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 블루 드레이크 (26/225)

┃블루 드레이크

위이이잉!

그때 지휘 통제실에 긴급 알람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신윤아의 물음에 정보 수집 업무를 맡고 있는 협회원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긴급 상황입니다! 서울역에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신윤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서울은 대도시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다.

초동 진압에 실패하면 인명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어떤 몬스터입니까?”

“확인 중입니다. 아, 와이번 무리가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가장 골치 아픈 타입의 몬스터가 나타났다.

와이번은 영웅 등급 몬스터다.

거기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특유의 기동성 때문에 고레벨 파티라고 해도 상대하기가 버겁다.

“서울역이면 TS 길드 담당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현재 다급하게 지원을 요청해 오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TS 길드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탱커들과 근접 딜러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대형 길드다.

문제는 기동성 좋은 와이번의 상대로는 상성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유화 길드에게 출동 명령 내리세요!”

유화 길드는 마법사 계열 플레이어들이 주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대형 길드였다.

“네! 알겠습니다!”

신윤아는 자신도 서울역으로 달려가기 위해 무기를 챙겨 들었다.

위이이잉!

그때 긴급 알람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대전 둔산동에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하피 무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부산 연산동의 오크 차원 게이트에서 오우거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경기도 오산시의 트롤 차원 게이트에서 블루 드레이크가 등장했다는 보고입니다!”

연속적으로 사고가 터지기 시작했다.

밖으로 뛰쳐나가려던 신윤아가 잠시 멈칫했다.

“경기도 오산시의 트롤 차원 게이트라면 혹시 최현성 씨가 작전 중인 지역 아닌가요?”

“맞습니다. 최초 신고자 역시 최현성 씨입니다! 현재 다급하게 지원 요청을 해 오고 있습니다!”

“현 시간부로 오산시에서 벌이던 작전을 모두 취소합니다. 모든 플레이어는 현장을 벗어나라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블루 드레이크는 영웅 등급 몬스터 중에서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존재다.

고레벨 플레이어들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랭커로 이루어진 파티가 출동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랭커들을 다른 지역으로 배치할 여력이 없었다.

대다수의 민간인들이 모여 있는 대도시를 방어해야 할 인력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산시는 소개령이 떨어져, 지켜야 할 민간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일단 후퇴하는 게 맞는 선택이었다.

* * *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10층은 넘어 보이는 건물이 박살 났다.

‘언제 지원을 오는 거야?’

현성이 다급한 표정으로 호출기를 바라보았다.

-현 시간부로 오산시에서 벌이는 모든 작전을 취소합니다! 플레이어분들은 최대한 빨리 현장을 벗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군이 온다는 소식 대신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현성도 지시에 따르고 싶었다.

하지만…….

‘현장을 벗어날 상황이 아니란 말이야.’

크아아아앙!

성난 블루 드레이크가 현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왜 나만 쫓아오고 난리야?’

블루 드레이크는 차원 게이트를 넘은 순간 현성도 바로 몸을 피하려고 했다.

현성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블루 드레이크가 꽃을 탐하는 벌처럼 집요하게 현성만을 노리며 공격을 가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블루 드레이크의 기동성은 현성보다 월등히 빨랐다.

주변 건물을 방패막이 삼아 도주하고는 있지만, 거리가 좁아지면 좁아졌지 멀어지지 않았다.

‘이거나 먹어라.’

현성이 블루 드레이크의 시선을 교란할 목적으로 파이어 스톰 스킬을 사용했다.

꽈아아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오며 블루 드레이크의 주변이 불바다로 변했다.

쿵! 쿵! 쿵!

하지만 뜨거운 화염은 블루 드레이크에게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심지어 시야도 가리지 못했다.

블루 드레이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불길을 가로지르며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블루 드레이크는 불길과 연기로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현성의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을 가했다.

‘도대체 어떻게 쫓아오는 거야?’

현성이 연속적으로 화염 계열 스킬을 사용했다.

소리, 온도, 시야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화르르르륵!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점점 블루 드레이크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싸울 수밖에 없나?’

문제는 승산이 없다는 점이다.

블루 드레이크는 마법사 계열 랭커 플레이어의 스킬을 맨몸으로 받아 낼 정도로 터프한 녀석이다.

