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 조인족의 침공 (35/225)
  • ┃조인족의 침공

    아이템을 구매한 현성은 바로 서울로 향했다.

    가장 먼저 누나를 만나 반지와 팔찌 그리고 현성을 이동 대상으로 지정한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을 넘겨줬다.

    소모되었던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와 전자 제품도 가득 채워 넣었다.

    “너 무슨 위험한 일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누나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야. 혹시 몰라서 주는 거야.”

    현성은 가볍게 웃어넘겼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에 누나를 이동 대상으로 지정했다.

    교류의 팔찌를 통해 이변이 감지되면 현성이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다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도 누나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역시 가볍게 웃으며 넘겼다.

    마지막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몸에 반지와 팔찌를 착용시켜 드렸다.

    바로 반응이 왔다.

    현성의 팔에 달려 있는 팔찌가 붉은색으로 변한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 제가 꼭 아버지 병을 고쳐 드릴게요.”

    현성의 말에 팔찌의 색이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현성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어머니와 누나, 자신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아버지의 병도 꼭 나을 거라고.

    얼마나 떠들었을까?

    팔찌의 색이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다행이다.’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아버지의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역시 몸만 불편하실 뿐이야.’

    팔찌의 색이 변했다.

    이건 아버지가 몸을 움직이지 못할 뿐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 정도라면 소리를 통해 주변의 상황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답답하시죠. 제가 꼭 낫게 해 드릴게요.’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의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 후 현성은 다시금 북한 지역으로 이동했다.

    다시금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현성은 던전을 순회하며 계속해서 사냥에 열중했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추가 공격에 대비해 포인트를 모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벌써 보고가 끊긴 지 일주일이 지났어.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타나카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작전이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타나카의 물음에 보좌관이 입을 다물었다.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전을 실행한다는 보고를 끝으로 연락이 끊겼으니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게 옳았다.

    “놈들이 배신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기는 하지만 없지는 않습니다.”

    비밀 요원들의 충성심은 그리 높지 않다. 그렇기에 종종 배신자들이 나왔다.

    “추가로 동원이 가능한 비밀 요원이 있나?”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골치가 아프군.”

    타나카 장관이 얼굴을 찌푸렸다. 당장 손에 넣어야 할 보물이 있는데 가지고 올 방법이 없었다.

    덜컹!

    그때 타나카 장관의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보좌관이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큰일 입니다! 후쿠오카시에서 차원 게이트 초기 대응에 실패했습니다!”

    타나카 장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2차 대격변이 마무리된 현재에도 차원 게이트는 지속적으로 오픈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성공적으로 방어에 성공해 피해가 크지 않았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현재 인명 피해 제로를 목표로 초기 대응 팀을 운영하고 있다.

    거대 길드와 실력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대거 동원된 결과였다.

    “후쿠오카시는 야마토 길드가 방어하고 있는 지역인데 실패했다고?”

    야마토 길드는 일본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길드다.

    “예, 그렇습니다! 야마토 길드장이 사망하고 작전에 동원되었던 길드원들이 전멸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등장한 몬스터들의 등급은?”

    “영웅 등급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번에 최초로 등장한 몬스터로, 아직 정확한 레벨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조인족이라는 이름의 인간형 몬스터로, 등에 날개가 달려 있어 기동성이 좋고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당장 주변 지역에 있는 플레이어 인력 총동원해!”

    “네!”

    * * *

    폐허로 변한 후쿠오카시를 향해 일본 플레이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후쿠오카시는 완전히 조인족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사방에 죽은 인간의 시체가 가득했다.

    인간과 새를 반쯤 섞어 놓은 것 같은 형상의 조인족들이 인간의 시체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저 죽일 놈들!”

    일본 자위대와 플레이어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조인족들의 모습을 보며 분노를 토해 냈다.

    “전원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위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포병들이 일제히 포격을 시작했고 하늘 위에서는 대량의 포탄이 떨어졌다.

    후드드득!

    포격이 시작되자 시체를 뜯어 먹고 있던 조인족들이 일제히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격!”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스킬을 사용했다.

    조인족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것을 예측하고 미리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기에 스킬의 위력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강력했다.

    휘익!

    하지만 조인족들의 기동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르며 플레이어들의 스킬을 피해 냈다.

    중간중간 스킬에 적중당한 개체들이 산화해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과는 상당히 미미한 편이었다.

    캬아아악!

