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 플레이어 협회 (21/225)

┃플레이어 협회 (2)

양아치들을 감시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건지 자신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사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적이 뭐지?’

현성은 이들이 자신을 목표로 삼은 이유가 뭔지 그리고 신윤아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고유 스킬을 들킨 건 아니야.’

고유 스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는 현성 혼자뿐이다.

‘서우 길드와 삼두표 때문인가?’

현성과 트러블을 일으킨 조직은 서우 길드뿐이다.

신윤아와의 접촉은 삼두표를 처리했을 때뿐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서우 길드가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신윤아가 자신이 삼두표를 처리했냐고 물어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강해져야 해.’

그게 가장 중요했다.

또 강해지기 전까지 방패막이가 될 곳도 필요했다.

이번 위험은 자신에게 직접 찾아왔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가족들을 타깃으로 일을 벌일 가능성도 있었다.

‘서우 길드가 순순히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자신에 대한 작전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서우 길드가 가족들에게 농간을 부릴 수도 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 해.’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신윤아가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정도가 전부였다.

신윤아는 삼두표를 쓰러트린 현성에게 상태창을 보여 달라고 요구할 확률이 높았다.

현성이 거절한다면?

지금은 호의를 보이는 신윤아도 적이 될 확률이 높았다.

‘플레이어 협회가 신뢰할 수 있는 정의로운 조직도 아니고.’

플레이어의 개인 정보와 위치 정보를 빼돌린 것을 둘째 치더라도 지금 신윤아가 하고 있는 일만 봐도 절대 합법적 일만 하는 조직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플레이어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노가다 판을 전전하던 현성에게 있어 플레이어란 선망의 대상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세계에서도 계급이 존재했다.

오히려 플레이어가 되고 고유 스킬을 손에 넣은 뒤 더 위험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고민하고 있던 현성의 귀에 신윤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닙니다.”

“이놈들 이거 서우 길드 사주를 받았더라고요. 현성 씨를 불구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대요. 아마 나중에 자기들은 모르는 일인 척 현성 씨를 포섭하려고 했겠죠. 똘똘하게 의뢰인 신상까지 파악하고 증거까지 수집해 놔서 이번 일로 서우 길드에도 한 방 먹일 수 있겠어요.”

“그런가요?”

역시 예상대로 서우 길드가 배후에 있었다.

“일단 나가시죠.”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던전 밖으로 나갔다.

사건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고블린 던전 밖으로 나온 신윤아의 전화 한 통에 플레이어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이 몰려들었다.

그 후 고블린 던전으로 들어간 플에이어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이 현성을 공격했던 이들을 모조리 끌고 갔다.

“잠깐 시간 되시죠?”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신윤아가 현성을 데리고 간 곳은 플레이어 협회 지부였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신 거죠?”

현성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삼두표 사건 때문입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제가 고블린 던전에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셨나요?”

“던전 출입 기록을 열람했습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그거 불법 아닌가요?”

“아닙니다. 플레이어 협회에서는 필요에 따라 협회원들의 던전 출입 기록을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까요.”

역시 길드와 협회는 달랐다.

길드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알아내지만 협회는 공식적인 방법으로 알아낸다.

“삼두표 사건 당시…….”

신윤아가 조사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했고 그 후 삼두표를 처리한 플레이어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번에는 최현성 씨 차례였습니다. 비공식적인 수사이기에 던전에 몰래 따라 들어가서 실력만 파악하고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터진 거죠. 바로 개입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제 한계를 보고 싶으셨군요.”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지막에 장우현에게 사용한 스킬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삼두표의 숨통을 끊은 당사자가 최현성 씨라는 사실을요.”

“제가 삼두표를 사냥하고 그 사실을 숨긴 게 죄가 되나요?”

“당연히 죄가 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 협회에서 최현성 씨를 찾은 건 보상을 드리기 위해서였으니까요.”

“보상을요?”

“예, 삼두표 처리에 대한 합당한 보상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할 게 있기도 하고요.”

“혹시 그 제안이 영입인가요?”

“그렇습니다.”

예상대로였다.

‘어떻게 거절을 하지…….’