랭커에 비해 마력도 낮고 희귀 등급 스킬만 사용하는 현성의 공격에 타격을 받을 리가 없었다.

블루 드레이크 정도의 최상급 영웅 등급 몬스터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랭커로 이루어진 파티가 나서야 한다.

‘그래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현성이 이를 악물었다.

파지지지직!

푸른빛 뇌전이 현성의 몸을 휘감았다.

보유하고 있는 영웅 등급 스킬 중 유일한 전투 스킬인 번개의 숨결을 사용한 것이다.

크아아아아앙!

그 순간 블루 드레이크가 더욱 광분하며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번 해보자.’

파지지직!

흡혈검이 푸른빛 뇌전으로 물들었다.

휘익!

현성이 블루 드레이크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워낙 커다란 체구를 지닌 녀석이기에 현성이 근접 공격할 만한 곳은 다리뿐이었다.

파가가가각!

가죽과 근육을 베는 감촉이 아니었다.

소리도 이상했다.

마치 금속이 갈리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현성이 전력을 다해 휘두른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로 처참했다.

고작 블루 드레이크의 비늘에 작은 흠집이 생겨났을 뿐이다.

쿠웅!

블루 드레이크가 앞발을 현성을 항해 휘둘렀다.

재빨리 몸을 피했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블루 드레이크의 발은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블루 드레이크의 공격을 피하면서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블루 드레이크의 비늘에 작은 흠집만 늘려 놨을 뿐이다.

‘비늘이 너무 튼튼해.’

타격을 입히려면 블루 드레이크의 약점을 찾아야 했다.

‘뱃가죽.’

그나마 약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위.

현성이 블루 드레이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휘익!

꽈아앙!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찍히는 블루 드레이크의 앞발을 피해 슬라이딩하듯 몸을 날렸다.

현성의 몸이 블루 드레이크의 몸 아래로 들어갔다.

파지지직!

그와 동시에 번개의 숨결로 강화된 스킬들을 연속적으로 블루 드레이크의 뱃가죽에 쏟아부었다.

마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이 공격이 실패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 생존 본능 스킬까지 발동됐고, 스킬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피 한 방울 안 나냐?’

비늘이 깨지고 검게 그을리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아무리 봐도 치명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휘익!

그 순간 현성을 향해 블루 드레이크의 앞발이 날아왔다.

현성은 재빨리 몸을 굴려 피했다.

콰지지직!

현성이 몸을 피한 대지가 블루 드레이크의 날카로운 발톱에 의해 베여 나갔다.

‘빠르다.’

공격을 피하는 사이 블루 드레이크는 어느새 몸을 돌려 현성의 앞에 서 있었다.

블루 드레이크는 엄청난 덩치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민첩했다.

파지지직!

엄청난 마력 유동과 함께 블루 드레이크의 뿔이 푸른 뇌전으로 물들었다.

‘피해야.’

현성이 몸을 날린 순간, 푸른 뇌전이 그의 몸에 적중했다.

“아아아악!”

현성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번개의 숨결에 의해 보호받고 있음에도 전신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생존 본능의 발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연히 상승한 정신력으로 인해 스킬 저항력이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 드레이크의 공격을 견딜 수가 없었다.

털썩!

현성이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몸에 걸치고 있던 희귀 등급 방어구는 시커멓게 그슬려 반쯤 부서져 있었다.

흡혈검 역시 까맣게 타들어 간 것은 물론 검신이 반으로 부러져 버렸다.

크르르릉!

쓰러진 사냥감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블루 드레이크가 입을 쩍 하고 벌렸다.

그리고…….

콰직!

사냥감을 입안으로 넣어 잘근잘근 씹은 뒤 삼켜 버렸다.

* * *

‘아아아악!’

전신에 전해져 오는 고통에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비명은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왜?

폐가 찢겨져 나갔고 비명을 지를 목은 절반 이상 잘려 나가 덜렁거리고 있었으니까.

가슴 밑으로의 감각은 아예 느껴지지 않았다.

오른팔은 뼈와 근육이 드러나 있었고 왼팔은 아예 상체에서 뜯겨 나갔다.

현성에게 남은 것은 머리와 가슴 그리고 오른팔이 전부였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자신의 죽음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의 병을 치료할 수도 없다.

