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 일본의 야욕 (34/225)
  • ┃일본의 야욕

    일본은 비교적 빠르게 2차 대격변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그 덕분인지 타국보다 여유가 있었다.

    일본은 북한 지역에 숟가락을 얹어 보려고 하다 실패한 이후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지속적인 로비를 벌였다.

    북한 지역에 대한 이권을 조금이라도 얻어 내기 위해서였다.

    북한 지역에는 개발해야 할 곳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타국 기업가들 입장에서는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한국 기업들만을 활용해 북한 지역 전체를 개발하는 것은 무리다.

    당연히 타국 기업과 협업을 하거나 하청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일본 기업도 그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문제는 한국의 반일 감정이었다.

    맛있는 만찬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입맛만 다시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 기업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한국 정치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로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뜻밖의 정보를 입수했다.

    “정성우의 말이 진짜일 확률이 높다고?”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타나카가 방금 들어온 보고서를 읽으며 보좌관에게 물었다.

    “예, 카네코가 올린 보고에 따르면 최현성이 다카하시를 죽였다고 합니다.”

    “그럼 정성우도 최현성에게 죽었을 확률이 높겠군.”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20레벨의 법칙 파괴를 떠나서 각성한 지 이제 갓 1년이 넘은 플레이어가 랭커급 실력자를 이겼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20레벨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해도 상식을 초월하는 성장 속도였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가 자국도 아닌 타국의 플레이어 최현성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서우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였던 정성우 때문이었다.

    정성우는 자신의 범죄 행각이 드러나자 평소 친분이 있던 일본 거대 길드를 통해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에 망명 의사를 타진했다.

    망명이라기보다는 범죄자의 도피에 가까웠지만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랭커 하나를 거저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조건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정성우는 범죄자다.

    공식적으로 망명 신청을 받아들였다가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게 된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비밀리에 정성우를 자국민으로 받아들여 음지에서 활동하는 비공식 요원으로 활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성우가 이상한 말을 했다.

    20레벨의 법칙을 깨트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성형수술 후 새로운 플레이어 등록증을 제공해 주는 것은 물론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랭커로 등록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정성우는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막대한 자금과 자신이 새롭게 만들 길드의 전폭적인 후원을 요구했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모두 수락했다.

    20레벨의 법칙을 깨트리는 방법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그 정도 보상은 해 주고도 남았다.

    협상이 완료된 후 정성우는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위조 플레이어 등록증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전혀 어려울 게 없는 요청이었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정성우에게 위조된 플레이어 등록증을 직접 건네주었다.

    그리고 음지에서 활동하던 랭커 다카하시를 이용해 정성우를 감시했다.

    한데 위조된 신분증을 가지고 던전에 들어갔던 정성우가 갑자기 사라졌다.

    처음에는 정성우가 다카하시의 감시를 따돌린 거라고 생각했다.

    저레벨 던전에서 랭커인 정성우가 실종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성우는 저레벨 던전에서 실종된 게 맞았다.

    그 후 다카하시와 카네코가 직접 던전에 들어가 정성우의 실종 원인을 조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상태였고, 거기다 다른 플레이어와 몬스터 들의 흔적까지 뒤섞여 있어 조사가 불가능했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20레벨의 법칙 파괴라는 말을 들은 이상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조사 과정에서 걸려든 인물이 바로 최현성이었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정성우의 실종에 최현성이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최현성이 정성우를 죽이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성우가 최현성을 노리던 와중에 변수가 생겨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최현성이 속해 있는 한국 플레이어 협회가 나섰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후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지속적으로 최현성을 감시했다.

    하지만 쉽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최현성은 한국 플레이어 협회 직속이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국제적인 분쟁이 발생할 위험이 높았다.

    그러던 중 2차 대격변이 발생했다.