지금은 자신에게 호의적이지만 거절하는 순간 적대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서우 길드라는 적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플레이어 협회라는 국가기관과도 척진다?

그건 플레이어로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전 딱히 어떤 단체에 소속될 생각이 없는데요.”

현성이 슬며시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조건부터 들어 보시죠. 계약금은 서우 길드에 제시한 금액인 1천억으로 맞춰 드리겠습니다. 그 외에도 플레이어 협회 직속 플레이어가 되시면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금 감면 조치부터 장비 무료 대여는 물론이고…….”

신윤아의 입에서 협회 직속 플레이어에 대한 혜택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성이 입을 열었다.

“당연히 상태창을 공개하는 조건이겠죠?”

“아닙니다. 한 가지 테스트만 통과하시면 됩니다.”

신윤아의 말에 현성의 눈이 동그래졌다.

“테스트요?”

“예, 간단합니다. 제가 지정해 드리는 분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거짓 없는 진솔한 대답을 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심문관인가?’

플레이어들의 스킬 중에는 별의별 스킬이 다 있다.

그중에는 전투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오히려 현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스킬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진실의 계약이라는 스킬이다.

이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경찰이나 검찰에서 특채로 뽑아 갈 만큼 효용성이 컸다.

스킬 진실의 계약을 사용하면 상대방이 하는 말의 진실과 거짓을 완벽하게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킬 대상자가 진실을 말하면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하지만 거짓을 말하면 몸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일반인들은 진실의 계약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심문관이라고 불렀다.

“이렇게까지 해서 저를 영입하려고 하시는 이유가 뭐죠? 솔직히 말해서 그 정도 조건이면 고레벨 플레이어를 영입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습니까?”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레벨도 고레벨 나름이죠. 정말 실력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는 이런 조건으로 영입이 불가능합니다. 레벨만 높고 실력이 뒤떨어지는 어중이떠중이라면 모를까.”

“20레벨의 법칙 때문입니까?”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겠군요.”

“저는 20레벨의 법칙을 깰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만약 그게 진실로 나와도 저를 영입하실 건가요?”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잠시일 뿐이었다.

“물론입니다. 석 달 만에 이 정도로 강해지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1천억을 투자할 가치가 있으니까요.”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내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아공간까지 구입해 특별함을 감추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서우 길드가 알고 있고 플레이어 협회가 알고 있다.

정보가 이 정도로 퍼져 나갔다면 아마 다른 거대 길드들도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나는 혼자야.’

개인이 거대 길드들의 압박을 견딜 수는 없다.

현성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거대 길드든 플레이어 협회든 현성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먼 미래라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현재의 현성은 거대 길드는커녕 앞에 앉아 있는 신윤아나, 그런 신윤아에게 한 방에 제압당한 장우현보다 약하다.

‘방패가 필요해.’

서우 길드를 비롯한 타 길드의 위협에서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켜 줄 든든한 방패가 필요했다.

플레이어 협회가 썩어 빠진 조직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국가 조직이다.

충분히 현성의 방패가 되어 줄 수 있다.

플레이어 협회는 공권력을 가지고 있다.

길드의 설립 허가와 취소 결정 역시 플레이어 협회가 한다.

문제를 일으킨 플레이어의 던전의 출입을 제한할 수도 있고 체포할 수도 있다.

국가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는 플레이어들을 강제 징집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는 조직이 바로 플레이어 협회다.

단일 규모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거대 길드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협회 직속 플레이어가 되면 거대 길드라고 해도 쓸데없는 수작을 부리지는 못할 것이다.

1천억의 계약금과 여러 혜택들 역시 나쁘지 않았다.

현성이 감았던 눈을 떴다.

“결정을 내리셨나요?”

신윤아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진솔한 대화를 나눈 뒤에 다시 협상을 해 보도록 하죠.”

“훌륭하신 선택입니다.”

* * *

“진실의 계약 스킬을 사용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예, 동의합니다.”

“스킬이 시전되면 동의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뜰 겁니다. 거기에서 예를 눌러 주시면 됩니다. 진실의 계약.”

심문관이 스킬을 걸었다.

-진실의 계약 스킬이 시전되었습니다. 스킬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예를 눌렀다.

