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 이무기 레이드 (30/225)

┃이무기 레이드

한국군은 이무기가 중국 내륙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무기와 충돌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에서였다.

반면 현성을 포함한 이무기 척살대는 그 사실을 아쉬워했다.

세계 최초로 등장한 전설 등급 몬스터 이무기를 사냥할 기회가 영원히 날아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우웅!

그때 대지가 약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

“뭐지? 지진이라도 난 건가?”

위이이이잉!

플레이어들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사이렌이 울렸다.

“이무기가 빠른 속도로 아군 진형을 향해 이동하고 있습니다! 척살대 여러분께서는 전투준비를 해 주십시오!”

정보 장교의 말에 현성을 포함한 플레이어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갑자기 이쪽으로 와?”

하지만 온다고 하니 일단 좋기는 했다.

“그럼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건가?”

“그런 거 같은데.”

“예스! 이건 무조건 최초 업적이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모두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게 좋아하실 일이 아닙니다. 중국 랭커들이 다시금 패배했습니다. 현재 대패한 중국 플레이어들 중 일부가 이무기를 유인해 아군 진형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미친놈들!”

“지들이 사냥하려고 하다가 실패하니까 우리한테 떠넘겨?”

“그런 걸 떠나서 이건 범죄행위 아닌가? 타국으로 몬스터를 몰아넣은 거잖아.”

“침략이나 다름이 없지.”

“쓰레기 같은 놈들!”

중국을 성토하는 장이 펼쳐졌다.

“모두 진정하시고, 전투준비를 갖춰 주시기 바랍니다.”

공격 대장을 맡은 신윤아의 말에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전투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플레이어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번 레이드는 단순한 사냥이 아니다.

레이드에 실패하면 수십,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 이 자리에 모인 이무기 척살대는 한국의 마지막 보루나 마찬가지였다.

이무기가 중국 본토로 향했을 때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우세하기는 했지만 내심 안도하기도 했다.

한데 이제는 목숨을 걸고 진검 승부를 벌여야 했다.

그것도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말이다.

* * *

좌아아악!

이무기가 압록강을 건넜다.

콰직!

그리고 마지막 사냥감을 먹어 치웠다.

그런 이무기 앞에 새로운 만찬이 펼쳐졌다.

크아아아아앙!

이무기가 피어를 터트리며 한국의 척살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정신계 공포 스킬 피어에 걸리셨습니다.

-공포에 잠식당한 신체가 10초간 경직됩니다.

-패시브 스킬 굴하지 않는 정신이 발동합니다.

-이무기의 피어 스킬에 완벽하게 저항합니다.

척살대는 단 한 명도 이무기의 피어에 걸리지 않았다.

척살대의 구성원을 레벨보다 정신계 스킬 저항력 기준으로 보고 뽑은 게 신의 한 수였다.

척살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탱커들이 달려들어 도발 스킬을 사용했고 근접 딜러와 원거리 딜러들이 스킬을 날렸다.

화르르르륵! 파지지지직! 휘이이이잉!

각양각색의 스킬들이 일제히 이무기를 향해 날아갔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이 터져 나왔다.

현성 역시 원거리에서 뇌전룡의 숨결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무기의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컸기에 스킬이 빗나갈 염려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 어림짐작으로 대충 스킬을 날려도 다 맞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무기의 몸을 휘감고 있는 폭풍을 뚫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랭커급이 아닌 플레이어들은 쉽게 이무기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폭풍을 뚫지 못했다.

하지만 현성은 예외였다.

체력과 마력을 동시에 소모하는 뇌전룡의 숨결은 이무기의 몸을 휘감고 있는 폭풍을 가볍게 꿰뚫었다.

파지지직!

현성이 날린 흑뢰가 연속적으로 이무기의 상처 부위에 직격했다.

흡혈공의 옵션으로 인해 소모되었던 체력과 마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현성은 묵묵히 스킬을 날렸다.

‘버프가 좋기는 좋네.’

현성은 원거리 공격 계열로 분류되어 있기에 버퍼 김하나에게 마력 스텟 증가 버프를 받았다.

늘어난 마력 덕분인지 뇌전룡의 숨결 파괴력이 꽤 올라갔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엄청난 파워 업은 아니기에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했다.

