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콰직!
현성의 발이 파티장의 무릎을 으깨 버렸다.
“아아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파티장이 처절한 비명을 토해 냈다.
현성이 고개를 돌려 원거리 딜러와 힐러 들을 바라봤다.
다 똑같은 놈들이다.
“조사받겠습니다! 그러니까 때리지 마세요!”
원거리 딜러와 힐러 들이 애원하듯 외쳤다.
하지만 현성은 이들을 사지 멀쩡하게 데리고 나갈 생각이 없었다.
살인을 저지르려 한 놈들이다.
현성은 원거리 딜러와 힐러 들의 안면과 무릎 관절을 교정해 주며 제압을 완료했다.
“백우신 씨, 이제 눈 뜨셔도 됩니다.”
현성의 말에 백우신이 눈을 떴다.
“일단 나가시죠.”
“엄마 치료해 줘. 우희 책가방도 줘.”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백우신의 말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현성은 힐 스킬을 사용해 사지가 잘려 나간 근접 딜러들을 대충 치료해 줬다.
떨어져 나간 팔이 다시 붙기는 했지만 전처럼 자유롭게 사지를 쓰지는 못할 것이다.
무릎 관절과 뼈가 으스러진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성은 만신창이가 된 그들을 이끌고 던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그들을 경찰에 넘겼다.
조사가 시작되자 그간의 비리 행각이 낱낱이 드러났다.
사건이 마무리되면 백우신은 그간 제대로 정산받지 못했던 정산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성은 백우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루시아와 함께 사냥을 가기 전에 시간을 내서 백우신의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백우신의 여동생 백우희의 책가방과 학용품도 새로 사 줬다.
현성에게 있어서는 푼돈이나 다름없는 금액이었다.
“고맙다.”
백우신이 현성과 루시아에게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백우신의 진심 어린 인사를 받은 현성의 입가에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은혜 꼭 갚는다.”
백우신의 말에 현성이 그럴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다. 꼭 갚는다.”
“다시 던전에 들어가실 생각이신가요?”
“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혹시 저한테 상태창을 보여 주실 수 있나요?”
현성의 물음에 백우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우신의 상태창이 현성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름 : 백우신
플레이어 레벨 : 64
메인 직업 : 방패병 – 일반 등급
스텟 : [힘 5 +5] [민첩 3] [체력 45 +15] [마력 3] [정신력 5 +10]
미분배 스텟 : [340]
직업 전용 스킬 : [불굴의 육체 – 직업 전용 스킬] [오러 실드 – 직업 전용 스킬] [신념의 방패 – 직업 전용 스킬]
액티브 스킬 : [광역 도발 – 희귀 등급]
패시브 스킬 : [아이언 바디 – 희귀 등급] [단단한 몸 – 일반 등급] [강인한 체력 - 일반 등급] [초급 방패술 지식 - 일반 등급]
‘어?’
현성의 눈에 루시아의 상태창에서 봤던 것과 동일한 직업 전용 스킬들이 들어왔다.
현성이 루시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훌륭하군요. 기사가 될 자질이 충분합니다. 저에게 맡겨 주시면 병사가 아니라 뛰어난 기사로 키워 내겠습니다.”
루시아의 말에 백우신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기사?”
백우신의 물음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초기 스텟도 상당히 뛰어나고 직업 전용 스킬도 상당히 우수한 편입니다. 특히 불굴의 육체의 경우 영웅 등급 스킬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뛰어난 스킬입니다. 제대로 성장한다면 충분히 랭커의 반열에 들 수 있습니다”
“랭커!”
백우신의 눈이 반짝였다.
백우신은 플레이어를 동경했다.
플레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를 가리지 않고 섭렵할 정도였다.
“하지만 스텟을 찍지 못하면 더 이상 성장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루시아의 말에 백우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우신은 자신의 상태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스텟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스킬의 경우 이성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사용했다.
스텟을 찍지 못하는 플레이어의 한계는 정해져 있다.
“랭커가 되고 싶습니까?”
루시아의 물음에 백우신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주군의 사람이 되십시오.”
루시아의 말에 현성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데요?”
현성은 백우신의 사정이 딱해 작은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백우신 씨는 플레이어로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수 있고, 주군으로서는 비밀이 새어 나갈 염려가 없는 아군을 얻게 됩니다.”
그 말에 현성의 마음이 흔들렸다.
비밀이 새어 나갈 염려가 없는 아군.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백우신은 쓰레기 같은 파티원들에게 온갖 학대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다.
현성의 물음에도 끝까지 파티원들이 미리 주입시켜 놓은 대답만 했다.