    그리고 최현성이 북한 지역으로 떠났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다카하시와 카네코가 파견되었고 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다카하시가 최현성에게 죽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20레벨의 법칙 파괴가 끝이 아니었어.”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타나카의 중얼거림에 보좌관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고유 스킬 보유자일 확률이 99% 이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 플레이어 협회에서 안달이 나서 계약을 했겠지. 도대체 어떤 고유 스킬을 보유하고 있기에 20레벨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거지?”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타나카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20레벨의 법칙을 깨는 방법을 알아내는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최현성이 이렇게 빠르게 강해진 이유였다.

    각성한 지 고작 1년 만에 랭커를 이길 정도로 강해졌다.

    그런 최현성이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면?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차지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거기다 만약 20레벨의 법칙을 깨는 방법과 빠른 성장 비법을 다른 플레이어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북한 지역을 수복한 한국이 플레이어 전력까지 강해진다?

    일본에게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빼앗는 게 좋겠지.”

    “예?”

    타나카 장관의 말에 보좌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것도 아닐세. 그보다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비밀 요원들이 몇이나 되지?”

    “다섯 명입니다.”

    “모두 북한 지역에 투입하게.”

    “예?”

    “내 말 못 들었나?”

    “아닙니다. 즉각 시행하겠습니다. 그런데 달성 목적은 전과 동일합니까?”

    “동일하네. 하지만 한 가지를 더 추가하지. 임무 성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최현성을 죽이라는 지시를 내리게.”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나간 후 타나카 장관의 입가에 연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최현성은 한국 정부를 믿지 않는다.’

    최현성의 진짜 실력을 알고 있다면 한국 정부가 이렇게 방치해 둘 리가 없었다.

    금이야 옥이야 꽁꽁 감싸고 있을 것이다.

    ‘멍청한 놈들.’

    그 덕분에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

    최현성의 비밀을 모조리 빼앗을 것이다.

    만약 그 비밀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쓸모없는 것이라면?

    최현성을 죽이면 그만이다.

    그가 더 성장해 최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자신에게도, 자신의 조국에게도 이롭지 않으니까 말이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

    최현성의 가치가 알려지면 이런 기회는 없다.

    최현성이 치안력이 전무한 북한 지역에 있을 때가 절호의 기회였다.

    * * *

    현성은 루시아와 함께 계속해서 던전을 순회했다.

    업적이 빠르게 늘어 갔다.

    그만큼 현성과 루시아의 스텟 차이도 점점 줄어들었다.

    현성의 스킬 숙련도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단순히 몬스터만 사냥했다면 이렇게까지 빠르게 늘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루시아와의 대련이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파지지직!

    매직 미사일에서 칠흑빛의 스파크가 튀어나왔다.

    “아!”

    현성이 탄식을 터트렸다.

    또 실패였다.

    아쉬웠다.

    “조금만 더 집중했다면 성공했을 텐데.”

    “너무 아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숙련도는 지금도 충분히 빠르게 오르고 있으니까요.”

    “이래서 언제 실전에 써먹죠?”

    현재 현성의 목표는 흑뢰룡의 숨결이 가미된 스킬과 가미되지 않은 스킬의 외형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한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강한 파괴력을 가진 흑뢰룡의 숨결이 자꾸만 기존 스킬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너무 조급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요.”

    “알고 있어요.”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졌다.

    자신을 암습한 플레이어의 존재가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제 대련 시간입니다.”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용혈검을 뽑아 들었다.

    루시아도 자신의 검과 방패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시아의 외모는 전과 상당히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백 살 먹은 노파 같던 외모가 40대 초반 정도로 젊어졌다.

    새하얀 머리카락은 윤기 나는 백금발로 변했고 얼굴을 뒤덮고 있던 검버섯과 주름도 월등히 줄어들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악!

    현성이 먼저 달려들었다.

    파강! 파강!

    현성의 용혈검이 연신 루시아를 공격했다.

    하지만 신체의 절반을 가릴 수 있는 커다란 방패를 기반으로 하는 루시아의 방어를 도저히 뚫을 수가 없었다.

    마치 벽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방패를 다루는 루시아의 방패술은 예술에 가까웠다.

    루시아는 방패를 방어를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현성의 빈틈을 포착하는 순간 날카롭게 치고 들어오는 방패는 둔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방패만 경계할 수는 없었다.