아버지가 치료받지 못하면?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는 가족들도 다시금 과거의 지옥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몸이 녹아내렸다.

마력도 조금씩 흩어졌다.

‘더 내려가면 안 돼.’

몸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몸이 빠르게 녹아내리고 마력이 점점 더 빠르게 흩어졌다.

콰직!

현성이 유일하게 남은 오른손에 힘을 주어 반쯤 부러진 흡혈검을 벽에 찔러 넣었다.

주르르륵!

비릿한 냄새가 나는 따듯한 물이 현성의 몸에 쏟아졌다.

쏟아지는 물을 흡혈검이 흡수했다.

흡혈검의 옵션과 흡혈공의 옵션이 동시에 발휘되기 시작했다.

아주 미약한 양이지만 소모된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근육이 찢겨져 나가 뼈까지 드러난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미세하게 움직일 수는 있었다.

입으로 벽을 물어 몸을 고정하고 흡혈검을 더욱 깊게 꽂아 넣었다.

더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

그 물은 현성의 생명수였다.

체력과 마력이 회복됨에 따라 불사의 서가 발동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점점 의식이 또렷해지고 팔에 힘이 들어갔다.

절반 이상 잘려 나가 덜렁거리던 목이 제대로 몸에 붙었다.

하지만 고통은 여전했다.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또한 머리와 오른팔 하나뿐이었다.

불사의 서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다.

‘회복되는 체력과 마력이 너무 적어.’

흡혈검과 흡혈공의 힘으로 체력과 마력을 회복한다.

그렇게 회복된 체력과 마력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불사의 서가 발동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흩어지는 마력과 계속해서 녹아내리는 신체를 복구하기 위해 소모되는 체력도 너무 많았다.

‘블루 드레이크의 위장인가?’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위장 내부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블루 드레이크의 위는 특별했다.

강력한 산이 현성의 몸을 녹였고 위벽들이 지속적으로 현성의 몸에 깃들어 있는 마력을 빼앗아 갔다.

‘더 회복할 수 있을까?’

신체는 복구되고 녹아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력 역시 쌓이고 소모되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영원히 이런 상태가 지속될지도 모른다.

순간 불사의 서가 어쩌면 저주의 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히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로 방치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럴 수는 없어.’

현성이 의지를 굳건히 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입으로 블루 드레이크의 위장을 물어뜯었다.

블루 드레이크의 위장은 현성의 이빨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정도로 질겼다.

하지만 계속해서 씹고 또 씹었다.

그와 함께 오른손에 들린 흡혈검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넓혀야 했다.

그래야만 더 많은 피를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현성은 악착같이 블루 드레이크의 위장에 난 상처를 넓히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검날이 반만 남은 흡혈검뿐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블루 드레이크의 내장으로 직행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현성이 몸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은 오른손에 들린 흡혈검과 이빨뿐이다.

문제는 드레이크의 자체 회복력이 상당히 뛰어난 수준이라는 점이다.

넓혀 놨던 상처는 금세 아물기 일쑤였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블루 드레이크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격렬하게 움직였다.

흡혈검과 이빨에 의지해 버티는 현성으로서는 더욱더 가혹한 환경이었다.

현성의 의지는 계속해서 갈려 나갔다.

순간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죽어서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현성은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참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회복과 소모를 이어 나갔다.

그러던 그때.

작은 변화가 생겼다.

-패시브 스킬 불사의 서 - 유일 영웅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이게 무슨……?’

현성은 아무런 스킬도 습득하지 않았다.

그런데 불사의 서가 성장했다.

‘설마?’

블루 드레이크의 피.

흡혈검과 흡혈공으로 흡수한 블루 드레이크의 피가 이변을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불사의 서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스킬북 흡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작은 희망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점점 마모되어 가던 의지가 다시금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인간의 의지를 꺾는 것은 처참한 현실이 아니다.

희망.

처참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질 때 인간의 의지가 꺾인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인간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현성이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흡혈검을 휘둘렀다.

* * *

전국에서 시작된 영웅 등급 몬스터의 등장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차원 게이트가 열리며 등장한 영웅 등급 몬스터는 1~2마리가 아니었다.

그와 반대로 영웅 등급 몬스터를 처리할 실력을 지닌 플레이어의 숫자는 무척이나 부족했다.