‘찝찝하네.’

예를 선택함과 동시에 심문관의 마력이 현성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타인의 마력이 자신의 신체에 머무는 느낌은 상당히 불쾌했다.

스킬이 걸림과 동시에 심문관은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신윤아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정말 석 달 전에 각성하신 게 맞나요?”

“예.”

“20레벨의 법칙을 깨는 방법을 알고 있으신가요?”

“아니오.”

“대략 140레벨대의 플레이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레벨 던전에서 사냥을 하시는 거죠?”

“…….”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별거 없네.’

신윤아와의 대화는 의외로 별게 없었다.

현성은 예, 아니오로 대답을 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애매한 질문에는 아예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으십니까?”

그때 갑작스럽게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왔다.

“이 질문은 꼭 대답을 해 주셔야 합니다.”

“예.”

현성이 짧게 대답했다.

‘고유 스킬을 알고 있어?’

현성은 고유 스킬은 자기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나랑 같은 고유 스킬은 아닐 거야.’

현성보다 먼저 고유 스킬 ‘판매’와 ‘구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과 같이 빠른 속도로 강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저레벨 몬스터를 사냥하는 이유가 고유 스킬과 연관이 있습니까?”

“예.”

“고유 스킬을 다른 플레이어에게 걸어 주실 수 있습니까?”

“아니오.”

현성의 고유 스킬은 다른 사람에게 걸어 주고 말고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고유 스킬을 사용해 20레벨의 법칙을 피한 건가요?”

신윤아의 질문을 들으며 묵비권을 행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서서히 빠져나가던 심문관의 마력이 완전히 사라졌다.

스킬이 끝난 것이다.

“예.”

입에서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진실의 계약 스킬이 끝났으니 굳이 진실을 대답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스킬이 끝났군요.”

“한 번 더 해야 하나요?”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딱히 더 드릴 질문도 없고 지금까지 진실만을 말씀해 주셨으니까요. 그리고 대충 예상은 했지만 정말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으셨군요.”

신윤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투와 표정이 조금 전과 미묘하게 달랐다.

신윤아는 처음부터 줄곧 딱딱하고 공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미소를 짓더라도 약간 공적인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치 오랜 지기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현성을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 신윤아 님도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가 특별히 감출 일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슨 스킬인지 알려 드릴 수는 없지만 저도 가지고 있는 건 맞아요.”

“고유 스킬이라는 게 저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군요.”

현성이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망하실 필요는 없어요. 고유 스킬은 말 그대로 단 1명의 플레이어만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스킬이니까요. 그리고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올랐죠.”

신윤아의 말에 현성은 살짝 놀랐다.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그렇다면 신윤아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 중 하나라는 말이 아닌가?

현성은 신윤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협회의 간부이자 고레벨 플레이어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한데 이제 보니 고레벨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인 모양이었다.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는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제한이 있어요. 고레벨 플레이어라고 해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특히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 대한 정보는 국가보안법에 의거해서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져요.”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셔도 괜찮은 건가요?”

국가보안법이 나올 정도면 극비 중에 극비 아닌가?

“현성 씨도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으시잖아요. 뭐, 사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제가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밝히면 안 되는 건 맞아요. 하지만 어차피 같은 협회 소속이 될 테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전 협회 소속이 된다고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요?”

“어머, 이거 어쩌죠? 고유 스킬의 보유 여부를 말씀하신 순간부터 선택권은 사라지신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현성이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너무 정색하실 필요는 없어요. 협회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최현성 씨를 스카우트한다는 뜻이니까요.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후한 조건을 제시할 단체는 없을 거예요.”

신윤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계약금 4천억 원.

연봉 20억 원.

숙소 및 차량 제공.

가족 경호 시스템 제공.

마석 판매 수익 배분 8 : 2.

아이템 판매 수익 배분 10 : 0.

희귀 등급 아이템 무상 대여.

면세가로 스킬북 및 아이템 구매 가능.

여기에 세금 면세 혜택까지.

국가 차원이 아니라면 절대 들어줄 수 없는 혜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의무 조항도 크게 걸릴 게 없었다.

비상 대기조 근무는 후할 정도로 과한 보수가 나왔다.

