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 최초의 반란자 (24/225)
  • ┃최초의 반란자

    “집안 형편이 많이 힘드셨나 보네요.”

    “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시거든요. 병원비 버느라 가족들 모두 고생을 많이 했죠.”

    현성의 말에 다른 이들이 하나둘 편하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현성과 비상 대기조원들 사이의 벽이 조금 허물어진 느낌이랄까?

    “사실 상부에서 현성 씨 잘 챙겨 달라고 비공식적인 지시가 내려왔었거든요.”

    “그래요?”

    현성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예, 그래서 우리는 현성 씨가 협회 고위 간부의 아드님이신 줄 알았습니다.”

    ‘이 사람들 날 금수저로 오해했었구먼.’

    약간 거리감이 느껴진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희귀 등급 장비를 걸치고 다니다 보니 이런 오해도 받는 모양이다.

    “신윤아 씨께서 신경 써 주신 모양이네요.”

    “신윤아 대장님을 아세요?”

    서태철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절 플레이어 협회로 스카우트하신 분이거든요.”

    “이야, 정말 특급 유망주이신 모양이네요, 신윤아 대장님이 직접 스카우트하셨으면.”

    신윤아의 이름이 나오자 비상 대기조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부하 직원들에게 꽤 신망이 좋으신가 보네.’

    현성은 신윤아를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나 이야기를 나눴을까?

    비상 대기 조원들이 하나둘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자기 전에 물건 채워 넣어야지.’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저기…….”

    그때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이수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수영이 다시금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예?”

    현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이수영을 바라보았다.

    감사 인사는 아까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죄송하다니?

    “제가 혼자 현성 씨를 오해해서 버릇없이 굴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현성의 물음에 이수영은 어제 자신의 태도가 버릇없었다면서 다시금 사과를 해 왔다.

    그리고 대략 사정을 설명했다.

    비공식적인 지시.

    희귀 등급 장비.

    어려 보이는 외모.

    평균 나이보다 높은 레벨.

    고위 간부의 아들이 운이 좋아 플레이어로 각성했고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레벨 업을 한 뒤, 실전 훈련을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생각해 버릇없이 굴었다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설명을 마친 이수영이 다시금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설사 제가 수영 씨가 착각한 그런 조건의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런 태도는 잘못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수영 씨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니지 않습니까?”

    “네, 그렇죠. 전에 출동했을 때 만난 사람 때문에 제가 괜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네요.”

    “전에 어떤 일이 있으셨기에……?”

    현성의 물음에 이수영이 사정을 설명했다.

    대충 요약하자면 협회 고위 간부의 아들이 제 잘난 맛에 설치다 조원들이 큰 위기를 겪었다는 내용이었다.

    한데 위기를 자처한 고위 간부의 아들은 처벌도 받지 않고 오히려 조원들이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같이 출동하는 만큼 제가 기선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알겠습니다. 괜찮으니까 그만 사과하셔도 됩니다. 사실 저에게 큰 잘못을 하신 것도 아니고요.”

    조금 까칠하게 나왔다고 해서 죄를 진 것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현성은 이수영의 태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냥 성격 까칠한 동료 정도로 생각하고 신경을 꺼 버렸으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이수영이 다시금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본성격은 순한가 보네.’

    혹시 자신의 말에 현성이 상처받았을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상당히 여린 것 같았다.

    “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답해 주기 곤란하시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답해 드릴게요.”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확답부터 나왔다.

    ‘호구 스타일인데.’

    이수영의 행동에서 진한 호구의 향기가 느껴졌다.

    “조금 곤란하실 거 같은데……. 이수영 씨의 스킬에 관련된 질문이라서요.”

    “그러실 줄 알았어요. 사실 질문 많이 받았거든요. 특별히 숨길 일은 아니니까 말씀드릴게요. 제 스킬은…….”

    한마디를 물었는데 열 마디가 넘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수영의 스킬은 수인화.