    중간중간 찔러 오는 검격이 엄청나게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하시죠. 다음 던전으로 이동할 시간입니다.”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공격을 멈췄다.

    “제 실력이 는 거 맞나요?”

    루시아는 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현성이 보기에는 처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빈틈을 찌르는 타이밍이 전보다 날카로워지셨습니다. 공격을 회피할 때도 쓸데없는 움직임이 많이 사라지셨고요. 솔직히 말해 이렇게 빨리 성장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천재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현성 씨만큼 빠르게 실력이 늘지는 않았습니다.”

    “음, 저도 방패술을 제대로 배워 보고 싶은데…….”

    루시아의 방패술은 보는 이가 한눈에 반할 정도로 멋있었다.

    “현성 씨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 방어적인 성향이지만 현성 씨는 공격적인 성향입니다. 방패술을 주력으로 사용하려면 인내심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성 씨는 기회가 보이면 바로 치고 나가 공격을 가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방패는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저도 참아 보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게 성향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방패와 검을 든 현성 씨보다는 검만 들고 있는 현성 씨가 더 상대하기 까다롭습니다. 왼쪽 방어는 지금 착용하고 있으신 금속 보호대로 충분할 겁니다.”

    “알겠어요.”

    루시아의 말에 현성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의 무장은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다른 초보자들처럼 철갑으로 중무장을 하고 사냥을 했다.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시아의 조언을 받아들여 기동성을 중시하는 가죽 갑옷으로 방어구를 교체했다.

    방패도 버리고 왼팔에 금속 보호대를 달았다.

    그 덕분에 방패 관련 스킬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어차피 하위 등급 스킬이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조금 있다가 봬요, 선생님.”

    “전 선생님이 아닙니다.”

    화악!

    짧은 한마디와 함께 루시아의 모습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자, 이제 슬슬 다음 던전으로 가 볼까?’

    현성이 던전 출구를 향해 이동했다.

    던전을 반쯤 돌파했을 때쯤.

    ‘어?’

    야성의 본능 스킬이 발동했다.

    그와 함께 현성 혼자 있어야 할 던전 내부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지?’

    현성이 발걸음을 멈췄다.

    ‘하나가 아니야.’

    마력이 느껴지는 장소는 총 둘이었다.

    “눈치가 빠르군.”

    정면에서 일본어가 들려왔다.

    “일본에서 왔나?”

    저벅저벅.

    정면에서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맞아.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나를 따라가는 게 좋을 거야.”

    “왜 나를 데리고 가려는 거지?”

    “내가 그걸 알려 줄 필요는 없지. 가부만 결정해. 저항할 건지 포기할 건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현성을 압박해 오는 마력의 강도는 야성의 본능 스킬이 없어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전에 왔던 암살자와 한패인 건가?’

    문제는 적이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하나만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다른 하나는 어둠 속에 숨어 현성을 노리고 있었다.

    ‘둘이 한꺼번에 덤빈다면 혼자서는 무리야. 루시아를 부를까? 아니, 아직은 아니야.’

    상대는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하나는 모습을 드러내지도 많았고 노골적으로 마력을 뿜어내지도 않았다.

    야성의 본능 스킬이 없었다면 현성은 아직 적이 하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날 혼자 상대할 생각인가?’

    자신감 넘치는 상대의 표정을 봤을 때 그럴 확률이 높았다.

    ‘한번 해보자.’

    현성이 사내를 향해 용혈검을 겨눴다.

    “음, 저항하겠다는 뜻이군. 난 선의에서 한 말이었는데 말이야.”

    그 말과 함께 사내가 도집에 손을 올렸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었다.

    일본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했던 일명 발도 자세.

    ‘정식으로 발도술을 배운 건가?’

    현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흑뢰룡의 숨결.’

    파지지직!

    칠흑빛 뇌전이 사내를 향해 날아갔다.

    멀리 있는 적을 굳이 가까이 가서 상대해 줄 필요가 없었다.

    슈욱!

    그 순간 상대의 모습이 사라졌다.

