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팔렘과의 전쟁
현성은 그 후 게임기, 스마트폰, 태블릿 피시를 주력으로 판매했다.
보조 배터리와 건전지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컴플레인이 들어오지 않았다.
구매자들이 건전지의 가격과 성능에 만족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성이 가격을 절반이나 내릴 필요가 없었다.
현성은 무시하고 다시금 건전지들을 동일한 가격에 등록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후략……
-판매자 최현성 님의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 크로우 님께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컴플레인이 지속 및 누적되면 판매자 등급이 하락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컴플레인 내용을 읽어 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판매자 최현성 님의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 크로우 님께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컴플레인이 지속 및 누적되면 판매자 등급이 하락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컴플레인 내용을 읽어 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후략……
‘어라?’
현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격을 절반으로 내리라고 컴플레인을 걸었으면서 기존 가격의 물품을 모조리 사들였다.
‘설마?’
현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금 물품을 등록했다.
역시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그와 함께 당연하다 듯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이건 절대 순수한 구매자의 행태가 아니었다.
‘한번 해보자, 이거지?’
현성과 크로우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현성이 건전지를 올리기만 하면 크로우는 무조건 구매했다. 구매 후에는 곧바로 컴플레인 콤보가 이어졌다.
‘나를 영업정지시키겠다는 건가?’
이건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 * *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올 블랙 패션의 사내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앞의 판매창을 주시했다.
그런 사내의 옆에는 건전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네놈이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짓을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다.
뉴비들에게 있어 판매와 구매 고유 스킬은 축복과도 같다.
사내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다.
고유 스킬을 통해 빠르게 강해졌고 그 결과 자신이 살고 있는 행성의 절대자가 되었다.
하나 아무리 고유 스킬이 있다고 해도 절대자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포인트는 아무리 모아도 부족했다.
쓰는 건 금방이지만 모으기는 너무 힘들었다.
그런 사내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자신들보다 후발 주자 위치에 있는 뉴비들이었다.
뉴비들의 대부분은 사냥을 통해 포인트를 모아 비약과 스킬북을 구매해 강해진다.
사내에게 있어서는 포인트 셔틀이나 마찬가지다.
하나 가끔 특이한 존재들이 있었다.
자신이 사는 행성에서만 나는 특산품을 가지고 포인트를 쓸어 담는 종자들.
최현성이라는 뉴비 역시 그런 운 좋은 플레이어였다.
‘물품을 아무리 독점해도 압도적인 자본력 앞에서는 무릎 꿇을 수밖에 없어.’
사내는 뉴비들이 판매하는 물품 중 지속적으로 포인트 벌이가 될 만한 물건을 모조리 사재기해 컴플레인을 걸었다.
뉴비가 3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때까지 말이다.
그 후에는 일이 쉬워진다.
차분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3개월이 지나 영업정지가 풀리면?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럼 결국 뉴비는 다시금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같은 일이 무한 반복 된다면?
아무리 독한 놈이라도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정해 준 시간에 정해진 가격으로 물품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해 준 시간에 정해진 가격으로 올리는 물품은 당연히 자신이 독점한다.
그렇게 구매한 물품은 독점 상품을 판매하는 뉴비의 목줄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말을 어기는 순간 컴플레인을 걸어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끝난 건가?’
그때, 계속해서 올라오던 건전지 판매가 멈춰 버렸다.
결국 자신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 * *
‘다 떨어졌네.’
아공간에 있던 건전지가 바닥났다.
현성은 곧바로 던전을 나섰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 도착한 현성은 대량으로 건전지를 구입하고 다시금 판매를 시작했다.
사실 예전 같으면 진작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성은 더 이상 십여 가지 물품이 판매품의 전부인 초보 판매자가 아니었다.
그간 누적 판매된 건전지의 수량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건전지의 용량이 적은 만큼 판매량도 많았다.
아마 현성을 영업정지를 먹이려면 그간 판매한 수량보다 더 많은 물품을 구입해 컴플레인을 걸어야 할 것이다.
* * *
현성과 크로우의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현성이 올리면 크로우는 산다.
두 사람의 레이스에 일반 소비자들도 가세했다.
그간 뜸했던 건전지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크로우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이 가세한 것은 현성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일반 소비자들은 컴플레인을 걸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결국 따라잡힐 거야. 폭리를 취하려면 제대로 취해야지.’
현성이 건전지 가격을 팍팍 올렸다.
기존의 건전지 가격은 999,999포인트.
이걸 2배로 올렸다.
그런데도 따라온다?
그럼 3배로 올렸다.
가격을 계속 올렸음에도 크로우는 계속해서 건전지를 구입했고 컴플레인을 걸었다.
-누적 습득 포인트가 100억을 돌파했습니다.
-등급이 상승합니다.
-희귀 등급이 되셨습니다.
-영웅 등급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구매할 수 있는 목록이 늘어납니다.
-판매창이 100개로 늘어납니다.
그 결과 현성은 한참은 걸릴 줄 알았던 등급 상승을 이뤄 냈다.
당연히 본래의 젊은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다.
