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등급 아이템 경매
중국 정부는 일단 오리발부터 내밀었다.
-랭커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
-중국 정부의 지시 사항이 아니었다.
그 후에는 변명이 나왔다.
-멸망한 북한의 영토는 주인이 없는 땅이다. 단지 한국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절대 침공 행위나 반인륜적인 행위가 아니다.
오리발과 변명 뒤에는 적반하장의 차례였다.
-오히려 한국은 중국에 고마워해야 한다.
-중국 랭커들이 목숨을 버려 가며 이무기를 빈사 상태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한국이 무난하게 이무기를 사냥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무기를 사냥하고 나온 전리품을 중국 정부와 나눠야 한다.
타국의 영토에 몬스터를 몰고 온 주제에 사과와 피해 보상은커녕 오히려 자신들이 몰고 온 몬스터를 사냥했으니 거기서 나온 전리품을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린다.
한국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은 동일한 주장만을 계속했다.
한국에서 반중 감정이 치솟았다.
중국은 오히려 자국민의 반한 감정을 부추겼다.
그와 함께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은근히 압박을 넣기 시작했다.
한국 물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 한국에 대한 수출입 규모를 축소하겠다. 자국에 있는 한국 기업의 불법 사항을 점검하겠다 등등.
대격변 이전에 해 오던 깡패 짓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게 있었다.
바로 중국 시장에 대한 신뢰감과 안정성이었다.
중국은 아직도 2차 대격변을 완벽하게 진화하지 못했다.
영토가 큰 타국과 비교해도 2차 대격변 진압이 상당히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 곳곳에서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기에 공장이나 상점은 모두 멈춰 있는 상태였다.
물론 2차 대격변은 전 세계에서 동시에 발생한 문제다.
하지만 진압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것과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큰 시장이라도 안정성이 없으면 소용이 없었다.
열심히 투자를 해 공장을 짓고 물건을 수출입해도 몬스터 한 마리 때문에 나라 경제가 마비되어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평소 세계 최대 플레이어 보유국임을 자랑했던 중국이다.
그랬던 만큼 던전 안정 등급은 Aaa등급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데 차원 게이트에 대한 대처 능력은 플레이어 숫자가 월등히 적은 한국보다 월등히 떨어졌다.
참고로 한국의 던전 안정 등급은 중국보다 두 단계 낮은 Aa2등급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과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던전 안전 등급은 순식간에 Baa등급으로 추락했다.
반면 한국의 등급은 확 올라갔다.
최고 등급인 Aaa등급을 받은 것이다.
던전 안전 등급만 올라간 게 아니었다.
국가 신용 등급 역시 Aaa등급으로 상승했다.
애초에 던전 안전 등급과 국가 신용 등급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은 이번 이무기 레이드 성공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와 함께 북한의 소멸로 인해 휴전 중인 국가라는 아킬레스건이 사라졌다.
북한 지역을 그대로 수복함에 따라 인구와 영토가 늘어났다.
북한 지역에 잠들어 있는 지하자원과 수많은 던전들 역시 보물 창고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평가 가치가 수직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세계 각국의 금융회사들이 투자금을 싸 들고 한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몬스터의 습격에서 안전한 나라.
발전 가능성이 넘치는 나라.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투자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의 협박은 전처럼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 * *
이무기 사냥이 끝난 후 현성은 서울로 돌아와 부지런히 판매창을 채워 넣었다.
현성이 직접 차리고 누나 최현지가 관리하는 전자 제품 매장의 창고에는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가 가득 쌓여 있었다.
현성의 요청에 꾸준히 수매 주문을 넣어 놓은 덕분이었다.
국제사회가 한국과 중국의 사건으로 시끄러운 것 같지만 그건 현성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현성은 정치인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닌 플레이어였다.
‘아이템 구매는 힘들겠지?’
이무기 레이드에 참가한 척살대원들에게는 한 가지 혜택이 주어졌다.
바로 이무기에게서 나온 아이템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정부의 이무기 사냥 보상금은 이미 입금이 끝났다.
남은 것은 전리품에 대한 분배였다.
아마 아이템 경매가 완료되면 기여도에 따라 판매 금액의 일부가 현성의 계좌로 입금될 것이다.
‘사고 싶다.’
하지만 최소 수천억을 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설 등급 아이템을 구매할 자금이 없었다.
‘욕심내지 말자.’
이무기 사냥으로 인한 보상은 충분히 얻었다.