‘뭐, 나한테만 집중적으로 써 준 건 아니니까.’

대규모 버프이니만큼 아무래도 효과가 조금은 하향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하나의 집중 버프를 받은 탱커 및 근접 딜러 들은 완전히 하늘을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나도 근접전을 벌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레이드에 참가한 건 좋았지만 원거리 딜러진에 포함된 게 살짝 아쉬웠다.

현성에게는 이무기의 피가 필요했다.

불사의 서는 블루 드레이크의 피를 흡수해 성장했다.

이무기의 재생력도 상당히 뛰어나 보이니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용혈검 역시 용종의 피를 흡수해 성장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현성도 신윤아를 포함한 근접 계열 척살대원들과 함께 육탄전을 벌이며 용혈검에게 이무기의 피를 마음껏 먹여 주고 싶었다.

‘아서라.’

하지만 그건 무리였다.

고층 빌딩이 연상될 정도로 거대한 체구의 이무기는 엄청나게 민첩한 속도를 자랑했다.

현성이 끼어들었다가는 순식간에 전사할 확률이 높았다.

‘나중에 땅에 떨어진 피라도 흡수시켜 봐야겠다.’

용혈검은 기본적으로 현성이 공격한 대상의 피를 흡수한다.

이무기의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해서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다른 플레이어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도 아니다.

현성 외의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이무기의 피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말이다.

무의미하게 흙바닥에 흩뿌려져 사라지는 게 바로 이무기의 피다.

그렇게 버려질 거라면 필요한 사람이 사용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고, 확실히 수준이 다르네.’

현성의 눈으로는 근접전을 벌이는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신윤아도 그런 플레이어들 중 하나였다.

순백의 빛에 휩싸인 신윤아가 연속적으로 창을 찔러 넣었다.

신윤아의 창이 이무기의 몸에 적중할 때마다 비늘이 꿰뚫리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원거리 딜러들의 화력도 무시무시했다.

강대한 마력이 담겨 있는 원거리 딜러들의 스킬이 폭격처럼 이어졌다.

스킬 하나하나가 폭풍을 뚫고 이무기의 몸에 적중하며 심대한 피해를 입혔다.

가히 랭커 중에 랭커라고 불릴 만한 실력들이었다.

부러웠다.

저렇게 되고 싶었다.

‘방법은 업적 노가다밖에 없어.’

누적 포인트가 1조가 될 때까지 비약 구입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다.

비약 없이 스텟을 늘리는 방법은 사냥을 통한 업적 획득 밖에 없었다.

사냥이 계속해서 지속되었다.

특별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척살대원 중 부상자는 나왔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이무기의 몸이 점점 상처투성이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는 않겠네.’

중국의 랭커들이 두 번이나 대패했다.

북한은 이무기 한 마리를 막지 못하고 멸망했다.

하지만 한국은 비교적 손쉽게 이무기를 사냥하고 있었다.

이대로만 레이드가 지속된다면 인명 피해도 없이 이무기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캬아아아악!

이무기가 커다란 포효를 터트렸다.

콰콰콰콰콰콰콰!

그와 함께 산성 브레스가 플레이어들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탱커와 근접 딜러는 브레스를 피해 이무기의 몸통을 공격했다.

원거리에서 지원해 주던 플레이어들은 하나로 뭉쳐 연속적으로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현성을 포함한 비랭커군도 안전하게 랭커 플레이어가 만든 방어 스킬 속으로 들어갔다.

파삭!

산성 브레스와 충돌한 방어막이 박살 났다.

하지만 방어막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수십 명의 랭커들이 이중 삼중을 넘어서 수십 개에 달하는 방어막을 쳐 놓은 상황이다.

방어막 하나가 소멸했다고 해도 위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무기는 계속해서 산성 브레스를 뿜어냈다.

하지만 방어막이 소모되는 속도보다 재생성되는 속도가 월등히 빨랐다.

결국 이무기의 산성 브레스는 척살대원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척살대원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이무기는 전신이 난도질당한 상태였고 최후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브레스도 사용해 버렸다.

누가 봐도 플레이어들의 승리가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타악!