    ‘공간 이동 스킬.’

    파지지직!

    마력의 흐름을 감지한 현성이 전력으로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하며 몸을 회전시켰다.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흑뢰룡의 숨결을 피했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현성의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체력과 마력을 아껴야 해.’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을 해제시켰다.

    타악!

    그 순간 사내가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현성이 다시금 흑뢰룡의 숨결 스킬을 사용했다.

    파지지직!

    현성을 향해 달려들던 사내가 좌측으로 몸을 피하며 흑뢰룡의 숨결을 피했다.

    흑뢰룡의 숨결을 피하는 그 짧은 시간에 사내의 도는 이미 도집에서 뽑혀 나와 현성의 왼팔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파강!

    현성이 몸을 비틀며 용혈검으로 도를 막았다.

    “오호!”

    사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반응 속도가 엄청 빠른데? 아이템도 꽤 좋은 것 같고. 하지만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사내의 도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현성을 공격해 왔다.

    파강! 파강!

    용혈검과 도가 충돌하며 불똥을 튀기기 시작했다.

    ‘빠르다.’

    사내의 도는 빠르고 정교했다.

    힘도 부족하지 않았다.

    도만 빠른 게 아니었다.

    움직임도 엄청나게 빨랐다.

    파지지직!

    현성이 다시금 전력을 다해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했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피할 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슈욱!

    한데 흑뢰룡의 숨결이 발동하는 순간 상대가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몸을 피해 버렸다.

    ‘뭐지?’

    흑뢰룡의 숨결을 연속적으로 피했다.

    ‘우연이 아니야.’

    현성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사내는 분명 흑뢰룡의 숨결이 발동하기 전에 움직였다.

    현성이 시험 삼아 다시 한번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했다.

    파지지직!

    휘익!

    역시 마찬가지.

    사내는 스킬이 생성되기도 전에 미리 거리를 벌렸다.

    ‘야성의 본능 같은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사내는 현성의 마력 흐름을 읽고 있었다.

    * * *

    “저 녀석 정말 각성한 지 1년밖에 안 된 놈 맞아?”

    스즈키의 물음에 사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저 녀석 1년 전까지만 해도 1레벨이었어.”

    “하,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거야?”

    “모르지. 그걸 알아내려고 우리가 여기 온 거잖아.”

    “다른 플레이어도 가능한 방법이면 좋겠다.”

    스즈키의 중얼거림에 다른 요원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년 만에 1레벨 플레이어가 랭커와 대등한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는 비법.

    탐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런데 확실히 아직 랭커급은 아닌 것 같아. 사사키 녀석에게도 쩔쩔매고 있잖아. 다카하시 녀석은 왜 저런 놈한테 당한 거야?”

    스즈키의 말에 사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상성이 좋지 않아서야. 저 녀석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칠흑빛 뇌전은 발동 속도도 빠르고 범위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 상대가 사사키가 아니라 스즈키 너였으면 꽤 고전했을걸. 저 정도 실력이면 다카하시가 충분히 당할 만해.”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내가 나섰으면 저 녀석은 아직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어.”

    스즈키의 말에 사토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갑작스러운 출동 명령.

    비밀 요원들로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거기다 상대는 불과 1년 전에 각성한 뉴비.

    계약에 묶여 음지에서 비밀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요원들은 스스로를 랭커급의 실력자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런 자신들이 고작 각성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를 상대로 합공을 한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비밀 요원들 중 가장 자존심이 강한 사사키가 혼자 처리하겠다고 나섰을 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에 자신들 모두를 동원한 상부를 비웃을 정도였다.

    다카하시가 당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긴 했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카하시는 어디까지나 정보 수집 및 암살을 주력으로 하던 플레이어였다.

    당연히 실질적인 전투 능력은 비밀 요원들 중 최하위였다.

    비밀 요원들은 재미있는 스포츠 경기라도 보듯이 최현성과 사사키의 대결을 구경했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사사키가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비밀 요원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서 승부가 갈리기를 기다렸다.

    * * *

    치열한 접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좌악!