그 결과.

오산시에 자리 잡은 블루 드레이크는 아직도 토벌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차원 게이트가 계속해서 트롤만 토해 내고 있다는 점 하나뿐이었다.

정부에서는 블루 드레이크 토벌을 최하위로 미뤄 두었다.

이미 소개 작전이 끝난 오산시에 등장한 블루 드레이크를 토벌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들이 사방에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최현성 씨가 사망했다고요?”

피로 물든 갑옷을 입고 있던 신윤아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런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죠? 제가 분명히 철수 명령을 내렸잖아요?”

“최현성 씨는 차원 게이트를 봉쇄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블루 드레이크와의 거리도 가장 가까웠습니다. 철수 명령을 듣고 몸을 빼려고 했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젠장!”

신윤아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지원 병력을 보냈다면 현성이 살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 다급한 일들이 사방에 산적해 있었으니까 말이다.

현성 하나 구하자고 수십, 수백만에 달하는 인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내가 직접 갔어야 했나?’

그것 역시 불가능했다.

연달아 사고가 터지면서 신윤아는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싸워야 했다.

그 당시 신윤아가 오산시로 향했다면 서울역에서 열린 차원 게이트로 인한 피해는 지금보다 월등히 커졌을 것이다.

또 신윤아가 오산시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고 해서 협회와 정부가 그걸 허락해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족들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졌나요?”

“직접 사망 통지서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사망한 플레이어의 명단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으니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아!”

신윤아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 * *

‘됐다.’

현성이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터트렸다.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블루 드레이크의 위장 벽에 자신의 몸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뚫은 것이다.

흡혈검과 흡혈공으로 블루 드레이크의 피를 계속해서 빨아 먹었다.

불사의 서는 계속해서 성장하며 조금이라도 더 빠른 회복력을 선물해 주었고, 60분 간격으로 60초씩 발동하는 생존 본능 스킬은 현성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다.

현성은 오른팔과 이빨을 이용해 위장벽을 뚫고 나왔다.

그와 동시에 마력이 흩어지는 현상이 사라졌다.

‘아아아아.’

항상 느껴지던 탈력감도 없어졌다.

‘피는 많이 있어.’

흡혈검과 흡혈공이 흡수할 피는 사방에 널려 있다.

어서 빨리 결손된 신체를 회복시켜야 했다.

그래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푸욱!

현성이 흡혈검을 사방으로 찔러 넣었다.

흡혈검과 흡혈공이 상처가 난 곳의 피를 흡수해 현성의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켰다.

블루 드레이크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현성은 흡혈검을 박아 넣은 상태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 후에는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결손된 신체가 점점 회복되어 갔다.

잃어버린 왼팔과 상체가 서서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너무 느려.’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거기다 블루 드레이크의 회복력이 너무 뛰어나 상처가 금방 아물었다.

현성이 더듬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툭툭툭.

얼마나 헤맸을까?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귀를 기울였다.

툭툭툭.

소리가 들렸다.

현성은 양팔을 이용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기어갔다.

왼팔의 회복은 현성에게 빠른 기동성을 선물해 주었다.

‘찾았다.’

툭툭거리는 진동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혈관이 분명했다.

‘파이어 블레이드.’

그간 회복된 마력을 스킬 하나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검날이 반으로 줄어든 흡혈검이 시뻘건 화염으로 휩싸였다.

서걱!

흡혈검이 블루 드레이크의 혈관을 베어 버렸다.

크아아아앙!

커다란 괴성과 함께 블루 드레이크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현성은 흡혈검을 블루 드레이크의 몸에 박아 넣고 다른 한 손으로는 혈관을 붙잡았다.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흡혈검과 흡혈공은 기꺼운 마음으로 블루 드레이크의 피를 흡수해 현성의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켰다.

그 회복된 체력을 이용해 불사의 서는 현성의 몸을 빠른 속도로 회복시켰다.

피는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상처가 회복되지 않도록 흡혈검을 이용해 계속해서 혈관을 베어 냈다.

현성은 발광하는 블루 드레이크의 몸속에서 버티고 또 버텼다.

