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 응징 (28/225)

┃응징

현성의 사망 소식에, 현성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깨어난 뒤에는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했다.

“진짜 문제는 그 뒤에 찾아왔어.”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른 어머니에게 날아온 것은 현성의 명의로 된 대여 장비 손실분 청구서와 계약 불이행 위약금 청구서였다.

“…….”

현성이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불난 집에 휘발유를 끼얹는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런 일이 벌어졌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 어머니를 대신해 일의 진상을 알아본 사람이 바로 최현지였다.

수십 번도 더 항의를 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일이다.’, ‘상속 포기 신청을 해라.’ 같은 매크로 답변만 돌아왔다.

변호사와 상담을 해 봤지만 상속 포기 신청 외에는 해결책이 없었다.

“상속 포기를 하면 당장 이사부터 가야 할 판이더라.”

어머니와 누나가 살던 집은 현성의 명의로 계약한 전셋집.

상속을 포기하면 당연히 집을 비워 줘야 했다.

물론 상속 포기를 하더라도 당장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

현성이 플레이어 협회와 계약을 하고 받은 계약금의 일부를 어머니께 보내 드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까지 건들려고 했다.

“그때 정말 지독했어. 현성이 네가 엄마한테 송금했던 돈을 불법 증여로 간주하고 회수하겠다면서 유류분 반환 청구서까지 보냈으니까.”

이가 갈렸다.

만약 일이 그대로 진행됐다면 어머니와 누나의 손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그 뒤에 잘 해결되기는 했어. 신윤아 씨라는 분이 직접 찾아오셔서 무릎까지 꿇고 사과하셨거든, 일 처리에 착오가 있었다고 하시면서. 그런데 내가 볼 때 단순한 착오는 아닌 것 같아.”

당연히 착오일 리가 없었다.

“내가 한번 알아볼게.”

“엄마가 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었어.”

죽다 살아난 아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너도 어느 정도 안정된 것 같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한 거야.”

“알려 줘서 고마워, 누나.”

최현지가 말해 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하지만 이건 모르고 지나갈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 * *

현성은 플레이어 협회 본사를 찾았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현성은 플레이어 협회의 안내 카운터로 향했다.

“신윤아 대장님이랑 약속이 되어 있는데요.”

“아, 조금 일찍 오셨네요. 신윤아 대장님께서는 아직 복귀 전이신데…….”

조금이 아니다.

무려 약속 시간보다 1시간이나 먼저 왔다.

“저도 혹시나 하고 미리 연락을 드렸더니, 본인 집무실에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셔서요.”

“아, 그러신가요? 그럼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카운터 직원의 안내를 받은 현성이 신윤아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차라도 한 잔 가져다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카운터 직원이 나간 뒤 신윤아의 집무실에는 현성 혼자 남았다.

‘깔끔하네.’

잠시 신윤아의 집무실을 둘러보던 현성은 오늘 오전에 구입한 스킬을 발동시켰다.

‘사이코 메트리.’

장면만 보는 게 아니라 소리까지 들려주는 영웅 등급 스킬.

전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스킬이다.

하지만 영웅 등급 스킬답게 비전투적인 상황에서는 충분히 그 값어치를 했다.

‘코드 검색 최현성.’

사이코 메트리 스킬이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어에 따라 최현성이라는 이름이 언급된 장면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현성은 가장 오래된 정보부터 열람해 보았다.

가장 먼저 뜬 정보는 신윤아가 현성의 죽음을 인지한 상황이었다.

재생되는 홀로그램 영상 속의 신윤아는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고마웠다, 가족 외에도 자신의 죽음을 애도해 주는 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 후에 생성된 홀로그램 영상은 신윤아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장면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최현성 씨 유족에게 그런 짓을 한 겁니까?”

잔뜩 분노한 표정의 신윤아가 누군가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그게 규정이라니까요. 전 규정에 따라 일을 집행했을 뿐입니다, 신윤아 대장.

귀찮음이 가득 느껴지는 남자의 음성이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당장 그 지시 사항 철회하세요.”

-이건 제 업무지 신윤아 대장이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그게 국가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플레이어에게 할 짓입니까?”