    조인족들이 포효를 터트리며 플레이어와 자위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인간과 조인족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자위대와 일본 플레이어들은 비행 몬스터를 상대하는 전통적인 진형을 고수했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군의 주요 거점을 수호하는 전략이었다.

    원거리 딜러들의 스킬과 군의 사격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하늘을 뒤덮을 듯이 쏟아지는 스킬과 총알 세례에 거리를 좁혔던 조인족들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조인족들이 포탄 소리를 듣고 몰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조인족들이 자위대와 일본 플레이어들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는 순간 벌집이 되어 지상으로 추락했다.

    동족 의식이 강한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조인족들은 더욱 흉포하게 달려들었다.

    자위대와 일본 플레이어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이런 추세라면 오늘 안에 조인족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캬아아아아악!

    그 순간 하늘에서 커다란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맹목적으로 자위대와 일본 플레이어들을 향해 달려들던 조인족들이 일제히 후퇴했다.

    “뭐야?”

    일본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몬스터는 이성보다 본능이 더 강한 생명체다.

    피를 보면 쉽게 흥분하고 죽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한데 포효 한 번에 물러났다.

    아니, 물러난 정도가 아니다.

    “도망가고 있잖아?”

    조인족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도주하고 있었다.

    문제는 조인족들이 도주하는 방향이었다.

    차원 게이트가 열린 장소는 후쿠오카시 최동단이었다.

    한데 조인족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아 바로 옆인 히사야마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막아!”

    일본 플레이어와 자위대는 난리가 났다.

    하늘을 향해 스킬을 발사하고 포탄을 날렸다.

    하지만 하늘 높이 날아오른 조인족들에게 적중할 리가 없었다.

    전투 헬기와 전투기 들이 요격에 나섰지만 오히려 당하고 말았다.

    전투 헬기와 전투기 들이 감당하기에는 조인족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후쿠오카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조인족의 숫자는 무려 1천 마리가 넘었다.

    “가자!”

    일본 플레이어들이 먼저 진형을 이탈해 조인족들의 뒤를 쫓았다.

    그 뒤를 이어 자위대도 방향을 틀었다.

    히사야마정은 저 정도 숫자의 조인족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일본 플레이어들과 자위대가 분리되었다.

    플레이어와 자위대의 기동성이 같을 수는 없다.

    초인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와 무거운 군용 장비를 옮겨야 하는 자위대의 기동성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일본 플레이어들과 자위대의 거리가 순식간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플레이어들 역시 레벨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것은 당연히 랭커들이었다.

    그 뒤를 따라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줄을 이어 달려 나갔다.

    * * *

    일본 플레이어들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고층 빌딩.

    조인족들이 기차놀이를 하듯 일렬로 길게 늘어진 일본 플레이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덤벼들지는 않았다.

    날개를 퍼덕이거나 포효를 터트리는 조인족도 없었다.

    마치 매복이라도 하고 있는 듯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캬아아아악!

    전방에서 커다란 포효가 터져 나왔다.

    휘익!

    그와 함께 숨소리까지 죽이며 얌전히 숨어 있던 조인족들이 일제히 지상으로 하강했다.

    콰직!

    조인족들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가 플레이어들의 몸을 꿰뚫었다.

    “아악!”

    “살려 줘!”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일본 플레이어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뭐야?”

    선두에 선 랭커들이 당황한 듯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방향을 바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랭커들을 향해 방금 전까지 도망치기만 하던 조인족들이 일제히 방향을 바꿔 덤벼들었다.

    일렬로 길게 늘어선 채 이동하던 일본 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사방에서 달려드는 조인족들에게 포위당해 버렸다.

    파지지직!

    포위망을 완성한 조인족들이 일제히 푸른빛 뇌전을 뿌렸다.

    “아아아악!”

    상대적으로 레벨이 낮았던 후위의 일본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일본의 랭커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조인족들의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쓸어버려!”

    오카모토가 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 자리에 모인 랭커의 숫자만 2백 명이 넘는다.

    고레벨 플레이어의 숫자는 무려 6천 명이다.

    기습을 당하기는 했지만 조인족의 숫자는 고작 1천여 마리.

    전력을 재정비하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다.

    화르르륵!

    오카모토의 몸이 시뻘건 불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각자의 직업 스킬을 활성화시키며 조인족들과 격돌하기 시작했다.

    퍼억!