    눈표범으로 변해 힘, 민첩, 체력을 상승시키는 액티브 스킬이었다.

    공격력도 높고 방어력도 높아 보조 탱커 겸 딜러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단점은 낮은 마력과 정신력 스텟.

    정신력 스텟이 낮아 마법 공격에 취약하다는 약점까지 줄줄 이야기했다.

    ‘그런 것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는데.’

    오히려 현성이 혀를 끌끌 찰 정도였다.

    “혹시 수인화를 하면 변화된 모습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나요?”

    신체 사이즈가 갑자기 변한다.

    당연히 전투를 하는 데 어색한 점이 많을 것이다.

    “아뇨. 처음 수인화했을 때도 그런 적은 없었어요. 스킬이라서 그런지 없던 꼬리까지 너무 자연스럽게 움직이더라고요. 특히 전투 같은 경우는 본능에 각인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굳이 전투 스킬을 배우지 않아도 몸이 먼저 움직이더라고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로 중요한 정보도 아닌데요, 뭐.”

    이수영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전 이만.”

    현성이 살짝 고개를 숙인 뒤 화장실로 향했다.

    이수영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미소를 지으며 대기실로 돌아갔다.

    ‘웨어 울프 킹으로 변했을 때 적응 시간이 크게 필요하지는 않겠네.’

    스킬과 소모형 아이템인 만큼 효과가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비슷할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60분밖에 사용하지 못하는데, 적응 시간이 있으면 곤란하지.’

    궁금한 점을 알아낸 현성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판매된 물품들을 채워 넣었다.

    * * *

    ‘할 만하네.’

    플레이어 협회 지부에서 자는 잠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다.

    아니, 자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면 그 정도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사건도 없고.’

    첫날 신고식은 제대로 치렀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출동 없는 대기의 연속.

    설사 출동을 한다고 해도 수당까지 따로 받다 보니 나쁠 게 없었다.

    결정적으로 다른 조원들은 긴급 출동 상황에서 몬스터를 잡아도 마석과 아이템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현성은 다르다.

    레벨에 구애받지 않다 보니 얼마든지 마석과 아이템을 구할 수 있었다.

    ‘출동이 나쁜 것도 아니야.’

    출동 시에는 규격 외의 몬스터를 만날 수 있다.

    현성에게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규격 외의 몬스터는 아이템을 잘 줬다.

    사실 던전 레벨에 맞지 않는 규격 외 몬스터는 특이 개체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 특이 개체들은 특별한 아이템을 준다.

    하지만 아이템 드롭율은 제로나 마찬가지였다.

    안전을 위해 월등히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들이 찾아와 규격 외 몬스터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이템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현성은 다르다.

    규격 외 몬스터를 사냥해도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당연히 좋은 아이템을 습득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

    ‘배터리랑 전자 제품 판매도 순조롭고…….’

    처음보다 폭발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꾸준히 구매가 이어지고 있었다.

    ‘영웅 등급 스킬 하나 더 마련해야지.’

    스킬은 등급이 최고다.

    희귀 등급 스킬 수십 개보다 영웅 등급 스킬 하나가 더 효과가 좋다.

    현성은 불어난 포인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냥과 장사를 통해 모은 포인트가 어느새 60억을 넘어서고 있었다.

    플레이어 협회에서 받는 보수와 마석 판매 대금으로는 일반 등급과 희귀 등급 스킬을 구매했다.

    그 결과 현성은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포인트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모으려면 사냥을 해야지.’

    현성이 던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전처럼 출입구 관리인을 의식할 필요는 없었다.

    현성의 신분증을 본 출입구 관리인들은 암행어사라도 만난 듯 화들짝 놀랐으니까 말이다.

    현성이 던전을 질주하며 몬스터들을 끌어모았다.

    ‘파이어 스톰.’

    화르르르륵!

    광역 스킬 한 번에 몬스터들이 떼 몰살을 당했다.