신윤아를 비롯한 탱커와 근접 딜러 들이 이무기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려들었다.

방어막을 사용했던 플레이어들도 연달아 공격 스킬을 캐스팅했다.

사아아아악!

그때 이무기의 몸에서 칠흑빛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칠흑빛 마력에 휩싸인 이무기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앙!

이무기가 커다란 포효를 터트렸다.

“광폭화다!”

일부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스킬.

보통은 방어력이 내려가고 힘과 마력이 증가한다.

척살대원들은 사냥이 거의 끝났음을 직감했다.

좌르르륵!

그때 이무기가 원거리 딜러와 힐러 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탱커들이 연달아 도발 스킬을 날렸다.

하지만 걸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도발 스킬이 실패했다는 메시지가 연달아 떠오르며 탱커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스킬 저항력이 월등히 올라간 것이다.

보다 못한 탱커들이 방패를 들고 이무기의 앞을 가로막았다.

스킬이 통하지 않으면 몸으로라도 막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스킬이나 마력을 제외하더라도 이무기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콰아앙!

방어 스킬을 사용하며 이무기의 앞을 가로막았던 탱커들의 몸이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이에 근접 딜러들이 이무기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푸욱!

이무기의 비늘이 뚫리고 몸에 작은 생채기가 생겼다.

그게 전부였다.

전처럼 비늘을 관통하고 몸속 깊숙이 타격을 주지 못했다.

물리 저항력까지 올라간 것이다.

“뭔 광폭화가 이따위야?”

보통은 힘과 마력이 상승하는데, 이무기는 그게 아니었다.

더 이상 공격 스킬인 칠흑빛 뇌전과 태풍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대폭 상승했다.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이무기를 보며 원거리 딜러들이 연달아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월등히 올라간 스킬 저항력 덕분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가 없었다.

“다들 피해!”

탱커들의 외침에 원거리 딜러와 힐러 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민첩 스텟이 높은 궁수 계열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하지만 민첩 스텟이 낮은 마법사 계열이나 힐러 계열 플레이어들이 전설 등급 몬스터 이무기의 공격을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콰직!

마법사 계열과 힐러 계열 플레이어들이 무차별하게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탱커와 근접 딜러 들이 달라붙어 공격을 가했지만 이무기는 집요하게 마법사 계열과 힐러 계열 플레이어들만 노려 공격을 퍼부었다.

‘젠장!’

원거리에서 뇌전룡의 숨결을 날리던 현성 역시 이무기의 공격 대상이었다.

이무기의 눈이 현성에게로 향했다.

‘블링크.’

현성이 블링크를 스킬을 사용했다.

일단 위험 지역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이무기의 사안에 걸리셨습니다.

-20초간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패시브 스킬 굴하지 않는 정신이 발동합니다.

-이무기의 사안 스킬에 공포 상태가 1초로 감소합니다.

-액티브 스킬 블링크가 캔슬되었습니다.

‘빌어먹을…….’

1초간의 공포 상태는 괜찮다.

이무기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블링크 스킬이 캔슬된 건 상당히 큰 문제였다.

도주 방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캬아아악!

쩍 벌어진 이무기의 아가리가 현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현성이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블링크의 쿨타임이 돌아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이무기의 이빨을 피할 수 있었다.

이무기의 이빨을 피한 현성이 전력으로 질주했다.

짧은 시간에 꽤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무기의 몸은 너무도 거대했다.

휘익!

이무기의 꼬리가 현성을 비롯한 원거리 딜러진과 힐러들을 향해 날아왔다.

피하기는 무리였다.

현성이 용혈검과 방패로 몸을 보호했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몸을 뒤로 날렸다.

퍼억!

하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현성의 몸이 배트에 정타를 맞은 야구공처럼 허공으로 치솟았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 *

“으으으으.”

현성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꽤 오랜 시간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 같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만신창이가 된 갑옷이 눈에 들어왔다.

이무기의 꼬리질 한 방에 희귀 등급 방어구가 힘없이 우그러져 버렸다.

몸에서도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죽다 살아났네.’

아마 불사의 서가 없었다면 싸늘한 시체로 변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설마 피어 말고 다른 정신계 공격 스킬이 있었을 줄은 몰랐네.’