    오카모토의 왼손에 들린 방패가 동료를 낚아채려던 조인족을 머리를 후려쳤다.

    머리를 얻어맞은 조인족의 신체가 순간 경직되어 버렸다.

    그사이 딜러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불과 3분도 버티지 못하고 조인족의 숨통이 끊어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일본 플레이어들이 전열을 정비하고 전투에 들어가자 전황이 서서히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오카모토를 비롯한 랭커들이 있었다.

    랭커들은 엄청난 화력을 발휘하며 조인족들을 쓸어버렸다.

    “하하하, 이런 앙큼한 짓을 한 걸 후회하게 해 주마!”

    오카모토가 호기롭게 외쳤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플레이어들의 피해가 크긴 했지만 이렇게 스스로 다가와 준다면 오히려 환영이었다.

    휘익!

    오카모토 파티를 향해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오카모토가 검과 방패를 움켜줬다.

    그의 역할을 탱커.

    후방의 딜러나 힐러를 보호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이미 한 마리의 조인족을 붙잡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버티는 것이라면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도 가능했다.

    오카모토가 도발 스킬을 사용하며 불길에 휩싸인 자신의 방패를 조인족을 향해 휘둘렀다.

    휘익!

    방패가 빗나갔다.

    푸욱!

    조인족의 창이 힐러의 목을 꿰뚫었다.

    도발 스킬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이 자식이!”

    오카모토가 다시금 도발 스킬을 시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파강!

    조인족의 창과 오카모토의 검이 충돌했다.

    “큭!”

    손목이 쩌릿할 정도의 강한 반탄력과 함께 오카모토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콰직!

    그 순간 처음 상대하고 있었던 조인족의 손에 들린 창이 오카모토의 어깨를 꿰뚫었다.

    “이 자식이……!”

    꽈앙!

    오카모토의 방패가 자신을 공격한 조인족의 머리를 후려쳤다.

    하지만 탱커의 공격력으로 조인족에게 큰 피해를 주기는 힘들었다.

    콰직!

    오카모토가 조인족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 사이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이 유유히 하늘을 유영하며 방어력이 약한 힐러나 원거리 딜러 들의 숨통을 끊었다.

    오카모토 파티의 규모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힐러와 원거리 딜러를 잃은 오카모토 파티는 오히려 조인족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힐러와 원거리 딜러를 잃은 오카모토와 근접 딜러들에게 황금빛 뇌전이 작렬했다.

    오카모토는 가까스로 버텼다.

    “아아악!”

    하지만 방어력이 약한 근접 딜러들은 순식간에 전멸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은 같은 방식으로 랭커들의 숫자를 하나둘 줄여 가기 시작했다.

    * * *

    “뭐? 전멸?”

    타나카 장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번 작전에 동원된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가 몇 명인데!”

    랭커 2백 명에 고레벨 플레이어 6천 명.

    일본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의 절반 가까이가 이번 작전에 동원됐다.

    한데 전멸이라니?

    “조인족들이 잔꾀를 썼습니다. 후퇴하는 척하며…….”

    보좌관이 방금 들어온 정보를 보고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전멸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대일본국의 플레이어들이 그렇게 약했단 말인가?”

    “조인족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개체가 너무 영리하게 움직여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작 영웅 등급 몬스터 아닌가?”

    “그게……. 당시 상황을 기록한 영상을 가지고 왔습니다. 직접 보시죠.”

    보좌관이 영상을 재생시켰다.

    CCTV에 녹화된 전투 장면은 화질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전황을 살피기에는 충분했다.

    “허!”

    CCTV 녹화본을 확인하던 타나카 장관의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조인족의 우두머리는 철저하게 랭커들의 빈틈을 노렸다.

    영웅 등급 조인족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 랭커들의 빈틈을 노려 힐러와 원거리 딜러들을 먼저 처리했다.

    그 후 강력한 황금빛 뇌전으로 근접 딜러까지 제거한 뒤 유유히 떠나 버렸다.

    탱커 하나가 생존하기는 했지만 타격이 컸는지 결국 원래 싸우고 있던 조인족의 공격에 숨통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런 광경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조인족의 우두머리는 계획적으로 플레이어들의 조합을 무너트렸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랭커도 홀로 영웅 등급 몬스터를 사냥할 수는 없다.

    파티 조합이 깨진 플레이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조인족의 우두머리는 철저하게 힐러와 딜러 들만을 노렸다.