    뱀처럼 휘어져 들어온 사사키의 도가 현성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현성의 검은 아슬아슬하게 사사키의 손목을 스쳤다.

    사사키는 현성의 마력 움직임을 귀신같이 읽고 반응했다.

    그 덕에 좀처럼 스킬로 피해를 줄 수가 없었다.

    물론 그건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스킬을 발동시켜 피해를 주기가 힘든 상황.

    결국 백병전으로 승부를 갈라야 했다.

    하지만 현성은 힘, 민첩 같은 근접 전투에 필수적인 스텟은 물론 무기를 다루는 실력에서조차 사사키에게 밀리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흑뢰룡의 숨결을 발동시켜 버티고는 있었지만 체력과 마력은 거의 고갈 직전이었다.

    그에 비해 상대는 너무도 멀쩡했다.

    ‘아직 멀었구나.’

    루시아와의 대련을 통해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사키에 비하면 아직도 많은 것이 부족했다.

    ‘더 열심히 수련했어야 해.’

    현성이 스스로를 자책했다.

    하지만 현성과 싸우고 있는 사사키의 생각은 달랐다.

    ‘이런 미친놈.’

    겉으로는 우세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사사키는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현성의 실력은 루시아의 수련을 받으며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머리와 심장만을 보호하며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공격성은 사사키를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현성은 루시아와의 대련을 통해 자신의 전투 스타일을 정립했다.

    그리고 그렇게 정립시킨 전투 스타일은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느낌을 넘어서서 너 죽고 나 죽고 식의 공격 일변도의 전투법.

    사사키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비밀 요원이라는 직책을 가지고는 있지만 사사키를 비롯한 요원들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암살자들이 아니었다.

    과시욕과 명예욕이 있었고 금전욕도 있었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정도로 충성심이 강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비밀 요원이 된 것은 차원 게이트 관리청의 제안을 따르는 것이 스스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사사키에게 현성 같은 타입의 적은 가장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현성의 스텟과 검술 실력이 자신보다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상대는 지쳤다.

    체력과 마력이 고갈 직전이었다.

    파강!

    검과 도가 충돌했다.

    가가가가각!

    사사키의 도가 힘으로 현성의 검을 찍어 누르며 검날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사사키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이제 끝이다.’

    검날을 타고 내려간 도가 현성의 어깨를 향해 날아갔다.

    ‘위험해.’

    막을 수가 없었다.

    반격을 해 보려고 해도 검을 밀어붙이는 도 때문에 불가능했다.

    설상가상으로 체력과 마력이 바닥을 드러낸 상태라 더 이상 흑뢰룡의 숨결을 발동시킬 수도 없었다.

    ‘죽는다.’

    사사키의 도가 현성의 어깨와 가슴을 베어 버리려는 순간.

    -패시브 스킬 생존 본능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발동 조건을 만족시킨 생존 본능 스킬이 발동했다.

    파강!

    현성의 검이 엄청난 힘으로 사사키의 도를 튕겨 냈다.

    서걱!

    그리고 일검에 사사키의 목을 베어 냈다.

    “하아! 하아!”

    현성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생존 본능을 통해 스텟이 일시적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그런다고 소모된 체력과 마력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이건 진 거야.’

    생존 본능 스킬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당하는 쪽은 현성이 되었을 것이다.

    사사키는 갑자기 늘어난 현성의 힘과 속도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목숨으로 치렀다.

    현성은 경계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마력이 느껴지는 장소를 주시했다.

    사아아악!

    아무것도 없던 공터에서 네 명의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가 아니었어?’

    야성의 본능 스킬로 느꼈던 마력은 한 덩어리였다.

    하지만 적은 하나가 아니었다.

    ‘이런 맹점이 있었구나.’

    야성의 본능 스킬은 마력의 존재를 느낄 뿐 세세하게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하, 사사키가 죽을 줄이야. 정말 어이가 없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의 말에 현성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만큼 저 녀석의 실력이 뛰어났던 거야. 또 숨겨 둔 한 수도 있었고.”