    ‘역시 사기를 잘했어.’

    파이어 스톰은 현금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구매한 희귀 등급 광역기였다.

    그만큼 효과가 좋았다.

    중 레벨 구간으로 가면 효율이 떨어지겠지만 저레벨 던전을 돌고 있는 현성 입장에서 파이어 스톰은 최고의 사기 스킬이었다.

    몬스터들을 쓸어버린 현성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휘익!

    그때 무언가가 현성을 향해 날아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왼팔을 들어 올렸다.

    서걱!

    희귀 등급 방패가 종잇장처럼 베여 나갔다.

    방패를 베어 낸 무언가가 현성의 왼팔을 반쯤 베고 지나갔다.

    “큭!”

    현성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왼팔의 뼈와 근육이 반쯤 잘려 나가 있었다.

    “감이 좋군.”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상대를 응시했다.

    대여 장비로 무장한 어색한 차림의 중년인이 그를 기습한 장본인이었다.

    문제는 현성이 상대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내 얼굴도 모르나? 하긴 그럴 수도 있지.”

    중년인이 미소를 지으며 손목을 까닥였다.

    좌악!

    검에 붙어 있던 현성의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중년인의 손에 들린 검은 현성도 과거 사용한 적 있던 대여 업체의 보급품이었다.

    일반 등급 아이템으로, 희귀 등급 방패를 가를 만한 예기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검이다.

    한데 그 일반 등급의 검이 희귀 등급의 방패를 갈랐다.

    “당신 누구야?”

    현성이 적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한가? 하긴 누구 손에 죽는지는 알고 죽어야지. 난 정성우라고 하네. 얼마 전까지 서우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였지.”

    중년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왜 날……?”

    “단순한 화풀이라고 생각하게. 날 이렇게 만든 자들 중에서 내가 복수할 수 있는 대상이 최현성이라는 인간 하나뿐이거든.”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잘못한 죗값을 받은 주제에 복수는 무슨 복수라는 말인가.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것 같아?”

    현성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괜히 목소리 높여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어. 소리와 시야를 차단하는 아이템을 미리 설치해 뒀으니까. 그리고 내 차림을 보게. 내가 어딜 봐서 고레벨 플레이어 같은가? 50레벨도 채 되지 않는 초보자 플레이어처럼 보이지 않나?”

    “플레이어 신분증을 위조했나?”

    “상당한 중범죄지. 하지만 오늘 안에 이 나라를 뜰 생각이니 걱정해 줄 필요는 없네. 타국에서 정성우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면 되거든. 사실 처음에는 자네 가족을 손봐 줄 생각이었네. 자네도 나처럼 아끼던 걸 잃는 고통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거든. 하지만 아쉽게도 대비가 되어 있더군.”

    “미친놈!”

    “가드들을 뚫고 자네 가족을 죽이는 건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을 빠져나가기가 힘들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던전 안으로 들어간 자네를 목표로 삼았다네. 시체만 잘 처리하면 실종 사실을 며칠 정도는 감출 수 있으니까 말이야. 호오, 자네 상처 회복이 꽤 빠르군. 꽤 좋은 스킬을 익힌 모양이야.”

    대화를 나누는 사이 현성의 팔은 거의 완치된 상태였다.

    불사의 서가 가진 회복 능력의 힘이었다.

    “뭐, 일부러 말을 걸어서 상처 회복 시간 벌려고 한 건 알고 있었네. 그런데 설마 자네…… 상처가 다 나으면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성우의 손에 들린 검이 현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죽는다.’

    죽음의 위기를 느낀 순간 스킬 생존 본능이 발휘되었다.

    현성의 스텟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파강!

    정성우의 검과 현성의 흡혈검이 충돌했다.

    “크윽!”

    현성이 힘없이 밀려 났다.