-저도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이게 규정이라니까요.

둘은 한참을 다퉜다.

“제가 전사해도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할 겁니까? 이번 지시 사항이 철회되지 않는다면, 저도 플레이어 협회를 떠나겠습니다.”

-계약 위반입니다.

“그런 비정상적인 종속 계약이 과연 국제사회에서 인정될까요?”

-지금 한국 정부와 척지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한국 정부가 저랑 척지겠다는 뜻이겠죠.”

-휴우, 너무 흥분하신 것 같군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쓰레기 같은 놈들!”

신윤아는 한참 동안 통화한 상대를 욕했다.

그걸 끝으로 홀로그램 영상이 끝났다.

‘참 고마운 사람이네.’

설마 신윤아가 이렇게까지 해 줬을 줄은 몰랐다.

자신을 위해 정부와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웠다.

그것도 모자라 가장 강력한 카드인 계약 파기까지 꺼내 들었다.

현성이 신윤아를 만난 횟수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신윤아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신윤아는 절대 한 입으로 두말할 성격이 아니었다.

만약 정부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면 정말 계약을 파기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의 기록을 살펴봤다.

별달리 도움이 되는 홀로그램 영상은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봤던 홀로그램 영상 하나만으로도 이번 일을 주도한 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홀로그램 영상에 재생된 내용을 통해 신윤아와 통화한 대상이 누군지도 알 수 있었다.

‘이항구 장관.’

무려 장관님이셨다.

스마트폰으로 상대의 이름과 직책을 검색했다.

바로 결과가 나왔다.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 이항구.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하위 기관으로 던전 관리청과 플레이어 관리청을 두고 있는 국가기관이었다.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플레이어 협회 역시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하위 기관이었다.

차원 게이트 관리부는 대격변 이후 신설된 부서로, 국가기관 중에서도 상당히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차원 게이트 관리부.’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신윤아 같은 인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 협회가 왜 그렇게 썩었나 했더니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넌 죽었어.’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밖에서 얼굴 들고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다.

달칵.

그때,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현성 씨, 오래 기다리셨죠?”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일찍 온 건데요, 뭘.”

“그런데 갑자기 왜 찾아오신 거예요? 용건을 물어봐도 안 알려 주시고.”

신윤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간 사냥에만 열중이던 현성이 갑자기 플레이어 협회 본사를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계약을 파기해야 할 것 같아서요.”

현성의 말에 신윤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갑자기 그게 무슨……?”

“이항구 장관님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셨는지 다 알아 버렸거든요.”

현성의 말에 신윤아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그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신윤아 씨가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마 나중에라도 사태가 수습된 게 다 신윤아 씨 덕분이잖아요. 오히려 제가 감사 인사를 드려야죠.”

“그럼 절 봐서라도 이번 한 번만 그냥 넘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다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가 확실하게 규칙을 바꿔 놓을게요.”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그보다 원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뭐든 들어드릴게요.”

“이항구 장관님을 직접 만나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네?”

“이항구 장관님께 직접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게 제가 원하는 조건의 전부입니다.”

신윤아의 표정이 난감함으로 물들었다.

* * *

꽝!

“건방진 새끼!”

이항구 장관이 잔뜩 격양된 표정으로 집무실 책상을 내리찍었다.

“고유 스킬 보유가 얼마나 대단한 벼슬이라고 이딴 유세를 부려?”

이항구 장관의 노성에 보좌관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뭘 잘못했냐 이 말이야! 그래, 안 그래?”

“어린놈이라 세상 물정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장관님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신 것뿐입니다. 당장 항의해야 합니다.”

보좌관들의 말에도 이항구 장관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제기랄. 그래, 방금 그 말이 맞아. 난 법대로 적법한 직무 수행을 하려고 했을 뿐이야! 그런데 왜 내가 그런 애송이한테 사과를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진짜 하지도 않았잖아!”

“맞습니다. 장관님께서 큰 아량을 베풀어 주셨는데, 그 은혜도 모르고 주제넘게 설치고 있습니다. 본때를 보여 줘야 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어떻게 본때를 보여 줄 거야?”

이항구 장관의 말이 열심히 맞장구를 쳤던 보좌관의 얼굴빛이 누렇게 변했다.