포인트도 어마어마하게 벌 수 있었다.
-5,957,345,782 포인트
무려 60억에 가까운 포인트가 쌓였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네.’
처음에는 괘씸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을 타깃으로 정해 줘서 고마울 지경이었다.
‘아깝다.’
더 팔고 싶었다.
되팔렘을 상대로 더 많은 폭리를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계가 찾아왔다.
‘더 이상은 위험해.’
기존에 올린 판매 수량 대비 컴플레인 수치가 턱밑까지 차올랐다.
상대가 추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건전지 판매는 위험했다.
현성은 미리 준비해 놓은 아이템들을 판매창에 등록했다.
가격은 무려 29,999,999포인트.
‘이것도 살 수 있으면 사 봐라.’
현성이 건전지를 쓰레기로 만들어 버릴 3천만 포인트짜리 폭탄을 대거 투하했다.
* * *
‘이제 진짜 무릎을 꿇었나?’
사내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구매창을 노려보았다.
사내의 옆에는 건전지들이 작은 동산처럼 쌓여 있었다.
‘복구하는 데 시간 좀 걸리겠어.’
사내가 건전지를 구매한 이유는 포인트를 벌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적자였다.
이 적자가 흑자로 전환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듯했다.
최현성이라는 놈이 막판에 가격을 4배까지 올렸을 때는 절로 욕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꾹 참고 구매를 했다.
가끔 이런 놈들이 있다, 물품 가격을 엄청나게 올려 폭리를 취하려는 경우가.
이럴 때 물러서면 곤란하다.
끝까지 따라붙어 영업정지를 먹여야 한다.
물론 너무 과하게 가격을 올리면 잠시 숨을 골라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4배까지는 감수할 수 있었다.
최현성이라는 놈도 거의 한계에 달한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어?’
그때 최현성이라는 놈이 또다시 판매 물품을 올렸다.
‘건전지는 아닌데?’
자신이 잔뜩 구입한 건전지는 아니었다.
‘뭐지?’
의아한 표정으로 최현성이 올린 물품을 확인했다.
XXX사의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 - 일반 등급
-1,000WH의 대용량 배터리다.
-12V DC, 5V USB, 220V AC 단자를 지원한다.
-스마트폰 120회 이상, 태블릿 24회 이상 충전이 가능하다.
-판매자 : 최현성
-판매가 : 29,999,999포인트
-XXX사의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 - 일반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이런 %$#%$!”
사내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건전지가 전부일 줄 알았다.
한데 이런 오버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있었다니?
구매창에 등록된 대용량 배터리의 숫자는 무려 70개가 넘었다.
전부 다 구입한다?
무려 21억 포인트다.
놈이 다시 올리면?
그때도 또 21억 포인트를 들여 구매해야 하나?
성공한다는 확신만 있다면 21억 포인트가 아니라 2,100억 포인트도 투자할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이놈의 한계치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는데.’
판매 정지를 먹이려면 구매한 제품의 70% 정도가 컴플레인을 받아야 한다.
처음에는 금방 쓰러질 거라고 예상했다.
한데 뉴비치고는 누적 판매량이 만만치 않았다.
결정적으로…….
‘또 다른 오버 테크놀로지의 물품이 있다면?’
건전지와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의 성능은 천양지차다.
하지만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가 끝이 아니라면?
더 성능 좋은 물품을 가지고 있지만 고의적으로 풀지 않은 것이라면?
지금까지 소모한 포인트는 대략 40억 포인트 남짓.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손해다.
하지만 수천억 포인트를 투자한 작전이 무위로 돌아간다면?
사내로서도 감당이 불가능했다.
‘손절하자.’
사내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 * *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후략……
연달아 판매 메시지가 들려왔다.
하지만 컴플레인은 들어오지 않았다.
‘포기했나 보네.’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를 구입한 이들은 현성이 판매한 건전지를 대량으로 구매했던 기존 고객들이었다.
크로우는 더 이상 현성이 판매 등록한 물품들을 구매하지 않았다.
반대로 크로우의 이름으로 대량의 건전지들이 등록되기 시작했다.
‘저걸 누가 사냐?’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는 건전지보다 월등한 용량과 편의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가격적인 면에서는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를 사는 것보다 건전지를 대량 구입하는 것이 싸다.
하지만 현성이 판매하는 물품은 생활필수품이 아닌 일종의 사치품이다.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해서 몇억 포인트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VVIP 고객들이 약간의 포인트 절약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려 들까?
‘그럴 리가 있나.’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의 편리함을 맛본 이들의 대다수는 불편함이 가득한 건전지를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저놈 때문에 예정보다 일찍 풀어 버렸네.’
하지만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어차피 슬슬 캠핑용 대용량 배터리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시점이었다.
게임기, 스마트폰, 태블릿 피시의 판매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물론 기존에 전자 제품을 구입한 고객들에게 건전지만 팔아도 꽤 큰 포인트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큰 포인트를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제 그것도 판매를 시작해야겠어.’
현성이 미리 점찍어 놓은 중고 전자 제품 매장을 향해 움직였다.