체력은 불사의 서가 발동하는 자양분이 되었고, 회복된 마력은 스킬을 사용해 블루 드레이크의 몸에 더 많은 상처를 만들어 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현성은 결손되었던 신체를 모두 복구했다.

마력 역시 충분히 회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블루 드레이크의 발광이 멈췄다.

현재 블루 드레이크의 몸 상태는 완전히 엉망이었다.

수많은 혈액을 빼앗겼고, 현성의 스킬에 의해 내부 장기들이 손상당했다.

블루 드레이크가 아무리 강해도 자신의 몸속에 들어가 있는 적을 공격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적은 자신을 공격할 수 있고 자신은 적을 공격할 수 없는 상황.

아무리 강력한 몬스터라도 이런 상황을 버틸 수는 없었다.

현재 블루 드레이크는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완전히 부활한 현성이 블루 드레이크의 숨통을 끊기 위해 움직였다.

두근두근.

블루 드레이크의 심장이 미약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푸욱!

그런 블루 드레이크의 심장에 흡혈검이 꽂혔다.

좌아아악!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현성은 계속해서 흡혈검을 휘둘렀다.

블루 드레이크의 심장은 완전히 박살 났다.

사아아아악!

숨통이 끊어진 블루 드레이크의 사체가 서서히 분해되었다.

그때부터 이변이 벌어졌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가 마석이나 아이템으로 변해야 할 잔존 마력이 모조리 현성의 몸과 흡혈검으로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이런 현상은 현성도 처음이었다.

-패시브 스킬 불사의 서 - 유일 영웅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불사의 서 - 유일 영웅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불사의 서 - 유일 영웅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후략……

연속적으로 불사의 서가 성장했다는 문구가 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액티브 스킬 번개의 숨결 - 영웅 등급이 강화되었습니다.

-번개의 숨결 등급이 유일 영웅 등급 변경되었습니다.

-번개의 숨결 이름이 뇌전룡의 숨결로 변경되었습니다.

현성이 보유하고 있던 영웅 등급 스킬이 강화된 것이다.

불사의 서는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번개의 숨결에 다가온 변화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등급이 바뀌었고 스킬의 이름까지 변경되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희귀 등급

-단독으로 2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레벨 파괴자 - 희귀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영웅 등급

-단독으로 3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레벨 파괴자 - 영웅 등급]

‘평범한 놈 같지는 않다 했더니…….’

역시나 네임드였다.

업적은 하나가 끝이 아니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영웅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영웅 등급 네임드 몬스터 블루 드레이크 제토스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홀로 블루 드레이크 제토스를 쓰러트린 자 - 영웅 등급]

업적 보상이 끝났다.

‘끝인 건가?’

그때 새로운 알람이 떠올랐다.

-희귀 등급 아이템 흡혈검이 복구되었습니다.

-흡혈검의 등급이 유일 영웅 등급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흡혈검의 이름이 용혈검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반으로 부러져 있던 흡혈검의 검날이 다시 자라났다.

외형도 바뀌었다.

바뀐 건 겉모습만이 아니었다.

희귀 등급이던 흡혈검이 유일 영웅 등급 용혈검으로 재탄생했다.

현성의 스킬뿐만이 아니라 아이템인 흡혈검까지 성장한 것이다.

사아아악!

그때 현성의 몸속으로 미처 들어가지 못한 잔존 마력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잔존 마력들이 하나로 뭉쳐 스킬북으로 변했다.

뇌전룡의 비늘 - 영웅 등급

-패시브 스킬북

-물리 방어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스킬 저항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전격 공격에 대한 내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패시브 스킬북 뇌전룡의 비늘 - 영웅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의 선택은 당연히 예였다.

* * *

“이게 무슨?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블루 드레이크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던 협회 직속 플레이어 신혜선이 당황한 표정으로 동료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게…….”

동료인 박우대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의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기는 박우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블루 드레이크는 계속해서 혼자 발광을 했다.

그러다 점점 움직임이 뜸해지더니 갑자기 죽어 버린 것이다.

“병이라도 걸렸나?”

“드레이크가 병에 걸린다는 소리는 난생처음 듣는데?”

플레이어 협회에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어? 사람이다.”

“뭐?”

“저기 사람이 있다고.”

“진짜네?”

궁수 클래스인 신혜선과 박우대는 시력이 좋았다.