만약 사건이 발생해 구조 작전이나 몬스터 소탕 작전에 투입된다면 그에 합당한 출동 수당이 추가로 지급된다.

그것도 모자라 작전 수행 중에 처리한 몬스터 사체, 마석, 아이템 등에 대한 권리 역시 일체 보장한다.

“자, 어서 서명하세요.”

신윤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현성에게 펜을 넘겼다.

사실 이 정도면 거의 퍼 준다고 봐도 무방한 계약이었다.

플레이어 협회가 이런 계약을 맺고 현성을 영입한들 남는 게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현성이 협회에 제공하는 것은 마석 수익 배분뿐인데 그마저도 2할이 협회 몫이고 현성의 몫이 8할이었다.

세금 면세 혜택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현성이 무조건적으로 이득을 볼 수밖에 없는 계약이었다.

단, 한 가지 조항이 없었다면 말이다.

-계약 기간 : 종신

-계약 조건 위반 시 계약금의 10배를 위약금으로 지불한다.

-계약 조건 위반 시 면세 혜택을 포함한 무료 제공 혜택을 유료로 계산해 모두 거둬들인다.

소위 노예 계약이라고 불리는 종신 계약서.

사실 조건 자체는 노예 계약이라는 말이 쏙 들어갈 정도로 좋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현성은 수천억 원대의 자산가가 된다.

현성이 금전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부분은 전체 마석 수익의 2할뿐이다.

그 2할 역시 세금 면세 혜택을 고려하면 사실상 손해가 아니라 이득이었다.

비상 대기조 근무 역시 좋게 생각하면 쉬면서 돈을 버는 거다.

긴급 출동 역시 합당한 보수가 지급되니 손해 볼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역시 종신은 아니야.’

계약 기간이 너무너무 길었다.

또 계약 위반 조건이 너무 애매했다.

실수로 의무 조항을 하나라도 위반하는 순간 현성은 코뚜레를 낀 송아지 신세가 되어 버린다.

“협회 직속 플레이어들이 모두 이런 조건으로 계약하는 건 아니죠?”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모두 이런 식으로 스카우트했으면 아무리 플레이어 협회라도 진작 파산했어요. 이런 과한 조건을 제시하는 이유는 최현성 씨의 고유 스킬 때문이에요.”

“네? 제 고유 스킬요?”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20레벨의 법칙 무효화 맞죠? 저레벨 몬스터를 잡아도 레벨이 오르고 마석도 나오고. 말 그대로 무한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세계 최고 레벨이 될 수밖에 없는 플레이어를 보유할 수 있는 기회인데 돈 아끼려다 놓치면 바보죠.”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하지만 충분히 그렇게 오해할 만했다.

아니, 그런 오해를 하면 현성으로서는 오히려 편했다.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고.’

현성은 20레벨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포인트를 습득할 수 있다.

포인트를 이용해 강해지는 만큼 어찌 보면 20레벨의 법칙 무효화도 현성의 고유 스킬에 딸려 오는 부가 효과 중 하나라고 할 만했다.

“혹시 계약 기간을 수정할 수 있을까요?”

“기간이 마음에 걸리세요?”

신윤아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전 세계를 통틀어 고유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 숫자가 몇 명인지 아세요?”

“모르죠.”

자신 외에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도 오늘 알았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80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에요.”

80명.

인구 비율로 따지면 1억 분의 1 수준이었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5천만.

비율로 따지면 고유 스킬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최현성 씨가 나타나시기 전까지는 제가 대한민국의 유일한 고유 스킬 보유자였어요.”

‘고유 스킬이라는 게 엄청 드문 거구나.’

현성의 고유 스킬보다는 못하겠지만 다른 고유 스킬들도 엄청나게 특별한 것 같았다.

“겨우 찾아낸 고유 스킬 보유자를 타국에 빼앗기거나 사조직인 길드에 빼앗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계약 조건을 대대적으로 올리고 기간을 종신으로 바꾼 거예요. 혹시 원하는 게 있다면 말씀해 보세요. 충분히 들어드릴 의향이 있으니까요.”

“계약 기간을 종신이 아니라 1년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불가능한 요청인 거 아시죠?”