    200레벨을 넘어선 스텟도 정성우와 비교하면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대단하군. 설마 막을 줄은 몰랐어. 방금 전처럼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게 왼팔을 완전히 베어 낼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정성우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생존 본능 스킬로 스텟이 강화되었지만 정성우의 움직임은 차원이 달랐다.

    현성이 아공간에서 웨어 울프 킹의 심장을 꺼내 입으로 넣었다.

    이렇게 빨리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우드드득!

    순식간에 현성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거대한 웨어 울프로 화했다.

    “오호, 변신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군. 스텟이 꽤 늘어났겠는데?”

    정성우는 굳이 현성의 아이템 섭취를 방해하지 않았다.

    마치 해 볼 게 있으면 더 해 보라는 듯 느긋하게 기다려 주기까지 했다.

    먼저 몸을 날린 건 현성이었다.

    하지만 목표물은 정성우가 아니었다.

    현성이 몸을 날린 방향은 차원 게이트가 있는 던전 출구 쪽이었다.

    꽈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온갖 스킬을 총동원해 정성우의 시야를 가렸다.

    던전이 불바다로 변했고, 뿌연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정성우의 몸이 순식간에 현성과 가까워졌다.

    현성이 사력을 다해 스킬을 쏟아 냈지만 정성우는 유유히 몸을 피하거나 검을 휘둘러 현성의 스킬을 베어 버렸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크아아아앙!”

    현성이 포효를 터트리며 손톱을 휘둘렀다.

    이수영의 말처럼 본능에 따라 휘두른 일격이었다.

    파강!

    정성우의 검과 현성의 손톱이 충돌했다.

    ‘충분히 할 만해.’

    생존 본능과 웨어 울프 킹의 심장으로 인한 버프 효과 덕분이었다.

    문제는 생존 본능의 발동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성은 도주로를 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잘한 공격은 회복 능력을 믿고 몸으로 맞아 주며 맹공을 가했다.

    “정말 대단하군. 그런데 자네 내 별명이 뭔 줄 아나?”

    정성우가 느긋한 표정으로 현성에게 물었다.

    “바로 뇌검이라네.”

    파지지지직!

    정성우의 몸이 푸른 스파크로 물들었다.

    우우우웅!

    강력한 뇌전이 현성의 몸을 뒤덮었다.

    “크윽!”

    정신력이 상승하며 스킬 저항력이 늘어났다.

    하지만 정성우가 내뿜는 뇌전은 현성의 스킬 저항력을 뚫고 강한 타격을 입혔다.

    일격에 몸이 가루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뇌전에 휩싸인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서걱!

    정성우의 손에 들린 검이 현성의 왼팔을 수수깡처럼 베어 냈다.

    “정말 아깝군. 그때 순순히 내 말을 들었다면 상당히 중하게 썼을 텐데. 이 정도라면 1천억이 아니라 수천억을 줘도 아깝지가 않겠어.”

    “으아아아아아!”

    현성이 노성을 터트리며 몸을 날렸다.

    서걱!

    정성우가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현성의 양다리가 말끔하게 베어졌다.

    털썩!

    현성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사지 중 남은 건 오른팔 하나밖에 없었다.

    오른팔도 그다지 온전하지는 않았다.

    몸을 휘감고 있는 뇌전 때문이었다.

    “혹시 20레벨의 법칙을 깰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생각이 있나? 아니라면 자네가 이렇게 빨리 강해진 방법이라도 좋네.”

    “개소리 지껄이지 마!”

    “말해 준다면 목숨은 살려 주지.”

    “내가 네 말을 믿을 거 같아?”

    “하긴 나라도 못 믿겠지. 하지만 편하게 죽을 수는 있게 해 주겠네. 이건 진심이니까 믿어도 좋아.”

    정성우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현성의 몸을 검으로 헤집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현성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정성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사실 고문당하는 입장에서 회복력이 좋은 건 그다지 장점이 되지 않는다네. 반대로 단점이 되지. 고통은 고통대로 느끼는데 고문하는 사람은 아무런 부담이 없거든. 특히 나 같은 초보자의 경우는 더욱 부담이 없지.”

