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 폭리 (27/225)
  • ┃폭리

    두두두두두!

    그때 멀리서 헬기의 로터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군용 수송 헬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휘익!

    “어?”

    그때 군용 수송 헬기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허공을 밟으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현성을 향해 달려왔다.

    무협 소설에 나오는 허공답보를 현실에서 사용한 인물은 현성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신윤아 씨?’

    현성을 플레이어 협회로 끌어들인 장본인이자 직속상관.

    와락!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신윤아가 현성을 꽉 끌어안았다.

    현성이 미처 반응하기도 힘들 정도의 빠르기였다.

    “정말 살아 있었군요!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생환을 반겨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고맙고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

    신윤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현성과 거리를 벌렸다.

    “오, 옷은?”

    “블루 드레이크의 위액에 다 녹아 버려서요.”

    현성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감동적이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함으로 물들었다.

    잠시 후.

    현성을 발견한 플레이어 중 옷을 구하러 갔던 박우대가 돌아왔다.

    “일단 이거라도 입으세요.”

    박우대의 말에 현성이 모포 안에서 재빨리 옷을 입었다.

    사이즈가 맞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두두두두.

    그때 수송 군용 헬기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제히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탁!

    그 높은 거리에서 뛰어내렸음에도 모두가 가볍게 지상에 착지했다.

    “이야, 정말 감동적인 재회였어요! 그나저나 윤아 씨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뭐가요?”

    윤인환의 호들갑에 신윤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연하 타입이신 줄은 몰랐거든요? 이분이 윤아 씨가 숨겨 놓은 남자 친구 맞죠?”

    “농담은 적당히 하세요.”

    장난기가 가득 담긴 윤인환의 말에 신윤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윤인환이 경례 자세를 취하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런데 왜 오신 거예요? 작전 취소됐으니까 돌아가서 쉬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런 장면을 봤는데 어떻게 돌아가요? 궁금해서 와 봤죠, 블루 드레이크를 홀로 쓰러트리신 영웅 얼굴도 볼 겸.”

    신윤아의 물음에 강인희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머, 그런데 정말 제 타입이시다.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강인희가 현성과의 거리를 좁히며 물었다.

    “방금 죽을 고비를 넘기신 분입니다. 장난은 그만둬 주세요.”

    신윤아가 단호한 어조로 말하며 강인희의 앞을 가로막았다.

    “장난 아닌데요? 그런데 왜 윤아 씨가 발끈하세요? 혹시…….”

    장난기가 가득 담긴 강인희의 말에도 신윤아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다들 장난은 그만둬 주세요. 최현성 씨에게는 지금 휴식이 필요합니다. 혹시 모를 이상에 대비해 병원에도 들러야 하고요. 다들 최현성 씨가 블루 드레이크를 쓰러트린 일에 대한 호기심으로 몰려드신 것 같은데 이건 상당한 실례입니다. 현성 씨, 일단 병원으로 가시죠.”

    “알겠습니다.”

    멀쩡하긴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상 병원은 가야 할 것 같았다.

    “여러분들이 타고 오신 헬기는 최현성 씨의 응급 후송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신윤아가 현성의 손을 덥석 잡았다.

    타악!

    그리고 하늘로 솟구쳐 올라 가볍게 군용 수송 헬기에 탑승했다.

    “칫!”

    그 모습에 강인희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뭐, 우리가 무례하긴 했지. 하지만 궁금하네, 어떻게 혼자서 블루 드레이크를 사냥했는지. 윤아 씨가 저렇게 챙기는 걸 보니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아닌 것 같은데.”

    윤인환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군용 수송 헬기를 바라며 말했다.

    “나중에 물어보죠, 뭐.”

    “그래도 생각보다 어려서 놀랐어요.”

    랭커들이 현성을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는 블루 드레이크가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의 마력 흔적을 살펴보기도 했다.

    랭커들의 얼굴에는 현성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 * *

    병원으로 옮겨진 현성은 곧바로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정상.