플레이어 협회가 호구도 아니고 들어줄 리가 없었다.

“대신 계약금을 대폭 줄이겠습니다. 40분의 1인 100억 정도만 주셔도 충분할 거 같은데요.”

“그래도 마찬가지예요.”

“그럼 2년은 어떤가요?”

“계약금을 더 올려 드릴게요. 그러니 종신으로 하시죠.”

두 사람의 의견이 치열하게 대립했다.

한쪽은 종신 계약을 원하고, 한쪽은 단기 계약을 원하니 합의점이 도출될 수 있을 리 없었다.

“의무 계약 기간 2년. 계약금 200억으로 하죠. 대신 2년 뒤 계약 종료 시점까지 상호 간에 큰 문제가 없다면 플레이어 협회를 최우선 계약 대상으로 삼겠습니다. 만약 이 제안 역시 거절하신다면 차라리 플레이어 협회와 계약하지 않겠습니다.”

현성이 최후통첩을 날렸다.

“혹시 타국으로 망명이라도 하실 생각이신가요?”

신윤아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요. 그저 플레이어 협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영구적으로 종속되는 게 싫은 겁니다.”

“조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의무보다는 혜택이 더 많은데요?”

“과연 그럴까요?”

지금 당장은 이득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수천억의 계약금?

지금의 현성에게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큰돈이다.

하지만 미래의 현성에게도 그럴까?

아닐 확률이 컸다.

당장 눈앞에 있는 큰돈에 눈이 멀어 미래를 저당 잡힐 수는 없었다.

현성에게 필요한 것은 힘을 키우기 전까지 방패막이가 되어 줄 보금자리다.

물론 그 보금자리가 마음에 든다면 계약을 연장해 계속 머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살아 보지도 않고 종신 계약서에 서명할 수는 없었다.

“같은 조건이라면 무조건 협회와 재계약하겠습니다. 협회로서도 손해 보는 건 없지 않나요? 2년 인턴 계약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휴우, 갑과 을이 뒤바뀐 인턴 계약이 될 것 같군요.”

신윤아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인턴이 재계약을 위해 회사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회사가 재계약을 위해 인턴 눈치를 보게 생겼다.

“음, 저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니네요. 일단 상부에 보고해 볼게요.”

“얼마든지요.”

잠시 자리를 비웠던 신윤아가 돌아왔다.

“들어드리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 뭔가요?”

“타국의 플레이어 협회나 길드에서 스카우트 요청이 들어왔을 때 무조건 한국 플레이어 협회에 그 조건을 오픈하는 조건입니다. 또 동일 조건인 상황에서는 무조건 한국 플레이어 협회와 재계약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성이 시원스럽게 승낙했다.

“서명하시죠.”

신윤아가 수정된 계약서를 내밀었다.

“네.”

현성이 수정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계약서를 한 부씩 나눠 가진 뒤 신윤아가 현성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물론입니다. 당분간이기는 하지만요.”

현성과 신윤아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나눴다.

“계약서에 서명도 하셨으니 일단 아이템부터 바꾸셔야겠어요. 지금은 사용하시는 장비는 전부 다 대여 장비시죠?”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이랑 망토는 희귀 등급인데요.”

“그럼 그 2개를 제외하고 싹 다 바꾸는 게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일단 저랑 장비부터 교환하러 가시죠.”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성은 신윤아와 함께 서울에 있는 플레이어 협회 본사에 도착했다.

그 후 쇼핑이 시작되었다.

‘정말 없는 게 없네.’

최하 수억은 나갈 것 같은 희귀 등급의 장비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협회 직속이 되면 모두 이 장비들을 대여할 수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플레이어의 직급에 따라 대여할 수 있는 아이템 등급이 결정되거든요. 아, 물론 현성 씨는 예외예요.”

“그렇군요.”

현성은 천천히 장비들을 살폈다.

‘생각보다 엄청 좋지는 않네.’

구매창에서 보던 아이템들 덕분에 눈이 높아졌는지 마땅히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적당히 골라야겠다.’

현성은 그나마 옵션이 괜찮은 장비들을 골랐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이동하죠. 현성 씨의 체형에 맞게 수선을 해야 하니까요.”