    계속해서 고문이 이어졌다.

    고통스러웠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오죽하면 차라리 고유 스킬의 진실을 밝히고 살려 달라고 말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성은 참았다.

    버티고 또 버텼다.

    고통을 느끼면 느낄수록 장성우에 대한 분노를 키웠고, 증오를 끌어 올렸다.

    ‘쓰레기 같은 놈. 날 찾아온 건 복수 때문이 아니었어.’

    현성을 찾아온 목적은 20레벨의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차라리 날 죽여! 난 절대 입을 열 생각이 없으니까!”

    현성이 발악하듯 외쳤다.

    “음, 정말 그런 것 같군. 죽으면 죽었지 나에게 이득이 될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아.”

    정성우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대략 1시간 가까이 고문을 가했는데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시체 처리할 시간도 필요하니. 자네 말처럼 이쯤에서 깔끔하게 보내 주지.”

    서걱!

    정성우가 검을 휘둘러 현성의 목을 잘라 버렸다.

    툭!

    늑대의 형상을 한 현성의 머리와 몸통이 완전히 분리되었다.

    “다른 조각도 모아야겠군.”

    정성우가 몸을 돌렸다.

    조각난 사지를 모아 말끔하게 재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다.

    콰직!

    그때 무언가가 정성우의 심장을 관통했다.

    “어?”

    정성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 어름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고문했던 웨어 울프의 팔이었다.

    “커억! 이, 이게 무슨…….”

    정성우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평소 착용하고 다니던 영웅 등급 장비를 입고 있었다면 이 정도 공격쯤은 막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성우가 차고 있는 장비는 초보자용 대여 장비였다.

    정성우는 목을 잃은 웨어 울프의 팔이 몸속의 내장을 휘저으며 자신의 몸을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그 뒤에 보인 광경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몸통에 붙어 있던 오른팔이 바닥을 기어간 것이다.

    그 후에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머리를 집어 자신의 목에 붙였다.

    사아아악!

    그 순간 분리되어 있던 웨어 울프의 머리와 몸이 다시금 하나가 되었다.

    ‘이게 무슨 개×같은…….’

    점점 시야가 희미해졌다.

    정성우는 자신이 이런 곳에서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성우의 죽음은 현실이었다.

    심장이 파괴당한 정성우의 몸이 점점 싸늘하게 식어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시체로 변했다.

    우드득!

    웨어 울프 킹으로 변했던 현성의 몸이 다시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크윽!”

    현성이 고통 어린 비명을 토해 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었다.

    현성은 힘겹게 바닥을 기어가 떨어진 팔다리를 다시금 몸에 붙였다.

    하나가 된 몸이 빠르게 재생을 시작했다.

    “살았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불사의 서 스킬 덕분에 살아남았다.

    사실 아슬아슬했다.

    1시간이 흘러 생존 본능의 쿨타임이 다시 발동하지 않았다면 기습을 했더라도 실패했을 확률이 높았다.

    또 쿨타임 효과가 발동하기 전에 웨어 울프 킹의 심장 효과가 풀려 인간의 모습으로 화했다면 결코 이런 반전을 이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현성의 기본 스텟은 결코 낮지 않다.

    거기에 웨어 울프 킹의 심장으로 인한 버프 효과와 생존 본능 스킬의 발동으로 현성의 기본 스텟은 순간적으로 300레벨 플레이어를 넘어섰다.

    결정적으로 정성우가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누가 목이 잘린 몸뚱어리가 움직일 거라고 생각을 하겠는가?

    현성도 불사의 서에 이런 효능까지 있는지는 몰랐다.

    신경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음에도 몸통이 머리의 명령을 듣고 움직였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머리와 심장이 하나처럼 느껴졌다.

    상대의 방심을 노린 기습.

    단 한 번뿐인 기회였다.