    어디가 좋지 않기는커녕 너무 건강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현성은 간단하게 자신이 블루 드레이크의 배 속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흡혈공과 불사의 서는 숨겼다.

    대신 용혈검은 밝혔다.

    신윤아는 현성이 가지고 있던 희귀 등급 아이템이 유일 영웅 등급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그리고 상당히 드문 일이라며 축하해 줬다.

    병원에서 검사와 진술을 마친 현성은 곧바로 가족들에게 향했다.

    어머니는 현성의 모습을 직접 보고 또다시 눈물을 터트리셨다.

    * * *

    VVIP 게시판.

    이곳은 현재 난리가 난 상태였다.

    맥커바이스 이 @$*#%&한 자식아!

    게시자 - 다샤트

    너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야?

    벌써 비축해 놓은 배터리 떨어진 지 보름이 넘었다!

    그런데 새 제품이 안 올라와!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네놈이 책임져라!

    네놈이 비축해 놓은 배터리라도 팔라고!

    ↳ 브로우 - 비축 좀 넉넉하게 해 놓으시지. 전 아직 많이 남았는데.

    ↳ 다샤트 – 염장질 하지 말고 꺼져라.

    ↳ 브락스 - 브로우 님, 비축 넉넉하시면 좀 풀어 주실 수 없을까요? 제가 원판매가의 3배로 사겠습니다.

    ↳ 브로우 - 안 팝니다. 저 쓸 것도 부족해요.

    ↳ 브락스 - 그럼 4배로 사겠습니다.

    ……후략……

    맥커바이스 어느 차원에 있는지 아시는 분?

    게시자 - 비파르

    이 자식 잡으러 갈 생각입니다.

    혹시 맥커바이스가 있는 차원을 알고 있으신 분이 있다면 제보 바랍니다.

    ↳ 안드로비트 - 차원 게이트 강제 개방하실 정도로 포인트 많으신 분이 꼴랑 3천만 포인트가 아까워서 불매운동까지 하셨어요? 쯧쯧쯧.

    ↳ 테르친 - 제가 볼 때는 허세 같습니다.

    ↳ 푸베크투 - 동의합니다. 위치 알아도 포인트 없어서 차원 게이트 강제 개방 못 할 듯.

    ↳ 오카바이엘 - 맥커바이스 잡으러 갈 게 아니라 최현성이라는 판매자 잡으러 가야 하지 않음?

    ↳ 천무영 - 최현성 씨 활동한 지 1년도 안 됨. 보호 기간이라 위치 알아도 강제 개방 안 될 듯.

    ↳ 오카바이엘 – 아!

    최현성 씨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게시자 - 진소평

    앞으로는 그냥 닥치고 구입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물건 올려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천무영 - 최현성 씨는 등급이 낮아서 여기 있는 글 못 볼걸요?

    ↳ 냐이슈텨 - 맞아요. 괜히 헛글 올린 거임.

    맥커바이스 판매 물품 불매운동 및 컴플레인 들어갑니다!

    게시자 - 장무국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맥커바이스 이 자식이 최현성 씨가 잘나가니까 배 아파서 이런 짓을 벌인 것 같습니다.

    맥커바이스 이놈 주력 판매 물품이 필수품이라기보다는 취미 상품 위주였지 않습니까?

    제가 조사를 해 본 결과 최현성 씨가 등장하고 맥커바이스가 판매하던 물품들의 판매량이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즉, 이놈이 일부러 최현성 씨 조지려고 불매운동을 조장한 겁니다. 그리고 제 짐작이기는 하지만 아마 맥커바이스 이놈이 컴플레인을 걸어서 최현성 씨 영업정지 먹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그게 아니면 잘 팔리는 물품을 갑자기 판매 정리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기존 판매 물품 기록 남아 있는 걸 보면 사망한 것도 아닌데요.

    맥커바이스 이놈이 중간에 컴플레인 걸어야 한다고 부추기는 글을 올린 걸 보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이게 맥커바이스 놈의 진짜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경쟁자를 두려워한 맥커바이스 놈의 농간에 놀아난 겁니다!