“그, 그게…….”

“이미 VIP 귀에도 들어갔는데, 어떻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할까?”

“…….”

보좌관들이 합죽이처럼 입을 다물었다.

“이 병신 같은 것들, 대책도 없으면서 떠들기만 하고!”

“죄송합니다, 장관님!”

보좌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하아!”

이항구 장관이 한숨을 토해 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신윤아 고 앙큼한 것이 자신을 협박했다, 위 라인에도 다 보고를 해 뒀으니 사과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고.

이항구 장관은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닳고 닳은 능구렁이다.

그런 만큼 이번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잘 알고 있었다.

상대가 무리한 보상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아무런 물리적 보상 없이 순수한 사과만 요구했다.

고유 스킬 보유자 최현성과의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순순히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이득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 정부의 입장에서 최현성의 요구는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제안이었다.

문제는 사과 당사자인 이항구의 구겨진 자존심이었다.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거대 길드의 길드장이나 톱클래스 랭커들조차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하며 대한 사람이 바로 이항구다.

그런 이항구가 각성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핏덩이에게 대면 사과를 해야 하다니?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기는 것은 물론, 소문이라도 나는 날에는 큰 망신살이 뻗치는 일이었다.

“그놈보고 조용히 여기로 오라고 해.”

“예?”

보좌관의 반문에 이항구 장관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내가 그 애송이에게 사과하러 그놈 집이라도 찾아가야겠어? 업무로 바쁘니까 사과받고 싶으면 그놈보고 직접 오라고 해!”

“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보좌관이 부리나케 몸을 움직였다.

‘내가 그놈에게 찾아갈 수는 없지.’

이건 이항구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또 최현성이 거절한다면 자신은 사과를 하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거절을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 볼 생각이었다.

* * *

‘직접 오라 이거지.’

신윤아를 통해 이항구 장관의 의사를 전달받은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사실 만나는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항구 장관이 평소 착용하고 다니는 시계, 배지, 안경 등에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사용할 생각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집무실에서 만난다면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사용할 물건이 더 많아진다.

‘나야 좋지.’

현성은 바로 이항구 장관의 집무실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차를 타고 차원 게이트 관리부로 향했다.

* * *

차원 게이트 관리부에 도착한 현성은 곧바로 이항구 장관을 만날 수 없었다.

바쁜 일이 있으니 기다리라는 보좌관의 말 때문이었다.

‘전혀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구먼.’

사과할 사람을 직접 오라고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음에도 벌써 1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야 나쁠 건 없지.’

보좌관의 소지품을 비롯해 건물 내부에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사용했다.

그 결과 이항구 장관이 얼마나 썩은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국회의원과 대기업을 배경으로 둔 거대 길드, 거기다 던전 출입 관리인들까지 합세한 완벽한 비리의 온상이었다.

‘경비는 상당히 허술하네.’

차원 게이트 관리부의 직원들은 일반인 일색이었다.

플레이어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나야 좋지.’

비밀 장부를 빼돌리기도 편하고, 대놓고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차곡차곡 정보를 쌓아 가는 현성에게 보좌관이 다가왔다.

“가시죠. 장관님이 찾으십니다.”

“알겠습니다.”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에 도착한 현성은 이항구 장관과 대면했다.

이항구 장관의 얼굴 표정은 대놓고 구겨져 있었다.

“음, 자네가 최현성인가? 상당히 어리구먼. 내 손주랑 비슷한 또래겠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과를 받으러 왔는데, 전혀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현성은 차분하게 이항구 장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시전했다.

‘아주 더러운 놈이군.’

이렇게 대놓고 뒷주머니를 차는데도 여태 안 걸린 게 용할 정도였다.

아니, 이항구 장관은 자신의 잘못이 발각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관계자들 모두가 한통속이었으니까 말이다.

“사과는 안 하십니까?”

현성의 물음에 엉뚱한 소리를 한참 늘어놓던 이항구 장관의 표정이 붉게 달아올랐다.

“커흠. 거, 미안하네. 하지만 나도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으로서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장관이 사적인 마음으로 공무를 집행할 수는 없잖나. 그러니 자네가 이해하게.”