‘백우신은 믿을 수 있어.’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사람이 바로 백우신이다.
‘한번 해 볼까?’
현성 역시 비각성자 시절, 플레이어를 동경했다.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야망도 가지고 있었다.
세력을 키우는 것 역시 나쁠 것이 없었다.
플레이어 협회에 소속되어 있기는 했지만, 현성은 플레이어 협회의 장이 아니라 플레이어 협회의 부속품 중 하나였다.
상당히 중요한 부속품이기는 하지만 많고 많은 부품 중 하나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현성은 자신의 힘을 키우는 일에만 집중해 왔다.
고유 능력을 다른 이들에게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기회가 찾아왔다.
백우신은 현성의 도움이 없으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비밀이 새어 나갈 확률도 없었다.
“나 랭커가 되고 싶다.”
백우신의 말에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제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현성의 말과 함께 직업 전용 스킬 등용이 활성화되었다.
-플레이어 백우신에게 등용을 제의하셨습니다.
“응!”
백우신이 힘차게 대답했다.
-플레이어 백우신이 등용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통솔력 20이 소모됩니다.
백우신이 현성의 신하가 되었다.
“아!”
백우신이 현성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백우신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 백우신의 내면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자신의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 주고 여동생의 책가방과 학용품을 사 준 고마운 사람.
은혜를 갚아야 하는 사람.
그게 백우신이 현성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이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자 충심으로 따라야 할 대상.
그 두 가지 감정이 백우신의 뇌리에 박혀 버렸다.
군주의 직업 전용 스킬인 등용은 단순히 플레이어 하나를 휘하에 묶어 두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시는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향상시킨다.
물론 세뇌처럼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저 신하로서 모시는 군주에 대한 기본적인 충성심을 심어 줄 뿐이다.
정상적인 플레이어였다면 그저 현성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심이 약간 상승하는 수준의 효과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하얀 백지와 다름없는 상태의 백우신에게는 달랐다.
백우신이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는 대상은 어머니와 여동생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현성을 온전히 신뢰하고 따라야 할 대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일단 기본 스텟부터 올려야겠군요.”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성이 주는 비약을 날름날름 받아먹은 백우신은 전신에서 넘치는 힘에 전율했다.
보석처럼 생긴 이상한 물건이었지만 현성이 주기에 의심 없이 먹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난생처음 느껴 보는 쾌감의 파도에 쉽사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성이 마비된 사람처럼 비약을 섭취했다.
모든 비약을 섭취한 후 백우신은 자신의 육체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맙다!”
백우신이 현성에게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백우신은 자신에게 이런 힘을 준 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현성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심이 끝도 모르고 상승했다.
“일단 이것도 익혀요.”
현성이 스킬북을 건네주었다.
대부분이 일반 등급이었고 희귀 등급은 몇 개 되지 않았다.
백우신은 스킬북을 움켜쥐고 정신없이 스킬을 흡수했다.
그 결과 백우신은 방금 전과 전혀 다른 플레이어로 변해 있었다.
이름 : 백우신
플레이어 레벨 : 64
메인 직업 : 방패병 – 일반 등급
스텟 : [힘 200 +5] [민첩 200] [체력 200 +15] [마력 200] [정신력 200 +10]
미분배 스텟 : [340]
직업 전용 스킬 : [불굴의 육체 – 직업 전용 스킬] [오러 실드 – 직업 전용 스킬] [신념의 방패 – 직업 전용 스킬
액티브 스킬 : [광역 도발 – 희귀 등급] [강철의 방패 – 희귀 등급] [도발 – 일반 등급] [실드 – 일반 등급] [힐 – 일반 등급] [큐어 – 일반 등급] [실드 스턴 – 일반 등급]
패시브 스킬 : [아이언 바디 – 희귀 등급] [단단한 몸 – 일반 등급] [강인한 체력 - 일반 등급] [초급 방패술 지식 - 일반 등급] [중급 방패술 지식 – 희귀 등급] [재생의 바람 – 희귀 등급] [치유의 바람 – 희귀 등급] [초급 둔기술 지식 – 일반 등급] [중급 둔기술 지식 –희귀 등급] ……후략……
전 스텟이 200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대략 70억 포인트 정도가 들었다.
과거였다면 엄두도 못 낼 정도의 거액이었지만 현재의 현성에게 있어서는 그리 큰 부담이 아니었다.
희귀 등급 스킬북과 일반 등급 스킬북은 현금으로 구입하고 무기와 방어구 같은 아이템은 대여로 해결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소소한 투자였다.
