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 암살자의 습격 (33/225)

┃암살자의 습격

북한 지역에 투입된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활약으로 몬스터 웨이브 위기에 놓여 있던 던전들이 서서히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불만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업무 협조 차원에서 북한 지역으로 넘어온 거대 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점점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중, 저레벨 던전을 회피하고, 자신들의 레벨에 맞는 던전에서 뭉그적거렸다.

그러다 중, 저레벨 던전에 투입 지시가 떨어지면 태업을 하거나 남한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거대 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그들의 레벨에 맞는 던전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고레벨 던전도 지속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해 줘야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지 않는다.

거대 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남한으로 내려가 버리면 고사리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 저레벨 던전은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의 몫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과중된 업무가 더 늘어난 것이다.

당연히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비상 대기 근무 수당의 두 배를 받는다고 해도 손해가 너무 컸다.

경험치를 쌓아 레벨 업을 할 수도 없었고 아이템과 마석을 얻을 수도 없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불편함이 많았다.

제대로 된 숙박 시설이 없어 텐트에서 잠을 자야 했고 식사도 전투식량이나 간편식으로 때워야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 가까이 이런 일이 지속되자 결국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도 태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태업에 동참하기는커녕 더 신이 나서 사냥에 열중한 플레이어도 있었다.

바로 현성이었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던전 안에 몬스터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

저레벨 던전 하나를 청소했다고 해도 몬스터의 개체 수가 늘어나면 다시 청소를 해 줘야 하는 것이다.

거대 길드 소속 고레벨 플레이어들과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이 태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현성이 사냥할 수 있는 던전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손쉽게 업적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업적 작업을 끝낸 던전에서는 경험과 숙련도를 쌓는 수련을 했다.

어차피 포인트도 쌓이고 마석과 아이템도 획득할 수 있으니 현성으로서는 손해 볼 일이 없었다.

루시아와의 사이도 많이 가까워졌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함께 사냥을 하고 대련을 하며 가르침을 받았다.

밥도 같이 먹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을 만날 일 자체가 드물다 보니 둘 사이의 대화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은 정말 놀랍도록 잘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군요.”

현성이 플레이어 등록증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자 그녀가 한 말이었다.

“일반인들도 신분증이 있어야 경제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성 씨가 저를 던전 밖에서 부르지 않으셨던 거군요.”

“루시아 씨는 최상위 클래스의 플레이어잖아요. 그런 플레이어의 경우 각국에서 엄격하게 체크하고 있어요.”

루시아의 존재가 드러난다면 적지 않은 혼란이 생길 것이다.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라는 사실은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더 루시아의 정체를 궁금해할 것이다.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끝나면 루시아가 한국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볼게요. 신분증을 얻고 플레이어 등록을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천천히 하셔도 괜찮습니다. 전 지금의 생활에 무척 만족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신분증에 제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 사진이라는 것이 들어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죠.”

“어차피 발급받을 거라면 젊은 모습이 좋을 것 같습니다.”

루시아는 아직도 노파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간 모은 포인트로 희귀 등급 장검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방패도 사고 갑옷도 살 예정이었다.

현성은 루시아에게 어느 정도 포인트를 모아 수명을 회복한 후 장비를 구매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하지만 기사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검과 방패 그리고 갑옷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장 전투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니 젊어지는 것보다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유리하기도 했다.

“젊은 외모로 발급받는 게 좋긴 하죠.”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노파의 모습으로 신분증을 발급받았다가 갑자기 젊어지기라도 하면, 다시 신분증을 발급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저 그런데…… 정말 포인트를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루시아가 조심스럽게 현성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현성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현성은 루시아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부터 돌려받기로 했던 최소 고용 비용을 받지 않았다.

루시아는 최소 고용 비용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현성에게 알려 준 정보와 노하우만 해도 최소 고용 비용의 가치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거기다 루시아는 현성이 빠르게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최고의 조력자다.

그 정도 포인트를 받을 자격은 충분했다.

현성은 친한 고레벨 플레이어가 없다.

신윤아와 친분이 있기는 하지만 공적인 관계로 알게 된 사이다.

현성에게 자신의 노하우와 몬스터에 대한 정보 그리고 세세한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 플레이어는 루시아가 유일했다.