    탱커라면 몰라도 힐러나 딜러 들은 영웅 등급 몬스터의 공격을 버텨 낼 수가 없었다.

    결국 플레이어들은 전멸했다.

    그 뒤에는 자위대 차례였다.

    타나카 장관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악몽 같았다.

    인간형이기는 하지만 몬스터는 몬스터다.

    한데 그 몬스터가 전략과 전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인간들의 대패였다.

    * * *

    “일본에 새로운 종의 몬스터가 등장했다고요?”

    사냥을 마치고 던전 밖으로 나온 현성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조인족이라는 영웅 등급 몬스터들이 등장했는데, 난리도 아니랍니다. 토벌에 나섰던 일본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 들이 전멸했답니다.”

    군용 수송 헬기 조종사의 말에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그놈들이 상당히 지능적으로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결국 일본 정부가 공개적으로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실리를 선택한 것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지금 남 도와줄 여유가 있는 국가가 있나요?”

    2차 대격변은 전 세계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남 도울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없죠.”

    일본의 최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조차도 여유가 없었다.

    미국은 국토가 너무 넓었다.

    그 때문에 아직 2차 대격변 당시 생성된 차원 게이트조차 모두 던전화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주변국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도 도움 요청을 했나요?”

    “예,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유가 없으니 쉽지 않을 겁니다.”

    한국은 비교적 적은 피해로 2차 대격변을 극복했다.

    하지만 남을 도와줄 여유까지는 없었다.

    2차 대격변으로 대폭 늘어난 영토와 던전 때문이다.

    오죽하면 거대 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과 협회 플레이어들을 동원해 던전을 청소하겠는가?

    ‘나한테 수작 부릴 여유는 없겠네.’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현성에게까지 신경을 쓸 여력은 없을 것이다.

    “이만 가시죠.”

    군용 수송 헬기 조종사의 말에 현성이 헬기에 탑승했다.

    * * *

    새로운 던전에 도착한 현성은 바로 루시아를 소환했다.

    “루시아, 전투 전에 물어볼 게 있어요.”

    “물어보시죠.”

    “혹시 조인족이라는 몬스터를 아세요?”

    현성의 물음에 루시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혹시 조인족이 이 세계에 나타났습니까?”

    “맞아요.”

    “피해가 크겠군요. 그놈들은 지능이 아주 높고 기동성이 좋습니다. 거기다 무리 생활을 해서 단체로 몰려다니죠. 일반 몬스터라고 생각하고 대응했다가는 큰 피해를 입을 겁니다.”

    “이미 입었어요, 타국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은 겁니까?”

    현성이 군용 수송 헬기 조종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 줬다.

    “우두머리가 그 정도로 똑똑하다면 쉽지 않겠군요. 제가 있던 세계에서는 조인족 무리에게 왕국 하나가 멸망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세계 각국이 힘을 모아 처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방치하면 나라 하나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타국도 여유가 없어서요.”

    “그래도 너무 오래 방치하는 건 곤란합니다. 조인족은 전설 등급까지 성장이 가능한 몬스터니까요.”

    “진짜요?”

    조인족은 영웅 등급 몬스터임에도 엄청나게 까다로웠다. 그런데 전설 등급으로 성장이 가능하다니?

    “종족별로 한계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몬스터들 역시 플레이어와 마찬가지로 사냥을 통해 성장합니다. 그런 대승을 거뒀다면 아마 레벨이 꽤 많이 올랐을 겁니다. 마석과 스킬북도 엄청나게 흡수했을 거고요.”

    “스킬북은 그렇다고 쳐도 마석을 흡수해요?”

    현성의 물음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들이 다른 몬스터나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건 경험치와 마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마석의 경우 종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주죠.”

    “혹시 플레이어도 마석을 흡수해 성장할 수 있나요?”

    “제가 알기로는 불가능합니다. 수많은 제국과 왕국 들이 막대한 자금을 실험에 투자했지만, 모두 실패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긴 우리 세계에서도 마석으로 플레이어를 성장시키는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어요.”

    마석에 대한 연구는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다.

    마석은 연료와 제약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플레이어나 일반인이 흡수하고서 스텟이 상승한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 그리고 당분간 습격받을 걱정은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입니까?”

    “아마 지금쯤 조인족들 때문에 정신이 없을 거거든요. 저한테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거예요.”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더니 천벌을 받았군요.”