    50대 초반의 사내가 여자의 말을 받았다.

    모두 일본어였다.

    “뭐, 그 한 수도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군. 그때까지 놈의 도주를 막는다.”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세 명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현성을 포위했다.

    먼저 공격해 오지는 않았다.

    저들은 현성이 발동시킨 생존 본능 스킬의 약점을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짧은 발동 시간.

    그 시간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그들의 실수였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네 명의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얼굴의 루시아와 새롭게 고용한 용병 셋.

    루시아를 포함한 용병들은 상황을 파악한 듯 바로 전투 자세를 취했다.

    “저놈들은 뭐야?”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야?”

    “마력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는데?”

    현성이 고용한 용병들을 바라보며 적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의뢰 내용은 적들의 생포입니다. 제압하기 힘들다고 생각되면 죽이셔도 좋습니다.”

    현성의 말에 용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악!

    각자 목표물을 정한 용병들이 일제히 대지를 박차고 적을 향해 달려 나갔다.

    꽈아앙!

    루시아의 실드 어택에 적중당한 스즈키의 몸이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커억!”

    던전 벽에 충돌한 스즈키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온몸의 내장이 진탕된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공방이 시작되고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아 나온 결과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스즈키는 지금의 상황이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사키가 죽었을 때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미 승기는 기울어 있었다.

    체력과 마력을 소진한 최현성은 스즈키와 동료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한데 갑자기 추가로 적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적들이 일방적으로 자신과 동료들을 밀어붙였다.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갑자기 나타난 적들은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 스즈키와 동료들을 밀어붙였다.

    그나마 제압이었기에 몇 분이나마 버틴 것이다.

    죽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스즈키와 동료들의 몸은 지금쯤 싸늘하게 식은 시체로 변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서걱!

    루시아의 검이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스즈키의 발목과 손목 인대를 베어 냈다.

    그리고 목덜미를 부여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 * *

    ‘대단하네.’

    용병들의 전투를 목격한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이길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압도적일 줄은 몰랐다.

    수준이 다르다.

    현성과 같은 희귀 등급 용병으로 분류되지만 실력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임무 완수했습니다, 고용주님. 더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없다면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일본인 플레이어들을 제압한 용병들 중 하나가 현성에게 물었다.

    “최소 고용 시간이 끝날 때까지 저들을 감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용병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쓰러트린 일본인 플레이어 옆에 자리를 잡았다.

    현성이 루시아를 제외한 용병 셋을 고용하는 데 든 포인트는 총 580억 포인트.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임무가 일찍 끝나 최소 고용 시간보다 일찍 돌아간다 해도 최소 고용 비용은 지불해야 한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해 용병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게 좋았다.

    “왜 나를 노린 거지?”

    현성의 물음에 일본인 플레이어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일단 모르쇠로 일관할 생각인 것 같았다.

    “대답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네.”

    사실 이들이 대답하든 대답하지 않든 크게 상관없었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물품 중 마력이 깃들지 않은 물건을 하나 골라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사용하면 되니까 말이다.

    “고용주님이 물어보시잖아! 빨리빨리 대답 안 해?”

    그때 키가 2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구의 용병이 노성을 터트리며 들고 있던 거대한 망치로 일본인 플레이어 중 한 명의 발을 내리찍었다.

    콰직!

    “아아아아악!”

    일본인 플레이어가 처절한 비명을 터트렸다.

    거대 망치에 내리찍힌 일본인 플레이어의 발은 압착 프레스에 눌린 것처럼 뼈와 살이 뒤엉켜 으스러져 버렸다.

    힐러의 회복 스킬로도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중상이었다.

    “너희도 대답 안 했지?”

    거구의 용병이 살기가 줄줄 흘러넘치는 눈빛으로 다른 일본인 플레이어 셋을 바라보며 거대 망치를 들어 올렸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최현성 님을 납치해 일본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20레벨의 법칙을 깨는 방법과 최현성 님이 빠르게 강해진 이유를 알아낼 목적이었습니다!”

    세 명의 일본인 플레이어들이 경쟁적으로 진실을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용병이 거대 망치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뭐지?’