그러니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했다.
위이이잉!
그때 현성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신윤아였다.
“여보세요.”
-저 신윤아예요.
“아, 네, 윤아 씨. 그런데 어떤 일로 전화를……?”
-항상 용건부터 물어보시네요. 제가 아무 이유 없이 전화하면 안 되는 건가요?
신윤아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지는 않지만 용건이 있어서 전화하신 건 맞잖아요.”
현성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 내가 말을 말아야지. 맞아요.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뭔가요?”
-전설 등급 아이템에 관심 있으세요?
신윤아의 말에 현성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당연하죠. 전설 등급 아이템에 관심 없는 플레이어도 있을까요?”
-이번에 나온 전설 등급 아이템 중 하나를 현성 씨가 구입하게 해 드릴 수 있어요.
“조건이 있겠죠?”
-당연하죠.
“뭔가요? 혹시?”
-생각하시는 게 맞을 거예요.
“역시 종신 계약인가요?”
그거밖에 없었다.
-정부는 이번에 이무기에게서 나온 아이템 획득에 전력을 다할 거예요. 정부의 자금력을 이길 플레이어가 있다고 보세요?
“하지만 경매 참가 자격은 척살대원들에게만 주어지잖아요?”
-그래서 현성 씨에게 연락이 간 거예요. 현재 척살대원 중 협회 직속 플레이어는 저와 현성 씨뿐이거든요.
“그럼 윤아 씨가 모두 독점하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굳이 현성에게 연락을 해서 아이템을 나눠 갖자고 연락할 필요가 없었다.
-저도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스킬 하나가 저랑 상성이 좋지 않아서요. 아마 저보다는 현성 씨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혹시 제가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을 먼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신윤아는 척살대의 대장이자 이무기 사냥이 끝난 후 아이템을 회수한 당사자다.
그렇기에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척살대원들은 아이템의 숫자와 종류만 확인했을 뿐 정확한 스펙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이죠. 하지만 당장은 곤란해요. 척살대원들에게 아이템 정보를 공개하는 건 경매 하루 전으로 결정되었거든요. 공평하게 현성 씨도 하루 전에 알 수 있을 거예요.
“상당히 짧네요.”
-정보가 너무 일찍 알려지면 타국에 포섭당하는 척살대원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이미 포섭은 시작됐을 거 같은데요.”
-그건 정부에서 조사 중에 있어요.
“일단 아이템을 보고 난 후에 결정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 * *
신윤아의 장담은 사실이었다.
“와!”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흑암룡의 징벌 - 전설 등급
-액티브 스킬북
-마력의 성질을 암흑 속성으로 변화시킵니다.
-공격 계열 스킬의 위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치유 계열 스킬의 위력이 대폭 떨어집니다.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흑뢰를 부립니다.
-쿨타임이 존재하지 않는 스킬입니다.
‘흡혈공과 똑같네.’
강력한 힘을 주지만 그만큼의 페널티가 있다.
흑암룡의 징벌은 실질적으로 흑뢰를 부리는 능력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포인트였다.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쿨타임을 포함해 페널티가 단 하나도 없었다.
특정한 상황에 사용하거나 특별한 형태로 고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무기의 경우 흑뢰를 비처럼 뿌리기도 했고, 적을 꿰뚫는 창이나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방패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형태의 고정이 없이 의지와 마력만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탐난다.’
흡혈공이나 용혈검과의 궁합도 궁합이지만, 혹시 뇌전룡의 숨결과 합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가능하려나? 영웅 등급 스킬이 전설 등급 스킬을 흡수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실패한다고 해도 나쁠 게 없었다.
흑암룡의 징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매력적인 스킬이었다.
“정말 이걸 익히지 않으실 건가요?”
신윤아는 전형적인 딜탱이다.
힘, 민첩, 체력이 상당히 고르게 분배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정신력과 마력이 낮은 듯 보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거리 딜러나 힐러 계열의 랭커와 비교했을 때다.
아마 동 레벨의 탱커나 근접 딜러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정신력과 마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신윤아가 이무기 레이드 때 보여 준 스킬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으니까 말이다.
“전 신성 계열의 마력을 가지고 있어요. 주요 스킬도 대부분이 신성 계열 마력에 호응하도록 세팅되어 있죠.”
“아!”
그제야 이해가 갔다.
흑암룡의 징벌은 마력의 성질을 암흑 속성으로 변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신윤아가 여태까지 익혀 온 주요 스킬들의 효력이 확 깎여 버린다.