루시아는 현성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이라도 돌려받으시는 게 좋으실 것 같은데.”

루시아는 현성이 포인트를 회수하지 않는 것을 불안하게 여겼다.

나중에 현성이 자신을 토사구팽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현성은 충분히 그런 루시아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간 살아온 루시아의 삶은 처절함 그 자체였다.

그런 루시아가 만난 지 겨우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현성을 어찌 마음속 깊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신뢰를 쌓는 것은 천천히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업료라고 생각하세요. 저한테 많은 걸 가르쳐 주시잖아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엄격하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두 사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 * *

40대 중반의 사내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던전 안으로 입장하는 목표물을 주시했다.

‘이제야 기회를 잡았군.’

사내가 던전 입구 주변을 살폈다.

목표물을 던전 앞까지 이동시켜 준 군용 수송 헬기 조종사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일반인에 불과했다.

사내의 몸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아직 보안 체계가 완성되지 않은 던전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 * *

던전 안에 입장한 현성은 루시아를 고용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어?’

그때 전신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패시브 스킬 야성의 본능이 발동한 것이다.

‘누구지?’

자신 외의 누군가가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흐릿하기는 하지만 마력이 느껴졌다.

‘적이다.’

정체를 감춘 상대는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야성의 본능 스킬이 위협을 감지했다.

현성은 태연하게 행동했다.

저벅저벅.

현성이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몬스터들의 마력이 느껴졌다.

현성이 입장한 던전은 120레벨대 몬스터인 웨어 라이온이 서식하고 있었다.

반인반수 중에서는 상당히 강력한 축에 드는 종으로, 무리 생활을 한다는 점 때문에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 기피하는 몬스터였다.

평소라면 루시아를 불러 몬스터들을 끌어모은 뒤 말끔하게 쓸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현성은 천천히 웨어 라이온 무리에 접근한 뒤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했다.

파지지직!

크어어엉!

흑뢰룡의 숨결에 직격당한 웨어 라이온들이 포효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전력으로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했다면 웨어 라이온들은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현성이 검을 뽑아 들고 웨어 라이온들과 육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결과는 현성의 승리.

가볍게 웨어 라이온들을 쓸어버렸다.

현성은 직접 손으로 아이템과 마석을 회수해 가방에 넣었다.

현성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웨어 라이온들을 사냥했다.

사냥을 하면서도 힘과 속도를 상당 부분 억제했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기도 했고, 꽤 지쳤다는 듯 숨을 헐떡이기도 했다.

하지만 체력과 마력은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루시아의 수업 덕분에 현성의 스킬 숙련도는 엄청나게 향상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스킬의 위력을 세심하게 조절할 수 있었고, 육체 통제력도 이런 연기를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올라갔다.

현성이 거의 던전을 클리어해 나갈 무렵.

계속해서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정체불명의 적이 점점 현성과의 거리를 좁혀 왔다.

커어어엉!

웨어 라이온 무리가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현성은 웨어 라이온들을 한 마리 한 마리 차근차근 쓰러트렸다.

일부러 정체불명의 적에게 등을 보였다.

그와 함께 마력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온다.’

정체불명의 적이 빠르게 접근해 왔다.

희미하게 느껴지던 마력이 점점 뚜렷하게 느껴졌다.

야성의 본능 스킬이 보내는 경고도 점점 강해졌다.

파지지지긱!

전력을 다해 날린 흑뢰룡의 숨결이 정체불명의 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크아아아악!”

처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현성의 눈에 비친 적은 검은색 가죽 갑옷과 단검으로 무장한 40대 중반의 사내였다.

‘암살자 계열.’

현성의 검이 마력으로 물들며 칠흑빛 뇌전에 휩싸였다.

휘익!

전력을 다해 휘두른 검이 사내를 향해 날아갔다.

파강!

사내가 현성의 검을 칠흑빛 오러가 흐르는 단검으로 막아 낸 후 그 힘을 이용해 거리를 벌렸다.

현성이 재빨리 따라붙었지만…….

‘빠르다.’

용혈검과 단검이 충돌할 때 느껴졌던 힘의 차이는 현성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하지만 속도는 확실히 상대의 우위였다.

“어, 어떻게 알았지?”

얼굴 피부가 반쯤 녹아내린 사내가 포션을 상처 부위에 바르며 현성에게 물었다.

