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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두 번째 전설 등급 몬스터 (37/225)

┃두 번째 전설 등급 몬스터

“강제 사항이 아니라면 굳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아, 강제 사항은 아니에요. 그냥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연락드린 거예요.

신윤아의 말에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당분간은 남한 지역에서 푹 쉴 계획이라서요.”

-그동안 현성 씨가 많이 바쁘기는 했죠. 알겠어요.

“윤아 씨는 일본으로 가시는 건가요?”

-예, 그렇게 됐어요. 일본 정부가 꽤 다급했는지 상당히 후한 조건을 제시했거든요. 사실 그래서 현성 씨한테 연락드렸던 거예요. 놓치기에는 상당히 아쉬운 조건들이 많거든요.

조인족 무리 때문에 일본이 다급하기는 한 모양이다. 신윤아의 입에서 후한 조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말이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항상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시고요.”

-네, 알겠어요. 혹시 나중에라도 생각 바뀌면 연락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현성의 생각이 바뀔 일은 없었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북한 지역에 플레이어들을 파견해 현성을 노린 전적이 있다.

일본은 그들의 소굴이다.

UN연합군 소속이 되어 도와주러 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가 어떤 수작을 부릴지 알 수가 없었다.

현성은 굳이 자기 발로 적의 소굴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현성 씨, 도대체 밥은 언제 사 줄 생각이세요?

“예?”

-저번에 저한테 고맙다고 밥 한 번 산다고 하셨잖아요. 설마 까먹으신 건 아니죠?

신윤아의 말에 그제야 기억이 났다.

서우 길드와 트러블이 있었을 때 신윤아의 도움을 받고 밥을 산다고 한 적이 있었다.

-설마 빈말이셨어요?

“아닙니다. 일본 출장 끝나고 돌아오시면 제가 거하게 대접하겠습니다.”

-알겠어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럼 다음에 봐요.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플레이어 협회입니까?”

루시아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일본에 갈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거절하셨군요.”

“굳이 적의 소굴로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안전만 보장된다면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루시아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이번 일은 어찌 되었든 일본을 돕는 것이다.

그런데 루시아가 찬성표를 던질 줄은 몰랐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법입니다. 안전만 보장된다면 일본으로 넘어가셔서 주군을 노렸던 이들을 일망타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쉽지는 않죠.”

UN연합군 소속이 되어 안전이 보장된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감시를 받는다는 말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주군께서 직접 움직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를 이용하신다면 손쉽게 적들을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용병 시스템을 이용해서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루시아의 고용을 해지하고 일본으로 넘어간다.

그 후 루시아를 다시금 고용한다.

루시아가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를 습격하고 다시금 소환을 해지하면 완전범죄가 된다.

도주로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현성이 의심받을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너무 과격했다.

또 이번 일에 관련되지 않은 이들이 피해를 입을 확률이 높았다.

결정적으로 기사인 루시아에게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그들을 응징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음, 그렇기는 하군요. 주군의 말씀대로 굳이 그들을 지금 당장 응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암살자를 계속 보낸다면 주군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실이 될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요.”

루시아의 말이 정답이었다.

일본이 계속해서 비밀 요원들을 보내 봤자 현성을 어찌할 수는 없다.

오히려 현성의 포인트만 늘려 줄 뿐이다.

* * *

캬아아아악!

“아아아악!”

지상에 지옥이 강림했다.

방금 전까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던 구마모토시의 시민들은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의 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소수의 플레이어들이 사력을 다해 저항해 봤지만, 1,500마리가 넘는 조인족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자위대는 왜 나타나지 않는 거야?”

“플레이어 지원은 언제 오는 거야?”

구마모토시의 시민들은 간절하게 자위대와 플레이어들의 지원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구마모토시 수비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자위대와 플레이어들을 동원해도 조인족들을 막을 수 없다.

-괜히 투입해 봤자 무의미한 희생만 커질 뿐이다.

-UN연합군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조인족과의 전투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이게 일본 정부의 결론이었다.

조인족들은 구마모토시의 시민들을 마음껏 학살하고 기간 시설들을 파괴했다.

현대사회는 마석을 주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자동차와 가전제품에도 마석이 들어간다.

가정집은 물론 공장이나 병원 같은 시설물에도 마석이 있다.