물론 발동 조건은 피어보다 훨씬 까다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런 만큼 위력이 강력했다.

굴하지 않는 정신 스킬이 완벽하게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캬아아아앙!

멀리서 이무기의 포효가 들려왔다.

‘난장판이네.’

마법사 계열과 힐러 계열 플레이어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져 현장을 벗어난 상태였다.

현재 이무기와 혈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은 탱커, 근접 딜러, 궁수 들이었다.

‘용혈검은 어디 갔지?’

현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용혈검이 보이지 않았다.

‘회수를 해야겠다.’

용혈검을 소환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용혈검 - 유일 영웅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문구가 떠올랐다.

‘설마?’

현성이 척살대원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무기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이무기의 꼬리 부분에서 익숙한 무언가가 보였다.

바로 용혈검의 손잡이였다.

‘꼬리 공격을 막을 때 박혀 들어갔나 보네.’

현성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무기의 꼬리 힘 덕분에 용혈검이 검 손잡이만 남길 정도로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소환할 필요는 없겠네.’

용혈검은 이무기의 몸에 박혀 피를 흡수하며 쭉쭉 성장하고 있었다.

알아서 성장하고 있는 용혈검을 지금 소환할 필요는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이무기의 몸에는 전보다 월등히 많은 상처가 생겼나 있었다.

‘다행이네.’

레이드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듯 보였다.

스킬 저항력과 물리 저항력을 상승시켰지만 계속되는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다만 마법사 계열 척살대원들의 지원이 없다 보니 결정적인 치명타를 날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무기와 싸우고 있는 척살대원들은 전신이 상처투성이었다.

힐러 계열 척살대원도 없었기에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승패는 결정이 난 듯 보였다.

이무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에 반해 척살대원들은 아직 체력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용혈검 – 유일 영웅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어라?’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용혈검이 성장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전설 등급 몬스터의 피라 그런가?’

용종의 피를 흡수해 성장하는 용혈검 입장에서는 최고의 영양식을 만난 셈이었다.

* * *

이무기는 처절하게 저항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맛있는 별미로만 생각했던 먹잇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결정적으로 꼬리에 박혀 있는 이물질이 지속적으로 피를 빼앗아 갔다.

피는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서 생명의 원천이다.

당연히 계속해서 힘이 빠졌다.

마음 같아서는 꼬리에 박힌 이물질을 제거하고 싶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달려드는 먹잇감들이 문제였다.

먹잇감 하나하나는 자신보다는 월등히 약한 개체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휘익!

쿠우우웅!

자신이 휘두른 꼬리를 얄밉게 피해 버린다.

그와 함께 꼬리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먹잇감들이 자신의 꼬리에 마력이 담긴 쇳조각을 쑤셔 박았다.

캬아아아악!

피어를 사용해 보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사안도 먹히지 않았다.

브레스도 마찬가지였다.

마력을 쥐어짜 다른 스킬들을 사용해 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체력과 마력이 거의 바닥나 버렸다.

최후의 수단이었던 광폭화는 이미 스킬 지속 시간이 끝난 지 오래된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출혈로 의식이 점점 흐릿해졌다.

콰직!

날카로운 쇳조각이 몸을 파고드는 감촉과 함께 의식의 끈이 끊어졌다.

* * *

쿠우우웅!

커다란 소음과 함께 이무기가 바닥에 쓰러졌다.

푸욱! 푸욱!

척살대원들이 각자 자신의 무기를 쓰러진 이무기를 향해 박아 넣었다.

하지만 이무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놀라운 업적 – 영웅 등급

-최초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전설 등급 몬스터 사냥에 기여한 자 - 영웅 등급]

“와아아아아!”

“이겼다!”

“잡았어!”

척살대원들이 커다란 함성을 터트렸다.

이무기 입장에서도 피 말리는 전투였지만, 척살대원들 입장에서도 목이 바싹바싹 말라 갈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다.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기에 큰 대미지를 주기 힘들었다.

힐러 계열 플레이어의 부재로 부상을 치료할 수도 없었다.

값비싼 힐링 포션을 마시고 보조용으로 익힌 힐을 사용하며 악착같이 버텼다.