득보다 실이 큰 것이다.
“아마 현성 씨가 거절하면 이건 원거리 딜러들 중 한 명의 차지가 될 거예요. 정부가 스킬북을 미끼로 포섭하려고 점찍어 놓은 인물이 하나 있거든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빨리 결정하세요.”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건 하나만 들어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조건이 뭐죠?”
“나중에 제가 계약금과 동일한 금액을 지불한다면 종신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그게 불가능하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겠습니다.”
“음, 그럼 이렇게 하죠. 계약금과 동일한 금액이 아니라 오늘부터 해지 날짜까지 법정 이율을 적용하는 걸로요.”
“법정 이율이 얼마죠?”
“연간 5%요.”
“단리인가요?”
“당연히 복리죠. 이것도 엄청나게 많이 양보해 주는 거라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요. 계약 체결이네요. 그럼 상부에 보고하고 올게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항구 장관 일로 정부와 한번 대립각을 세웠던 현성이다.
그 일에 대한 잘잘못을 떠나 정부는 현성을 반골 기질이 있는 플레이어로 분류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한데 그런 자신에게 전설 등급 스킬북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고유 스킬 보유자라는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에 끈 하나 없는 현성에게 이런 기회가 왔다는 것은, 정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누군가가 현성을 밀어줬다는 이야기였다.
현성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 줄 사람은 신윤아밖에 없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그럼 다녀올게요.”
신윤아가 미소를 지으며 집무실을 나갔다.
* * *
경매가 진행되었다.
전문 경매사가 아이템이나 스킬북의 상세 정보를 공개하고 이무기 레이드에 참가했던 척살대원들이 입찰하는 형식이었다.
“더 이상 입찰하실 분 없나요? 다섯을 세겠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축하드립니다. 흑암룡의 창은 신윤아 플레이어의 소유가 되셨습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신윤아가 무기 하나를 챙겼다.
‘이거 아무리 봐도 단순히 플레이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닌데…….’
랭커들이라고 해도 절대 부를 수 없는 금액이 나왔다.
‘기업들이 붙었나.’
정부에서 협회 직속 플레이어인 신윤아와 현성에게 종신 계약을 대가로 거액의 자금을 투자했듯이, 대기업도 종신 계약을 대가로 소속 길드의 랭커들에게 거액의 자금을 투자했을 수 있다.
무난하게 치러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경매는 상당히 치열했다.
하지만 신윤아는 결국 모든 아이템을 손에 넣었다.
무기 한 개와 스킬북 한 개.
아이템 두 개 구매에 들어간 금액만 2조 원에 가까웠다.
그 후 마지막 판매 물품.
흑암룡의 징벌이 등장했다.
현성은 처음으로 입찰을 시작했다.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아이템을 손에 넣지 못한 플레이어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그리고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흑암룡의 징벌이라는 스킬북 자체의 효용성이 좋았다.
탱커든 근딜이든 원딜이든 힐러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결국 흑암룡의 징벌을 낙찰받았다.
‘미치겠네.’
하지만 현성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갚아야 할 빚이 조 단위를 넘어 버렸다.
‘이러다 정말 플레이어 협회에 평생 매이는 거 아냐?’
복리 이자 5%.
기존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빚을 털어 버리려던 현성의 계획에 약간의 오류가 생긴 순간이었다.
* * *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신윤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흑암룡의 창을 들었을 때 들려야 할 메시지가 들리지 않았다.
흑암룡의 분노 스킬을 익혔을 때 역시 들려야 할 메시지가 들리지 않았다.
둘 모두 최초 업적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사실 이무기 레이드를 성공했을 때부터 의문을 느끼는 했다.
바로 최초의 영웅 등급 업적 달성자라는 업적이 뜨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최후에 이무기의 숨통을 끊은 것은 신윤아였다.
업적이 그걸 증명해 줬다.
이무기의 숨통을 끊는 순간 [최초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한 자 - 영웅 등급]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함께 떠야 할 한 가지가 뜨지 않았다.
바로 [최초의 영웅 등급 업적 달성자 - 영웅 등급] 업적이었다.
그 말은 누군가가 이미 영웅 등급 업적을 손에 넣었다는 뜻이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영웅 등급 업적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이건 분명한 현실이었다.
이상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당연히 기여도 1위를 찍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윤아는 이무기 레이드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기여를 했으니까 말이다.