    이런 놈을 가만히 두면 되겠습니까?

    당장 불매운동 및 컴플레인 시작합시다!

    ↳ 비파르 - 동참하겠습니다. 이 개자식이 우리를 가지고 놀았네요.

    ↳ 진소평 - 동참하겠습니다.

    ↳ 다샤트 - 동참하겠습니다.

    ↳ 브락스 - 동참하겠습니다.

    ……중략……

    ↳ 맥커바이스 - 전 정말 억울합니다!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 불매운동은 순수하고 좋은 뜻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갓 등장한 뉴비가 제 파이를 빼앗아 봐야 얼마나 빼앗았겠습니까? 제가 그런 핏덩이를 경쟁자로 생각해서 이런 일을 벌일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 장무국 - 응, 그렇게 보여. 그리고 이놈이 이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아직 영업정지 안 당했나 보다?

    ↳ 비파르 - 더욱 가열 찬 컴플레인 운동이 필요합니다.

    ↳ 진소평 - 동참하겠습니다.

    ↳ 다샤트 - 동참하겠습니다.

    ↳ 테루 - 서로 뜻 맞아서 으쌰으쌰하던 놈들이 이제는 지들끼리 싸우네.

    ↳ 브로우 - 전 처음 불매운동 글 봤을 때부터 이 꼴 날 줄 알았습니다.

    ↳ 테루 - 애초에 이기지도 못할 싸움 건 놈들이 바보죠.

    ↳ 브로우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초로 불매운동을 주도했던 맥커바이스는 완전히 죽일 놈이 되어 있었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서 오히려 자신이 역공을 당하고 있었다.

    맥커바이스는 자신의 무고함을 강하게 주장하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맥커바이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는 눈을 씻고 봐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맥커바이스는 고객들의 넘치는 분노를 막지 못하고 3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말았다.

    * * *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매운동의 주모자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현성이 물품 보충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타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적은 피해로 2차 대격변을 막아 냈다.

    한국은 무너진 기반 시설들을 복구했고, 새롭게 얻은 몬스터의 사체와 마석을 이용한 연구에 들어갔다.

    사회는 조금 불안정하지만 어찌 되었든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량이 꽤 많군요.”

    현성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평소처럼 변장을 한 상태였다.

    “예, 다행히 저희 매장이 차원 게이트의 피해를 받지 않아서요. 전기 시설이 복구된 뒤에는 최우선적으로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들을 완충해 놓았습니다.”

    지점장의 답변에 현성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부 구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지점장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2차 대격변이 마무리되고 다시 영업을 시작했지만 전자 제품 판매량은 영 신통치 않았다.

    부서진 제품이 많아 구매율이 올라갈 법도 했지만 인터넷 구매가 활성화된 지금, 오프라인 매장의 판매량은 그리 높지 않았다.

    사실 이전에도 현성이 대량 구매를 해 주지 않았다면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2차 대격변으로 영업을 하지 못한 손실로 분기 매출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던 상황.

    현성이 다시금 매장 찾아 대량 구매를 해 주니 지점장의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분을 믿은 건 최고의 선택이었어.’

    현성의 방문을 예상하고 미리 주문해 놓았던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를 완충시켜 놓은 지점장의 선택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현성은 완충된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들을 모조리 판매창에 올렸다.

    가격은 전보다 상승한 상태였다.

    아직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가격을 올려도 잘 팔린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굳이 가격을 다시 내릴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판매량이 떨어지면 다시 낮추면 되지, 뭐.’

    현성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후략……

    연속적으로 판매 완료 알람이 뜨기 시작했다.

    ‘어라?’

    현성은 가격을 조금 더 올렸다.

    하지만 역시 올리는 족족 팔려 나갔다.

    ‘더 팍팍 올려도 되겠는데?’

    현성의 입가에 냉정한 자본주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더 없나요?”