전투를 치르던 척살대원들의 체력과 마력도 거의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었기에 이무기가 조금만 더 버텼다면 척살대원들이 먼저 무너졌을 수도 있다.

척살대원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버티고 또 버텼다.

수많은 동료들이 전사했다.

특히 마법사 계열과 힐러 계열의 플레이어들의 피해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만약 패배했다면 대한민국은 자력으로 이무기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아아아악!

이무기의 사체에서 잔여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척살대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제 드디어 보상을 챙길 시간이었다.

최초로 등장한 전설 등급 아이템의 주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모두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하지만 척살대원들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가장 먼저 보상을 빨아들이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용혈검이었다.

블루 드레이크 제토스의 마력을 흡수해 성장한 용혈검은 이무기의 피도 모자라 잔여 마력까지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

이무기의 꼬리가 완전히 녹아내리고 용혈검의 모습이 드러나려는 찰나…….

슈욱!

용혈검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 * *

현성이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 용혈검을 움켜쥐었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현성이 방금 전 봤던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영웅 등급

-최초로 전설 등급 무기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전설 등급 무기를 손에 넣은 자 - 영웅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영웅 등급

-최초로 유일 전설 등급 무기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유일 전설 등급 무기를 손에 넣은 자 - 영웅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영웅 등급

-최초로 전설 등급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전설 등급 스킬을 손에 넣은 자 - 영웅 등급]

용혈검이 전설 등급 무기로 성장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였다.

현성 입장에서는 우연히 용혈검이 이무기의 몸에 박혀 들어간 것뿐이다.

한데 이무기의 죽음과 동시에 용혈검이 전설 등급으로 성장했다.

용혈검 - 유일 전설 등급 - 귀속 아이템

-주변에 흩어진 피를 흡혈해 사용자의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킵니다.

-용종의 피를 흡수할 경우 공격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체력과 마력 회복 속도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용종의 피를 지속적으로 흡수할 경우 성장이 가능합니다.

-블루 드레이크 제토스의 마력과 이무기 구프의 마력 그리고 플레이어 최현성의 마력이 뒤섞여 본래의 한계를 월등히 뛰어넘었습니다.

-플레이어 최현성 외의 인물이 사용할 경우 옵션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 최현성의 의지에 따라 하루 세 번 용혈검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액티브 스킬 - 용의 혈조 사용 가능.

용의 혈조 - 전설 등급

-액티브 스킬

-용종의 피로 이루어진 손톱을 날립니다.

-용종의 피가 있어야만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용혈검을 쥐고 있어야만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과연 전설 등급 아이템다웠다.

제약이 많기는 했지만 용의 혈조라는 전설 등급 스킬 역시 얻을 수 있었다.

‘이것 때문에 최초 업적이 세 개나 떴구나. 그나저나 유일 등급 업적이 따로 있는 줄은 몰랐네.’

불사의 서와 뇌전룡의 숨결은 유일 영웅 등급 스킬이다.

용혈검은 방금 전까지 유일 영웅 등급 아이템이었다.

한데 최초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그러다 용혈검이 전설 등급이 되니 그제야 최초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럼 나 말고도 유일 스킬이나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있겠구나.’

아마 그들 중 하나가 일반 등급과 희귀 등급 최초 업적을 가지고 갔을 것이다.

‘좋네.’

일반 등급과 희귀 등급은 얻지 못했지만 영웅 등급 업적은 얻었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큰 성과였다.

거기다 원래대로였다면 두 개였어야 할 최초 업적이 용혈검에 스킬이 추가되는 바람에 세 개가 되어 버렸다.

현성으로서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하지만 행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최초의 전설 등급 몬스터 사냥에 기여한 자 - 영웅 등급

-레이드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기여도 순위 1위.

-모든 스텟 10 증가.

‘헐.’

현성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내가 1위라고?’

현성은 이무기 레이드에 별로 기여한 게 없었다.

멀리서 뇌전룡의 숨결을 날리다가 이무기의 공격에 기절한 후 깨어난 게 전부였다.

한데 기여도 순위가 1위였다.

보상도 엄청났다.

모든 스텟 10 증가.