조인족들은 시설물을 파괴하고 마석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이 하늘을 활공하며 지상을 살폈다.

수하들이 먹고 있는 저급한 품질의 희석된 마석에는 관심이 없었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이 노리는 것은 희석되지 않은 고품질의 마석이었다.

하늘을 활공하던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이 드디어 목적지를 찾았다.

야마토 기업 마석 보관소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이 지상으로 하강했다.

꽈앙!

마석 보관소의 벽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보안을 위해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지만 몬스터의 침입에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대피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구마모토시의 마석 보관 창고에는 마석이 가득 쌓여 있었다.

캬르르륵!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진한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중하급 마석에서는 결코 뿜어져 나올 수 없는 진한 마력의 향취가 마석 보관소 깊숙한 곳에서 느껴졌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이 마석 보관소 내부로 이동했다.

주변에 하급 마석들이 널려 있었지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마석 보관소 내부에는 고가의 치료제로 변할 예정이었던 영웅 등급 몬스터들의 마석이 보관되어 있었다.

콰직!

영웅 등급 마석이 도난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던 철문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내부로 들어간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의 눈에 찬란한 보랏빛을 뿜어내고 있는 영웅 등급 마석들이 들어왔다.

만찬의 장이 펼쳐졌다.

콰직!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이 재빨리 부리를 움직여 마석들을 집어삼켰다.

만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만찬을 마친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의 내부에서는 극렬한 변화가 일어났다.

영웅 등급 마석이 품고 있는 강대한 마력이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의 육체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의 육체는 이미 마력이 한계치까지 차 있는 상태였다.

마력의 폭주가 일어났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의 몸이 폭발할 듯 부풀어 올랐다가 진정되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화아아아악!

밝은 빛무리가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우득! 우득!

그와 함께 육체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기존의 깃털이 빠지고 더 찬란한 빛깔의 황금빛 깃털이 돋아났다.

뼈와 근육이 더욱 튼튼하고 질기게 재구성되었다.

캬아아아악!

변화를 마친 황금빛 날개의 조인족이 힘찬 포효를 터트렸다.

한계를 극복하고 상위 등급으로 성장한 기쁨의 포효였다.

인류에게 있어서는 이무기에 이어 두 번째로 기록될 전설 등급 몬스터의 탄생이었다.

* * *

조인족들의 구마모토시 습격 사실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일본 정부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일본 내부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세계인들은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주장했다.

사실 일본 정부의 주장은 틀린 게 없었다.

자위대와 일본 플레이어들을 출동시켜 봤자 피해만 늘어날 것이 뻔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명백한 일본 정부의 실책이었다.

조인족의 기동성을 감안해 더 넓은 지역의 주민들을 대피시켰어야 했다.

결정적으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가가 국민을 구하는 일에 있어 실리와 이해득실을 따졌다.

손해가 클 것 같다고 자국민들이 죽어 나가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는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일본 정부는 다급하게 국제사회에 지원군을 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

일본 정부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던 국가들은 급하게 플레이어들을 소집했다.

일정을 따지며 느긋하게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세계 각국의 플레이어들이 일본으로 집결했다.

* * *

일본에서 난리가 났건 말건 현성은 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건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성이 찾은 던전은 6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사냥하는 사슴 뿔 거북이 던전이었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진작 클리어했을 건데.’

첫 비상 대기조 근무를 섰을 때 클리어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웨어 울프들이 등장하면서 뒤로 미뤄졌다.

사슴 뿔 거북이 던전은 그리 흔한 던전이 아니었고, 북한 지역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사슴 뿔 거북이 던전을 비롯해 몇몇 던전만 클리어하면 남한과 북한 지역에 있는 중, 저레벨 던전을 모두 클리어하게 된다.

현성은 남아 있는 던전들을 모조리 클리어한 후 영웅 등급 던전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루시아 씨는 수업 잘 받고 있으시려나.’

루시아는 현재 플레이어 아카데미에서 3주 교육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현성은 오래간만에 혼자 사냥 중이었다.

‘부지런히 움직이자.’

루시아를 데리러 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숫자의 사슴 뿔 거북이를 잡아야 했다.

루시아는 빠른 속도로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어색한 점이 많았다.