이항구 장관이 사과인지 변명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게 정당한 공무면 왜 집행하지 못하셨습니까?”

“뭐?”

“그게 정당한 공무면 집행을 왜 못 하셨냐고요. 솔직히 말해서 억지 주장이 한두 개가 아니지 않습니까? 손상된 장비? 엄연히 공무 수행 중에 벌어진 일입니다. 예를 들어 소방관 한 분이 화마와 싸우다 많은 인명을 구하고 본인은 순직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한테 입고 있던 방열복값 물어내라고 청구서 보냅니까?”

현성의 물음에 이항구 장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현성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거기다 계약 불이행 위약금? 전 계약 내용 수행 중에 전사 처리됐던 겁니다. 그쪽이 시킨 일을 하다가 전사를 했는데, 죽어서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으니까 계약금을 토해 내라? 이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장기 복무 중인 장교나 부사관이 전쟁 중에 전사하면 장기 복무 기간 못 채웠으니까 위약금 내라고 할 겁니까?”

이항구 장관의 두툼한 턱살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으면 그런 개념 없는 주장이 가능한 겁니까?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알 법한 일을 나이 지긋하게 드신, 거기다 장관이라는 분이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항구 장관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돌대가리도 아니고 말이야.”

현성의 혼잣말에 이항구 장관이 폭발했다.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따위 막말을 지껄이는 거야?”

“제가 무슨 막말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초면부터 막말한 사람은 장관님 아닙니까?”

말을 마친 현성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렇게 개념이 없지? 머릿속에 우동사리가 들어 있나.”

분명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하지만 바로 앞에 있던 이항구 장관의 귀에 안 들릴 리가 없었다.

“야, 이 개자식아,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나 장관이야, 장관! 전에는 국회의원도 했던 사람이고! 새파랗게 젊은 놈이 뭘 안다고 그따위 말을 지껄여? 못 배워 처먹은 집구석 애새끼가 운 좋게 각성했다고 감히 나를 모욕해? 버러지만도 못한 천민 새끼가 감히 나를……!”

이항구 장관이 노발대발하며 현성을 향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몸을 덮치는 싸늘한 살기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강렬한 마력이 유형화되어 넘실거렸다.

살을 베어 버릴 것 같은 살기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이항구 장관은 맹수 앞에 선 초식동물처럼 몸 전체가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전신이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덜덜덜 떨려 오기 시작했다.

“그냥 죽여 버릴까?”

현성의 중얼거림에 담긴 진득한 살기가 이항구 장관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쉬이이이이.

이항구 장관의 사타구니가 노란 물에 젖어 들어 갔다.

뚝뚝뚝.

노란 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털썩!

그리고 이항구 장관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려 버린 것이다.

“어, 오줌 지리셨네. 에휴, 더러워라. 그 나이에 소금 얻으러 다니려면 쪽팔리시겠다.”

현성이 무릎을 꿇고 이항구 장관과 눈높이를 맞췄다.

“앞으로는 개념 있게 사세요. 그리고 말을 내뱉을 때는 제발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입 밖에 꺼내세요. 이게 장식은 아니잖아요.”

현성이 이항구 장관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항구 장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보좌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몸은 얼음이라도 된 듯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 그리고 아까 하신 모욕적인 언사 다 녹음해 놨거든요. 이건은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모욕죄로 고소장 접수도 가능하겠네요. 그럼 법원에서 봬요.”

할 말을 끝낸 현성이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겨 이항구 장관의 집무실을 벗어났다.

“으아아아아아!”

집무실 복도 끝 엘리베이터에 서 있는 현성의 귀로 분노에 가득 찬 이항구 장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이 시원하네.’

에피타이저 정도만 맛보여 줬는데도 고객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것 같았다.

‘다음에는 어떻게 나오려나?’

메인 요리가 등장하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만족스러운 비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이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이!”

이항구 장관이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자신의 앞으로 날아온 정식 항의서와 고소장을 노려보았다.

VIP의 질책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잘 달래서 마무리하라고 했더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면서 말이다.

이항구 장관은 플레이어 최현성이 자신을 위협했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그러게 진작 잘 좀 하지 왜 그 사달을 만들었냐는 더 강한 질책이 돌아왔다.