    현성은 최후의 도박 수를 던졌다.

    그리고 그 도박은 멋지게 성공했다.

    만약 도박이 실패했다면?

    생존 본능 스킬과 웨어 울프 킹의 아이템 효과가 어긋났다면?

    현성은 꼼짝없이 이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아무리 불사의 서가 있다고 해도 재로 변해 버린 육신을 부활시킬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첫 살인에 대한 충격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진한 아쉬움만이 존재했다.

    할 수만 있었다면 정성우에게 자신이 겪은 고통을 백배 천배로 되갚아 준 뒤 죽였을 것이다.

    ‘외부에 알릴 수는 없어.’

    정성우는 꽤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던 인물이다.

    거기다 방금 전의 대화로 미루어 볼 때 외국에도 협력자가 있는 모양이다.

    괜히 정성우의 죽음을 알려 그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할 필요는 없었다.

    ‘플레이어 협회를 완전히 믿을 수도 없어.’

    플레이어 협회와 신윤아는 현성의 레벨을 100레벨 중반 정도로 짐작하고 있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놀랄 만한 성장이었다.

    한데 현성이 초창기 플레이어인 정성우를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것이다.

    정성우는 랭커였다.

    아무리 운과 방심이 따랐다고 해도 랭커를 죽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기본적인 스펙이 갖춰져야 했다.

    ‘괜히 내 비밀을 밝힐 필요는 없어.’

    정성우의 죽음은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는 게 좋았다.

    ‘파이어볼.’

    현성이 스킬을 시전한 뒤 마력을 있는 대로 쏟아부었다.

    스킬의 위력을 최대한 높여 정성우의 시체를 한 줌의 재로 만들 생각이었다.

    사아아아악!

    ‘어?’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정성우의 시체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마력이 더욱 진하게 뿜어져 나올수록 정성우의 시체가 점점 사라져 갔다.

    ‘몬스터만 가능한 거 아니었어?’

    현성이 기겁을 하며 놀랐다.

    몬스터를 죽이면 마석이나 아이템이 나온다.

    한데 설마 플레이어를 죽여도 그런 일이 가능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성우가 나를 죽였다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겠지만…….’

    현성은 1레벨이다.

    반면 정성우는 랭커의 반열에 오른 괴물.

    당연히 아무런 아이템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툭!

    정성우의 시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한 권의 스킬북이었다.

    번개의 숨결 - 영웅 등급

    -액티브 스킬북

    -시전자 주변에 강력한 뇌전 보호막이 형성됩니다.

    -모든 스킬과 행동이 뇌전의 힘을 부여받습니다.

    -번개의 숨결에 적중당한 적들의 신체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킵니다.

    -쿨타임이 존재하지 않는 스킬입니다.

    -액티브 스킬북 번개의 숨결 - 영웅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익혀야지.’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번개의 숨결.’

    현성이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파지지지직!

    현성의 몸이 푸른색 스파크로 뒤덮였다.

    ‘매직 미사일.’

    시험 삼아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놀랍게도 매직 미사일이 푸른 뇌전으로 휩싸여 있었다.

    휘익!

    꽈아아앙!

    위력 테스트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일반 등급 스킬인 매직 미사일의 파괴력이 월등히 올라갔다.

    ‘다른 스킬에 버프를 걸어 주는 셈이잖아.’

    실로 엄청난 스킬이었다.

    ‘역시 수준이 달라.’