“네.”

“장비가 수선되는 동안 협회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 드릴게요. 현성 씨 소속이 어디로 배정되었는지도 말씀드리고요.”

소속과 배정.

플레이어 협회에 2년간 매인 몸이라는 사실이 확실히 실감 났다.

‘2년 동안 뽕을 뽑아야지.’

플레이어 협회 직속이라는 방패와 면세 혜택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줄 생각이었다.

“제 소속이 어디로 배정된 거죠?”

“감찰 팀요. 뭐, 말이 감찰 팀이지 사실 주 임무는 던전에서 사고가 발생하거나 플레이어들끼리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해결하는 거예요. 인력이 부족해서 감찰 팀이 지원 팀 일도 도와줘야 하거든요.”

“제가 그런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저레벨 던전이라면 모를까 중 레벨 던전만 되어도 제가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현성 씨의 현재 레벨을 고려해 출동 요청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대충 그럴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그리고 제가 현성 씨 직속 상사니까 임무 수행 중에 애로 사항이 발생하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혹시 계약 전에 있었던 문제에 대해서 말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사냥한 마석의 수량과 판매 금액에 대한 정보가 고스란히 서우 길드에 넘어갔더군요. 심지어 던전에서 사냥 중인 제 위치를 넘기기도 했고요.”

“그 건은 이번 일과 함께 묶어서 처리하겠습니다. 서우 길드에게 단단히 본때를 보여 줄 수 있겠네요.”

“놀라지 않으시네요? 협회 직원들과 거대 길드의 공생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으셨나요?”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적폐죠.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뿌리 뽑아 버리고 싶은데 거기까지는 제 힘이 닿지 않더라고요. 전에 한 번 건드려 봤는데, 증거불충분으로 유야무야 무마되어 버리더군요.”

신윤아는 확실히 특별했다.

현성이 아무리 플레이어 협회와 계약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종신 계약이 아닌 2년짜리 계약직이다.

플레이어 협회의 치부라고 할 만한 일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기는커녕 감춰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신윤아는 솔직했다.

차후 계약 연장에 악영향이 갈 수 있는 플레이어 협회의 치부를 서슴없이 털어놓을 정도로 말이다.

‘확실히 다르네.’

불과 며칠 전까지 현성은 플레이어 협회가 완전히 썩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뿌리까지 모두 썩어 버린 건 아닌 듯했다.

“현성 씨 숙소도 배정해 드릴게요.”

“아, 그런데 제가 한 던전에서 진득하게 사냥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숙소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음, 그래요? 그건 좀 곤란한데…….”

“비상 대기조 근무 때문인가요?”

“맞아요. 인력을 편성해야 하는데, 좀 곤란하겠네요.”

신윤아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매번 사냥하는 던전 위치를 저한테 알려 주세요. 그러면 그 근처 플레이어 협회 지부로 임무지를 배정해 드릴게요. 숙소는 따로 카드를 한 장 드릴게요. 그걸로 숙박비 결제하세요.”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요?”

“당연히 아니죠. 다른 협회 직속 플레이어분들이 알면 특별 대우 해 준다고 난리가 날걸요. 그러니 비밀로 해 주세요. 공식적으로는 근무지 변경이 잦아지는 걸로 처리가 될 거니까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잘 보여야 2년 뒤에도 재계약해 주실 거잖아요.”

신윤아의 말에 현성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윤아는 현성을 데리고 다니며 협회의 구성과 직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던 와중에 장비 수선이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딱 맞네요.”

현성이 새 장비를 걸치고 환한 얼굴로 말했다.

몸에 제대로 맞지도 않는 일반 등급 대여 장비를 착용하고 다니다 몸에 딱 맞는 희귀 등급 장비를 착용하자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이것도 받으세요.”

신윤아가 플레이어 등록증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현성 씨가 플레이어 협회 직속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줄 거예요. 공무집행 및 감찰 권한이 있으니까 전처럼 불쾌한 경험을 하실 일은 없을 거예요.”

확실히 배경이 생기니 좋기는 좋았다.

신윤아는 그 후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 준 후 설명을 끝냈다.