플레이어가 일반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엄청난 중범죄에 속한다.

하지만 특별한 외상을 입은 것도 아니고 증인도 본인과 보좌관뿐이기에 현성의 범죄를 증명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오줌 지린 속옷과 양복바지를 증거라고 제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 짓을 해 봤자 오히려 본인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을 할 뿐이다.

결국 이항구 장관이 할 수 있는 것은 최현성이 자신을 위협했다는 말뿐이었다.

현성이 증거로 제출한 음성 파일을 들어 본 VIP는 오히려 그 정도에서 끝나길 다행이라며 이항구 장관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현성이 증거로 제출한 음성 파일에 현성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내용은 전혀 녹음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왜 그랬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항구 장관은 국회의원을 거쳐 장관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몇 년 전 선거에서 낙선하지만 않았으면 국회의원과 장관직을 겸임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만큼 닳고 닳은 정치인이라는 뜻이다.

오만하기는 하지만 고작 그런 말 몇 마리에 이성을 잃고 흥분해 속마음을 드러낼 정도로 인내심이 약하지는 않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짚어 봐야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현재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이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윗선의 질책과 최현성의 중요도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장관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사과하자.’

지금은 자존심을 챙길 때가 아니었다.

일단 최현성이라는 핏덩이를 찾아가 용서를 받아야 했다.

굴욕적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자리가 보장해 주는 이권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 장관님!”

그때 보좌관들이 급히 집무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이것 좀 보시죠.”

보좌관이 내민 스마트폰을 받아 든 이항구 장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도대체 왜…….”

“당장 언론부터 틀어막아야 합니다.”

보좌관의 말에 이항구 장관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언론사에 전화 돌려. 기업 회장들한테도 연락하고.”

“네, 알겠습니다!”

이항구 장관과 보좌관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쫙 퍼진 이항구 장관의 비리 장부 때문이었다.

* * *

‘이 스킬 생각보다 쓸 만하네.’

일반 등급 스킬 격노.

도발 스킬의 한 종류다.

하지만 그다지 인기가 좋지는 않다.

격노에 휩싸인 몬스터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덤벼들어 오히려 전투력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현성도 처음 익힌 이후 몇 번 사용하지 않은 스킬이다.

괜히 익혔나 하고 후회하기도 했는데 역시 스킬은 구입하면 다 써먹을 데가 있다.

아무리 일반 등급 스킬이라도 저항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일반인을 상대로는 상당히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항구 장관이 정신계 방어 패시브 스킬북을 익혔다면 좀 까다로웠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사실 일반인들이 구매하는 패시브 스킬북은 건강에 관련된 게 많았다.

몬스터와 싸울 일 없는 일반인들이 뭐 하러 비싼 돈을 주고 정신계 방어 패시브 스킬북을 사서 익히겠는가.

그 돈이면 차라리 육체를 강건하게 해 주는 다른 종류의 스킬북을 구매해 익히는 게 이득이었다.

‘확실히 스킬이 일반인들 상대로 사기는 사기구나.’

은신을 비롯한 일반 등급 스킬은 사실 초반에만 사용하고, 그 후에 거의 제대로 된 쓰임새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제대로 써먹을 수 있었다.

‘네가 막을 수 있나 보자.’

비리 장부가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아무리 인맥을 동원해도 쉽게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플레이어들도 제대로 들고일어나고 있고.’

거대 길드에 눌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던 중소 길드 및 소규모 파티 소속 플레이어들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의 분노는 실로 대단했다.

중소 길드가 중심이 되어 단체 파업 조짐까지 보이고 있었다.

‘파업하면 난리가 나지.’

플레이어가 파업을 하면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다.

몬스터 개체 수가 증가한 던전이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의 파업을 강제 진압할 수도 없는 게 그러려면 군대라도 동원해야 한다.

그럼 바로 내전에 준하는 사태가 발발한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지.’

문제의 싹을 제거한다.

이항구 장관의 실각과 범죄행위에 대한 정당한 처벌.

정부가 바보가 아니라면 고작 장관 하나를 감싸기 위해 플레이어들과 척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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