    현성이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최현성

    플레이어 레벨 : 1

    메인 직업 : 없음

    칭호 : '[뿔 토끼 학살자 - 전설 등급] [블러드 폭스 학살자 - 전설 등급] [최초의 영웅 등급 업적 달성자 - 영웅 등급] [최초의 전설 등급 업적 달성자 - 전설 등급] [흡혈 박쥐 학살자 - 전설 등급] [핏빛 쥐 학살자 - 전설 등급] [거대 개미 학살자 - 전설 등급] [푸른 도마뱀 학살자 - 전설 등급] [최초의 레벨 파괴자 - 일반 등급] [붉은 갈기 늑대 학살자 - 전설 등급] [토드맨 학살자 - 전설 등급] ……중략…… [최초의 반란자 – 일반 등급] [최초의 반란자 – 희귀 등급] [최초의 반란자 – 영웅 등급]

    스텟 : '[힘 200 +124] [민첩 200 +124] [체력 200 +127] [마력 200 +124] [정신력 200 + 124]

    미분배 스텟 : [0]

    고유 능력 : [판매] [구매]

    액티브 스킬 : '[힐 - 일반 등급] [파이어볼 - 일반 등급] [도발 - 일반 등급] [매직 미사일 - 일반 등급] [실드 - 일반 등급] [은밀한 기습 - 일반 등급] [은신 - 일반 등급] [실드 스턴 - 일반 등급] [큐어 - 일반 등급] [아공간 - 희귀 등급] ……중략…… [번개의 숨결 - 영웅 등급]

    패시브 스킬 : '[단단한 몸 - 일반 등급] [강인한 체력 - 일반 등급] [삼재심법 - 일반 등급] [초급 검술 지식 - 일반 등급] [초급 마법 지식 - 일반 등급] [초급 방패술 지식 - 일반 등급] [스톤 바디 - 일반 등급] [불사의 서 - 유일 영웅 등급] [생존 본능 - 영웅 등급] ……후략……

    ‘어라?’

    뭔가 이상했다.

    최초의 반란자라는 칭호가 3개나 생겨났고 스텟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현성이 이전 메시지를 호출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일반 등급

    -단독으로 1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반란자 - 일반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희귀 등급

    -단독으로 2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반란자 - 희귀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영웅 등급

    -단독으로 3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반란자 - 영웅 등급]

    ‘플레이어를 상대로도 똑같이 적용되는 거였어?’

    현성은 삼두표를 쓰러트리고 ‘최초의 레벨 파괴자 – 일반 등급’ 칭호를 얻었다.

    한데 이게 플레이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정성우 쓰러트린 대가로 무려 3개의 최초 업적을 달성했다.

    칭호 효과로 늘어난 총스텟이 무려 175였다.

    비록 웨어 울프 킹의 심장을 사용한 페널티로 힘, 민첩, 체력 스텟이 줄어들었지만, 그건 금방 복구할 수 있다.

    한순간 엄청나게 성장한 것이다.

    ‘지금이라면 정성우를 이길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불가능해.’

    이 정도 성장했다고 랭커를 이길 수는 없다.

    백이면 백 무참하게 패배할 게 분명했다.

    ‘더 강해져야 해.’

    강해질 수 있는 기반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이번 승리로 스텟 상승은 물론 영웅 등급 스킬인 번개의 숨결 역시 손에 넣었다.

    공격형 스킬인 번개의 숨결은 현성의 전력을 엄청나게 올려 주었다.

    다만 단점이 하나 있다면…….

    ‘마력 소모가 너무 커.’

    영웅 등급 스킬답게 마력 소모 속도가 무지막지했다.

    거기다 다른 스킬까지 함께 사용하면 마력 소모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아마 정성우에게는 그 단점이 별로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전사 타입의 플레이어다.

    보유하고 있는 스킬 자체의 마력 소모량이 적다.

    하지만 현성은 다르다.

    ‘번개의 숨결을 쓴 상태에서 원거리 스킬은 자제해야겠어.’

    자칫 잘못하면 순식간에 마력이 고갈되어 버릴 판이었다.

    현성은 스킬을 해지하고 정성우가 남긴 소지품을 살폈다.

    위조된 플레이어 신분증과 대여용 장비를 제외하면 특별한 건 하나도 없었다.

    현성은 정성우의 소지품을 말끔하게 태워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던전을 빠져나왔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다.

    현성에게는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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