본래 영웅 등급 최초 업적으로 주어지는 보상은 모든 스텟 20 증가다.

하지만 그건 혼자서 온전히 독차지했을 경우다.

이무기 레이드의 경우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 만큼 기여도에 따라 차등 분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스텟 10 증가 보상을 받았다.

‘용혈검아, 고맙다.’

현성이 레이드에서 기여도 1위를 할 수 있었던 원인은 단 하나.

용혈검뿐이었다.

운 좋게 이무기의 꼬리에 박힌 용혈검이 레이드에 가장 큰 기여를 해 준 것이다.

아마 용혈검이 아니었다면 현성은 최하위권의 보상을 받을 게 확실했다.

한데 용혈검 덕분에 엄청난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다.

‘아이템 분배는 어떻게 하려나?’

일반적으로는 고가의 아이템이 나올 경우 경매를 통해 처분하고 기여도에 따라 현금으로 지급하는 게 관례다.

‘쉽게 끝나지는 않겠네.’

영웅 등급 아이템 처분에도 적지 않은 잡음이 일어난다.

하물며 이번에는 세계 최초로 등장한 전설 등급 아이템의 처분이 걸린 일이었다.

당연히 쉽게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기여도 1위이기는 하지만, 외부에서 봤을 때 현성은 이번 레이드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보상 금액도 적을 게 확실했다.

기여도를 공개한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용혈검의 존재를 밝혀야 한다.

‘그건 오히려 손해야.’

이무기가 드롭한 아이템을 기여도 순위로 분배하면 모르겠지만 그저 보상 금액이 늘어날 뿐이다.

금전적 이득을 위해 용혈검의 존재를 밝힐 수는 없었다.

‘과한 욕심을 낼 필요는 없어.’

현성은 이번 이무기 레이드에서 누구보다도 큰 보상을 손에 넣었다.

최초로 등장한 전설 등급 아이템의 주인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 * *

세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쏠렸다.

인류 최초로 등장한 전설 등급 몬스터 이무기 레이드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세계인들은 이무기가 어떤 아이템이나 스킬북을 남겼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무기가 남긴 아이템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비밀로 부쳤다.

물건을 소개도 하지 않았는데, 매도 요청이 쏟아졌다.

거의 백지수표를 던지는 수준이었다.

랭커들 중 일부는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고 한국으로 입국하기도 했다.

또 다른 최초 업적을 얻을 수 있다는 욕심과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뒤섞인 결과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무기가 토해 낸 아이템을 외부로 유출할 생각이 없었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의 플레이어들을 성장시키는 게 더 중요했다.

그리고 솔직히 랭커들이 백지수표 수준의 제안을 했다고 해도 한국의 국가 재정에 비하면 새 발에 피 수준이었다.

관심은 이무기가 토해 낸 아이템에만 쏠린 게 아니었다.

정확히 몇 명의 플레이어들이 레이드에 참가했는지.

참가 인원의 레벨은 어떻게 되는지.

모든 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마저도 공개하지 않았다.

굳이 자국의 플레이어 전력을 외부에 노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의 이무기 레이드 성공으로 인해 단단히 체면을 구긴 나라가 있었다.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은 이무기를 상대로 레이드를 벌여 두 번이나 대패를 했다.

인명 피해도 어마어마하게 발생했다.

한데 그에 대한 과실은 하나도 누리지 못했다.

북한 지역을 손에 넣은 것도, 이무기 레이드에 성공해 업적과 아이템을 손에 넣은 것도 모두 한국이었다.

욕도 오지게 먹었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무기가 갑자기 방향을 바꾼 이유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레이드에 참여했던 중국 랭커들이 이무기와 함께 무단으로 국경을 넘었다.

이는 엄연히 한국에 대한 침공 행위이자 반인륜적인 행위였다.

명명백백한 증거가 존재하기에 발뺌할 수도 없었다.

자국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타국의 피해를 강요했다.

괜한 욕심으로 국제사회의 도움을 거절하고 스스로 일을 키운 주제에 문제가 생기자 한국으로 이무기를 떠넘겼다.

세계 각국의 비난이 쏟아졌다.

중국 내부에서도 나라 망신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식적으로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중국은 오히려 적반하장의 진수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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