“이제 가도 되는 건가요?”

“예, 비상 대기조 근무 시간만 잘 지키시면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비상 호출은 거의 발동되는 경우가 없으니까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비상 호출이 발동되면 꼭 응해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계약금은 언제 들어오나요?”

“이미 들어갔어요. 계약금을 입금해 드려야 계약서가 효과를 발휘하니까 서둘렀죠. 돈 쓸 일이 있으신가 봐요.”

“예, 스킬북을 좀 구매하려고요.”

“좋은 생각이시네요. 플레이어 협회 내부에서 스킬북 판매점이 있으니까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현성은 신윤아의 안내를 받으며 스킬북 판매점으로 이동했다.

‘강해지는 게 중요해.’

사냥을 통해 얻은 수익만으로도 현성과 가족들은 편하게 살 수 있다.

계약금으로 받은 200억.

그 돈을 모조리 스킬북 구입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많지 않네요.”

현성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반 등급 스킬북의 매물이 대부분이었다.

희귀 등급 스킬북은 가뭄에 콩 나는 수준으로 존재했고 영웅 등급은 아예 매물 자체가 없었다.

“스킬북이 그렇게 자주 나오는 아이템은 아니니까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편이라서 좋은 스킬북이 나오면 바로바로 판매가 되거든요. 또 공식 경매장에 비해서 협회 스킬북 판매점은 규모가 좀 작아요.”

“일단 있는 거라도 구입해야겠네요.”

현성은 바로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확실히 면세가 좋긴 좋네.’

세금을 제외한 면세가로 구매할 수 있다 보니 스킬북의 가격이 정말 쌌다.

반값 세일 하는 할인 매장에 온 기분이 들 정도였다.

현성은 자신이 익히지 않은 스킬들을 모조리 구매했다.

“그렇게 많이 사셔도 괜찮으시겠어요? 효율이 잘 나오지 않을 텐데.”

탱커는 체력, 전사는 힘, 궁수나 암살자는 민첩, 마법사는 마력, 힐러는 정신력.

이게 각 포지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스텟이다.

하지만 스텟은 항상 부족하고 당연히 자신의 주력 스킬에 많은 스텟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효율을 생각할 때 주력이 아닌 스킬을 대량 구매하는 것보다 돈을 아껴 등급이 더 높은 주력 스킬을 구입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다 쓸모가 있는 스킬들이잖아요.”

현성이 웃으며 대답했다.

모든 스텟이 비슷한 수준인 현성에게 효율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어떤 직업의 스킬북을 구매해도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긴 현성 씨가 돈을 아낄 상황은 아니죠. 그래도 액티브 스킬은 효율을 고려하시는 게 좋아요. 패시브는 자동 발동이라 아깝지가 않지만 액티브 스킬은 익혀 놓고 몇 번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거든요.”

“주의하겠습니다.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성은 상당히 많은 스킬을 구입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일반 등급 스킬이었기에 예상했던 것보다 돈의 소모가 적었다.

현성은 구매한 스킬북들을 그 자리에서 모두 익혔다.

“끝나셨나요?”

“네.”

“그럼 이제 제 할 일은 다 끝났네요.”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배웅해 드릴게요. 어차피 배정된 차량도 안내해 드려야 하거든요.”

“아, 그렇죠.”

차량 제공 혜택.

깜빡 잊고 있었다.

현성이 신윤아와 함께 플레이어 협회 밖으로 나왔다.

현성에게 배정된 것은 국산 대형 세단이었다.

“보험 처리도 되어 있으니까 본인 차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운행하시면 돼요. 혹시 개인 차량으로 바꾸실 경우는 미리 알려 주세요. 차량을 반납하시면 소액이지만 차량 지원금이 나가거든요.”

“이 차도 충분히 좋은데요, 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차량 열쇠를 받았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인사를 끝으로 현성이 플레이어 협회를 벗어났다.

* * *

“아무리 생각해도 2년은 너무 짧아.”

타오르는 불길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중년인이 붉은빛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종신 계약을 못 하셔서 아쉬우신가 보네요?”

신윤아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히 아쉽지. 무조건 잡았어야 했는데.”