한데 기여도 1위가 아니었다.
2위.
그게 바로 신윤아가 받은 기여도 순위였다.
더 이상한 건 척살대원들 중 기여도 1위를 했다고 밝힌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당사자가 숨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의 레이드 보상금이 걸려 있는데 굳이 순위를 속일 필요가 있을까?
의문 사항이 많았지만 결국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신윤아는 플레이어 협회를 동원해 타국 랭커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들 중 누군가가 [최초의 영웅 등급 업적 달성자 - 영웅 등급] 업적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갈며 다른 업적은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데 또 빼앗겨 버렸다.
최초로 전설 등급 무기의 주인이 되었다.
최초로 전설 등급 스킬의 주인이 되었다.
기존의 경험대로라면 영웅 등급 최초 업적이 생성되어야 했다.
한데도 영웅 등급 최초 업적이 생성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이러지 않았다.
최초로 영웅 등급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 신윤아는 기여도 1위를 기록하며 영웅 등급 몬스터의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희귀 등급 최초 업적을 5개나 손에 넣었다.
-최초로 영웅 등급 몬스터를 사냥한 자 - 희귀 등급
-최초의 희귀 등급 업적 달성자 - 희귀 등급
-최초의 영웅 등급 몬스터 사냥에 기여한 자 - 희귀 등급
-최초의 영웅 등급 무기를 손에 넣은 자 - 희귀 등급
-최초의 영웅 등급 스킬을 손에 넣은 자 - 희귀 등급
모두 희귀 등급 업적이었다.
아쉽게도 [최초의 영웅 등급 방어구를 손에 넣은 자 - 희귀 등급]과 [최초로 영웅 등급 액세서리를 손에 넣은 자 - 희귀 등급]은 놓쳤다.
하지만 충분히 만족했다.
가장 많은 최초 업적을 손에 넣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한데 그러지 못했다.
‘도대체 누가?’
[최초의 영웅 등급 업적 달성자 - 영웅 등급]부터 시작해 [최초의 전설 등급 무기를 손에 넣은 자 - 영웅 등급] 그리고 [최초로 전설 등급 스킬을 손에 넣은 자 - 영웅 등급]까지 모조리 빼앗겼다.
어쩌면 다른 최초 업적 역시 다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이건 누군가가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인데.’
하지만 그건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신윤아는 분명 이무기를 쓰러트리고 [최초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한 자 - 영웅 등급]을 얻었다.
그 말은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한 건 신윤아가 최초라는 뜻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릿속이 복잡했다.
전설 등급 몬스터는 분명히 자신이 최초로 사냥했는데 도대체 누가 영웅 등급 업적을 손에 넣었다는 말인가?
‘괜히 현성 씨한테 미안하네.’
정부는 신윤아가 [최초의 전설 등급 무기를 손에 넣은 자 - 영웅 등급]과 [최초로 전설 등급 스킬을 손에 넣은 자 - 영웅 등급]를 얻기 원했다.
그래서 처음 경매 물품으로 흑암룡의 창을 두 번째 경매 물품으로는 흑암룡의 분노를 올렸다.
그 후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낙찰받았다.
최현성이 구매하기로 예정된 흑암룡의 징벌은 고의적으로 가장 마지막 순서에 배정되었다.
신윤아에게 최초 업적 두 개를 몰아주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 모두 협회 직속 플레이어자 고유 스킬 보유자이기는 했지만, 정부는 최현성이 강해지는 것보다 신윤아가 강해지는 걸 원했다.
신뢰 관계가 탄탄하게 구축된 신윤아와 이제 막 신뢰 관계를 쌓아 가는 최현성의 가치가 같을 수는 없었다.
또 어차피 한 명에게 집중해야 한다면 성장 중인 최현성보다는 완성된 플레이어인 신윤아를 선택하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정부는 최현성에게 전설 등급 스킬을 익힐 수 있게 도움을 준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신윤아는 차마 최현성에게 최초 업적 하나를 나누어 주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어차피 정부가 신윤아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게 뻔하기도 했지만, 신윤아 본인 역시 최초 업적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최초 업적 달성에 대한 욕심으로 최현성을 속이는 것 같았다.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보 같네.’
감정을 억누르고 죄책감을 이겨 내면서까지 손에 넣으려고 했던 최초 업적은 애초에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어차피 손에 넣을 수 없던 최초 업적이다.
한데 욕심에 눈이 멀어서 양심을 저버렸다.