“가 보자.”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영웅 등급 몬스터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웠던 한국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랭커와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활약으로 영웅 등급 차원 게이트를 봉쇄하기 시작한 것이다.

차원 게이트 앞에 구조물과 철문을 만들어 기존의 던전과 동일한 환경을 만들었다.

몬스터들은 차원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던전 안에서 죽임을 당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차원 게이트의 증가도 멈췄다.

더 이상 차원 게이트가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언제 다시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열릴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두두두두!

군용 수송 헬기 한 대가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신윤아는 랭커들과 함께 장비를 점검했다.

그간 미뤄 두고 있었던 블루 드레이크 사냥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냥만 끝나면 휴식이네요.”

랭커 윤인환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높은 레벨과 스텟을 가진 랭커들에게도 이번 2차 대격변을 막아 내는 것은 고난에 가까웠다.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잠시 눈을 붙이는 것을 빼면 쉴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다.

체력과 마력은 회복과 동시에 소모되기 일쑤였다.

이번 블루 드레이크 사냥만 끝나면 당분간 정신없는 출동은 끝이었다.

“그러게요. 이렇게 정신없이 바빴던 적은 난생처음이었어요.”

랭커 강인희가 윤인환의 말을 받았다.

“이제 푹 쉴 수 있겠네요.”

랭커들의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이동 중에 잠을 자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였다.

신윤아는 대화에 끼지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블루 드레이크.

놈에게 협회 직속 플레이어 최현성이 사망했다.

‘그렇게 죽을 사람이 아닌데…….’

시간이 흘러 성장했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플레이어 중 1명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고유 스킬을 가진 인재.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사실 신윤아와 최현성의 인연은 그리 깊지 않다.

만난 횟수도 고작 두 번뿐이다.

그저 같은 고유 스킬의 보유자이기에 조금 친밀감이 느껴졌던 상대일 뿐이다.

하지만 인연이 깊든 깊지 않든, 아는 이의 죽음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들.’

신윤아는 며칠 전 대판 싸운 정부 인사들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플레이어 협회는 정부의 지시를 받는다.

독자적인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든 국가의 부속 기관인 만큼 큰 틀에서는 정부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최현성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정부의 조치는 실로 가관이었다.

최현성의 가족들에게 붙여 두었던 가드들을 철수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최현성이 대여해 갔던 장비들의 손실분을 유가족들에게 청구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기에 그 전에 지급했던 계약금과 연봉에 대한 위약금까지 청구했다.

최현성의 유족들이 상속 포기를 하면 문제는 말끔하게 해결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유족들은 국가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플레이어 최현성의 사망 보상금 역시 받지 못한다.

정부 인사들의 생각 역시 그거였다.

어차피 죽은 사람이다.

나갈 돈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신윤아는 불같이 분노했다.

그리고 대놓고 정부 인사들을 비난하며 한판 붙었다.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놨지만 ‘내가 죽어도 똑같은 짓을 할 생각이냐?’는 신윤아의 물음에 정부 인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죽은 최현성과 달리 살아 있는 신윤아는 국가에서 꼭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중요한 재원이었다.

신윤아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도 100위권 안에 들어가는 랭커 중에 랭커다.

그런 신윤아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정부 인사들은 장비들의 손실분 청구와 계약 불이행 위약금 청구를 취소했다.

그리고 최현성의 유족들에게 다시 가드를 붙이고 사망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신윤아는 자신의 휴식 시간을 쪼개 직접 사망 보상금을 최현성의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직접 무릎을 꿇고 불합리한 일 처리에 대한 사죄를 했다.

아들이 사망했다는 소식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한데 그것도 모자라 위약금 청구라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신윤아가 나섬으로 인해 일단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신윤아의 기분은 무척이나 더러웠다.

단 한 번도 목숨을 건 전장에 뛰어든 적 없는 자들이, 뒤에서 지시만 내리던 자들이,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플레이어들의 희생을 우습게 여기고 이해득실을 따져 망자를 모욕했다.

신윤아는 그들의 역겨운 태도에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마 자제심이 조금만 낮았어도 태연한 얼굴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주둥아리를 나불거리던 정부 인사들의 목을 날려 버렸을지도 모른다.

“급보입니다! 브, 블루 드레이크가 죽었답니다!”