    현성의 물음에 지점장이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평소 구매하시던 수량만큼 주문을 해서요. 바로 추가 주문 넣겠습니다. 공장은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들었으니 물품 생산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일단 다른 지점에 있는 물건들을 당장 수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저…… 연락처를 남겨 주신다면 물건이 입고되는 즉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제가 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장을 나서는 현성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공장이랑 직거래하면 딱인데.’

    2차 대격변 전에 한 번 전화를 해 봤지만 개인 거래는 하지 않는다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전화를 해서 대량의 발주를 약속했지만 사업자나 법인이 아니면 아예 발주 주문 자체를 받지 않는다는 대답을 듣고 포기했다.

    ‘사업자 등록하고 창고를 하나 사야 하나?’

    그럼 전기세 문제나 대규모 발주 문제는 해결이 된다.

    ‘아니, 아예 전자 제품 매장을 하나 차릴까?’

    그렇게 하면 필요한 전자 제품을 바로바로 수급할 수 있다.

    ‘운영은 누나한테 맡기면 괜찮겠는데.’

    현성의 누나 최현지는 의류 매장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종류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같은 판매업이었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지?’

    현성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 사업은 망할 수가 없었다.

    사주인 현성이 최고의 고객이 되어 줄 테니까 말이다.

    전자 제품 매장 개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누나 최현지도 흔쾌히 동의했다.

    최현지는 생각보다 사업 수완이 좋았다.

    최대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현성의 말에 개업이 아니라 인수를 선택했다.

    거기다 인수인계가 완료되기도 전에 인계자와 합의해 원하는 물품을 선주문해 매장에 들여놓았다.

    현성은 기존에 이용하던 매장에서 예약한 물품을 구입한 후 더 이상 추가 주문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의 매장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량 확보가 자유로워졌다.

    현성은 포인트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매물은 올리는 족족 팔려 나갔고, 그런 현상은 일주일 넘게 지속되었다.

    ‘이제 슬슬 끝인가 보네.’

    현성이 판매창을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물건이 팔리는 속도가 거의 멈춰 버렸다.

    ‘이제 포인트를 써야지.’

    29억밖에 없었던 빈약한 포인트는 현재 700억을 넘어선 상태였다.

    영웅 등급 스킬을 2개나 구매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어떤 걸 사지?’

    원래는 당연히 야성의 본능이었다.

    장우현과 정성우에게 연속적으로 습격을 받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렇기에 위기 감지 능력이 탁월하고 대인전에도 도움이 되는 야성의 본능을 구입하려고 했다.

    한데 이번 블루 드레이크 사건으로 인해 생각이 바뀌었다.

    현재 현성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이나 조직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사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해도 플레이어 협회 직속으로 들어간 현성을 건드리기는 상당히 껄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는 다르다.

    현성이 플레이어 협회 직속이건 아니건 일단 공격하고 본다.

    블루 드레이크처럼 현성보다 월등히 뛰어난 스펙을 지닌 몬스터라면 아무리 미리 알아차려도 도망치기가 힘들었다.

    ‘일단 야성의 본능은 나중에 구입하자.’

    현성이 현재 보유한 영웅 등급 스킬은 총 5개.

    불사의 서, 생존 본능, 흡혈공, 뇌전룡의 숨결, 뇌전룡의 비늘이었다.

    4개가 패시브 스킬이었다.

    액티브 스킬은 뇌전룡의 숨결 단 하나였다.

    ‘공격 계열 스킬도 뇌전룡의 숨결 하나밖에 없어.’

    그나마 있는 공격 계열 스킬 뇌전룡의 숨결도 사실 강력한 대미지를 한 번에 전달하는 타입의 스킬은 아니었다.

    다른 스킬들을 강화하고 연속적으로 도트 대미지를 주는 지속성 공격 스킬에 가까웠다.

    ‘자유자재로 발동할 수 있는 액티브 스킬이 필요해.’

    블루 드레이크 같은 강한 저항력을 지닌 몬스터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강력한 공격 스킬.

    혹은 위험한 순간 몸을 피할 수 있는 공간 이동 계열 스킬.