굳이 대답해 줄 필요는 없었다.

현성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파지지직!

하늘에서 흑뢰가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속도가 빠르다면 피할 곳을 모두 점유하면 된다.

슈욱!

그때 상대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휘익!

현성이 몸을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타악!

현성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사내가 대지를 박차며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이동 계열 스킬까지 가지고 있어.’

야생의 본능이 빠르게 마력을 감지해 알려 주지 않았다면 불의의 일격을 당할 뻔했다.

휘익!

사내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날렸다.

파지지직!

현성의 몸이 흑뢰에 휩싸였다.

퍼엉!

사내가 날린 무언가가 흑뢰에 닿는 순간 폭발했다.

-중독되셨습니다.

-10초간 신체 기능이 마비됩니다.

-패시브 스킬 불사의 서가 발동합니다.

-중독이 해제되었습니다.

빠르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휘익!

마력이 담긴 무언가가 현성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파강! 파강!

현성이 검을 휘둘러 암기를 쳐 냈다.

‘내가 따라잡기는 무리야.’

사내의 이동속도가 너무 빨랐다.

흑뢰룡의 숨결을 사용해 반격을 가해 봤지만 쥐 새끼처럼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엄청 빠르네.’

민첩 스텟이 상당히 높았다.

빠르게 체력과 마력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흑뢰룡의 숨결은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대신 체력과 마력을 동시에 소모한다.

평소에는 용혈검과 흡혈공으로 그 단점을 커버한다.

하지만 상대를 베지 못하면 용혈검의 옵션이 발동하지 않고 상대에게 스킬이 적중하지 않으면 흡혈공이 발동하지 않는다.

현성은 흑뢰룡의 숨결 대신 다른 스킬을 사용해 사내를 공격했다.

하지만 괜한 마력 낭비만 했을 뿐이다.

뇌전 계열 스킬인 흑뢰룡의 숨결은 현성이 보유한 스킬들 중에서 발동 후 목표물에 도달하는 시간이 가장 빠르다.

흑뢰룡의 숨결보다 느린 스킬에 사내가 당할 리 만무했다.

‘기회는 한 번이야. 실수하지 말자.’

현성이 사내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공격할 기회를 노렸다.

* * *

사내 역시 현성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더 이상 공격이 아니었다.

‘빠져나가야 해. 이번 임무는 이미 실패다.’

사내는 도주를 계획하고 있었다.

‘저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정말 각성한 지 1년이 갓 지난 녀석 맞아?’

사내는 자신이 이런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내는 경력 15년이 넘어가는 베테랑 플레이어이자 랭커급의 실력자다.

그간 사내가 해 온 임무는 첩보와 암살.

주로 일반인이 대상이기는 했지만 플레이어를 목표로 했더라도 임무에 실패한 적은 없었다.

이번 임무 역시 기회를 포착하기가 힘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기회를 잡기만 하면 손쉽게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목표물이 북한 지역으로 건너갔을 때 성공 확률이 더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북한 지역으로 몰래 잠입해 목표물을 따라잡았다.

던전 내부로 들어가 목표물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을 확인했을 때는 성공을 확신했다.

1년 차 플레이어치고 뛰어난 실력이기는 했지만 애송이에 불과했다.

성공을 확신하고 기습을 가했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이 기습을 당했다.

‘괴물 같은 놈.’

스스로의 실력에 자괴감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당했다.

함정을 판 것은 자신이 아닌 목표물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목표물의 실력에 대한 평가가 잘못되었다.

상부에서 자신을 홀로 보낸 것은 판단 미스였다.

* * *

파강!

현성이 사내와 몇 차례 실속 없는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는 와중에 사내의 몸이 점점 출구 쪽으로 향했다.

‘도망칠 생각인가?’

상대가 전의를 상실했다면 오히려 이번 기습이 먹힐 확률이 높았다.

휘익!

사내가 일제히 암기를 날렸다.

파지지직!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을 이용해 방어했다.

그 순간 사내가 전력을 다해 출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현성의 민첩 스텟으로는 도저히 따라잡기 힘든 상황.

‘블링크.’

사악!

현성의 몸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사내가 달려오는 경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푸욱!