“파티 사냥보다는 솔로잉이 좋겠죠?”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레벨이 낮아 업적 몇 개 정도는 손쉽게 획득할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획득해야 하는 거라면 체력 스텟을 올려 주는 게 좋겠네요.”
백우신의 레벨은 64다.
하지만 현재 스텟은 190레벨을 달성한 플레이어와 비슷한 수준이다.
자신의 레벨보다 높은 레벨의 던전에서 솔로잉만 해도 손쉽게 업적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일단 사냥터에 보내기 전에 수준을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루시아의 말에는 현성도 동의했다.
기본 스텟이 상승하고 스킬도 늘어났다고 해도 실력 테스트는 필요했다.
현성은 백우신과 함께 던전으로 들어갔다.
실력 테스트를 하기에는 던전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테스트 장소로 선정된 장소는 효율성이 극악인 흡혈 박쥐 던전이었다.
현성이 루시아를 소환했고 백우신의 실력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루시아가 백우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강! 파강!
백우신은 사력을 다해 루시아의 공격을 막아 냈다.
반격은 엄두도 내기 힘들 정도의 강공이었다.
“디딤 발의 위치가 틀렸습니다.”
루시아의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백우신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퍼억!
루시아의 방패가 백우신의 방패를 후려쳤다.
백우신이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루시아는 백우신의 앞에서 자세를 취했다.
“제 발의 위치를 잘 보시고 다시 공격해 보십시오.”
루시아의 말에 백우신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퍼억!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루시아는 차분하게 교육을 이어 나갔다.
백우신의 몸이 금세 만신창이로 변했다.
하지만 백우신은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계속 일어나 루시아에게 덤벼들었다.
자세에도 변화가 있었다.
백우신은 한 번 이야기하면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번 몸으로 경험하면서 자세를 교정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백우신이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헉헉거리는 백우신을 바라보는 루시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훌륭합니다. 가르치는 맛이 있군요. 몸이 기억하는 속도도 무척 빠릅니다.”
루시아의 말을 들은 현성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저건 몸이 기억하는 속도가 빠른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드니 생존을 위해 사력을 다해 적응하는 수준이었다.
“조금만 더 훈련시키면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차 전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병사가 아니라 기사로 전직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보겠습니다.”
“그렇게 쉽게 가능할까요?”
“전직은 그간의 전투 패턴을 기반으로 결정되는 만큼 제대로 굴리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현성은 그 굴림을 백우신이 견뎌 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백우신 씨, 그만큼 쉬셨으면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겠군요. 일어나십시오.”
루시아가 백우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가벼운 테스트로 시작된 지옥 훈련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 * *
현성이 루시아와 함께 백우신의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무렵.
세계 각국의 플레이어들이 일본에 집결을 완료하고 조인족 토벌을 준비하고 있었다.
1,500여 마리의 조인족.
1만 5천여 명의 플레이어.
이렇게 많은 숫자의 플레이어가 한자리에 모인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건 더 이상 사냥이나 전투가 아니었다.
인류와 몬스터의 전쟁이었다.
조인족들은 큐슈섬 전역에 흩어져 수많은 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조인족들이 하나로 뭉치기 전에 각개격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인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콕! 콕! 콕!
조인족 한 마리가 인간의 사체를 쪼아 먹고 있었다.
타악!
그런 조인족을 향해 탱커가 달려들었다.
캬아아악!
탱커를 발견한 조인족이 커다란 포효를 터트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 전에 탱커의 도발 스킬이 먼저 적중했다.
하늘로 날아올랐던 조인족이 급하강하며 탱커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이어 스피어!”
“체인 라이트닝!”
조인족을 향해 원거리 딜러들의 스킬이 비처럼 쏟아졌다.
캬악!
날개를 적중당한 조인족이 휘청거리는 순간, 근거리 딜러들이 달려들었다.
“파워 슬래시!”
“빛의 칼날!”
근거리 딜러들의 스킬이 일제히 조인족을 향해 쏟아졌다.
조인족이 딜러들에게 반응하려는 순간, 탱커의 도발 스킬이 다시금 발동했다.
조인족은 처절하게 저항했다.
영웅 등급 몬스터답게 온갖 스킬을 사용하며 플레이어들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조인족 사냥이 끝났다.
큐슈섬 전역에서 비슷한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졌다.
인간들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무려 4백 마리가 넘는 조인족들이 제대로 된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캬아아악!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황금빛 날개의 조인족이 분노의 포효를 토해 냈다.
포효를 들은 조인족들이 황금빛 날개의 조인족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들의 계획의 일부일 뿐이었다.
한자리에 모인 조인족들을 향해 인간의 군대가 포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