    둘 중 하나라도 있었다면 블루 드레이크를 상대하기 월등히 수월했을 것이다.

    ‘둘 다 사자.’

    포인트는 충분했다.

    거기다 액티브 스킬은 패시브 스킬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다는 장점도 존재했다.

    현성이 구매창을 열고 일단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을 살폈다.

    ‘비, 비싸네.’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은 액티브 스킬답지 않게 상당히 비쌌다.

    ‘하긴 아공간도 비싸기는 했지.’

    공간을 다루는 스킬들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비쌌다.

    ‘영웅 등급은 가야 생명체 이동이 가능하구나.’

    희귀 등급 스킬은 생명체를 이동시키지 못했다.

    ‘영웅 등급 중에서 골라 보자.’

    현성이 공간 이동 계열 스킬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제약이 많아.’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은 가격도 비싸면서 발동 조건도 상당히 까다로웠다.

    일정 이상의 마력이 응집되어 있는 장소로 이동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소모되는 마력과 정신력도 상당히 컸다.

    ‘그래도 후기를 읽을 수 있으니까 상당히 편하네.’

    전에는 스킬 설명만 보고 구매 여부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후기를 볼 수 있으니 물품의 장단점을 자세히 비교한 후 구매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게 가장 낫겠어.’

    블링크 - 영웅 등급

    -액티브 스킬북

    -시전자의 시야가 닿는 거리로 이동할 수 있다.

    -이동하는 거리에 따라 소모되는 마력이 달라진다.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하거나 과하게 응집된 장소로는 이동할 수 없습니다.

    -쿨타임 : 10초

    -판매자 : 리오스

    -판매가 : 39,999,999,999포인트

    -액티브 스킬북 블링크 - 영웅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무려 400만 포인트.

    하지만 쿨타임도 짧았고, 시야가 닿는 거리 한도 내에서는 거리 제한도 없었다.

    ‘사자.’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액티브 스킬북 블링크 - 영웅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역시 예를 선택했다.

    ‘테스트나 해 보자.’

    현성이 일단 방 안에서 스킬을 사용해 봤다.

    ‘블링크.’

    슈욱!

    현성의 몸이 순식간에 방 끝에서 끝으로 이동했다.

    ‘쓸 만하네. 장거리 이동은 나중에 테스트하자.’

    이제는 공격 스킬을 사야 할 차례였다.

    현성이 열심히 구매창을 뒤졌다.

    화염계 스킬, 풍계 스킬, 빙계 스킬, 뇌전계 스킬…….

    수많은 스킬들이 있었다.

    하지만 마땅히 이거다 할 만한 게 없었다.

    ‘어?’

    그런 현성의 눈에 한 가지 스킬이 들어왔다.

    흑뢰 - 영웅 등급

    -액티브 스킬

    -체력과 마력을 동시에 소모해 목표물에 강력한 흑뢰를 뿌립니다.

    -암흑 속성 계열에 속한 스킬입니다.

    -판매자 : 게스피트

    -판매가 : 29,999,999,999포인트

    베스트 구매평

    바르투크 - 순수하게 마력만 소모하는 스킬보다 위력이 3배는 강력합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체력과 마력을 동시에 소모하기에,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탈진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액티브 스킬북 흑뢰 - 영웅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설명은 상당히 짧았다.

    하지만 베스트 구매평을 본 순간 현성은 결정을 내렸다.

    ‘마력이 낮다는 단점을 체력으로 메울 수 있어.’

    결정적으로 용혈검과 흡혈공으로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현성에게 흑뢰의 단점은 그리 큰 페널티가 되지 않았다.

    ‘사자.’

    예를 선택했다.

    -액티브 스킬북 흑뢰 - 영웅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스킬북은 사자마자 익히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액티브 스킬 흑뢰 –영웅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뭔가 익숙한 문구가 떴다.

    -액티브 스킬 뇌전룡의 숨결 - 유일 영웅 등급이 액티브 스킬 흑뢰 - 영웅 등급을 흡수하였습니다.