전력으로 달리던 사내는 현성이 내지른 용혈검에 스스로 달려드는 형상이 되었다.

“커억!”

사내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터져 나왔다.

현성이 사내의 복부에 꽂힌 용혈검을 뽑아냈다.

그리고 용혈검을 휘둘러 사내의 다리를 향해 휘둘렀다.

기동성을 제거한 후 배후가 누구인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슈욱!

그 순간 사내의 모습이 사라졌다.

야성의 본능 스킬이 감지한 마력의 흐름에 따라 몸을 회전시켰다.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현성의 등 뒤였다.

사내의 손에 들린 단검이 현성의 심장을 향해 날아왔다.

공격 속도가 너무 빨랐다.

검이나 방패로 막기는 무리였다.

현성이 전력을 다해 흑뢰룡의 숨결을 발동시켰다.

파지지직!

흑뢰가 현성과 사내의 몸을 뒤덮었다.

“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사내의 몸이 순식간에 까만 숯덩이로 변했다.

“하아! 하아!”

현성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승기를 잡았다고 방심하다 큰일 날 뻔했다.

사아아악!

숯덩이로 변한 사내의 몸에서 잔여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로 뭉친 잔여 마력들이 하나의 스킬북으로 변했다.

현성이 스킬북을 움켜쥐었다.

어둠의 장막 - 영웅 등급

-액티브 스킬

-시전자와 시전자가 지정한 대상의 형상과 내는 소리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감춰 줍니다.

‘좋네.’

처음에 애용했던 일반 등급 은신 스킬을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 후 추가로 은신 스킬을 구입하지는 않았다.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짜로 습득한 거라면 얼마든지 사용해 줄 의향이 있었다.

‘이놈은 아이템도 많이 가지고 다녔네.’

현성이 흑뢰룡의 숨결에 그을린 단검과 목걸이를 주워 들었다.

다른 아이템들은 흑뢰룡의 숨결을 버티지 못하고 그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다크 엘프 왕의 단검 - 영웅 등급

-5%의 확률로 상처 입힌 대상을 중독시킵니다.

-5%의 확률로 상처 입힌 대상의 출혈을 지속시킵니다.

-5%의 확률로 상처 입힌 대상에게 부패 저주를 겁니다.

암살자의 무기다웠다.

다음은 목걸이 차례였다.

수호의 은총 - 영웅 등급

-착용자의 스킬 저항력을 대폭 상승시킵니다.

-패시브 스킬 : 수호의 방패 사용 가능.

수호의 방패 - 영웅 등급

-패시브 스킬

-착용자의 스킬 저항력을 넘어선 공격을 받았을 때 데미지를 50% 경감시킵니다.

-쿨타임 120분

‘이 스킬 때문이었구나.’

처음 기습적으로 날렸던 흑뢰룡의 숨결이 적중했을 때 잘 버틴다 했더니 아이템발이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왜 나를 노렸을까?’

현성은 서우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였던 정성우의 몰락 이후 트러블의 원인이 될 만한 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

국적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내는 한국어를 사용했다.

‘이유를 알아내야 해.’

현성이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발동시켰다.

아이템에 남은 기억을 읽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액티브 스킬 사이코 메트리 발동에 실패했습니다.

-마력이 깃든 사물의 과거 정보는 열람할 수 없습니다.

‘역시 실패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해 봤지만 역시 사이코 메트리 스킬이 가진 단점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사이코 메트리.’

다시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발동시켰다.

이번 목표물은 전투를 치렀던 던전 내부였다.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건질 수가 없었다.

사이코 메트리 스킬로 구현된 홀로그램에는 전투가 시작된 후에서야 암살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전의 홀로그램에서는 현성의 모습만 구현되었다.

사이코 메트리 스킬이 어둠의 장막 스킬을 사용했던 암살자의 모습을 구현하지 못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현성은 더 이상 암살자에 대한 정보를 찾는 걸 포기했다.

‘일단 루시아와 상의해 보자.’

현성이 루시아를 고용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루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부르셨군요.”

“그럴 일이 좀 있어서요.”

현성이 기습당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군요. 한데 이 세계에서는 다른 플레이어의 습격을 당하는 일이 드문 편인가요?”

“그런 편이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몰라도 공개적으로 플레이어들끼리 충돌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특히 던전 내부에서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일은 중범죄로 취급됩니다.”