    고문이나 협박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

    ‘일단 확인부터 해 보자.’

    현성은 일본인 플레이어들이 가지고 있던 일반 물품을 이용해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다시금 질문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모두 진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중간부터 살짝살짝 거짓말을 섞기 시작했다.

    “왜 거짓말을 했지?”

    현성의 추궁에 사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미처 변명을 내뱉기도 전에 거구의 용병이 다시금 거대 망치를 휘둘렀다.

    콰직!

    “아아아아악!”

    다시금 던전 내부에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후 거짓말은 없었다.

    일본인 플레이어들은 확실하게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던전 밖에 동료가 또 있다고?”

    “네, 실력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닙니다. 아마 200레벨 초반 정도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던전 밖으로 나가셔서…….”

    설명을 다 들은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그동안 이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잘 감시해 주세요.”

    “걱정하지 마십쇼, 고용주님.”

    용병들의 대답을 들은 현성이 던전 밖으로 나갔다.

    ‘블링크.’

    현성이 미리 전해 들은 위치로 공간 이동을 했다.

    “히이익!”

    플레이어 하나가 갑자기 나타난 현성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곧바로 마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서걱!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러 플레이어의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시체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이러니까 내가 몰랐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야성의 본능 스킬로 감지가 되지 않았다.

    던전 안에 있던 일본 플레이어들이 입을 열지 않았다면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현성이 다시금 던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심문을 이어 나갔다.

    심문은 무척 손쉽게 진행되었다.

    거구의 용병이 무서워서인지 일본인 플레이어들은 현성이 묻는 말에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혹시 고용을 연장할 의사가 있으십니까?”

    망치를 든 용병이 현성에게 물었다.

    심문을 이어 나가는 사이 최소 고용 시간이 끝난 것이다.

    “돌아가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하하하, 별말씀을. 다음에 또 불러 주십쇼. 이렇게 날로 먹는 임무는 난생처음이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쉬운 임무는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저도 다음에 꼭 다시 불러 주십쇼.”

    루시아를 제외한 용병들이 다음에 다시 불러 달라는 말과 함께 허공으로 사라졌다.

    ‘어떻게 할까?’

    현성은 일본인 플레이어들의 처리를 고민했다.

    이들을 생포해 한국 플레이어 협회에 넘긴다면 현성의 비밀이 드러날 수도 있다.

    용병 고용.

    이건 고유 스킬에 파생된 부가적인 기능이다.

    일본인 플레이어들이 고용된 용병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한국 플레이어 협회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캐물어 올 것이다.

    그럼 현성의 비밀이 탄로 날 확률이 높다.

    화르르륵!

    그때 현성과 루시아를 향해 화염이 피어올랐다.

    미리 마력의 유동을 감지한 현성이 가볍게 몸을 피했다.

    루시아는 방패를 이용해 화염을 막았다.

    다리가 으깨지지 않은 일본인 플레이어 둘이 전력을 다해 출구로 도주했다.

    도주를 막기 위해 힘줄을 끊어 놨는데, 심문을 하던 사이에 회복한 것이다.

    파지지직!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을 발동시켰다.

    심문 과정에서 몸을 회복한 것은 그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현성 역시 체력과 마력을 온전하게 회복했다.

    꽈아아앙!

    도주하던 두 사람이 아슬아슬하게 흑뢰룡의 숨결을 피했다.

    그때 다리가 으깨져 있던 두 플레이어가 동시에 마력을 끌어 올려 스킬을 사용했다.

    꽈아아아앙!

    루시아가 현성의 앞을 가로막고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서걱!

    그와 함께 루시아의 검이 말끔하게 두 사람의 목을 베어 냈다.

    그사이 살아남은 둘은 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블링크, 어둠의 장막.’

    현성이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사용했다.

    도주하던 둘은 현성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현성의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

    파지지직!

    흑뢰룡의 숨결이 그 두 사람에게 작렬했다.

    “으아아악!”

    “아아아악!”