한창 현장을 향해 이동하고 있던 군용 수송 헬기에 황당한 보고가 들어왔다.

“뭐? 다른 랭커 파티가 사냥한 건가?”

“그럴 여유가 있는 팀이 없을 텐데?”

랭커들이 당황하는 사이 추가 보고가 들어왔다.

“블루 드레이크에게 잡아먹혔던 플레이어가 구사일생으로 생존했었다고 합니다! 그 후 몸속에서 내부 장기를 공격해 블루 드레이크를 사냥했다고 합니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던 황당한 이야기에 랭커들이 모두가 당황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그 플레이어의 이름이 뭐죠?”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없었던 신윤아가 입을 열었다.

“협회 직속 플레이어 최현성입니다!”

보고를 들은 신윤아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 * *

‘내 몰골이 처참하기는 했구나.’

현성이 전신에 물을 뿌려 몸에 눌어붙은 핏자국을 지워 냈다.

피가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상처 하나 없네.’

현성이 말끔하게 씻긴 자신의 몸을 보며 생각했다.

피부가 티끌 하나 없이 말끔했다.

상처나 흉터 하나 없는 몸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피부를 보는 것 같았다.

머리와 오른팔만 남아 악착같이 살아남았던 기억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현성은 자신을 발견한 플레이어들이 건네주는 모포를 받아 몸을 감쌌다.

현성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들고 있는 물건이라고는 용혈검 한 자루뿐이었다.

“저기 혹시 스마트폰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가족들에게 전화 좀 하려고요.”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얼마든 빌려드려야죠.”

신혜선이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현성은 재빨리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엄마, 저 현성이에요.”

최현성의 말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혀, 현성아, 정말 너 맞니? 내 아들 최현성 맞아?

“예, 엄마 아들 최현성 맞아요.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전 멀쩡히 잘 지내고 있었는데 사망자 명단에 제 이름이 올라가 있더라고요. 저도 방금 알고 깜짝 놀라서 전화드린 거예요. 스마트폰이 부서졌는데 워낙 바빠서 연락도 못 드렸어요. 죄송해요. 누나는 잘 있죠? 아버지도 괜찮으시죠?”

-흑흑흑.

수화기에서 어머니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울고 그러세요. 저 멀쩡하다니까요? 요즘 워낙 세상이 어수선하잖아요. 그래서 작은 착오가 생긴 것뿐이에요.”

현성의 말에도 어머니의 울음은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너 정말 멀쩡한 것 맞지?

“네, 맞아요. 착오가 있었다니까요. 저 그동안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다녔어요.”

-고생 많았다. 그리고 고마워 아들, 이렇게 살아 있어 줘서. 엄마가 정말 고마워.

“착오 때문이었다니까요.”

어머니의 흐느끼는 목소리에 현성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어머니께 알리고 싶지 않았다.

진실을 알게 되면 어머니가 자신보다 더 괴로워하실 테니까.

자신이 겪은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실 테니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플레이어 협회에서 사람이 찾아왔었어. 그리고 전사 보상금도 지급해 주셨고. 대표로 오신 분이 죄송하고 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나한테 무릎까지 꿇고 사죄하시더라. 착오가 아니잖아. 우리 아들, 정말 죽을 뻔했잖아. 정말 힘들었잖아. 엄마한테까지 숨길 필요 없어. 고생 많았어, 우리 아들. 그리고 살아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

어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현성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위로받고 싶었다.

누군가가 그 힘든 시간을 견딘 걸 칭찬해 줬으면 했다.

현성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와의 통화를 이어 나갔다.

* * *

통화가 끝났다.

눈시울이 따끔거렸다.

“여기…….”

신혜선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신혜선의 눈시울도 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남녀가 눈시울이 붉히며 손수건을 주고받는 장면은 묘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현성과 신혜선 모두 그 점은 인식하지 못했다.

“휴우!”

긴 한숨을 내뱉은 현성이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

그리고 애써 밝은 생각을 떠올렸다.

‘일단 흡혈검이 어떻게 변했는지 좀 보자.’

이제 죽다 살아나 블루 드레이크 제토스를 쓰러트린 대가를 확인할 시간이었다.