“싼값에 후려칠 생각이었으면서.”

“아니거든!”

중년인이 억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야, 너 같은 경우도 꼬박꼬박 계약 조건 올려 줬잖아. 우리가 종신 계약이라고 뭐, 싼값에 막 부려 먹었냐?”

“처음에는 싼값에 부려 먹었죠. 제가 말 안 했으면 계약 조건 올려 주지도 않았을 거고. 아, 저도 처음부터 최현성 씨처럼 기간제 계약으로 했어야 했는데.”

“최현성 씨랑 너랑 같냐? 우리도 너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너 아니었으면 고유 스킬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을걸.”

“그러니까 더 잘해 줬어야죠.”

“충분히 잘해 줬잖아! 이번 최현성 씨 계약 건도 네 의견 반영해서 엄청 많이 양보해 준 거야! 너만 안 끼어들었으면 계약금 1천억 정도로 종신 계약도 가능했어!”

“그랬으면 정보가 새어 나가서 타국 플레이어 협회나 타 길드에 빼앗겼을걸요.”

“네가 나 협박했잖아! 타국 플레이어 협회에 정보 흘리겠다고!”

“제가 언제 그랬어요? 그럴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했지.”

“내가 널 모르냐?”

“절 그렇게 잘 아시면 제가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도 아시겠네요?”

“몰라.”

“모르는 척하지 마시고, 저도 2년 기간제 계약직으로 바꿔 주세요.”

“그건 절대 안 돼. 솔직히 네가 반대만 안 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현성 씨와 종신 계약 맺었을 거다.”

“악당.”

신윤아의 신랄한 평가에 중년인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나 좋자고 그러냐? 다 나라 위해서 그러는 거야. 최현성 씨 입장에서도 협회랑 종신 계약 맺어서 나쁠 거 없고.”

“개인 입장에서는 안 하는 게 더 좋긴 하죠.”

“에휴,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지었기에 저런 거랑 엮인 걸까.”

“저런 거랑 엮이기 싫으시면 계약 해지해 주세요.”

“안 돼.”

“칫!”

신윤아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일하러요.”

신윤아가 협회장 사무실을 나섰다.

‘현성 씨가 나처럼 고생할 필요는 없지.’

신윤아도 중, 저레벨 시절에는 계약 문제로 많은 고난을 겪었다.

직속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최현성이 자신이 겪었던 고난을 답습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욕하던 이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런 점을 감안해도 좀 과하게 신경 써 준 경향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것을.

* * *

플레이어 협회를 벗어난 현성은 일단 어머니에게 돈을 송금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아버지 병원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거액을 부쳤다.

그 후 정부 공식 경매장으로 향했다.

더 많은 스킬북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또 신윤아의 눈치를 보느라 하나씩밖에 구매하지 못했던 상처 회복 관련 스킬북을 대량 구매할 필요성이 있었다.

‘불사의 서를 성장시켜야 해.’

상처 회복과 관련된 스킬북들을 대량 구입해 익힌다면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얼마나 처먹어야 성장하는지 한번 보자.’

계약금을 모조리 쏟아붓는 한이 있더라도 불사의 서를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경매장에 도착한 현성은 상처 회복과 관련된 스킬북들을 우선적으로 살펴봤다.

‘어?’

그런 현성의 눈에 한 스킬북이 들어왔다.

자연의 회복력 - 희귀 등급

-패시브 스킬북

-상처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상당히 귀한 상처 회복 패시브 스킬이 경매에 올라와 있었다.

당연히 경매가는 상당히 높았다.

‘무조건 사야 해.’

불사의 서가 유일 등급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희귀 등급 스킬이다.

당연히 동등한 희귀 등급 스킬을 흡수하면 성장이 가속화될 것이다.

‘흡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가지고 있어서 나쁠 게 없는 스킬이야.’

현성은 바로 경매에 응찰했다.

‘다른 것도 사야지.’

패시브 스킬은 등급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응찰했다.

액티브 스킬의 경우 신윤아의 조언에 따라 희귀 등급 스킬에만 응찰을 했다.

‘이제 포인트 쇼핑을 해 볼까?’

현실 쇼핑을 끝낸 현성이 판매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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