    -액티브 스킬 뇌전룡의 숨결 - 유일 영웅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유일 영웅 등급 스킬로 성장한 뇌전룡의 숨결은 뇌전 계열 스킬과 아이템을 흡수해 성장한다.

    암흑 계열이기는 하지만 흑뢰 역시 뇌전 계열 스킬.

    흡수가 가능했다.

    ‘제발 예상대로 변했으면 좋겠는데…….’

    현성이 뇌전룡의 숨결 스킬을 눌렀다.

    뇌전룡의 숨결 - 유일 영웅 등급

    -액티브 스킬북

    -시전자의 체력과 마력을 동시에 소모해 발동합니다.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목표물에 강력한 흑뢰를 뿌립니다.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강력한 흑뢰 보호막이 형성됩니다.

    -모든 스킬과 행동이 흑뢰의 힘을 부여받습니다.

    -뇌전룡의 숨결에 적중당한 적들의 신체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킵니다.

    -쿨타임이 존재하지 않는 스킬입니다.

    -뇌전 계열 스킬과 아이템을 흡수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됐다.’

    뇌전룡의 숨결이 예상대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시전 시 자동으로 발동되는 뇌전 보호막은 현성에게 있어 계륵 같은 존재였다.

    근접 전투만 벌이는 전사 플레이어들에게는 무조건 플러스였지만 근접 전투와 원거리 전투를 동시에 진행하는 현성으로서는 쓸데없이 마력만 잡아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데 이제 그 뇌전 보호막을 현성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던전으로 가 보자.’

    어서 빨리 새롭게 익힌 스킬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 * *

    캬아아아악!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악어 박쥐들이 일제히 현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지지직!

    현성은 몰려드는 악어 박쥐들을 향해 뇌전룡의 숨결을 사용했다.

    악어 박쥐들이 순식간에 떼죽음을 당했다.

    ‘좋은데.’

    업그레이드된 뇌전룡의 숨결은 흡혈공과의 궁합이 아주 좋았다.

    뇌전룡의 숨결 사용으로 소모된 체력과 마력이 흡혈공으로 인해 순식간에 차오른다.

    만약 흑뢰 보호막과 동시에 사용했다면 흡수되는 체력과 마력보다 소모되는 체력과 마력이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흑뢰 보호막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서 체력과 마력 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

    ‘포인트 다 털어서 사용할 만하네.’

    현성에게 남은 포인트는 31억 포인트 정도.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모이는 속도가 조금 떨어졌을 뿐 포인트는 지금도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하루 종일 사냥에 열중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영웅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몬스터 악어 박쥐 5,000마리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악어 박쥐 살해자 - 영웅 등급]

    ‘피곤하네.’

    하루 만에 살해자 칭호를 얻었다.

    이 모든 게 강화된 스킬의 힘이었다.

    ‘이제는 좀 쉬자.’

    체력과 마력은 멀쩡했지만 정신이 지치는 느낌이었다.

    현성이 던전을 나가 새롭게 차린 전자 제품 매장으로 향했다.

    그사이 팔린 물품들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누나, 아직도 집에 안 갔어?”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누나 최현지에게 물었다.

    시간이 늦어 매장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최현지는 홀로 텅 빈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사냥하고 온 거야?”

    “응.”

    “고생했어. 창고에 쌓아 놨으니까 가 봐.”

    “고마워.”

    현성이 창고로 들어가 물품을 보충했다.

    그리고 창고 밖으로 나갔다.

    “같이 집으로 가자.”

    현성의 말에 최현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잠깐 앉아 봐. 너한테 할 말이 있어.”

    “그래서 기다린 거야?”

    현성의 물음에 최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그래?”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처음 전자제품 매장을 차린다고 할 때 의아해하기는 했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는 현성의 말에 더 이상 이에 관련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누나 최현지의 성격상 같은 일을 다시 묻기 위해서 자신을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가 사망 처리됐을 때 벌어진 일에 대해서야.”

    최현지가 싸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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