    루시아의 말에 현성도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 * *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조인족들을 처리하지 못했다.

    차원 게이트 근처에 터를 잡은 조인족들은 점점 영역을 넓혀 후쿠오카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몬스터에게 영토를 빼앗긴 것이다.

    조인족들이 점령한 후쿠오카에서 연속적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다.

    플레이어들이 던전에서 사냥을 하지 못하니 몬스터들이 던전을 뛰쳐나온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던전을 빠져나온 몬스터들이 조인족들의 한 끼 식삿거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조인족들이 후쿠오카를 빠져나가 다른 지역까지 영역을 넓히는 것을 막는 일에만 주력했다.

    단독으로 후쿠오카를 수복하는 건 포기한 것이다.

    일본이 초조하게 국제사회의 지원을 기다릴 무렵.

    한국은 2차 대격변으로 인한 피해 복구를 마무리했다.

    북한 지역 복원 작업도 급한 대로 해결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았지만 일단 급한 불은 끈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가장 먼저 플레이어들에게 북한 지역을 개방했다.

    더 이상 던전 웨이브 방지를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과 거대 길드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에게 맡겨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성이 열심히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긴 했지만, 혼자서 북한 지역의 모든 던전을 클리어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던전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몬스터 웨이브 방지를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바로 플레이어들을 푸는 것이다.

    그동안은 던전의 레벨과 몬스터의 종류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북한 지역을 개방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조사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플레이어들의 사냥을 허가했다가 레벨에 맞지 않는 던전에 들어가거나 독특한 습성을 가진 몬스터 무리를 만나 대량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지역의 던전은 아직 많은 것이 부족했다.

    숙박 시설도 없었고 상하수도 시설이나 도로 정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또 던전 근처에 식당이나 장비 대여점 및 수리점 같은 기반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였다.

    정부도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당장 던전 웨이브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플레이어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대거 북한 지역으로 몰려갔다.

    북한 지역의 던전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이들도 있었고, 좀 더 적은 경쟁으로 편하게 사냥하기 위해서 가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가 북으로 향하는 그 시점.

    현성이 남한 지역으로 복귀했다.

    현성은 가장 먼저 가족들을 찾았다.

    안부 전화를 매일 하긴 했지만 직접 본 건 한 달 만이었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집밥을 먹고 편하게 집에서 잠을 잤다.

    사실 그간 현성도 힘들었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던 현대인이 몬스터 웨이브로 황무지가 되어 버린 지역에서 장기간 생활했으니 힘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며칠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한 현성이 플레이어 협회 지부로 향했다.

    플레이어 협회 지부 근처에 도착한 현성이 CCTV가 없는 골목길에서 루시아를 소환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루시아가 소환되었다.

    루시아의 모습은 과거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검버섯이 가득 피어 있던 피부가 아기 피부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얼굴은 작은 주름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탱탱했다.

    푸석푸석했던 백발 역시 윤기가 흐르는 백금발로 변해 있었다.

    현재 루시아의 모습은 누가 봐도 20대 초반의 젊은 서양 여성이었다.

    입고 있던 복장도 전형적인 플레이어에서 현대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반인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기가 현성 씨가 사는 세상이군요.”

    루시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놀랍다는 듯 말했다.

    이야기로 듣기는 했지만 실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말이 없는 마차가 말끔하게 정비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길의 양옆에는 제국의 황성보다 높은 높이를 자랑하는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귀족가에서나 사용하는 유리가 사방에 널려 있었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말끔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신분증부터 발급받죠. 제가 말한 대로만 하면 큰 문제가 없을 거예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플레이어 협회 지부로 들어갔다.

    ‘알아서 잘하시겠지.’

    현성이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루시아를 기다렸다.

    이 세계에 존재한 흔적이 없는 루시아가 공식적인 신분증을 얻는 방법은 플레이어 협회를 통하는 것뿐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는 플레이어를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혜택들이 존재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국적 부여였다.

    플레이어의 숫자가 국력이 된 세상이다.

    그런 만큼 세계 각국은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플레이어를 무조건 자국민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불법 체류자거나 밀입국자라고 해도 각성한 순간부터는 당당하게 국적을 부여받을 수 있다.

    물론 몇 가지 조건이 존재하기는 했다.

    5년간 외국계 길드에 가입할 수 없다.

    타국으로의 출국 역시 5년간 금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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