    맨몸으로 도주하던 두 사람은 흑뢰룡의 숨결을 버텨 내지 못했다.

    툭!

    검은 숯덩이로 변한 시신 두 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랑 루시아만 남았으니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처음부터 이들이 도주에 성공할 가능성 따위는 없었다.

    현성이 용병들이 돌아간 후 이들의 처우를 고민한 것은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어서였다.

    주력 스텟이 현성보다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이미 아이템을 빼앗긴 맨몸이었다.

    거기다 몸도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을 뿐 전투를 벌이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사아아악!

    숯덩이로 변한 두 사람의 시신에서 스킬북이 떠올랐다.

    현성은 루시아에게 돌아가 나머지 아이템들을 챙겼다.

    ‘손해는커녕 이득만 엄청 봤네.’

    일본 비밀 요원들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와 그들의 시신에서 나온 스킬북까지.

    포인트로 환산하면 천억 포인트를 넘길 정도였다.

    용병 고용으로 사용한 580억 포인트를 제외하더라도 엄청난 이득을 본 것이다.

    ‘굳이 알릴 필요는 없겠어.’

    현성은 이번 일을 한국 플레이어 협회에 알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들을 현성 혼자 처리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용병 고용 사실을 알려 줄 수도 없다.

    결정적으로 진실을 밝혀 봐야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에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비밀 요원들에 대한 꼬리 끊기 작업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이었어.’

    비밀 요원들의 정체는 일본이나 타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플레이어들이었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새로운 신분과 재화 그리고 전용 사냥터 제공을 약속하며 범죄자들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범죄자들을 비공식적인 작전에 동원하는 비밀 요원으로 운용했다.

    범죄자들의 배신이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했고 가족을 인질로 데리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에 대한 충성심이 바닥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 차원 게이트 관리부가 범죄자들에게 일정 이상의 공을 세우면 양지에서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미끼까지 던지긴 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없던 충성심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또 나를 노릴 수도 있어.’

    어쩌면 다음에는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몰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가족들의 안전을 위한 대비책을 세워야 해.’

    한국 플레이어 협회에서 보내 준 가드들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 현성을 공격했던 수준의 실력자들이 암습을 가해 온다면 당할 수밖에 없다.

    ‘아이템밖에 없어.’

    현성이 상태창을 열어 구매창에 들어갔다.

    영웅 등급 아이템을 세세하게 살펴보던 현성은 드디어 원하던 것들을 찾아냈다.

    수호의 반지 - 영웅 등급

    -착용자가 공격을 받을 시 그 대미지를 대신 받습니다.

    -수호의 반지가 대신 받을 수 있는 대미지를 초과하면 소멸합니다.

    -소모형 아이템입니다.

    -판매자 : 브쿠라코

    -판매가 : 9,999,999,999포인트

    -수호의 반지 - 영웅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100억에 달하는 가격으로, 영웅 등급 아이템치고는 상당히 저렴한 편이었다.

    하지만 소모형 아이템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싼 가격도 아니었다.

    ‘세 개만 사자.’

    현성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교류의 팔찌 - 희귀 등급

    -세트 아이템입니다.

    -두 개의 팔찌를 하나씩 나눠서 착용하면 서로의 현재 심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평온한 상태면 푸른색을 유지합니다.

    -상대방이 격정적인 상태면 붉은색으로 변합니다.

    -상대방이 혼란스러운 상태면 보라색으로 변합니다.

    -상대방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 검은색으로 변합니다.

    -판매자 : 크로드

    -판매가 : 999,999,999포인트

    -교류의 팔찌 - 희귀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교류의 팔찌는 상당히 저렴했다.

    현성은 수호의 반지와 마찬가지로 총 세 개를 구매했다.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 - 영웅 등급

    -지정된 장소나 대상에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소모형 아이템입니다.

    -판매자 : 쿠라자베

    -판매가 : 9,999,999,999포인트

    -소모성 물품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 - 영웅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당연히 이것도 사야지.’

    장당 100억짜리 장거리 이동용 스크롤은 무려 여섯 장을 구매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이 정도 투자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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