용혈검 - 유일 영웅 등급 - 귀속 아이템

-공격한 대상의 피를 흡혈해 사용자의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킨다.

-용종의 피를 흡수할 경우 공격력이 증가하고 체력과 마력 회복 속도가 대폭 증가한다.

-용종의 피를 지속적으로 흡수할 경우 성장이 가능합니다.

-블루 드레이크 제토스의 마력과 플레이어 최현성의 마력이 뒤섞여 본래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플레이어 최현성 외의 인물이 사용할 경우 옵션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 최현성의 의지에 따라 하루 1번 용혈검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귀속 아이템?’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가 추가되었다.

옵션도 엄청나게 늘었다.

첫 번째 옵션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용혈검이라는 이름을 듣고 혹시 흡혈검이던 시절의 옵션이 삭제되지는 않았을까 하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옵션은 플러스가 되면 되었지 마이너스가 되는 능력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옵션.

용혈검의 성장이 가능했다.

이 이야기는 유일 영웅 등급인 용혈검이 전설 등급 아이템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거기다 마지막 옵션으로 인해 용혈검을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을 걱정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무기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사실 흡혈검의 옵션은 무척 좋았다.

공격적인 면에서 더 좋고 다양한 옵션을 가진 무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흡혈공 그리고 불사의 서와 맞물리는 시너지 효과는 흡혈검을 따라갈 무기가 없었다.

하지만 훗날 영웅 등급 무기로 교체를 고려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무구와 스킬이 조화를 이룬다고 해도 기본적인 공격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또 이미 한 번 경험했다시피 상위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할수록 흡혈검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상처를 내야 피를 흡혈할 수 있다.

하지만 희귀 등급 무구로 영웅 등급 몬스터에게 타격을 입히기는 쉽지 않았다.

설사 낼 수 있다고 해도 더 많은 수고를 들여야 했다.

한데 이제 그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귀속 아이템으로 변한 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었다. 어차피 용혈검을 팔아먹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뇌전룡의 숨결도 봐야지.’

정성우를 쓰러트리고 얻은 영웅 등급 스킬 번개의 숨결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했다.

뇌전룡의 숨결 - 유일 영웅 등급

-액티브 스킬북

-시전자 주변에 강력한 뇌전 보호막이 형성됩니다.

-모든 스킬과 행동이 뇌전의 힘을 부여받습니다.

-뇌전룡의 숨결에 적중당한 적들의 신체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킵니다.

-쿨타임이 존재하지 않는 스킬입니다.

-뇌전 계열 스킬과 아이템을 흡수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추가된 옵션은 고작 하나.

하지만 원체 많은 옵션을 지녔던 스킬이라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저 성장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기쁠 뿐이었다.

이제 남은 건 업적 보상뿐이었다.

최초의 레벨 파괴자 - 희귀 등급

-모든 스텟 10 증가.

최초의 레벨 파괴자 - 영웅 등급

-모든 스텟 20 증가.

‘역시.’

최초 칭호가 붙은 일반 등급 업적의 경우 모든 스텟 5 증가 옵션이 붙었다.

영웅 등급의 경우는 모든 스텟 20 증가였고, 전설 등급의 경우는 모든 스텟 40 증가였다.

2배씩 늘어난다는 예상대로 희귀 등급 최초 업적은 모든 스텟 10 증가 옵션이 붙어 있었다.

홀로 블루 드레이크 제토스를 쓰러트린 자 - 영웅 등급

-마력 스텟 4 증가.

고작 1스텟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영웅 등급 몬스터라고 희귀 등급이었던 삼두표보다는 스텟 증가 폭이 컸다.

‘이건 보너스 같은 거니까.’

진짜 중요한 보상은 이미 앞서서 모두 받았다.

‘그런데 옷은 도대체 언제 가져다주는 거야?’

벌건 대낮에 여자 앞에서 알몸으로 모포 한 장 걸치고 있다 보니 상당히 민망했다.

‘이제 혼란은 끝난 건가?’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아 블루 드레이크를 쓰러트렸는지에 대한 보고를 한 뒤 대충 현재 상황에 대해 전해 들었다.

2차 대격변은 현재 거의 진압이 완료된 상태였다.

더 이상 격한 전투는 없을 것이다.

‘집에 가고 싶다.’

가족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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