‘차라리 솔직하게 현성 씨에게 말했다면…….’
그랬다면 지금처럼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아 씨, 아이템 낙찰 축하드려요.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현성의 말에 신윤아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은 익히셨죠?”
“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목소리도 평소와 달랐다.
‘뭐지?’
현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출구를 향해 움직였다.
“미, 미안해요.”
“네?”
등 뒤에서 들려온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돌렸다.
“뭐가 미안하다고 하시는 건지……?”
“경매 아이템 배치요. 사실 정부에서 저한테 최초 업적을 몰아주려고 제가 구입하기로 한 아이템을 우선 배치했어요. 현성 씨 아이템은 가장 밑으로 미뤄 놨고요.”
‘최초 업적?’
그 말을 듣는 순간 현성의 뇌리에 용혈검의 성장과 함께 생성된 두 가지 업적이 떠올랐다.
-최초의 전설 등급 무기를 손에 넣은 자 - 영웅 등급
-최초로 전설 등급 스킬을 손에 넣은 자 - 영웅 등급
‘아, 그래서 그랬구나.’
현성은 사실 아이템 판매 순서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데 정부와 신윤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아마 신윤아는 최초 업적을 보유하고 있을 거다.
정부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신윤아에게 최초 업적을 밀어주려고 했다.
‘사실 당연한 거지.’
전설 등급 스킬북 구입을 위해 정부와 종신 계약을 맺으면서도 계약 해지 조건 운운했던 현성과 이미 완성된 플레이어이자 오랜 시간 플레이어 협회에 몸담아 온 신윤아의 무게감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 갔고 신윤아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눈곱만큼도 서운하지 않았다.
정부와 현성은 냉철한 기브 앤 테이크 관계였다.
신윤아 역시 플레이어로서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현성이 뭐라고 신윤아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에게 올 업적을 양보해 주겠는가.
오히려 이렇게 사과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윤아가 얼마나 곧은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어차피 내가 다 챙겼는데, 뭐.’
이무기 레이드로 꿀을 제대로 빨았다.
너무 심하게 빨아서 이무기 레이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신윤아를 포함한 다른 척살대원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정부나 윤아 씨 입장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니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현성이 단 1%의 섭섭함도 느껴지지 않는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현성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후 경매장 밖으로 나갔다.
‘정말 아무 욕심도 없으셨는데.’
신윤아가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최초 업적에 대해 안달이 났던 것은 신윤아 자신뿐이었다.
현성은 욕심은커녕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 솔직하게 정부의 입장을 이야기했더라도 웃으며 이해해 줬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욕심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다음부터는 절대 이러지 말자, 신윤아.’
플레이어가 되고 랭커의 반열에 오르면서 변하는 이들을 많이 봐 왔다.
정부와 협업을 하며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있던 정치인들이 변질되어 가는 과정도 많이 봤다.
그때마다 다짐했다, 자신은 절대 저렇게 되지 않아야겠다고.
한데 어느새 자신도 그들에게 물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심장이 아려 왔다.
그와 함께 굳건한 의지를 새겼다.
다시는 이러지 말자고, 두 번 다시 현성을 속이거나 기만하지 말자고.
* * *
‘익혀 볼까.’
스킬북은 받은 즉시 익히는 척하며 아공간에 넣어 버렸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몰라서였다.
‘과연 합쳐질까? 아니면 따로 존재할까?’
둘 다 나쁘지 않았지만 기왕이면 하나로 합쳐졌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숙소로 돌아온 현성이 아공간에서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는 스킬북을 꺼내 들었다.
-액티브 스킬북 흑암룡의 징벌 - 전설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당연히 예지.’
-액티브 스킬북 흑암룡의 징벌 - 전설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흡수되는 건가?’
-액티브 스킬 뇌전룡의 숨결 - 유일 영웅 등급과 액티브 스킬 흑암룡의 징벌 - 전설 등급이 융합됩니다.
-액티브 스킬 흑뢰룡의 숨결 - 유일 전설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뇌전룡의 숨결과 흑암룡의 징벌이 하나로 합쳐졌다.
‘흡수가 아니라 융합이네.’
뭐가 어찌 되었든 두 스킬이 하나가 된 것은 확실했다.
그때 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영웅 등급
-최초로 유일 전설 등급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유일 전설 등급 스킬을 손에 넣은 자 - 영웅 등급]
‘역시!’
현성의 예상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