일반인들이 당연히 알고 있는 상식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더라도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에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외국인처럼 보이는 루시아의 외모 덕에 웬만한 실수는 어물쩍 넘겨 버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루시아를 혼자 두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현성은 루시아가 플레이어 아카데미에서 최대한 튀는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서걱!

마지막 남아 있던 사슴 뿔 거북이가 용혈검에 의해 숨통이 끊어졌다.

‘여기도 끝이네.’

사냥하는 시간보다 사슴 뿔 거북이 무리를 찾아다니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사실 사슴 뿔 거북이 던전에서 사냥 중인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북한 지역의 던전이 개방되며 많은 플레이어들이 북으로 올라갔고 그 덕분에 평소보다는 넉넉한 편이었다.

하지만 북한 지역에서 던전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던 때와 비교하면 당연히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현성이 어둠의 장막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사슴 뿔 거북이 던전을 누비며 새로운 사냥터를 찾아 움직였다.

‘어?’

그러다 뭔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저게 뭐야?’

갑옷 하나 걸치지 않은 거구의 사내 하나가 사슴 뿔 거북이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었다.

사내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힐러로 보이는 플레이어들이 치료 스킬을 사용해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었지만, 상처가 치료되는 속도보다 생기는 속도가 더 빨랐다.

‘갑옷이랑 방패도 없이 저게 뭐 하는 짓이야?’

몬스터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 내는 탱커는 장비가 중요하다.

최저레벨 던전인 뿔 토끼 던전에서도 탱커가 갑옷과 방패 없이 탱킹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사냥할 레벨이 아닌 거 같은데.’

탱킹을 하고 있는 거구의 사내가 보여 주는 움직임은 절대 60레벨 던전에서 사냥할 수준이 아니었다.

움직임이 너무 느렸고 탱커임을 감안해도 공격력이 너무 낮아 보였다.

지속적으로 도발 스킬을 사용해 사슴 뿔 거북이들을 끌어들이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해 고기 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슴 뿔 거북이 던전이 아니었다면 진작 죽었겠어.’

사슴 뿔 거북이는 그리 공격력이 강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공격형보다는 방어형 몬스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몬스터는 몬스터.

공격을 맨몸으로 받으면 아플 수밖에 없다.

거구의 사내가 사슴 뿔 거북이들을 붙잡고 있는 사이 딜러들의 공격이 지속적으로 쏟아졌다.

사슴 뿔 거북이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냥이 끝났다.

“치료 끝나려면 얼마나 걸려?”

“3분은 더 쏟아부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어떻게 하지? 마력이 벌써 반밖에 안 남았어.”

파티장으로 보이는 딜러의 물음에 힐러 중 하나가 얼굴을 구기며 대답했다.

“하, 저 쓸모없는 새끼.”

파티장이 한숨을 쉬며 상처투성이가 된 거구의 사내를 노려봤다.

“도대체 왜 스텟을 못 찍는 거야?”

“병신이잖아. 우리가 이해해야지.”

“그래도 전직은 했잖아. 그거 아니었으면 여기서 사냥하지도 못했을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다른 파티원들의 말에 파티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이상은 무리야. 다음 던전으로 갈 때는 새 탱커 구해야겠다.”

“안 된다.”

사슴 뿔 거북이들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입을 꾹 닫고 있던 거구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도 같이 사냥할 거다.”

사내의 말에 파티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가 지금까지 같이 사냥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라. 더 이상은 무리다.”

“나도 같이 사냥할 거다.”

“넌 같이 못 한다고, 병신아. 같이 사냥을 하고 싶으면 스텟을 찍어.”

“나도 같이 사냥할 거다.”

“그러니까 제발 스텟을 찍으라고. 네 상태창에 미분배 스텟이 있잖아. 그걸로 체력이랑 정신력을 찍으라고.”

“나도 같이 사냥할 거다.”

사내는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에휴, 저 새끼랑 말을 섞은 내가 병신이다, 병신이야.”

“스텟만 찍으면 충분히 더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못 찍는 거야?”

다른 파티원들도 답답하다는 듯 거구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나도 같이 사냥할 거다.”

거구의 사내는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래, 사냥하자, 해.”

파티장의 말에 거구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슴 뿔 거북이들을 향해 맨몸으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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