“이 세계는 정말 신비롭군요.”

루시아가 살던 세계의 경우 플레이어들끼리의 전투가 빈번했다고 한다. 왕국 간의 전쟁이나 영지 간의 전쟁에 플레이어가 동원되는 건 상식이었다.

“왜 저를 노렸을까요?”

“현성 씨가 알지 못하는 사이 원한 관계가 형성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현성 씨가 빠르게 강해지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노하우를 알아내려고 한 걸 수도 있고요.”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현성 씨를 노린 자가 어떤 조직에 속해 있다면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세계의 규칙에 따라 공개적인 장소에서 현성 씨를 공격할 수 없다면 던전 안에서만 주의를 기울이면 됩니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적이라고 생각되면 저를 부르십시오. 포인트에 여유가 있으시다면 다른 용병을 고용하셔도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루시아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됐다.

맞는 말이었다.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적이 등장하면 포인트를 소모해 원군을 부르면 된다.

사실 이번에도 적이 예상보다 강하다면 루시아를 부를 생각이었다.

생존 본능 스킬이 발동하지도 않을 정도로 위기가 없었기에 루시아를 부르지 않은 것뿐이었다.

현성은 일단 이번 일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루시아의 고용을 취소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던전을 빠져나갔다.

* * *

‘뭐지?’

외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네코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던전에서 빠져나온 목표물을 주시했다.

목표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헬기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작전을 실행하지 않은 건가?’

카네코는 잠시 후에 나올 동료 다카하시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동료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카네코가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사냥꾼의 눈.’

추적 스킬을 사용하자 던전 바닥에 남은 목표물의 이동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흔적을 따라 계속 이동했다.

중간중간 카네코의 눈에 전투의 흔적이 들어왔다.

하지만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전투는 아니었다.

플레이어와 몬스터의 전투 흔적이었다.

흔적을 따라 계속해서 이동하던 카네코의 눈에 드디어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전투 흔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건의 현장에는 플레이어들이 사용했던 마력의 잔향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 정도면 가능하겠어. 대지의 기억.’

카네코가 스킬을 사용해 전투 현장을 복원했다.

검은색 인영 두 개가 전투를 시작했다.

기습을 가한 인영이 다카하시였고, 기습을 받은 인영이 목표물이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어떤 스킬을 사용했는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두 그림자가 지속적으로 공방을 나누는 모습은 뚜렷하게 보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다카하시가 졌어.’

다카하시가 전투 도중 먼저 꼬리를 말고 도주를 선택했다.

하지만 목표물에게 추격당해 결국 살해당했다.

등 뒤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카네코의 전투력은 다카하시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카네코가 다카하시와 파트너가 된 것은 전투력이 아닌 추적 스킬 때문이었다.

‘섣불리 움직였다면 나까지 죽었을 거야.’

카네코는 조심스럽게 던전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재빨리 상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 * *

암살자의 습격 이후 현성은 더욱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실전을 경험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확실히 몬스터와 플레이어는 달랐다.

솔직히 말해 루시아에게 수련을 받지 않았다면 연기를 펼쳐 암살자를 속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후에 펼쳐진 전투에서도 루시아에게 받은 수련이 큰 도움이 되었다.

불사의 서나 생존 본능 같은 변수가 많은 스킬을 이용하면 패배하지는 않았겠지만 도주하는 암살자를 놓쳤을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현성은 자신보다 약한 다수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흑뢰룡의 숨결에 의지하는 전투 방법도 고쳐야 할 문제 중 하나였다.

흑뢰룡의 숨결은 강력한 만큼 단점도 많은 스킬이다.

이번 전투에서 그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또한 흑뢰룡의 숨결과 다른 스킬의 조화도 필요했다.

흑뢰룡의 숨결은 다른 스킬을 강화시켜 준다.

하지만 그런 만큼 많은 체력과 마력을 소모한다.

또 외형적으로도 너무 튀는 경우가 많았다.

루시아는 다른 스킬 안에 흑뢰룡의 숨결 스킬을 숨기는 방법을 수련하라고 조언했다.

현성은 루시아의 조언을 받아들여 스킬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던전의 몬스터들은 현성에게 최고의 실습 교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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